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10-05 16:09]
[창간59주년]누가 중산층인가
‘4년제 대학을 나와 40대 초반에 연봉 4천만~5천만원을 벌며 가족들과 함께 20평형대 이상 아파트에 거주.’ 국내 사회학자들이 정의한 기준에 따른 우리 사회의 가장 평균적인 중산층의 모습이다. 그러나 중산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생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봉, 직업 등과 함께 학력, 생활양식, 문화생활 등 ‘무형의 자산’이 어우러져 중산층이라는 계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요한 소득
통계청의 가계소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4인가족 기준)의 월평균 소득은 3백11만원(세전)이다. 중산층 가구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연간 3천7백만원 가량의 소득이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직업군은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6천만원), ‘전문직 종사자’(5천4백만원), ‘기술공 및 준전문가’(4천6백만원), ‘사무직 종사자’(4천2백만원) 등이다. 학력별로는 전문대졸(3천7백만원), 대졸(4천7백만원), 대학원졸(6천1백만원) 등이 해당된다.
가족수로는 2인가족이 2천9백만원, 3인가족 3천5백만원, 4인가족 4천1백만원, 5인가족 4천3백원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중산층에 걸맞은 생활유지가 가능한 것으로 분류됐다.
#필수조건은 내집마련
4년제 대학을 나온 최모씨(34)는 외국계 기업에서 연봉 4천5백만원을 받고 있지만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씨는 “중산층이 되려면 집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세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주택마련을 위해 저축을 하거나 대출받을 필요도 없어 정상적인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가 보유하고 싶어하는 주택은 서울이나 경기 분당·평촌에 있는 시세 1억5천만~2억원의 20평형대 아파트다.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36.4%가 20평형대, 39.5%가 30평형대 주택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문화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은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1987년 ‘6·10 민주화운동’ 대열에 동참했던 ‘넥타이 부대’에서 보듯 진보적 개혁층을 대변하기도 할 만큼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같은 이념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은 소비문화를 통해 다른 계층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1960년대 초반 서울 고급 주택지역의 품목별 보유비율로 볼 때 상류층 품목은 냉장고(17%), 피아노(11%), 승용차(7%) 등으로, 중산층 품목은 카메라(46%), 전축(40%), TV(31%), 전화(39%) 등이었다.
80년대 전 계층이 컬러 TV를 갖게 되면서 승용차(87년 도시 중산층의 40% 보유)가 중산층과 비중산층을 가르는 새로운 기준이 됐다. 2000년 이후에는 비중산층도 50% 가까이 승용차를 보유하면서 휴대전화, 컴퓨터, 초고속인터넷 등 정보화 정도가 중산층을 가르는 새 척도로 떠올랐다.
#맞벌이 중산층의 증가와 교육
여성의 사회진출이 주로 재래시장, 음식업, 봉제공장 등 주변부 일자리에 머물러있던 60~70년대 맞벌이는 도시 서민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맞벌이는 중산층을 구분짓는 또따른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가구당 취업인원은 65년 1.1명, 75년 1.35명에서 지난해에는 1.56명으로 늘어나면서 맞벌이 증가 추세를 반영했다. 특히 소득계층별로는 하위 20% 계층의 배우자 소득 의존도가 85년 2.7%에서 지난해 5.8%로 소폭 높아졌으나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40~60% 계층의 배우자 소득 의존도는 4.6%에서 11.6%로 크게 높아졌다.
또 상류층에 비해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적은 중산층은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투자에 열성이다. 지난해 하위 20% 소득계층이 전체 소비지출의 4.1%를 교육비에 사용했다. 중간 소득계층은 11.8%를 교육비에 쓴 것으로 나타나 상위 20% 계층(소비지출의 12.3%)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시대적 변천
시대가 바뀌면 소비문화뿐 아니라 중산층을 구분짓는 사회·경제적 ‘기호’에도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60년대만 해도 중산층은 초등학교졸, 중졸 이상의 소자본가를 의미하는 개념이었으나 7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쳐 80년대부터는 대졸 이상의 화이트칼라가 중산층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는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퇴직)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비정규직, 상용직이 중산층을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주5일 근무제 확대시행과 웰빙 바람이 불면서 여가와 건강, 다이어트가 중산층 문화의 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강진구기자 kangjk@kyunghyang.com〉
[창간59주년]중산층 기준 10인10색…‘소득’은 공통
중산층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에서는 아직 중산층을 구분짓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의 구성이 자본가나 노동자 계급과 달리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하고, 주관적인 개념인 중산층과 객관적 개념의 중산층 사이에도 상당한 편차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는 1987년 중산층의 기준을 ‘그렇게 잘 살지는 못하나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고, 체면치레할 만큼 교제도 하며 여름 휴가철에 가족 바캉스를 다녀올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했다.
중산층의 개념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객관적 지표로서 중산층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소득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경제기획원(1985년)은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소득기준으로 최저생계비의 2.5배를 제시했고, 현대경제연구소(99년)는 40% 소득계층을 중산층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4인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월평균 1백13만6천원)를 놓고 보면 중산층의 최소 소득은 월평균 2백84만원이 넘어야 하는 셈이다. 반면 현대경제연구소 분류에 따르면 월평균 2백3만~3백62만원의 소득계층이 중산층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소득과 함께 직업(종사상 지위), 주택, 학력 등이 중산층을 구분짓는 객관적 변수로 고려되기도 한다. 직업은 종사상 지위나 업무자율성 정도에 따라 소상공인·전문직 종사자·중간 경영인·사무직 종사자 등이 중산층 범주에 속한다. 주택과 학력은 시대에 따라 기준이 바뀌어왔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87년 학력에 따른 중산층 기준으로 20대는 고졸 이상, 30대는 중졸 이상을 제시했지만 90년대 이후 학력수준이 높아지면서 서울대 홍두승 교수(2005년)는 ‘2년제 대학 졸업’을 중산층을 구분짓는 학력 기준으로 제시했다.
주택도 도시 근로자가구의 평균 주거 전용면적이 96년 15.7평에서 2000년 18.1평으로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자기 집의 경우 20평, 전·월세의 경우 30평이 중산층 주택의 최소기준이 되고 있다.
서울대 홍교수는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자료를 토대로 가구주의 종사상 지위, 교육수준(2년제 대학졸업 이상), 소득(도시가구 월평균 소득 90% 이상), 주택(자가 20평 이상)을 중산층으로 분류했다. 그라나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가구수는 20.8%에 불과했고 3가지 이상을 충족한 가구는 48.8%였다. 반면 단 한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한가지만 충족한 가구는 24.1%로 나타났다.
〈강진구기자 kangjk@kyunghyang.com〉
[창간59주년] ‘중산층’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회정책 개혁의지 긴요-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국민의 정부때부터이다. 국민의 정부는 중산층 붕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해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의 중산층 보호대책을 내놨다.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중산층 붕괴를 막으려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참여정부는 ‘개혁 자유주의 정부’로 규정할 수 있다. 성장보다는 분배위주의 정책을 펴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의지는 갖고 있으나 실천은 미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정치개혁 의지만 보였을 뿐 사회정책의 개혁에는 소홀히해온 게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앞으로 사회정책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중산층 몰락은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주안-
갈수록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는 현상은 우리 경제의 성장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려면 복지예산을 늘리면 된다. 그러나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도 중산층 몰락은 막을 수 없다.
가장 효율적인 중산층 보호대책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또 경쟁력 있는 신산업을 꾸준히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격차도 줄여나가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분배보다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중산층 보호대책이다.
〈오문석/LG경제연구원 상무〉
-사회안전망 구축도 시급-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이미 치유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 소득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특히 부동산 값 급등에 따른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자산가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산층 붕괴보다는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빈곤층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더 시급한 문제다.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성장·분배 정책 동시추구-
중산층 붕괴를 정부의 정책부재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신자유주의 확산도 중산층 붕괴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그러나 중산층 붕괴의 근본적 원인은 전세계적인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가 정보화 또는 지식기반 사회로 급속히 편입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가 정보와 지식의 격차에 따라 소득수준이 결정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같은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급격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부응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성장과 분배정책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지식기반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보와 교육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전주성/이화여대 교수〉
-고소득층 稅부담 늘려야-
참여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위주의 경제정책을 펴 중산층이 붕괴됐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역대정부가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중산층이 엷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조세정책이다. 정부는 조세부담률이 다소 높아지더라도 고소득층에 대한 세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조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득에 따른 세부담 형평성을 높이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중산층 보호대책이자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정리/박구재기자〉
[창간59주년] 전문가 설문 “중산층보다 빈곤층 지원 더 시급” 60%
우리 사회의 중산층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고 있다. 갈수록 벌어지는 계층간 소득과 자산가치의 격차로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저소득층으로만 이뤄진 ‘중산층 공동화(空洞化)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 경제·사회분야 전문가 10명 중 6명은 우리 사회의 중산층 붕괴 정도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10명 중 5명이 신자유주의 영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 10명 중 1명은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성장과 분배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이 4일 창간 59주년을 맞아 국내 경제·사회분야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중산층 몰락, 원인과 대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심각한 중산층 붕괴=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중산층 붕괴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4명은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했고, 2명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 10명 중 6명이 중산층 붕괴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은 단 1명뿐이었고, ‘보통’은 2명이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원인으로는 전문가 10명 중 5명이 ‘신자유주의 영향’을 꼽았다. 규제개혁·기업 민영화·노동시장 유연화·복지부문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 중산층이 몰락하고 20%의 고소득층과 80%의 저소득층으로 양분되는 ‘20 대 80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주장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 2명은 ‘정부의 중산층 배려 정책 부재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1명은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견해를 보였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분야로는 전문가 10명 중 6명이 ‘부동산 등 자산가치’를 꼽았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계층간 자산가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명의 전문가는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조건’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나머지 1명은 소득격차에 따른 ‘사교육의 양극화’도 이른 시일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야=‘참여정부가 의지를 갖고 중산층 보호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전문가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10명 중 4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고, 3명은 ‘매우 그렇지 않다’고 응답해 7명이 정부의 중산층 보호대책이 부실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는 3명에 그쳤고, ‘그렇다’는 의견은 한명도 없었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전문가 10명 중 5명이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려 고용을 통한 소득보전이 이뤄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중산층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전문가 2명은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1명은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산층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가 10명 중 5명은 ‘정부가 성장과 분배 정책을 동시에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전문가는 3명,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는 2명이었다.
◇신산업 창출을 통한 간접지원이 효율적=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한 선진국 모델은 미국식과 유럽식으로 나뉜다. 기업투자와 고용을 확대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미국식 모델이라면 복지예산을 늘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유럽식 모델이다.
전문가 10명 중 6명은 미국식 모델이 우리 사회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유럽식 모델을 꼽은 전문가는 2명이었다. 나머지 2명은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을 병행 추진해야만 중산층 붕괴를 막는 데 효율적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정부가 중산층을 두껍게 만드는 정책을 펴는 것과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빈곤층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 중 어느 정책을 우선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문가 10명 중 6명은 ‘빈곤층의 고통을 먼저 해결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답변했다. 중산층의 붕괴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곤층의 고통을 해결하는 정책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구재기자 goodpark@kyunghyang.com〉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
고영선 KDI 연구위원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박정규 우리은행 부행장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
이창용 서울대 교수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
정해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최공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창간59주년]늘어나는 新빈곤층 지구촌 재앙인가
지난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렸다. 지구 온난화와 아프리카 원조가 핵심 의제였다. 외신은 그러나 회담 자체보다는 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대 사진을 더 많이 전송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4,000여명의 시위대는 ‘반 세계화’ ‘반 부시’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격렬하게 맞섰다. 세계화와 그 형제격인 신자유주의는 세계인을 양극단으로 나누는 기준이 됐다. 이념이나 인종에 따른 대립보다 신자유주의 체제로 혜택을 보는 세력과 피해를 입는 세력간 갈등이 표면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저작권자’인 미국에서는 이같은 맥락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9·11테러’는 21세기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올해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9·11테러’에 버금가는 ‘참혹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9·11테러’는 미국민을 단결시켰지만, 카트리나가 몰고온 재앙은 ‘강대국 아메리카’의 치부를 노출했다. 세계 유일 강대국의 후진국형 풍경과 그동안 숨겨져왔던 내부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부각됐다. 일각에서는 ‘9·11테러’ 이전에 이미 ‘재앙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미국에서 비행기로 여행하려면 국적을 불문하고 큰 불편을 겪는다. ‘9·11테러’ 이후 엄격해진 보안검색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주요 항공사들이 줄줄이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가면서 서비스가 엉망이 됐다. 국내선을 타고 1시간 반을 날아가기 위해 10여시간을 아무런 통보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최근 미국 항공업계 3위인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2002년 UA를 시작으로 줄줄이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가면서 미국 6대 항공사 중 4곳이 파산했다.
항공사 줄파산은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탈(脫)규제화’ 바람이 몰아쳤다. 그러자 항공업계는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그때까지 항로를 적정하게 배분해 기업도 이익을 내고 노동자도 종신고용을 보장받던 상황은 돌연 종료됐다. 항공요금은 내렸고, 대량해고가 잇달았다.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인수·합병(M&A)됐다. 중산층 몫이었던 그 많던 항공업계의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졌다. 고용불안은 중산층을 흔들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항공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미국과 달리 활력이 넘친다. 올들어 소비제품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15% 이상 늘었고, 자동차도 40%나 더 팔렸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6%대다. 4년 전에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그동안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뀌었고, 전국적으로 납치사건이 잇달았다. 그런 아르헨티나의 회생은 놀라울 정도다. 아르헨티나를 되살린 동력은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탈출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국통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크게 늘어난 수출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르헨티나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경제 불안으로 최근 10년동안 전체 인구의 30%가량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몰락했다.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중산층을 복원시켜 놓지 않는 한 최근 아르헨티나의 호황은 반짝경기로 끝나고 말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낙천적인 민족성을 지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지만 3억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 나라인 아르헨티나가 자국민 3천8백만명조차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출신 대통령을 뽑아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며 남미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지만 나라살림은 예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두터운 빈민층은 여전히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이와 달리 소수의 부자들은 자가용 헬리콥터로 여유롭게 이곳 저곳을 날아다닌다. 세계에서 헬기가 가장 많은 나라가 브라질이다.
룰라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며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세계화의 대세는 거역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을 양성하지 않고선 ‘시장’에 대항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지니계수(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는 0.61로 일본(0.25), 미국(0.41)보다 월등히 높다. 또 하위소득 20% 계층이 국내 총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해 중국(5.9%)보다 낮다. 양극화로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어 정치 민주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하면 90% 이상이 스스로를 ‘중류’로 간주하는 일본도 중산층이 위기에 몰려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10년’ 이후 ‘중류 집단 1억명’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식 종신고용 구조는 흔들리고, 봉급생활자가 월급을 모아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재산을 상속받는 것만이 ‘중류’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 중산층도 비슷한 절망을 공유하고 있다. 중산층의 하단을 차지하는 이들이 점점 더 계층상승의 기회를 잃고 있다고 느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즉 미국을 발전시킨 도덕적 핵심원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희망을 꿈 꿀 수 있는 ‘사회계약’의 붕괴는 비단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가 모든 나라의 생존환경을 바꿔놓으면서 중산층 몰락은 가속화하고 있다. 양극화로 귀결하는 ‘바닥을 향한 경쟁’이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는다면 전 세계는 ‘비상구없는 재앙’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안치용기자〉
[창간59주년]소비·교육·부동산으로 본 양극화
-소비 2.7배 차이-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는 소비 관련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의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에 따르면 올 2·4분기 소득상위 20% 계층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3백6만원으로 하위 20% 계층(1백13만원)에 비해 2.71배 많았다. 1995년 같은기간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비지출액(1백75만원)은 소득 하위 20%(72만원)의 2.43배였다. 10년 사이 소득에 따른 소비의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셈이다.
또 올 2·4분기 소득 상위 20% 계층은 매달 평균 1백89만원을 저축하는 반면 최하위 20% 계층은 8만9천원의 빚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개월 후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심리는 월평균소득 4백만원 이상 고소득층만 기준치 100보다 높은 100.6을 기록했을 뿐 1백만원 미만은 87.7, 1백만~1백99만원은 90.4를 나타내는 등 모두 100을 밑돌았다.
-교육비 5.6배 차이-
교육 분야의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4분기 소득 상위 10%인 최상위계층은 한달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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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만8천원을 교재비, 보충교육비, 문구류 등 교육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 최하위 10% 계층이 한달 평균 교육비로 6만4천원을 지출하고 있는 데 비해 5.59배나 많은 것이다.
소득수준 최상위 10% 계층의 경우 교육비가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4분기 7.09%, 2000년 2·4분기 9.28%, 올 2·4분기 10.38%로 꾸준히 작아지고 있다. 반면 최하위 10% 계층은 1995년 7.49%, 2000년 6.54%, 2005년 6.25%로 작아지는 추세다.
이같은 소득별 교육비 격차는 사교육비 지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교육비 구성 항목 중에서 사교육비 지출을 알 수 있는 보충교육비 지출을 보면 최상위 10% 계층은 한달 평균 29만9천원을 지출하고 있는 반면 최하위 10% 계층은 4만2천원으로 7.10배나 차이가 났다.
-총가구 45% 무주택-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는 전국 1천7백77만가구의 45.4%인 8백6만가구가 무주택자이다. 반면 전체의 5%에 해당하는
89만가구가 주택을 2채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체의 0.08%에 불과한 1만4천8백23가구는 11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도 소유 편중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총가구의 1%인 17만7천가구가 전체 사유지의 34.1%를 갖고 있다.
도시근로자가 내집 마련하기도 어려워졌다. 국민은행의 ‘지역별 아파트 평당가격’과 건설교통부의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평당 가격은 2000년 6백51만원에서 2004년 1천1백13만원으로 70.1%, 강남지역 아파트는 1천2백12만원에서 2천4백36만원으로 85.9%나 급등했다.
이에 비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평균 근로소득은 2000년 2천4백12만원에서 지난해 3천2백76만원으로 35.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근로소득 상승률의 2배를 웃돈 것이다.
〈김진우기자〉
[창간59주년] 김용년씨 “이 악물고 ‘밑바닥’부터 배웠다”
샴페인은 흘러 넘쳤고, 미래는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정의 행복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외환위기는 온국민의 삶을 뒤흔들었다. 명예퇴직이라는 낯선 용어가 순식간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김용년씨(57)도 예외일 수 없었다. 국민은행 신제주 지점장이라는 신분도 아무 소용 없었다. 외환위기는 안온하던 은행 지점장의 삶을 뿌리부터 바꿔놨다.
#시련
1998년 1월 은행을 떠났다. ‘명예퇴직자’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실상 명예로운 건 아니었다. 67년 1월부터 근무했으니 꼬박 31년 만이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위안하기도 했다. 선린상고 졸업이라는 최종학력은 더 이상의 진급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과 가족, 직장을 위해 숨돌릴 틈 없이 일했던 세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놓았을 때의 심경은 한 마디로 ‘공황’이었다.
노숙자가 순식간에 늘어나고, 함께 자살하는 가족이 생기고, 공원에는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낮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랜 습관대로 새벽같이 눈을 떴지만 갈 곳이 없었다. 대형서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리를 거닐면 모두 자기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두가지 수련법: 영어와 운동
방황은 깊었지만 길지는 않았다. 그는 어느새 “상상할 수 없었던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미리 대비하자”고 스스로 되뇌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한 무기로 우선 떠오른 건 영어였다. 영어학원 오전 7시30분 강의를 끊었다. 부천에 있는 집에서 새벽같이 달려나왔다. 변두리에 있는 학원가에서 배회하다 눈에 띄면 직장 잃은 게 탄로날까봐 일부러 강남에 있는 학원을 골랐다. 오전 5시간을 영어 속에서 보내고, 점심은 김밥으로 때웠다. 오후엔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미국인 장교부인과 자유 대화를 했다. 이후엔 신촌으로 건너가 오후 6시부터 3시간30분동안 연세어학당을 다녔다. 영어, 영어, 영어. 하루종일 영어 속에 살았다. 50대의 발음은 이미 굳어져 있었기에, 틈틈이 발음 교정 학원에도 다녔다.
99년 8월, 51세의 남자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환율이 높아 가있던 사람도 돌아오던 때였다. 두 자녀는 “누군가 어학연수를 간다면 우리가 가야되는 것 아니냐”며 따졌고, 친구들은 “나이를 생각하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적막한 캐나다에서 1년을 버텼다. 그리고 겨울에 잠시 캐나다에 놀러온 아내는 영어로 잠꼬대하는 남편을 목격했다.
입에 영어가 붙어있었다면, 몸에는 운동습관이 배어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도 워낙 ‘운동광’이었다. 국민은행 산악회 회장이었고, 3년 연속 직장인 등반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스킨스쿠버에도 심취했고 수영 2㎞, 사이클 100㎞, 마라톤 21㎞에 도전하는 철인3종 경기도 2차례 완주했다.
캐나다에선 마라톤에 도전했다. 2000년 8월 열린 밴쿠버국제마라톤을 목표로 수업이 끝난 오후 내내 넓은 공원을 뛰었다. 뛰는 중간중간 처음 만난 캐나다인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언어 구사력을 높이는 건 기본이었다. 하숙집 주인 부부에게 “5시간 안에 들어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의 풀코스 완주 기록은 4시간58분이었다.
#재기
김용년씨는 “지금도 사람을 뽑을 때 휴직 기간이 긴 사람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감점한다”고 말한다. 한번 일하는 리듬을 잃으면 다시 일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귀국한 지 3일만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강남의 한식당인 한우리식당의 지배인으로 일해보라는 제의였다. 은행 지점장에게 음식점 지배인이라니. 잠시 망설였지만, 아내는 “지금 당신이 때를 몰라서 그러는데, 명퇴후 재취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득했다. “은행이 금융서비스라면, 식당은 음식서비스”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처음엔 고급 레스토랑 지배인 행세를 했다. 식당 가운데 서서 점잖게 행동했고, 호들갑스럽게 손님을 맞지도 않았다. 사장은 “여기는 한식당”이라고 질책했다. ‘아차’ 싶어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손님의 차가 도착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고, 돌아가는 손님에게 90도로 인사했다. 꽤 고급 한식당이긴 했지만 손님이 모두 점잖지는 않았다. 여느 종업원 취급하면서 하대(下待)하는 손님도 많았다. 김용년씨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과 있다는 사실을 함께 느꼈다”고 말했다.
#도약
6개월의 현장경험 뒤 관리직으로 옮겨 1년6개월을 더 있었다. 새 전기를 찾고 싶어 사표를 던지고 다시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이번에는 건설업이었다. 생소하긴 마찬가지. 건설시공사인 한국도시개발주식회사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직위는 차장이었다. 처음엔 섭섭했다. 지점장과 차장의 사이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고용주는 “능력이 검증 안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위로했다.
그렇다면 능력을 보여주면 된다. 6개월 만에 부장을 거치지 않고 이사로 승진했다. 주인의식을 갖고 거의 일중독자처럼 일한 결과였다.
그리고 올해 5월 다시 거침없이 사표. 건물을 짓는 시공사인 한국도시개발주식회사에서 토지 매입, 허가 등 모든 절차를 관할하는 시행사 아크파이널로 자리를 옮겼다. 남들은 한번도 어렵다는 퇴직 후 재취업을 3번이나 했다. 그는 충고한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라. 오너의 연령이 아니라 비전을 보라. 자기 동정을 주위에 많이 알려라.”
그 자신이 실천한 철칙이었다. 영어와 운동으로 다지고, 때론 10살 아래 사장의 말을 주군처럼 따르고, 끝없이 지인들에게 자신의 현상황을 알리며 안부를 전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 붙어있을 법한 흔한 문구지만, 여전히 유효한 격언이다.
〈백승찬기자〉
[창간59주년]“뭐든 해야 하는데…두렵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기업 계약직 사원인 정한일씨(가명·47)의 가슴은 더욱 스산하기만 하다.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큰아들을 비롯해 늘어만가는 아이들의 교육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한 계약직 신분…. 기업체에서 명예퇴직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월급은 여전히 그때의 절반이 채 안된다. 그동안 집을 판 돈으로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점차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퇴근길에 ‘이젠 정말 모험을 해봐야지’하며 입술을 굳게 깨물지만 여전히 미로속을 헤매는 것 같다.
#담담하게 받아들인 명퇴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정씨는 1981년 23살의 나이에 이름만 대면 대부분 알 만한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비록 4년제 대학은 나오지 못했지만 부산의 명문 상고를 졸업했고, 품은 꿈도 컸던 정씨는 입사 2년 만에 서울에 올라와 본사에서 주로 근무했다.
자금부 등 핵심 부서에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도 느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진 않지만 큰 걱정이 없었다. 90년대 중반 경기 분당에 32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는 그는 누가 봐도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었다.
직장생활만 모나지 않게 하면 50대 중반에 퇴직해 개인사업을 하면서 노후를 준비하려던 정씨에게 명예퇴직의 회오리가 몰아친 건 2000년 9월이었다. 당시 그가 일하던 회사는 적자가 지속되면서 구조조정 압력이 드셌다. 결국 수백명의 인원감축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전화와 우편으로 명퇴통보를 받았다는 정씨는 “의외로 담담하더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이전에도 회사내에서 명퇴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와 ‘혹시 내가 대상자가 될 수도 있겠거니’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퇴 통보를 받고도 크게 상심하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다만 퇴직 당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이 눈에 아른거렸지요. 너무 실망하거나 기죽지 말고 생활하자고 마음을 굳게 다졌지요. 아이들에게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할 것 있으면 눈치보지 말고 사달라고 조르라’고 얘기했습니다. 괜찮다고 두 손을 잡아준 아내가 지금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파트 팔고 투자했지만…
직장에서 나온 정씨는 택배사업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퇴직 이듬해인 2001년 1월 취업 알선회사 계약직 일자리를 잡게 됐다. 퇴직 당시 3백50만원을 받았던 그로서는 1백50만원의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웠다. 결국 그는 부동산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소득은 계속 줄어들게 뻔한데 주거비·교육비 등 쓸 돈은 갈수록 불어날 게 확실해 뭔가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퇴직금 중간정산금과 명퇴금 8천만원, 어렵사리 구입한 32평형 아파트를 2억원을 받고 판 뒤 경기 안산시로 거처를 옮기고 남은 돈이 밑천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상가의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 관리회사가 2개월 만에 문을 닫으면서 6천만원가량을 날리게 됐다. 또 한번의 실패의 쓰라림을 맛본 것이다.
불과 한 두달 전까지만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한 분당의 아파트 시세를 봤을 때 정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동산 투자에 손대지 않고, 분당 아파트를 계속 갖고 있었다면 수억원은 쉽게 벌었을 터이지만 그는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제 운이 그것밖에 안되는가 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속이 쓰리는 것도 사실입니다(웃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그의 얼굴 한쪽에는 깊은 그늘이 비쳤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그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돌렸다.
#모험을 해보고 싶은데…
정씨는 기업에서 일하다 명퇴통보를 받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급전직하한 데 비하면 자신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고 자위한다. 가정도 화목하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끝없이 추락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어느 순간 ‘바나나 껍질을 밟아 미끄러지듯’ 넘어지는 경우가 그에게 닥치지 말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하철 타고 2시간정도 걸려 출근하는 고된 생활이지만 월 수입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사업으로 큰 손실을 입은 뒤 아파트 처분해 남은 돈 등으로 근근이 버텨왔지만 이제 현금은 1천만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가 메이크업 미용학원에 4개월째 다니는 것도 생활비를 벌 생각에서다.
“결국 제 사업을 해야겠지요.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계약직이라 정규직처럼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회사와 1년 단위로 계약하면서 제시된 월급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정씨의 소망은 크지 않다. 더 이상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바랄 뿐이다. 큰 욕심내고 떼돈을 벌고 싶은 생각을 거둔 지 오래다. 그러나 식당, 부동산중개사무소, 미용실, 세탁소 등 모든 게 넘쳐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화이트칼라가 다른 사무직 직종으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특히 40대는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월급쟁이들은 직장을 잃게 되면 중산층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현실입니다. 고용안정은 중산층 보호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해결책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정씨는 구조조정이란 거센 회오리를 무사히 넘기고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위의 40~50대들을 보면 결코 남 일같지 않다고 했다. 그들 모두가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중년층이기에….
〈오관철기자 okc@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