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동통신회사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있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였어요..

그 날 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 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

이혜영 :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객 :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 (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혜영 : 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고객 : 1234-5678 이요..

이혜영 : 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 : 난 데요.. 빨리 불러주세요..

(어린 꼬마애가 엄청 건방지군..)

 

이혜영 : 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본인 아니시죠?

고객 : 제동생이예요. 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 : 죄송한데 고객 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 후에만 가능하십니다..

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고객 : 제 동생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 :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

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 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동의서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요.

고객 :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네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애의..

부모님을 좀 바꿔달라고 했죠..

고객: 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그 꼬마 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그래.. 빨리.."

아빠 : 여보세요.

이혜영 : 안녕하세요. **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 : 제 아들이요? 6개월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콰당!! 그럼 사실이란말야??)

그 때부터 미안해 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 :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

딸 : (화난 목소리) 엄마가 자꾸 혁이 (가입자 이름이 김혁이였거든요)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 :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혜영 : 아? 예..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변경하셔야 합니다..

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주셔도 가능합니다..

아빠 : 알겠습니다.

(전 감사합니다로 멘트 종료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이혜영 : 죄송합니다. 확인후 전화주십시요.

아빠 : 고맙습니다.

이혜영 : 아..예....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아픔에..

어쩔 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 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 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마시는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

안춥니? 혁아... 아빠 안보고 싶어??"

가슴이 메어 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을 어떻게 보낸 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 임에도 불가하고

앞에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

정말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골드메모리 다운받으셔서 윈도우에서 실행하시면 자동으로 도스모드로 부팅합니다.
골드메모리 S/W가 실행되면 그냥 ESC 누르시고 1시간 정도 기다려서 100% 뜨면 된답니다.
에러 있는 메모리를 그냥 사용하실 경우 사용중 다운,블루스크린,메모리 덤프....등등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PC방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하셔야 하는 S/W입니다.


'살아있는 경영 神'의 일갈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인터뷰

"CEO는 배 부르면 사냥 않는 사자의 절도 배워야"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했던 것이 자본주의지만, 그것이 지나쳐 계속 편리한 것만을 추구한 결과가 이번 금융위기를 낳았습니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인류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77)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일본의 이 원로 경영인이 마침내 인터뷰를 승낙했을 때 기자는 마음이 들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히며, '살아 있는 경영의 신(神)'으로까지 불리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27세 때 맨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전자부품회사인 교세라와 일본의 SK텔레콤 격(格)인 민간 이동통신업체 KDDI 두 대기업을 창업했다. 두 그룹을 합치면 종업원 7만6000여명에 매출이 4조4000억엔(약 58조원)을 넘는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일본 재계의 큰어른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미국에서 기업인들이 가장 만나서 의논하고 싶은 인물이 워런 버핏(Buffett)이라면, 일본에선 단연 이 사람이다. 그의 경영 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시작된 경영 모임 세이와주쿠(盛和塾)에서 그의 강연이 끝나면 젊은 기업인들이 그를 빽빽이 에워싸고 차례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 그를 만나는 의미가 남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윤리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른 지금, "땀 흘려 번 돈만이 진짜 이익"이며 "일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영혼을 닦기 위한 수양의 장"이라는 그의 동양적 경영 철학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는 이윤 추구와 주주 중심주의,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서구식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이상의 '레종 데트르(불어로 존재 이유란 뜻으로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영의 베이스엔 거래처, 종업원, 고객 모두를 사랑해 모두가 잘돼야 한다는 자비(慈悲)의 마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 동안 '자비'라는 말을 다섯 번도 넘게 썼다. 그는 서구 기업 CEO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데 대해 "과거 전제 군주나 할 일"이라고 목소리 높여 비판하며, 성과급과 인력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

하지만 그는 늘 원대한 꿈을 꾸었고 일에 관한 한 양보가 없었던 집념의 경영인이다. 그는 기술 개발을 위해 20년간 새벽 서너 시경에야 사무실을 떠나 '미스터 a.m.(오전)'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내가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일"이라고도 했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이나모리식 조직 관리는 관리에 강하다는 도요타나 삼성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지독하고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아메바 경영이란 회사 전체를 20명 이하의 소규모 조직으로 쪼개 독립 채산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결산을 해서 아메바별 채산이 다음날에는 모두 공개된다. 실적이 떨어진 부문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의 사상의 토대는 불교에 있다. 그는 199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머리를 깎고 불가(佛家)에 입문해 세계 경영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다이와(大和)라는 법명을 받고 탁발 수행까지 했지만, 이듬해 "개인의 철학 추구는 잠시 늦추고 국가의 일에 비중을 두고 싶다"면서 속계로 되돌아왔다.

그의 경영 철학과 인생관을 담은 책들은 국내에도 여러 권 번역돼 출간됐다. '카르마 경영'은 2006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 올해는 LG그룹 CEO들이 각각 선정한, 여름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에 포함됐다. 인간은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하는 그의 경영 철학은 평범하면서도 깊은 진리를 담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그와의 인터뷰는, 일본에 신종플루가 확산된 탓에 몇 달간 연기됐다가 최근 교세라 교토 본사에서 이뤄졌다. 20층 사옥의 18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옆 접견실이었다. 옆쪽 창으로 교토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세이와주쿠에서 후배 기업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소기업 경영자 중에서 경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영이란 것은 아무리 작은 식당을 하고, 야채를 팔아도 모두 부기(簿記)나 회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기나 회계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얼핏 보면 이익이 나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니까 번 돈이 바로 원재료비로 둔갑하기도 하고 설비투자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수익이 안 남는다, 자금이 모자란다, 이렇게 돼버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선 부기, 회계부터 배우고, 혼자서 안 된다면 회계사에게 맡겨서라도 확실히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둘째, 경영자는 어떻게든 이익을 내려 하고, 또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데도 길이 있습니다. 나 혼자 많이 벌면 좋겠다는 자기애(自己愛)만으로 돈을 벌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거래처와 종업원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오래갑니다. 또한 경영자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기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는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정말 인격밖에 없습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질문을 하면 눈을 꾹 감고 듣곤 했다. 처음엔 노령에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날아온 외국인 기자가 하는 질문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듣고, 답을 생각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질문하는 기자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에겐 이 인터뷰도 마음을 닦기 위한 수행의 일부인지 모른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너무 한가한 말 같기도 합니다.

"결코 느긋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경쟁이 아주 치열하고,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 경영은 매우 힘든 일이니까 자신의 회사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일을 곁눈질 않고, 자는 동안에도, 죽을 정도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불교에서 가르치는 자비(慈悲)라고 하는, 남에 대한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함과 동시에 거래처, 종업원, 고객 모두를 사랑해 모두가 잘돼야 한다는 그런 기분을 베이스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자본주의를 약육강식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적자생존(適者生存)이 더 올바른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을 보더라도 사실 약육강식이란 것은 의외로 흔하지 않습니다. 다만 환경에 맞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가의 한 포기 풀과 한 그루 나무까지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가뭄이 와도 비가 올 때까지 견뎌 보자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말라붙어서 시들어 버립니다. 인간처럼 '좀 더 편히 살자', '좀 더 호강을 누리자' 이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적자생존이란 의미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데, 다만 일할 때의 마음은 자비와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불교에서 배운 훌륭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타(利他)'의 경영 이념을 정립했지만, 그가 창업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가 1959년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설립하고 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고졸사원 11명이 혈서를 들고 그에게 찾아와 임금 인상과 장래 보장을 요구했다. 그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마당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가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자네들을 배반한다면 그때는 나를 죽여도 좋다"고 사흘 밤낮으로 설득했다.

그래서 그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는 그때 큰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회사를 차렸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의 생활을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제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처지였는데 말이다. 그는 회사란 직원과 사회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몇 주간의 고민 끝에 '회사는 내 기술을 세상에 알리는 무대'라는 생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전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경영 이념을 정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식 경영의 문제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원래는 미국도 부지런히 무언가 물건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난 10년 동안엔 금융에 특화해 머리를 쓰고 돈을 굴려서 큰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력을 하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금융공학을 통해 금융 신상품, 파생상품을 만들었고, 이것을 넓게 운용하고 레버리지를 이용해 원금의 몇 십 배에 이르는 막대한 이익을 올리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번 돈을 버니 점점 더 돈을 벌려고 하고, 욕망은 더욱 커져 갔지요. 힘을 들이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극단적으로 발전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물론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죠.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근대문명도 그렇고요. 좀 더 풍요로워지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근대 물질문명을 이뤘습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지나쳐 계속 더 편리한 것을 추구했던 인류의 '업(業)'이 이번 위기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선 자본주의 그 자체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공산주의로 바꿀 수도 없고, 다른 시스템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를 해나가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세, 마음, 이것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거기에도 분명히 절도(節度)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지나친 면에 대해서는 법률이나 규칙을 바꾸는 것도 각국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욕망이 있는 한, 아무리 규칙이 있어도 부족합니다.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이와 같이 자연의 절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대기업 CEO나 임원의 거액 연봉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높은 연봉은 그들의 능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확실히 회사가 큰 이익을 냈다면 리더인 CEO와 일부 고위 임원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므로 그만한 돈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금융계에선 극히 소수의 사람이 머리를 써서 거액의 돈을 운용함으로써 거액의 이익을 버니까요. 예를 들어 불과 100명이 수조엔을 굴려 수천억엔을 법니다. 그래서 1000억엔을 벌었다면 그 1할인 100억엔을 받아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900억엔이 남으니까요.

제조업체에도 그런 생각이 확산됐습니다. 교세라는 연간 수천억엔 정도를 벌지만, 전세계 6만명의 종업원이 벌어들인 것이죠. 그러나 그런 이익이 나면 '톱인 내가 1할 정도는 떼도 되지 않나' 생각해 제조업체에서도 거액의 돈, 즉 일반 종업원의 수십~수백배의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러나 과거 봉건주의나 전제주의 시대의 독재국가라면 몰라도 민주주의라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민주주의가 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사고방식은 과거 봉건주의 시대처럼 폭력적인 독재자, 전제군주가 하던 짓과 거의 같은 일들을 지금 다시 시작했어요. 이처럼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가 사회에 거대한 격차를 만들어 낸 것은 사회의 변화를 수렴하는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CEO의 끝없는 욕망이 확산돼 지금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말에 '만족을 안다'는 게 있는데, 이런 겸손한 마음, 그리고 절도(節度)를 아는 마음이 지금 리더들에게 요구됩니다. 위에 선 사람, 즉 리더라는 것은 자기 희생을 보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이 리더가 돼서는 안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리더가 된 조직은 불행한 조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에 대해서도 반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 상여금을 많이 주면 인센티브가 되겠죠. 그러나 문제는 항상 실적이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적이 좋아 월급이 오를 때는 좋지만, 노력을 했는데도 실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월급이 올라 그에 맞게 생활해 왔는데, 실적이 나빠 갑자기 월급을 반으로 줄인다면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했는데도 경기가 나쁘다거나 시장이 좋지 않아 실적을 올릴 수 없다면 속상하겠죠. 그리고 성과급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면 팀워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감정을 도외시한 성과주의는 좋지 않습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표창해서 명예를 줍니다. 또 개인의 월급을 갑자기 크게 올려주지는 못해도 전체적으로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면 자신의 상여금도 올라갑니다. 다시 말해 성과주의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열심히 해서 모두에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표창하는 정도로 보상이 될까요? 그것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 돈을 많이 주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다행히 우리 회사엔 그런 사람이 적습니다. 또한 저희도 회사에 이바지한 사람에게는 승진을 시켜준다든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후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비의 마음입니다. 자기애가 아니라 말입니다. 주위의 사람과 성과를 나누는 기쁨, 이것이야말로 질(質)이 다른 기쁨이고, 아름다운 기쁨입니다."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어려운 기업 환경 속에서 감원(減員)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불경기가 되면 매출이 줄고 적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매출은 줄어드는데도 고정비는 그대로이면 적자를 보게 되죠. 그리고 고정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에선 구조조정에 나서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저는 종업원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므로 어려울 때도 고용을 유지해 왔습니다.

교세라는 이를 위해 불황이 오래 이어지더라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늘 대비를 해왔습니다. 형편이 좋을 때 호강하고 돈을 다 써버리지는 않고 내부 유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주주의 것이니 돈을 벌면 바로 주주에게 배당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기업은 주주의 것만이 아닙니다. 한번 입사한 사람이 회사를 신뢰하면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업은 주주의 것만은 아니고 종업원이나 거래처, 소비자 등 폭넓은 이해관계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주주만 잘해주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데,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은 기업이 번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익을 주주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나누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의 1960년대처럼 극심한 노사 분규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노사 화합이 가능할까요?

"자본주의하의 경영은 개인주의적 사고로 흐르기 쉽습니다. 가능하면 종업원을 싸게 부리면서 돈을 많이 벌어 경영자가 많은 이익을 차지하려는 것이죠. 일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상이 생겨났죠.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업이 경영자만 아니라 종업원의 이익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경영자가 자비의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바탕에 있어야 경영자가 노조의 이해를 받아 노사 관계가 호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노조 사람들도 투쟁할 때 이런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닭이 달걀을 많이 낳아야 하는데, 닭을 때리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노사가 같이 닭을 키우자, 그래서 훌륭한 달걀을 많이 낳게 하자'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늘 이야기하는 공통적인 고민은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중소기업에 인재가 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중소기업 사장 본인 자신이 우수한 인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우수한 인재는 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중소기업 시절에는 역시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밖에 모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수한 인재를 모으지 않으면 회사가 잘 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라도 사장이 그들과 하나가 되어 같이 공부하면서 그들을 우수한 인재로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발전시킨 경영자들이 모두 우수한 인재들이 있어서 대기업이 되었나 하면 그건 아닙니다."

―사람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스스로 잘 타는 자연성(自燃性), 불에 가까이 대면 타는 가연성(可燃性), 그리고 불에 가까이 대도 타지 않는 불연성(不燃性)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연성이나 불연성인 직원을 자연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불연성인 사람은 상대로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정열을 갖고 말하면 동조해 주는 가연성의 사람 이상은 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경영해 이런 훌륭한 회사로 만들고 싶고, 종업원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와 계획을 열정을 갖고 종업원에게 이야기하면 '아 사장님이 그런 생각이라면 나도…'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사장님이 말해도 그렇게 잘 되지는 않을 거야' 하는, 차갑고 정열이 없는 사람은 포기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타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개척해 나가는 자연성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하려는 의욕이 나고 강한 의지를 갖게끔, 종업원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업에 자연성(自燃性) 종업원은 얼마나 될까요? 예를 들어 10% 정도라든지….

(모두 웃음) "글쎄요. 10% 정도라도 아주 잘된 경우가 아닐까요."

―훌륭한 직원으로 키우고 싶다면 엄하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불교에 대선(大善)과 소선(小善)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선(大善), 즉 큰 선(善)은 비정(非情)에 가깝지만, 소선(小善), 즉 작은 선(善)은 대악(大惡)을 낳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오냐 오냐'만 하면 불황기처럼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예를 들어 보겠다"면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너무 귀여워서 고생시키지 않고 '오냐 오냐'만 하면 아이는 잘못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 엄하게 꾸지람을 하지 않으면 인내력도 없고 노력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선이 큰 악을 만든 것이죠.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즉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엄하게 꾸짖고 반드시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정(非情)하고 차갑게 보일 정도지만, 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큰 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항상 직원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응석을 다 받아주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970년대에 태양광 발전 사업에 일찌감치 진출해 계속 적자를 보다가 최근에야 흑자를 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한 이유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저는 에너지 문제가 장차 인류에게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석유나 석탄 이런 화석연료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따라서 고갈되지 않고 재생 가능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세상에 확산됐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몇 개 회사가 이런 에너지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 고생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앞날에 꼭 필요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도 어려움이 닥치면 포기하기 쉬운데, 그런 확신은 어디서 나옵니까? 30년이란 먼 미래의 일이 보이십니까?

"으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질문인데. (그는 한참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늘의 계시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30년 전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필사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열립니다. 제게는 종종 그런 계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답변인데,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기술자 출신인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오랫동안 연구 개발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이 우주 어딘가에 '지혜의 창고'와 같은 장소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무언가를 절실히 바라고 미치광이처럼 몰두하다 보면 그 지혜의 창고로부터 섬광처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찾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토상을 제정해 세계적인 연구자들에게 시상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그런 경험을 공통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데 부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 다각화에는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것과, 전혀 다른 사업에 진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교세라의 경우 재결정 보석이나 의료용 세라믹재료, 절삭공구, 태양열 전지는 전자(前者)의 예가 되겠습니다만, KDDI의 경우는 후자(後者)에 해당합니다. 사업 다각화에 대한 철학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서 창의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루에 하나씩만 더 낫게, 더 잘하게 노력하면 1년만 지나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획기적인 신제품을 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손을 대는 것은 어느 정도 힘이 붙기 전에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힘이 축적된다면 다른 분야에 진출해도 무방하겠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는 성(城)부터 쌓아야 합니다."

그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과 결혼한 일로도 유명하다. 부인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물어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토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해 연구실에서 화인세라믹스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집사람은 저보다 2년 늦게 입사해 연구실 일을 도와주고 있었죠. 그때 저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연구에 몰두하면서부터는 연구실에서 밥을 지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바쁠 때는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죠. 그랬더니 집사람이 가엾다고 봤는지 도시락을 갖다 줬어요. 기쁘게 먹었죠."

―그렇다면 사랑을 먼저 표현한 것은 사모님이셨군요?

"그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불쌍해서 도시락을 갖다 준 것이었겠죠. (웃음) 지금도 그렇지만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日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사재(私財) 출연해 일본의 노벨상 '교토상' 만들어

지난 2007년 일본스미토모(住友)생명보험은 전국의 기업체 사장 2만6000여명에게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고인(故人)이 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소이치로가 각각 1,2위에 올랐고, 3위가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었다. 현존 인물 중에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청춘 시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입시에서부터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결핵에 걸렸다 간신히 나았다. 대학 시험은 1지망에 불합격했고, 고향의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 시험에 번번이 낙방했다. 은사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에 입사는 했는데, 그 회사는 내일 당장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다 쓰러져 가는 회사였다.

그는 인생 역전(逆轉)의 비결을 "마음을 바꿔먹은 데서 출발했다"고 했다.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180도 마음을 바꾸어 일에 정성을 들이고 필사적으로 연구해 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실험에 열중했습니다. 그때 누적시킨 기술과 실적은 훗날 교세라를 일으키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27세 때인 1959년 300만엔을 빌려 목조 창고에서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세운다. 교세라는 세라믹을 소재로 한 전자부품의 제조·판매를 전문으로 하는데, 세계 대형 전자메이커 중에서 교세라와 거래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이다. 휴대전화와 태양광 발전시스템도 만들며 주부들에게는 세라믹 칼로 유명하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공대 출신이지만, 경영 관리로도 명성을 쌓았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분산형 조직과 투명하고 과학적인 회계 시스템이 그것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재고 관리나 현금흐름은 교세라처럼 훌륭한 회사가 드물다"고 말하곤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1984년 미지의 분야인 통신시장에 진출, DDI(현 KDDI의 전신)를 창업해 공룡기업 NTT에 맞서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벌이고 나섰고, 결국 성공한다.

그는 사재(私財) 200억엔을 출연, 일본의 노벨상으로 비유되는 '교토상'을 만들어 시상하고 있다. 그는 "회사는 세습해서는 안 된다"면서 65세이던 1997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엔 교세라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6억엔을 몽땅 대학에 기부했다.

1983년 그의 경영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세이와주쿠(盛和塾)가 설립됐는데, 회원이 5000명에 이른다. 요즘 그는 교세라에 매일 출근해 자문을 해주며, KDDI에도 최고 고문으로 주 2회 자문을 해준다. 이 밖에 사외이사와 고문을 맡고 있는 회사가 하나씩 더 있다고 그는 전했다.

부 파일은 게임 레지를 추출하고 추출한 레지를 병합하는 배치파일입니다.
각각의 레지를 다 수동으로 해줄려다보니 짜증이 나서 오늘 제 매장 피씨 기준으로 작성한 파일입니다.
레지추출.bat화일은 더블클릭을 하면 현재 피씨에 패치되어진 최신 레지를 D:\GameRegi폴더에 각 레지파일로 추출해줍니다.
 레지병합.bat화일은 더블클릭하면 현재 D:\GameRegi에 뽑아져 있는 레지파일을 레지스트리에 병합시켜줍니다.

 
<<응용 1>>
간혹 사장님들 복구돌리면 다시 패치 받는 게임들때문에 짜증나시죠?
이럴때 주기적으로 이넘을 사용하시면 편합니다.
게임 패치후 레지추출.bat파일을 실행해서 패치된 최신 레지를 뽑아줍니다.
다음으로 복구를 돌립니다. 그러면 레지는 예전 이미지를 뜰 당시로 바뀌죠 ^^
이때 레지병합.bat을 한번 실행해주시면 패치후 뽑아둔 레지로 바뀝니다. 이상태로 이미지를 한번 다시뜨던 복구시점을 다시 잡던 하시면 추후 복구해도 게임패치를 다시 받는 일은 없어집니다. ^^

 <<응용2>>
원본작업하실때 아직도 게임들을 다 설치하시나요??? 그럴 필요 없답니다.
게임은 일일히 인스톨하시게 되시면 설치파일 및 기타 잡 찌꺼기가 윈도우에 어쩔수 없이 쌓입니다. 또한 시간도 장난아니죠.
처음 한번만 게임을 까세요.. 그후 레지추출.bat파일을 한번 실행해서 게임 레지를 뽑아두세요...
다음은 과감하게 C드라이브를 포멧해버리십시요.. 그후 윈도우만 까시고 레지병합 한번만 실행해주시면 끝입니다. ^^(D에 깔린 게임은 그대로 있기때문에 여기에 레지만 등록해주면 대부분의 게임은 이상없이 실행됩니다. ^^)

대신 파일을 오른쪽 버튼을 눌러 편집으로 들어가시고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을 사장님들 매장의 게임에 맞게 한번 수정은 해 주셔야 합니다. (요건 제가 못해드려요 ^^;; 스스로~ 스스로~ ^^ )
 혹시 이해가 안되시는건 뎃글 달아주세용 ^^
 절대 제가 올린파일 그대로 더블클릭하지 마세요 ^^ 제 매장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니까요

출처 -

'우리는 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나'

영국 최고 학자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보낸 서한 전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글로벌 금융위기 예측 실패에 대해 사죄했다는 이유로 화제가 된 영국 경제학자들의 서한 전문(원문보기)이 최근 공개됐다.

영국 학사원(BA)의 팀 베슬리와 피터 헤네시 교수가 학사원을 대표해 보낸 이 서한은, 최고 권위의 학술협회인 BA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토론회에서 여왕이 하문한 금융위기 예측 실패의 원인에 대한 견해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서한에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여왕에게 사죄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지만,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아무리 많아도 시스템을 위협하는 커다란 위기 예측에는 취약한 배경을 솔직히 털어놓은 점이 주목된다.
▲ 영국 학사원 학자들이 엘리자베스 여황에게 보낸 서한. ⓒBA

다음은 이 서한의 전문이다. <편집자>

지난해 11월 폐하께서 런던정경대(LSE)를 방문했을 때 상당히 정곡을 찌르는 하문을 주셨습니다. 신용경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2009년 6월 17일 영국 학사원은 폐하의 질문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토론회에는 재계, 금융게, 규제당국, 학계, 정부를 대표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이 서한은 당시 참석자들의 견해와 토론 과정에서 다룬 여러 쟁점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서한이 폐하의 하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위기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형태로, 언제 시작하며 어떤 속도로 확산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의 성격을 예측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기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행동하려는 의지와 당국이 이 문제에 대처할 올바른 수단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금융시장과 글로벌 경제에 존재하는 불균형에 대한 경고는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국제결제은행(BIS)는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적절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계속 드러냈습니다.

영 국은행(BoE)도 1년에 두 번 발표하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이런 우려를 많이 했습니다. 이제 국유화된 영국의 주요 은행 한 곳에만 4000명에 달하는 리스크 매니저가 있었다고 하지만, 특정 금융상품이나 대출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리스크 계산은 대부분 개별적인 금융업무에 한정된 것이어서 보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많 은 사람들이 우려한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례없는 세계적인 경제발전으로 중국과 인도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많은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번영은 이른바 '글로벌 저축 열기'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저축으로 풍부해진 자금은 안전한 장기투자 수익을 낮춘 요인이 되면서 많은 투자자들은 더 큰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영국과 미국 같은 나라들은 중국의 경제발전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많은 상품 가격이 인하되고, 가계와 재계가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졌습니다.

이런 자금들은 영국과 미국의 주택가격 상승을 촉진시켰습니다. 이런 위험을 경고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하 지만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행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금융 천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새롭고 정교한 방안들을 찾아냈다고 믿은 것입니다. 실제로 일련의 신종 금융기법들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시켜 사실상 리스크를 제거했다는 주장들이 나왔습니다. 금융시장 자체가 변했다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시장에 홀렸습니다. 단기적이며 개별적인 리스크 예측에 뛰어난 금융 및 경제 모델들로 인해 이런 견해들은 더욱 힘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델들은 정작 상황이 잘못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환상에 빠져 실상을 외면하는 심리 만연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선발된 은행의 임원들과 공신력 있는 사외이사들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의 판단이 틀리거나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리스크 감시를 제대로 할 능력이 없다고 믿고 싶어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도 자기기만에 빠지고, 그들이 선진경제의 흐름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만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낙관적 분위기가 지배할 때 사태의 진전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계는 낮은 실업률, 저렴한 소비재, 용이한 신용거래의 혜택을 누리고, 재계는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는 혜택을 보았습니다.

은행가들은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면서 전세계에 이런 금융상품을 팔아댔습니다. 정부는 세수가 증가해 학교와 병원 등에 공공 지출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은 낙관적인 분위기를 깨는 증거가 무수히 나와도 부정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초래하게 됩니다. 실질적인 기반이 아니라 환상에 의해 심각한 정도로 진행된 악순환이었습니다.

사태가 터진 뒤 대처해도 된다는 낙관론 지배

리 스크 관리 임무를 맡은 당국들도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파티가 과열될 때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런 말을 하려면 그럴 수단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더 많은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런던 시티(영국의 금융센터)와 금융감독청(FSA)은 글로벌 금융 규제의 모범사례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증 시와 주택시장의 거품은 사전에 막으려 하기보다는 사후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닷컴버블' 붕괴 후 발생한 경기침체를 그럭저럭 헤쳐나간 사례 등도 이런 견해에 믿음을 주었습니다. 사태가 터진 뒤 경제를 구해낼 수 있다는 견해에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낮은 상태에 머물렀고 경제가 과열됐다는 경고 신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국은행의 통화정책위원회는 전례없는 낮고 안정된 인플레이션 기간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크를 피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고려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리스크에 대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통화정책은 경제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예방에 치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시스템 전체를 살필 수 있는 공조 체제 구축해야

그 렇다면 뭐가 문제였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자기 영역에서는 임무를 적절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통상적인 성공 의 잣대로 보면 훌륭하게 일을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각 분야들의 활동이 집합적으로 연결될 때 하나의 당국이 관할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초래된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불균형은 군중심리와 금융 및 정책 분야의 지도자들의 권위와 결합해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개별적인 리스크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지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리스크는 큰 것이었습니다.

요 약하자면, 폐하, 이번 위기가 터지는 시기, 범위, 정도를 예측하고, 막지 못한 실패는, 원인은 여러가지지만, 대체로 영국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명석한 사람들의 집합적인 상상력이 시스템 전반에 가해지는 리스크를 이해하지 못한 실패였습니다.

예측 실패에 대한 폐하의 하문을 접하고, 다시는 폐하께서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도록 영국 학사원은 재무성, 내각, 영국은행, 금융감독청 등이 공조해 전체를 살펴보는 능력을 새롭게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학 사원은 이런 모색을 위해 또다른 세미나를 개최할 것입니다. 이런 세미나의 결과물에 대해 폐하께 보고할 것입니다. 지난해의 사태는 진지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충격이 유익한 것이 될지는 허심탄회하게 이번 사태의 교훈을 분석하고 향후 그 교훈을 적용하는 태도에 달렸습니다.


PRIVATE AND CONFIDENTIAL
STRICTLY EMBARGOED UNTIL SUNDAY 26 JULY 2009 AT 00:01 HRS


Her Majesty The Queen
Buckingham Palace
London
SW1A 1AA
                                                              10 Carlton House Terrace
London SW1Y 5AH
Telephone: +44 (0)20 7969
5200
Fax: +44 (0)20 7969 5300
22 July 2009

MADAM,
When Your Majesty visited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last November, you quite rightly
asked: why had nobody noticed that the credit crunch was on its way? The British Academy
convened a forum on 17 June 2009 to debate your question, with contributions from a range of
experts from business, the City, its regulators, academia, and government. This letter
summarises the views of the participants and the factors that they cited in our discussion, and
we hope that it offers an answer to your question.
Many people did foresee the crisis. However, the exact form that it would take and the timing
of its onset and ferocity were foreseen by nobody. What matters in such circumstances is not
just to predict the nature of the problem but also its timing. And there is also finding the will to
act and being sure that authorities have as part of their powers the right instruments to bring to
bear on the problem.
There were many warnings about imbalances in financial markets and in the global economy. For
example, the 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s expressed repeated concerns that risks did not
seem to be properly reflected in financial markets. Our own Bank of England issued many
warnings about this in their bi-annual Financial Stability Reports. Risk management was
considered an important part of financial markets. One of our major banks, now mainly in
public ownership, reputedly had 4000 risk managers. But the difficulty was seeing the risk to
the system as a whole rather than to any specific financial instrument or loan. Risk calculations
were most often confined to slices of financial activity, using some of the best mathematical
minds in our country and abroad. But they frequently lost sight of the bigger picture.
Many were also concerned about imbalances in the global economy. We had enjoyed a period of
unprecedented global expansion which had seen many people in poor countries, particularly
China and India, improving their living standards. But this prosperity had led to what is now
known as the ‘global savings glut’. This led to very low returns on safer long-term investments
which, in turn, led many investors to seek higher returns at the expense of greater risk.
Countries like the UK and the USA benefited from the rise of China which lowered the cost of
many goods that we buy, and through ready access to capital in the financial system it was easy
- 2 -
for UK households and businesses to borrow. This in turn fuelled the increase in house prices
both here and in the USA. There were many who warned of the dangers of this.
But against those who warned, most were convinced that banks knew what they were doing.
They believed that the financial wizards had found new and clever ways of managing risks.
Indeed, some claimed to have so dispersed them through an array of novel financial instruments
that they had virtually removed them. It is difficult to recall a greater example of wishful
thinking combined with hubris. There was a firm belief, too, that financial markets had changed.
And politicians of all types were charmed by the market. These views were abetted by financial
and economic models that were good at predicting the short-term and small risks, but few were
equipped to say what would happen when things went wrong as they have. People trusted the
banks whose boards and senior executives were packed with globally recruited talent and their
non-executive directors included those with proven track records in public life. Nobody wanted
to believe that their judgement could be faulty or that they were unable competently to
scrutinise the risks in the organisations that they managed. A generation of bankers and
financiers deceived themselves and those who thought that they were the pace-making engineers
of advanced economies.
All this exposed the difficulties of slowing the progression of such developments in the
presence of a general ‘feel-good’ factor. Households benefited from low unemployment, cheap
consumer goods and ready credit. Businesses benefited from lower borrowing costs. Bankers
were earning bumper bonuses and expanding their business around the world. The government
benefited from high tax revenues enabling them to increase public spending on schools and
hospitals. This was bound to create a psychology of denial. It was a cycle fuelled, in significant
measure, not by virtue but by delusion.
Among the authorities charged with managing these risks, there were difficulties too. Some say
that their job should have been ‘to take away the punch bowl when the party was in full swing’.
But that assumes that they had the instruments needed to do this. General pressure was for
more lax regulation – a light touch. The City of London (and the Financial Services Authority)
was praised as a paragon of global financial regulation for this reason.
There was a broad consensus that it was better to deal with the aftermath of bubbles in stock
markets and housing markets than to try to head them off in advance. Credence was given to
this view by the experience, especially in the USA, after the turn of the millennium when a
recession was more or less avoided after the ‘dot com’ bubble burst. This fuelled the view that
we could bail out the economy after the event.
Inflation remained low and created no warning sign of an economy that was overheating. The
Bank of England Monetary Policy Committee had helped to deliver an unprecedented period of
low and stable inflation in line with its mandate. But this meant that interest rates were low by
historical standards. And some said that policy was therefore not sufficiently geared towards
heading off the risks. Some countries did raise interest rates to ‘lean against the wind’. But on
the whole, the prevailing view was that monetary policy was best used to prevent inflation and
not to control wider imbalances in the economy.
- 3 -
So where was the problem? Everyone seemed to be doing their own job properly on its own
merit. And according to standard measures of success, they were often doing it well. The failure
was to see how collectively this added up to a series of interconnected imbalances over which
no single authority had jurisdiction. This, combined with the psychology of herding and the
mantra of financial and policy gurus, lead to a dangerous recipe. Individual risks may rightly
have been viewed as small, but the risk to the system as a whole was vast.
So in summary, Your Majesty, the failure to foresee the timing, extent and severity of the crisis
and to head it off, while it had many causes, was principally a failure of the collective
imagination of many bright people, both in this country and internationally, to understand the
risks to the system as a whole.
Given the forecasting failure at the heart of your enquiry, the British Academy is giving some
thought to how your Crown servants in the Treasury, the Cabinet Office and the Department
for Business, Innovation & Skills, as well as the Bank of England and the Financial Services
Authority might develop a new, shared horizon-scanning capability so that you never need to
ask your question again. The Academy will be hosting another seminar to examine the ‘never
again’ question more widely. We will report the findings to Your Majesty. The events of the
past year have delivered a salutary shock. Whether it will turn out to have been a beneficial one
will depend on the candour with which we dissect the lessons and apply them in future.
We have the honour to remain, Madam,
Your Majesty’s most humble and obedient servants
Professor Tim Besley, FBA Professor Peter Hennessy,
FBA
- 4 -
British Academy Forum, 17 June 2009
The Global Financial Crisis – Why Didn’t Anybody Notice?
List of Participants
Professor Tim Besley, FBA, London School of Economics; Bank of England Monetary Policy
Committee
Professor Christopher Bliss, FBA, University of Oxford
Professor Vernon Bogdanor, FBA, University of Oxford
Sir Samuel Brittan, Financial Times
Sir Alan Budd
Dr Jenny Corbett, University of Oxford
Professor Andrew Gamble, FBA, University of Cambridge
Sir John Gieve, Harvard Kennedy School
Professor Charles Goodhart, FBA, London School of Economics
Dr David Halpern, Institute for Government
Professor José Harris, FBA, University of Oxford
Mr Rupert Harrison, Economic Adviser to the Shadow Chancellor
Professor Peter Hennessy, FBA, 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Professor Geoffrey Hosking, FBA, University College London
Dr Thomas Huertas, Financial Services Authority
Mr William Keegan, The Observer
Mr Stephen King, HSBC
Professor Michael Lipton, FBA, University of Sussex
Rt Hon John McFall, MP, Commons Treasury Committee
Sir Nicholas Macpherson, HM Treasury
Mr Bill Martin, University of Cambridge
Mr David Miles, Bank of England Monetary Policy Committee
Sir Gus O’Donnell, Secretary of the Cabinet
Mr Jim O’Neill, Goldman Sachs
Sir James Sassoon
Rt Hon Clare Short, MP
Mr Paul Tucker, Bank of England
Dr Sushil Wadhwani, Wadhwani Asset Management LLP
Professor Ken Wallis, FB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