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28/2011012801305.html

新성장동력은 辛성장동력
"한눈팔지 말고 하던거나 제대로 하세요"

베인앤컴퍼니의 스티브 앨리스 사장.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핵심(core)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핵심사업이 뭐냐는 겁니다. 제가 CEO들을 만나서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도 바로 '당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What is your core)?'입니다.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CEO인 스티브 엘리스(Steve Ellis) 사장은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세계 3대 컨설팅업체의 글로벌 대표로부터 직접 컨설팅을 받기란. 우리는 많은 기업인들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줄 작정을 했다.

그에게 먼저 세계 경제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은 지났지만, 경기 회복 속도가 과거에 비해 더디고, 상당히 충격에 취약하다"는 요지로 대답했다. "금융시장이 또 한 번의 불확실성을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에 매우 유념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들 속에서도 세계 경제가 그리 순탄치 않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 닿았다. 우리는 이런 격동의 시기에 살아남는 법이 무엇인지 내처 물었다.

격동의 시기 살아남으려면 
새 사업 시작하는 것보다 핵심사업에 전력 투구하라
사업 다각화는 실패 확률 높아… 非관련 사업일 경우 더 위험


그런데 대답이 싱거울 정도로 단순했다. "핵심에 집중하라"는 것. 많은 경영 대가들에게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은 말이다. 게리 해멀의 핵심역량 이론부터 짐 콜린스의 고슴도치 이론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요즘 한국 기업들은 신성장 동력이 화두 아닌가. 다들 현재 사업으로는 미래에 살아남기 어렵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이건희 회장마저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10년 안에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과 제품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세상이 급변하는데도 기존의 성공방정식에만 집착하다가 실패한다는 '활동적 타성' 이론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대답은 다소 한가하게도 들렸다.

그도 우리의 이런 기분을 알아챘는지 "지나치게 단순한 대답처럼 들릴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실제 제 대답의 요지는 단순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 놓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10층에 있는 베인앤컴퍼니 코리아 회의실 창 바깥으로 큰눈이 내린 뒤라 한결 청명한 하늘과 높이가 고르지 않은 빌딩 숲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핵심사업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제가 CEO들에게 두 번째로 자주 하는 질문은 '현재의 핵심사업에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습니까?'입니다. 새로운 사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 전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세요. 다음 질문에도 답해 보십시오. '당신 회사가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이미 그 시장에 터를 잡고 있는 기존 업체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가 뭡니까?' 제가 신사업에 뛰어들려는 CEO를 만났을 때 항상 하는 질문입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하면 신규 시장 진출을 통한 사업 다각화 시도의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엘리스 사장은 요즘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화두가 '신성장동력 찾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동료이자 《핵심에 집중하라》의 저자인 제임스 앨런(Allen) 전략부문 대표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이 다른 사업으로 진출할 경우, 그것이 관련 사업일 경우에도 4건 중 3건이 실패한다. 비관련 사업으로 진출할 경우엔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기존 핵심사업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서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베인앤컴퍼니 CEO 스티브 엘리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그렇다고 새로운 인접 사업이나 신기술에 투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핵심사업의 최대 능력을 이끌어 내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햇수로 20년째 컨설팅 일을 해온 엘리스 사장은 IT 버블과 엔론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 베인앤컴퍼니의 글로벌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참이었다.

그는 질문을 던지면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척척 답을 내놨다.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포인트를 콕콕 집어줬다. 마치 과외선생님 같았다.

스티브 엘리스 사장은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 MBA스쿨을 나왔다. 1989년 실리콘밸리에서 전략컨설팅 회사를 창업했으며, 1993년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했다. 주로 IT 분야 일을 담당했고, 2005년 CEO가 됐다.

■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사업을 개발하라

―제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는 한국 CEO라면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어요?

“우선 핵심사업의 잠재 역량을 충분히 이끌어낸 뒤에 신규 사업 진출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흔히 이미 핵심사업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추가로 성장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지레짐작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기업들이 가장 자주 범하는 실수입니다.

시장점유율이 이미 50%나 되니 이젠 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장점유율을 60%까지 끌어올린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해 시장점유율을 0%에서 기껏해야 5%, 10%로 끌어올리는 것에 비교해 기존 사업의 선도적 지위를 한층 강화하는 것은 회사의 수익과 현금흐름, 주가, 기업가치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신성장동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M&A를 활용하는 것이 대세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해외에서 성공적인 M&A 경험이 많지 않으므로 경험을 쌓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다음 충고였다.

마지막 충고는 한국 기업들이 제조업에만 머물지 말고, 이와 연관된 서비스 부문의 사업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GE나 보잉을 보세요. 이런 회사는 원래 발전 장비나 플랜트, 항공기 같은 제품을 판매했지만, 제품 리스(lease)와 판매 금융 등의 서비스 사업을 개발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오티스 엘리베이터도 수익의 상당 부분을 엘리베이터 판매가 아닌 엘리베이터의 유지·보수 사업에서 창출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에 기반을 둔 서비스 사업 개발은 한국에 절실한 고용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 2~3등 기업일수록 여러 군데 베팅하는 걸 조심하라

―삼성이나 LG 같은 한국의 선도 기업은 성공적으로 세계화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아래쪽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만 해도 세계화 경험과 인력이 일천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글로벌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런 기업들에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역시 ‘핵심에 집중하라’가 해답입니다. 이런 기업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여기저기 너무 많이 찔러보고, 귀가 얇다는 겁니다. ‘뭐가 유망하더라’는 소문을 듣거나, 경쟁사의 움직임을 보거나, 고객의 권유를 받고 해외 진출이나 신사업 투자를 쉽게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재무나 인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럴만한 여력이 선도기업에 비해 부족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매력적이고 흥미로워 보이는 사업 기회라도 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작다면 단호하게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서너 군데에 베팅을 하면 그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는 “글로벌화를 본격적으로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지를 사람들은 너무나 심각하게 과소평가한다”고 개탄했다. 너무 겁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온 고언(苦言)일 것이다.


그는 20년 컨설턴트 생활 중 최악의 순간으로 1990년대 초반 한 반도체업계에 컨설팅해 줬던 경험을 꼽았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수율도 개선됐고, 생산설비의 생산성도 향상됐고, 본사 조직도 개편됐다. 비용이 큰 폭으로 절감됐고, 신제품 개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회사는 파산했다. 과도한 부채 때문이었다. 사모펀드가 이 회사를 사들일 때 부채를 너무 많이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사회나 CEO에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타협하지 않고, “부채 문제를 해결 못 하면 이 프로젝트는 안 하겠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는데 못했다. 그는 “프로젝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회사 전체의 성공이라는 통합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 제조업과 연관된 서비스사업을 개발하라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빨리 따라잡기(fast―follow) 전략으로 선도적 기업이 됐는데, 앞으로 이들이 애플 같은 혁신 기업(innovator)이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최종 고객의 변화하는 욕구(needs)에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서비스 사업 강화’와도 연결됩니다.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사고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지 소비자가 언제 어떤 제품을 사는가뿐만 아니라, 그들이 제품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그들의 심리적 특성이 소비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애플의 혁신 방법을 볼까요. 그들은 고객에게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지 않고, 고객이 앞으로 무엇을 필요로 할지를 앞서 예측합니다. 이는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다양한 고객군이 어떤 식으로 발달하는지에 대한 매우 심오한 이해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수수께끼의 해법 중 하나는 다양성입니다. 기술과 연구개발 조직에 다양성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68세의 기술자와 18세 학생이 함께 일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 컨설팅 회사엔 ‘큰 질문’을 하라

―컨설팅 회사의 역할에 회의적인 기업이 많습니다. 컨설팅 회사와 함께 일할 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회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가장 큰 문제, 당신을 가장 큰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사안, 가장 큰 수익을 가져올 사안 말입니다. 그런 곳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자문 서비스가 적용돼야 할 분야입니다. 몇 주 동안 저희 지식을 단편적으로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큰 질문을 하고, 충분한 시간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전략이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고, 실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장기적인 관계가 반드시 돈이 많이 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컨설팅사가 고객사와 고민을 같이하기 위해 ‘성공 보수’ 제도가 있다고 했다. 컨설팅 용역료의 일부를 성공 보수로 받는데,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100%까지 다양한 사례가 있다. 아직 아시아에선 낯선 개념이지만, 지난해 베인앤컴퍼니 전체 매출의 절반이 성공 보수 계약을 채택한 고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성공 보수 계약은 무엇보다 고객과 동반자 관계가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 배를 타게 되니 컨설팅을 해 주고 집에 가서는 잊어버리고 마는 게 아니라 밤낮 머리를 싸매게 된다는 것이다.


■ 정보를 걸러내라

―세상은 날로 복잡해지고 CEO가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CEO가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법은 뭘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정보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하는 점과 늘 씨름하고 있습니다. (양팔을 넓게 벌리면서) 요즘 세상엔 너무나 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난무합니다. 데이터가 온갖 형태로 매일 같이 쏟아지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메일을 다 챙길 수도, 책을 다 읽을 수도, 사람들과 필요한 대화를 모두 할 수도 없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빈도로 적절한 정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정보를 위한 정보는 좌절감만 안겨줄 뿐입니다. 정보는 의사결정과 실행으로 연결될 때만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정보는 지식의 단계가 돼야 비로소 의사결정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정리해 이로부터 지식을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가족에게는 ‘좌뇌 본능’을 감춘다

엘리스 사장에게 “자녀가 몇이냐”고 묻자 심각하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는 함박웃음을 짓더니 “좋은 질문이다. 물어봐 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은 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2남 1녀를 두고 있다. 각각 15세와 12세, 9세이다. 장남은 대를 이어 컨설턴트가 되고 싶어 하지만, 차남은 요리사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하고, 딸인 막내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를 지망한다고 했다.

―자녀들에게도 컨설팅을 해주나요?

“전 이미 오래전에 제 직업을 가정에 적용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웃음) 저희의 특징은 고도로 훈련된 좌뇌(左腦)를 갖고 있고, 분석적이고 구조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게 우뇌(右腦)와 감정적인 측면이 압도하는 가족 문제에는 통하지 않거든요. 저는 그래서 집에선 좌뇌 본능을 감추고, 나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일 제가 고객에게 말하듯이 말하려 들면 아이들은 바로 따집니다. ‘아빠, 여긴 회사가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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