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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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키=선우정 특파원 인간 존중의‘유토피아 경영’으로 화제를 모은 일본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아키오 창업주. 그는“돈놀이 같은 머니게임이 아니라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이라고 했다. 연극 집단‘미라이자’설립자인 그는 사무실 벽에 연극 포스터 수백 장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 '유토피아 경영' 日 미라이(未來)공업 창업주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
정년 70세, 연간 휴일 140일, 전원 정규직, 육아 휴직 3년, 연말 연시 19일 휴가, 70세까지 고용보장에 연공서열….

'유토피아 경영'으로 화제를 모은(위클리비즈 2006년 12월 2일자)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76) 미라이(未來)공업 창업주(현 상담역)를 다시 만났다. 2006년 11월 29일 인터뷰한 이후 1년10개월 만이다. 만나자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이, 덕분에 한국에 초청 받았어. 신한은행이 조선일보 보고, '재미가 있으니 얘기 좀 해달라'고 해서 남대문 바로 앞 빌딩 20층에서 강연을 했지. 이걸 들은 사람이 우리에게도 와달라고 해서 상공회의소에서 또 얘기했고. (한국 TV) 방송도 했지. 50분 방송을 만든다고 찍었는데, TV를 보고 잡지가 또 오고. 한국과 인연이 깊어졌어."

―우리야말로 덕분에 좋은 기사를 실었지요. 일본에서도 여전하시죠?

"지난 일주일은 쭉 얘기만 했지. 가쓰미가세키(도쿄 관청가)의 총무성에서 강연, 다음날 이바라키(茨城)현 미토(水戶), 다음 날엔 사이타마(埼玉)현 오미야(大宮), 다음 날은 지바(千葉)현의 지바…. 내일은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

―한·일 강연 내용이 같은가요?

"약간 차이는 있지만, 결국 (한국·일본 모두)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의 경영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얘기하는 것이니까."

―한국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내가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중국에선 이런(미라이공업 같은) 회사를 만들면 절대 안 되지만 한국이라면 만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지. 일본과 한국만이 '유교(儒敎) 유전자'를 갖고 있으니까. 유교는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정작 중국 사람들은 유교 유전자를 안 가지고 있지. 안 가지고 있으니까 공자(孔子)가 나타나 가르쳤는지도 모르지만. 일본과 한국 사람들은 교육 받지 않아도 유교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그는 2006년 인터뷰에서 연공서열을 고집하는 경영방식에 대해 "그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분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하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원래 뭘 해도 잘하는 걸 기뻐하면서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게 공자의 가르침이야"라고 답했었다.)

―민족성이 유교적이란 뜻인데.

"일본 속담에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자는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말이 있지. 한국에도 같은 뜻이 있고. 하지만 원래 중국 속담이지. 어느 쪽이든 하나를 타깃으로 삼아서 쫓지 않으면 둘 다 놓친다는 것이 수렵(狩獵)적 사고방식이지. 하지만 일본·한국처럼 농경민족은 함께 시작해서 동시에 각자의 목적을 이루는 협조정신이 있어. 같은 날 함께 모심기를 한다든가, 벼 베기를 한다든가. 밭일이란 원래 따로따로 해선 안 되지. 현대적으로 말하면 돈을 받고서도 (함께 해야 할) 일을 안 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뭔가 미안한 것이 농경민족의 심성이라고 할 수 있어. '내가 잡은 것은 내 권리'가 기본인 수렵민족의 심성과는 달라."

―농경민족의 경영술이군요.

"사람은 모두 돈을 받으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생각할까? 수렵민족은 (이미 쟁취한 권리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 안 하지. 하지만 (농경민족의 협조정신을 기반으로 한) 일본과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내가 그런 생각으로 경영하고 있고. 한국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지."

■"자본주의는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2년 전엔 전기설비 제조사 미라이공업은 '성공한 이단' 정도로 보였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금은 미라이의 경영술이 모범처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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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인터뷰에서 영미식 주주(株主)주의와 금융주의를 묻는 질문에 그는 "사원은 기업을 위해 일하지. 소비자는 물건을 사서 기업에 이익을 주지. 주식을 사는 주주는 누구에게 이익을 주나? 증권사에 이익이 될 뿐이지"라고 답했다.)

"자본주의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어.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기본은. 미국이 잘못한 것은 금융주의랄까. 정확히 말하면 '디리버티브(derivatives·파생금융상품)'가 실패한 것이겠지. 돈을 움직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본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집을 만들게 하고, 빌려준 돈을 증권화해서 반복해서 팔고 팔아 돈을 번다는 것. 아메리카 식으론 이것도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보통 우리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것이지. 본래의 자본주의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아직 멀었어. 돈으로 석유를 사고, 옥수수를 사고, 밀가루를 사고. 여전히 돈을 움직여 돈을 벌려고 하는 버릇은 고쳐지질 않았어."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보시는군요.

"땀을 흘리지 않으니까. 물론 그런 자본주의도 있을 수 있어. 법률 위반도 아니고. 자유를 남용하다가 저렇게 됐지만. 하지만 난 제조업 출신이라 돈을 움직여서, 머니게임을 해서 돈을 벌고 싶지 않아. 물건을 만들고, 팔아서 돈을 벌고 싶지."

―일본이야말로 거품시대(1980년대 후반)에 머니게임에 몰두했었습니다. 거품 붕괴가 일본 경제를 강하게 만든 듯합니다.

"난 (일본 경제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단지 이번 머니게임에 참여하지 않아 (위기의 연쇄에) 걸려들지 않았을 뿐이지. 거품 붕괴 때의 학습 덕분이지. 그렇다고 강해진 것도 아니지. 일본은 아직도 금리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야. 만약 금리가 3%까지 오르면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 1500조엔에서 매년 45조엔이 나오지. 이걸 일본 국민들이 사용하면 일본 경제는 급성장할 수 있지만 그렇게 못 하잖아. 그래서 일본이 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지."

―금리를 올리면 되지 않나요? 여건이 안 되니까 못 하는 것이지.

"정치가 안 할 뿐이야. 속임수 정치이니까. 국민이 돈을 쓰도록 하지 않고, 정치가 (반대급부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공공사업을 통해 돈을 쓰려고 하니까. 경제를 강하게 하는 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 정부는 10년 불황기에 공공사업에 100조엔을 썼지. 이걸 고이즈미 총리(小泉純一郞·2001~2006년 재임)가 줄이려고 했는데, 아소 총리(麻生太郞·2008년 9월~)가 다시 늘리려고 하고 있지. 정부는 '금리를 올리면 중소기업이 망한다'고 떠들지만, 공공사업을 하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아. 우리도 중소기업을 하지만 금리가 10%일 때 오히려 장사 잘했어. 사람들이 돈을 썼으니까. 일본 경제는 전혀 강해지지 않았어."

―어려워지면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국민이 문제이지요.

"그렇지. 일본 국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바보이니까(웃음). 하지만 하늘은 장단점을 모두 주는 법이지. 대신 일본 국민은 손기술이 좋잖아. TV도, 자동차도, 시계도 일본이 전부 이겼잖아. 하지만 머리가 나빠서 아무것도 발명 못해. 백인은 머리가 좋지만 손기술이 나쁘지. 예를 들어 로타리엔진은 독일이 발명했지만 마쓰다가 특허를 사서 만들었어. 특허를 가진 독일은 로타리엔진을 못 만들지. 손기술이 나쁘니까. 하지만 손기술은 다른 아시아 국민들도 좋지. 중국이, 한국이, 대만이 똑같은 물건을 일본보다 더 싸게 만들면 버틸 수 없지. 일본은 점점 쇠퇴할 수밖에."

―일본이 쇠퇴하지 않으려면?

"교육을 바꿔야지. 일본은 예전부터 여학생 치마 길이, 남학생 바지 폭을 전부 학교가 결정했어. 전부 '긴타로아메'(똑같은 소년 얼굴을 새긴 일본의 재래식 사탕으로 개성이 없다는 뜻). 개성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지. 한쪽에선 '유토리 교육'(주입식 교과 학습 시간을 줄이는 것)을 하면서 한쪽에서 경쟁을 막고 있으니. 학교에게 맘대로 하라고 하면 돼."

―'연공서열' '종신고용'이 기본인 미라이공업이야말로 경쟁이 없는 것 아닙니까?

"안은 그렇지. 하지만 밖은 철저한 경쟁. 안에서 경쟁하지 말고 밖의 상대와 격렬하게 경쟁하는 것이지. 우린 일본 최고의 마쓰시타전공(10월 1일 파나소닉전공으로 개명)과 경쟁했지. 그래서 전부 이겼어. 이게 우리의 경쟁 법칙이지. 일본의 보통 기업은 이런 식이야. 사원이 '이런 물건을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하면, 사장은 '내셔널'(마쓰시타의 가전 브랜드)이 안 만드는 것은 (안 팔리는 물건이라 안 만드는 것일 테니까) 만들 수 없어'라고 말하지. 기업의 평준화. 계속 이러면 일본은 미래가 없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물건을 만들어 돈을 모으는 원점으로 돌아가겠지. 일본과 한국이 잘하는."

[오가키(大垣·일본)=선우정 특파원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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