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카페


셀러리맨의 천국을 만들다.



사원들 출근시간 아침 8시 30분,



하지만 야마다 사장은 10시가 넘어서 출근한다.



괴짜사장 야마다, 그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벽면을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연극 포스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매일 아침 그의 책상엔 일본 전역에서 보내 온 연극포스터들이 배달된다.



200장이 넘는 포스터 중에서 날짜 지난 것을 찾아내기.



그의 하루는 전날 끝난 연극포스터를 떼어내고

새로 막이 오른 연극포스터를 붙이는 일로 시작된다. 


회사를 돌아보는 게 사장님 일이 아닌가요?


회사는 안 돌아보세요?



 




성공한 CEO라면 회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사무실에 틀어박혀 연극포스터만 붙인다니...

 


그래도 회사가 돌아가나요?



야마다 사장, 그의 나이 일흔 여섯.



세상의 상식과는 정반대쪽에 서서 그는 회사를 만들었고

그가 만든 회사는 일본 최고의 중소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창원쯤 되는 곳.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다. 




창립 42주년을 맞은 미라이는 전국에 30여개의 공장과 영업소를 가진
전기설비 제조업체이다. 




대단한 기술은 없다.

제품의 대부분은 중국이나 다른 중소업체에서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성과급 팍팍 주어가며 영업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라이 연매출은 2500억 원.





이런 기업에서 야마다 사장에게 한 말씀 청한다고?




정전이 아니다. 쉬는 날도 아니다.



다소 어두운 사무실.



낮에는 웬만해선 불을 켜지 않는다.



형광등엔 담당자 이름까지 달아서 켜고 끄는 것을 관리까지 한다.



 



300명이 넘는 사원이 근무하는 본사 전체 건물에 복사기는 딱 하나.



네. 정말 한 대밖에 없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되요.



서류봉투 한 장도 발신인, 수신인을 계속 바꿔주면서 열 번 이상 재활용.



 



백 엔짜리 돋보기안경, 안경다리도 부러져서 테이프로 감아져있다.



다른 안경은 클립으로 다리를 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한 여름에도 에어컨 설정온도는 27도.



70평생 자가용이라곤 사본 적이 없다. 




이런 야마다사장의 미라이공업이 돈을 물 쓰듯이 하는 데가 있는데.



미라이 본사의 식당에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6개 방송사와 18군데 신문에 소개된 이 행사는

미라이 전 사원 해외여행 프로젝트 ! 




자그마치 회사 돈 25억이 투입됐다. 




5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 사원 무료 해외여행을 실시한다. 




한 번 떠나는데 20억은 기본,

전기세, 복사비 아껴서 사원들의 사기를 얻는 것이다. 



 


 



인쇄비가 아깝다면서 식권도 만들지 않으면서 1년에 한 번씩 직원들 국내여행도 보내준다.

노는 것에 관해서는 미라이가 일본 제일이다. 




3달에 한 번씩 열흘짜리 휴가가 있다.

게다가 샌드위치 데이는 무조건 논다. 




그런데도 사원 평균연봉은 6천만 원. 일본의 웬만한 대기업 수준. 




많이 놀게 해주고 돈도 많이 주다니... 




미라이에는 어르신이 많다.

정년이 70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오는 게 즐거워요.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즐거워요. 




단 한 명도 비정규직이 없고, 단 한 명도 명예퇴직이 없다. 




70세까지 잘릴 염려 없고, 일본 회사들 중에 가장 많이 놀게 해주고,
월급도 많이 주는 미라이공업. 




 



퇴근 시간 오후 4시 45분.

일본에서 업무시간이 가장 짧다. 




잔업금지, 특근도 없다. 


휴일인데 왜 나오셨어요?

 




전사원이 해외여행을 가서 공장 문을 닫았을 때도 야마다 사장은 혼자 출근해
표어를 붙였다. 




문을 닫고 다니라는 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지는 않나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중요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해요.
다들 익숙해 졌어요.
 




회사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문구.

 




이 진지한 분위기는?

꼭 시험 보는 것 같은 이 풍경은 사원들이 제안한 제안서를 심사하는 모습이다.

미라이의 월례행사. 




한 눈에 봐도 허투루 쓴 구석이 없는 제안서들,

신제품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제안자들이 이렇게 열심이니 심사를 설렁설렁 할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열심히들 할까요?

이런 풍조니까요, 회사 분위기가 원래 이래요. 




아이디어가 회사제품에 반영되기도 하나요?

최종적으로 제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기획회의가 열리는데
제안이 채택되면 제품화가 됩니다.
 




사원들은 다양한 제안을 한다. 




몸에 좋은 낫토를 메뉴에 넣어 달라. 




매 해, 만 건 정도의 제안을 합니다. 




견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전병. 제안이 채택된 것 중 하나다. 




초록색 마크가 붙은 것은 사원들의 제안을 현실에 적용해 작업의 효율과 능률을 높인 것들이다. 




사원들의 아이디어가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여기. 




미라이 생산품의 98%가 특허상품.

실용신안과 의장은 신청 중인 것까지 포함해 2300건이 넘는다. 




건물 벽속에 들어가는 설비.

고장이 나면 위치를 찾느라 벽을 뚫어야 했던 문제를 쉽게 해결하게 되었다. 




시장 점유율 1위인 이 나이프도 사원 아이디어. 




기존의 전기나이프는 모두 접었다 폈다 양손을 사용했는데 이 칼은 한 손으로 충분하다.

미라이 제품의 공통점은 단순하지만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편의점 노래인데....PC방업주로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편의점 노래    

    

             취직자리 마땅않네

             자존심에 노동싫네

             고민끝에 찿은직종

             대기업에 사장자리

 

             이놈저놈 하지마라

             나는너와 다르니라

             사장소리 들어보네

             너무나도 좋을씨구

 

             야무진꿈 나래펴리

             얼씨구나 지화자자

             있는자본 없는자본

             대출받고 끌어모아

 

             사장자리 확인하네

             계약서에 도장찍네

 

             도장찍고 강등됐네

             점장으로 떨어졌네

             니들한텐 점장돼도

             남들한텐 사장이네

            

             사장님도 교육받나

             점장이니 교육받네

             대기업의 사장님이

             피교육자 신세되네

 

             이게무슨 교육인가

             배운것이 무엇인가

             교육비가 아까웁네

             사장체면 구겨지네

 

             어쨋거나 끝난교육

             이제부터 잘해보세

 

             대기업의 사장님은

             알바보다 더바쁘네

             알바할일 내가할일

             모두모두 내가하네

 

             알수없네 사장자리

             우리알바 사장됐네 

             알수없네 알바위치

             사장자리 뀌어찿네

 

             사장인지 노예인지

             구분하기 어려웁네

             아는사람 찿아오네

             어깨에다 힘을주네

 

             무늬라도 사장임네

             꼴깝떨고 자빠졌네

             가슴아파 마음아파

             아픈곳만 늘어나네

 

             한달두달 가정경제

             무너지기 시작하네

             괜히했나 후회되네

             조금만더 참아보세

            

             이게무슨 벼락인가

             돈벼락이 떨어지네

             이젠정말 사장됐네

             야무진꿈 펼쳐보세

            

             온몸으로 부딛치네

             화랑정신 살아나네

             젓먹던힘 솓아나네

             임금님도 부럽잖네

 

             희망에찬 부푼가슴

             푸른창공 날아보세

             

             인출금이 떨어지네

             나의노력 질책하네

             조금만더 노력하세

             죽기살기 힘을쏟네

 

             재고파악 조사왔네

             상품많이 없어졌네

 

             우리알바 의심하네

             오는손님 살펴보네

             녹화화면 돌려보네

             의심내용 하나없네

 

             정산장부 계산하네

             무엇인가 찝찝하네

             회계한테 물어보네

             이상없다 답변하네

 

             대기업의 회계장부

             의심하고 바보되네

             이상하다 증발된돈

             우찌하면 찿을텐가

 

             중딩고딩 슬쩍한거

             재수없게 걸려드네

             새로바뀐 우리알바

             슬쩍하다 걸려드네

 

             그동안에 증발됐던

             분실물건 덮어씌워

             조금이나 만회했네

             마음아파 못살겠네

             

             돈을안줘 알바짤러

             야간근무 내가하네

             주간근무 사람없어

             집안식구 동원하네

 

             매출증대 계속되도

             인출금은 떨어지네

             눈을떠도 코베가네

             이거정말 답이없네

 

             시간없어 못나가네

             친목회도 탈퇴하네

             일가친척 미안하네

             나만빼줘 부탁하네

             

             친구들도 못만나네

             외톨이가 되었다네

             잠만자고 일만했네

             생활비가 부족되네

 

             내생활은 낮이없네

             별만보고 살아가네

             인체세포 구박하네

             방긋햇님 그립다네

 

             아내근무 나는취침

             내가근무 아내취침

             생과부가 따로없네

             홀아비가 따로없네

 

             우리생활 이렇다네

             상상하며 웃어보세

 

             그와중에 만들었네

             우리2세  태어났네

             너무나도 이상하네

             손잡아도 생산되네

 

             감기걸려 콜록콜록

             일못할까 걱정되네

             종아리가 부엇다네

             서서있어 통증오네

 

             인건비도 안된다며

             다른일을 해보라네

             무늬사장 그만두고

             투잡으로 만들라네

 

             고민되네 뭐를할까

             답답하기 짝이없네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장님이 좋았는데

 

             사장싫다 그만하세

             위약금을 물라하네

             위약금이 얼마인가

             골때리네 기천만원

 

             사장체면 무너지네

             인생포기 죽고싶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오갈때가 없어졌네

 

             자꾸자꾸 떨어지네

             인출금이 떨어지네

             이거뭔가 잘못됐다

             정산부정 밝혀내자

 

             본사회계 이상없다

             질문하고 바보되네

             자다말고 벌떡인나

             계산다시 뽑아보네

 

             틀린계산 확인하고

             제차다시 물어보네

             이상없다 질책하네

             곱빼기로 미안됐네

 

             부정정산 밝혀내자

             여기저기 글올리네

             대기업에 부정없다

             몰매맞고 쫓겨나네

 

             바보되고 왕따됐네

             오기발동 밝혀내자

             잠안자며 계산하네

             토끼눈이 되어가네

 

             충혈된눈 쓰라리네

             머리까지 빙빙도네

             봄이가고 여름오네

             가을가고 겨울오네

 

             지성이면 감천이라

             새희망이 밝혀졌네

             씨앗뿌려 싹이트고

             꽃이피어 열매맺네

            

             방송안돼 언론안돼

             시위안돼 법도안돼

             해결방법 전혀없네

             땅바닦에 주져앉네

                           

             죽음이냐 죽임이냐

             한꺼번에 선택하네

             쥐구멍에 햇볕드네

             새아침이 밝아오네

 

             편의점의 무늬사장

             정말하면 안되겠네

            

             너도나도 조심조심

             대기업의 사기조심

             야무진꿈 포기하라

             대기업의 사기조심

 

  출처 : 편의점 http://cafe251.daum.net/_c21_/home?grpid=19Cxa


출처 - 한겨레21 기사입력 2009-01-16 18:07


[한겨레21]
선진국에 비해 2배에 이르는 종사자 수, ‘과잉’을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 마련 대책을…

21세기 한국 사회에는 이전 세대에 없던 계급 구분법이 존재한다. 전체 노동인구의 3분의 1씩을 대표하는 ‘정규직’ ‘비정규직’ ‘자영업자’라는 3가지 계급이 그것이다. 상대적 약자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은 혹시나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도에 휩쓸릴까 눈을 부릅떠야 할 처지다. 허술한 복지 체계와 극심한 고용불안은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인에게 일터와 쉼터를 박탈당한 ‘잡리스’(Jobless)와 ‘홈리스’(Homeless)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자영업 3차 대란’을 경계하는 노란 신호등 앞에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1세기 한국, 새로운 계급구분법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6년 한국의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33.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으뜸이다. 자영업 초과잉 사회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비밀을 푸는 열쇳말로 ‘농민’을 지목한다. 선진국의 농업인구가 통상 경제활동인구의 4% 수준인 데 비해, 1980년 한국은 국민의 4분의 1이 농촌에 살면서 농업을 주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60~70년대 진행된 산업화로 이미 대규모 이농이 이뤄진 상태였지만, 농업 종사자 수는 여전히 자영업자의 갑절이었다. 쌀값은 중요한 경제 이슈였고, 농민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민주화 세력이 노동자와 함께 농민을 사회 변혁의 주체로 인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상황은 극적으로 변한다. 제조업의 성장 및 ‘세계화’와 맞물려,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표현되는 일종의 ‘농업 포기 정책’이 농민들의 도시 유입을 추동했기 때문이다. 94년 국내 자영업 인구는 500만 명에 이르고, 농업 인구는 250만 명 밑으로 떨어진다. 97년에 닥친 외환위기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와 자영업자화를 불러 ‘초과잉 자영업 사회’를 만들어낸 주범이었다. 김 센터장은 한국 자영업자 수가 선진국 자영업 인구의 2배를 넘으면서도, 비전문적 분야에만 집중 분포된 원인을 기형적 산업·노동 구조에서 찾는다. 그리고 5년여 뒤인 2003년 닥친 신용카드 사태는 자영업 위기를 심화시켰다. LG카드를 비롯한 신용카드사들의 회사채가 부실로 이어져 거래가 중단되면서 자본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2002년 말 101조원에 이르렀던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는 2003년 9월 58조원대로 축소됐다. 같은 기간 263만 명이던 신용불량자 수는 350만 명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2008년. 한 해 동안 자영업 인구는 7만여 명 감소했다. 2007년 말부터 원자재 가격과 소비자물가가 동시에 오르면서 마진 압박을 받게 된 게 일차적 요인이었다. 무슨 뜻일까? KB국민은행연구소의 강경훈 연구원은 “경쟁이 심한 산업구조와 소비 감소 상황에서, 매출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자물가의 증가분만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세탁소가 한 골목에 몇 곳씩 있다 보니 전기요금·수도세가 오른 만큼 세탁비를 올리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결국 ‘자영업 대란’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열쇳말은 ‘과잉’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서비스업 생산지수(2005년을 100으로 해서 서비스업체의 영업수익 성장세를 보여주는 지표) 증가율은 2007년 3분기(7.2%)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2008년 8월의 1.6% 증가율은 2005년 4월(0.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모두 84만8062명에 이른다. 개인사업자 폐업 건수는 2003년 81만5738건에서 2004년 69만9292건으로 줄었다가 2005년(75만3994건), 2006년(75만7744건)엔 반등하는 양상이다. 다행히 지난해 9월부터 원자재 가격 하락과 환율 안정으로 물가상승률은 둔화됐다. 그러나 곧장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번지면서 자영업자들은 더 큰 시련을 만나게 됐다. 내수가 꽁꽁 막힌 터에,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따른 신규 자영업자들의 유입까지 코앞에 닥쳤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은 자영업 감축이 아니라 적절한 일자리 창출일 수도 있다.

‘현재 사업을 유지하겠다’ 84.6%

자영업자들 스스로 바라보는 현재의 경제 상황은 엄중하다. 소상공인진흥원이 지난해 11월 소상공인사업체 440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58.9%가 ‘최근 6개월간 매출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거의 변동이 없다’와 ‘매출이 늘었다’는 응답 비율은 각각 31.9%와 9.3%였다. 업종별로는 특히 욕탕업(86.2%), 노래방(68.8%), PC방(60.0%), 세탁소(60.0%) 등 종사자들의 응답에서 매출이 줄었다는 비율이 높았다. 중식당, 의류 판매, 부동산중개소 업종만 불황의 그늘에 놓여 있는 게 아니다. 매출 감소 이유로는 ‘물가 상승으로 고객의 씀씀이 감소’를 꼽은 응답이 26.9%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내수 경기 위축’(21.4%), ‘소형 업체와의 경쟁 심화’(19.7%), ‘판매 부진’(16.4%) 등의 차례였다.

이들 소상공인에게 지난 6개월간의 사업운영 실태를 물었더니, ‘현상 유지’라는 응답이 60.5%로 가장 높았다. ‘흑자’와 ‘적자’라는 응답은 각각 22.9%와 16.6%였다. ‘적자 상태’라는 응답이 많았던 업종은 욕탕업(31.0%), 이용업(24.2%), 제과점(23.7%) 등이었고, ‘흑자’라는 비율이 높은 업종은 제과점(34.2%), 숙박업(28.6%), PC방(26.7%) 등의 차례였다.


조사대상 업체들은 향후 사업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전체 응답자의 55.4%가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변동 없을 것’과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각각 32.0%와 12.6%였다. 부정적 시각은 노래방(75.0%), 이용업(70.6%), 슈퍼마켓(66.1%) 등에서 두드러졌다. 흥미로운 것은 소상공인 사업체들이 미래를 비관하면서도 ‘현재 사업을 유지하겠다’는 응답(84.6%)이 사업을 접거나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의견을 압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영업에서 퇴출되면 갈 곳이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경제’라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에너지는 돈의 흐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개인사업자들의 ‘돈줄’이 말라가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2008년 6월 말 현재 예금은행 개인사업자 대출은 135조원으로 전체 기업대출 478조6천억원의 28.2%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2005년 2분기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7년 말까지 매년 증가세가 확대됐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개인사업자들을 상대로 한 대출 실적 쌓기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2004~2005년 개인사업자 대출 순증가액은 5조8천억원인 데 비해, 2006~2007년엔 32조8천억원이나 됐다. 그러나 2008년 상반기 들어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중소 건설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과 환율 급등 등으로 대출 공급이 크게 줄어들었다. 개인사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2008년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심상치 않다. 예금은행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2007년 4분기 0.6%를 기록했지만, 2008년 1·2분기엔 0.7%로 상승했다.

자영업자여, 조직하라

그렇다면 자영업 파국을 막기 위해 지금 급한 조처는 무엇일까? 일단 금융시장의 유동성 경색에 따라 좁아진 돈의 수도관을 뚫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의 오문석 상무는 “자영업은 규모가 작고 경기에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특별한 처방을 내리기 힘들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소비 침체와 신용불량자 양산 같은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수를 살리는 게 핵심이겠지만, 일단은 소상공인과 신규 창업자에 대한 대출 길을 열어주는 금융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지금이 도시 자영업 문제의 근본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제안한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홍헌호 연구위원은 “600만 자영업자가 과잉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이들을 다른 일자리로 흡수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정부가 감세정책을 포기한다면 매년 20조원이 확보되는데, 그 돈으로 북유럽에서처럼 복지 분야의 사회적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김병권 새사연 센터장은 “자영업 문제를 풀기 위한 선차적 과제는 결사”라고 말한다. 자영업 계층이 집단화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동안 카드 수수료 인하 운동이나 대형마트 건립반대 운동 등이 있긴 했지만, 600만명이라는 규모에 걸맞게 자영업 계층이 집단화·주체화되지 못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김 센터장은 자영업의 결사가 생겨야 정부에 적극적인 정책을 요구할 수 있고, 자영업 계층의 집합적 요구를 수렴할 수 있으며, 정부 정책이 효율적으로 시행될 통로와 매개가 마련된다고 강조한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한겨레21] 35년 자장면집을 내놓은 사장, 수금을 못하는 재료상,

파는 사람은 쏟아지지만 사는 사람은 없는 중고 주방용품상



1970~80년대 산업화 시절 고향을 떠난 농민들은 임노동자로 흡수되지 못하고 영세 자영업 계층을 형성했다. 한국 자영업의 태동기다. 1997년 외환위기에 뒤이은 기업 구조조정은 임노동자들을 중소 자영업자로 내몰았다. 자영업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1차 대란’이 전개됐다. 2003년께 몰아닥친 신용카드 사태는 ‘2차 대란’이었다.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일상사였다. 그리고 지금 ‘3차 대란’이 온다는 흉흉한 관측이 업계에 나돌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미 실물위기로 번졌다. 내수경기 침체는 중소 자영업자에게 직격탄을 쏘았다. 2008년 11월 국내 자영업자 수는 600만3천 명으로 2007년 같은 달보다 8만3천 명 줄었다. 그런데 또 다른 자영업자들이 등장하려 한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쏟아질 ‘자영업 예비군’까지 겹치면 그나마 버텨온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새로 등장할 신규 자영업자들은 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자영업 붕괴 조짐은 서민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서민들이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자영업자들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의 위기는 곧 서민경제 몰락의 신호음이기도 하다. <한겨레21>은 서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대변하는 자장면, 청바지, 부동산중개소를 통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서민경제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밀가루 음식인 자장면은 물기를 빨아들인다. 눈물과 땀방울도 가리지 않는다. 면발에 감자를 섞어 넣은 ‘옛날 짜장’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걸쭉하게 춘장을 볶아내야 했다. 1973년 3월13일.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을 태운 완행열차가 서울 용산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갈 곳은 없었고, 누군가 “자장면이나 한 그릇 먹고 가라”며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중년 사내의 손에 이끌려간 중국집 주방은 ‘탕탕∼ 휘익∼’ 수타면(手打麵) 만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자장면 한 그릇에 110원 하던 시절. 주머니에는 360원이 들어 있었다. 소년은 자장면이 통통하게 붇기 시작하고서야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20세기 초 인천 부두로 흘러들어온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그랬듯, 한 그릇의 자장면은 소년의 추위와 허기를 달래주었다. 서울 은평구 증산동 ‘ㅎ반점’의 진광옥(48) 사장은 자신의 중식업계 입문기가 “뻔한 스토리”라고 했다.

“프라이팬을 놓을 때가 됐다”

첫 직장은 남대문 경찰서 코앞이었다. 식당 일용직 구직자들이 모이는 새벽 북창동 골목이 ‘인간시장’이라고 불릴 때였다. 진 사장은 같은 이름의 소설로 유명해진 김홍신씨를 만난 적이 있다. 녹음기를 들고 온 소설가는 그를 붙잡고도 애로사항이 뭐냐고 한참을 물었다. 왜 없겠는가. 중국집 막내 시절, 주방은 ‘실장’이라고 불리는 조리장 밑으로 요리 칼을 잡는 ‘칼판’, 면을 뽑아내는 ‘라면’, 설거지를 하는 막내 ‘사완’까지 위계질서가 엄했다. 3분 안에 자장면을 배달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달렸다. 그 시절 별명이 ‘다람쥐’였다. 스무 살 때에는 종로 쪽 수표다리 길에 있던 ‘서호장’으로 옮겨 ‘라면’을 맡았고, 이태 뒤 군대를 다녀와서는 ‘보신각’이란 중국집에서 ‘실장’으로 데뷔했다. 사완 시절 300원이던 월급은 25만원으로 뛰었다. 지금의 아내도 그 무렵 만났다. “평생에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 1990년에는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자신의 가게를 처음 열었고, 이후 연신내와 마포 등지로 옮겨다녔다. 10여 년 전부터는 골목마다 피자·치킨집이 들어서며 중식업은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땀을 흘리면 다섯 식구 살림은 거뜬했다.

“프라이팬을 놓을 때가 됐다.” 지난해 여름, 그는 중국집을 접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증산동으로 옮겨온 뒤 장사는 전보다 더 팍팍해졌다. 먼 동네까지 전단지를 돌리며 ‘장타’를 뛰어보기도 했지만, 불어버린 자장면을 배달받은 고객은 다시는 주문전화를 넣지 않았다. 지난해 초부터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더니, 여름부터는 식자재 비용까지 덩달아 올랐다. 3500원짜리 자장면을 팔아도 임대료와 전기세를 제하면 남는 이문은 500원 안팎. 부부가 하루종일 한달 내내 가게일에 매달려도 300만원 수입을 올리기 어렵다. 차라리 채소장사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점포를 맡고, 자신은 트럭을 끌고 ‘떨이 물건’을 팔면 될 터였다. 부부는 지난해 성탄절 전날 음식점을 복덕방에 내놓았다. “자장면 뽑는 건 아마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겁니다. 고되고 돈벌이도 시원찮으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35년을 몸담았으니 서운하기야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요.”

자장면은 골목길 상권의 대명사다. 처음으로 자장면이라는 이름의 음식을 팔았다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은 개업 시기가 19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시절, 자장면은 생일, 입학과 졸업, 결혼을 기념하는 축제의 음식이었다. 패밀리레스토랑과 다양한 배달 음식들의 등장으로 권세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한국인들은 하루에도 600~700만 그릇의 자장면을 착착 비벼서 깨끗하게 비워낸다. 알싸한 ‘옛 추억’과 다급한 ‘허기’를 메워주는 힘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 있는데 배달 일에 나서는 후배들

그러나 진 사장의 눈에는 자장면의 마술이 유통기한을 다해가는 게 보인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금정’의 노팔삭(43) 사장은 “진 사장의 처지에 공감이 간다”고 말한다. 동업자들 모임에 나가보면 한결같이 지난 연말 매출이 2007년보다 20~30% 이상 떨어졌다고 호소하기 때문이다.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연경’의 김태현(49) 사장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주려고 ‘탕수육 대자 큰 걸로’를 외치는 TV 광고는 명백한 과장광고”라고 말한다. 요즘은 아무도 중국집에서 그렇게 외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몇몇 후배들이 기술이 있는데도 배달 일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중국집 운영 대신, 한 달 200만원 벌이를 선택한 경우들이다.

서울 마포구 일대 100여 개 중식당들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평양상사’의 윤석기(66) 사장은 “지난해 10월 이후엔 우리 같은 유통대리점들에 가게 인수자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는 중식당 사장들이 부쩍 늘었다”고 돌아봤다. 올 초부터 각종 재료값 인상으로 애를 먹어온 중식당들은 요즘 같은 소비 침체를 견뎌낼 힘이 없다. 전국 식당의 80% 정도가 가입한 음식업중앙회 회원 현황을 보면, 2008년 11월 현재 전국의 중식당은 2만299개로 2005년의 2만2029개에 비해 8.2% 감소했다.

자장면은 검은 춘장과 각종 재료를 볶아 국수 위에 얹은 음식이다. 성분 분석은 어렵지 않다. 춘장은 밀가루와 콩을 섞어 발효시킨 것이다. 화교 기업인 영화식품의 ‘사자표 춘장’이 가장 유명하다. 국수에 쓰이는 밀가루는 중력분인데, 오스트레일리아산의 질을 높게 친다. 채소 중에서는 양파가 가장 많이 쓰이고, 요리사의 취향에 따라 오이나 양배추가 섞인다. 메추리알이나 계란을 올려주는 자장면은 부산처럼 남쪽 지방에만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식당 금정이 아침 9시께 문을 열면 재료상, 채소상, 정육점, 해물상 등이 오토바이 가득 물건들을 실어 보내오는 식이다. 자장면에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은 재료 공급상들의 생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안기게 된다.

금정에서 만리동 고개를 넘은 뒤 환일고등학교 골목을 10분쯤 타고 내려가면 평양상사가 나온다. 블록으로 지은 10평 남짓한 창고 건물엔 ‘중찬명가 양송이’ ‘백설 식용유’ ‘럭키랩’ ‘곰표 밀가루’ 등이 단정하게 쌓여 있다. 30여 년 전 대전에서 농업진흥공사를 다녔다는 윤석기 사장은 중동에 나가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사표를 냈지만, 엉뚱하게 중식당 재료상을 인수했다. 돌아보면 예전에 중식당 배달원들은 지방 출신들이 참 많았다. 농사짓다가 흉년이 들어 상경한 뒤에 눈물밥을 먹어가며 기술을 익혀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오래 흘렀지만, 그가 보기에 중식당 사장들은 세상에서 제일 ‘욕보는’ 사람들이다. 사장이 돼서도 배달을 직접 하는 이들이 많다. 배달은 시간 싸움이다. ‘죽을 둥 살 둥’ 오토바이를 몰아대니, 한 달에 1명쯤은 꼭 문병 가야 할 고객이 생긴다.

안 오른 춘장이 1만9천원→ 2만2천원

“요즘은 수금이 안 된다”고 윤 사장은 말했다. 10만원어치 물건을 주면 5만원만 받아가란 식이다. 올해 재료 가격이 너무 뛰어서 중간 도매상인 그도 마음이 불편하다. 밀가루는 20kg 한 포에 1만4천~1만5천원 하던 게 지금은 2만5천원이다. 한창 오를 땐 3만원을 넘었던 게 그나마 좀 내린 가격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밀농사가 흉작이 든 틈을 타, 미국 자본이 장난을 친 결과”라고 그는 생각한다. 2007년 초까지 t당 180달러를 유지했던 밀 선물가격은 2008년 3월 424달러까지 치솟았다가 10월 들어서는 225달러로 안정됐다. 그러나 정부의 잘못된 외환시장 개입과 금융위기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국제 시세의 하락 효과가 반감됐다.

곡물값 파동에 더해 중국 위안화의 강세도 식재료 가격 상승에 한몫했다. 춘장은 국내에서 제조하지만 죽순, 동구버섯(말린 표고버섯), 송화단(삭힌 오리알) 등 식재료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이다. 1만3천원대였던 식용유 14kg은 이제 3만6천원에 이른다. 그나마 상승폭이 덜한 게 춘장이다. 춘장 14kg은 2만2천원대로 3천원 남짓 오르는 데 그쳤다.

채소상과 정육점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마포구 북아현동에 위치한 ‘정진상회’의 최정기(46) 사장은 중식당 20여 군데와 거래를 한다. 새벽 3시 가락동 시장에서 물건을 떼오는데, 3개월 전과 지금은 사입 물량이 천지 차이다. 하루에 1t을 사들이던 양파는 600kg으로 줄었다. 하루에 23망(1망은 3개들이)이던 양배추 구입량은 15망으로 줄었다. 거래를 하던 중식당이 폐업하면 미수금을 떼이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에만 3곳이 문을 닫았다. 금정을 비롯한 중식당과 분식점 100여 곳과 거래하는 서부축산도매시장의 김동화(33) 사장도 지난 연말엔 하루 매출이 평소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돼지고기만 놓고 보면 하루 600kg 팔리던 게 480kg으로 줄었다.

마포구 아현동 ㅇ반점 정아무개(50) 사장은 “원래 우리집은 자장면에 콩을 듬뿍 얹었는데, 요즘은 원가를 맞추느라 양을 반으로 줄였다”며 “중식이 간단해 보여도 요리하는 사람들이 고집이 있는데, 비용을 맞추느라 재료를 안쓴다는 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당장 폐업하는 중식당 비율보다 일자리 감소폭은 훨씬 크다. 바닥 일부터 배워 창업한 중식당 주인들은 경기가 좋을 땐 조리장을 고용하지만, 나쁠 땐 자신들이 직접 요리와 배달에 나선다. 당연히 일당 10만원대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창동 ‘인간시장’에는 지금도 술집 주방이나 24시간 문을 여는 중식당의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넘친다. 새벽 5시부터 3시간 동안 줄을 서는데, 400~500명 정도인 구직자 중 상당수는 재중동포들이다. 중식당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토박이 조리장과 배달원들은 재료상을 통해 새 일터를 잡는 경우가 많다. 북창동에서 문병기직업소개소를 40년째 운영 중인 문진복(43)씨는 “평소엔 50명쯤 일자리를 얻어갔는데, 올겨울엔 20~30명 수준에 그친다”며 “일손이 밀리면 일당을 쓰겠지만, 지금은 있는 사람들도 자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ㅎ반점’ 진광옥 사장이 내놓은 점포는 어떻게 될까. 새로운 중식당 업자를 만난다면 그는 1천~2천만원의 권리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새 입주자가 다른 업종을 가졌다면 한 푼도 건질 수 없다. 주방기구들을 서울 중구 황학동의 중앙시장 쪽으로 팔아넘겨야 한다. 성동공고 앞 중앙시장 마장로에는 주방기구, 만물상, 천막가게 등 100여 개 점포가 밀집해 있다. 중고 냉동·냉장고와 식기 등 스테인리스 제품을 취급하는 세진주방의 유종철 사장은 “외환위기 때 황학동은 대목이었다”고 기억한다.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쏟아져나온 명예·조기 퇴직자들이 너나없이 음식 장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린 물건 고르는 품을 보면 초심자인지 아닌지 딱 알아. 식당도 초보자가 하면 망하기 마련이야. 말리지는 못하지만, 물건을 팔면서도 좀 안타까웠지.”

가게는 망하는데 창업은 없다

국내 자영업자들은 지난해 혹독한 시련기를 거쳤다. 연초부터 시작된 국내외 경제의 악재들, 곧 곡물 파동과 조류인플루엔자 등에 더해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까지 닥쳤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자영업자 수는 5년 내 최저 수준인 594만5천여 명이었는데, 올 상반기에는 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자영업 구조조정의 조짐은 황학동에서도 뚜렷이 목격된다. 유 사장은 “요즘은 창업한 지 3개월도 안 된 가게에서 중고품 철수를 해올 때가 많다”고 했다. 재작년엔 한달에 10군데였다면, 지난해엔 50군데꼴이다. 폐업이 쏟아지는 것은 11년 전과 닮은꼴이다. 그런데 창업을 하려고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 지난해 이맘때 하루 2~3개씩 나가던 분식점용 스테인리스 조리대도 요즘은 통 팔리지 않는다. “가게들은 망하는데 창업은 없는 거지. 다들 집에선 놀 수는 없을 텐데.” 외환위기 당시의 학습효과 때문일까. 장사를 열어야 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재고가 쌓여가는 황학동 상인들의 한숨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면) “밀가루는 2007년엔 20kg 한 포에 1만4천~1만5천원 하던 게 지금은 2만5천원이다. 1만3천원대였던 식용유 14kg은 이제 3만6천원에 이른다. 요즘은 하도 장사가 안 돼 밀가루나 식용류를 받아가는 양이 확 줄어들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평양상사 윤석기(66) 대표

(단무지·양파) “중식당 경기가 죽어버리니 우리 같은 도매상들은 수금이 안 된다. 당장 나부터 애들한테 자장면, 탕수육 외식을 시켜주기 빠듯하다. 중식당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양파의 경우, 3달 전까지만 해도 가락동에서 매일 1t씩 사들이다가 지금은 600kg 정도로 줄었다.” -서울 마포구 북아현동 정진상회 최정기(49) 사장

(자장) “원래 우리집은 자장면에 콩을 듬뿍 얹었는데, 요즘은 원가를 맞추느라 양을 반으로 줄였다. 중식이 간단해 보여도 요리하는 사람들이 고집이 있는데, 비용을 맞추느라 재료를 안쓴다는 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ㅇ반점 정아무개(50) 사장

(그릇) “요즘은 신품이든 중고품이든 주방기구와 그릇류를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포장마차용 스테인리스 조리대나 군고구마 깡통을 만드는 분들까지 일감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사먹는 사람도 없고 창업하는 사람도 없는 형국이다.” -서울 중구 황학동 ㅊ종합주방 허아무개(42) 차장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2008년03월06일 제700호http://www.hani.co.kr

미국 기업에서 증시 상장까지 자리 지킨 창업자는 25%도 안 돼…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부자가 되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업을 해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좋을까?

사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빌 게이츠는 이상적인 성공 모델이다. 스스로 창업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일으켰고, 자기의 아이디어를 시장을 통해 전파했다. 결국 자기가 만든 제품을 전세계 컴퓨터 사용자가 쓰도록 만들었다.


투자자와 개발자 입장 충돌

빌 게이츠는 동시에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까지도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주식 가치 덕에, 매년 집계되는 세계 최고의 부자 순위에서 늘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아프리카 등지의 저소득층의 건강과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자선 사업가로 변신해 있다.

빌 게이츠만큼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말이지 사업은 할 만한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기업을 거느리고 이끌면서, 자산도 늘려가면서, 좋은 일까지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창업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기업을 계속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 동시에 자기 지분을 유지해 부자의 지위와 전문경영인의 지위를 동시에 누리는 일은 드물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노엄 워서먼 교수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창업한 212개 미국 기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창업자는 이미 CEO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212명 가운데 절반은 창업 3년 이내에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창업 네 번째 해에는 40%만이 CEO직을 유지했다. 기업이 성장해 주식시장에 상장하기까지 그 자리를 지킨 창업자는 25%도 채 되지 않았다.

오너 경영자만이 재벌기업 회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는 놀라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의 상식만 동원하면 이는 당연한 연구 결과다. 기업의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곱씹으면 그림은 더 분명해진다.

기업이 처음 설립될 때는, 창업자의 역할이 거의 전부다. 사업 아이디어는 창업자의 머릿속에만 있다. 제품도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든다. 고객도 창업자 스스로 개척한다. 직원들은 창업자의 비전을 공유하며 똘똘 뭉쳐 일한다. 제품이 팔리기 시작하면, 창업자는 성공적인 경영과 개인적인 부를 동시에 얻는다. 그 성공은 오로지 창업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기업이 더욱 성장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사랑하는 장인으로서의 자아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소유주로서의 자아 사이에는 갈등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면 가차없이 접거나 사업 방향을 바꿔야 하지만, 제품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다소의 손실이 있더라도 자기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것이 맞다. 재무적으로만 보자면, 때로는 동지적으로 뭉쳤던 초기 멤버들과 등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할수록 기업 재정에는 손실이 되는, 딜레마 상황에 봉착한다.

많은 경우 창업자는 자신의 부를 희생하는 경영 의사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는 보여준다. 오너 경영자는 일을 사랑하고, 아이디어를 끝까지 고수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워서먼 교수의 연구 대상 창업 오너 경영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력을 갖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전문경영인보다 평균 20%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엔 진흙탕 싸움 벌어져

이런 행태는 결과적으로 다른 투자자의 이해관계와 반대되는 경영 의사 결정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많은 창업 오너 경영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자리에서 물러난 경영자는, 비록 기업 의사 결정의 참여 권한은 사라지지만, 자신의 주식 가치는 올라 자산이 늘어난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는 경영자는, 투자자 이해에 반하는 의사 결정을 내린 끝에 자신의 주식 가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러난 75% 이상의 창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기업의 미래를 생각해 흔쾌히 물러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창업자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오직 자신만이 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업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주주들에 의해 퇴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름다운 퇴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진흙탕 싸움 속에 회사 밖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자신이 낳아 키운 기업이 자신의 그릇보다 커지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낳아 키운 자식이 자신보다 더 커지기를 원한다면, 자식을 놓아줄 때를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퇴장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성장을 기약할 수 있다.

출처 - 주간동아|기사입력 2008-02-2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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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경제학] 정재윤 마케팅공화국 대표

경제적 관점에서의 ‘버린다는 것’, 이는 무소유(無所有)가 아니라 비소유(非所有)에 가깝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비소유는 불필요한 것을 굳이 가지려 하지 않는 ‘효율성’에 기반한다.

신기술이나 멀티 기능이 중시되던 예전에 비해 최근엔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 인기다. 얼리 어댑터의 상대어인 슬로 어댑터의 부상(浮上)은 이러한 단순함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소비자에겐 다양하지만 불필요한 성능을 지닌 비싼 제품보다 간편하고 값싼 제품이 경쟁력 있다.

한편 ‘버림’과 연관된 대표적인 마케팅 기법으로는 ‘디마케팅(Demarketing)’을 꼽을 수 있다. 기업의 매출, 외형, 규모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수익성도 그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특히 불경기가 심화될수록 기업은 규모가 아니라 효율성에, 고객의 양이 아니라 질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과감하게 고객을 버리거나 줄임으로써 오히려 수익성을 제고하는 디마케팅 발상은 ‘생존 기술’이기도 하다.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기업에 적용하면 회의시간의 20%에서 80%의 의사결정이 나오고, 20%의 고객이 80%의 매출에 기여하며, 20%의 상품이 전체 수익의 80%를 차지하는 경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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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서비스에 주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불경기가 심화될수록 기업들은 고객의 양이 아닌 질에 관심을 갖는다.
역으로 하위 40%의 고객은 수익 창출은커녕 오히려 10%의 손실을 유발한다는 통계도 있다(고가 가구를 구입했다가 집들이 후 흠집을 내 반품하거나, 명품 속옷을 입을 만큼 입은 뒤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며 반품한 사례). 이 같은 경우라면 과감하게 군살(악성 고객)을 제거해야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 아니, 최소한 손해라도 막을 수 있다.



디마케팅이 악성 고객을 퇴출시켜 수익성을 높이는 경우에만 활용되는 건 아니다. 외부의 압력과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객을 버리거나 줄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프랑스 맥도널드가 ‘어린이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오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코카콜라가 학교 내에서의 판매 억제를 위한 지침을 내놓은 것은 이들이 어린이 비만을 조장한다는 세간의 비난을 의식한 자구책이다. 지금 당장은 이 때문에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그냥 방치했다간 더 큰 손실을 자초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방어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우호적 이미지를 각인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비단 고객 차원에서뿐 아니라 직원 고용, 상품 개발, 아이디어 수렴에서도 이런 비소유의 발상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업무 영역 가운데 비핵심적인 역량을 과감하게 외부에 위탁함으로써 전문성 강화와 비용 절감을 꾀하는 아웃소싱(outsourcing), 인터넷상의 누리꾼(네티즌)들을 활용해 상품 테스트를 실시하거나 신상품 개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등도 기존 관행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효율성을 찾으려는 시도다.

[스타일을 완성하는 버림] 심정희 에스콰이어 패션에디터



컴퓨터 게임에 등급이 있는 것처럼 옷 입기에도 등급이 있다. 초급, 중급, 고급의 3단계다.

초급 단계에서는 ‘법칙 따르기’가 관건이다. 옷 입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법칙이 있는데, 남성 초급에는 ‘벨트 컬러와 구두 컬러를 맞출 것’ ‘넥타이의 뾰족한 끝 부분이 벨트 중앙 정도에 오게 맬 것’, 여성 초급에는 ‘키가 작다면 무늬가 너무 큰 옷을 피할 것’ ‘종아리가 굵다면 웨지힐을 피할 것’ 등의 체형별 규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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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고수들은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한다.
중급은 ‘파괴와 변칙’의 단계다. 조금 전까지 신처럼 떠받들어지던 규칙들이 이 단계에서 간단히 무시되고 파괴된다. 초급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은 그레이 슈트의 짝이 브라운 레이스업 슈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화이트 스니커즈를 선택하고, 우아한 정장에나 어울릴 법한 진주 목걸이를 수영복과 매치한다. 이 단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는 것. 그들은 규칙을 파괴해 남들과 다른 룩을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감각을 인정받고자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서면 고급 단계가 시작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화려하고 요란한 옷차림이나 변칙적인 기술엔 관심이 없다. 10개 아이템을 활용해 10만큼의 효과를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다. 일견 간단한 듯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멋이 나는 옷차림이야말로 그들이 추구하는 바다. 갖은 양념을 이용해 맛을 내려는 요리 초보와 달리 양념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각각의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살리려는 요리 명인처럼, 옷 입기의 고수들은 더하기로 100을 만드는 것이 아닌 빼기로 100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그래서 언뜻 보면 초급 단계의 사람보다 더 무감각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초급과 중급을 거쳐온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자 스타일 아이콘인 케이트 모스가 “옷을 잘 입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외출하기 전 거울을 보면서 무엇을 더할까가 아닌 무엇을 뺄까를 고민한다”고 대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가 너무 반듯하게 잘린 머리 모양이 싫어서 스스로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른다는 이야기, 예술적 스타일링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스타일리스트 그레이스 코딩턴이 늘 헐렁한 화이트셔츠에 블랙 팬츠 차림을 고집하는 것 등은 궁극의 세련미가 화려함이 아닌 뭔가 빈 듯한 ‘여백의 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20세기 패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 여겨지는 1980년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촌스러웠던 시기로 꼽힌다. 패드를 넣어 부풀린 어깨, 커다란 금장 단추, 보라색이나 노란색 같은 채도 높은 컬러의 과도한 사용으로 특징지어지는 그 시기는 풍요로운 기운으로 넘쳐났지만, 2000년대를 살아가는 패션계 사람들 사이에서 80년대는 ‘졸부의 시대’로 기억된다.

최근 패션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자연주의 패션 또한 근본적인 목적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빼기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데 패션계도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패션은 귀리나 헴프 같은 오거닉 소재를 이용해 옷을 만들고 천연 꽃잎이나 해충 등에서 얻은 염료로 원단을 염색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옷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디자인으로 완성되는데, 외양보다 정신적인 것, 새 것보다 오래된 것, 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와비-사비’ 정신(일본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수수함과 겸손함의 미덕을 최고로 친다. 극도로 기계화된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정신적 평온을 주는 개념으로 각광받으며 인테리어, 패션,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과 맞물리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결국 모든 일이 그렇듯, 스타일의 최고 경지도 욕심을 버리고 기본에 충실하는 순간 펼쳐지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버림] 유태우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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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지나친 소유욕은 건강에도 해가 된다.

현대인이 행복을 위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기준이 되면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적다고 투정부리거나 상실감을 느낄 여지도 없다.

‘버림’은 그러한 ‘무’의 경지에 이르는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데, 가지고 있는 무엇을 ‘버린다’는 의미보다 원래 기준이었던 ‘무’ 상태로 ‘돌아간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현대인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소유는 건강에도 해롭다.

한 예로, 건강의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가 스트레스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본래 체력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말로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소유할 것을 늘리기 위해 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다가 소유할 것이 늘면 그만큼 관리할 것도 많아진다. 다시 말해 일이 더 생기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과다하게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렇게 모은 것을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더한다.

그뿐인가. 우리가 먹는 음식도 건강을 위해 줄여야(버려야) 할 부분이다. 현대 한국인에게 과식은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배 나온 중년 남성이나 비만, 당뇨병, 심장병 환자의 급증이 그 증거다. 대표적 현대병인 암 역시 과잉이 원인이다. 이른바 항암 효과가 있다는 녹차, 상황버섯 등을 즐겨 먹으며 발암물질이 함유된 음식에 질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이러한 원인들은 많이 먹는 ‘해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요즘처럼 음식이 넘쳐나고 영양 과잉이 문제 되는 상황에서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덜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버리고,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위를 만족시키는 식사가 아니라, 맛을 느끼고 입을 만족시키는 식습관을 들이자.

내가 제안한 ‘반식(半食) 다이어트’는 이런 식습관을 통해 살을 빼는 방법이다. 기존 식사량의 반을 버리고, 반만 먹는 것이다. 이때 20분 이상 식사를 하면 적게 먹어도 배가 덜 고프다. 또 아침을 꼭 먹으면 하루 전체 섭취량을 줄일 수 있으므로 세 끼는 반드시 챙겨먹도록 하자. 물은 하루 8잔 이상 마시는 게 도움이 된다.

사실 ‘무’의 생활이나 반식 다이어트 모두 내 개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몇 년 전부터 3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모두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등 생활 속 많은 일을 단순화했다. 또 반식 다이어트를 통해 섭취하는 음식량을 반으로 줄였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었고, 몸무게는 15kg가량 빠졌다. 이처럼 버림은 건강을 위해 더없이 좋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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