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등록금· 생활비 벌기 위해…

등록금·생활비 벌기 위해 삼겹살집에서, 술집에서 알바하지만…
하루에 겹치기 알바해도 학비·생활비 안돼…
저축은행서 돈 빌렸다가 신용불량자 되고, 유흥업소 구인광고 내면 여대생들 몰리기도

생활고라는 벼랑 끝에 매달린 채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캠퍼스의 낭만'은 요즘 대학가에서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다. 물가 상승과 경기 불황으로 부모들이 대학생 자녀를 책임지기 어렵게 되면서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 2학년이 되는 동국대 구모(20)씨는 학교 친구들이 없다. 신입생 시절, 남들 다 새터(새내기 배움터라는 뜻의 오리엔테이션 행사) 가고 학과 모임에 기웃거릴 때 혼자 아르바이트를 다녔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새터 안 가면 대학 생활이 힘들다"며 말렸지만, 구씨에게 학교 밖 활동은 사치였다. 1박2일 MT(수련회)에서 술을 마시기 위해 내는 회비 1만원이 그에겐 일주일 생활비였다.

 비싼 등록금, 치솟는 물가에 쪼들리는 대학생들이 저축은행 대출에 손을 대는 경우가 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 서울의 모 저축은행 지점 밖에서 한 대학생이 대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작년 1년간 구씨는 공부한 기억보다 아르바이트한 기억이 더 많다. 학기 중 평일엔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2시간 동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남역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햄버거를 만들었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는 바(bar)에서 술잔을 닦고 취객들 말 상대를 했다. 방학인 지금도 이번 학기 등록금을 위해 과외 2개와 바텐더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빈민층'이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가 실직해 집안 사정이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가족들은 고향 울산에 번듯한 집도 갖고 있다. 그러나 한 학기 등록금 400만원과 한 달 100만원(월세 45만원 포함)이 드는 생활비까지 부모가 도와줄 능력은 없다. 최근엔 어머니 관절염이 악화해 치료비 부담도 만만찮다. 구씨는 "너무 피곤하다 보니 수업 시간엔 졸기 일쑤"라고 했다.

대학생들은 입학도 하기 전에 생활비 마련에 쫓기는 일도 흔하다. 충북대 1학년이 되는 조모(19)군은 입학을 앞두고 집 근처 삼겹살집에서 시급 6000원에 하루 6시간씩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스스로 새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조군은 "국립대학이라 등록금이 250만원으로 그나마 부담이 적지만, 하루 3만6000원씩 벌어 어떻게 학비 대고 생활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급한 마음에 시중 은행보다 이자율이 높은 저축은행 등에서 생활비를 빌렸다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대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권모(28)씨는 대학 4학년이던 2008년 9월 생활비로 쓰기 위해 한 저축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린 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권씨는 "졸업해 직장을 잡으면 갚으려 했는데 지방대 출신이 취직하기가 쉽지 않더라"며 "대출 이자에 쫓기며 살고 있다"고 했다.

전북 전주의 한 대학을 다니는 양모(24)씨는 작년 6월 가족들과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몇 달 뒤 어머니 박모(44)씨에게 저축은행 3곳으로부터 '양씨가 1300만원을 빌렸다'는 서류가 날아들었다. 박씨는 "아들이 혼자 끙끙 앓다가 잠적한 것 같다"며 "어떻게 대학생에게 1000만원이 넘는 고액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저축은행 등은 정부에서 보증하는 학자금 대출이나 시중은행 대출과 달리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대학생들이 몰린다. 대출 과정에서 재학·군필 여부와 나이, 학년, 대출 연체 여부 등을 묻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일부 저축은행들은 광고하는 이자(8~37%)보다 높은 평균 24~28%의 높은 이자를 매겨 학생들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인터넷 직업포털 잡코리아가 작년 대학 졸업예정자 1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 이상이 빚을 안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의 대학생들은 휴학이 '선택' 아닌 '필수'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사이트 '알바몬'이 지난 1월 대학생 6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생 4명 중 1명이 "이번 1학기에 등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고, 등록 포기 이유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서'가 44.7%로 가장 많았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 지표에 따르면 국내 대학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 유흥업소 운영자는 "몇 년 전부터 방학 때 인터넷에 구인광고를 띄우면 여대생들이 몰리고 있다"며 "등록금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인 전국등록금대책네트워크와 참여연대 등은 "작년 말 대학생 16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88.6%가 등록금 마련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라…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으니…"

인터넷에 떠도는 '자취 대학생 십계명'

'자취생임을 만천하에 알려라.'

인터넷 웹사이트에 떠도는 '자취생 십계명'의 첫 번째 원칙이다. 치솟는 물가로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쓰느라 힘에 겨운 대학생들을 위한 '자취생 십계명'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학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계명은 학교 화장실에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나 비누 등을 몰래 갖다 쓰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살 돈이 부족할 때는 쓰레기를 학교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얘기다. 고려대 4학년 오모(26)씨는 "가끔 밤늦은 시간에 텅 빈 등산용 가방을 메고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를 챙긴다"며 "제일 싼 생수를 사 물을 마시고, 빈병에 학교 정수기 물을 받아 집으로 가져가면 식수 값도 절약된다"고 말했다.

'MT(수련회)에 꼭 참가하라'는 것은 수련회에서 쓰다 남은 음식 재료 등을 챙겨 생활비를 아끼라는 뜻이다. 6년째 자취하며 서울의 한 여대를 다니는 4학년 서모(26)씨는 "참가비 1만~2만원만 내면 MT가 끝나고 남은 고추장·된장·라면 같은 음식재료를 챙겨올 수 있다"며 "운 좋으면 한 달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자취생들과 대형마트에 가 함께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한 뒤 나누라'는 계명도 있고,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도록 '이웃과 친해져라'는 계명도 있다. 후배들에게 밥을 사다가 생활비를 탕진할 수 있다는 '헛된 명성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도 있다.

[中] 대학 사회의 양극화

교내 상담센터 찾는 학생 급증

성적·대인관계 문제 호소… 근본적 원인은 생활고

서울의 모 대학 4학년인 A씨는 작년 말 "공부에 집중이 안 되고 대인관계도 어렵다"며 교내 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결과 '생활고'가 A씨가 갖고 있는 심리적 불안의 원인이었다. A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처지였다. 1주일에 과외를 4개나 하고 있어 추가 상담을 권유받았지만 시간을 내지 못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한 생계형 아르바이트, 뒤처지는 학과 공부, 모자란 취업 준비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은 각 대학의 상담센터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2007년 370명이던 개인 상담 신청자가 2009년 445명으로 늘었다. 총 상담시간도 4319시간에서 5261시간으로 1000시간 가까이 늘어났다. 김지은 대학생활문화원 전문위원은 "성적·대인관계·학사 경고 등 다양한 이유로 학생들이 상담을 청해 오지만 결국 바탕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연세대 학생들의 개인 상담 건수도 2009년 1학기 2660건에서 2010년 1학기 2994건으로 늘어났다.

중앙대 학생상담센터 김은미(42) 전임상담원은 "생활고를 겪는 대학생들은 어학연수 같은 스펙 확보를 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거나 자존감을 잃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극한 상황에 몰린 대학생들은 자살 충동을 더 쉽게 느끼고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의 설문조사(2009년)에 따르면 대학생 621명 가운데 373명(60%)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고려대 김문조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엔 대학만 나오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확보됐지만 이젠 대학원을 나와도 괜찮은 일자리 구하기 힘든 게 대학생들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교내 고급식당 속속 입점 "구내식당 가면 빈곤층"
알바에 쫓기다 우울증… 생활고에 범죄 빠지기도

"풍족한 환경의 친구들을 보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화가 날 때가 있거든요. 다 때려치우고 싶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는 서울의 한 사립대 졸업반인 정모(24)씨는 지난달 28일 기자와 만나 "솔직히 생활비, 등록금 걱정하는 대학생들 다 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차를 몰고 학교에 오는 학생들을 보면 적개심이 생길 때도 있다"고 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대학생들의 생활이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생계를 직접 꾸리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대학 교내에 몇만원대의 고급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구내식당에서 몇 천원짜리 밥을 먹는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을 정도다.

 28일 오후 한 서울대 학생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자취방에서 공인회계사 문제지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생활비도 빠듯한데 학원비까지 마련할 길이 없어 혼자 공부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이화여대의 경우 교내에 '케세이호'라는 고급 중식당이 들어와 있다. 런치 메뉴가 2만4000원에서 4만원까지 한다. '닥터로빈'이란 스파게티 식당은 샐러드가 8000원대다. 이대 교내의 학생 식당 가격은 2000~2800원이라 10배 이상 비싼 메뉴를 팔고 있는 셈이다. 이 학교 4학년 김모(23)씨는 "케세이호에서 점심을 먹는 학생들과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는 학생들이 위화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영대 앞 식당 1층의 '더 키친'은 1만원대 정도의 피자와 7000원 선의 파스타를 판다. 2층의 학생 식당 메뉴는 2500원이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빈곤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대 4학년 김모(27)씨는 "식비 1000원이 아쉬운 형편인데, 몇만원짜리 점심을 사먹는 학생들을 보면 '저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7㎡(2평 정도)가 안 되는 월세 50만원짜리 고시텔에 사는 김모(25·동국대 3년)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95만원이나 하는 오피스텔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거리감이 느껴진다"며 "졸업하고 취업을 해도 이런 차이를 좁히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명지대 졸업반 김모(24)씨는 "학원 수강료가 없어 무료 특강을 찾아다닌다"면서 "강좌 하나에 수십만원짜리 영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고, 평생 그런 친구들에게 뒤처지는 2류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에 쫓기며 대학 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우울증, 좌절감 등 심리적으로도 불안하고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를 휴학 중인 김모(29)씨는 2002년 입학 이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다 2005년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김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갖은 걱정들이 다 생각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도 없고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고 있다.

어려운 생활에 지쳐 자포자기하거나 절도 등 범죄나 인터넷 게임 몰두 등 현실 도피를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전주에서는 동네 마트 등에서 80만원 정도를 훔친 혐의 등으로 A군(19)이 불구속 입건됐다. 전주의 한 대학 1학년인 A군은 오후 2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집 근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공부를 했지만 등록금이 모자라 절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이긴 하지만 여대생들이 유흥업소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대학 졸업반 김모(27)씨는 "부족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려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돈맛을 알게 돼 취업을 내팽개친 여대생도 꽤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대학생들은 학창 시절의 가난이 졸업 이후 사회생활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상황은 이들이 자포자기하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갖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대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지난 8일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원룸에서는 대학 졸업반 유모(23)씨가 생활고로 인해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고, 작년 11월 대구 서구 비산동 주택에서는 대학을 휴학 중인 강모(21)씨가 목을 매 숨졌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환경을 체념하게 될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심각할 경우에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말 그대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下] 대학, 선택 아닌 필수

졸업 후도 문제다

학자금 대출에 카드대금… 사회 나가자마자 빚 걱정

2년 전 대학을 졸업한 이모(25)씨는 지난여름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빚은 1800만원. 대학 시절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얻은 학자금 대출 1000만원과 생활비로 사용한 카드대금 800만원이다. 이씨는 취업을 하면 바로 갚아 나갈 생각으로 대출을 받았고, 카드를 사용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 나가다 지난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용불량자가 된 이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아무 곳도 없었다.

취직만 하면 해결될 줄 알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면서 빚을 떠안고 사회로 나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모(23)씨는 매학기 37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공무원 자녀 무이자 학자금 대출로 충당했다. 김씨는 2년 뒤부터 매달 63만원씩 총 3000만원을 4년 동안 갚아야 한다. 김씨는 "교사인 부모님의 혜택으로 무이자로 빌렸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사정은 낫지만, 사회에 나가자마자 빚 갚을 일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국감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신용불량자는 2만6000명으로 3년간 7배 증가했다. 2007년 3785명에서 2008년 1만250명, 2009년 2만2142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정부는 학기 중 대출금을 갚지 않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를 도입했으나, 취업이 안 돼도 이자가 계속 붙는 문제 때문에 당초 정부가 추산했던 100만명의 20% 수준인 23만명만 이용하는 등 실적이 저조하다. 고려대 4학년 진모(27)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다 보면 성적이 좋지 않게 되고,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지원 자격인 'B학점 이상'을 받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ICL 제도는 지원 기준이 당초 C학점 이상이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B학점 이상으로 기준을 높였다.


고교 졸업하면 비정규직…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 못받지 않나"
국가 지원 예산 늘리고 생활비 장학금 확충해야

동국대 3학년생 김모(25)씨는 시간당 4000원을 받으며 학교 앞 식당에서 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기당 360만원인 등록금은 부모님이 감당하고 있지만, 6.6㎡(2평)짜리 고시텔 월세 50만원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묶여서 산다. 일을 마치면 녹초가 된다. 이런 생활이 3년째다. 김씨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학교에 수백만원이나 하는 등록금을 갖다 바쳐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졸업장을 포기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도 못 받지 않느냐"면서 "고향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산다. 2000원짜리 학교 식당 밥만 먹고 살지만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다니는 걸 포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서울 모 대학의 총학생회 학생들이 지난달 중순 개최한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서 삼보일배 시위를 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한국외대 2학년 박모(23)씨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지만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번역 아르바이트와 일주일에 2개의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월 36만원짜리 고시텔에 살다가 지난 1월 3만원 싼 학교 인근 하숙집으로 옮겼다. "1만원짜리 하나에 벌벌 떨면서 생활하다 보면 울컥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버틴다"고 말했다. 지난해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이모(27)씨는 요즘 야간대학에 다닌다. 이씨는 "생활비를 아끼려 고시원에서 살고 있지만,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안 먹고, 안 쓰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다"면서 "주변에서 고졸로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고 했다.



지방 모 대학 2학년 김모(22)씨는 방학 때 PC방과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80만~100만원을 쪼개 한 학기 생활비로 사용한다. 생머리를 길러 미용실 갈 돈을 아끼고 옷은 인터넷 쇼핑에서 9900원짜리를 산다. 일주일 생활비는 2만~3만원. 4000~5000원짜리 체인점 커피는 마실 엄두를 못 낸다. 김씨는 "통장 잔고에 600원이 남아 있었던 적도 있다"면서 "남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에 다니느냐'고 하겠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는 인생은 생각해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성공 신화를 일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러다 보니 실력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대학 교육을 받겠다는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대학교와 대학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80년 96개였던 4년제 대학(교육대·산업대 포함)이 지난해에는 222개로 늘었다. 41만2404명(1980년)이던 대학생 수는 지난해 255만5016명으로 6배 넘게 늘었다.

대학 등록금도 지난 10년 동안 가파르게 올라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 가구에서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01~2008년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률은 5.1~6.7%에 달한다. 물가상승률의 2~3배에 달하는 인상률이다.

교육 예산 확충도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예산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6% 선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1%)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반면 대학 등록금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장학금 제도 개편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록금만이 아니라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4학년 김모(27)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느라 아직 졸업을 못했다. 등록금은 고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보험금 등으로 해결하지만, 생활비는 김씨가 책임져야 했다. 김씨는 "외부 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알아봤지만 대부분 교수 추천서가 필요했다"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수업에서 졸기만 하는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추천서를 써줄 교수님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에 치이면서도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더 이상 학생 개인의 문제로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나 대학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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