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puzzle.loveneti.com/math/essay/142857.html


며칠 전 갑자기 KBS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하는 스펀지라는 방송에서 출연 요청을 하더군요.

그 내용은 142857이라는 신기한 수(?)에 대해 설명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몇 개의 예를 보죠.

142857에 2를 곱하면, 285714이 되어 원래의 수인 142857를 두 자리씩 옮긴 것과 같습니다.

142857에 3을 곱하면, 428571이 되어 역시 142857의 자리를 옮긴 것과 같습니다.

142857 x 4 = 571428, 142857 x 5 = 714285, 142857 x 6 = 857142이 되어 모두 142857의 자리를 옮긴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7을 곱하면 142857 x 7 = 999999가 됩니다. 신기한가요?

방송국에서 요구한 것은 이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송 이틀 전 한밤중에 학교에서 촬영하느라 아주 난리를 쳤죠. PD와 촬영팀만 와서 연예인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만. ^^

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방송국에서 뽑아온 참고 자료에는 그 이유로, 우리가 십진법을 쓰고 있다는 것과 7이 솟수라는 것에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별로 옳은 설명이 아닙니다.

이 현상의 정확한 이유는 1/7을 소수로 나타낼 때 순환마디의 길이가 7보다 1이 작은 6이라는 데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우선 십진법으로 전개를 해야 되고 문제의 수가 솟수가 아니라면 순환마디의 길이가 하나 작게 나올 수 없으므로 앞서의 설명이 아주 엉터리는 아닌 셈이지만, 솟수가 분모인 분수를 십진 전개하였다고 해서 항상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 분명히 올바른 설명은 아니지요.

0. 1 4 2 8 5 7
- -- - - - - - -
7 ) 1 0
7
-- -
3 0
2 8
- -
2 0
1 4
- -
6 0
5 6
- -
4 0
3 5
- -
5 0
4 9
- -
1
이 현상의 이유를 좀더 자세히 써 보면, 오른쪽 나눗셈에서 보듯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나머지로 7보다 작은 수 1~6의 여섯가지가 모두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머지인 1은 처음에 1을 나누는 계산과 마찬가지니까, 결국 소수로 나타내면 이후로 142857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142857에 2를 곱한다는 것은 1/7 = 0.142857142857...의 양변에 2를 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2/7을 계산하는 것은 오른쪽 나눗셈에서 나머지가 2인 경우의 계산과 같고, 그때의 몫은 0.2857 이후에 다시 142857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3, 4, 5, 6을 곱해서 142857이 자리를 옮겨 나타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7을 곱해 999999가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것은 1/7 = 0.142857... = 142857/999999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됩니다. 바로 중학교 때 배우는 "순환소수를 분수로 고치기"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142857의 신기한 현상의 본질은 바로 1/7 = 142857/999999라는 데 있는 셈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촬영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142857에는 더 많은 신기한 성질들이 있습니다.

우선 곱셈의 결과가 자리수를 옮기며 나타나는 현상은 1~6을 곱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42857에 8을 곱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142857 x 8 = 1142856이 되어 언뜻 보기에는 142857이라는 패턴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부터 여섯자리를 끊어 두 수를 더하면, 1 + 142856 = 142857이 되어 다시 142857이 나타납니다.

다른 수를 곱하면 어떻게 될까요?

142857 x 9876543210 = 1410933333350970이고, 뒤에서부터 여섯자리를 끊어서 더하면 1410 + 933333 + 350970 = 1285713이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면 1 + 285713 = 285714이 됩니다.

142857말고는 이런 성질을 가진 수가 없을까요?

1/n을 소수로 나타낼 때 순환마디의 길이가 n-1이 되는 수라면 이런 성질을 갖게 되는데, 이런 수들은 순환 수(cyclic number)로 불리며

    1/17 = 0.0588235294117647...,
    1/19 = 0.052631578947368421...
    1/23 = 0.04347826086956521739130...
    1/29 = 0.0344827586206896551724137931...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17의 경우 순환마디를 적당히 옮겨서 1176470588235294라는 16자리수를 생각하면, 여기에 2~8을 곱한 결과는 원래의 수를 자리만 옮긴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럼, 이런 순환 수는 무한히 많이 존재할까요? 수학자들은 아마도 그럴 것이며, 소수 전체에 대한 비율이 약 37%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증명이나 반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42857과 관련된 신기한 현상 몇 가지를 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도 있습니다.

    142 + 857 = 999, 14+28+57 = 99
이것은 Midy의 정리의 결과입니다. 또, 다음과 같은 덧셈도 성립합니다.

1 4
2 8
5 6
1 1 2
2 2 4
4 4 8
8 9 6
...
- - - - - - - - - - - - - ---
1 4 2 8 5 7 1 4 2 8 5 7 ...
 
7
3 5
1 7 5
8 7 5
4 3 7 5
2 1 8 7 5
1 0 9 3 7 5
...
--- - - - - - - - - - - - -
... 7 1 4 2 8 5 7

왼쪽 것은 14에서 시작하여 2씩 곱한 다음 두 자리씩 밀어 가며 더한 것이고, 오른쪽 것은 7에서 시작하여 5씩 곱한 다음 한 자리씩 당겨 가며 더한 것입니다.

이 현상은 등비급수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생략. ^^;

마지막으로 142857과 관련된 신기한 성질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142857을 제곱하면 20408122449이 되는데, 뒤에서부터 여섯자리를 끊어 더하면 20408 + 122449 = 142857이 되어 원래의 수가 됩니다.

이것은 인도의 수학자 Ramachandra Kaprekar가 발견하여 그의 이름을 따 "Kaprekar 수"로 불립니다. Kaprekar 수의 예로는

    1, 9, 45, 55, 99, 297, 703, 999, 2223, 2728, 4879, 4950, 5050, 5292, 7272, 7777, 9999, 17344, 22222, 38962, 77778, 82656, 95121, 99999, 142857, 148149, 181819, 187110, 208495, 318682, 329967, 351352, 356643, 390313, 461539, 466830, 499500, 500500, 533170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452 = 2025, 20+25 = 45입니다.

그나저나, 여기저기 방송 나온다고 전화를 해 놨는데, 이런 세상에!!!

방송일인 토요일 점심 무렵 스펀지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촬영분이 방송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이죠. 아예 이 아이템 자체가 빠져 버렸더군요. T_T

출처 - 동아일보 2005-08-29 04:15

<1>가정의 외딴섬, 家長

《대기업 부장 안모(46) 씨에게 올해 8월은 유난히 힘들었다. 해외투자와 인수합병 등 회사 업무가 과중한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집에서 생겼다. 업무와 무더위로 심신이 지쳐 있던 어느 날, 식탁에서 중3짜리 외동딸에게 꾸중을 했다가 집안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에게 화난 일 있어? 왜 밥상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니. 그리고 어른들 앉아 계신데 저만 밥 다 먹었다고 혼자 일어나기야?” 딸은 대답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이어지는 아내의 말이 안 씨의 가슴을 후려쳤다. “당신, 그렇게 말해 봤자 권위 안 서요.”

아내는 작심한 듯 불만을 쏟아 냈다. 가장 스스로 가족에게 시간을 안 내주면서 딸 버릇 가르치려 하느냐, 쟤가 아빠 얼굴이나 보면서 큰 애냐, 당신은 밥상에서 분위기 띄운 적 있느냐, 쟤도 내년부터는 고등학생이라 올해가 가족과의 마지막 휴가여행일 텐데 당신은 휴가 계획도 못 세우고 있지 않느냐, 당신이 돈 버는 것 말고 가족한테 해준 게 뭐냐….

“깜짝 놀랐죠. 한번도 한눈팔지 않고 달려 왔는데, 가족들도 일에 대한 저의 헌신이 오로지 가족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 성적표는 단지 ‘돈 벌어주는 아빠’란 한 과목에서만 과락을 면했더군요. 저는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들은 저와 다른 집 가장을 여러 면에서 비교하고 있더군요. 주말마다 함께 여행 가는 아빠, 방학 때마다 해외연수 보내 주는 아빠, 퇴근 후 함께 산책하는 남편….”

그러나 안 씨는 이제 와서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컴퓨터와 영어 실력으로 무장한 후배들이 밀고 올라오는 가운데 ‘시간과 노력을 100% 바치는 것’ 외에는 일터의 경쟁에서 당해 낼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몸 바쳐 돈을 버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쌓인 가족의 불만 앞에서 당황하는 안 씨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가장들이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밤낮없이 일하며 젊음을 다 보내 버린 가장들은 이제 ‘빵점 가장’으로 낙인찍힌 자신을 발견하고는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G사의 최모(53) 부장은 “젊음과 건강, 저 자신의 행복은 포기한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일했는데 그런 ‘희생’이 가족들에겐 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행복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 허망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중년 남성들이 자랄 때 아버지란 생계를 책임지고 집안의 큰일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존재였죠. 지금의 가장들은 자기가 보고 자란 역할 모델을 충실히 따랐지만, 가족과 세상은 여기에 덧붙여 ‘시간을 내주는 아빠’ ‘대화하는 아빠’ 등 다양한 역할을 원하고 있습니다.”(강학중·姜호中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생계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1960, 70년대를 지나 자녀교육, 재테크, 참살이(웰빙) 문화 등이 가정의 우선순위 과제가 되면서 소득 활동이라는 ‘가정의 기본 업무’를 담당해 온 가장의 결정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많은 남성은 ‘Something(대단한 무엇)’에서 ‘nothing(별것 아닌 것)’으로 오그라든 자신의 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채 문화적 충격 속에 괴로워하고 있다.

건축공무원 김모(46) 씨는 수년 전부터 집안에서 주눅 든 채 생활하고 있다. 서울 강북의 아파트에 살았던 2000년 초에 부인은 “빚을 내서라도 강남의 대치동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씨는 ‘건축 규제가 어떻고, 건설 동향이 어떻고’ 하며 부인의 말을 무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대치동 아파트 시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뒤 자연스럽게 집안의 모든 결정권은 부인에게 넘어갔다.

“저도 건축 관련 업무를 해 왔지만, 일에 쫓기다 보면 실제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젬병이기 십상입니다. 아이들 학부모회나 주부들 입소문을 통해 전파된 ‘아줌마 정보’가 훨씬 현실적이고 미래를 내다봤던 거죠.”

은행원인 장모(47) 씨는 최근 경기 구리시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이동 발령을 받았다.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느라 매일 두 시간 이상씩 길에서 허비합니다. 아내가 구리시의 집 근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데, 공부하는 아이들 신경 쓰며 일까지 하려면 제가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영등포구로 이사하자는 제안도 해보았지만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을 전학시키려고 하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가정에서의 소외감 때문에 일탈하는 남성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회사원 한모(42) 씨는 최근 직장 동료와 바람피우면서 여관비 등을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휴대전화 통화 기록도 지우지 않았다. 당연히 부인에게 들켰다.

한 씨를 심리상담 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뒤늦게 경제활동에 나선 부인의 수입이 남편보다 많았으며 빨래나 식사 준비 등을 주로 남편이 했는데, 부인이 가끔 남편에게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했다”며 “한 씨가 바람피운 동기엔 부인에게 ‘한 방 먹이려는 심리’가 컸고 그래서 차라리 ‘사고를 친 게’ 발각됐으면 하는 심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채기(鄭菜基) 한국남성학연구회장은 “남성의 소외 현상은 한국 사회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며, 현대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역할이 전체적으로 변하는 물결의 일환”이라며 “가장을 비롯한 가족들이 고립된 벽에 갇히지 말고 서로의 고민과 불만, 집안일까지 적극적으로 털어놓고 나누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2>자식, 등 돌린 애물단지      [동아일보 2005-08-30 03:55]

《S병원 홍보팀장인 박모(47) 씨는 3년 전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1억2000만 원을 받았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적금 등 재테크를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둘째 유학 보냅시다.” 아이들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박 씨를 쳐다봤다. 결국 2003년 12월 초등학교 4학년짜리 둘째와 아내를 캐나다 토론토로 보냈다.》

그때부터 시작된 ‘기러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큰딸(현재 고2)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애 딸린 홀아비’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둘째 조기유학에 퇴직금의 절반인 6000만 원을 썼다. 나머지 6000만 원도 큰딸의 대학 입학 후 해외연수를 약속했기 때문에 사실상 ‘저당’ 잡힌 상태.

“3년 전 아내와 아이들의 시선이 잊혀지지 않아요.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자식의 미래는 망쳐도 개의치 않는 아빠가 아니냐’고 따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노후보장 적금이 가당하기나 합니까?”

우리 사회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평생 애프터서비스’ 제도가 있다. 자식에 대한 무제한의 뒷바라지 의무가 그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챙길라치면 ‘이기적인 아빠’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게 이 나라 ‘보통 아빠’들의 현주소다.

최근 ‘비동거 가족경험-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란 박사논문을 발표한 연세대 대학원 최양숙(崔亮淑) 씨는 “한국 사회엔 성장한 자녀가 독립하는 시스템이 결여돼 있다”며 “가장에게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주어지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가족문화”라고 설명했다.

자녀가 고교만 졸업하면 자립하는 게 당연시되는 서구의 기준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미 어른이 된 자식 뒷바라지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다.

택시운전사 이모(48) 씨는 대학 1년을 휴학하고 군복무 중인 아들을 얼마 전 면회하고 온 뒤 걱정이 늘었다. 이제 한시름 놨나 싶었는데 아들 녀석이 10월에 제대하면 전공을 바꾸기 위해 대학입시를 다시 보겠다고 ‘통보’한 것. 게다가 고3인 딸은 “대학에 들어간 뒤 1년간 해외연수를 시켜주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단 “그렇게 하자”고 말했지만 그 비용을 어떻게 댈지 막막하기만 하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禹鍾敏) 교수는 “심리적으로 가장과 자식이 상호의존적인 상태에서 가장의 재정적 뒷바라지를 서로가 ‘애정의 증표’로 착각하곤 한다”며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자식이 성장한 뒤에도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걸 당연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대다수 아버지는 그 같은 무제한의 애프터서비스를 ‘행복한 희생’이라고 여기며 기꺼이 감수하는 분위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들을 정작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자식 뒷바라지에 휘는 등뼈가 아니다. 최근 들어 가족간의 끈이 급격히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자녀들은 갈수록 아버지에게 냉랭하고 계산적으로 되고 있다.

재정적으론 아버지에게 계속 의존하면서도 그 밖의 문제에선 자신의 영역에 아버지가 끼어들 여지를 거의 남겨 두지 않는 것이다. 예전의 아버지들은 자식에 대한 헌신의 대가로 그래도 밀접한 부자·부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 중년 남성들에겐 헌신만 요구될 뿐이다.

1남 1녀를 둔 최모(58) 씨는 요즘 자식들에게서 ‘왕따’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년 전 아들이 결혼할 때 ‘1년만 같이 살다 독립하면 어떻겠느냐’고 운을 떼려다 씨도 먹히지 않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해달라는 건 다해 주며 키운 아들이었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학연수에 대학원까지 보내줬는데…. 최 씨는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빚을 얻어 아들의 신혼살림집 전세금과 혼수를 마련해 줬다. 하지만 같은 서울에 사는 아들 부부는 특별히 부모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도 두세 달에 한 번밖에 얼굴을 안 보여 준다. 2세 출산 계획에 대해 충고하려다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며느리의 얼굴에 ‘다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쓰여 있는 듯해 입을 다물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자기 주장이 세진 아내와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지자 딸은 엄마가 안쓰러운지 아빠에겐 아예 말도 걸지 않는다. 요즘 최 씨는 이미 여러 세대 전부터 수많은 아버지가 했던 의미 없는 푸념을 되풀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품 안의 자식이지, 다 필요 없어….”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曺恩) 교수는 “한국 가족은 외형만 근대적이지 실제로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선 정립된 가치가 없는 상태”라며 “사회 전체적으로 자라나는 세대에 자립심을 키워주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權俊壽) 교수도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자립심을 키워줘서 성인이 되면 홀로 서도록 해야 한다”며 “아버지가 무한 책임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때 아내 및 자녀들과 민주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땅의 상당수 아버지는 ‘다 필요 없다’는 그 자식을 위한 메아리 없는 희생을 계속할 것임에 틀림없다.

“썰렁한 집안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가족은 같이 살아야죠. 기러기 생활을 했다가는 금세 가족이 공중분해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홍보대행사 임원인 김모(44) 씨는 요즘 기러기 아빠가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내가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두 딸의 조기 유학 얘기를 꺼낸 것은 지난해. 김 씨가 계산해 본 결과 매년 1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돈도 돈이지만 기러기 생활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김 씨는 머잖아 자신이 뜻을 굽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유학 비용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계획이다. “자식 이기는 아버지 있습니까?”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3>3번아 찾지마라 6번은 간다     [동아일보 2005-08-31 14:45]


《“예전에 탑골공원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면 ‘왜들 저러고 계신가. 친구들이라도 만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머지않아 나도 저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3년 전 은퇴한 김모(57·서울 종로구 창신동) 씨는 함께 소일할 친구가 없는 게 요즘처럼 아쉬울 때가 또 있었나 싶다. 막상 퇴직하니 마땅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처음엔 북한산으로, 대중사우나로, 골프연습장으로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한다며 혼자 돌아다녔지만 수입도 없는 처지에 그 생활도 오래할 건 못 됐다.》

“친구들 대부분은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어요. 직장 생활하는 동안 친구 챙기기가 쉽습니까? 직장, 가족, 경조사, 고향 부모, 친척 챙기느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를 넘기기 일쑤였죠.”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다 보니 친구들과도 시나브로 연락이 끊기더라는 것. 요즘은 옛 직장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북한산에 다니지만, 그렇다고 더 자주 만날 사이는 아니다. 현직에 있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주말에 가끔 모여 골프를 치는 것 같은데 끼어들기 어렵다. 우동 국물에 말아 먹을 맨밥을 싸가지고 구립 도서관에 가서 소설책을 읽는 게 요즘 그나마 낙이다.

한국 남자들의 은퇴 후 생활은 그다지 장밋빛이 아니다. 직장 떨어지고 돈 떨어진 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친구들도 떨어져 나가 있기 때문이다.

S그룹에서 명예퇴직한 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모(53) 씨 역시 요즘 주말이면 쓸쓸하기 그지없다. 기업 간부 시절 즐겼던 골프는 이제 같이 치자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럴 경제적 여유도 안 된다. 아내 따라 교회에 가봤지만 적응이 안 돼 대학생인 딸을 따라 스포츠센터에 가곤 했다. 딸이 반기지 않는 눈치인 줄 알면서도 아빠의 권위로 밀어붙여 따라다녔지만 운동이 끝나면 항상 혼자 돌아와야 했다. 샤워 후 함께 쇼핑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지만 딸은 샤워실에 들어가면서 친구들 만나러 갈 거라며 “아빠 먼저 가”라고 말한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그러다 얼마 전부터 취미 붙인 게 같은 상가의 비슷한 연배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거다. 예전엔 토,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카페를 보면 ‘도대체 누가 주말에 술을 마신다고 문을 열까?’ 싶었는데 바로 자신 같은 손님들 때문에 문을 연다는 걸 깨닫게 됐다.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김경호(金京浩) 교수는 “지금 40, 50대 남자들이 노후의 경제적인 문제엔 나름대로 대비를 하지만 친구나 대인관계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며 “적금을 들고 노후를 준비하듯이 평상시에도 친구나 주변사람들, 동호회나 동료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친구도 돈도 직장도 다 잃고 늙은 몸만 남았을 때 함께 있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며 “대개 일, 가족, 친지 순으로 우선순위를 배정하는데, 힘들더라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이나 여행 등 젊었을 때 만나던 패턴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한국 남자들의 저물녘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더더욱 쓸쓸해진다. 취재팀은 지난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여러 차례 찾아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온다는 이모(67) 씨는 “공원에 나오는 건 굳이 따지자면 가야할 곳을 만들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할 일은 없지만 그냥 마음이 편해, 다들 같은 처지니까….”

이 씨는 30년 동안 일해 서울 강북에 25평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고, 네 딸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딸들이 보란 듯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결혼식장에서도 뿌듯하기는 마찬가지였지.”

그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출가한 네 딸은 이젠 명절이 아니면 얼굴 보기도 어렵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 몸과 딸들이 가끔 주는 용돈, 명절 때 가끔 보는 손자 손녀들이다. 남들은 ‘딸 집을 돌아다니며 손자들 보면서 놀다 오라’고 말하지만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눈치가 보여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노인들이 요즘 떠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상처(喪妻)한 뒤 서울의 아들 집에 살게 된 노인이 우연히 아들 부부가 자기들끼리 식구들의 순번을 붙여 “1번 학원 갔니?” 식으로 부르는 걸 엿들었다는 것.

우선순위 1번은 아이(손자)였고, 2번은 며느리, 3번은 아들, 4번은 아이 봐주는 가정부였다. 그런데 노인은 5번도 아니었다. 5번은 애완견이었던 것. 며칠 후 노인은 “3번아 찾지 마라, 6번은 간다”는 쪽지를 남겨 놓고 시골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설마 실제 이야기겠어. 웃자고 만든 거겠지.”

한 2년 전부터 이곳에 나온다는 강모(66) 씨는 “은퇴하니까 집에만 있던 아내가 오히려 더 신세가 좋아 보이더라”고 말했다.

“10년이 넘게 한동네서 살았으니 아내는 이웃들을 잘 알지. 친구도 유지되고. 자기들끼리 놀러도 가고. 그런데 나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매일 아침 회사 가서 밤늦게 들어왔는데….”

퇴직 전 중소기업에 다녔다는 한모(69) 씨는 “아내가 친구들하고 놀러가는 걸 막으면 ‘좀팽이’ 남편이 되지만 남자들이야 어디 그럴 수 있나. 당장 난리가 난다. 30년 동안 친구들하고 여행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푸념했다.

전남대 심리학과 윤가현(尹嘉鉉·한국노년학회 부회장) 교수는 “‘노후에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한 채 노년을 맞은 노인들에겐 각종 노인 관련 강좌, 노인대학, 건강교실, 레크리에이션 등에 참가할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며 “보통 ‘에이 그런데 가서 어떻게 즐기고 사람을 만나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자각을 주는 강의를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경제적 상태는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심리적인 상태가 변하면 좀 더 긍정적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4>목멘 ‘홀로 아리랑’      [동아일보 2005-09-01 04:25]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이 있었지요. 30대 땐 친구들과 그런 농담하며 낄낄거리곤 했는데…. 막상 현실로 닥쳐 봐요.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안 겪어 보곤 상상조차 못합니다.”》

3년 전 부인과 사별한 안모(57·자영업) 씨. 펜팔로 만난 부인과 1남 1녀를 두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노후를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 왔다. 그런데 이제 발 좀 뻗고 살 만하다 싶었더니 부인이 폐암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아들은 지난해 결혼했고 지금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엔 컴퓨터도 배우고 주말에 몰두할게 필요해 바다낚시도 쫓아다니고 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집에 오면 꼼짝도 안 해요. 그냥 멍하니 있죠.”

실제로 안 씨 아파트(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베란다 창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아파트 아래서 보면 우리 창문이 제일 깨끗하다고 그랬는데….”

밥하고 청소하는 등의 살림은 대충 적응을 했고 낮에는 일에 몰두하지만, 퇴근 후 텅 빈 방에 불을 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사진틀을 보면 꾹꾹 담아둔 한탄이 튀어나온다.

“이 사람아, 일 나갔다 왔는데 말도 없나. 만날 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하고….”

안 씨는 “영화나 소설에서 죽은 배우자의 사진을 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장면이 나오면 너무 작위적이라며 비웃곤 했다”며 “닥쳐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사회에서 사별, 이혼 등의 사유로 1인 가구주로 등록된 40∼59세 남자는 24만9000명이다(통계청 2000년 인구센서스). 여기에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배우자 없이 자녀나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를 포함할 경우 40, 50대 외기러기 남자는 1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혼자 살게 된 사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갑작스레 닥친 독신생활에 심각한 부적응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자란 탓에 일상생활에서 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데다 사회적으로도 독신 중장년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

지난해 ‘중년 남성의 배우자 사별 경험’이라는 석사 논문을 쓴 박경복(朴景福) 한양대 임상간호정보대학원 호스피스 연구원은 “부인이 짧은 기간의 투병 끝에 사별한 남성들의 정신적 고통이 특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별 뒤 여성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반면 남성들은 의식주는 물론 자녀 교육 등 전반적인 문제에 걸쳐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많은 중년남자는 자녀 교육을 비롯한 가정 대소사의 부담을 부인에게 떠넘겨 왔으며, 직장을 제외하곤 가족 이외에 특별한 대인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살아왔다.

사별의 정신적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난 남성들은 부인이 수행하던 역할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면서 ‘제2의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에서마저 은퇴하면 심신이 크게 상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4년 전 부인과 사별한 박모(48) 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는데 막상 쉽지 않아요. 특히 애들이 내 맘대로 안돼요. 집사람 있을 땐 내가 악역 하고 아내가 중재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대화가 끊겼어요”라고 하소연했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도 가부장적 생활에 젖어온 중·노년 남자들을 울상 짓게 만들고 있다.

6월 통계청이 발표한 ‘1970년 이후 혼인·이혼 주요 특성 변동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2쌍이 황혼 이혼이었다. 특히 황혼 이혼 청구자의 80%가 여성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曺瓊愛) 상담위원은 “황혼 이혼 문제로 상담하는 비율은 여성이 7 대 3으로 많지만 남성이 점차 늘고 있다”며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엄마와만 친하게 지낸다’는 등 주로 소외감을 호소하는 남성이 많다”고 밝혔다.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한 박모(48) 씨의 경우 아내의 이혼 요구에 벼랑까지 몰린 처지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핑계로 다소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는 요즘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파탄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버티고 있다. 남은 돈도 없고 이혼을 해도 당장 나가 살 곳이 없다는 것이 속사정이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누군가를 사귀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따지고 들기도 무섭다. 얼마 전에는 이혼 문제로 다투다 아내가 가슴을 할퀴는 바람에 상처를 입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고, 폭력을 쓰다 이혼 사유가 될까 겁이 났기 때문. 그나마 아내가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심정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홀아비 생활을 택한 기러기 아빠들의 하루하루도 회색빛이긴 마찬가지다. 한해 5000만 원 이상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보내고 있는 김모(43) 씨는 “힘들어 죽겠다며 왜 빨리 돈을 보내지 않느냐는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다 보면 아내의 전화가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두려워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생활 3년 만에 등산 조깅 서예 등 경험하지 않은 취미활동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가족이 곁에 없다는 공허함을 메울 수가 없어요. 더욱이 이 생활의 끝이 안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아직 한창 나이에 참아야 하는 성적인 고통도 큽니다. 창피한 말이지만 스스로 발정 난 동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택한 일이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해답이 없는 것 같아요.”

1984년부터 호스피스로 활동해 온 한양대 김분한(金芬漢) 교수는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갑자기 혼자된 중·노년을 위한 정신 상담을 법으로 정하고 있고, 교회와 각종 사회단체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도 홀로 사는 남성을 돕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함께 어려서부터 시대에 어울리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5>이모만 있고 고모는 없다          [동아일보 2005-09-02 04:55]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나는 왜 꼭 친할머니냐.”

강모(42·서울 양천구 신정동) 씨는 최근 어머니 생신 모임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다섯 살 난 막내아들에게 강 씨의 어머니가 “엄마 아빠 다음에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었다. 아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서슴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이모랑 쏘나타 삼촌(쏘나타를 몰고 다니는 막내외삼촌)”이라고 대답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는 이어 “음… 그리고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로 꼽힌 줄 알고 흐뭇해하던 어머니는 처음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외가 쪽을 뜻한다는 걸 알아채고 안색이 변했다. 사실 아이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부를 땐 꼭 ‘친’자를 붙이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렀다. 평소엔 그냥 귀엽다는 듯 듣고 넘기던 부모님이지만 이번엔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외갓집 식구들과 훨씬 친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강 씨는 착잡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는 육아를 장모에게 의탁해 왔다. 그래서 집도 처가(목동) 근처로 옮겼다. 경기 구리시에 있는 본가 방문은 두서너 달에 한 번씩인 ‘특별 행사’가 됐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이모들을 엄마만큼 편하게 따르고 이종사촌과도 친형제처럼 논다. 하지만 고모 쪽은 왠지 서먹해한다. 막내는 때론 고모란 호칭도 잊어먹곤 한다.

“애들이 외갓집 식구들을 더 좋아하고 따르는 게 섭섭하진 않아요. 하지만 ‘빼앗긴 아들’ 취급하며 섭섭해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착잡합니다. 더 자주 찾아뵙고 싶지만 집사람도 일에 치여서….”

사실 강 씨 가족처럼 본가보다는 처가 쪽으로 추(錘)가 기우는 것은 요즘 드문 사례가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육아 부담을 친정 부모가 지는 ‘외가 위탁형 육아’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처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

지난해 여성부가 양가 부모가 생존한 1755명의 기혼 남녀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부모 세대 중 어느 쪽에서 도움을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내의 부모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대답이 18.1%로 남편 쪽(11.1%)보다 높게 나타났다. ‘어려울 때 정서적 지원을 주는 부모가 누구냐’는 질문에서도 남편의 부모(3.7%)보다 아내의 부모(12.1%)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본가 쪽으로 기울었던 ‘봉건적인 시댁 중심 문화’가 위축되면서 균형을 잡아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상당수 여성은 상존하는 부계 중심의 전통에 묻혀 허리가 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 추세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과도기를 살고 있는 중년 남자들로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낀 새우처럼 난감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한모(43·경기 성남시) 씨는 명절만 다가오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신혼 초부터 ‘시댁에 가는 일이 큰 스트레스’라며 입이 붓곤 하던 아내가 요즘도 명절이면 일찌감치 아침 차례만 끝나면 자신과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나오려 하기 때문. 명절 전날의 차례 준비를 포함해 연휴의 반을 본가에서 보냈으니 나머지 반을 처가에서 보내는 게 형평에 맞는 일 같기는 하지만, “지금 가려고? 그래, 처갓집에도 잘해야지”라며 등을 두드려 주는 아버지의 눈에 담긴 섭섭함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혼잣말처럼 “못난 놈이…”라며 못마땅해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 자기 나이 때, 병드신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던 기억을 하면 자괴감과 죄책감이 가슴을 후려친다.

“예전에 시댁이란 여성에게 ‘면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졌습니다. 오죽하면 ‘죽더라도 시댁 귀신이 돼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여성은 ‘아이들이 내 편’이라는 자신감에 덧붙여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까지 갖추게 됐습니다.” 남성의 전화 이옥이(李玉伊) 소장의 설명이다.

양측 부모에 대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동등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아내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아들 가진 노부모의 마음은 또 다르다. 그 사이에서 남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형님상을 당한 성모(46) 씨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한창 나이의 형을 잃은 슬픔을 채 수습하기도 전인데 형수가 ‘우리 집에는 이제 남자도 없으니 아버님 제사는 삼촌네가 모시라’고 통고한 것. 그러자 성 씨의 아내는 “제사를 집을 옮겨 가며 모시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일축했다. 장모도 “무슨 소리냐. 죽었어도 장남집이지”라며 아내의 역성을 들고 나섰다.

성 씨는 “이제 곧 아버지 제사가 돌아오는데, 안 그래도 형님 일 때문에 몸져누우신 어머니께는 말씀도 못 드렸다”며 난감해했다.

이의수(李義壽)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은 “독립된 가정을 이룰 때부터 양가 부모와의 관계, 재정 지원 등에서 일정한 원칙을 세우고 그 범위 내에서 양가 부모를 배려하도록 약속해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특히 아내들이 친정 부모들과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반면 남편들은 아내는 물론 자기 부모와도 일상적인 만남과 대화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가든 처가든 원활한 의사소통과 일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갈등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조언했다.

벼랑 같은 일터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고, 가정에선 외딴섬처럼 고립돼 버린 이 시대의 중년 남자들. 그들은 일, 가정, 효도, 친구관계 등 어느 것 하나 떳떳이 내세울 게 없다는 패배감 속에 지쳐 가고 있다.

그 원인이 가혹한 경쟁 때문이든, 그 자신도 물들어 있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이든, 경륜과 관록으로 사회와 가족을 이끌어 가는 그런 안정감 있고 자신감 넘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게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6·끝>당신에게 그런 아픔이…        [동아일보 2005-09-03 04:05]


《가을의 문턱, 이 사회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중장년 남성들의 자화상을 담은 ‘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를 읽으며 문득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나이 많은 ‘할머니’ 웨이트리스들이 빵과 수프를 날라 주던 그 식당 풍경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귀띔을 하는 것이었다. 뉴욕에는 혼자 사는 중년 남자가 많다 보니 이렇게 가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할머니들이 일하는 식당이 의외로 인기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가장의 책임을 홀로 짊어진 채 힘들게 현대 사회를 살아온 중장년 남성들은 어느 정도씩 서로를 닮은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어느 사회에서든, 전통 가치에 안주해 새로운 가치관을 채 준비하지 못한 남성들은 그저 넋을 잃고 그 혼란함을 따갑게 직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중장년 남성들 대부분은 가부장적 가치관 아래 성장한 세대다. 이들은 가부장적 가치의 안락과 혜택을 더 누리지 못하고 변화된 가족 형태 사이에 끼여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이라든가 여성 차별에 대한 수많은 논의는 일단 접어 두자. 이번 ‘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 속에 나타난 우리 사회 중년 남성의 쓸쓸한 모습들은 때로는 안쓰러웠고, 그들이 그렇게나 외롭고 허전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일찍이 그들이 꿈꾸었던 남성상은 힘과 권위와 성취였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들을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나약한 돈벌이 노동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래도 그들은 가장으로서 아내를 거느리고, 자신의 대를 이어갈 자식을 위해 일을 하며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람으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 허탈감과 소외감에 빠져 있다.

티베트 고원의 사내들은 이런 중년의 나이가 되면 아내와 자식에게서 벗어나 비로소 한 인간으로 출가를 단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장년은 생물학적 나이의 성인(成人)뿐만 아니라, 진실로 정신의 어른이 되어 가는 나이라는 것이다.

시리즈를 읽고 나서 우리 사회 중장년 남성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남성은 강하다’라는 생각에서 과감히 해방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이건 아내건 독립 개체라는 것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스스로도 당당하게 늙을 수 있고, 서로 이해하는 진정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가령 친가 쪽 중심의 가족관계가 처가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을 보더라도 건강한 균형을 잡아 가는 것이라고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원래 가정(familia)이란 말의 뜻은 우리들이 이상으로 삼는 행복의 쉼터를 지칭하는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혼한 부부와 자녀들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가내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파밀리아’란 한 남성에게 속한 노예들의 총수를 의미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정을 이런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가정의 뜻과 의미,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이 복잡한 시대에 옛날 형태의 가정만을 행복의 이상 형태라 믿는 것은 무리다. 가장의 권위 아래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순종과 위계로 효를 실천하는 형태가 아닌, 다른 가치와 다른 형태의 행복을 새로 창출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을 귀하게 모시고 서로 화합하는 풍습은 이어 가야 하지만, 너무 혈연을 강조하고 또 자식에게 독립심을 길러 주지 못한 채 끝없는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며 이를 애정의 증표로 착각하는 일은 단연 없어져야 할 것이다.

남녀는 대립과 적대의 관계가 아니며 가족도 상하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남성과 아버지가 행복해야 여성도 가족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중장년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시대에 맞는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가치 정립, 그리고 서로 간에 진정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혀야겠다는 것도 절감했다.

힘과 관계에만 몰두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보면 의외로 가슴속에 넓은 초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 아직 늠름하게 한 사나이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중장년의 나이란 물리적인 힘으로 외적 세계에 개입하는 나이가 아니라, 내적인 정취나 희열로도 성취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나이다.

문정희 시인

▼정신과 전문의가 본 ‘위기의 중년’▼

‘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국의 남자들이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정말 한국의 남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요즘 남자들은 맘 놓고 쉴 곳, 맘 놓고 위로받을 곳이 없다. 회사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자리가 없다. 어디에서도 우군을 찾기 힘들다.

남자들이 원해서 지금의 처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다수의 남자는 묵묵히 가정을 지키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다. “왜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가?”라고 한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단순함’이 부메랑이 돼 남자에게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필자는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는데 상당수 환자가 중년 남성이다. 회사에서 치이고 집에서 치여 소위 ‘화병’을 얻은 사람도 많다. 면담을 해 보면 대부분 회사 생활을 성실하게 했고 가정에도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일이 생각대로 안 풀려서 병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환자 중 상당수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사회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그에 따라 더욱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식의 한탄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 같은 한탄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남자들이 ‘대접’을 받으려면 스스로 바뀌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여기서 ‘대접’이란 과거의 권위주의적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우선 ‘모름지기 남자란…’으로 시작하는 낡은 문구부터 버려야 한다. 그 문구가 남자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기 때문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은 다 잊어버리자.

남자들도 아줌마들의 수다를 배워야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봐도 수다와 유머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결책이다. 수다는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남자들이여, 이제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자.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도 된다.

힘들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가장(家長)은 늘 꼿꼿해야 한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도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남편과 아빠를 바라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자. 요컨대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과 배려도 필요하다. 남자들의 한숨에 “자업자득”이라고 차갑게 쏘아붙이고 싶은 아내, 자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내뱉을지라도 차가운 눈빛, 닫아 버린 마음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자기 아버지의, 자기 남편의 휴지처럼 구겨진 어깨를 보며 쓰라림을 느끼지 않을 아내와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군림했던 과거를 가진 가장일지라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그들의 헌신마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가족의 작은 배려, 친근한 말 한마디에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소리 없이 웃는 사람들, 그게 남자다.

남성이 ‘대장’으로 군림하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의 리더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 조화로운 남성상을 새로 만들어가는 데도 사회 전체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강준만 칼럼] '싱크탱크’의 정치학
[한국일보 2005-08-16 14:14]



“1970년대 말 이래로 미국 싱크탱크(두뇌집단) 분야는 거의 전적으로 기업의 돈과 보수적인 정치 철학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어느 미국 평론가의 말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을 제외하곤 로널드 레이건에서부터 현 대통령 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1등 공신은 바로 싱크탱크였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최고급 인재들을 거느린 싱크탱크들은 이른바 ‘소프트 파워’로 언론ㆍ지식계 등을 주도하면서 사실상 여론을 지배해왔다.


●여론 지배하는 소프트파워

확고한 당파성을 갖고 있지 않은 기자나 교수의 입장에선 최고급 정보, 탁월한 분석력, 시의 적절한 의제 등을 제공하는 보수 싱크탱크들의 각종 보고서와 자료들을 외면하긴 쉽지 않다.

그들은 이념을 표면에 내세울 만큼 촌스럽지 않다. ‘사실’과 ‘과학’으로 이야기해보자는 학구적 자세가 충만하다. 그러나 그런 학구성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건 친(親) 공화당 노선임에 틀림없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뒤늦게나마 무언가 깨달은 걸까? 최근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80명 이상의 친(親) 민주당 부자들이 앞으로 5년간 민주당을 지지하는 싱크탱크에 최소한 100만 달러 이상씩을 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공화당 싱크탱크를 따라잡긴 어려울 것 같다.

공화당 싱크탱크를 지원하는 부자들은 은밀하게 큰 돈을 건네는 반면 민주당 부자들은 생색내기에 바쁘니 그 돈이나마 제대로 걷힐지 의문이다.

한국은 정치와 정책에서 싱크탱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복한 나라다. ‘바람’ 하나면 족하기 때문이다. 선거와 정책의 주요 메뉴는 혐오, 증오, 분노, 공포 등과 같은 원색적인 감정이다. 개혁파는 묵은 역사의 더러운 때를 공격하는 것만으로 재미를 보려 하고 보수파는 개혁파의 무능ㆍ편견ㆍ독선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재미를 보려고 한다.

싱크탱크? 그런 것 모른다. 그건 재벌 기업들의 전유물로 간주된다. 최근 시중 은행들이 본격적인 ‘싱크탱크 키우기’에 나선 것처럼, 싱크탱크는 돈 많은 재계의 게임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권에 싱크탱크가 전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너무도 초라해서 ‘싱크탱크’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어서 그렇지 그 비슷한 게 있긴 있다.

정치권에선 그걸 가리켜 ‘사조직’이라 부른다. 각계의 무명 엘리트들로 구성된 일종의 도박 모임이다. 자신이 가담한 사조직의 우두머리가 대권을 잡거나 그에 근접하는 권력을 갖게 될 경우 순식간에 ‘코리언 드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조직은 선거에서의 승리와 그에 따른 논공행상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도 ‘싱크탱크’라고 보기 어렵다.

이른바 개혁파에겐 아예 ‘싱크탱크’라는 개념이 없다. 이들에겐 불의에 대한 분노, 약자를 위한 정의감 수준의 감정만 있을 뿐이다. 그 감정만으로 정책을 대신하려 하니 제대로 되는 일이 있을 리 없다.

노무현 정권의 일부 개혁파들이 한국 최대의 싱크탱크라 할 삼성경제연구소에 기대려고 했다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 비판만 할 일이 아니다. 그게 한국 정치판의 수준임을 인정하고 ‘싱크탱크 없는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국내도 초당파적 결성 절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개혁파의 싱크탱크지만, 그것만으로 끝내선 안 된다. 해방 60년 역사의 최대 교훈은 한국인에겐 당파성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갈등의 조정과 해소를 목표로 삼는 초당파적 싱크탱크다. 이건 어느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기운 미국의 ‘싱크탱크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갈등과 분열에 염증을 낸 나머지 화병으로 쓰러지는 부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싱크탱크는 거액 기부금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일다 2005-08-09 03:24]

저녁 식사 자리, 등을 두드리는 아버지의 손길에 딸은 불편한 얼굴을 보인다. 알고 보니 처음 착용한 브래지어가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장조림 많이 먹어라” 하며 다독이는 아버지의 말에 딸은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삼성생명의 TV광고 시리즈 ‘인생은 길다’ 중 딸 편의 내용이다. 화면이 진행되는 동안, 광고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딸의 인생은 깁니다. 어느새 여자가 될 것이고,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될 것입니다” 라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훈훈한’ 성장의 확인?


이 광고는 딸의 성장을 깨닫는 아버지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훈훈하고 감동적이어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도 들리는 걸 보면, 많은 남성들이 이 광고의 정서에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 켠에서 불편한 감정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S씨(28)는 광고를 보며 느꼈던 불편함을 이렇게 말한다. “브래지어를 한 등을 만지는 모습이나 움찔거리는 딸의 모습이 싫었어요. 그 상황에서 느꼈을 기분 나쁜 감정이 떠올라서. 실제였다면 그 상황에서 결코 딸은 웃지 못하죠.”


우리 사회에서 딸들에게 성장, 특히 ‘성적인 성장’은 훈훈한 경험이 되지 못한다. 광고 속 딸도 브래지어를 한 등에 아버지의 손이 닿자 깜짝 놀란다. 십대 여성들에게 성적 성장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일처럼 되어있다. 브래지어 자체도 몸의 건강과는 상관없이 가슴을 보정하고 감추기 위한 것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긴장하거나 누가 만지기라도 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딸의 모습은 훈훈하기 보다는 차라리 안타까운 모습에 가깝다.


“딸 같아서 만진다”


여성들이 이 광고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의 한 켠은 ‘몸을 만지는’ 행위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든가 친하다는 이유로 타인의 몸에 손을 대는 행위가 쉽게 용납이 되는 경향이 있다. 나이 지긋한 분이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되면 “딸 같아서 만진 건데 잘못이냐?”는 변명(?)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성장을 기뻐한다는 의도로 몸을 만지는 일들이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일이 되기도 한다. P씨(30)는 초등학교 시절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걸 흐뭇해하던 아버지가 맨 가슴을 만진 일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야 나쁜 의도가 없으셨겠지만 기분이 나쁘고 싫었거든요. 기분 나빠하는 걸 귀엽게 여기는 게 더 싫고 화가 났지만, 별 수 없었죠.”


“딸 같아서 만진다”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삼성생명의 광고는 많은 여성들에게 불편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광고 속에서는 의도된 스킨십이 아니었지만, 불편해하는 딸의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점 자체가 이미 여성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자로서의 인생?


광고의 마지막에 수줍은 미소를 짓는 딸의 모습은 그래서 불편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성적인 변화를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는 십대여성의 모습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남성들의 판타지일 뿐이다.


무엇보다 딸의 성장을 대표할만한 것이 어째서 브래지어가 되어야 하는가. ‘여자’ ‘사랑’ ‘결혼’, 딸의 인생을 한정 짓는 말의 진부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바꿔서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처음으로 수염이 나거나, 첫 몽정을 한 아들을 두고, “어느새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될 것입니다” 라며 흐뭇함을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은 쉽게 연상되는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아들의 성장’이 가지는 이미지는 성적 성장, 가정을 이루는 것 등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인생은 길다’ 시리즈 광고를 두고, 흔히 접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리얼리티’ 광고라 한다. 그러나 그 리얼리티 속에 실제 딸의 성장과 느낌은 박제되어 있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기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이야기는 어느 의사가 겪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한자를 보고 잠시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웬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거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듯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 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믈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꼐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우리에게 가장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나는 요즘도 이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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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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