회사원 황모(36)씨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분양 받은 아파트 중도금 기일이 곧 닥치는데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서울 뉴타운 지역에 24평 아파트를 분양 받았을 때만 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들떴다. 7년간 월급을 쪼개 부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을 타 계약금을 내고 남은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1,500만원을 넣은 중국펀드는 반토막이 났다. 직접 투자한 주식은 원금의 70% 가까이를 까먹었다.
짓눌리는 삶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며 30대 초ㆍ중반 이른바 'IMF 학번'이 다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한복판에 맨발로 서야 했던 이들이 10년 만에 다시 겪는 벼랑 끝 삶의 공포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더 크고 깊다.
"이제 좀 살 만해지나 싶었는데…." 황씨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98년 2월. 그 해 아버지는 회사 구조조정에 밀려 명예퇴직을 했다. 뽑아주는 곳이 없어 1년간 막노동으로 버텨야 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회사 사정이 괜찮은지 항상 촉각이 곤두서요.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 가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똑똑히 봤으니까요."
이들이 악화일로의 경제 상황에 특히 민감한 것은 내 집 마련이나 육아 등으로 경제력에 대한 욕구가 어느 세대보다 강한 탓이다. 더구나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몇 억 만들기'로 대표되는 재테크 열풍 속에서 살아왔다. 황씨는 "집값 폭등을 목도하고 대출로 무리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고, 이걸 갚으려고 주식이나 펀드로 돈을 굴리는 게 우리 세대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99년 대학을 졸업한 강모(35)씨도 2년 전 서울 강서구에 3억원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
강씨는 "절반은 대출 받고, 그래도 부족한 돈은 아내가 신용대출을 받았다"며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자부담이 갈수록 늘어 수입의 절반을 이자로 내야 해 생활이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윤모(33)씨는 아이들과 더 이상 놀이공원에 가지 않는다. 영화관 가본 지도, 커피를 사서 마셔본 지도 오래다. 자가용도 늘 집 앞에 세워져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게 눈에 보여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 하청업체에 다니던 아버지가 구조조정으로 퇴사한 뒤 윤씨는 아버지와 생필품 노점상을 하며 간신히 졸업했다. "또 다시 그렇게 힘겨운 시절이 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요."
이들은 "그나마 아직은 회사에 붙어있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만난 실업공포13일 오후 서울의 한 종합고용지원센터의 실업급여 교육장. 하루 두 차례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급 절차 등을 교육하는 곳이다. 150여 좌석을 꽉 채운 '교육생'의 절반 가량은 30대로 보일 정도로 연령층이 낮다. 최근 명예퇴직 했다는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대출이자도 다 낼 수 없는 돈이지만 이거라도 받기 위해 신청을 했다"며 "한참을 건물 앞에서 머뭇거리다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내 또래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아직 젊다는 이유로 IMF 학번들은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기도 쉽다. 물류회사에 다니던 아내가 최근 경기 탓에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최모(34)씨는 "혼자 벌어서는 대출이자 내기도 버거워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차라리 집을 팔고 부모님 집에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전쟁 같은 취업 전선에 내몰린 이들은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버겁다. IMF 한파를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올해 초 돌아온 조모(33)씨는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지방의 한 법대를 나온 조씨는 취업이 안돼 2000년부터 2년 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다 영어라도 잘해보자는 생각에 미국행을 택했다. "6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어렵게 경험을 쌓았는데도 취업이 어렵네요. 이제 나이 때문에 원서를 내도 면접까지 가지도 못합니다." 조씨는 "경기가 더 나빠질 거라고 해서 걱정"이라며 "한 달에 한 두 번 친구들과 외식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생활 정도가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2000년 졸업한 김모(31ㆍ여)씨도 7,8곳의 회사를 옮겨다닌 끝에 다시 구직에 나섰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다. 김씨는 취업사이트에 한 군데도 빠짐 없이 이력서를 내고 취업공고를 놓치지 않고 매주 2,3곳씩 지원하고 있다. 김씨는 "대학 졸업 때보다 요즘 취업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종합고용지원센터의 유연희 팀장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30대 초ㆍ중반 젊은이들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많아졌다"며 "경제 사정이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올겨울이 두려운 달동네
"지난달엔 10원도 못벌었어" 달동네엔 벌써 칼바람 분다
노인연금 8만4000원으로 한달 버티고
재개발에 집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40년 여기 살았지만 요즘처럼 힘들기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불암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104마을'.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다. 현재는 중계본동 30-3번지이지만, 1960년대 청계천 용산 등 도심 개발로 집 잃은 철거민들이 옮겨올 당시 번지수를 따 요즘도 '104마을'로 불린다.
일요일인 12일 낮, 청년도 얼마 못 올라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비탈길을 한 노인이 폐품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며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겨울 날 준비는 하셨느냐"고 말을 건네자, 김모(78)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6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10만원짜리 사글세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김씨의 월 수입은 폐품 팔아 버는 20만원과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30만원이 전부다. "찬바람 불면 폐품팔이도 못해요. 연탄값도 너무 올라서 올 겨울엔 전기장판 하나로 버틸까 합니다." 그는 깊은 한숨만 자꾸 내쉬었다.
"또 어디로 가야 하나…"'104마을'은 8월 주택재개발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달동네가 사라진 자리에 2012년까지 2,700여 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비구역 지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마을 입구에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속속 문을 열고, 불암산을 끼고 앉아 환경도 쾌적한 이 지역의 투자가치를 알리는 기사들이 연일 신문에 오른다. 하지만, 대다수 마을 주민들에게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고단한 삶 속에서 지친 몸을 누일 마지막 보금자리를 또다시 빼앗겨야 한다는 공포로 다가올 뿐이다.
'104마을' 주민은 무허가 주택 525가구를 비롯해 1,194가구 3,546명으로, 60%가 월 10만~20만원의 사글세 세입자들이다. 임대주택을 늘려 주민 재정착률을 80%까지 높이겠다는 구청측 구상에도 무허가 주택 주민이나 세입자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오랜 불황에 재개발 불안까지 겹치며 마을 안 상권은 완전히 죽었다. 13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장사가 너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곽모(66ㆍ여)씨가 운영하는 정육점은 아예 개점휴업 상태다. 진열대의 붉은 형광등은 불이 꺼진 지 오래이고, 고기를 걸어놓아야 할 쇠고리에는 빨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곽씨는 "달동네에 언제 호황이 있었겠냐만 지난달엔 가게에서 단돈 십 원 한 장 벌지 못했다"고 했다.
곽씨가 틈틈이 동사무소 식당 일을 해 버는 25만원과 저소득층 지원금 20만원에서 가겟세, 집세로 30만원을 주고 나면 네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는 "정신장애인인 딸까지 챙겨야 해 하루하루가 고달프다"며 "재개발이 된다는데 우리같이 집도 없는 달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다"고 울먹였다.
'달동네 속 달동네' 祖孫 가정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노인들이 어린 손주들을 거둬야 하는 '조손(祖孫) 가정'에는 달동네 안에서도 가장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슈퍼 앞 평상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도토리를 까고 있던 이모(71) 할머니. 할머니는 고3 손자를 위한 밥상에 인근 밭에서 따온 야채 반찬만 올리는 것이 미안해 도토리묵 별식이라도 만들어주려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왔다고 했다. "아들 며느리가 12년 전 집을 나가 손자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키웠지. 경비일 하던 영감마저 작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 어떻게 살지 막막하기만 해."
시집 간 딸이 보태주는 10만원과 공원에서 쓰레기 주워 받는 20만원이 월 수입의 전부다. 그나마도 겨울에는 공원 일자리마저 끊긴다. 벌써 두 해째 겨울에도 기름보일러를 때지 못했다. 하나는 연탄보일러로 바꿨지만, 치솟는 연탄값 대기도 버겁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목과 오른쪽 다리에 철심을 박았는데 날 추워지면 안 아픈 곳이 없어.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나야 하나…."
어느 한 사람 기댈 이 없는 독거노인들의 삶에 비하면, 말벗이라도 되어주고 살아야 할 희망을 안겨주는 손주들을 둔 이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지난 6월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홍모(81)씨는 노인연금 8만4,000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전기료, 수도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연탄이나 쌀은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요즘에는 불황 탓인지 이마저도 뜸하다.
폐품팔이도 건강이 나빠져 손을 놓았다. '104마을'을 담당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작년 겨울에는 연탄도 못 때 차갑게 식은 방에서 혼자 굶어 돌아가신 노인도 있었다"면서 "독거노인이나 조손가ㅐ?돌보다 보면 가슴이 저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겨울이 두려운 틈새 계층'104마을'에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200여명. 이들과 별반 다름 없는 경제적 빈곤층임에도 이런 저런 제한에 걸려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차상위' 틈새 계층 사람들은 날품팔이 일도 얻기 힘든 겨울이 닥쳐오는 게 두렵기만 하다.
3년 전부터 치매에 걸린 부인을 돌보는 이모(87)씨는 "40년을 '104마을'에서 살았지만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었다"고 한탄했다. 부인을 혼자서 간병하는 게 힘에 부쳐 올해 초 단기노인복지시설에 맡겼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니다 보니 한 달에 40만원 하는 간병비 마련하기도 벅차다. 그나마 복지시설에서도 12월 초까지만 머물 수 있다고 해 주름만 깊어지고 있다.
10년 전 '104마을'로 왔다는 김모(50)씨는 '요즘 경기가 나쁜데 어떻게 사시느냐'고 묻자 대뜸 화부터 냈다. "환율 오르고 주식이 폭락해 난리라구요? 이곳 사람들은 값 떨어질 주식도 없지요. 여기서 내몰리면 더 이상 갈 데도 없는 사람들인데…."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104마을' 주민들의 한탄이 내내 귓전을 울렸다.
"연탄으로 올 겨울 버텨볼려는데…" 기름값 감당못해 보일러 교체 많아… 그마저 3년새 100원 올라 '한숨'
15일 '104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윗골'에 연탄 2,000장을 실은 배달차가 도착했다. 불암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어머, 이 사람들 겨울나기 준비하나 봐"라며 신기한 듯 바라봤지만, 겨울을 앞둔 달동네 사람들에게 연탄 확보는 생존이 걸린 일이다.
배달차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주민 4,5명이 서로 자기 집에 먼저 연탄을 들여달라고 야단이다. 주민 김모(44)씨는 "달동네에는 배달을 꺼리고 배달료 등 추가비용도 많이 들어 공동으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연탄배달원 김모(29)씨는 "장당 10원이라도 아끼려고 차에서 연탄을 내려 달라고만 하고 본인들이 직접 들고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뜸했다.
무게 3.6㎏, 21개의 구멍에서 4,600㎉의 열량을 뿜어내는 막강 화력의 연탄. 서민들 삶의 동반자였던 연탄 소비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2003년 118만9,000톤이던 연탄 소비량은 2007년 209만1,000톤으로 4년 새 69%나 늘었다. 화훼농가나 연탄갈비집 등 비가정용 소비도 늘었지만, 빈곤층의 증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정용 연탄 사용자는 20만명 가량이다.
'104마을' 사람들도 연탄보일러로 교체하거나, 연탄난로로 겨울을 나려는 사람들이 많다. 박모(45)씨는 "이 동네는 지은 지 수십 년 된 건물이 많아 외풍이 심하다"면서 "기름보일러 돌릴 엄두가 안나 대신 연탄난로로 올 겨울을 견뎌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영세 상인들도 다시 연탄을 찾기 시작했다. 경남 마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48)씨는 지난해 한 달에 50만~60만원 하는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어 난방용 연탄난로를 들였다. 최씨는 "연탄재 처리가 문제지만 값도 싸고 화력도 강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마다 연탄값이 급등, 연탄과의 동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1989년 정부 보조금제도를 시행한 이후 2002년까지 동결됐던 연탄값이 2007년 4월에 20%, 2008년 4월에 30%까지 급등, 3년 새 공장도 가격만 장당 100원이 올랐다. 지난해 20만원을 들여 연탄보일러로 바꿨다는 '104마을' 주민 김모(70)씨는 "우리 같은 달동네에는 장당 480원은 줘야 배달하러 온다"고 푸념했다.
덕분에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연탄공장이 활황을 맞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 E&E 연탄공장은 요즘 하루 19만장 정도 찍어내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야 반길 일이지만 텅 비어가는 서민들 지갑사정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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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막한 영세상인
"IMF때도 밥먹고는 살 정도였는데…" 문닫는 영세상인들동대문시장·신당 회타운…절반넘게 불꺼져
"장사밖에 해본게 없어 취업하기도 어려워"
장사 그만두면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쉬워
4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중구 황학동 서울중앙시장 내 신당지하상가. 입구에 '매월 셋째주 화요일 휴무-지하상가 번영회'라는 팻말이 붙어있지만, 번영회는 지난해 사라졌다. 하도 장사가 안돼 번영회를 꾸려 갈 회비조차 걷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나흘씩 물건 하나 못 파는 경우가 숱해요. 한 달에 개시도 못하는 날이 하는 날보다 많아. IMF 때도 밥 먹고는 살 정도였는데, 애경사에 부조도 못할 형편이니 줄줄이 문닫고 떠나는 게지." 상가가 문을 열 때부터 장사를 해온 70대 상(床) 가게 주인은 빈 점포들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나도 치우고 싶지만 재고 처리를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벌여놓은 거야."15일 오후 상가를 찾았을 때 99개 점포 중 실제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횟집이 몰려 '회타운'으로 소문난 덕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손님을 받은 횟집을 찾기 어려웠다. 어쩌다 손님이 있는 가게도 한 테이블이 고작이었다.17년째 횟집을 운영하는 박모(56ㆍ여)씨는 "지금은 제 철인데도 주말에나 좀 손님이 들까, 어떤 날은 개시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물가가 엄청 올랐지만, 음식값 올려 받으면 손님들이 오겠어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거라 임대료가 싸니까 그나마 눌러있는 거지. 여기서 나간들 갈 곳도 없으니…."썰렁한 상가, 불 꺼진 점포들
경제위기의 직격탄에 영세 상인들이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 조기 퇴직자들에 이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까지 자영업에 몰리며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지 오래 인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탓에 서민들은 얄팍한 지갑마저 꽁꽁 닫아버렸다.15일 새벽 1시 서울 동대문시장 A상가. '아시아의 패션 메카'를 상징했던 새벽시장의 활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금싸라기 점포'로 불리던 통로 가까운 가게들은 대부분 불이 꺼진 채 옷 벗은 마네킹만 우두커니 서있다.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이다.12년째 여성복을 팔고 있는 현모(48ㆍ여)씨는 "잘 나갈 땐 직원 10여명을 두고 점포 3곳을 운영했는데, 지금은 여기 하나만 남았다"며 "직원도 다 내보내고 지난달부터 혼자 가게를 본다"고 말했다. "난 그래도 나은 편이지. 사채 썼다가 매장 정리도 못하고 도망간 사람들 얘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와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점포 담보로도 대출을 안 해줘 6부, 9부까지 하는 일수 사채를 쓸 수밖에 없어요." 그는 "IMF 때는 백화점 옷 안 입고 시장 옷 많이 입었는데 요즘은 하나를 사도 명품을 찾지 않냐"면서 "게다가 중국산 탓에 중저가 옷값은 더 떨어져 팔수록 손해가 나는 게 이 장사"라고 한숨지었다.새벽시장 한파에 인근 음식점들도 떨고 있다. 예년 같으면 대낮같이 불 밝히고 설렁탕, 해장국을 끓여대기 바빴을 새벽 2시, 대부분의 음식점들 문이 닫혔다. '24시간 영업'간판을 단 해장국집도 마찬가지. 손님이 뚝 끊겨 문을 열어놓아 봐야 인건비나 전기료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음식점들 문닫는 시간이 새벽 4시에서 3시, 2시로 당겨지더니 요즘엔 자정까지만 영업하는 집도 많다"고 했다."탈출구가 안 보여요"경기 성남시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조모(35)씨는 이달 말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2005년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그만 둔 뒤 횟집을 냈는데 처음엔 장사가 잘 돼 개업 때 진 빚도 다 갚았다. 그러나 목 좋은 가게도 불황을 비켜갈 순 없었다. "종업원 없이 아내와 죽기 살기로 매달려도 매달 적자만 쌓여가죠. 다시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고달픈 직장인들이 쉽게 내뱉는 말이지만, 자영업자들의 삶은 더 고달프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 자영업자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370만원으로, 임금근로자(2,569만원)의 53.6%에 그쳤다.자영업자 대부분이 영세한 저소득층이어서 여기서도 퇴출될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최모(37ㆍ여)씨는 2년 전 이혼 후 경기 의정부시에 조그만 분식집을 냈다가 1년 만에 접었다. 현재 벌이는 간간이 나가는 식당 일과 건물 청소를 해 받는 월 70여만원이 전부. 초등학생 딸(10)의 사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 나이에 정식 일자리를 찾기가 쉬운가요? 다시 장사를 해보려 창업지원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녀봐도, 자본금이 있는 것도, 별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외면 받기 일쑤죠."벗기 힘든 자영업의 굴레이모(37)씨는 PC방 창업만 두 번째다. 2005년 서울 노원구 지금의 자리에 가게를 열었다. 사실 개업 전에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미 4년간 PC방을 운영해본 터라 수지타산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억원 들여 시작한 PC방의 현재 손익계산서는 1,200만원 적자. 얼른 가게를 접고 취업시장을 노크했다. "취업박람회도 기웃거리고, 지인의 소개로 공구용품 회사 면접도 봤지만 월급쟁이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이씨는 지난 주 PC방을 인터넷 매매 사이트에 내놓고 다시 업종 갈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횟집 폐업 절차를 밟는 조씨도 솔직히 자영업의 굴레를 벗어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전공한 화학 분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경제가 말이 아닌데, 저보다 학력 떨어지고 장사밖에 해본 게 없는 사람들은 더하겠지요. 자본금을 까먹는 걸 알면서도 다시 무슨 장사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요."
폐업 컨설팅 "작년엔 90%가 창업 상담 방문 지금은 절반이 폐업 상담입니다"
폐업컨설팅社 4~5년 전보다 3~4배 늘어…"생존 몸부림 끝 막판 몰린 자영업자 급증"
"작년 이맘때만 해도 90%는 창업 상담이었는데, 지금은 절반이 폐업 상담입니다. 그만큼 자영업자들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얘기죠."
2003년부터 폐업 컨설팅을 시작한 고경진창업연구소의 고 소장은 "지난달 전체 상담 300여건 가운데 150건이 폐업 상담이었고, 요즘도 하루 10여건씩 폐업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폐업 컨설팅은 기존 영업을 접고 업종을 변경해 재창업 하는 것을 돕는 일도 아우르지만, 요즘 상담자들은 수 년간 3,4번씩 업종을 바꿔가며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 결국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어 '진짜' 폐업을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고 소장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자영업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업종은 특별한 노하우도 필요 없고 자본도 적게 드는 소규모 주점"이라며 "요즘 주점을 하다 폐업 하겠다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고 전했다. "이런 분들은 이제 그야말로 실업자가 되거나, 막노동 같은 저임금 근로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 소장은 현재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업소 하나가 문을 열면 기존 업소 1, 2개는 문 닫아야 할 만큼 자영업 시장이 포화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실업률을 낮춘다는 취지로 소상공인 지원 등의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을 대거 양산 한 탓도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 98년 고 소장이 한 방송사와 함께 진행한 TV 창업 프로그램의 주인공 32명 가운데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초보 자영업자들에게 노하우를 전하고 리모델링도 해주면서,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물론 당사자들이 장사 수완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죠. 하지만 음식점이나 슈퍼마켓은 프랜차이즈나 대형 마트 때문에 설 자리를 다 잃어버렸고, 의류나 공산품 가게는 온라인에 밀렸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가게도 최근 물가가 워낙 오르고, 불황으로 손님들이 뚝 끊기니 견딜 재간이 없는 것이죠."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대신 폐업 컨설팅 업체들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고 소장은 "폐업을 도와주는 업체가 4, 5년 전보다 3~4배 급증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는 망하고, 폐업 컨설팅은 호황을 누리는 것이 지금의 경제불황을 딱 보여주는 대목 아니겠습니까." |
<4>생계 떠맡은 엄마 가장
졸지에 엄마가장 된 주부들 "아이들 과외는 사치"남편 실직·사업실패·주식 쪽박에 생활전선으로
식당·청소일 등 고용 불안한 일용직이 대부분
"아이와 얘기할 시간 없어 엇나갈까봐 노심초사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새벽 4시. 행여 아들이 깰세라 조심조심 대문을 나선 최모(47)씨는 캄캄한 새벽길을 밟아 일터로 간다. 13층짜리 빌딩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쓸고 닦기를 3시간 여.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거슬러 귀가한 그는 곤한 몸을 잠시 누일 틈도 없이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고 다시 집을 나선다. 식당 일이나 파출부로 또 '낮일'을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6개월 전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뒤, 전업주부였던 최씨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2, 3곳을 돌며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40만원. 남편 병원비 대기도 빠듯하다. 최씨는 요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사교육 안 받고도 공부를 곧잘 하던 아들(고1)의 성적이 최근 중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자리에서 야단을 좀 치자 아들은 "학원도 안 다니고 과외도 안 받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겠냐"고 전에 없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속상함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했다.생계 전선에 내몰린 여성들
엄마 가장들이 늘고 있다. 남편의 죽음이나 질병ㆍ장애 등으로 떠밀리듯 생계 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물론, 최근 극심한 불황으로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세 자녀를 둔 정모(40)씨는 시급 4,100원에 식당 일을 한다. 남편이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고 사채 포함 9,000만원의 빚을 지자, 채무를 면하려 위장이혼을 했다. 일자리 알아본다며 나가 가끔 얼굴을 비치는 남편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아침마다 울며 매달리는 돌쟁이 막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고깃집 '사모님' 소리를 듣던 문모(32)씨는 4월 파출부로 나섰다. 매출 급감에 허덕이던 가게 문을 닫고 남편이 택시기사로 뛰었지만, 집 장만에 든 대출금 이자도 내기 힘들었다. 생활비는 문씨의 몫. 세 살과 돌쟁이 두 아이는 친정 엄마에게 용돈 한 푼 못 드리고 맡겼다. 그는 "아직 젊은데 사업 한 번 실패했다고 이리도 깊은 수렁에 빠질 줄 몰랐다"고 한숨지었다.박모(39)씨는 10개월차 보험설계자다. 신혼 초 골프장 캐디로 일하며 제빵사 남편과 부지런히 돈을 모아 5년 전 시장 어귀에 제과점을 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유명 제과점에 치이고 불경기까지 겹쳐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부잣집에 시집 갔다며 부러움을 사던 대학 동창이 나처럼 신참 보험설계사가 된 걸 알고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노후요? 하루 앞도 모르는데…"여성 가장들의 삶이 누군들 고달프지 않을까마는, 중년 심지어 황혼기에 접어들어 갑자기 생계를 떠맡게 된 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몸은 쇠해 일자리 잡기도 쉽지 않고, 졸지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서울 모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박모(58)씨는 "몇 해 전 남편이 주식에 손대며 모아둔 돈을 다 날렸을 때도 노후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 상상도 못했다"며 말했다. 개인 용달 트럭을 몰던 남편(61)이 재작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일손을 놓은 뒤 박씨는 난생 처음 취직이란 걸 했다. 새벽 6시30분부터 9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72만원. 관절염이 도졌지만 병원 갈 엄두도 못 낸다. 이모(60)씨는 환갑 날에도 학교 급식용 식재료를 다듬었다. 퇴직한 남편이 5년 전 주식 투자로 큰 손해를 보고 주저앉은 뒤, 30여년 전업주부 생활을 접어야 했다. 집을 줄여도 생활비 감당이 어려웠다. 토요일 빼고 주 6일, 하루 9시간 중노동의 대가는 월 85만원. 이중 45만원이 월세로 나간다. 그래도 이씨는 "나보다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걸 마음에 새기고 늘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고용 불안에 가사부담까지 '이중고'사립 중학교 교사 출신인 나모(42)씨는 올해 초 남편을 잃고 재취업에 나섰다. 10년 이상 교단을 떠났던 그의 교직 경력은 무용지물이었다. 동네 보습학원에서조차 냉대를 받은 뒤 눈을 낮춰 학습지 방문교사로 나섰다.기혼 여성들을 맞아주는 일자리는 매장 계산원, 식당 종업원, 가사 도우미, 간병인 등 저임금 임시ㆍ일용직이 대부분이다.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엄마들의 불가피한 선택인 경우도 있지만, 경력이 있어도 살리기 어렵다.취업을 해도 발밑이 늘 불안하다. 남편 가게가 어려워져 식당 일에 나선 정모(41)씨는 1년 동안 일터를 세 번 옮겼다. 한 번은 주인이 바뀌고, 한 번은 식당이 문을 닫았다. 지금 일하는 식당도 매출이 떨어져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 지난 8월 서울 모 대학의 미화원 65명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전통보 없이 단체 해고됐다가 여론에 힘입어 복직했다. 김모(58)씨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까지 생계를 짊어진 엄마들을 내쫓는 몹쓸 세상"이라고 혀를 찼다.엄마 가장들은 돈 벌며 가사와 자녀 양육까지 챙겨야 하는 이중고에 허리가 휜다. 특히 성장기 자녀를 둔 엄마들은 행여 아이들이 엇나갈까봐 노심초사한다. 정씨는 밤 11시가 넘어 파김치가 돼 집에 가면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려워 점차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중학교 2학년 큰 아들이 요즘 부쩍 귀가 시간이 늦고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날 때도 있다"면서 "사춘기에 혹시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빈곤가구 46%가 여성 가구주… 안정된 일자리·양육 지원 절실2008년 현재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구는 329만3,000개. 전체 가구의 20.1%로 다섯 곳 중 한 곳을 차지한다. 이중 어머니 혼자 자녀를 데리고 사는 곳은 2005년 현재 108만3,000가구에 이른다. 여성 가장은 특히 빈곤에 취약하다. 한 통계를 보면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21.0%로, 남성 가구주의 7.0%보다 3배 높다. 전체 빈곤가구에서 여성 가구주 가구의 비중은 45.8%에 달한다.이런 현실은 기혼 여성에게 돌아오는 일자리의 대부분이 급여가 낮고 고용 보장이 안 되는 임시 일용직이란 점과 무관치 않다. 올해 3분기 임시 일용직 여성 숫자는 남성보다 18%가 많다. 학계에선 남편 소득이 낮을수록 여성 취업률이 높고, 저학력 기혼여성의 비정규직 취업이 많다는 연구 논문이 자주 나온다. 엄마 가장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기 쉬움을 지적하는 대목이다.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한국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다가 뒤늦게 재취업을 하는 M형 패턴을 보인다"며 "오랜 공백 때문에 이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근로 조건이 나쁜 단순직에 종사하게 된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런 자리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한국여성노동자회 상담 창구를 찾은 실직ㆍ빈곤 여성 845명 가운데 절반이 가족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상담 내용은 구직 상담(69.3%)과 직업 훈련(17.8%) 등 취업 관련이 압도적이었다. 임윤옥 정책실장은 "저임금으로 가족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여성 가장들이 빈곤의 핵심층"이라며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양육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