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이코노미스트
강북편(상)
▶청계천 남쪽에 위치한 한화그룹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 본 전경. 조망으로 따져 이만한 자리를 시내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남산이 뒤를 받쳐줘 손색이 없다.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마치 한 마리 새가 북쪽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날아가는 모습이다. |
사람은 누구나 좋은 집에 살기를 원하고 좋은 건물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특히 한국처럼 부동산이 재산증식의 주요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건물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좋은 땅에, 좋은 집을 짓기를 바란다.
여기서 ‘좋은 땅, 좋은 집’이란 어떤 기준을 두고 말하는가. 건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대지가 있어야 한다. 대지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중요하다. 대지의 위치에 따라 기를 받는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상(家相)이다.
문자 그대로 가상은 사람의 관상을 보듯이 건물의 모양새를 살핀다. 외양에 특이한 점이 있는가, 또는 건물 전체가 균형을 취하고 있는가 등을 살핀다. 그 다음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면 건물의 출입문과 사무실의 방향 등을 따지는 이른바 팔택가상법(八宅家相法)을 적용해 길흉을 판단한다.
이 지면에서는 이런 기준을 내부 준거로 해 해당 건물의 종합적인 인상 비평을 가하고자 한다.
대지가 지닌 특성에 따라 서울의 건축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강북과 강남, 그리고 여의도 일대가 그것이다. 강북은 다시 청계천과 남산을 축으로 북촌과 남촌, 용산 지구로 나눌 수 있다.
강남과 강북은 당연히 한강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강북과 강남을 비교하면 강북은 ‘서울을 옮겨야 한다’는 현정부의 정책이 일부 실현되고 있듯이 한 나라의 수도로서 지닌 기능이 쇠퇴기에 들어간 곳이다.
이에 비해 강남은 서울의 주변으로 과거에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한반도 전체의 강한 기운이 남으로 이동하면서 상업적 기능과 국제성이 강하게 발휘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 기업이 지기의 부름(?)을 받고 강남으로 기업의 본부 건물을 옮기고 있다.
여의도는 한강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강을 통해 흐르는 서울(강남·강북)의 지기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맡은 곳이다. 섬이란 말은 풍수용어로 수중용(水中龍)이다. 물은 재물을 뜻한다. 재물 속에 노는 땅이 여의도다. 이런 사전 이해를 가지고 지역별 건물들을 살펴보자.
현대 계동 사옥 터는 인재 키우는 곳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에 있는 마을이 북촌이다. 청와대를 비롯해 각종 정부기관과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의 본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북촌의 지리적 특성은 대지가 청계천과 남산을 향해 남쪽으로 열려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상업보다는 공공기관과 사대부, 곧 관료들의 집단거주지와 이들을 양성하던 학교 등이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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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계동은 사업보다는 휘문학교 터가 말해 주듯이 인재를 키우는 곳이다.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후보까지 출마한 것은 계동과 인접한 창덕궁의 지기를 혼동한 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창덕궁이 지닌 조선왕조 건국의 지기와는 시냇물 하나 건너에 있는 곳이 바로 계동이다. 계동 사옥은 전체 대지가 남향을 취하고 있는 데 반해 기가 들고 나는 출입구의 방향이 대지의 기와 달라 문제가 되고 있다.
본관과 별관을 각각 별개의 건물로 보면, 대지의 남쪽에 위치한 본관의 주 출입문은 남쪽으로 나야 하고 별관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 출입문 역시 동쪽으로 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재 전체 대지에서 볼 때 주 출입문은 남서쪽에 있다. 이는 음양의 조화 면에서나 기의 출입 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혼란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대 빌딩에서 또 하나 문제는 본관이나 별관 모두, 쉽게 말해 나침반의 남북과 동서를 가리키는 선상에 건물의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왕궁 건물(경복궁 등)의 경우 남향을 취하면서도 그 방위가 정남에서 15도 정도 좌우로 피하고 있는 점은 이 경우에 좋은 교훈이 된다.
정남·북과 정동·서의 방위선은 기의 유동이 가장 심한 곳이다. 기의 요동을 정주영 회장의 생전에는 누를 수 있었지만 2세에 오면서 그만한 힘을 지닌 인물이 있는가는 매우 회의적이다.
북촌에서 역시 주목을 끄는 건물이 삼양사 본사 건물이다. 종로구 연지동 삼양사 건물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다. 빌딩을 갖고 싶은 사업가는 꼭 한번 이 건물을 구경하고 자신의 건물을 지으라고 권하고 싶다.
대지는 서울의 중심 기가 흐르는 사대문 안에 있다. 가상은 매우 재미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본채에서 남쪽으로 3층의 건물을 달아내 건물 전체 모습이 한자 정자(丁字)를 구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천간(天干) 정(丁)은 풍수에서 자손의 창성을 상징한다.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사원들의 안녕과 발전을 뜻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 설계라고 해석된다.
건물의 높이에서 이 사옥은 교과서의 전형이다. 11층은 사대문 안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적의 높이다. 광화문에 있는 문화관광부 건물과 미 대사관 건물이 8층임을 고려하면 이보다 동쪽에 있는 연지동은 11층까지 올릴 수 있다.
층수에서 11은 그 자체로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이 이뤄지고 있다. 11(10+1)에서 10은 완성을 의미하고 1은 출발을 상징한다. 여기에다 3층에서 달아낸 앞부분은 삼재구족(三才具足: 천·지·인 삼재를 갖춤), 발전의 의미를 역시 담고 있다.
본관과 대문의 방위를 살펴 보면, 본관이 남향이므로 본채는 북쪽에 둥지를 튼 것이고 문은 동쪽으로 나 있다. 이런 구조를 두고 천을택(天乙宅)이라고 부른다. 사람과 재물을 우선하는 구조다.
SK·영풍빌딩 등 청계천복원 수혜주
강북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는 청계천은 이제 과거의 틀을 벗고 우리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그라지던 강북의 상권을 부활시킨 것은 순전히 청계천의 공로라고 보아야 한다. 풍수에서도 좋은 기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물의 청탁을 분별한다. 썩은 물보다 맑은 물이 뛰어나게 좋다. 조선왕조가 그토록 청계천을 맑게 하기 위해 준설에 정성을 들인 것도 환경 차원보다는 풍수적 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청계천 양쪽에 자리한 건물로 SK빌딩과 예금보험공사, 한화빌딩, 두산타워, 영풍빌딩 등을 들 수 있다.
SK빌딩은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해 엄밀하게 보면 북촌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종로 쪽 대로와 마주하고 있어 마치 북향 건물처럼 보이지만 청계천 쪽에 주 출입문이 있어 남향 건물이다.
터는 북악산의 기운이 청계천과 만나고 있어 혹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먹는 명당’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건물의 네 귀퉁이에 거북이 발과 건물 중심에 머리, 뒤쪽에 꼬리 형상의 석물을 각각 배치해 마치 건물 전체를 거북이가 받치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SK빌딩과 함께 비슷한 위치에서 주목받는 것이 영풍빌딩이다. 영풍문고로 더 잘 알려진 이 빌딩 역시 청계천의 부활과 함께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 서울의 종로 중심 상가에 자리한 것을 알리듯이 건물의 외벽은 화려한 자주색을 취하고 있어 영풍그룹의 모기업 업종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건물 앞에 모여들고 있어 맞은편 구 조흥은행 본점 건물보다는 터가 뛰어난 곳이다. 여기에다 물가에 위치해 혹 있을지 모르는 지기의 누설을 막기 위해 지하에 서점을 두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청계천 남쪽 중구 다동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 빌딩은 동아그룹의 사옥이었다. 나는 지금도 서울 강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빌딩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 빌딩을 추천한다. 동양과 서양의 건축미를 한 몸에 지닌 이 빌딩은 외관상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서울의 명물이다.
1993년 4월 준공된 이 건물은 마치 빌딩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이제 막 단장을 한 깨끗하고 날렵한 맵시를 항상 뽐내고 있다.
다동 일대의 물의 흐름과 지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북의 모양을 이룬다. 그래서 예부터 전쟁 중에도 재해를 입거나 파괴, 화재 등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 온다.
예금보험공사 빌딩은 바로 이런 터에 북향으로 앉아 있다. 건물의 향이 북향이니 북악산 줄기에서 나오는 크고 작은 물들이 모두 조래수(朝來水: 앞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가 되어 재물과의 인연을 더욱 깊게 해 준다.
이 빌딩은 건축 당시 존재했던 복개된 청계천의 도로에 건물을 내붙임으로써 마당의 앞뒤가 바뀌었다. 뒷마당이 앞마당 구실을 맡게 됐다. 이런 경우는 거래의 투명성이 줄어들고 음성적인 담합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동아그룹에서 예금보험공사로 소유가 넘어간 것도 이런 지기와 인연이 깊다.
가상(家相)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매우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이 건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첨탑의 모양을 하고 있는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런 모양을 팔괘의 태괘(兌卦)라 한다. 태(兌)는 여성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이 건물은 ‘물가(청계천)에 앉아 있는 미인’에 비유된다.
한화그룹의 본부 건물이 청계천 남쪽 장교동 1번지에 있다. 지하 4층, 지상 28층의 한화빌딩은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장교(長橋)빌딩(쁘렝땅백화점), 중소기업은행 본점과 어울려 하나의 벨트를 형성한다. 이 빌딩 28층에 올라가면 서울 사대문 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으로 따져 이만한 자리를 시내에서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첫눈에 느낄 수 있다.
이 터에서 보면 주산인 남산은 뒤를 받쳐 주는 산으로서 손색이 없다. 또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마치 한 마리 새가 북쪽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날아가는 모습이다. 터는 이 새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 안산(案山)은 북악산과 매봉(성균관대 뒷산) 사이의 능선이 맡고 있다. 안산이 이 터를 향해 정을 주고 있어 매우 좋다.
한화빌딩은 북향 건물이다. 이는 북향한 대지의 성격과 같다. 건물의 전면과 폭의 비율은 3대2로 가장 이상적인 비율이다. 그러나 서북쪽과 동남쪽에 모서리 5개씩을 접어 넣은 것은 오행의 기가 서로 충돌함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 이는 회사 임원 간에 분란이 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아무튼 외형으로 나타난 한화빌딩은 정문 왼편에 서 있는 ‘약용비붕(躍龍飛鵬)’이란 전각 비문의 의지를 상당 부분 수용한 셈이라 하겠다.
동대문 운동장 앞에 있는 두산그룹의 본부 두산타워는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에 위치해 남촌에 가깝지만 편의상 청계천으로 분류했다. 알려진 대로 동대문 운동장이나 동대문인 흥인지문의 옹성은 서울 사대문 안의 지기를 지키기 위해 마련한 비보책의 일환이다.
그런 자리에 유통업의 대가가 둥지를 튼 것은 서울의 지기를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다. 역동적인 건물의 모습과 자연친화적인 내부 공간 구성은 두산그룹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 동대문의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은 물론 동대문 상가를 리드하는 파일럿 역할도 건물의 외형에서 강하게 읽을 수 있다.
‘이상하다’ 느낌들면 실패한 건물
‘남산골 샌님’이란 말이 있다. 이들은 곧 죽어도 큰소리치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비굴한 삶은 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산 밑에 사는 선비들을 두고 이런 말이 생긴 까닭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를 풍수적으로 풀면 이렇다. 남산은 경복궁 터나 북촌마을에서 보면 안산이다. 북촌이 주인이라면 남산은 손님이다. 같은 논리로 남산 쪽에서 보면 북쪽 마을이 안산이 되어 주객이 바뀐다. 비록 임금이 살고 높은 벼슬아치들이 북촌에 있을망정 땅으로 보면 ‘나의 손님’에 해당하는 셈이다. 바로 여기서 올곧은 기개가 나온다. 그런 연유로 예부터 남산 밑에서는 유능한 인재와 성깔 있는 상인이 많이 나왔다.
SK그룹은 최근 을지로 2가 남촌마을에 그룹의 첫 글자를 상징하는 S형 건물을 지어 화제를 낳았다. 먼저 이 건물의 대지는 남촌 일대가 그러하듯 1급 명당에 속한다. 이런 터와는 달리 건물은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건물 자체가 지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앉았고 정면에서 보면 앞으로 고개를 숙여 길 건너편 건물을 품에 안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기 드문 외형이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저 건물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상하다”고 답한다. 아무리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면 그 건물은 성공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건물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건물과 하나의 숲, 하나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허리를 굽히고 있는 이 건물은 자신보다는 앞에 있는 건물에 도움을 준다. 그런가 하면 뒤에서 이 건물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남의 등을 보고 있어 경계심을 갖게 한다.
다른 한편 이 빌딩은 왼쪽에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건물(중소기업은행 본점)을 두고 있다. 옆 건물의 칼날처럼 생긴 예각이 살풍을 일으켜 이 빌딩의 중심에 닿게 된다. 이를 어찌 막을 것인가.
삼성그룹 본관 건물은 서울시청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태평로 2가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 4층, 지상 26층인 삼성본관 건물은 74년 8월 착공, 76년 4월 준공됐다. 대지는 기업체나 상가의 위치로는 합법한 곳이고 모양은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어 매우 좋다.
건물은 원래 지상 1, 2층이 석탑의 기단처럼 되어 있었고 그 위에 24층이 올라가 있었다. 기단 부분이 오행의 토(土)라면 윗부분은 목(木)에 해당한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거목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즈음 본관 건물 기단 정면(태평로 쪽 앞면)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했다. 새로 만들어진 정면 유리커튼은 첨단 디지털시대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기존 건물의 기단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생각할 숙제를 안겨 주고 있다.
한진그룹 건물은 한진빌딩 본관(명동 쪽 대로변)과 신관(소공동 쪽)으로 구성돼 있다. 두 건물이 각각 별개의 위치에 앉아 있지만 기능적으로 연결돼 있어 안에 들어가면 하나의 건물로 느끼게 된다. 이는 현대그룹의 계동 사옥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터를 살펴보면 남쪽의 남산이 높은 데 반해 북쪽 을지로 쪽이 낮아 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관 건물이 위치한 대지의 뒤 북쪽, 조선호텔 쪽이 높고 또 그 능선이 동쪽으로 안고 돌아가고 있어 흠을 반감시키고 있다. 기업의 오피스 터로는 1급지다. 대지의 모양도 요철이 없고 기울어진 곳이 없어 합법하다.
건물에 대한 평가도 좋은 대지에 좋은 건물이라고 미리 말할 수 있다. 우선 외양 부분을 보아도 전체적으로 2대 1의 비율을 보여 준다. 다소 약한 듯한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건물의 방정함이 이를 커버하고 있다. 도로와의 관계도 남대문로와 소공로가 주위를 감싸 전체적으로 별문제가 없지만 구 상업은행 본점 사이의 작은 길이 균형을 깨고 있다.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소 떨어진다.
건물 앞뒤 혼동되면 애사심 흐릿
용산 일대의 미군기지 반환을 앞두고 용산의 풍수적(?) 성격이 최근 들어 재조명받았다. 왜 서울의 다른 지역이 아닌 용산 일대에 외국군이 주둔하게 되었을까. 이는 용산이 서울의 안산인 남산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안산인 남산은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 보면 손님에 해당한다. 당연히 손님은 문 밖에 모시는(?) 것이 예의다. 더구나 외국 군대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용산 일대 땅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나 서울의 외연이 넓어지고 기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대문 안 중심론은 이제 한물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대문 밖, 남산 아래 첫째 꼽히는 빌딩이 대우센터다. 76년 건립된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23층, 총건평 4만여 평으로 서울 시내에서는 거대 건물에 속한다.
이 빌딩의 터는 물의 흐름이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들로 인해 초기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만, 세월이 지나면 터로 내려오는 지맥의 살성(殺性)과 백호 쪽 서울역 고가도로 등이 관재·구설· 불화 등 험한 일을 불러오게 된다.
가상(家相)은 전면과 폭의 비율이 3대1로 약간 빈상(貧相)에 가깝지만 3층까지 본체를 받쳐 주는 기단을 두고 있어 이를 충분히 커버하는 셈이다.
또 하나 이 빌딩에서 재미있는(?) 모습은 뒷산과 연결한 6층까지의 보조대다. 이는 뒷산 바위 절벽이 지닌 험한 기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용의 기운이 들어오는 남산 쪽으로 주차장과 자동차용 회랑을 만든 것 역시 살기를 제압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보면 이 회랑이 자칫 건물의 목을 조르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건물 외양에서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앞면의 유리창이 50개의 공간으로 분할돼 있는 점이다. 특별한 의미를 처음부터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수는 주역에서 태연수(太衍數)라고 하는 ‘완성, 완료’의 의미를 띤 숫자다. 따라서 모험과 새로운 사업을 항상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 ‘일이 끝났다’는 의미의 이 숫자보다는 한 칸 적은 49를 택하는 것이 좋았다.
결론적으로 대우센터 빌딩은 ‘고객 또는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으로 현상유지가 가능한 건물이다.
대우센터빌딩에서 국제센터 빌딩으로 가다 보면 전쟁박물관 못 미쳐 발사를 기다리는 우주선처럼 생긴 빌딩이 있다. 해태그룹이 짓고 그룹본부 빌딩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대지는 사대문 밖에서는 보기 드문 1급지다. 이곳에서 남산을 보면 그 모양이 누에 머리인 잠두가 아니라 궁궐의 용마루처럼 보인다. 재물과 인연이 있음을 보여 준다. 터 안에 흐르는 물을 보면 오른쪽 물들은 남영동 우체국 앞을 지나 서대문에서 내려오는 만초천과 만나고 이 물은 다시 왼쪽 전쟁기념관에서 나오는 물과 삼각지 근처에서 만나 한강으로 들어간다. 기의 누설이 거의 없다.
건물의 외양은 앞서 말한 것처럼 동쪽과 서쪽 2개의 발사대에서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모습이다. 우주선의 중심축은 원형이고 그 양쪽으로 삼각형의 날개를 달고 있다. 주 출입문이 있는 남쪽에서 보면 건물은 크고 작은 3개의 상자를 차례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동양철학에서 직육면체는 방(方)으로 대지를 상징하고 원은 하늘, 삼각형은 사람이다. 외형의 원·방·각은 곧 천·지·인 삼재를 구현한 것이다. 창조성이 뛰어난 건물이다. 이처럼 좋은 건물과 터를 너무 늦게 마련한 것이 해태그룹으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용산 일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건물이 국제빌딩이다. 이 일대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맡고 있다. 남산에서 한강에 이르는 용산 일대가 낮은 구릉으로 평야를 이루고 있는 점도 이 빌딩의 존재를 부각시키지만, 다른 한편 그 독특한 모양새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빌딩은 5공 초기 권력에 의해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주인을 바꿔 더욱 유명세를 얻기도 했었다.
이 빌딩은 국제그룹이 82년 1월 새 사옥으로 착공, 84년 10월 준공과 함께 그룹의 관계사들이 입주했다. 85년 3월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종합무역상사인 국제상사와 함께 빌딩은 한일그룹으로 넘어갔다가 최근 다시 국제그룹이 운영권을 회복해 관리하고 있다.
국제센터는 건축공법상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대형 건물임에도 태양열 집열판과 특수보온 유리를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외형을 흔한 박스형에서 탈피하기 위해 건물의 스카이라인을 각 면에 따라 달리한 것이다. 건물의 독특한 모양은 이 의도적인 스카이라인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빌딩의 터는 물건을 모으는 집산지의 기능은 있지만 재물을 오래 모아두는 곳은 아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센터 빌딩은 대지의 흐름과는 달리 건물의 정면을 바꿔놓았다. 대지의 모양은 삼각형을 낀 마름모형이다. 삼각형 부분에 반원형 부속건물을 지어 터가 지닌 살기를 제거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안정감이 부족하다.
가상(家相)은 다면형(多面形)이다. 건물의 정면에서 보면 하체가 넓고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 비율이 면마다 각각 달라 매우 둔중하면서 뒤뚱거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쪽과 서쪽은 건물 중앙이 삼각형 내각을 이뤄 기하학적 안정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강한 바람을 맞이하게 된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늑골 부분을 압박하는 형세다.
또 정면의 동쪽 부분은 일자형을 이루지만 서쪽이 앞으로 튀어나와 전체적으로 한쪽이 짧은 V자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건물의 뒤쪽은 정면과는 달리 전체가 일자형을 이뤄 앞과는 다른 모습이다. 자칫 앞과 뒤를 혼동, 어느 쪽이 앞인가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건물에 상주하게 되면 애사심이 떨어진다. 또 누가 충복이고 누가 아첨자인가를 가리기도 어렵다. 내부 단속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위계질서도 당연히 문제가 된다. 나아가 보다 심하게 지적하자면 누가 건물의 주인인가도 가리기 어려워진다.
국제센터 빌딩은 미묘한 스카이라인으로 인해 그 모양이 마치 실타래처럼 보인다. 이 빌딩에서 남산을 보면 누에로 보인다. 그 결과 이 빌딩은 한 마리 누에가 실을 뽑기 위해 만들어 놓은 꼬치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한때 한일합섬과 인연을 맺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 <다음 호에 여의도·강남편 계속>
여의도는 돈, 정보 모이는 형상
▶건물의 예각은 ‘살기’ 상징해 피해야
▶사무실 북쪽, 대문 남쪽이면 부와 명예 얻어
▶지기와 역으로 앉은 건물은 하극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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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타지역과 구분된다. 관악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지맥이 남태령을 지나 우면산을 일으키고 이 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이수, 남쪽에 양재천, 동쪽에 탄천, 그리고 북쪽에 한강이 둘러싸고 있다. 우면산을 중심으로 보면 서쪽 관악산과 맥이 이어지는 남태령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이 물속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거듭 말하지만 풍수에서 물은 경제와 인물을 주관하는 기운을 지니고 있다. 강남이 새로 ‘한국 부’의 중심에 떠오른 것은 이런 지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한강처럼 큰 강이 오른쪽에서 들어와 왼쪽으로 나가는 지역은 인물보다는 재물을 얻는 데 매우 유리하다. 여기서 한강이 강남에서 보아 오른쪽에서 들어온다는 것은 강남이 한강을 향해 북쪽으로 열린 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강북은 한강이 왼쪽에서 들어와 오른쪽으로 흘러간다. 조선조가 서울을 강북에 정한 것은 돈보다는 인물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런 특성을 염두에 두고 강남의 주요 빌딩들을 살펴보자.
강남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지역이 대치동과 삼성동 일대다. 대치동(大峙洞)은 우리말 ‘한티(큰 재) 밑에 있는 동네’를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한티는 삼성로의 쪽박산(신해청 아파트 단지 자리)을 두고 한 말로 해석된다. 지형이 변하고 주위의 사정이 바뀌어 옛 모습을 찾기 힘들지만 이곳은 지금도 큰 언덕이다.
이 언덕의 근원은 멀리 우면산에서 내려온 맥이 도곡동의 매봉산을 지나 이곳까지 연결됐음을 보여 준다. 다른 한편 이 고개에서 보면 서쪽으로 역시 높은 고개(테헤란로 중간)가 있고 그 고개의 한쪽 능선은 삼릉공원과 봉은사 뒤 수도산(修道山)으로 연결돼 있다.
택지로 개발되기 전, 이 일대는 쪽박산과 수도산, 삼릉공원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홍수가 나면 탄천이 삼릉공원 앞까지 밀려와 선릉 옆의 정릉(靖陵) 상석까지 물에 차기도 했다. 그런 지역이 지금은 상전벽해란 말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이 일대 전체 지형은 마치 금가락지와 같다. 이를 두고 금환낙지(金環落地) 형국이라고 한다.
음택이나 양택의 경우 그 주변에 마치 하늘로 오르는 계단 모양의 산이 있으면 1급지, 대명당으로 본다. 이는 천제(天梯)라고 불리는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이기 때문이다. 천제는 황제만이 이용하는 것인데, 이런 산이 주변에서 보인다는 것은 바로 그런 지위의 기운이 명당에 강하게 작용함을 의미한다.
드물게도 국내 건축물 중에서 천제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 있다. 삼성동에 있는 무역센터 빌딩이다. 최근 들어 강남 일대에 초고층 주거공간들이 들어서면서 무역센터 빌딩이 다소 가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강남의 랜드 마크’로서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국내 경기가 바닥까지 내려가고 있다고 걱정들 하면서도 아직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무역 분야가 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품의 내용이 무엇이든 혹은 어느 대기업이 이를 주도하든 한국 수출의 저력은 바로 무역센터가 지닌 외형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역센터는 그 외모가 앞서 말한 천제(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의 모습 그대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가는 진취적인 기상은 다른 건물의 추종을 불허한다. 외국인이 설계했지만 동양적 수리관념에도 정통한 것 같다. 상수역학에서 5는 완전수다. 센터가 5개 부분으로 나뉜 것은 바로 이런 완전성과 성취감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5는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기약한다. 이를 확인하듯 빌딩의 앞면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동북방을 향하고 있다. 사업은 이런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건물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역센터 건너편에 한국전력공사 본사가 있다. 이 빌딩은 ‘에너지 한국’의 중추 기업답게 나무랄 데 없는 외형을 갖추고 있다. 전형적인 박스형 건물임에도 네 모서리의 각을 죽여 8면체,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주변 건물에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고 살기(殺氣) 또한 배제한 것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잘 구현한 셈이다. 삼성동 일대의 비싼 대지에 비하면 건물 주위의 조경 공간이 매우 넓고 또 친환경적으로 조성됐다.
그런가 하면 이웃한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I-PARK)타워 빌딩은 건축학적으로나 풍수적으로도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삼성동 일대의 대지가 기업의 터로서는 상품에 속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아이파크타워나 한국전력 본사의 터는 논현로 일대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대로 받고 있어 최상급에 속한다. 대지가 좋으면 그 위에 건립되는 건물 역시 우수한 작품(?)이 된다.
아이파크타워의 준공에 맞춰 현대산업개발은 이 빌딩이 ‘자연을 상징하는 원과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직선을 모티프로 해 친환경적, 인간 중심의 건축 문화를 추구한 작품’이라고 널리 홍보했다.
자연을 상징하는 원은 타워 정면에 그린 대형 원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직선은 타워의 옥상 왼쪽에서부터 사선으로 건물 내부를 통과해 밖으로 나오게 했다. 문제는 이 직선 부분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칼을 건물의 한편에 꼽아 놓은 모습이다.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건물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하다 보니 기가 들고나는 대문(주출입문)을 여간해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또 건물에서 맞은편 아셈타워를 바라보면 움푹 꺼진 지하아케이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동굴이 건물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는 평소 그가 꿈꾸던 작품을 ‘한국에서의 실험’을 통해 성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풍수사도 이런 건물을 ‘인간중심의 건물’로, ‘자연친화적 건물’로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다.
방향을 돌려 테헤란로의 몇 빌딩을 살펴보자.
포항제철이 이곳 테헤란로와 삼성로가 만나는 로터리, 대치동 892번지에 지상 30층의 사옥을 건립했다. 1995년 8월 완공된 포스코센터는 포항제철이 직접 생산한 특수 강철을 골조로 사용한 인텔리전트 빌딩이다. 특히 설계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고 95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포스코센터에서 보면 테헤란로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지 앞을 감싸고 흘러가 탄천을 만나고 탄천은 북으로 나아가 한강과 만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삼릉공원과 봉은사 쪽에서 흘러오는 조래수(朝來水·혈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물)와 뒤쪽 쪽박산 물이 모두 대지 앞에서 만나 역시 탄천으로 들어간다. 기업의 대지로서는 상품(上品)에 속한다.
포스코센터의 경우 동관과 서관을 각각 별개의 건물로 볼 것인가가 문제다. 별개로 볼 경우 각각의 건물 비율은 다소 빈약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지상 2층에서 두 건물을 연결하고 있어 대지 내 하나의 건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동관을 테헤란로 쪽으로 끌어내고 서관을 뒤로 물려 두 건물의 선후관계 혹은 주종관계(主從關係)를 분명히 한 점은 설계자의 의식 속에 ‘풍수’라는 문화 유전인자가 각인돼 있었다고 하겠다. 동관 30층 높이와 서관 20층 높이가 다소 균형을 깨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이는 같은 대지 안에 여러 건물을 짓는 경우에는 매우 적절한 조치다.
포스코센터는 동·서 두 개의 빌딩을 내부에서 연결시켰을 뿐 아니라 외부로도 상호 연결, 하나의 빌딩으로 만들었다. 빌딩은 대지의 흐름대로 북향을 정면으로 취했다. 출입문은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다. 북쪽 문과 동관의 동쪽에 있는 문은 주로 방문객이 이용한다. 주출입문은 서관의 남쪽에 있다. 종합해 보면 사무실은 북쪽, 대문은 남쪽이다. 이런 건물을 두고 부와 명예를 안겨 주는 연년택(延年宅)이라 부른다.
녹지와 조경은 상당한 정성을 기울였다. 다만 조형물(대개 조각 등 예술품을 말함)의 경우 건물의 형태나 규모에 비해 썩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조형물은 그 자체의 예술성보다는 건물의 기를 보호하거나 허한 곳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스코센터와 이웃한 동부금융센터는 근래에 준공한 빌딩이다. 지하 7층,지상 35층의 이 빌딩 역시 테헤란로의 빌딩 무리에서는 독보적 위치를 확보한 경우에 속한다. 고층 빌딩의 단조로운 ‘커튼 벽’의 형태를 벗어나기 위해 직선과 사선, 수평선 등을 빌딩의 내외에 구현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위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형에 몇 가지 문제가 없지 않다. 사선과 직선의 교차는 건물 외벽에 역삼각형을 만들어 놓았고 하체의 안정감을 취하기 위해 마련된 완만한 곡선은 자칫 ‘거만한 인상’을 풍기기 쉽다. 대인관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지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앉은 빌딩 방향(정면)은 금융업과는 조화를 이루지만 내부로부터의 하극상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건물 규모에 비해 대지가 협소한 것도 흠으로 꼽을 수 있다.
테헤란로 서쪽 역삼역에 이집트 피라미드 옆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처럼 생긴 오피스텔 빌딩이 스타타워다. 스타타워는 9월 1일자로 GFC(강남파이낸스센터)타워로 이름을 바꿨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글에서는 스타타워로 부르고자 한다.
이 빌딩은 그 특이한 모습과 45층의 높이로 인해 강북의 웬만한 산에서는 한눈에 들어오는 ‘강남의 랜드마크’다. 테헤란로가 정보기술(IT) 산업으로 각광받을 때 이 빌딩에 입주하는 것만으로도 대박을 기약하는 징표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바 ‘스타타워 풍수 괴담’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초기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떠도는 풍수설에 따르면 이 빌딩의 터는 화기(火氣)가 강해 여간한 힘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그 기운을 누르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빌딩을 건설한 현대산업개발은 빌딩의 모양을 피라미드형으로 건설해 지기를 누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빌딩에 입주한 유명 벤처기업들이 홍역을 치르고 건물의 주인도 자주 바뀌고 있음은 역시 미스터리라고 하겠다.
건물 자체의 외형은 나무랄 데가 없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는 달리 빌딩 하단 네 귀퉁이에 ‘물의 신’인 거북이의 발을 석조로 형상화해 건물 전체를 거북이가 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 화기를 철저하게 막고 있다. 높이 45층은 9(4+5)가 의미하는 최고 또는 성공을 담보하는 상징과 더불어 더 큰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변화의 수이기도 하다. 벤처기업들이 다투어 입주한 것도 이런 수의 의미와 관련 있다.
건물 외형과는 달리 이 빌딩의 문제는 터에 있다. 역삼역 주변은 테헤란로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해당한다. 이 언덕의 서편 기슭, 경사면 한 블록을 터로 잡고 있다. 당연히 동쪽은 높고 다른 삼면은 낮다. 이런 터의 경우에는 동쪽을 뒤로 두고 서쪽으로 향을 정하는 것이 터의 기질을 살리는 것이다. 이 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물의 외형에 신경을 썼지만 지기를 누르기에는 부족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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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빌딩이 자리한 서초구 양재동은 엄밀히 말해 강남과는 터의 성격이 다르다. 강남이 양재천 북쪽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이곳은 양재천 남쪽이다. 당연히 지맥도 우면산 줄기가 아니라 청계산 줄기다. 청계산은 수원 광교산에서 관악산으로 올라가는 지맥 중에 한 가지가 관악산을 보필하기 위해 만든 산이다. 청계산 줄기는 양재천으로 인해 서울을 눈앞에 두고 건너가지 못하는 곳이다.
강북 계동에서 이곳으로 본사를 옮긴 뒤 현대자동차는 세계화의 목표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일설에는 정몽구 회장이 양재동 사옥이 명당이어서 사업이 욱일승천한다며 본사 옆에 새로 연구센터 동을 건립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묘하게도 연구동 건물을 세우면서 현대는 수난(?)을 겪었다.
양재동 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청계산 줄기가 동북쪽으로 내려와 양재천과 만나는 곳이다. 터는 동북쪽으로 열려 있다. 건물의 주출입구와 향을 정한다면 북쪽이나 동북방이 순리다. 양재천이 이 일대에서 활처럼 감고 돌아가 대지로서는 일품이다.
그런데 본관이나 연구동은 향을 지기가 내려오는 반대,곧 남향을 취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청계산과 달래내 고개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대로 받게 돼 부를 축적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다만 경계할 것은 지기와 역으로 앉은 건물은 하극상의 소지가 매우 높다. 안으로부터 회사를 배신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와 아울러 새로 지은 연구동을 본관과 비슷한 쌍둥이 건물로 지었지만 본관보다는 규모가 훨씬 크다. 이는 동생이 형을 능멸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장차 이런 단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현대자동차로서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여의도의 지세는 크게 보아 서울의 수구처(水口處·물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 강남·북의 기를 보호하는 위병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사실은 별 쓸모없는 땅이라는 뜻에서 ‘너나 가져라’고 해 ‘여의(汝矣)’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땅은 각각 제 쓰임새를 만나게 마련이다. 여의도도 한국의 근대화와 더불어 경제성장의 한 상징으로 떠올랐다. 증권거래소를 비롯해 한국노총·전경련 등 경제 중추기관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는가 하면 뉴스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국들이 모두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풍수에서 물은 돈이나 정보로 해석된다. 물 가운데 있는 여의도는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고 서울의 위병 초소이므로 뉴스센터들이 자리 잡는 것 또한 당연한 귀결이다. 다시 여의도 전체 지형을 한강이란 물과 연결해 보면 마치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 혹은 거북이와 같다. 63빌딩 쪽이 앞이고 국회의사당 쪽이 뒤다.
여의도에는 3개의 ‘랜드마크’가 있다. 63빌딩, 국회의사당, 그리고 LG그룹의 트윈타워가 그것이다. 이 중 가장 늦게 세워진 트윈타워는 여의도 동서를 관통하는 중심에 위치, 세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건물 윗부분이 삼각형으로 잘려나가 그 형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비춰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어찌 보면 쌍둥이 형제가 서로 등을 돌리고 있어 건물이 주는 이미지의 통합성을 저해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과연 그런가?
먼저 대지 조건부터 검토해 보자. 이곳은 여의도의 주산인 국회 쪽에서 청룡 쪽으로 뻗어온 맥이 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고개를 낮추면서 서향으로 판을 형성한 곳이다. 다소 한강 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지만 대지 자체는 건물을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했다. 동쪽이 높고 서쪽으로 서서히 낮아지고 있어 이곳에 지을 건물의 방향까지 설정해 주고 있다. 대지의 모양은 구획정리로 사각형을 이뤄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약간 높은 언덕과 평지가 조화를 이뤄 음양의 교감(交感)에도 별문제가 없다. 주변을 살펴보면 동쪽인 뒤가 허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산보다 힘이 세다는 한강이 막아주고 있어 괜찮은 편이다.
가상(家相)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우선 동관과 서관이 같은 33층이면서 상층부가 마치 등을 돌린 상배(相背)의 형상을 띠고 있다. 이는 자칫 서로 등을 돌리고 제 갈 길로 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이런 형상을 우려한 듯 기단 부분에 3층 높이의 회랑을 두어 두 건물을 연결해 놓고 있다.
동관과 서관의 연결 고리를 보면 상당히 역학적(易學的) 의미를 담고 있다. 동관의 북측에서 서관의 남측으로 연결된 통로로 인해 두 건물의 평면도는 마치 만자(卍字), 혹은 번개를 상징하는 Z형태를 이룬다. 이는 상부의 경사면이 가져오는 ‘등 돌림’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만자는 우주생성의 원리인 태극 모양으로 진취성과 생산성을 상징한다. 번개 모습 또한 발전·변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다 일반적으로 쌍둥이 건물이 지닐 수 있는 경쟁의식을 피하기 위해 형과 아우의 위계질서를 분명히 밝혀 놓고 있다. 이는 동관에서 서관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의해 증명된다.
두 건물의 외양이 지닌 가로 세로의 비율은 거의 1대 1에 가깝다. 약간 후덕한 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빈상(貧相)은 아니다. 다만 경사면과 연결된 외부의 벽이 아코디언 형으로 주름이 잡힌 것은 부드러운 곡선에 비하면 훨씬 못하다. 예각은 살기를 지니고 있다. 당연히 건물 종사자들의 정신적 안정을 저해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트윈타워는 동관과 서관을 연결해 하나의 건물 형태를 취했지만 대지 남쪽의 주차장에 동관을 중심으로 담을 쌓아 각각 별개의 건물로 만들어 놓았다. 한 울타리 안에 살림을 따로 차리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LG그룹이 GS, LS, LG로 분할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하나 더 언급한다면 주변 남쪽의 공작아파트와 서울아파트가 마치 전차 군단의 모습을 하고 트윈타워를 향해 공격해 오는 모습이다. 이를 참작해 항상 내부보다는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에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KBS 건너편에 자리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은 외형이 여의도를 그대로 빼닮았다. 앞뒤로 3층의 현관을 달고 중앙에 19층의 본 건물을 세워 마치 한강을 내려가는 황포돛대와 같기 때문이다.
터는 LG트윈타워와 반대편에 자리해 샛강 쪽에 치우쳐 있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협의체 건물이 지닌 성격을 그대로 구현한 셈이다. 터 자체로 보아 청룡 쪽의 한강에 비해 재물을 담당한 백호 쪽 샛강이 작다는 것은 재정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샛강이 넘치는 때가 있듯이 대기업 총수들의 관심이 고조되면 이 또한 능히 해결하게 된다. 그럼에도 전경련 빌딩은 건물을 지으면서 터의 흐름과는 반대로 향을 정해 지기의 청룡 백호를 반대로 돌려놓아 재정적 어려움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처음 건립되었을 때와는 달리 근래에는 좌우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건물의 기를 보완해 주고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해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은 같았다.
여의도의 많은 빌딩 가운데 드물게도 천원지방의 사상을 의도적으로 도입한 건축물이 있어 시선을 끈다. 여의도공원 중앙에서 증권거래소 쪽을 보면 첫눈에 띄는 굿모닝신한증권빌딩이 그것이다.
이곳의 터는 여의도 중심에 자리해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다른 터와의 균형도 매우 좋다. 건물 외양은 위에서 지적한 천원지방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내부의 원을 중심으로 그 밖은 방형(方形: 사각형)이 감싼다. ‘7’이란 숫자를 기준으로 위로 점점 올라가는 원과 사각형의 모습에서 진취적인 기상을 읽을 수 있다. 건축주는 이를 촛불 형상으로 보았지만 오히려 등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증권회사 건물로는 ‘시장의 등대’로 자임할 수 있다.
주변 도로와의 관계도 나무랄 데 없다. 뒤에는 능선 역할을 하는 대로가 동서로 시원하게 뻗어 있고 좌우로는 작은 도로들이 감싸고 있다. 이들 도로 자체가 보호막인 청룡·백호 역할을 한다.
건물의 외양과 더불어 내부도 음양 조화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밖을 감싸고 있는 사각형은 음이요, 그 안은 양을 상징하는 원이 중심을 이룬다. 이는 한마디로 세포 구성의 원리와 같다. 또 건물 밖 네 귀퉁이에 원통형을 세워 대지와 건물의 균형 감각을 보여주는 것도 탁월한 배치다.
그러나 이 건물은 한 가지 미완의 장을 남겨두고 있다. 이는 바로 동편에 남아 있는 옛 안보 전시장의 대지다. 여기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는가에 따라 향후 길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가능한 한 이 빌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물이 들어서야 한다.
79년 명동에서 여의도로 증권거래소가 옮겨 왔을 때, 많은 투자자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허허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거래소 건물은 당시 허약한 한국 증권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거래소는 이제 증권선물거래소로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명동에서 여의도로 시장을 옮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터는 여의도의 노른자위에 해당한다. 한 블록을 통째로 사용하므로 주변의 도로 사정 역시 매우 좋다. 사방의 도로는 이 터를 여의도라는 섬 안에 섬으로 만들어 재물이 이중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장을 상징하는 4층의 부속 건물과 본관 21층이 터의 왼쪽 청룡에 자리해 오른쪽 백호가 빈약했다. 사람 위주의 건물 배치였다. 그런데 근래 백호 쪽에 14층 높이의 새 건물을 지었다. 동일한 대지 안에 나중에 지은 동생 건물이 형보다 작은 것은 풍수적 법도에 지극히 합당한 것이다. 이로 인해 좌우의 균형이 잡혔다.
독립된 3개의 건물을 회랑으로 연결해 하나의 건물로 만든 것도 비슷한 경우의 다른 건물에 비하면 모범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증권선물시장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을 이 빌딩이 증언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