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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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에서 바라본 일출... 땅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실로 오랫만입니다. 우리나라의 땅끝. 새벽을 달려 내려온 해남은 정말 멀고도 먼 남도입니다. 누구든지 한 번쯤 가졌을 끝을 가보고 싶다는 열망,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곳에 내가 서 있는다는 생각.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이 해남의 땅끝은 미련을 남기며, 여운을 안은 채 다시 올라가는 여행지가 아닐까요?

 

4월의 끝을 다가가는 시점. 봄이 찾아오는 속도만큼이나 아침이 다가오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땅끝전망대 입구에 도착해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6시가 조금 넘어있었습니다. 피곤함도 잠시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부지런히 땅끝전망대를 향해 올랐습니다. 바람은 그리 세지는 않았지만 남도의 아침은 아직까지 쌀쌀하기만 합니다.

 

해가 떠오릅니다. 이제는 섬아닌 섬이 되어버린 완도는 땅끝보다도 더 아래로 길게 뻗어있고, 땅끝마을 앞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흑일도와 백일도에서 아침햇살이 살포시 앉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어두운 기운을 서서히 걷어내며, 사람들의 분주함을 일깨웁니다. 아침 해는 그렇게 떠올랐고, 붉은 기운이 가득한 잔잔한 바닷가에는 물 흐르 듯 고깃배들이 천천히 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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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갈두항에서 노화도 산양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바라본 땅끝마을...

 

 

오늘의 여정은 보길도입니다.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에는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가 근래 세워졌습니다. 갈두항에서 보길도로도 가지만 차를 가지고 가게 되면 노화도에 내려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를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갈두항에서 출발한 배는 30분 남짓 걸려 노화도의 산양항에 접안을 합니다. 산양항에서 보길대교를 건너기전인 이목항까지는 10km정도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보길대교는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에 있는 장사도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입니다.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에 들어서면 3갈래를 드나들며 여행을 해야합니다. 하나는 망끝전망대로의 드라이브를, 하나는 윤선도의 유적인 부용동정원의 문화유산 답사를, 마지막으로는 중리,통리해변을 거쳐 상록수림이 무성한 예송리 해변을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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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객들의 낙서로 볼품없어진 보길도의 망끝전망대 끝없이 이어진 낙서로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내내 불쾌했습니다.
 

세 갈래 여행일정 중 가장 먼저 망끝 전망대로 향해 해안도로에 올랐습니다. 망끝 전망대를 찾아가는 해안도로에서는 보길도 인근의 거대한 전복양식장이 눈길을 끕니다. 끝도없이 이어지는 양식장은 완도와 그 주변이 전복 생산의 70% 이상임을 몸소 느끼게 해줍니다. 정자리와 부황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망끝 전망대에서 멈춥니다. 공사 중인지 진입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망끝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올망졸망 떠 있는 갈도, 옥매도 ,상도, 미역섬과 어울려 건강한 푸르름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망끝전망대는 낙서로 얼룩져 있습니다. 망끝전망대의 철제 펜스 뿐 아니라 펜스 너머의 바위까지도 위험스럽게 낙서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곳을 다녀갔다는 흔적, 사랑한다는 흔적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과연 낙서를 하게 되면 그 흔적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그들의 사랑이 영원불멸하게 된다는 믿음을 주게되는 걸까요? 여행의 감흥에 겨워 한순간 끄적거린 낙서는 그들의 다음에 찾아오는 관관객들에게 눈살찌푸리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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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윤선도 선생의 세연정... 회수담 주변에서 바라본 세연정의 전경입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섬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산 윤선도는 남인의 집안으로 당시 집권을 하고 있던 서인세력에 의해 여러 번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인조반정 이후 후에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고 다시 해남으로 내려옵니다.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임금이 강화도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접한 윤선도는 가솔과 노비들을 배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하던 중 인조의 삼전도의 치욕을 전해듣고 뱃길을 되돌렸습니다(삼전도의 치욕이후 윤선도는 고초를 당한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차례 유배를 가게 됩니다).

 

세상을 보지않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로 가던 윤선도는 상록수가 아름다운 섬을 하나보게 되고, 머물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보길도입니다. 윤선도가 만든 부용동 정원은 섬의 산세가 마치 피어나는 연꽃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낙서재와 동천석실 그리고 최고의 정원인 세연정을 만들게 됩니다. 윤선도는 은둔생활을 했으나 집안의 재력을 바탕으로 풍류를 즐기며 오우가나 어부사시사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가문과 재력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으니 멋드러진 글이 안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부용동 정원은 살림집이 마련되었던 낙서재 주변과 휴식을 취하던 내 건너편 산 중턱의 동천석실 그리고 풍류를 즐기던 세연정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낙서재 주변과 동천석실은 보수공사와 복원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세연정은 적자산에서 흐르는 물을 판석보를 놓아 막았는데, 판석보는 물이 넘치면 폭포가 되고, 넘치지 않으면 다리가 되어 세연지의 물이 적정하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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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열어젓힌 세연정 내부 들어열개창 뿐 아니라 바깥까지도 개방한 세연정
 

한편 세연지의 물을 끌여들여 인공연못이 회수담을 만들고 두 연못 사이에 정자를 지으니 이것이 세연정입니다. 사방 세칸의 팔작지붕으로 총 9개 칸중 맨 가운데 칸은 온돌로 되어 있고, 나머지 8칸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들어열개창으로 개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들어열개 창으로 사방을 개방한 세연정은 마치 비상을 하려는 듯 날렵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세연정 옆의 소나무는 그래서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세연정 뒷편의 동백나무 숲도 때마침 붉은 융단을 만들어내며 세연정의 운치를 한껏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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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한 풍경을 자랑하는 중리해변 송시열의 글씐바위를 가는 길에 만나는 중리해변
 

해남 갈두항에서 출발한 배는 보길도의 청별항으로 들어옵니다. 보길도의 마지막 갈래는 청별항을 지나 통리, 중리, 예송리 해변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송시열의 글씐바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통리와 중리 해변을 지나야 합니다. 통리와 중리해변 서로 1.5km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 모래로 이뤄져 있고, 수심이 얕은 해변의 모습은 거의 비슷합니다. 통리해변과 중리해변 사이에는 마치 해변을 정확히 나누려는 듯 목섬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목섬은 썰물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데, 게, 바지락 등 해산물 채취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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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의 글씐바위 제주도 유배를 가다 들른 보길도의 끝자락에 남긴 글씐바위
 

송시열의 글씐바위는 보길도의 꼬리에 해당하는 백호리의 끝자락, 노안도를 바라보는 거대한 절벽 아래에 암각되어 있습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송시열이 쓴 시의 원문과 해석을 새긴 비석이 있고, 송시열의 글씐바위는 비석에서 좀 더 바다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송시열은 서인의 명실상부한 수장이었습니다. 보길도에 은둔한 윤선도는 남인으로 송시열과는 정적관계였습니다. 1차 예송논쟁때 송시열의 처벌을 상소했다고 오히려 귀향을 가게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암 송시열은 왜 정적이 머물렀던 보길도까지 내려왔을까요?

 

희빈이 아들을 낳자 조선 숙종은 세자책봉을 서두르는데, 서인의 영수인 송시열이 상소를 통해 세자책봉이 성급한 결정이라고 비판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숙종이 송시열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게 되는데 그후 서인이 몰락하고,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는 기사환국이 단행되었습니다.

 

송시열이 제주도로 가는 도중 풍랑으로 잠시 들른 곳이 바로 보길도의 백자리 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시를 암각하게 됩니다. 세자책봉이 이르다는 말을 충정으로 말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노구의 몸을 귀양보내는 야속함이라고 할까요? 결국 83세의 송시열은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후 다시 뭍으로 나와 한양으로 올라오던 중 사약을 받고 죽게됩니다. 윤선도도 내쳐진 자신에 대한 처지에 한탄했고, 송시열도 유배를 가는 도중 이곳에 들렀으니 어쩌면 보길도는 정치거물들의 한스러움만 한없이 쌓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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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바우재에서 바라본 예송리해변 중리,통리해변을 나와 예송리로 가는 샛바우재에서 바라본 예송리해변
 

중리, 통리해변을 지나 독사재와 샛바우재를 지나면 예송리 해변에 도착합니다. 샛바우재 정상에는 예송리 해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예송리 해변 앞바다에 떠 있는 기도와 갈마도, 예작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예송리 해변은 모래로 이루어진 중리,통리해변과는 달리 작은 자갈로 이뤄진 해변입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자갈들이 구르면서 또르르 또르르 소리를 내는데 맑고 청아한 그 소리를 듣고 앉아 있노라면 세상의 시름을 다 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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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은 자갈로 이루어진 예송리해변 파도와 어울린 잔 자갈의 소리는 예송리해변에 한없이 머물게 합니다.
 

예송리 해변의 바닷가를 따라 방풍림으로 조성된 상록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300여년 전 태풍을 막기위해 마을사람들이 조성한 숲으로 후박나무, 팽나무,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등 수종도 화려하고, 700m 남짓 이어져 있습니다. 예송리의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4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예송리 앞바다의 예작도는 마을사람들이 예의 범절이 밝아 예작도라 불렀다고 하고, 마을 앞으로 우거진 방풍림이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어부들에게 예의를 갖춘다고 하여 예작도라 부른다고도 합니다. 예작도에는 천연기념물 338호로 지정된 감탕나무가 있는데 할머니 당이라 부르고, 인근에 있는 소나무를 할아버지당으로 삼아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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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도에서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 노화도에서 보길도를 갈 수 있게 이어준 보길대교
 

예송리해변을 떠나기는 짐짓 쉽지 않습니다. 고요한 해변도 그렇고, 잔잔한 파도와 파도와 자갈이 만들어주는 소리에 취하다보면 앉아있다가도 낼름 팔베개를 하고 누워버리고 맙니다. 나중을 기약하자며 머물고픈 마음을 토닥거리며 일으켜 세우지만 결국 미련만 자갈밭사이로 묻어두고 맙니다. 나중에 올 때는 다른 일정을 잡지 말고, 예송리의 자갈구르는 소리를 원없이 들으러 한 번 와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1. 땅끝 전망대는 걸어서나 땅끝 전망대입구까지 차를 가지고 오른 뒤 5분정도 걸어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2. 어르신들은 모노레일을 이용해 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왕복 성인기준 4,000원, 문의 (061-533-4404)
3. 보길도는 차가 있다면 가급적 차를 가지고 가는게 좋습니다.(보길도에 머물러 있는 여행도 포함)
4. 차를 가져가는 경우 해남 갈두항에서 노화도까지 간뒤 산양항-이목항을 거쳐 보길대교를 건너면 됩니다.
5. 갈두항-산양향으로 운행하는 배편은 오전 6:40부터 매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30,40,50분 출발하는 경우도 있으니 문의하세요 061-535-4268)
6. 부용동정원의 낙서재,동천석실은 보수공사중입니다.
(3월 28일 기준,보길면 관광안내소 061-553-5177)
7. 샛바우재 정상에서 예송리 해변 감상하는 것은 꼭 잊지마시길...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공원으로,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조금 늦은 1988년에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 및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관광지의 요건과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면적은 154.7㎢이다.

서해안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변산반도는 어느 한 곳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그 느끼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경관도 변화하게 된다. 즉, 해안선을 따라 볼 수 있는 외변산도 절경이지만 내륙의 내변산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진면목을 가슴깊이 새겨준다.

또한, 해변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장관이어서 1999년 12월 31일에는 새천년준비위원회 주관으로 격포 채석강에서 묵은해를 보내는 해넘이 행사가 약 3만명의 탐방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어 이 곳 변산반도국립공원을 대내외에 알린 바 있다.

변산반도의 관광지를 열거하자면 유형, 무형을 막론하고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격포 채석강, 천년고찰 내소사, 직소폭포, 변산, 격포, 고사포 해수욕장, 월명암의 낙조 등 많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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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415-24  063)582-7808 063)584-8186 063)583-2054

 

 

주변관광지

 

채석강

채석강은 부안을 대표하는 경관이다. 이곳의 지형은 선캄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천만년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다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당나라의 이태백이 놀았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하여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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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채석강에서 약 1km의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적벽강에 이른다. 백사장 뒤편의 죽막마을을 경계로 격포해수욕장과 나뉘어지며, 죽막마을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 약 2km를 적벽강이라 하며 이름 또한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놀았던 적벽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혀진 것이라고 한다. 맑은 물에 붉은색 암반, 높은 절벽과 동굴 등 빼어난 경치가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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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한국의 8대 명승지 중의 하나인 볼거리 많고 아름다운 변산반도.. 바다쪽에 접한 곳을 외변산, 내륙쪽에 접한 곳을 내변산이라고 편의상 나눠 부릅니다. 신비한 바위절벽 채석강이 외변산을 대표하는 명물이라면 내변산은 변산반도 남쪽의 백제사찰 내소사로 대표됩니다.
백제 무왕 34년(633) 승려 혜구가 이곳에 절을 세운 후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 명했습니다. 그 후 대소래사는 전쟁으로 불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이 남았는데 그것이 현재의 내소사입니다. 소래사란 이름이 언제 내소사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에서 소래사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변산반도를 한바퀴 도는 해안도로를 타고 변산해수욕장쪽에서 해안을 타고 돌다보면 도로가 끝날 즈음하여 내소사 들어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일주문부터 천왕문에 이르는 600여m의 길 양옆으로 하늘 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기다란 터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끔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제외하고는 빛이라곤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 전나무숲길은 이미 절 자체보다도 더 유명하며 사찰로 들어가기전에 여행으로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가지런히 열맞춰 서 있는 크고 작은 부도들을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오면 넓직한 내소사 정원이 펼쳐집니다. 정원에는 약수가 담겨진 커다란 돌그릇이 있어 이곳까지 오느라 갈증난 목을 축일 수 있습니다.
경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은은한 푸른 청자의 빛을 띠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입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의 청림사에서 만들어진 이 동종은 청림사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조선 철종 4년(1853)에 내소사로 옮긴 것입니다. 종에다 새긴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도 뛰어난 옛 조상의 조각기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교통 : 부안읍(30번국도) →변산 →격포 →내소사 입구(좌회전) →내소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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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자리한 개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입니다. 백제 무왕 35년 (634)에 묘련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었는데요. 당시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데서 사찰의 이름이 유래한 것입니다. 삼국통일 후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머물면서 676년에 중수한 것을 비롯해 총 5회에 걸친 중수가 있었습니다. 인근의 내소사에 비해 규모면에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주변경관이나 사찰이 주는 편안함은 결코 내소사에 뒤지지 않는 사찰입니다.

개암사 초입에서부터 일주문 안쪽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으나 마땅한 주차시설은 없으므로 일주문 들어서기전 공터에 차를 세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교통 : 부안읍(23번 국도:고창방면) →개암사 진입로(우회전) →개암사

1313년 고려 충숙왕때에 원감국사가 개암사를 중창하면서 황금전, 청련각, 청허루 등 30여개의 건물을 새로 지어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고 하나 현재 절안에는 대웅보전과 응진전, 요사체와 요사로 쓰이는 월성대 정도만이 남아 있어 한적하다 못해 약간은 쓸쓸한 느낌마저 듭니다.

개암사의 본전인 대웅보전(보물 제292호)은 조선 효종 9년 밀영선사와 혜징선사가 절을 재건할 때 지은 것으로 정면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식 건물입니다. 주변의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웅보전은 마치 대자연의 일부를 보는 듯하며 정면 양쪽에서 여의주를 물고 대웅전을 지키고 있는 용 두마리가 인상적입니다. 이 건물에서는 유난히 용이 눈에 많이 띄는데요. 건물 안팎에 있는 용들을 모두 세어보면 14마리나 된답니다. 건물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큰 기둥을 사용해 안정감이 있어 보이며 중앙공포 양쪽 도깨비 문양의 조각을 가리지 않기 위해 정면 평방에 길다랗게 현판을 배치한 것이 특이합니다.

대웅전 좌측의 응진전에는 부처님과 16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16나한의 표정과 자세가 가지각색인데 서로 웃고 떠드는 듯한 모습의 나한상은 재미난 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응진전 건너편으로 돌로 만들어진 지장보살상이 모셔진 움집 같은 것이 한 채 있으며 그 뒤로 요사채가 한 채 있고 밑으로 요사채가 한 채 더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내소사 대신 사람의 발길이 좀 덜한 한적한 개암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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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구곡

신선대 신선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망포대, 분초대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해발 150여m에 위치한 산곡의 분지마을 대소(大蕭)에서 만나 대소(大沼),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 등을 연출하고 백천(百川)에서 합류한 다음 서해로 빠지는 계류를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부안 댐의 축조로 제6곡 영지에서 제9곡 암지까지는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 제1곡 대소(大沼, 大蘇, 구시둠벙)

  - 가장 큰 소란 뜻으로 내소사의 유래인 대소래사와 소소래사 중 대소래사를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시대 때 大蘇로 불리던 것을 근래 들어 大沼로 바꾸어 부르는 것 같다.

▷ 제2곡 직소폭포(直沼瀑布)

  - 변산8경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폭포로 내변산의 자랑거리이다. 폭포 하단부의 소를 실상용추(實相龍湫)라 하는데 용이 상승한 곳이라는 뜻으로 불경에서 유래되었다. 폭포 길이는 30m 정도이며 흰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여름의 더위를 깨끗이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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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곡 분옥담(噴玉潭)

  - 소의 모양이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움푹 파인 소에 고인 물은 옥빛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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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곡 선녀탕(仙女湯)

  - 선녀들이 놀다 갔을 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계단상으로 여러 웅덩이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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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곡 봉래곡(蓬萊曲)

  - ‘봉래’란 무릉도원과 같은 상상의 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 정도로 봉래구곡 중 가장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흐르는 암반 위에 각자(刻字)된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는 글씨는 정읍군 태인면에 살았던 동초(東樵) 김철곤(金晳坤)이 썼으며 그 글씨 때문에 일반인들은 봉래곡을 봉래구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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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곡 영지(影池)

 - 고여 있는 물에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춰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도 물이 고여 있을 때는 쌍선봉 능선에 위치한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한다.

▷ 제7곡 금강소(金剛沼)

 - 구전되어지는 말에 의하면 금으로 만든 비석을 빠트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쩌면 아직도 그 비석이 물속 깊은 곳에 묻혀있을 것 같다.

▷ 제8곡 백천(百川)

 - 일대의 모든 계곡이 모이는 장소로 어림잡아 백여개의 천이 모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안댐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한여름 피서를 즐기던 곳이었다.

▷ 제9곡 암지(暗池)

 - 봉래구곡의 마지막이며 현재는 부안댐 하루에 잠겨있다. 잠두마을 앞에 있던 소라는 내용 외에 전해지는 사항이 없다. 

출처 - 오마이뉴스 2008.04.12 18:27

 

4월 2째주 토요일 ~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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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른듯 하지만 성급한 보리이삭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뽐내고 있다.


어디선가 보리밭~사잇길로.....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비온 뒤 더욱더 선명하고 푸른색 옷으로 갈아입은 보리밭 사이를 걸어가는 행인의 휘파람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복잡한 주말을 피해 한적한 주중을 이용하여 7일 전북 고창에 있는 청보리밭을 찾았다.

 

고창군 공음면에 자리 잡은 30만평의 드넓은 밭.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메밀을 재배하는데 봄에는 청보리축제와 가을에는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지만 보리의 크기가 찾아올 때 마다 다르기 때문에 늘 신선한 느낌이다. 탁 트인 푸르른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시에서 찌들었던 온갖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리게 된다.

 

보리밭 가운데 노부부가 작품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노부부를 보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취미 생활을 한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참 보기도 좋다. 젊은 연인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 또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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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청보리밭 샛길 사이에서 작품 사진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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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사잇길로~~~지나가는 행인이 휘파람을 구성지게 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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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다 힘들면 쉴 수 있는 쉼터가 있다. 보리밭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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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이삭과 야샹화꽃이 함께 어우러져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매년 이곳을 찾을 때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입구에서만 보고 갔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번에는 기필코 30만평이 넘는 보리밭을 샅샅이 돌아보리라 맘먹고 간지라 구석구석 가는 곳마다 색다른 모습이 나를 반긴다.

 

보리밭 사이로 날아든 야생화 꽃씨가 떨어져 보리와 함께 엉켜 꽃을 피우니 장관이다. 내린 빗물을 머금은 때 이른  보리이삭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자태를 뽐낸다. 어렸을 적 오빠가 만들어준 보리피리를 불곤 했던 추억이 생각나서 보릿대를 하나 뽑아 보리피리를 만들어 봤으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참을 승강이 하다 포기하고 만다.

 

보리밭을 지나다 보니 엄마에게 들었던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각난다. 보릿고개는 겨울에 쌀이나 보리를 다 먹어 곡식이 떨어져 아직 보리가 여물지 않아 아주 먹기가 힘든 기간에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풀뿌리나 새로 나온 보리 잎을 뽑아 곡식이 부족했던 때라 가루를 내어 곡식으로 만든 가루는 조금 넣고 보리 잎과 함께 죽을 끓여먹거나 버무려 떡을 만들어 허기를 달랬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에야 웰빙 식품으로 건강을 생각해서 먹지만 우리들의 어머니 시대에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보리 잎이나 풀뿌리 나무껍질 등을 먹었다는 보릿고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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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과 인삼밭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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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밭 사이에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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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 앉아 탁트인 보리밭을 구경하는것도 색다른 맛이다.

보리는 보릿고개를 넘었다는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가슴 저린 추억을 만들기도 했지만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의 키보다 훨씬 자라버린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다 몰래 숨어 술래잡기를 했던 기억도 생각나게 한다.

 

보리이삭이 얼마정도 익어갈 무렵 아버지께서는 보리이삭을 잘라와 불에 구워 까칠한 부분을 모두 타게 되고 남은 보리를 손으로 비벼 주시곤 했는데 그 시절에는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

 

아마도 과자를 자주 사주시지 못했던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 주실 수 있었던 최고의 간식이 아니었을까? 신나게 먹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입 주위가 새까맣게 변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추억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지만 보리밭 사이를 지나다 보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보리이삭이 익을 때쯤이면 한 번 더  찾아가 추억을 만들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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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모습으로 보리밭을 가꾸고 있는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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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보리밭을 관리하기 위해 지나가는 모습.

 

보리밭 사이로 부지런한 농부들이 보리밭을 관리하기위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있기에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보리밭 샛길을 행복해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12일부터 5월 12일까지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다채로운 행사로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시간을 내어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나들이 계획을 한번 세워봄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찾아오는길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로 나오셔서 무장면 방면(고창시가지 반대 방향)으로 오시면 됩니다.
모든 도로교통안내 표지판에 관광명소인 "고창 청보리밭"이 표기되어 손쉽게 오실 수 있습니다.

호남고속도로 정읍I.C에서 고창방면 22번 국도 이용
흥덕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고창도착
795번 지방도로를 따라 무장을 거쳐 공음쪽으로 4Km 진행
좌측으로 군도 4호선인 선동 방면의 도로를 따라가면 행사장 도착

 

고속버스

①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에서 고창행 버스이용 (평균 50분 간격)
② 고창 고속터미널에서 무장행 지방버스로 환승 (평균 20분 간격)
③ 무장에서 군내버스(공음 방면)를 이용하여 선산에서 하차(행사장까지 약 10분 소요)
무장에서 택시 이용 (거리 6 Km 요금 약 7,000원[

○ 주 소 : 전라북도 공음면 선동리 산 119-1번지 (학원관광농장)
○ 안내소 ☎ 063)560-280

   

주변관광지

선운산도립공원 고창고인돌유적 자연학습장-들꽃학습원 도산아름마을 동호해수욕장

출처 - 문화일보 : 언제 달려가도… 어디서 바라보아도… 충만한 한 폭의 그림을 간직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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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해질녘에 거진항의 방파제 끝에 서다

강원 고성군 거진포구의 아름다운 풍광은 방파제 끝에서 만날 수 있다. 난바다 쪽으로 불쑥 나온 방파제 끝에서 바다를 등 뒤에 두고 돌아서면 거진의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쪽에서 바라본 거진 포구는 이른바 16대9 비율의 파노라마 대화면이다. 저 멀리 시선이 닿는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태백준령의 능선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눈 덮인 산들은 마치 고성 일대의 해안 마을을 호위하듯이 내달린다.

거진 포구 안쪽의 물은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진한 청색이다. 그 청색 바다를 끼고 활처럼 휘어진 포구에는 야트막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가슴 아래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어부들이 홍게잡이 그물을 손질하다가 피워놓은 장작불 앞에 모여들어 곱은 손을 편다. 갈매기 몇마리 한가롭게 나는 겨울날의 오후, 어느 어선에서 틀어놓았는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흘러간 팝송이 느슨하고 또 나른하다. 이른 새벽의 펄펄 뛰는 생명력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거진항의 최고의 시간은 해질 무렵이다. 밤 바다의 색조가 푸른 것은 제주뿐만이 아니다. 거진의 바다도 해질 무렵이면 신비로운 푸른 색조로 가득하다. 산 능선쪽으로 해가 설핏 넘어가면 푸른 밤바다를 끼고 있는 포구와 언덕 비탈면에 들어선 집들에 하나둘씩 노란 등불이 켜진다. 잔잔한 포구의 바다 위에 어른거리는 불빛은 따스하다. 이윽고 포구 마을 뒤쪽의 소나무 숲 위로 흰 등대에 불이 켜졌다. 등대의 빛은 밤바다의 고깃배를 향한 것이긴 하지만, 방파제 끝에 선 여행자에게도 안온함을 안겨준다.

하루 종일 내린 눈이 저녁이 돼도 그칠 기색이 없다. 포구에 매여있는 목선 위에도 눈이 한뼘쯤 쌓였다. 이런 날에는 김이 뿌옇게 서리는 미닫이문을 가진 선술집의 목제 의자에 앉아 따끈하게 데운 술잔을 앞에 놓아보면 어떨까. 눈 내리는 푸른 밤바다를 내다보면서….

# 송지호에서 황홀한 설경에 마음을 빼앗기다

거진항에 닿기 전에 흩날리는 거세진 눈발 속에서 송지호(사진)에 먼저 들렀다. 동해안에는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쓸려온 모래가 만을 막아 만들어진 석호가 있다. 동해안을 끼고 만들어진 석호는 화진포, 영랑호, 경포호 등 8개에 달한다. 이중 속초에서 고성쪽으로 14㎞쯤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송지호는 다른 석호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되,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철마다 송지호에 들러봤지만, 아무래도 겨울 무렵의 정취가 가장 빼어나다.

송지호는 호수가 아니라 해수욕장을 일컫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호수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동안 7번 국도가 송지호를 무심히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송지호를 끼고 철새탐조대가 들어서면서, 이 건축물의 위용에 이끌린 관광객들이 하나 둘 송지호를 찾고 있다. 경포호나 화진포처럼 호수를 도는 도로는 없지만, 자연 그대로의 호수 모습이 더 마음을 끌어당긴다.

조형적인 건축미를 뽐내는 탐조대는 철새들의 생태를 소개하는 전시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정작 겨울이면 찾아온다는 청둥오리며 쇠기러기, 고니들의 자취는 찾아보기 힘들다. 철새를 보여주는 탐조대의 역할로는 낙제점인 셈이다. 하지만 탐조대에서 호수로 이르는 길의 정취와 아름다운 겨울 호수, 그리고 호수 뒤편으로 태백준령이 첩첩이 겹쳐진 풍광은 그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낸다.

송지호에 눈이 내리면 모두 흑백의 세상이 된다. 호수로 이르는 길의 소나무숲에는 온통 눈이 얹혔다. 그 길을 걸어서 호수 앞에 서면 살짝 얼어붙은 수면에 건너편 언덕 위 송호정의 물그림자가 비춰 보인다. 물이 그렇게 맑을 수 없다. 멀리 눈을 이고 있는 태백의 능선과 흰 눈이 덮인 소나무숲, 그리고 투명하고 맑은 물. 이 겨울에 7번 국도를 따라 여행을 나선다면, 그리고 마침 그 길에 눈발이 날린다면, 송지호를 목적지에서 빼놓을 수 없다. 철새가 다 떠나고 없더라도….

# 해안을 따라 늘어선 정자에 눈 내리다

겨울 동해안을 따라가는 행로는 그저 해안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7번 국도와 해안도로를 번갈아 타고 가는 길은 지도가 없어도 좋다. 길은 겨울바다와 해안선이 안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선만 따라가자면 지루하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바꾸는 것이 이런 지루함을 덜어버리는 요령이다.

양양에서 북쪽으로 속초와 거진, 고성쪽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오르내림이 없이 거의 평지를 달린다. 그래서 이 길에서 다채로운 바다의 표정을 제대로 만나자면 경관 좋은 바다 언덕에 세워진 정자에 올라야 한다.

동해고속도로 현남나들목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처음 만나는 정자가 하조대(사진)다.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교우했다고 해서 성을 따서 하조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조대는 내려다보는 해안 경치가 으뜸이다. 바다보다는 우뚝 솟은 기암절벽에 힘차게 솟아있는 노송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전형적인 ‘관념 산수화’의 구도. 실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임에도, 그 풍경이 한폭의 산수화도 같아, 진경이 아닌 이상향을 그려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간성의 청간정은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동해가 만나는 야트막한 벼랑에 자리잡고 있다. 청간정에 올라서면 겹겹이 밀려오는 동해의 파도를 볼 수 있다. 청간정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현판이 누각 안쪽에 달려있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휘호도 걸려 있다. 비록 관동팔경에는 이름을 얹지 못했지만, 청간정에서 아야진 고개를 넘어가서 만나는 천학정은 고성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장엄한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년 첫날도 아니고, 동해 해돋이를 꼭 신새벽 칼바람이 몰아치는 천학정에 올라서 봐야 할 이유는 없겠다. 숨가쁜 무박일정의 여행이 아니라면 차라리 바다가 내다보이는 숙소를 잡아놓고 편안하게 일출을 감상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 왕곡마을에서 포근한 눈을 덮고 있는 초가집을 만나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여행이 단조로워진다면, 날이 선 겨울바다의 바람이 매섭게 느껴진다면 송지호 인근의 왕곡마을(사진)을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거친 겨울바다가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높여준다면, 전통마을의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왕곡마을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이틀째 내린 눈으로 왕곡마을의 돌담을 따라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지난 가을 이엉을 얹은 초가집 지붕 위에도 둥근 지붕모양 그대로 소복하게 눈이 덮였다.

눈 덮인 왕곡마을의 풍경 앞에 서면 시간의 태엽을 30~40년전쯤으로 되감은 듯한 느낌이다. 옛 풍경이되, 남루하지 않고 지나치게 깔끔한 것이 좀 생소하긴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진짜 옛것’의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터. 그곳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편리함과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지자체의 의욕까지 나무랄 일은 아닐 듯싶다.

그래도 백두대간 동쪽에 이런 전통마을은 경북 영덕의 괴시리마을과 이곳 단 두 곳뿐이다. 영덕의 괴시리가 너른 영해뜰을 끼고 있는 대가집들이 모여있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소박한 한옥과 초가집들이 옹송옹송 처마를 맞대고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솟을대문과 운치 있는 누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지만, 소박해서 더 정감이 넘치는 곳이다. 마을 어귀에 차를 대놓고 돌담길을 따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깨끗하게 헹궈지는 기분이다.

아무 준비 없이 떠날 수 있는 여정. 비유하자면 한국사람들에게 동해의 해안도로는 마치 ‘좋은 여행’이 예치된 예금통장 같은 것이다. 늘 꺼내서 써도 곧 채워지는 곳. 계절을 바꿔서 달려가도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 그곳을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가보면 어떨까.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을 겨눠서 찾아가 눈부신 설경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면 아마도 ‘목돈의 적금을 타는 기분’이지 않을까.

속초·양양·고성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출처 - 출처: 5불생활자 클럽 http://cafe.daum.net/owtm


1.네팔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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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타기 좋은 여행지의 조건을 고른다면 우선 저렴한 체류경비와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

그리고 아름다운 주위 풍경과 그외 다양한 볼거리등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현지인들마저 순수하다면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히말라야를 품고 있는 네팔의 두번째 전원도시인 포카라는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갖춘곳이다.

눈과 마음과 머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져있고,

다양한 편의시설과 관광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기체류지이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들어 이루어진 아름다운 페와호수에

나무배를 띄워놓고 책을 읽노라면 너무나 행복해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호수가를 산책하기에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즐기기에도 최고의 장소이다.

장기 여행자라면 대부분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체류하게 된다.

아침일찍 호수가의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신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근교에 데비폭포, 마헨드라구파동굴, 사랑코트 전망대 등의 볼거리가 있어

여행자들을 오랫동안 붙들어 놓는다.

세계 최고 트래킹 코스인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베이스캠프 역활을 하는 곳이다.

 

2.파키스탄 북부 훈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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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한 자락에 있는 세계적인 장수마을 훈자.

세계일주의 끝낸 여행자들이 다시 한번 가고싶은 곳 1위로 뽑힌 여행지.

신라 고승 혜초가 서역을 왕래했던 길이며 옛 실크로드의 무대가 되었던 마을.

훈자마을에 대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미사어구 붙인다고

하더라도 부족하기만 할 뿐이다.

험준한 고산 협곡속에서 사는 경이로운 삶과 꿈속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도시 생활에 지친 모든 여행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정화시켜 준다.

살구나무와 키 큰 백양나무가 만년설의 설산들과 어우려져 있고,

마을 곳곳에  어린 아이들의 동심으로 가득한 이곳은 영원히 머물고 싶을만큼 행복하게 해주는 곳이다.

. 그저 빨래를 널다가도 뒤만 쳐다봐도 배시시 웃음짓게 만드는 곳.

그런 곳이 바로 훈자 마을이다.

 

3.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또바호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또바 호수는 이미 외국 배낭여행자들에겐 장기 체류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저렴한 체류비로 인해 여행자들을 오랫동안 붙들어

놓는 곳으로 5불 생활자 회원들도 장기체류를 많이 한다.

또바호수는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라호로 깊은 수심과 맑은 물은 남북 직선

길이가 100킬로미터에 이르며 넓이는 1,707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호수 가운데에는

사모시르섬이 있는데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싱가폴만한 크기이다.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또바호의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먼지가 태양을 가려

빙하기가 왔다고 한다.

 

4.중국 운남성의 대리고성

 


 

중국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곳으로 얼하이 호수와 창산이

고성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일년내내 따뜻한 날씨와 신선한 공기,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 신비로운 고성풍경, 저렴한 체류비용까지 이 모든 것이 여행자를

붙들어놓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작은 수로를 따라 이어져있고,

전통 기념품점과 찻집이 늘어선 옛 길을 걷다보면 너무나 행복해지는 곳이다.

말타고 신선처럼 창산을 올라가기도하고, 얼하이 호수의 아름다운 섬에서

노을을 감상하기도 한다. 배낭여행자들이 원하던 그런 샹그릴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말 이곳에 있으면 세월 참 좋다.

 

5.에콰도르 불로장수의 마을 빌카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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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훈자마을과 함께 세계최고의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세계 3대 장수촌들을 모두 여행해보면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첫번째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가 있고,

둘째 거주민들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될 만큼 은둔지에 위치해 있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기후가 온난 쾌적해서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빌카밤바 역시 이 세조건을 모두갖추고 현지인들이 순수하기 그지없다. 

물가 또한 저렴해서 2층 발코니가 달린 콜로니얼 타입의 콘도 숙소 비용이

하루 5달러라는 것과 우리 나라의 5월 초순의 날씨가 연중 계속된다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세계어느 곳보다 친절하고 인정이 많아서 외부인의 방문에 환대를 하며

작은 시장에선 신선한 채소와 먹거리를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입할수도 있으며

덤으로 듬뿍 담아주기도 한다. 조용히 사색을 하거나 책을 집필하기엔 이곳 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지 않을까?  멀리 남미의 에콰도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현지에서도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은둔의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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