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10-05 16:09]



[창간59주년]누가 중산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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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을 나와 40대 초반에 연봉 4천만~5천만원을 벌며 가족들과 함께 20평형대 이상 아파트에 거주.’ 국내 사회학자들이 정의한 기준에 따른 우리 사회의 가장 평균적인 중산층의 모습이다. 그러나 중산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생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봉, 직업 등과 함께 학력, 생활양식, 문화생활 등 ‘무형의 자산’이 어우러져 중산층이라는 계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요한 소득

통계청의 가계소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4인가족 기준)의 월평균 소득은 3백11만원(세전)이다. 중산층 가구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연간 3천7백만원 가량의 소득이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직업군은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6천만원), ‘전문직 종사자’(5천4백만원), ‘기술공 및 준전문가’(4천6백만원), ‘사무직 종사자’(4천2백만원) 등이다. 학력별로는 전문대졸(3천7백만원), 대졸(4천7백만원), 대학원졸(6천1백만원) 등이 해당된다.

가족수로는 2인가족이 2천9백만원, 3인가족 3천5백만원, 4인가족 4천1백만원, 5인가족 4천3백원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중산층에 걸맞은 생활유지가 가능한 것으로 분류됐다.

#필수조건은 내집마련

4년제 대학을 나온 최모씨(34)는 외국계 기업에서 연봉 4천5백만원을 받고 있지만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씨는 “중산층이 되려면 집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세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주택마련을 위해 저축을 하거나 대출받을 필요도 없어 정상적인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가 보유하고 싶어하는 주택은 서울이나 경기 분당·평촌에 있는 시세 1억5천만~2억원의 20평형대 아파트다.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36.4%가 20평형대, 39.5%가 30평형대 주택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문화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은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1987년 ‘6·10 민주화운동’ 대열에 동참했던 ‘넥타이 부대’에서 보듯 진보적 개혁층을 대변하기도 할 만큼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같은 이념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은 소비문화를 통해 다른 계층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1960년대 초반 서울 고급 주택지역의 품목별 보유비율로 볼 때 상류층 품목은 냉장고(17%), 피아노(11%), 승용차(7%) 등으로, 중산층 품목은 카메라(46%), 전축(40%), TV(31%), 전화(39%) 등이었다.

80년대 전 계층이 컬러 TV를 갖게 되면서 승용차(87년 도시 중산층의 40% 보유)가 중산층과 비중산층을 가르는 새로운 기준이 됐다. 2000년 이후에는 비중산층도 50% 가까이 승용차를 보유하면서 휴대전화, 컴퓨터, 초고속인터넷 등 정보화 정도가 중산층을 가르는 새 척도로 떠올랐다.

#맞벌이 중산층의 증가와 교육

여성의 사회진출이 주로 재래시장, 음식업, 봉제공장 등 주변부 일자리에 머물러있던 60~70년대 맞벌이는 도시 서민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맞벌이는 중산층을 구분짓는 또따른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가구당 취업인원은 65년 1.1명, 75년 1.35명에서 지난해에는 1.56명으로 늘어나면서 맞벌이 증가 추세를 반영했다. 특히 소득계층별로는 하위 20% 계층의 배우자 소득 의존도가 85년 2.7%에서 지난해 5.8%로 소폭 높아졌으나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40~60% 계층의 배우자 소득 의존도는 4.6%에서 11.6%로 크게 높아졌다.

또 상류층에 비해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적은 중산층은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투자에 열성이다. 지난해 하위 20% 소득계층이 전체 소비지출의 4.1%를 교육비에 사용했다. 중간 소득계층은 11.8%를 교육비에 쓴 것으로 나타나 상위 20% 계층(소비지출의 12.3%)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시대적 변천

시대가 바뀌면 소비문화뿐 아니라 중산층을 구분짓는 사회·경제적 ‘기호’에도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60년대만 해도 중산층은 초등학교졸, 중졸 이상의 소자본가를 의미하는 개념이었으나 7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쳐 80년대부터는 대졸 이상의 화이트칼라가 중산층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는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퇴직)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비정규직, 상용직이 중산층을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주5일 근무제 확대시행과 웰빙 바람이 불면서 여가와 건강, 다이어트가 중산층 문화의 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강진구기자 kangjk@kyunghyang.com




[창간59주년]중산층 기준 10인10색…‘소득’은 공통



중산층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에서는 아직 중산층을 구분짓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의 구성이 자본가나 노동자 계급과 달리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하고, 주관적인 개념인 중산층과 객관적 개념의 중산층 사이에도 상당한 편차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는 1987년 중산층의 기준을 ‘그렇게 잘 살지는 못하나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고, 체면치레할 만큼 교제도 하며 여름 휴가철에 가족 바캉스를 다녀올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했다.

중산층의 개념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객관적 지표로서 중산층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소득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경제기획원(1985년)은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소득기준으로 최저생계비의 2.5배를 제시했고, 현대경제연구소(99년)는 40% 소득계층을 중산층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4인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월평균 1백13만6천원)를 놓고 보면 중산층의 최소 소득은 월평균 2백84만원이 넘어야 하는 셈이다. 반면 현대경제연구소 분류에 따르면 월평균 2백3만~3백62만원의 소득계층이 중산층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소득과 함께 직업(종사상 지위), 주택, 학력 등이 중산층을 구분짓는 객관적 변수로 고려되기도 한다. 직업은 종사상 지위나 업무자율성 정도에 따라 소상공인·전문직 종사자·중간 경영인·사무직 종사자 등이 중산층 범주에 속한다. 주택과 학력은 시대에 따라 기준이 바뀌어왔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87년 학력에 따른 중산층 기준으로 20대는 고졸 이상, 30대는 중졸 이상을 제시했지만 90년대 이후 학력수준이 높아지면서 서울대 홍두승 교수(2005년)는 ‘2년제 대학 졸업’을 중산층을 구분짓는 학력 기준으로 제시했다.

주택도 도시 근로자가구의 평균 주거 전용면적이 96년 15.7평에서 2000년 18.1평으로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자기 집의 경우 20평, 전·월세의 경우 30평이 중산층 주택의 최소기준이 되고 있다.

서울대 홍교수는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자료를 토대로 가구주의 종사상 지위, 교육수준(2년제 대학졸업 이상), 소득(도시가구 월평균 소득 90% 이상), 주택(자가 20평 이상)을 중산층으로 분류했다. 그라나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가구수는 20.8%에 불과했고 3가지 이상을 충족한 가구는 48.8%였다. 반면 단 한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한가지만 충족한 가구는 24.1%로 나타났다.

〈강진구기자 kangjk@kyunghyang.com




[창간59주년] ‘중산층’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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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책 개혁의지 긴요-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국민의 정부때부터이다. 국민의 정부는 중산층 붕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해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의 중산층 보호대책을 내놨다.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중산층 붕괴를 막으려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참여정부는 ‘개혁 자유주의 정부’로 규정할 수 있다. 성장보다는 분배위주의 정책을 펴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의지는 갖고 있으나 실천은 미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정치개혁 의지만 보였을 뿐 사회정책의 개혁에는 소홀히해온 게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앞으로 사회정책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중산층 몰락은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주안-

갈수록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는 현상은 우리 경제의 성장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려면 복지예산을 늘리면 된다. 그러나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도 중산층 몰락은 막을 수 없다.

가장 효율적인 중산층 보호대책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또 경쟁력 있는 신산업을 꾸준히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격차도 줄여나가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분배보다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중산층 보호대책이다.

〈오문석/LG경제연구원 상무〉

-사회안전망 구축도 시급-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이미 치유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 소득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특히 부동산 값 급등에 따른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자산가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산층 붕괴보다는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빈곤층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더 시급한 문제다.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성장·분배 정책 동시추구-

중산층 붕괴를 정부의 정책부재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신자유주의 확산도 중산층 붕괴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그러나 중산층 붕괴의 근본적 원인은 전세계적인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가 정보화 또는 지식기반 사회로 급속히 편입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가 정보와 지식의 격차에 따라 소득수준이 결정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같은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급격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부응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성장과 분배정책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지식기반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보와 교육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전주성/이화여대 교수〉

-고소득층 稅부담 늘려야-

참여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위주의 경제정책을 펴 중산층이 붕괴됐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역대정부가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중산층이 엷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조세정책이다. 정부는 조세부담률이 다소 높아지더라도 고소득층에 대한 세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조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득에 따른 세부담 형평성을 높이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중산층 보호대책이자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정리/박구재기자〉




[창간59주년] 전문가 설문 “중산층보다 빈곤층 지원 더 시급”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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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중산층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고 있다. 갈수록 벌어지는 계층간 소득과 자산가치의 격차로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저소득층으로만 이뤄진 ‘중산층 공동화(空洞化)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 경제·사회분야 전문가 10명 중 6명은 우리 사회의 중산층 붕괴 정도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10명 중 5명이 신자유주의 영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 10명 중 1명은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성장과 분배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이 4일 창간 59주년을 맞아 국내 경제·사회분야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중산층 몰락, 원인과 대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심각한 중산층 붕괴=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중산층 붕괴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4명은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했고, 2명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 10명 중 6명이 중산층 붕괴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은 단 1명뿐이었고, ‘보통’은 2명이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원인으로는 전문가 10명 중 5명이 ‘신자유주의 영향’을 꼽았다. 규제개혁·기업 민영화·노동시장 유연화·복지부문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 중산층이 몰락하고 20%의 고소득층과 80%의 저소득층으로 양분되는 ‘20 대 80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주장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 2명은 ‘정부의 중산층 배려 정책 부재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1명은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견해를 보였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분야로는 전문가 10명 중 6명이 ‘부동산 등 자산가치’를 꼽았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계층간 자산가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명의 전문가는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조건’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나머지 1명은 소득격차에 따른 ‘사교육의 양극화’도 이른 시일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야=‘참여정부가 의지를 갖고 중산층 보호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전문가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10명 중 4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고, 3명은 ‘매우 그렇지 않다’고 응답해 7명이 정부의 중산층 보호대책이 부실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는 3명에 그쳤고, ‘그렇다’는 의견은 한명도 없었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전문가 10명 중 5명이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려 고용을 통한 소득보전이 이뤄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중산층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전문가 2명은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1명은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산층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가 10명 중 5명은 ‘정부가 성장과 분배 정책을 동시에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전문가는 3명,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는 2명이었다.

◇신산업 창출을 통한 간접지원이 효율적=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한 선진국 모델은 미국식과 유럽식으로 나뉜다. 기업투자와 고용을 확대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미국식 모델이라면 복지예산을 늘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유럽식 모델이다.

전문가 10명 중 6명은 미국식 모델이 우리 사회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유럽식 모델을 꼽은 전문가는 2명이었다. 나머지 2명은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을 병행 추진해야만 중산층 붕괴를 막는 데 효율적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정부가 중산층을 두껍게 만드는 정책을 펴는 것과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빈곤층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 중 어느 정책을 우선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문가 10명 중 6명은 ‘빈곤층의 고통을 먼저 해결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답변했다. 중산층의 붕괴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곤층의 고통을 해결하는 정책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구재기자 goodpark@kyunghyang.com〉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

고영선 KDI 연구위원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박정규 우리은행 부행장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

이창용 서울대 교수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

정해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최공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창간59주년]늘어나는 新빈곤층 지구촌 재앙인가

지난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렸다. 지구 온난화와 아프리카 원조가 핵심 의제였다. 외신은 그러나 회담 자체보다는 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대 사진을 더 많이 전송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4,000여명의 시위대는 ‘반 세계화’ ‘반 부시’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격렬하게 맞섰다. 세계화와 그 형제격인 신자유주의는 세계인을 양극단으로 나누는 기준이 됐다. 이념이나 인종에 따른 대립보다 신자유주의 체제로 혜택을 보는 세력과 피해를 입는 세력간 갈등이 표면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저작권자’인 미국에서는 이같은 맥락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9·11테러’는 21세기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올해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9·11테러’에 버금가는 ‘참혹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9·11테러’는 미국민을 단결시켰지만, 카트리나가 몰고온 재앙은 ‘강대국 아메리카’의 치부를 노출했다. 세계 유일 강대국의 후진국형 풍경과 그동안 숨겨져왔던 내부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부각됐다. 일각에서는 ‘9·11테러’ 이전에 이미 ‘재앙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미국에서 비행기로 여행하려면 국적을 불문하고 큰 불편을 겪는다. ‘9·11테러’ 이후 엄격해진 보안검색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주요 항공사들이 줄줄이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가면서 서비스가 엉망이 됐다. 국내선을 타고 1시간 반을 날아가기 위해 10여시간을 아무런 통보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최근 미국 항공업계 3위인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2002년 UA를 시작으로 줄줄이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가면서 미국 6대 항공사 중 4곳이 파산했다.

항공사 줄파산은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탈(脫)규제화’ 바람이 몰아쳤다. 그러자 항공업계는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그때까지 항로를 적정하게 배분해 기업도 이익을 내고 노동자도 종신고용을 보장받던 상황은 돌연 종료됐다. 항공요금은 내렸고, 대량해고가 잇달았다.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인수·합병(M&A)됐다. 중산층 몫이었던 그 많던 항공업계의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졌다. 고용불안은 중산층을 흔들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항공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미국과 달리 활력이 넘친다. 올들어 소비제품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15% 이상 늘었고, 자동차도 40%나 더 팔렸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6%대다. 4년 전에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그동안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뀌었고, 전국적으로 납치사건이 잇달았다. 그런 아르헨티나의 회생은 놀라울 정도다. 아르헨티나를 되살린 동력은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탈출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국통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크게 늘어난 수출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르헨티나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경제 불안으로 최근 10년동안 전체 인구의 30%가량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몰락했다.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중산층을 복원시켜 놓지 않는 한 최근 아르헨티나의 호황은 반짝경기로 끝나고 말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낙천적인 민족성을 지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지만 3억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 나라인 아르헨티나가 자국민 3천8백만명조차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출신 대통령을 뽑아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며 남미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지만 나라살림은 예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두터운 빈민층은 여전히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이와 달리 소수의 부자들은 자가용 헬리콥터로 여유롭게 이곳 저곳을 날아다닌다. 세계에서 헬기가 가장 많은 나라가 브라질이다.

룰라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며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세계화의 대세는 거역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을 양성하지 않고선 ‘시장’에 대항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지니계수(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는 0.61로 일본(0.25), 미국(0.41)보다 월등히 높다. 또 하위소득 20% 계층이 국내 총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해 중국(5.9%)보다 낮다. 양극화로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어 정치 민주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하면 90% 이상이 스스로를 ‘중류’로 간주하는 일본도 중산층이 위기에 몰려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10년’ 이후 ‘중류 집단 1억명’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식 종신고용 구조는 흔들리고, 봉급생활자가 월급을 모아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재산을 상속받는 것만이 ‘중류’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 중산층도 비슷한 절망을 공유하고 있다. 중산층의 하단을 차지하는 이들이 점점 더 계층상승의 기회를 잃고 있다고 느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즉 미국을 발전시킨 도덕적 핵심원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희망을 꿈 꿀 수 있는 ‘사회계약’의 붕괴는 비단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가 모든 나라의 생존환경을 바꿔놓으면서 중산층 몰락은 가속화하고 있다. 양극화로 귀결하는 ‘바닥을 향한 경쟁’이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는다면 전 세계는 ‘비상구없는 재앙’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안치용기자〉




[창간59주년]소비·교육·부동산으로 본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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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2.7배 차이-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는 소비 관련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의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에 따르면 올 2·4분기 소득상위 20% 계층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3백6만원으로 하위 20% 계층(1백13만원)에 비해 2.71배 많았다. 1995년 같은기간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비지출액(1백75만원)은 소득 하위 20%(72만원)의 2.43배였다. 10년 사이 소득에 따른 소비의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셈이다.

또 올 2·4분기 소득 상위 20% 계층은 매달 평균 1백89만원을 저축하는 반면 최하위 20% 계층은 8만9천원의 빚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개월 후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심리는 월평균소득 4백만원 이상 고소득층만 기준치 100보다 높은 100.6을 기록했을 뿐 1백만원 미만은 87.7, 1백만~1백99만원은 90.4를 나타내는 등 모두 100을 밑돌았다.

-교육비 5.6배 차이-

교육 분야의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4분기 소득 상위 10%인 최상위계층은 한달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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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만8천원을 교재비, 보충교육비, 문구류 등 교육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 최하위 10% 계층이 한달 평균 교육비로 6만4천원을 지출하고 있는 데 비해 5.59배나 많은 것이다.

소득수준 최상위 10% 계층의 경우 교육비가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4분기 7.09%, 2000년 2·4분기 9.28%, 올 2·4분기 10.38%로 꾸준히 작아지고 있다. 반면 최하위 10% 계층은 1995년 7.49%, 2000년 6.54%, 2005년 6.25%로 작아지는 추세다.

이같은 소득별 교육비 격차는 사교육비 지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교육비 구성 항목 중에서 사교육비 지출을 알 수 있는 보충교육비 지출을 보면 최상위 10% 계층은 한달 평균 29만9천원을 지출하고 있는 반면 최하위 10% 계층은 4만2천원으로 7.10배나 차이가 났다.

-총가구 45% 무주택-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는 전국 1천7백77만가구의 45.4%인 8백6만가구가 무주택자이다. 반면 전체의 5%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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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만가구가 주택을 2채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체의 0.08%에 불과한 1만4천8백23가구는 11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도 소유 편중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총가구의 1%인 17만7천가구가 전체 사유지의 34.1%를 갖고 있다.

도시근로자가 내집 마련하기도 어려워졌다. 국민은행의 ‘지역별 아파트 평당가격’과 건설교통부의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평당 가격은 2000년 6백51만원에서 2004년 1천1백13만원으로 70.1%, 강남지역 아파트는 1천2백12만원에서 2천4백36만원으로 85.9%나 급등했다.

이에 비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평균 근로소득은 2000년 2천4백12만원에서 지난해 3천2백76만원으로 35.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근로소득 상승률의 2배를 웃돈 것이다.

〈김진우기자〉




[창간59주년] 김용년씨 “이 악물고 ‘밑바닥’부터 배웠다”

샴페인은 흘러 넘쳤고, 미래는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정의 행복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외환위기는 온국민의 삶을 뒤흔들었다. 명예퇴직이라는 낯선 용어가 순식간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김용년씨(57)도 예외일 수 없었다. 국민은행 신제주 지점장이라는 신분도 아무 소용 없었다. 외환위기는 안온하던 은행 지점장의 삶을 뿌리부터 바꿔놨다.

#시련

1998년 1월 은행을 떠났다. ‘명예퇴직자’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실상 명예로운 건 아니었다. 67년 1월부터 근무했으니 꼬박 31년 만이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위안하기도 했다. 선린상고 졸업이라는 최종학력은 더 이상의 진급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과 가족, 직장을 위해 숨돌릴 틈 없이 일했던 세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놓았을 때의 심경은 한 마디로 ‘공황’이었다.

노숙자가 순식간에 늘어나고, 함께 자살하는 가족이 생기고, 공원에는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낮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랜 습관대로 새벽같이 눈을 떴지만 갈 곳이 없었다. 대형서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리를 거닐면 모두 자기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두가지 수련법: 영어와 운동

방황은 깊었지만 길지는 않았다. 그는 어느새 “상상할 수 없었던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미리 대비하자”고 스스로 되뇌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한 무기로 우선 떠오른 건 영어였다. 영어학원 오전 7시30분 강의를 끊었다. 부천에 있는 집에서 새벽같이 달려나왔다. 변두리에 있는 학원가에서 배회하다 눈에 띄면 직장 잃은 게 탄로날까봐 일부러 강남에 있는 학원을 골랐다. 오전 5시간을 영어 속에서 보내고, 점심은 김밥으로 때웠다. 오후엔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미국인 장교부인과 자유 대화를 했다. 이후엔 신촌으로 건너가 오후 6시부터 3시간30분동안 연세어학당을 다녔다. 영어, 영어, 영어. 하루종일 영어 속에 살았다. 50대의 발음은 이미 굳어져 있었기에, 틈틈이 발음 교정 학원에도 다녔다.

99년 8월, 51세의 남자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환율이 높아 가있던 사람도 돌아오던 때였다. 두 자녀는 “누군가 어학연수를 간다면 우리가 가야되는 것 아니냐”며 따졌고, 친구들은 “나이를 생각하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적막한 캐나다에서 1년을 버텼다. 그리고 겨울에 잠시 캐나다에 놀러온 아내는 영어로 잠꼬대하는 남편을 목격했다.

입에 영어가 붙어있었다면, 몸에는 운동습관이 배어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도 워낙 ‘운동광’이었다. 국민은행 산악회 회장이었고, 3년 연속 직장인 등반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스킨스쿠버에도 심취했고 수영 2㎞, 사이클 100㎞, 마라톤 21㎞에 도전하는 철인3종 경기도 2차례 완주했다.

캐나다에선 마라톤에 도전했다. 2000년 8월 열린 밴쿠버국제마라톤을 목표로 수업이 끝난 오후 내내 넓은 공원을 뛰었다. 뛰는 중간중간 처음 만난 캐나다인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언어 구사력을 높이는 건 기본이었다. 하숙집 주인 부부에게 “5시간 안에 들어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의 풀코스 완주 기록은 4시간58분이었다.

#재기

김용년씨는 “지금도 사람을 뽑을 때 휴직 기간이 긴 사람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감점한다”고 말한다. 한번 일하는 리듬을 잃으면 다시 일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귀국한 지 3일만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강남의 한식당인 한우리식당의 지배인으로 일해보라는 제의였다. 은행 지점장에게 음식점 지배인이라니. 잠시 망설였지만, 아내는 “지금 당신이 때를 몰라서 그러는데, 명퇴후 재취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득했다. “은행이 금융서비스라면, 식당은 음식서비스”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처음엔 고급 레스토랑 지배인 행세를 했다. 식당 가운데 서서 점잖게 행동했고, 호들갑스럽게 손님을 맞지도 않았다. 사장은 “여기는 한식당”이라고 질책했다. ‘아차’ 싶어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손님의 차가 도착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고, 돌아가는 손님에게 90도로 인사했다. 꽤 고급 한식당이긴 했지만 손님이 모두 점잖지는 않았다. 여느 종업원 취급하면서 하대(下待)하는 손님도 많았다. 김용년씨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과 있다는 사실을 함께 느꼈다”고 말했다.

#도약

6개월의 현장경험 뒤 관리직으로 옮겨 1년6개월을 더 있었다. 새 전기를 찾고 싶어 사표를 던지고 다시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이번에는 건설업이었다. 생소하긴 마찬가지. 건설시공사인 한국도시개발주식회사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직위는 차장이었다. 처음엔 섭섭했다. 지점장과 차장의 사이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고용주는 “능력이 검증 안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위로했다.

그렇다면 능력을 보여주면 된다. 6개월 만에 부장을 거치지 않고 이사로 승진했다. 주인의식을 갖고 거의 일중독자처럼 일한 결과였다.

그리고 올해 5월 다시 거침없이 사표. 건물을 짓는 시공사인 한국도시개발주식회사에서 토지 매입, 허가 등 모든 절차를 관할하는 시행사 아크파이널로 자리를 옮겼다. 남들은 한번도 어렵다는 퇴직 후 재취업을 3번이나 했다. 그는 충고한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라. 오너의 연령이 아니라 비전을 보라. 자기 동정을 주위에 많이 알려라.”

그 자신이 실천한 철칙이었다. 영어와 운동으로 다지고, 때론 10살 아래 사장의 말을 주군처럼 따르고, 끝없이 지인들에게 자신의 현상황을 알리며 안부를 전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 붙어있을 법한 흔한 문구지만, 여전히 유효한 격언이다.

〈백승찬기자〉




[창간59주년]“뭐든 해야 하는데…두렵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기업 계약직 사원인 정한일씨(가명·47)의 가슴은 더욱 스산하기만 하다.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큰아들을 비롯해 늘어만가는 아이들의 교육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한 계약직 신분…. 기업체에서 명예퇴직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월급은 여전히 그때의 절반이 채 안된다. 그동안 집을 판 돈으로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점차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퇴근길에 ‘이젠 정말 모험을 해봐야지’하며 입술을 굳게 깨물지만 여전히 미로속을 헤매는 것 같다.

#담담하게 받아들인 명퇴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정씨는 1981년 23살의 나이에 이름만 대면 대부분 알 만한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비록 4년제 대학은 나오지 못했지만 부산의 명문 상고를 졸업했고, 품은 꿈도 컸던 정씨는 입사 2년 만에 서울에 올라와 본사에서 주로 근무했다.

자금부 등 핵심 부서에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도 느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진 않지만 큰 걱정이 없었다. 90년대 중반 경기 분당에 32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는 그는 누가 봐도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었다.

직장생활만 모나지 않게 하면 50대 중반에 퇴직해 개인사업을 하면서 노후를 준비하려던 정씨에게 명예퇴직의 회오리가 몰아친 건 2000년 9월이었다. 당시 그가 일하던 회사는 적자가 지속되면서 구조조정 압력이 드셌다. 결국 수백명의 인원감축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전화와 우편으로 명퇴통보를 받았다는 정씨는 “의외로 담담하더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이전에도 회사내에서 명퇴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와 ‘혹시 내가 대상자가 될 수도 있겠거니’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퇴 통보를 받고도 크게 상심하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다만 퇴직 당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이 눈에 아른거렸지요. 너무 실망하거나 기죽지 말고 생활하자고 마음을 굳게 다졌지요. 아이들에게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할 것 있으면 눈치보지 말고 사달라고 조르라’고 얘기했습니다. 괜찮다고 두 손을 잡아준 아내가 지금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파트 팔고 투자했지만…

직장에서 나온 정씨는 택배사업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퇴직 이듬해인 2001년 1월 취업 알선회사 계약직 일자리를 잡게 됐다. 퇴직 당시 3백50만원을 받았던 그로서는 1백50만원의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웠다. 결국 그는 부동산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소득은 계속 줄어들게 뻔한데 주거비·교육비 등 쓸 돈은 갈수록 불어날 게 확실해 뭔가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퇴직금 중간정산금과 명퇴금 8천만원, 어렵사리 구입한 32평형 아파트를 2억원을 받고 판 뒤 경기 안산시로 거처를 옮기고 남은 돈이 밑천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상가의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 관리회사가 2개월 만에 문을 닫으면서 6천만원가량을 날리게 됐다. 또 한번의 실패의 쓰라림을 맛본 것이다.

불과 한 두달 전까지만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한 분당의 아파트 시세를 봤을 때 정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동산 투자에 손대지 않고, 분당 아파트를 계속 갖고 있었다면 수억원은 쉽게 벌었을 터이지만 그는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제 운이 그것밖에 안되는가 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속이 쓰리는 것도 사실입니다(웃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그의 얼굴 한쪽에는 깊은 그늘이 비쳤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그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돌렸다.

#모험을 해보고 싶은데…

정씨는 기업에서 일하다 명퇴통보를 받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급전직하한 데 비하면 자신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고 자위한다. 가정도 화목하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끝없이 추락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어느 순간 ‘바나나 껍질을 밟아 미끄러지듯’ 넘어지는 경우가 그에게 닥치지 말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하철 타고 2시간정도 걸려 출근하는 고된 생활이지만 월 수입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사업으로 큰 손실을 입은 뒤 아파트 처분해 남은 돈 등으로 근근이 버텨왔지만 이제 현금은 1천만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가 메이크업 미용학원에 4개월째 다니는 것도 생활비를 벌 생각에서다.

“결국 제 사업을 해야겠지요.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계약직이라 정규직처럼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회사와 1년 단위로 계약하면서 제시된 월급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정씨의 소망은 크지 않다. 더 이상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바랄 뿐이다. 큰 욕심내고 떼돈을 벌고 싶은 생각을 거둔 지 오래다. 그러나 식당, 부동산중개사무소, 미용실, 세탁소 등 모든 게 넘쳐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화이트칼라가 다른 사무직 직종으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특히 40대는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월급쟁이들은 직장을 잃게 되면 중산층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현실입니다. 고용안정은 중산층 보호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해결책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정씨는 구조조정이란 거센 회오리를 무사히 넘기고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위의 40~50대들을 보면 결코 남 일같지 않다고 했다. 그들 모두가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중년층이기에….

〈오관철기자 okc@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5-10-05]


[창간59주년] 50세 퇴직, 연봉 10배 준비됐나요?

인생의 황혼을 위해서는 얼마나 돈이 필요할까.

미국에서 백만장자 연구로 이름이 높은 토머스 스탠리는 자기 나이에 연간 소득을 곱해 10으로 나눈 금액(나이×연간소득/10)을 재산기대치라고 말한다. 그는 재산기대치의 2배는 가져야 여유로운 노년이 가능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의 공식대로 계산해 보자. 50세인 사람이 은퇴 직전 연 8천만원의 소득을 올렸다면, 최소한 4억원(부동산 제외)이 있어야 은퇴하면서 생활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4억원의 2배인 8억원 넘게 가졌다면, 넉넉한 황혼이 기대된다. 55세이고 연 소득이 4천만원일 경우에는 못해도 현금 2억2천만원을 가져야 한다. 4억4천만원을 보유하고 있다면 여유로운 노년을 열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자. 현재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 평균 지출액은 2천8백만원가량이다. 이 정도 돈을 이자로 받으려면, 금융회사에 8억3천만원(금리 4%·세후 기준)을 넣어둬야 한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난 노년층은 근로자 가구의 평균보다 적게 쓰고도 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 따라서 현금 8억원 이상이 있다면, 풍족한 노년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약간 쪼들리는 노년생활(월 1백10만원 지출)을 한다고 해도 은퇴할 때는 2억6천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금융회사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통계들은 모두 60세 부부가 80세까지 약 20년 동안 생존할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100세 사는 세상’을 위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어느 금융회사도 자신있는 계산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20년 후를 가정하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60세에 사회에서 한 발 물러난다면 ‘은퇴 후 40년’인 100세 노년을 위한 계산을 하기에는 너무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의 무게가 인생에 던지는 숙명적인 위험을 고려한다면, 80세 노인에 비해 1억~2억원은 더 가지고 은퇴를 해야 경제적으로 100세까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럼 종신까지 보장해 주는 국민연금은 100세 노년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물론 국가가 지급을 약속하는 국민연금은 다른 어떤 금융상품보다 확실한 노후수단이다.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연금에만 전적으로 노년을 맡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1천7백만명이 넘는 연금 가입자의 월 평균 납입액은 10만원이 조금 넘는다. 가입자 전체 평균 수준에서 30년 동안 돈을 냈을 때 받는 돈은 월 59만원이다. 부부 두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최소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사회 생활 30년 동안 줄곧 전체 평균을 훨씬 웃도는 고소득층(연금을 내는 45개 등급 중 40등급)에 속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월 91만원을 수령, 연금으로 최소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국회에는 연금수령액을 줄이려는 정부의 법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다. ‘저출산-노령화 사회’는 정부로 하여금 언젠가는 연금 받는 액수에 ‘칼질’을 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정부만 믿고 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인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준비를 하라고 권한다. 경제적 뒷받침이 전혀 안되는 ‘100세 노년’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창간59주년] 직장 새내기들이여, 노후를 보라

취업 재수 끝에 지난 8월 하늘의 별을 따듯 어렵게 대기업에 취업한 김혁수씨(27)는 첫 월급을 받자마자 거래은행의 연금신탁에 가입했다. 40대에 조기퇴직을 걱정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자신도 불안한 노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김씨는 연금신탁을 매달 20만원씩 30년간 가입하고 60세부터 연금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60세부터 80세까지, 매달 1백10만원(배당률 연 5%로 가정)씩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몇 년 전만하더라도 20, 30대가 노후준비를 위해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일이 흔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김씨처럼 직장 새내기 시절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맞춤 재테크’는 지금 시작해도 이른 것이 아니다.

◇연금신탁은 기본

연금신탁 가입은 풍요로운 노후준비를 위한 필수 입문과정이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가릴 것 없이 1년간 가입한 금액 중 2백40만원까지 전액 소득공제 받는다. 배당률도 연 3~5%대로 정기적금 수익률을 웃돌고 있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연금신탁 주식형은 원금의 10% 이내에서 주식에 투자하며 원금을 보장받는다. 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만기에는 원금을 보장받는 노후준비 상품이다.

◇기쁨 3배 장기주택마련펀드

장기주택마련펀드에 가입하면 15.4%에 이르는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며, 연말정산 때 적립금액의 40%(3백만원 한도)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장기주택마련펀드에 가입해 3백만원 소득공제를 받는다면 본인의 급여 수준에 따라 26만∼1백15만원이나 되는 많은 세금을 돌려받게 된다. 펀드가 아닌 저축상품에 가입할 경우에도 금리가 괜찮은 편이다. 가입 기간도 일부 은행은 최장 50년이지만 7년이 지나 해지하면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아 노후를 준비하는 데 그지 없이 좋은 상품이다.

◇연금보험 가입하면 온 가족이 행복

40대에 연금보험 하나쯤은 가입해 둬야 한다. 연금보험의 장점은 10년 이상 가입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는 점이다. 10년 이상 가입할 경우에는 비과세로 은행 적금보다 유리하다. 현재 40세인 사람이 연금보험에 매달 50만원씩 20년간 납입하고, 60세부터 100세까지 연금을 받는다면 매년 약 3천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일찍 사망한다면 안타깝기야 하겠지만 연금지급이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최소 20년간 연금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60세부터 80세까지 20년에 걸쳐 연금을 받겠다면 매년 2천만원, 원금에 대한 이자만 연금으로 받는 상속형의 경우에는 매년 1천2백만원에 해당되는 연금(원금은 배우자나 자녀 등 상속인에게 지급)을 받는다.

◇마지막 보루 퇴직금, 일시납 즉시연금보험에 맡겨라

최근 은퇴를 앞둔 50, 60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상품이 일시납 즉시연금보험이다. 일시납 즉시연금보험이란 목돈을 한꺼번에 가입해서 다음달부터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을 말한다. 이 상품에 관심이 높은 이유는 곧바로 연금을 받으면서 이자소득세가 비과세되기 때문이다. 매달 받는 금액도 은행 정기예금보다 유리하다. 매달 이자형태의 연금을 받고 원금은 자녀나 배우자에게 상속하는 확정형 즉시연금보험에 1억원을 가입할 경우 매달 30만원 전후의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은행 정기예금 이자는 25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100세까지 연금을 받으려면 종신형으로 가입하면 된다.

◇망설이지 말고 원금을 쪼깨 써라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명심해야 할 것은 이자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3%대까지 떨어져 1억원을 맡겨봤자 매달 30만원 받기도 어렵다. 금융자산이 10억원을 넘지 않은 한 결국 원금의 일부를 쪼개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자녀 교육비와 결혼자금을 지출하느라 정작 본인의 노후준비를 소홀히 했다면 주택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연금을 받는 ‘역모기지론’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은퇴 이후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어 자녀에게 ‘올인’할 필요가 없다.

◇다 쓰고 가라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줘야 한다며 늙어서까지 자린고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재산을 남겨두고 가봤자 자식들은 다툼으로 날새기 일쑤다. 고생해서 번 돈, 건강할 때 다 쓰고 간다고 생각하자.

서운하면 살고 있는 집만 유산으로 남겨줘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울러 여유 자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기부 정신’도 필요하지 않을까.

〈서춘수/ 조흥은행PB 강북센터지점장〉




[창간59주년] 준비 덜된 ‘노령복지’ 주름살 깊어진다

충북 옥천에 거주하는 이모씨(42)가 최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앞으로 보낸 국내 경로당 운영비 실태는 한국의 노인 복지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씨는 글에서 경로당 노인들이 폭등한 기름값을 모으기 위해 화투놀이로 ‘개평’을 뜯어 난방비를 모으고 있다고 적었다.

김씨의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경로당 한곳에 지급된 예산은 연간 운영비 72만원과 11월~3월 동절기에 지급되는 난방비 38만원이 전부다.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해서는 노인들끼리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도 해서 난방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의학적으로는 100세 시대가 눈앞에 있지만, 사회보장적 측면에서는 100세 시대를 맞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열악한 노인예산=올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 복지를 위해 배정한 예산은 모두 1조7천7백억원. 얼핏 보기에 적잖은 금액이지만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팍팍’하기 짝이 없다. 노인복지관과 경로당 등 시설 신축과 운영에 4천9백억원이 사용되고 노인단체 지원 등 기타 예산으로 3천7백억원이 쓰인다. 전체 예산의 48% 가량이 노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소득 보장 외의 경비로 사용되는 것이다.

나머지 예산으로 노인교통비(5천5백억원·버스요금)와 경로연금(3천1백억원) 등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금액이 초라하기만 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력에 따라 지원액이 다르지만, 충남 일부 시·군의 경우 노인교통비로 월 1인당 8,400원을 주고 있다. 노인할인요금을 낸다고 해도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다.

그나마 노인교통비는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경로연금은 저소득층과 기초생활보장자만 받을 수 있다. 올해의 경우 62만명이 지급 대상이다. 금액도 80세 이상 노인은 5만원, 65~79세는 4만5천원. 요즘처럼 기름값이 폭등하고 물가가 오른 시기에는 한달 부식비 마련하기에도 빠듯한 금액으로 정작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요양·간병비 등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노인 소득보장 시스템 갖춰야=노인문제 전문가들은 노인복지를 위해서는 소득보장 문제를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실제 국내 노인의 90% 이상이 연금 소득 등이 아닌 자신이 직접 돈을 벌거나 자녀들에게 의존해 생활하고 있어 소득보장 체계가 갖춰지지 않을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석재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복지연구팀장은 “국민연금제도가 있지만 현재 지역가입자의 절반 가량이 연금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등 사회보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국가 차원에서 노인들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부가적인 장치와 노인 일자리 등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복지부에서 65세 이상 노인 3만5천명을 대상으로 환경관리사, 문화재해설사 등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으나 5~6개월만 일을 하는 한시적인 일자리에 그치고 있다. 급여도 월 20만원으로 많지않은 금액이다.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정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인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60세 이후에도 충분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간병, 문화·관광 서비스에 국가 지원 필요=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80% 이상이 치매와 관절염 등 세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노인 간병·요양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계획중인 대책은 2008년부터 치매 등에 걸린 최중증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노인수발보장보험제다. 이는 지금의 건강보험제와 비슷한 것으로 치매 등의 노인들에게 수발과 간병을 보험으로 커버해주는 제도다. 본인이 일정한 보험료를 내고 나머지는 국가에서 부담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계획이다. 1차적으로 최중증 노인 7만2천명을 대상으로 하고 2010년 이후 모든 노인환자를 커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복지부의 계획에는 구체적인 예산이 잡혀있지 않다. 본인부담 보험료를 얼마로 할지, 수발과 간병서비스를 어디까지 할지에 따라 예산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질병을 앓는 노인들 중에는 본인부담 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도 필요하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질병치료뿐 아니라 노인들의 문화활동에 대해서도 국가가 일정한 보장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유럽 등 선진국처럼 연극과 영화 관람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 노인전용 주택 건설 및 개량 서비스 방안 등 고령화가 더 진행되기 전에 국가 차원에서 정비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준기자〉




[창간59주년] ‘노인수발 보장제’ 알맹이가 중요


최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방송에 출연, ‘치매, 대한민국이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홍보한 후 ‘노인수발보장제도’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유래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국민연금도, 사회복지 서비스 수준도 미흡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노인수발보장제는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중요한 제도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이 제도는 요양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이 원칙이 돼야 한다. 요양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생활상의 변화를 최소화하면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가족에 의해 노인이나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는 명분이 돼서는 안된다. 수발 서비스가 ‘시설 서비스’보다 가정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이같은 수발제도는 단지 생물학적 연령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만을 위한 제도로 추진돼서도 안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젊은층에서도 만성퇴행성질환과 노인성질환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환자나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더이상 가족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발 서비스는 연령이나 장애, 보험료 납부 여부에 따른 제한과 차별없이 누구나 수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국민이 낸 세금을 주요 재원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조세를 건강보험과 비슷한 정도만 지원하고 대부분의 재원을 국민이 내는 보험료와 본인부담금으로 충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수발 서비스의 공급과 운영에 대한 정부의 책임도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다. 수발 서비스가 단지 이윤을 좇는 ‘산업’으로 인식되고 서비스가 ‘상품’으로 전락할 경우 빈부 격차에 따른 수발 보장 수준의 차이가 발생하고 인권 침해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수발 서비스는 공공부문이 중심이 돼 제공하고 서비스 표준화와 질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민여론 조사에서 90% 이상의 응답자가 노인수발보장제도의 도입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들이 제도에 대한 금전적인 부담을 어느 정도 감수할 준비가 돼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이 기꺼이 부담을 각오한 만큼 서비스에 만족을 느낄 정도의 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제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정부의 치밀한 준비를 통해 이 제도가 고령사회에 착실하게 대비하는 효자 노릇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창간59주년] “퇴물 아니다” 일하는 아름다운 황혼

과거 같으면 정년퇴직 이후 집에서 손자 재롱이나 즐길 법한 노인들이 요즘엔 자원봉사 행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노년기에 안방 아랫목이나 차지하면서 ‘퇴물’ 신세가 되면 ‘건강 100세’의 꿈은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노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 따르면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는 60세 이상의 노인은 올들어 서울에서만 매월 1,600여명씩 늘고 있다. 이들 노인은 자원봉사를 통해 보람을 느끼면서 정신적·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 못지않게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도 있다. 기자가 만나본 이들 자원봉사 노인들은 한결같이 “자원봉사는 남을 돕는 일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일할 수 있다=이수열씨(60)는 아름다운가게 경기 일산점에서 지난해 3월부터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는 재활용 가능한 물건들을 기증받아 손질한 뒤 되파는 곳이다. 지난 3월 이곳의 점장으로 취임한 이씨는 “여기서 일하고 있노라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말한다.

이씨는 서울의 한 백화점 시계매장에서 2000년까지 25년간 근무하다 그해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여파로 은퇴했다. 한동안은 상실감에 시달렸지만 ‘뭔가 해야겠다’는 각오로 동네의 사회복지관을 찾았다. 이후 1년여간 독거노인들에게 점심도시락 배달하는 자원봉사를 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는 “이미 자식들도 출가해 부담이 없었기에 돈벌이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며 “또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면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재미있는’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건강해지고 젊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친구들만 봐도 퇴직 이전 자기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서 권위의식에 빠져 쉽사리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는다”며 “집안에서 바둑이나 두면서 웅크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부담없는 자원봉사를 통해 활기찬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운가게의 서울 독립문점장인 오영순씨(63·여)도 2003년 4월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원봉사를 통해 삶의 활력과 건강을 찾을 수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이가 얼마든 당당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 돕고 살아야=김석환씨(62)는 10년째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안경을 맞춰주고 있다. 1980년부터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안경점을 운영해온 김씨는 한때 2곳의 안경점을 두기도 했다. 그는 98년 외환위기로 안경점을 닫기 이전인 95년부터 어려운 노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김씨는 “내리사랑이라고 자기 자식은 챙겨도 노부모들에게는 소홀한 게 일반적 가정의 모습”이라며 “작으나마 이같은 도움을 받은 노인들은 너무나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위해 김씨는 직접 안경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의 손으로 시력을 찾아준 노인만해도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다.

전적으로 사재를 털어 봉사활동을 벌여오던 김씨는 2003년 대한은퇴자협회에 가입해 이곳에서 하는 노인 대상 무상진료활동에 안경맞춰주기 사업을 접목시켰다.

협회는 지난 7월 서울 광진구 내 15명의 노인에게 안경을 맞춰주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65세 이상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추천받아 사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누구나 자신이 결국 늙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것 아닌가 싶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노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뿌듯하지만 이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으로 칭찬받을 이유가 없다”며 겸손한 모습을 나타냈다.

협회 고경복 전문위원(65)도 “이같은 봉사활동은 젊은이들보다는 노인 사정을 잘 아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적합하다”며 “이 사업은 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들과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모범이자 ‘건강 100세’를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장관순기자 quansoon@kyunghyang.com





[창간59주년] 두 전직교사의 황혼귀농


인생 황혼기의 ‘웰빙라이프’로 농촌 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많다. 특히 100세 시대를 맞아 직장에서 은퇴한 뒤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장소로 전원생활 만한 곳도 없다. 각박하고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활한다는 게 우선 장점이다. 도시 지역보다 경제적 투자 부담이 적고, 다른 직업에 비해 실패 위험성이 적다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농촌 생활은 새로운 인생이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끊임없이 연구해 농삿일에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 뒤에도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섣불리 도전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두 전직교사의 농촌 생활을 통해 황혼귀농의 허실을 조명해 본다.

-“전문성 갖춰야 꿈 이룬다”-

농사를 짓는 경기 이천시 율면 총곡리 샘골농원 대표 김민호씨(62)의 연간 매출액은 6억원. 연 순이익이 1억8천만원에 이른다.

20여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그가 제2의 인생을 위해 귀농한 것은 10여년 전. 하지만 귀농을 준비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다. 교직 생활 틈틈이 친지의 과수원을 찾아가 일을 배웠다. 버섯농사로 목표를 정한 뒤에는 관련 공부에 매달렸다. 대학 교수를 찾아가 실험 재배중인 버섯을 분양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귀농 후 처음 손 댄 것은 표고버섯. 그러나 전문성 없이 의욕만 앞서 4년 동안의 땀방울은 물거품이 됐다. 허탈감에 빠져 농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평생의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품목을 팽이버섯으로, 다시 새송이 버섯으로 바꾸면서 차츰 수입이 늘었다. 지금은 빚도 갚고 안정을 되찾았다. 몇년 전부터는 인터넷을 통한 판매도 시작했다. 전문농사꾼이 된 것이다. 그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작물을 재배한다 ▲버섯을 인격체로 생각한다 ▲안 된다는 생각은 안한다 ▲변화에 두려워하지 말자 등 17가지 농사철학을 세워놓고 있다.

-“막연한 귀농은 실패한다”-

경기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차모씨(65)는 퇴직금의 절반을 농사에 투자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수입은 한 푼도 없다. 교사 연금이 유일한 소득원이다.

그는 5년 전 정년퇴직 뒤 곧바로 양주에 자그마한 주택과 600평의 논을 구입하고, 200평의 밭을 빌려 황혼 농부의 길을 시작했다.

씨만 뿌리면 곡식이 저절로 자라고, 그 곡식을 거둬팔면 돈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구입한 논은 도로에 접해 있지 않아 트랙터 등 농기계를 이용하려면 남의 논을 거쳐야 했다. 때문에 주변 논이 수확을 다 마친 뒤에야 겨우 수확할 수 있었다.

수확량이 기대치에 못 미친 것은 당연했다.

영농기술도 서툴러 남의 손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고, 600평의 논농사론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밭농사는 늘 해충에 시달려 자신이 먹을 정도만 수확하는 상황이다.

농삿일을 접고 귀농 전에 살았던 서울로 다시 이사해 아파트 경비원 생활도 생각했지만 이미 서울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씨의 부인 김모씨(60)는 “준비없이 무작정 시골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이상호기자 shlee@kyunghyang.com





[창간59주년]고령화시대 사회안전망 절실

〈조용수/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 중산층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는 중산층의 위상이 ‘양극화’와 ‘고령화’라는 두가지 트렌드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 현상의 본질은 빈곤의 확산이다. 사회의 양극단을 이어주는 중간지대, 즉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실직이나 자영업 실패, 질병 등으로 중산층에서 탈락한 가구는 차상위 계층이나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퇴직후 별 소득없이 30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고령화는 중산층 위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고령화사회가 베이비붐 세대인 40~50대 중산층에게 축복보다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오정’ ‘오륙도’ 등의 유행어처럼 50대에 퇴직할 경우, 평균 기대수명인 80세 전후까지 30년을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에 불과할 것이다. 실질소득은 퇴직 전의 절반, 혹은 그 이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퇴직에 대비해 상당 규모의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준비해놓은 경우는 사정이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 중장년층의 대부분은 자녀교육이나 집 한칸 마련에 한평생을 다 보낸 세대이다. 퇴직금과 집 한칸 말고는 노후대비가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각종 세부담 증가와 저금리 등으로 이마저도 이젠 노후보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크게 약화된 상태이다. 물론 퇴직 후 당장 몇 년은 퇴직금이나 그간의 저축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20여년을 대체소득 없이 보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효(孝) 개념도 희박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마당에 자녀들이 나이든 부모에게 얼마나 경제적 도움을 줄지도 미지수다.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 국민연금 등 공적부조가 노후안정에 얼마나 기여할지도 의문이다.

암·당뇨·치매 등 각종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이 크게 늘고, 엄청난 의료비용이 고령자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노후복지가 우리보다 낫다는 미국의 고령자들도 치솟는 의료비와 약값 때문에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직장에서 제공하는 민간의료보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은퇴시기를 늦추려는 경향도 보인다고 한다.

-‘준비안된 노년’ 위기 우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 저소득과 질병, 그리고 자녀를 비롯한 주위의 무관심 속에 비참한 노후를 맞는 불길한 시나리오로부터 누구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고령자 일자리 확충과 소득보완, 다양한 연금제도의 도입과 의료보장 제도의 내실화 등 고령화 시대의 안정적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범국가적인 대책마련이 그만큼 절실한 시점이다.

출처 -

상법상 영리법인 형태의 회사 종류로는 주식회사, 유한회사, 합명회사, 합자회사의 4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여기서는 영리법인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주식회사에 대하여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식회사란 주식이라는 세분화된 일정한 자본을 가지는 유한책임사원(주주)이 주식인수가액

(주주별 투자금액)을 한도로 출자의무를 부담하고, 회사의 채무에 대하여는  아무런 개인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회사 재산만이 책임을 지는 상법상 회사의 한 형태를 말합니다. 주식회사는

설립과정에서 누가 주식을 인수 하느냐에 따라 발기설립과 모집설립으로 나누어 지는데, 아래

에서는 주식회사설립에 대한 절차와 그 실무 및 법인설립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 설명코자 합니

다.

Ⅰ.주식회사설립절차 및 실무

우선 회사설립을 위한 기획과 업무추진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상법에서는 이들을 발기인이라

합니다. 이 발기인의 주도로 설립등기전 다음 사항을 준비 합니다.

1. 발기인 및 구성인원의 결정

  1) 발기인 1인 이상의 선정

  2) 주식회사는 이사3명(대표이사포함), 감사1명은 반드시 필요하므로 최소한 인원4명이 선정

    되어야 합니다. 단, 자본금이 5억원 이하일 경우 이사1인, 감사1인으로도 가능 합니다.

  3) 발기인도 이사, 감사가 될 수 있으므로 결국 최소 인원2명으로 설립등기를 할 수 있습니다.

2. 설립등기를 위하여 미리 결정하여야 할 사항

    설립등기 전에 정관에 기재할 사항 및 등기사항에 대하여 미리 결정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

    해서는 아래 법인설립절차의 해당 사항을 참고 하시면 됩니다.

발   기   설   립

모   집   설   립

발기인 구성

발기인 구 성

정관작성 및 공증

정관작성 및 공증

주식발행사항의 결정

주식발행사항의 결정

주식 총수 인수

주식 일부 인수

출자의 이행

주주모집 및 주식배정

이사,감사의 선임

출자의 이행

검사인의 설립경과 조사

검사인의 변태설립사항조사

설립 등기

창립 총회

설립 신고

설립 등기

 

설립 신고

1. 발기인 구성

   회사설립을 위한 기획과 업무 추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2001년 7월 24일  개정으로 1명 이상

   으로 발기인 수가 완화 되었으므로, 통상, 설립회사의  대표이사가 될 사람이 발기인 대표로서

   설립에 관한 모든 사항을 주관 합니다.  또한, 발기인이란 정관에 발기인으로 기명 날인한 자

   를  말하며, 1주 이상의  주식을 인수하여야 합니다.

2. 정관의 작성 및 공증

   정관이란 실질적으로 회사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기재한 서면을 말하며, 이

   에는  반드시 기재하지 않으면 정관 자체의 효력을 무효화 시키는 절대적 기재사항과,

   기재하지 않아도 정관 자체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지만  이를 정관에 기재하지 않으면 그 효력

   이 발생하지 않는 상대적 기재사항,  회사의 필요에 의하여 기재하는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구성됩니다.  정관의 공증은 회사의 본점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소속 공증인에게

   공증  합니다.

   1)  절대적 기재 사항

    -목적

    -상 호 : 등기사항으로 동일 시,군에 동일 업종에 타인이 사용하는 상호 사용 불가

    -회사가 발행할 주식의 총수

    -1주의 금액 : 100원 이상 균일액

    -회사의  설립시에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 : 발행 예정 주식 수의 4분의 1 이상이고

                                                                  최저 자본금은 5천만원 이상

    -본점 소재지

    -회사가 공고를 하는 방법 : 관보 또는 일간지를 지정

    -발기인의 성명, 주민등록 번호 및 주소

   2) 상대적 기재 사항

    -발기인이 받을 특별이익과 이를 받을 자의  성명

    -현물 출자를 하는 자의 성명, 그 출자의 목적인 재산의 종류. 수량,가격과 이에 대하여

      부여할 주식의 종류와 수

    -회사 성립 후에 양수할 것을 약정한 재산의 종류, 수량, 가격과 그 양도인의 성명

    -회사가 부담할 설립비용과 발기인이 받을 보수액

   3) 임의적 기재 사항

    -이사,감사의 수

    -총회의  소집 시기

    -영업연도 등

3.  주식발행 사항의 결정

   회사 설립시 발행하는 주식에 관하여 다음의 사항은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발기인 전원

   의 동의로 이를 정한다.

   -주식의 종류와 수 : 우선주, 보통주, 무의결권주 등

   -액면이상의 주식을 발행하는 때에는 그 수와 금액

4.  주식의 인수

   1) 발기설립

       주식의 전부를 발기인이 서면으로 인수하며, 인수가액은 액면가 이상이어야 함.

   2) 모집 설립

       주식의 일부를 발기인이 인수 하고 잔여 주식에 대하여 주주를 모집 ( 주식 인수의 청약)

       하여 주식을 배정함.

5. 출자의 이행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가 인수된 때에는 지체없이 각 주식에 대한 인수가액의 전액을 납입함.

   납입할 은행 기타 금융 기관과 납입 장소 지정.

6.  이사, 감사의 선임

   출자의 이행이 완료된 때에는 발기인은 의결권의 과반수의 결의로 이사, 감사를 선임함.

   모집설립의 경우에는 출자의 이행이 완료된 때에 창립총회에서 이사와 감사를 선임함.

7.  설립경과의 조사

   이사와 감사는 취임후 회사의 설립에 관한 모든 사항을 조사하여 발기인(또는 창립총회)에

   보고함.

   변태 설립에 관한 사항 등은 공증인의 보고 등으로 갈음 하거나 법원에 검사인의 선임을 청구함.

8.   법인 설립 등기

 1) 발기설립

     검사인의 조사, 보고와 법원의 변경처분의 절차가 종료된 때로부터 2주간 내

2) 모집 설립

     창립총회가 종결된 날, 또는 변태 설립사항의 변경 절차가 종료된 때부터 2주간 내

설립등기는 지방법원 산업등기과에 이사 전원이 공동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이사 전원의 기명

날인을 요한다.  만약, 대리인으로 하여금 신청케 하고자 할 경우 위임장을 첨부 하여야 한다.  

기간내 등기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한다.    

   *주식회사 설립 등기 사항

     -목 적

     -상 호

     -본점소재지

     -1주의 금액

     -회사가 공고를 하는 방법

     -자본의 총액

     -발행주식의 총수, 그 종류와 각종 주식의 내용과 수

     -주식의 양도에 관하여 이사회에 승인을 얻도록 정한 때에는 그 규정

     -지점 소재지

     -회사의 존립기간 또는 해산 사유를 정한 때는 그 기간 또는 사유

     -개업전에 이자를 배당할 것을 정한 때에는 그 규정

     -주주에게 배당할 이익으로 주식을 소각할 것을 정한 때에는 그 규정

     -전환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상법 347조에 게기한  사항

     -이사와 감사의 성명 및 주민등록 번호

     -회사를 대표할 이사의 성명, 주민등록 번호 및 주소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한 때는 그 규정

     -명의 개서 대리인을 둔 때는 그 상호 및 본점 소재지

     *주식회사 설립등기 신청서 첨부서류

     -정관

     -주식 인수증

     -주식 청약서 ( 모집설립의 경우에 한함 )

     -주식발행사항 동의서

     -이사와 감사 또는 검사인이나 공증인의 조사보고서와 그 부속 서류,  또는 감정인의

       감정서와 그 부 속서류

     -검사인의 보고에 관한 재판이 있은 때에는 그 재판의 등본 ( 검사인 선임의 경우에 한함 )

     -발기인 총회 의사록 ( 발기설립의 경우 이사, 감사 선임 의사록에 한함 )

     -창립총회 의사록 ( 모집설립의 경우에 한함 )

     -이사회 이사록 ( 대표이사 선임 의사록에 한함 )

     -주금납입 보관 증명서

     -명의 개서 대리인을 둔 경우에는 계약 증명 서류

     -이사, 감사, 대표이사의 취임 승낙서

     -기 타

       회사설립에 관청의 허가가 필요한 경우 : 관청의 허가서

       대리인에 의하여 신청하는 경우 : 위임장

       이사의 인감증명

       소정의 등록세를 납부한 영수필 확인서, 주택채권을 매입한 증명서

       벤처기업 확인서

 9.  법인설립신고

설립등기가 완료되면 회사는 사업장 소재지 관할 세무서에 법인설립신고 또는 사업자 등록

신청을 하여야 한다.

사업자 등록신청은 법인설립 등기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의 인적사항,

사업자등록 신청사유,사업개시 연월일 또는 사업장설치 착수 연월일 및 기타 참고사항을

기재한  사업자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법인설립 신고는 법인설립등기 후 2월 이내에 본점 소재지의 관할 세무서에 법인설립신고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법인세법에서는 법인의 설립신고와 사업자등록 신청을 각각 하는 경우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중복 신고의 절차로 인한 폐단을 방지하고 민원의 절차 간소화를 위하여 법인설립 및

사업자등록 신청서로 동시에 하도록 하고 있다.

 * 법인설립신고 및 사업자 등록신청시 구비서류

   -법인설립신고 및 사업자등록 신청서 1부 ( 소정양식 )

   -법인등기부등본1부 ( 설립등기전 등록 신청하는 경우 발기인의 주민등록등본 각 1부 )

   -법령에 의한 인허가 사업인 경우에는 사업허가증 사본 1부 ( 해당 법인에 한함.)

   -사업허가전 등록신청 하는 경우 사업허가 신청서 사본 또는 사업계획서 1부

   -정관 사본 1부 ( 법인 인감 도장으로 날인된 원본 대조 필 )

   -주주 또는 출자자 명세서 1부 ( 소정양식 ) : 자필기입 및 인감도장 날인

  -본점사무실의 임대차 계약서

   -법인인감도장 지참

   -현물출자가 있는 경우 현물출자 명세서 1부 ( 소정양식 )

   -주금납입 보관증명서 사본 1부

  법인 설립 신고 및 사업자 등록 신청일로부터 7일 이내에 사업자 등록번호가 기재된 사업자

  등록증을 교부 받을 수 있다.  사업자 등록증을 찾을 때는 법인 인감 도장이 필요하며 법인

  설립 신고를 하면 부가가치세가 환급이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계좌개설 신고서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제조시설이 없는 경우에, 사업자 등록증에 제조를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임가공

  계약서등이 첨부되어야 한다.

※ 세무대리인이 납세자를 대신하여 사업자등록신청을하고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을 수

    있습니다.

Ⅱ.주식회사 설립비용

  법인의 설립등기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4가지 형태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1) 등록세 및 교육세

    등록세액 : 설립시의 자본금의 1000분의 4

    교육세액 : 위 등록세의 100분의 20

    예외적으로 지방세법 제138조 제1항 제1호에 의하여 과밀 억제권의 대도시에 서는 등록세 및

    교육세액이 3배 중과세로 가산된다.

  2) 국민 주택 채권 매입액 ( 서울 : 지하철  공채 ) : 자본금의 1000분의 1

    예 ) 자본금이 5천만원인 경우 금 50,000원

  3) 정관. 창립총회 의사록, 이사회 의사록에 관한 공증 비용

    공증인가 합동 법률사무소 보수규정에 따름

  4) 각종 수수료 및 부대비용









 

법인설립 절차(1/2)


1
. 법인설립절차

(1) 발기인 구성

 

발기인이란 회사 설립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서 발기인은 1인이어도 무방합니다.
발기인의 자격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으므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이나 법인도 가능하며,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으면 발기인이 될 수 있습니다.

(2) 정관 작성

 

정관은 회사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기본규칙을 정해 놓은 서면입니다.
정관은 설립시에 발기인이 작성하여 전원 기명ㆍ날인(서명)하여야 하며, 작성된 정관은 공증인의 인증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정관에는
  ① 사업목적
  ② 상호
  ③ 회사가 발생할 주식의 총수
  ④ 1주의 금액
  ⑤ 회사가 설립시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
  ⑥ 본점소재지
  ⑦ 회사의 공고방법
  ⑧ 발기인의 성명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를 반드시 기재하여야 합니다.

(3) 주식발행사항의 결정

 

회사가 설립시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 및 1주의 금액은 정관에서 정하여지지만, 그 외에 주식발행사항과 관련하여 정관에 특별히 규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에는 발기인 전원의 동의에 따라 주식의 종류와 수 그리고 액면 이상으로 발행하는 경우에는 그 수와 금액을 정하여야 합니다.

(4) 발기인의 주식인수

 

발기인은 회사 설립시에 발행하는 주식 중 최소 1주 이상의 주식을 서면으로 인수해야 합니다.

(5) 주주의 모집ㆍ청약ㆍ배정

 

회사 설립시에 발행하는 주식 중 발기인이 인수하고 남은 주식에 대하여는 발기인이 주주를 모집해야 합니다. 모집주주인 주식청약인은 1인 이상이면 족하고, 모집주주가 인수하는 주식수도 1주 이상이면 됩니다.
주식청약은 「주식청약서」에 의하여 서면으로 하여야 하고, 발기인은 청약인에게 주식인수 여부와 인수할 주식수를 결정하여 통지해야 합니다.

(6) 주금 납입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가 인수되면 발기인은 주식청약서에 기재된 은행 등 금융기관에 주금을 납입시켜야 합니다.
주금납입이 끝나면 은행에서는 설립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주금을 보관하게 되고「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발기인에게 교부하여 줍니다.
주금납입이 완료되면 회사에서는 주주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인수주식수, 취득연월일 등이 기재된 「주주명부」를 작성해 놓아야 합니다.

(7) 창립총회 개최

 

발행주식총수에 대한 주금납입이 완료되면 발기인은 지체 없이 주식인수인으로 구성되는 창립총회를 소집하여야 합니다.
창립총회 소집은 상법상 창립총회일 2주 전에 주주에게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법인설립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하여 각 주주가 서명ㆍ날인한 「창립총회소집기간 단축동의서」에 따라 주금납입과 동시에 즉시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창립총회에서는 발기인이 회사창립에 대한 사항을 보고하고 정관을 승인하며, 이사와 감사를 선임합니다.
창립총회가 끝나면 창립총회의사록을 작성하여 이사 전원이 날인한 후 공증인의 인증을 받습니다.

(8) 이사회 개최

 

이어서 이사회를 개최하여 대표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의사록을 작성하여 이사 및 감사가 날인한 다음 공증인의 인증을 받습니다.

(9) 등록세ㆍ지방교육세 납부 및 채권 매입

 

법인설립절차가 완료되면 본점소재지 관할 시ㆍ군ㆍ구에 등록세(자본금의 0.4% 단, 수도권 지역의 경우 3배 중과) 및 지방교육세(등록세의 20%)를 납부하고, 자본금의 0.1%에 해당하는 지하철공채(또는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하여야 합니다.

(10) 설립등기

 

주식회사는 최종적으로 설립등기에 의하여 성립하고 법인격을 취득하게 되는데, 창립총회 종료일로부터 2주 이내에 본점소재지 관할 법원(또는 상업등기소)에 설립등기를 신청하여야 합니다.
설립등기신청서에는 이사 전원이 기명ㆍ날인하여야 하며, 법인설립절차가 관계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다음의 서류들을 첨부하여야 합니다.

  ① 정관
  ② 주식인수증
  ③ 주식청약서
  ④ 주금납입보관증명서
  ⑤ 소기업확인서(자본금이 5천만원 미만인 경우)
  ⑥ 창립사항보고서
  ⑦ 기간단축동의서
  ⑧ 창립총회의사록
  ⑨ 이사회의사록
  ⑩ 이사,감사,대표이사의 취임승낙서
  ⑪ 주민등록등본
  ⑫ 인감증명서
  ⑬ 인감신고서
  ⑭ 위임장 (대표이사 이외의 자가 신청하는 경우)
  ⑮ 등록세ㆍ지방교육세 영수증, 채권매입증명서




2. 법인설립 절차(2/2:실무)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을 설립하려면 상법의 규정에 따라 발기인이 정관을 작성하고 주주 및 자본을 확정한 다음, 이사·감사를 선임하고 회사의 기관을 구성하는 등의 회사 실체구성절차를 거쳐서 본점 소재지 관할 지방법원(또는 상업등기소)에 회사설립등기를 신청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법인설립업무는 그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회사의 실체구성과정에서 법령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문서를 작성하여야 하므로 창업자 본인이 직접 처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무사 사무실에 법인설립업무를 대행하여 주도록 의뢰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법무사에게 법인설립 대행을 의뢰하면 법무사 사무실에서는 정관작성에서부터 설립등기까지 모든 절차를 대행하여 줍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창업자 본인이 사전에 결정하고 점검하여야 할 기본사항들이 있는데, 이러한 법인설립 기본사항과 유의사항 및 법인설립 의뢰시 법무사에게 넘겨줄 서류, 예상 소요비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인이 점검하고 결정해야 할 법인설립기본사항

①본점소재지 결정

 

본점소재지는 회사의 업무를 총괄하는 장소로서 정관에 기재되어 등기됩니다.

②상호 결정

 

상호 역시 등기 사항이며 등기된 상호는 법적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시·읍·면에서 타인이 이미 등기한 상호는 등기할 수 없으므로 본인이 등기하고자 하는 상호가 있는지 미리 조회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동일한 지역에 동일 유사 상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법원 홈페이지 「등기인터넷서비스」에서 상호검색을 하면 쉽게 조회할 수 있습니다.

③ 회사의 목적 검토

 

회사는 정관에 기재된 사업목적 범위 내에서 영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할 때 업태ㆍ종목도 이 범위 내에서 결정됩니다.
정관과 등기부에 기재될 사업목적의 범위는 당장 추진할 사업뿐만 아니라 장래에 하고자 하는 사업까지를 포함하되 각 사업별로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수도권 지역 내에서 등록세가 중과되지 않는 특정업종(소프트웨어사업 등)으로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에는 정관에 해당 업종만 기재되어야 등록세가 중과되지 않으므로 유의하여야 합니다.

④ 자본금 결정

 

상법상 최소 자본금은 5천만원입니다.
그러나 「중소기업기본법」제2조 제2항 규정상의 소기업에 해당하는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에는 「소기업및소상공인지원을위한특별조치법」에 따라 자본금 규모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즉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소기업확인을 받으면 5천만원 미만의 자본금으로도 법인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소기업이란 상시 근로자가 광업, 건설업, 제조업, 운수업의 경우에는 50인 미만 기업, 기타 업종의 경우에는 10인 미만의 기업을 말합니다.
소기업확인에 관한 사항은 각 지방중소기업청(서울의 경우 서울지방중소기업청, 전화 509-7012)에 문의하면 되고, 소기업확인신청서는 중소기업청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⑤ 1주의 금액 결정

 

상법상 1주의 금액은 균일하여야 하며 100원 이상이면 됩니다.
그러므로 1주의 금액은 100원 200원 300원 1,000원 2,500원 5,000원 10,000원 등으로 회사의 실정에 맞게 결정하면 됩니다.

⑥ 발기인 구성 및 청약인 확보

 

발기인은 회사설립을 주관하는 자이고 청약인은 발기인 이외의 자로서 주식을 청약하는 자이며, 상법상 발기인은 1인 이상으로 구성하고 청약인도 1인 이상을 확보하여야 합니다.

⑦ 주식 인수비율의 결정

 

발기인과 청약인은 최소 1주 이상씩 주식을 인수하여야 하고, 인수주식수에 상당하는 주금을 납입하여야 합니다.
주금납입이 완료되면 발기인과 청약인은 회사의 주주를 구성하게 되는데, 회사에서는 주주의 인적사항 (주소, 성명, 주민등록번호 또는 법인등록번호 )과 주식의 종류, 소유주식수 등을 기재한 「주주명부」를 작성해 놓아야 합니다.

⑧ 주금납입은행 지정

 

발기인은 주금을 금융기관에 납입시키고 주금납입은행으로부터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교부받아 설립등기신청서에 이를 첨부하여야 합니다.
주금을 납입할 금융기관은 발기인이 정하여 주식청약서에 기재하면 되고 그 외 특별한 제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무상으로는 사업장 가까이에 있는 은행 중 법인설립등기 후 법인통장을 개설하여 거래할 은행으로 정하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⑨ 임원 내정

 

회사의 기관을 구성하는 이사 , 감사는 창립총회에서 선임하고 이어지는 이사회에서는 대표이사를 선임하게 되는데, 이를 위하여 회사에서는 대표이사 및 이사와 감사를 미리 내정해 놓아야 합니다.
상법상 이사는 3인 이상, 감사는 1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본금 5억원 미만의 회사는 이사를 1인 또는 2인으로 할 수 있습니다.
임원은 주주(발기인 또는 청약인)와 동일인이 아니어도 되므로 주주가 아닌 자를 대표이사나 이사, 감사로 하여도 무방합니다.



(2) 기본사항 점검시 유의할 점

① 법인설립 최소인원

 

모집설립방식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는 상법상 발기인 1인 이상, 청약인 1인 이상이어야 하고, 회사의 기관으로 이사는 3인, 이상 감사는 1인 이상이 되어야 하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기인과 청약인을 설립되는 회사의 이사 또는 감사로 선임해도 됩니다.
그러므로 회사의 임원을 발기인 또는 청약인과 동일인으로 구성하는 경우에 최소 4인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본금이 5억원 미만 법인의 경우에는 이사 1인 이상, 감사 1인 이상으로 하여도 되므로, 이 경우에는 최소 2명의 인원으로도 법인설립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임원을 2인으로 구성하면 이사 1인 감사 1인으로 하여야 하므로 대표이사 등기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원구성을 대표이사, 이사, 감사 각 1인으로 하려면 적어도 3인이 필요하므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소한 3인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 발기인, 청약인의 자격

 

발기인과 청약인의 자격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이나 법인도 가능하며,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으면 발기인이나 청약인이 될 수 있고, 가족 구성원을 발기인이나 청약인으로 하여도 됩니다

발기인과 청약인을 정할 때는 세금체납 여부와 자금조달능력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인을 설립한 후 사업자등록을 신청할 때 주주나 임원이 국세가 체납되어 있으면 세무서로부터 사업자등록을 거부당할 수 있고, 나이ㆍ직업 등을 보아 자금능력이 없는 자를 주주로 구성하게 되면 나중에 관할세무서로부터 자금출처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을 수 있으며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증여세가 부과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자금능력이 부족한 자를 발기인이나 청약인으로 구성할 때는 인수주식수를 명목적인 숫자로 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발기인이나 청약인의 인수주식수는 1주 이상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③ 자본금 규모의 결정

 

자본금이 주주로부터 불입되면 그 자본금은 회사의 업무상의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하고 대표이사나 주주가 함부로 회사자금을 인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세법에서는 회사의 대표자나 주주 등 회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업무상의 용도 외로 자본금으로 불입된 회사의 자금을 인출하여 가면 회사와 특수관계자 양자 모두에게 세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금은 불필요하게 높게 정할 필요가 없으며, 자본금 규모를 결정할 때는 회사운영에 필요한 소요자금 규모와 발기인과 청약인의 자금조달능력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물론 설립하고자 하는 회사의 사업목적이 행정절차상 인ㆍ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업으로서 인ㆍ허가 조건상 자본금이 일정금액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자본금을 그 인ㆍ허가 조건에 맞는 규모로 정하여야 할 것이고, 영업 측면이나 금융거래 측면에서 자본금을 높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에도 자본금 규모는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합니다.

(3) 법무사 사무실에 알려줄 사항과 넘겨줄 서류

소규모 형태의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법무사 사무실에 법인설립절차의 대행을 의뢰하게 됩니다.
법무사 사무실에 법인설립업무를 대행해 주도록 위탁하면 법무사 사무실에서는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법인설립에 필요한 기본사항을 토대로 정관작성에서부터 창립총회의사록 작성까지 법령에 따른 모든 절차를 대행하여 줍니다.

법무사에게 법인설립등기를 의뢰할 때는 창업자가 법인설립 검토단계에서 미리 점검한 「법인설립 기본사항점검표」와 함께 발기인과 청약인 또는 이사, 감사의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 각 2통, 인감도장 및 소기업확인서(자본금이 5천만원 미만인 경우)를 법무사 사무실에 넘겨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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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상 소요비용

법인설립시 소요되는 비용으로는 세금(등록세, 지방교육세)과 채권매입비용 및 기타 부대비용(공증인의 인증료, 법무사 수수료, 기타 제세금과 실비 상당액 등)이 들게 되는데 이들 비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이 세금으로 지출됩니다.

법인설립시 부과되는 세금은 지방세에 속하는 등록세 및 지방교육세로서 이 세금은 설립등기 과정에서 본점소재지 관할 시ㆍ군ㆍ구에 납부하여야 하는데, 기본세율은 등록세가 자본금의 0.4%, 지방교육세는 등록세의 20%이며, 이를 합한 총세금은 자본금의 0.48%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서울특별시를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에는 등록세가 3배 중과되므로 이 경우 등록세는 자본금의 1.2%, 지방교육세는 등록세의 20%로서 총세금은 자본금의 1.44%가 됩니다.

한편 법인설립지가 수도권이라 할지라도 지방세법상 등록세 중과규정 적용이 배제되는 특정사업(소프트웨어사업 등)으로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와 수도권에서 제조업을 5년 이상 영위한 개인사업자가 그 사업을 법인으로 전환할 때는 등록세가 중과되지 않고 기본세율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창업과정에서 법인설립 기본사항을 검토할 때는 등록세가 중과되는 지역인지 또는 해당사업이 등록세 중과규정 적용을 받는지 여부에 대하여 점검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법인설립업무를 법무사 사무실에 의뢰하는 경우 예상 소요비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비용은 개략적인 것으로서 지역이나 법무사의 업무처리범위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


1) 등록세 기본세율이 적용되는 경우

(단위 : 원)

구  분

자본금
2천만원

자본금
3천만원

자본금
5천만원

자본금
1억원

자본금
2억원

등 록 세
(자본금의 0.4%)

80,000

120,000

200,000

400,000

800,000

지방교육세
(등록세의 20%)

16,000

24,000

40,000

80,000

160,000

채권매입비용

5,000

7,500

12,000

25,000

50,000

인증료, 수수료,
실비 상당액 등

599,000

608,500

628,000

755,000

940,000

700,000

760,000

880,000

1,260,000

1,950,000

 


2) 등록세가 3배 중과되는 경우

(단위 : 원)

구  분

자본금
2천만원

자본금
3천만원

자본금
5천만원

자본금
1억원

자본금
2억원

등 록 세
(자본금의 1.2%)

240,000

360,000

600,000

1,200,000

2,400,000

지방교육세
(등록세의 20%)

48,000

72,000

120,000

240,000

480,000

채권매입비용

5,000

7,500

12,000

25,000

50,000

인증료, 수수료,
실비 상당액 등

599,000

608,500

628,000

755,000

940,000

892,000

1,048,000

1,360,000

2,220,000

3,8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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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창업의 형태를 개인사업자로 할까 법인사업자로 할까 하는 것일 것입니다.
개인이냐 법인이냐 하는 것은 사업의 주체로서의 인격을 자연인으로 할 것인가 법인격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서 사업주체의 인격의 형태에 따라 사업활동의 결과에 대한 법률적, 경제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며 이에 대한 의사결정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인기업과 법인기업의 차이점을 실무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비교해 봄으로써 창업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 법인이란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만을 지칭함을 의미하므로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① 창업절차상의 차이점

개인기업을 창업하는 경우에는 법률상 특별한 절차는 필요없습니다. 따라서 창업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사업장소재지 관할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신청하여 사업자등록을 교부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법인기업의 경우에는 법인격을 먼저 취득한 후 법인등기부를 첨부하여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는 것이므로 사업자등록에 앞서 상법규정에 의한 제반절차를 진행한 다음 관할 상업등기소에 법인설립 등기를 마쳐야 합니다.

따라서 창업절차면에서 볼 때는 개인기업이 간편하지만, 법인창업의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과 서류를 갖춘 후 법무사에게 법인설립절차의 진행을 위탁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법인설립이 가능하므로 창업절차가 사업주체의 인격설정에 대한 의사결정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② 창업자금 측면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기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으로 상법상 최저 5천만원의 자금이 조성되어야 하고 법인설립 등기시에는 자본금의 0.48%(서울특별시를 포함한 대도시에서 법인설립등기를 하는 경우에는 자본금의 1.44%)에 해당하는 등록세, 교육세에다 정관인증료 등 법무사 수수료가 들어갑니다.

한편 개인기업의 경우에는 출자금 조성절차가 없으며 별도의 등기비용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호창업이나 인터넷사업 등의 경우에는 무자본 창업도 가능하므로 소요자금 측면에서는 개인기업이 유리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인의 경우에도 상시근로자가 10인(광업, 건설업, 제조업, 운수업의 경우에는 50인)미만의 기업의 경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소기업확인을 받으면 자본금을 5천만원 이하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업자금이 소액이거나 사업의 성격상 큰 자금 없이도 사업이 가능한 소기업의 경우에는 자본금을 명목상의 금액으로 하여 작은 규모로 할 수 있으므로 창업자금 부담측면이 사업주체의 인격체를 결정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③ 사업활동에 대한 법률적, 경제적 효과에 대한 귀속상의 차이점

개인기업의 경우 사업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계약 및 거래에 따른 법률적, 경제적 효과는 전적으로 자연인인 사업자 개인에게 귀속됩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해서 크게 돈을 벌면 그것은 모두 사업주 개인의 몫이며 거꾸로 사업을 해서 큰 손해를 보아도 그것 역시 개인 사업주에게 귀속됩니다. 또한 채권, 채무 등의 법률적 귀속의 측면에 있어서도 사업과 관련된 채권, 채무와 사업 외에서 발생한 채권, 채무의 구분도 없습니다.

즉, 사업상 발생한 채무(조세채무 포함)에 대해서 그 채권자는 사업용 재산이 아닌 사업 외 개인재산에 대해서도 압류, 가압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반대로 사업 외에서 발생한 채무에 대해서도 그 채권자는 사업용 재산이나 사업에서 발생한 채권(미수금)등에 대하여 압류, 가압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법인기업의 경우에는 법인명의로 이루어진 계약 및 거래에 따른 법률적 효력은 원칙적으로 법인 그 자체의 인격에 귀속됩니다. 그러므로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의 채권, 채무는 그 법인의 대표이사나 임원, 주주 등의 개인재산과는 무관하므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인의 채권자가 그 법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법인의 대표이사 등의 개인재산에 압류, 가압류 등을 할 수 없으며 또한 대표이사 등이 개인적으로 진 채무에 대해서도 대표이사 등이 속한 법인의 재산이나 채권에 대하여 압류, 가압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주주에게는 자기가 출자한 주식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지는 유한책임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그 회사가 파산하는 경우에도 주주는 그 주식만 날리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회사가 이익이 발생하면 그것은 결국 주주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수에 해당하는 만큼 주주의 몫으로 귀속됩니다.

다만 법인의 발행주식총수의 51% 이상을 소유(직계존비속 등 특수관계자 포함)하면서 회사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비상장법인의 과점주주는 법인의 체납세금에 대하여 당해 주주 개인재산으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제2차 납세의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개인기업 형태는 사업주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면서 회사를 운영하고 여기서 발생한 손익 역시 사업주 개인에게 전적으로 귀속되는 반면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기업의 경우 주주는 자기가 출자한 주식의 한도에서만 책임지는 형태이며, 경영자인 대표이사나 임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명백한 불법행위나 배임행위가 없는 한 회사경영의 결과에 대한 법률적 책임이 없습니다.

따라서 창업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사업의 리스크가 크지 않으면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는 개인기업이 유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법인기업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창업주가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과점주주 형태의 법인으로 창업하는 경우에는 그 법률적, 경제적 효과가 개인기업과 유사하게 되므로 이 경우에는 창업주가 처한 다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사항입니다.

④ 인허가 절차상의 측면

행정관청에 허가나 등록, 신고를 해야 하는 사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개인기업과 법인기업의 절차상의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허가, 등록, 신고시 사업주체의 인격을 법인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때에는 당연히 법인으로 창업해야 할 것입니다.

⑤ 의사결정 절차상의 차이점

회사경영에 관한 의사결정 절차에 있어 개인기업의 경우에는 특별한 절차없이 사업주의 상황판단에 따라 사업주가 즉각적으로, 탄력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 집니다.

한편 법인기업의 경우에는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은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에서 위임된 권한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상법의 절차에 따라 주주총회, 이사회 등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인의 경우에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그 결정도 쉽지 않으므로 의사결정의 탄력성 측면에서는 개인기업이 법인보다 유리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인기업의 경우에도 그 주주나 임원을 가족이나 친지로 구성하여 우호지분으로 확보해 놓으면 의사결정 절차는 형식에 불과하게 되므로 가족형 소규모기업의 경우에는 법인 형태로 하여도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⑥ 자금조달 측면

개인기업의 자금조달은 전적으로 사업주 개인의 책임과 능력에 따라 사업주 개인의 여유자금과 개인신용에 의한 외부차입의 형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사업자금 규모에 비하여 사업주 개인의 여유자금이 부족하거나 사업주 개인신용이 취약한 경우에는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으로 창업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식회사는 외부의 불특정 다수인으로 부터 주식을 공모할 수 있고 사업성 평가에 따라 법인자체의 신용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기관 차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수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있으나 창업자금이 모자라는 경우나 상품 및 기술개발기간이 장기여서 상당기간 자금이 투입되는 경우에는 법인기업 형태로 창업하는 것이 유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창업자금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형편상 법인으로 창업하기가 곤란할 경우에는 동업형태의 개인기업 즉 공동사업자로 창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공동사업자라 함은 동업자 여러 사람이 자금이나 기술, 노무 등을 출자하여 사업을 운영하고 그에 대한 손익과 책임도 공동으로 지는 형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업자금을 공동으로 출자하여 손익도 출자자금 비율에 따라 분배하기로 하거나 혹은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자는 금전출자 없이 노무만 출자하고 다른 공동사업자는 금전과 노무를 출자하여 공동경영하는 개인기업을 창업할 수도 있으므로 창업자금 조달과 창업주체의 인격결정에 있어서 공동사업자 형태의 개인기업 창업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⑦ 자금운영 측면

자금운영상의 측면에는 법인기업 형태가 개인기업에 비해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기업의 경우에는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금이 부족하는 경우에는 개인사업주가 특별한 절차 없이 즉각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수 있고 가사용으로 급히 자금이 필요한 경우 또는 기타 용도로도 사업에 투입된 자금을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 인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인기업의 경우 법인자금은 원칙적으로 법인의 사업목적 범위 내에서만 운영되어야 합니다.

특히 법인의 특수관계자(주주, 대표이사, 임원, 종업원 등)가 자금을 소정의 절차 없이 불법으로 인출하여 개인용도로 사용하게 되면 횡령 등에 해당될 수 있고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할지라도 급여, 상여, 배당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업무 외 용도로 자금을 인출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는 세법상 법인과 그 특수관계인 양자 모두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창업의사결정에 있어서 자금 운영상의 측면은 중요한 관점에서 다루어 져야 하며 법인기업 형태를 취하는 경우에 사업주 개인자금과 회사자금은 엄격하게 구분관리 되어야 하며 회사의 자금운영을 적법하게, 투명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⑧ 성장전략 측면

사업이 성장산업에 속하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키워서 협회등록이나 주식상장으로 가는 전략이라면 법인으로 창업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술개발에 장기간 소요되는 경우 혹은 사업의 성장성은 있으나 시장이 성숙되지 않아서 사업초기 시장성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일단 개인기업으로 창업하였다가 기술개발이 완료되고 시장이 성숙한 다음 법인으로 전환해도 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럴수록 처음부터 법인으로 출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즉 사업초기 최소한의 자본금으로 법인을 창업하여 기술개발을 진행하면서 회사의 연구개발실적과 업력을 쌓은 다음 그 개발 성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 될 때쯤 제3자 배정방식을 통하여 할증발행 형식으로 증자하게 되면 자본금(액면가 기준)규모를 키우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거액의 자금이 조달될 뿐만 아니라 기존주주의 주식가치가 높아져서 기존 주주는 자본이득(capital gain)을 얻을 수 있고 기존주주의 지분율도 크게 낮아지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업초기에 거액의 기술개발이용이 투입되는 경우에 이를 개발비계정으로 자산으로 처리할 수도 있으며 불가피하게 자산처리할 수 없어서 당기비용 처리함에 따라 결손금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동 결손금은 세법상 결손금이 발생한 년도부터 향후 5년 동안 발생하는 과세소득에서 공제되므로 그만큼 법인세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무제표상 실적추세에 있어서도 사업초기 결손에서 년차적으로 매출과 수익의 증가하는 구조를 띄게 되므로 이런 경우에는 개인기업 창업 후 법인전환보다는 사업의 계속성이 확실한 법인창업이 성장전략상 유리할 것입니다.

⑨ 공신력 측면

회사의 공신력 측면에서는 개인기업보다는 법인기업이 유리한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경우는 행정관청으로 받는 인허가사업 요건이 법인격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있고 관급공사, 관납의 경우나 대기업과의 거래시 그들의 거래 상대방이 법인인 경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거래처나 금융기관 등에 제출하는 재무제표신뢰도에 있어서도 개인기업 보다는 법인기업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경제적 환경입니다.

따라서 사업의 특성상 공신력이 요구되는 경우라면 개인기업보다는 법인으로 창업하는 것이 유리할 것입니다.

⑩ 인격체 유지비용 측면

법인은 인격체가 법인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상법 및 증권거래법 등 관계법령의 절차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고 근거서류를 작성하여 신고, 제출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주주총회 의사회를 소집하여 보고, 의결절차를 거쳐야 하고 법인 등기사항에 변동이 있는 경우 수시로 변경등기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며 주주명부의 작성보관, 명의개서, 필요한 경우 주권 발행 등 주식사무도 많아서 법인인격체의 유지관리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게 됩니다.

세무행정 협력의무에 있어서도 개인기업보다는 법인기업에게 더 강화되어 있으며 세법상 법인에게는 장부의 비치, 기장, 재무제표작성을 의무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산세 역시 개인기업보다는 법인기업에 더 높게 부과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소규모기업의 경우에는 창업주체의 인격결정에 있어서 이러한 측면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⑪ 소득구분 및 소득금액 계산방법의 차이점

현행 세법상 직접세제 체계를 보면 개인기업에게는 소득세법이 적용되고 법인기업에게는 법인세법이 적용됩니다. 두 세법이 모두 소득을 과세대상하고 있지만 소득을 파악하고 계산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소득세법에서는 소득을 발생원천별로 파악하여 구분하고 원칙적으로 소득세법에서 열거한 소득에 대하여만 과세하는 제도(소득원천설, 열거주의 과세방법)를 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득세법에 열거되지 않은 소득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과세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소득세법에 열거된 소득의 경우에도 그 발생원천에 따라 종합소득, 퇴직소득, 양도소득, 산림소득 등으로 구분하여 소득금액 계산방법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인세법은 원칙적으로 소득의 발생원천에 관계없이, 그리고 법인세법에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법인의 순자산(부, wealth)을 증가 시키는 모든 소득을 과세대상(순자산증가설, 포괄주의과세)으로 하고 있습니다.

창업의 인격결정을 위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는 실무상 중요한 사항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소득세법상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상장주식 이나 협회등록주식 등의 매매업, 부동산 매매, 건물신축판매업 등 특수한 업종의 경우에는 이 부분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⑫ 소득세, 법인세 부담 측면

소득세법상 종합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체계는
---------------------------------------------------
과세표준이 천만원까지는 9 %
천만원 초과 4천만원까지는 18 %
4천만원 초과 8천만원까지는 27 %
8천만원 초과분은 36 %
----------------------------------------------------
의 형태이고,

법인세법상의 세율체계는
-----------------------------------------
과세표준이 1억원 까지는 15 %
1억원 초과분은 27 %
-----------------------------------------
입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인사업자의 종합소득세율은 최저9%에서 최고6%까지 4단계 초과누진세율로 되어있는 반면 법인세율은 최저 15%에서 최고27%까지 2단계 초과누진세율로 되어있는데 소득세, 법인세 부담 측면에서 현행 세율체계상 법인이 유리한지 아니면 개인이 유리한지는 소득금액의 크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단순히 세율 측면에서 세부담을 비교해보면 과세표준이 약29백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개인사업자가 유리하고 3천만원를 초과하게 되면 법인사업자가 유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과세표준이란 매출액에서 매입원가와 인건비, 기타 경비 등을 모두 차감한 순이익을 의미하는 개념이며 세금계산은 이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세부담이 매출액 규모에 따라 직접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들어 매출액 대비 소득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비스업 등의 경우에는 매출액이 1억 내외가 되더라도 과세표준이 3천만원을 넘을 수 있으며, 매출액대비 소득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도, 소매업종의 경우에는 5억이 넘는 경우에도 과세표준이 3천만원에 미달할 수 있으므로 매출액이 어느 정도 되면 세부담상 법인이 유리하냐 하는 것은 업종이나 그 사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세법체계 의한 세부담은 개인이나 법인 양자가 동일합니다.
즉 개인기업의 경우에 사업주는 근로소득자가 아니므로 급여의 개념이 없으며 그 해 벌어들인 소득 전체에 대하여 종합소득세율(9%에서 36%까지 다단계 초과누진세율)이 적용되는 반면 법인기업의 경우에는 주주가 임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급여를 받으면 근로소득세가 과세되며 여기에 적용되는 세율은 개인기업의 사업주에게 적용되는 세율과 같은 종합소득세율이 적용됩니다.

또한 법인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하여 법인세가 과세된 후 그 유보금액이 배당을 통하여 주주에게 지급하게 되면 그 주주에게 배당소득세가 과세됩니다.
배당소득은 원칙적으로 종합소득 과세대상이므로 여기에도 결과적으로 개인 사업주에게 적용되는 종합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주입장에서 보면 법인소득에 대하여 15% 내지 27%의 법인세가 부과된 소득을 배당 받으면서 다시 종합소득세를 부담하게 되므로 이는 같은 소득에 대하여 이중과세되는 결과가 되어 전체적인 세부담 측면에서는 오히려 법인기업이 더 불리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법에서는 배당소득이 종합과세되는 경우 이러한 이중과세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법인단계에서 과세된 세금을 공제해 주고 있는데 이를 배당세액공제제도라 합니다.
그러므로 배당세액공제제도가 있는 한 사업주(주주)입장에서 볼 때 이론상으로는 법인과 개인의 세부담은 동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액과 발생소득이 일정수준을 넘는 사업자의 경우 실무상 체감적으로 느끼는 세부담은 법인기업이 더 유리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개인기업의 경우 거기서 발생한 소득을 개인사업주가 개인용도로 인출해가지 않고 회사 내에 유보해 놓거나 사업에 재투자하는 경우에도 그 해에 발생한 소득은 최고세율 36%까지 전액 과세 되는데 반하여 법인기업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법인세 최고 세율 27%만 부담하면 되고 법인소득이 배당되지 않고 사내에 유보되어 재투자, 운영되는 한 추가적인 세부담이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법인소득이 일정부분 사내에 유보되면서 재투자되는 계속기업을 상정하는 경우에는 실무상 법인기업이 개인기업에 비하여 세부담상 유리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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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이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능한 한 가정을 단순화하여 쉽게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법에는 여러가지 예외조항이 있고 사실 판단에 있어서 달리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 적용할 경우에는 관련 세법 조항을 확인하시거나 전문가에게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향신문 2005년 9월 9일 (금)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1. 장보기 사각지대, 달동네


1996년 국내 유통시장 개방 이후 폭발적 성장을 해온 대형 할인점은 ‘시장보러 간다’는 말을 ‘
이마트 간다’ ‘까르푸 간다’는 말로 대체시켰다. 수증기가 뿜어나오는 냉장진열대의 파릇한 채소와 탐스러운 과일, 시식용 흑돼지가 익어가면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 주말 저녁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장을 보는 가족 등 ‘욕망의 분화구’이자 ‘마르지 않는 화수분’으로 정착했다. 빛이 강하면 그늘이 깊은 법. 유통혁명으로 산동네 골목의 구멍가게와 외상장부가 하나둘 사라져 갔다. 떨이를 외치는 시장상인의 신명도 앗아갔다. 중소업체는 ‘권력자’인 할인점에 신음하고 있다. ‘바코드의 마술’에 걸린 소비자는 충동구매와 대량구매로 가계빚만 쌓여간다. 대형 할인점의 그늘은 생각 이상으로 길게 드리워져 가고 있다.

대형 할인점의 폭발적 성장은 유통시장의 지형을 완전히 바꿨다. 할인점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손님을 잃은 재래시장과 구멍가게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골목마다 자리잡고 있던 가게들이 잇따라 폐업, 지역과 계층에 따라 장보기의 사각지대가 생겼다. 동네 구멍가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과 노약자는 ‘더 비싸게, 더 멀리’ 생필품을 구하러 가야 한다.

지난 7일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구멍가게에서 60대 노인이 막소주 1병을 사서 나왔다. 값은 1,100원. 대형할인점이나 할인슈퍼보다 200~300원이나 비싸다. 비싸지 않느냐는 질문에 노인은 “여기가 비싼 줄 알지만 소주 1~2병 사려고 할인점까지 갈 수도 없고 동네 입구의 슈퍼까지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그냥 산다”고 말했다. 그는 “할인점에 가서 왕창 살 물건도, 돈도 없다”면서 “조금 비싸도 외상까지 해주니 여기가 낫다”고 말했다.

중계본동 주민 중 자동차가 있거나 몸에 큰 불편이 없는 주민들은 대개 인근의 이마트나 까르푸 등 대형 할인점을 애용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주민들은 극도로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생활 속에서도 공산품이나 식음료를 산매가에 구입하고 있다.

고추를 다듬던 김순식 할머니(74)는 “없는 살림에 될 수 있으면 안 사먹고 산다. 차도 없고 관절염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니 비싸도 구멍가게서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말했다. 강옥녀 할머니(80)도 “배추나 과일 같은 건 트럭 행상에게 사지만 한두개 살 게 있으면 대충 여기서 산다”고 거들었다.

백성세탁소 주인 유동님씨(49·여)는 “젊고 차 있는 사람들이야 언제 어디서 물건을 싸게 파는지 정보도 있고 거기에 맞춰 대형 할인점도 골라 가지만 노인들이야 멀리 나가질 못하니 비싸도 동네서 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동네 구멍가게들도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갈수록 손님이 떨어지면서 매출이 줄어드는 통에 값을 깎아 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예전엔 꼬박꼬박 새벽시장에서 떼다놓던 채소나 수산물도 냉장시설을 갖추기가 어려운 데다 팔리지도 않아서 매장에서 치운 지 오래다.

한때 번성했던 동네 어귀 재래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손님을 할인점으로 빼앗기면서 식료품이나 잡화 가게들이 점차 사라지고 야채와 과일, 기름, 달걀, 닭고기를 파는 10여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게 숫자가 줄면서 주민들이 살 수 있는 품목들도 점차 줄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웃사촌처럼 살면서 곧잘 ‘외상’을 주던 구멍가게도 문을 닫아 현금이 없으면 라면 한개도 살 수가 없다.

할인점이 가까이 있는 아파트단지도 편리한 것만은 아니다. 일이라도 있어 미처 식료품을 사놓지 못한 가정에서는 아침을 짓는 데 당황하기 일쑤다. 막상 사려고 해도 주위에 두부 한모, 계란 몇개 살 만한 곳이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24시간 편의점의 김밥이나
레토르트 식품과 같은 인스턴트류가 아침 밥상에 대신 올라가고 있다.

중계본동 ‘평화의 집’에 근무하는 장윤영 사회복지사는 “노약자나 장애인들은 원래 소비를 잘 안하지만 필요하면 산매가에 살 수밖에 없어 여유 있는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장애인식 바로잡기 연구소’ 방귀희 책임연구원도 “소량, 소액 물품도 배달해주던 동네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서 생필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이같은 사정은 공동화가 심화되고 있는 농촌 지역일수록 더하다. 전남 강진군농민회 강광석 사무국장은 “면이나 이 단위의 마을 어귀 구멍가게들이 많이 없어졌다”면서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콜라 한병, 초코파이 한개, 라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지금은 읍 소재지까지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마을 구멍가게는 사랑방 역할도 겸했는데 유통의 대형화·독점화 속에 문을 닫으면서 정이 넘치던 문화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곤 소장은 “저소득 빈곤층이 생필품을 살 공간이 줄어들면서 ‘가난한 사람이 더 비싸게 지불(The poor pay more)’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면서 “대형 할인점의 성장을 당연한 시대적 추세로만 여길 게 아니라 저소득층도 편리하게 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유통 구조를 개선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부=김종목·조현철기자〉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2. 뒤바뀐 유통지도


유통 개방 10년은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한 시기다. 서울·지방 할 것 없이 대형할인점이 들어선 곳의 재래시장과 작은 가게 등 약자들은 경쟁에서 이미 낙오했거나 그 대열로 내몰리고 있다. 지방일수록 대형할인점 입점에 따른 타격이 크다. 인구 1백45만7백50명(2004년말 기준)의 대전에는 현재 대형할인점 13개가 자리잡고 있다. 11만명당 1개꼴이다. 지정학적으로 국토 중심부이며 고속철이 지나는 교통의 이점 때문에 특히 1996년 유통 개방 이후부터 대형할인점 진출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대형할인점의 급성장은 특히 재래시장의 고사를 불러왔다. 대덕구에 대한통운마트가 생기면서 신안시장이 없어졌다. 동구 대동 4거리에 GS마트가 들어오면서 대동시장이 사라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재래시장들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3일 오후 대전 동구 중앙시장. 대전지역을 대표하며 전국에서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크다는 이곳 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먼지만 쌓여가는 텅빈 가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중앙시장 송행선 연합번영회장은 “대형할인점이 들어온 몇년 사이 4,141개 점포 가운데 200여개가 문을 닫았으며 빈 가게는 채워지지 않고 늘고만 있다”고 전했다.

빈 가게나 임대를 위해 내놓은 가게 중 많은 수는 시장 유동 인구수에 영향을 받는 식당이나 할인점과 품목이 겹치는 슈퍼·잡화가게 등이었다. 한복·이불·농수산물·완구류 등 전통 품목을 다루는 가게들은 그나마 버티고 있었으나 ‘유지’가 힘겨워 보였다. 과일을 취급하는 부산상회 주인 윤영숙씨(46·여)는 “예전에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시장통에 사람이 많았다”며 “대형할인점이 여기저기 생기고나서 20~30대 젊은 사람들은 아예 발길을 끊었고 40~50대 이상 단골 손님 위주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중구 유천시장은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시장 입구에서 과일 노점을 하는 이복순 할머니(65)는 “예전에는 멀리 지방에서도 이곳에 물건을 사러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근처에 있는
까르푸세이백화점에 가지 여기로는 사람이 안와. 여기 말고 다른 시장도 다 똑같아”라고 말했다. 시장통으로 들어가자 손님과 흥정하는 상인들을 보기 힘들었다. 좌판을 멍하니 바라다보거나 상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어느 점포 사장은 “할인점에서 취급 안하는 물건을 파는데도 몇년 동안 계속 적자에 간신히 연명만 하고 산다”면서 “구멍가게나 공산품 가게들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둔산 등 대전 신시가지의 아파트 상가와 도청 부근의 지하상가 등 기존 상권의 타격도 크다고 한다. 대전
경실련 이광진 사무처장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근처에 대형유통점이 들어오면서 기존 상가내 구멍가게와 할인슈퍼들은 고사했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대형할인점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홈플러스 둔산점이 24시간 영업을 선언하자, 이마트도 지난 4월부터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나머지 대형할인점들도 영업 연장을 고려중이다. 몇몇 대형할인점의 대전 시내 추가 입점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대형할인점의 급성장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할인점 간 경쟁에 생존권 위협과 고통이 더해지자 지역 영세 상인들과 시민단체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대전 경실련, 슈퍼마켓연합회, 대전상인연합회 등은 ▲대형할인점의 지방 출점 제한 ▲영업시간 규제 입법 촉구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대형점의 각종 편법에 대해 눈감아주고 있는 데다 인·허가 간소화, 영업활동 규제완화, 교통영향평가 등 제도 간편화, 입지 규제 완화 등 대형점 지원 정책만 추가로 내놓고 있다”면서 “소상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역 정서에 기대 대형할인점의 입점과 영업을 제한하는 반대 운동이 이곳 소비자들에게는 큰 설득력을 못 얻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존 상인들은 ‘변해야 산다’는 기치 아래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대전 경실련이 2003년 11월 재래시장·전통상가·슈퍼연합회 등과 함께 ‘동네경제살리기추진협의회’를 만들어 기존상가 리모델링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중앙시장도 택배사업, 전자상거래, 점포 통·폐합, 공동구매 등 재래시장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현대화 사업을 추진중이다.

변화를 위한 시도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중앙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금 시장이 눈앞에서 뻔히 죽어가고 있는데도 기존의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을 고수하거나 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3. 납품업체는 할인점의 ‘봉’


국내 유통 시장의 맹주인 대형할인점은 ‘최저가 판매제’에 힘입어 고속성장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할인점에 상품을 대는 납품업체의 고통이 숨어있다. 거래에서 절대강자인 할인점은 납품업체들에 끊임없이 값 낮추기를 요구하고 있다. 값을 내리기 위한 경쟁은 언뜻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모든 부담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불공정 거래가 벌어지고 있다. 또 값이 싸져도 그 이익은 대부분 소비자가 아닌 할인점 몫으로 돌아간다.

◇끝없는 “값 내려라”=국내 유명 할인점에 수영복을 납품하는 업체의 이모 부장(가명)은 “할인점은 한마디로 흡혈귀”라고 말했다. 업체에다 값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판매 부대비용까지 떠넘기지만 자신들은 한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서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그가 말하는 가장 골치 아픈 할인점의 횡포는 저가 납품이다. 할인점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급가 하락 요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2002년에 여성용 수영복 세트를 9만원 전후로 공급했지만 올해는 7만원대에 공급한다”고 말했다. 인건비와 물가는 올랐는데 납품가는 3년새 20% 정도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할인점이 챙기는 판매수수료(마진율)는 20%에서 25%로 오히려 늘어났다.

할인점의 세일 경쟁이 붙으면 가격 하락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ㄱ마트에서 20% 세일하면 ㄴ마트는 30%로 해달라고 요청한다. 겨우 ㄴ마트 요구에 맞추면 다시 ㄱ마트 구매담당자는 “우린 뭘 해줄 거냐. 미끼를 내놓든지 할인율을 더 낮추라”고 압박한다.

그는 “비치볼, 샌들, 튜브류의 미끼 상품을 사느라 5천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면서 “그렇다고 공장을 놀릴 수도 없어 할인점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수저통 생산업체인 ㄷ사는 최근 할인점 납품을 아예 포기했다. ㄷ사 관계자는 “3년전 2,700원 하던 게 지금은 1,400원이다”라면서 “중국의 공장을 인건비가 더 싼 베트남으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수익이 남을 것 같지 않아 물건을 뺐다”고 말했다.

◇납품업체는 봉=최근 들어 할인점마다 자사상표(PB) 상품 판매를 늘리면서 납품업체의 목을 조이고 있다. 할인점마다 납품업체를 통해 PB상품을 위탁생산하면서 생산비와 물류비 등의 정보를 파악, 납품계약에서 가격 조정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일부 할인점은 PB 상품을 위탁생산해 준 업체의 매출액을 떨어뜨리는 현상도 동반한다. 화장실 용품을 생산하는 ㅂ사장은 “겉에 캐릭터를 뺀 비슷한 모양의 용품을 위탁생산해 줬더니 1만2천원 하는 우리 상품보다 5,000원이나 싼 가격으로 매장에 내 놓았다”면서 “판매대도 2배나 큰데다 손님이 많은 에스컬레이터 쪽에 설치하는 통에 우리 장사는 그날로 망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른 업체는 PB 상품의 위탁생산과정에서 할인점이 내야 할 신제품 개발비와 제품에 새기는 캐릭터 사용료까지 부담하고 있다”면서 “이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다반사’”라고 전했다.

납품업체는 할인점에 어렵사리 들어간 뒤에도 다양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백DC’다. 납품업체가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장 청소비, 광고비·판촉행사비, 매장 직원 인건비를 할인점 대신 부담하는 게 백DC다. 보통 매출액이나 납품가의 5~15% 정도 된다.

속옷 업체의 ㅇ부장은 “백DC에는 손님이 물건을 포장하고 남은 박스나 끈을 처리하는 비용과 청소비에다 할인점의 판매직도 아닌 관리직원의 사기진작비까지 들어 있다”면서 “속옷 판매와 무관한 비용인데도 선이자를 떼듯 받아간다”고 하소연했다.

수건을 납품하는 ㅈ사장은 “할인점 마진율에다 ‘백DC’까지 더하면 매출액의 40%가량이 할인점 수수료로 나간다”면서 “수수료를 내리면 소비자들도 더 싼 값에 살 수 있지만 할인점은 납품업체만 쥐어짤 뿐 자신들의 허리띠는 절대 졸라매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재고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게 일반적이다. 이미 납품한 상품은 품질에 하자가 있어야 반품이 가능하지만 규정은 말뿐이다. 할인점에 청포도를 공급하고 있는 ㄴ농원의 ㄱ대표는 “1천만원어치를 납품했으나 다 팔리지 않아 버렸으니 반품한 셈치라면서 3백만원을 빼고 주더라”면서 “속상하지만 내년에도 납품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참는 게 약=납품업체는 횡포를 당하더라도 대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국내유통시장에서 할인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그들을 외면하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다.

“물건을 창고에 쌓아둘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매출의 98%가 할인점에서 이뤄지니 하나라도 더 팔려면 할인점에 들어가야 해요. 치사하지만 할인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하니까요.”(수영복 제조업체 ㅎ부장)

〈기획취재부/ 김종목·조현철기자〉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4. 낭비부르는 할인점


대형 할인점이 가까이 있으면 집값까지 올라간다. 아파트 분양광고에서도 인근의 할인점은 반드시 내세우는 장점으로 손꼽힌다. 시민들은 대개 할인점을 싸고 편리한 쇼핑의 전당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할인점이라고 마냥 싸지는 않다. 채소류를 비롯한 일부 품목은 재래시장보다 훨씬 비쌌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이니 당연히 쌀 것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선호하고 있는 셈이다.

취재팀은 이달초 가정주부와 함께 늘 식탁에 오르는 신선식품의 값을 비교하기 위해 서울의 재래시장과 대형할인점을 동시에 찾았다. 동행한 박순자씨(57)는 17살때부터 가계부를 쓴 34년차 알뜰 주부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소비자물가 모니터링 요원으로 26년째 활동 중이며 서울시 식품감시요원을 13년간 지냈다.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중랑구의 재래시장인 태릉시장. 그는 단골인 길가의 청과물상에서 열무와 아욱을 골랐다. 열무와 아욱 한단에 2,500원과 1,000원씩 냈다. 그가 쪽파를 조금만 달라고 하자 가게 주인은 “500원어치씩은 팔지 않지만 단골이니까…”라며 한 움큼 집어 건네줬다.

그는 이 시장에서 구이용 고등어 한 손(두 마리)을 3,000원에 샀다. 태릉시장에서 지출한 돈은 모두 7,000원. 식구가 부부 둘뿐이어서 이 정도면 이틀은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중랑구 상봉동의 E마트로 갔다. 농산물 매장을 먼저 찾은 그는 야채와 가격표를 번갈아 쳐다본 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숫자”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재래시장에서 1,000원에 구매한 아욱은 한 묶음이 1,980원으로 2배 가까이 됐다. 2,500원에 산 열무도 값이 3,250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는 “값이 비싸지만 양도 적다”면서 “시장에서 산 아욱이면 이틀은 먹을 수 있는데 여기 것은 하루분밖에 안된다. 열무단도 시장것의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산물 매장을 더 둘러보면서 재래시장에서 메모한 값과 일일이 비교했다. 시장에서 1,300원이면 살 수 있는 배추가 할인점에서는 2,480원으로 크기도 작았다. 대파(시장 1,200원)는 1,780원, 적상추(시장 1,500원)는 3,780원이었다. 시장에서 500원어치에 해당하는 부추는 3배가 넘는 1,650원이나 한다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무는 1,880원으로 시장(2,000원)보다 쌌다.

생선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에서 3,000원에 구입한 고등어가 마트에서는 5,800원이라는 가격표가 찍혀 있었다. 그가 시장보다 너무 비싸다고 푸념하자 점원은 “들어오는 가격이 매일 다른데 요즘은 좀 비싸다. 쌀 때는 4,800원에 팔기도 한다”고 얼버무렸다.

장보기를 마친 그는 “품목별로 상세히 비교해 볼수록 가격차가 드러난다”면서 “할인점이 시원하고 깨끗해 상품이 신선해 보이지만 어차피 집에서 씻으면 재래시장 것과 큰 차가 없는데 값은 너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할인점의 최저가 광고는 할인점끼리나 하는 말이지, 결국 소비자에게는 빈말”이라고 지적했다. 신선식품에 관한한 할인점이 포장과 위생, 편리함에서 우세하지만 할인점이 앞세우는 가격경쟁력은 재래시장에 비하면 턱없이 바싸다는 게 그의 총평이었다.

이에 대해 (주)신세계 홍보실 김자영 대리는 “E마트는 가격보다는 품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재래시장 상품과 질적으로 큰 차이를 갖고 있다”면서 “신선한 농·수산품을 직매입한 뒤 즉시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재래시장 가격과 단순히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박순자씨는 할인점에서는 충동구매에 따른 지출이 생각보다 많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남편과 20인치 TV를 구입했다.

전자제품 매장에 ‘할인판매’ 표지가 붙어 있어 물어보니 22만원짜리를 15만원에 판다고 해 “싸니까 일단 사고 보자”는 생각에 샀다는 것이다.

“식구가 2명인 데다 이미 2대가 있어 채널 싸움할 일도 없었는데 덜컥 사고 보니 지금은 집에 사람보다 TV가 많아요. 평소엔 공간만 차지하다가 어쩌다 손님들이 왔을 때나 사용합니다.”

또 할인점에서 시행하는 반짝세일의 유혹도 만만찮다. 갑자기 1,000원짜리 플라스틱 물통을 900원에 판매하기에 한개 구입했다.

집에는 물통이 여러개 있지만 100원 싸다는 말에 ‘당장 필요없는 제품’을 선뜻 사게 되더라는 설명이다. 외국산이나 제철보다 일찍 나온 과일 역시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대표적인 품목이라고 그는 말했다.

“저도 ‘짠순이’라고 소문난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소비가 늘어나니 다른 분들이야…. 꼭 사야 할 물건을 미리 메모한 뒤 할인점에 가지만 언제나 돈을 더 쓰게 돼요. 5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할인점에 가면 보통 7만~8만원은 쓰는 것 같아요.”

그는 할인점을 전혀 이용하지 않던 2002년에 월 평균 50만원가량 들던 부식비가 할인점을 이용하면서 20만원가량 늘었다고 한다. “한달에 서너차례 할인점을 이용할 뿐인데 지출이 부쩍 늘었어요. 장보기가 편리해진 데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과해요.”

〈기획취재부/김종목·조현철기자〉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⑤할인점 저가상품의 비밀


대형 할인점들이 내세우는 광고 문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초특가’ ‘최저가격’ ‘가격파괴’ ‘파격할인’ 등이다. 대형 할인점이란 이름에도 ‘할인’이란 말이 들어가 있으니 할인을 몇 번씩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은 광고와 ‘할인점’이란 이름 때문에 으레 저렴한 줄 알고 ‘대형 할인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할인점’일까?

경향신문 취재 결과 대형 할인점에만 납품되는 상품이 따로 있으며 기존 생필품도 규격·용량을 달리 해 ‘싸게’ 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것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형 ‘할인점’이 아니라 대형 ‘유통점’이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대형 할인점에만 납품되는 상품들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할인점용이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표기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값싼 재질로 만들어-

◇할인점용 제품=공산품 중에는 할인점용 제품들이 따로 있다. 정식 대리점에서는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할인점에서만 판매되는 것들이다. 외관은 비슷하나 품질 차이가 난다. 이 제품들은 할인된 가격이 아니라 애초부터 ‘싸게’ 만든 물건이지만 ‘초특가’ 등 문구 아래 할인된 것인 양 팔리고 있다.

한 유명 자전거 제조업체는 할인점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 까르푸 등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 이 업체의 160개 모델 중 대리점에만 납품하는 것은 100개, 대리점·할인점 모두 납품하는 것은 30개, 할인점용 모델은 30개다.

그러나 이 업체의 홈페이지에서 이들 할인점용 제품에 관한 정보는 검색되지 않는다. 취재팀이 이 업체에 문의했을 때 처음 전화를 받은 직원은 “(할인점용 자전거가) 정상 제품이 아니어서 검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통화한 관계자는 “‘정상 제품’이지만 시중 대리점에는 납품하지 않고 할인점용으로 따로 제작한 것”이라며 “제품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비싼 재질을 쓰느냐 조금 싼 걸 쓰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대리점용으로 만드는 것들은 고급 재질을 쓰며 스틸 강도도 조금 세다”고 설명했다 할인점용 자전거는 결국 ‘비지떡’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이 관계자는 “할인점측에서 싼 제품을 요구하는 데다 기존 대리점 쪽에서도 불만을 제기해 할인점용을 따로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제품도 마찬가지다. LG전자 관계자도 “(할인점에서) 할인점은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니까 가격대를 낮춰서 내놓을 수 있는 할인점용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면서 “대리점과 외관과 기능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나는 제품을 모델명을 달리해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탁기를 예로 들면 기능은 똑같지만 할인점용 세탁기의 경우 외관 재질과 도료가 정식 제품에 비해 싼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할인점 제품은 대리점 것과 기능상 큰 차이가 없으나 ‘조그마한 차이’가 있다”면서 “드럼세탁기는 도어의 재질, 냉장고는 냉장고·냉동고 서랍의 수, TV는 외장 재질이 대리점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할인점이 원하기도-

◇착시 효과 제품들=용량·규격을 달리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착시효과를 일으키게 하는 제품들도 많다. 최근 대형 할인점에 등장한 ‘1.25ℓ’ 코카콜라도 할인점용이다. 980원짜리 이 코카콜라 병 크기는 1.5ℓ병과 큰 차이가 없다.

코카콜라 관계자는 “(대형 할인점에서) 펩시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든 제품”이라며 “펩시가 워낙 가격을 낮춰 받다보니 일반화된 1.5ℓ로는 경쟁이 버거워 1.25ℓ짜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할인점에서 1.25ℓ 마진이 높아 원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소비자에게 1.5ℓ로 보이게 하려고 의도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착시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백세주도 할인점에 납품되는 것은 300㎖, 일반 슈퍼 등에 나가는 것은 375㎖이다. 국순당이 최근 출시한 ‘삼겹살에 메밀한잔’도 300·330㎖로 구분돼 있다. 국순당측은 “용량을 달리해 납품하는 것은 가격 할인 착시효과를 노린 게 아니라 작은 술집들이 대형 할인점에서 술을 구입해 파는 ‘역류’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획취재부/김종목·조현철기자〉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할인점 소비시장, 한국화·토착화로 급성장


유통시장 개방 바람은 유통산업 구조뿐 아니라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예전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던 식료품뿐 아니라 전자·가구·의류 등도 대형 할인점에서 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대형 할인점이 이처럼 소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상공회의소 임복순 유통물류팀장은 “우선 IMF가 값싸고 질좋은 상품을 사는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IMF와 유통 개방이 맞물리면서 대형 할인점이 급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 할인점 급성장에는 ‘한국화·토착화’도 한몫했다. 임팀장은 “일반 공산품에서 신선식품까지 거의 모든 물품에 대해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는 대형 할인점은 외국에서는 찾기 힘들다”면서 “점원들이 위치 안내 등을 해주는 ‘서비스’도 한국 할인점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할인점에서 장보기·쇼핑뿐 아니라 할인점 내 마련된 커피점, 패스트푸드점, 영화관 등 복합문화시설을 통해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한국 할인점의 특징이다.

임팀장은 “외국 할인점들은 매장 인테리어 등 겉치레에 크게 투자를 하지 않는데 비해 한국 대형 할인점들은 백화점처럼 화려한 편”이라며 “이런 점들이 손님들을 계속 끌어들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원들의 서비스, 화려한 매장 등은 결국 상품 가격에 다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임팀장은 “한국 대형 할인점은 서비스나 매장 인테리어 비용 등이 가격에 포함돼 월마트 등 외국의 대형 할인점보다는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부=김종목·조현철기자〉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산매상 도산에 도매상도 설땅 잃는다


대형 할인점의 저가 공세로 산매상들이 몰락하면서 도매상들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대형 할인점의 판매 가격과 도매상이 산매상에 공급하는 가격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동네 구멍가게나 슈퍼 등 산매상이 크게 줄면서 물품을 공급해오던 도매상의 매출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경남동양체인 김두태 사장은 “최근 마산·창원 등 경남 일대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선 뒤 우리가 납품하던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 100곳 중 20곳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산매상이 죽어나니까 우리같은 도매상도 죽을 지경”이라며 “최근에 경남 일대에 물건을 대던 한 도매업체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고 전했다.

그는 “경남의 경우 대형 할인점이 생긴 곳 반경 1㎞ 안은 편의점을 제외한 산매점포들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산매점에 물건을 대던 도매상들이 대형 할인점과 거래를 트지 않는 한 망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주류 도매업자도 “대형 할인점과 직거래를 하고 있는 주류 제조업체들은 큰 상관이 없지만 산매상과 거래하던 주류 도매상들은 산매상들이 줄면서 매출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주류 제조사들도 납품과 관련해 대형 할인점의 요구를 들어주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갈수록 종속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구 및 완구를 납품하는 도매상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한 문구도매업체 ㅈ사장은 “문방구에 공책 한권을 300원에 넘기면 똑같은 공책이 할인점에서는 320원에 판매된다”면서 “문방구에서는 마진을 붙여 400원 정도에 팔기 때문에 할인점과 경쟁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전했다.

개학을 앞둔 2·8월은 문구업계의 대목이지만 최근에는 할인점에 특수를 완전히 빼앗겼다며 울상이다. 할인점은 이 시기에 ‘특가전’을 실시, 거의 도매가와 비슷한 가격에 물품을 내놓아 산매상과 도매상의 판로가 연쇄적으로 막힌다는 설명이다. ㅈ사장은 “IMF를 겪으면서 크게 위축된 도매상들이 이제는 할인점의 성업으로 존폐위기에 놓였다”면서 “10년전 200~300군데 문방구에 물건을 넣었는데 이제는 20~30곳만 상대하며 직원도 10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김종목·조현철기자〉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재래시장 살 길 뭔가


재래시장과 구멍가게 등 기존 상인들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유통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대형할인점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청 김철옥 시장담당 주사는 “1996년 유통 개방 이전이나 대형할인점이 들어오기 전만 해도 그런 대로 괜찮았다”면서 “하지만 개방과 할인점 등장 이후 서비스나 시설면에서 전근대성을 벗어내지 못했고 젊은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부 김미옥씨(33)는 “야채나 과일은 재래시장이 싸다고 하지만 진열이나 서비스를 보면 그다지 신뢰가 안간다”면서 “구멍가게도 마찬가지이며 똑같은 가격인데도 왜 편의점에 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전근대성과 서비스 부실, 경영능력 부족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임실근 전무이사는 “외환위기 이후에 중소 창업이 이어졌지만 사업 기초지식이나 운영 노하우 등이 없어 경영 애로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이들 중소 상인들에 대한 컨설팅·교육서비스와 디자인·설비표준화·운용소프트웨어 등 인프라 개선 작업 등 경영혁신과 고객만족을 위한 종합적인 관리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최장동 이사장은 “구멍가게나 할인 슈퍼를 조직화하고 체질 개선을 하는 등의 기업이미지(CI) 작업을 실시중”이라며 “구멍가게·할인슈퍼 연합이 이루어지면 대형할인점이나 편의점처럼 공동 구매 등을 통해 더 싸게 소비자에게 물건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이사장은 “중소 상인들이 시대를 못따라갔다는 점은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가 대형할인점이나 편의점에는 각종 혜택을 주면서 중소 상인들에게는 별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담배·음료수 팔아 근근이 먹고살죠”


이순금씨(56)는 올해로 20년째 은평구 응암동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가게는
이마트 은평점과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있다. 또 멀지 않은 곳에 까르푸(마포구 성산동)도 영업중이다.

이씨도 여느 곳의 상인과 마찬가지로 대형할인점이라는 대형 폭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씨는 “서른 여덟에 여기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부근 동네 구멍가게 중에 나 혼자 살아남았다”면서 “다른 구멍가게들은 편의점이나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매출도 절반 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씨는 “예전에는 두부같은 식품류와 잡화도 조금 팔았는데 할인점 생기고 나서는 없앴어. 요즘 누가 신선식품을 구멍가게에서 사먹나”라고 말했다. “대형할인점에서 호빵까지 팔아 몇해 전에 호빵 기계를 치워버렸다”고 덧붙였다.

과자류도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씨는 “담배하고 음료수만 팔린다”고 전했다. 대형할인점에서는 담배를 취급하지 않고 냉장 음료수를 팔지 않아 이들 상품이 유일하게 경쟁력이 있는 것들이었다.

이씨는 그러나 찬바람이 불면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여름은 음료수를 찾는 사람도 많고 담배도 많이 팔리지만 겨울엔 나다니는 사람들이 줄어 여름 매출의 절반 가량으로 떨어진다”며 “여름에 번 걸로 겨울에 다 까먹는다. 겨울엔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대형할인점을 원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원망 안해. 몸 건강하고 그냥 좋게좋게 편하게 생각하며 산다”면서 “오히려 이마트 총각이나 아줌마들이 쉬는 시간에 우리 가게로 일부러 와서 음료수니 담배니 팔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마트 직원들은 이씨 가게를 ‘작은집’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이씨와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마트 직원 여러명이 번갈아 들리며 음료수, 빙과류, 담배를 사갔다. 이씨는 “20년째 장사를 하면서도 따로 집 한채 마련 못했다”며 “요즘엔 경기 불황까지 겹쳐 막내 대학 등록금 마련하는 게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사람들이 나보고 ‘또순이’라고 부른다”며 상황이 더 나빠져도 어쨌든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20년 장사 했더니 단골들이 음료수 한두병, 담배 한두갑은 예서 팔아줘. 희망을 갖고 살아야지”라며 눈물을 훔쳐내고 애써 웃어보였다.

〈기획취재부〉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거래 공평치 않지만 납품업체 줄섰다”

대형 할인점의 상품구매 및 마케팅담당자(MD·머천다이저)는 납품업자의 ‘왕’이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든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형 할인점의 MD 김모씨(35·가명)는 12일 “업계의 매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할인점에서 ‘싼값’은 절대적이면서도 유일한 조건이다. 결국 제품을 보다 싸게 공급하고 매출을 늘리려면 납품업체를 닦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익을 늘리는데도 납품업체를 활용한다. 판매비를 줄이기 위해 청소비, 판매직원 인건비를 떠맡긴다. 할인점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는데도 판매 마진율은 갈수록 높아지는 속 이유다. “납품업체에게 ‘우리 덕분에 물류비가 줄고 매출이 늘었으니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말로 비용을 부담시켜요.” 수익은 나누되 비용은 납품업체 한 곳으로 몰아가는 논리다.

“납품업체와 거래가 공평치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를 부담하더라도 납품하겠다는 업자가 한참 줄을 서 있습니다. ‘갑’인 할인점이 손해볼 장사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게 바로 경제잖아요.”

한마디로 할인점이 우월적 지위를 맘껏 ‘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MD 6년차인 황씨가 겪은 ‘경제’의 실태는 놀랍다. 할인점 창고에서 5백여만원어치의 상품을 도난당했는데 그 책임을 몽땅 식품회사가 졌다는 고백이다. “우리 직원이 책임지기엔 버겁다”고 했더니 식품회사 직원이 바로 와서 카드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또 업계에는 ‘연좌제’도 있다. 그는 MD에게 한번 찍히면 다른 할인점에도 납품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같은 할인점에 근무하는 한 MD는 재고를 떠안으라고 했으나 끝내 버틴 농산물 생산업자에게 계약대로 계산해 준 뒤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례적인 상황’은 금세 MD 사이에 소문이 돌고 납품업자에겐 소문이 곧 낙인이다.

그러다보니 납품을 계약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로비가 치열하다. 윤리경영이 강화되면서 ‘떡값’이나 리베이트는 사라지는 추세다. 그러면서 뒷거래는 보다 교묘해지고 있다. 그는 “자동차 할부금을 납품업체에 넘기거나 납품업체의 지분을 받았다는 이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 “공정위 등에서 조사가 나오면 할인점에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라”면서 입단속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공정위 불공정행위 단속 ‘미흡’


할인점과 납품업체간 불공정 거래행위는 극심하지만 관계 당국의 실태파악 및 처벌수위는 미흡하다.

유통과정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감시하는 정부기관은 공정거래위원회. 그러나 납품업체가 호소하는 할인점의 횡포에 비하면 공정위의 ‘조사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 2000년부터 2005년 8월까지 할인점을 상대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를 내린 것은 30건뿐. 과징금 액수도 21억3천여만원(누계)에 불과했다.

납품실태 파악도 미진하다. 공정위가 2004년 9월에 발표한 ‘납품업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납품업체의 44%가 할인점의 거래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시급히 개선돼야할 거래관행으로 ▲경품·할인행사를 위해 낮은 납품가격을 강요(42%) ▲광고비, 인테리어비 등 납품업체 전가(22%) 등이 지적됐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응한 업체는 6,000여 납품업체중 470개에 그쳤다. 응답률 8%인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납품업체의 실태를 분석한 것이다.

공정위 유통거래과 강신민 사무관은 “할인점이 갖고 있는 계약서와 전표 등을 근거로 조사를 하다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대형할인점 빛과그림자]정말 싸기는 쌀까?


‘연중 항시 최저가’를 내세우는 대형할인점 물건이 싸기는 싼가.

경향신문 취재팀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강북 지역의 대형할인점과 그 부근 슈퍼마켓의 생필품과 식음료 가격을 직접 조사했다.

같은 제조사의 같은 상품이라도 규격과 용량이 다른 게 많아 절대 비교는 어려웠다. 이에 따라 생필품 및 식음료의 용량·규격별 가격을 뽑아 비교했다.

조사 결과 가격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대상 생필품·식음료 20개 품목 중 대형할인점과 슈퍼는 각각 10개씩 가격 우위를 나타냈다.

세탁세제의 경우 대형할인점은 CJ 비트 3.5㎏짜리를 1만2천2백원에 팔았다. 부근 슈퍼는 3㎏들이를 1만1천원에 팔았다. 100g당 가격은 각각 348.6원, 366.7원으로 대형할인점이 18.1원 저렴했다.

대형할인점은 LG생활건강(이하 LG)의 수퍼타이(4.5㎏)를 1만1천원, 슈퍼는 5㎏짜리를 6,900원에 팔았다. 슈퍼가 100g당 106.4원 싸게 팔았다.

LG의 섬유유연제 샤프란은 대형할인점(4.2ℓ·4,250원)이 100㎖당 101.2원, 슈퍼(3.1ℓ·3,950원)가 100㎖당 127.4원으로 대형할인점이 가격 우위를 보였다. 옥시의 쉐리는 슈퍼가 100㎖당 14.0원으로 더 저렴했다.

슈퍼는 식기세제인 LG의 자연퐁과 퐁퐁을 대형할인점보다 싸게 팔았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는 슈퍼가, 같은 제조사의 맥심모카골드 믹스는 대형할인점이 가격 우위를 나타냈다. 대형할인점은 해태의 갈아만든배(1.5ℓ)를, 슈퍼는 코카콜라를 싸게 팔았다.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이 지난 8월 강북 지역의 다른 대형할인점과 슈퍼의 생필품 14가지의 용량·규격별 가격을 비교 조사한 결과도 경향신문 조사결과와 비슷했다.

이 조합의 이명식 사무국장은 “대형유통점이 취급하는 물품 3만가지 중 슈퍼와 겹치는 품목이 3,000여가지”라며 “대형유통점들은 슈퍼·구멍가게와 경합하는 3,000품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으나 용량·규격을 하나하나 따져 살펴보면 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슈퍼는 무조건 비싸고, 대형할인점은 싸다는 막연한 추측을 깨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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