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공원으로,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조금 늦은 1988년에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 및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관광지의 요건과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면적은 154.7㎢이다.

서해안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변산반도는 어느 한 곳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그 느끼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경관도 변화하게 된다. 즉, 해안선을 따라 볼 수 있는 외변산도 절경이지만 내륙의 내변산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진면목을 가슴깊이 새겨준다.

또한, 해변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장관이어서 1999년 12월 31일에는 새천년준비위원회 주관으로 격포 채석강에서 묵은해를 보내는 해넘이 행사가 약 3만명의 탐방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어 이 곳 변산반도국립공원을 대내외에 알린 바 있다.

변산반도의 관광지를 열거하자면 유형, 무형을 막론하고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격포 채석강, 천년고찰 내소사, 직소폭포, 변산, 격포, 고사포 해수욕장, 월명암의 낙조 등 많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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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415-24  063)582-7808 063)584-8186 063)583-2054

 

 

주변관광지

 

채석강

채석강은 부안을 대표하는 경관이다. 이곳의 지형은 선캄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천만년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다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당나라의 이태백이 놀았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하여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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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채석강에서 약 1km의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적벽강에 이른다. 백사장 뒤편의 죽막마을을 경계로 격포해수욕장과 나뉘어지며, 죽막마을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 약 2km를 적벽강이라 하며 이름 또한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놀았던 적벽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혀진 것이라고 한다. 맑은 물에 붉은색 암반, 높은 절벽과 동굴 등 빼어난 경치가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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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한국의 8대 명승지 중의 하나인 볼거리 많고 아름다운 변산반도.. 바다쪽에 접한 곳을 외변산, 내륙쪽에 접한 곳을 내변산이라고 편의상 나눠 부릅니다. 신비한 바위절벽 채석강이 외변산을 대표하는 명물이라면 내변산은 변산반도 남쪽의 백제사찰 내소사로 대표됩니다.
백제 무왕 34년(633) 승려 혜구가 이곳에 절을 세운 후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 명했습니다. 그 후 대소래사는 전쟁으로 불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이 남았는데 그것이 현재의 내소사입니다. 소래사란 이름이 언제 내소사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에서 소래사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변산반도를 한바퀴 도는 해안도로를 타고 변산해수욕장쪽에서 해안을 타고 돌다보면 도로가 끝날 즈음하여 내소사 들어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일주문부터 천왕문에 이르는 600여m의 길 양옆으로 하늘 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기다란 터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끔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제외하고는 빛이라곤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 전나무숲길은 이미 절 자체보다도 더 유명하며 사찰로 들어가기전에 여행으로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가지런히 열맞춰 서 있는 크고 작은 부도들을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오면 넓직한 내소사 정원이 펼쳐집니다. 정원에는 약수가 담겨진 커다란 돌그릇이 있어 이곳까지 오느라 갈증난 목을 축일 수 있습니다.
경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은은한 푸른 청자의 빛을 띠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입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의 청림사에서 만들어진 이 동종은 청림사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조선 철종 4년(1853)에 내소사로 옮긴 것입니다. 종에다 새긴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도 뛰어난 옛 조상의 조각기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교통 : 부안읍(30번국도) →변산 →격포 →내소사 입구(좌회전) →내소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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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자리한 개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입니다. 백제 무왕 35년 (634)에 묘련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었는데요. 당시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데서 사찰의 이름이 유래한 것입니다. 삼국통일 후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머물면서 676년에 중수한 것을 비롯해 총 5회에 걸친 중수가 있었습니다. 인근의 내소사에 비해 규모면에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주변경관이나 사찰이 주는 편안함은 결코 내소사에 뒤지지 않는 사찰입니다.

개암사 초입에서부터 일주문 안쪽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으나 마땅한 주차시설은 없으므로 일주문 들어서기전 공터에 차를 세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교통 : 부안읍(23번 국도:고창방면) →개암사 진입로(우회전) →개암사

1313년 고려 충숙왕때에 원감국사가 개암사를 중창하면서 황금전, 청련각, 청허루 등 30여개의 건물을 새로 지어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고 하나 현재 절안에는 대웅보전과 응진전, 요사체와 요사로 쓰이는 월성대 정도만이 남아 있어 한적하다 못해 약간은 쓸쓸한 느낌마저 듭니다.

개암사의 본전인 대웅보전(보물 제292호)은 조선 효종 9년 밀영선사와 혜징선사가 절을 재건할 때 지은 것으로 정면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식 건물입니다. 주변의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웅보전은 마치 대자연의 일부를 보는 듯하며 정면 양쪽에서 여의주를 물고 대웅전을 지키고 있는 용 두마리가 인상적입니다. 이 건물에서는 유난히 용이 눈에 많이 띄는데요. 건물 안팎에 있는 용들을 모두 세어보면 14마리나 된답니다. 건물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큰 기둥을 사용해 안정감이 있어 보이며 중앙공포 양쪽 도깨비 문양의 조각을 가리지 않기 위해 정면 평방에 길다랗게 현판을 배치한 것이 특이합니다.

대웅전 좌측의 응진전에는 부처님과 16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16나한의 표정과 자세가 가지각색인데 서로 웃고 떠드는 듯한 모습의 나한상은 재미난 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응진전 건너편으로 돌로 만들어진 지장보살상이 모셔진 움집 같은 것이 한 채 있으며 그 뒤로 요사채가 한 채 있고 밑으로 요사채가 한 채 더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내소사 대신 사람의 발길이 좀 덜한 한적한 개암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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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구곡

신선대 신선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망포대, 분초대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해발 150여m에 위치한 산곡의 분지마을 대소(大蕭)에서 만나 대소(大沼),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 등을 연출하고 백천(百川)에서 합류한 다음 서해로 빠지는 계류를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부안 댐의 축조로 제6곡 영지에서 제9곡 암지까지는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 제1곡 대소(大沼, 大蘇, 구시둠벙)

  - 가장 큰 소란 뜻으로 내소사의 유래인 대소래사와 소소래사 중 대소래사를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시대 때 大蘇로 불리던 것을 근래 들어 大沼로 바꾸어 부르는 것 같다.

▷ 제2곡 직소폭포(直沼瀑布)

  - 변산8경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폭포로 내변산의 자랑거리이다. 폭포 하단부의 소를 실상용추(實相龍湫)라 하는데 용이 상승한 곳이라는 뜻으로 불경에서 유래되었다. 폭포 길이는 30m 정도이며 흰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여름의 더위를 깨끗이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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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곡 분옥담(噴玉潭)

  - 소의 모양이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움푹 파인 소에 고인 물은 옥빛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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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곡 선녀탕(仙女湯)

  - 선녀들이 놀다 갔을 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계단상으로 여러 웅덩이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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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곡 봉래곡(蓬萊曲)

  - ‘봉래’란 무릉도원과 같은 상상의 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 정도로 봉래구곡 중 가장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흐르는 암반 위에 각자(刻字)된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는 글씨는 정읍군 태인면에 살았던 동초(東樵) 김철곤(金晳坤)이 썼으며 그 글씨 때문에 일반인들은 봉래곡을 봉래구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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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곡 영지(影池)

 - 고여 있는 물에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춰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도 물이 고여 있을 때는 쌍선봉 능선에 위치한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한다.

▷ 제7곡 금강소(金剛沼)

 - 구전되어지는 말에 의하면 금으로 만든 비석을 빠트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쩌면 아직도 그 비석이 물속 깊은 곳에 묻혀있을 것 같다.

▷ 제8곡 백천(百川)

 - 일대의 모든 계곡이 모이는 장소로 어림잡아 백여개의 천이 모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안댐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한여름 피서를 즐기던 곳이었다.

▷ 제9곡 암지(暗池)

 - 봉래구곡의 마지막이며 현재는 부안댐 하루에 잠겨있다. 잠두마을 앞에 있던 소라는 내용 외에 전해지는 사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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