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장산

 
어찌 이런 깊은 곳에다 암자를 들였을까.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하는 백암산 상왕봉의 까마득한 암봉 아래 매달려 있는 백양사의 산내암자 약사암이 온통 단풍들로 포위돼 있다. 


가을 단풍의 최고 명승지라면 어디를 꼽으시겠습니까. 단연 내장산(內藏山) 국립공원이겠지요. 가을이면 속(內)에 감추어둔(藏) 활엽수림에 단풍의 불씨가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는 곳입니다. 

내장산 국립공원이라면 흔히 내장산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국립공원은 전북 정읍 쪽의 내장산에다 전남 장성 쪽의 백암산과 입암산을 한데 묶어서 이르는 말입니다. 이 세 곳의 산 중에서 으뜸을 뽑자면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백암산이나 입암산의 단풍을 더 쳐주고 싶습니다. 백암산 정상에 우람하게 서있는 암봉인 백학봉 아래 절집 백양사의 정취도 빼어나지만, 절집으로 드는 길에 화르르 불붙은 아기 손바닥만한 당단풍이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까닭입니다. 해마다 단풍철이면 몰려든 행락객들로 북적거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온통 북새통을 이루는 내장산 쪽보다야 훨씬 덜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이번 주말무렵부터 내장산국립공원 일대는 단풍이 절정으로 향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주말 백암산과 입암산에 올랐을 때 슬금슬금 7분 능선까지 내려왔던 단풍이 아마도 이번 주말쯤이면 온 산으로 옮겨붙어 한 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겠지요. 

10년 넘게 내장산 국립공원에서만 근무해왔다는 백암분소의 직원은 ‘내장산 국립공원의 최고의 단풍코스’를 묻는 질문에 맥 빠지게도 ‘주차장에서부터 백양사까지 이르는 길’을 꼽았습니다만, 차량 정체와 인파를 뚫고 단풍 명산까지 가서 그곳만 보고 돌아온대서야 어디 보람이 있겠습니까. 

백암산에는 백양사에서 출발해 상왕봉 정상을 딛고 소죽엄재를 넘어 내장사까지 이르는 16.5㎞의 탐방코스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도합 8시간이 넘어 걸리는 고된 산행이라 산자락을 뛰듯 넘나다니는 건각(健脚)들에게나 허락된 것이지요. 백양사에서 백학봉을 지나 상왕봉 정상을 찍고 운문암을 거쳐 내려서는 코스도 5시간은 족히 걸리니 단풍 구경을 나선 차림으로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습니까. 꼭꼭 숨겨뒀던 ‘비장의 코스’인 장성새재. 아는 이들이 적긴 하지만, 경상도 땅 문경에 ‘문경새재’가 있다면 전라도에는 ‘장성새재’가 있습니다. 장성새재는 입암산과 백암산의 낮은 목을 타고 전남 장성에서 전북 정읍으로 넘어가는 삼남대로의 샛길이자 뒤안길입니다. 단풍이 한창 물들어갈 무렵에도 그 길에는 아예 인적마저 드물어 대낮에도 무섬증이 들 정도입니다. 

이쪽의 단풍의 색감을 고로쇠나무가 만들어 냅니다. 이 길에 단풍나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선명하게 물든 고로쇠나무 숲을 보게 된다면 단풍나무쯤은 전혀 아쉽지 않을 터입니다. 게다가 이 길은 오르막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탄해 운동화차림으로 아이 손을 잡고도 걸을 수 있답니다.

이곳만으로도 아쉽다면 백양사에서 출발해 암봉아래 제비집처럼 매달린 암자인 약사암까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녀오는 코스를 덧붙입니다. 절집에서 암자까지 오르는 갈 지(之)자의 산길이 가파르긴 합니다만, 그래봐야 쉬엄쉬엄 간대도 암자까지는 20분쯤이면 넉넉히 당도합니다. 암자 마당에서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들처럼 갖가지 색깔들로 물들어가고 있는 숲과 그 숲 가운데 자리잡은 백양사의 전경을 내려다보노라면 선경이 바로 이곳이다 싶으실 겁니다. 이 가을, 느긋한 걸음으로 최고의 단풍을 만날 요량이라면 서둘러 짐을 꾸리시지요. 이제 가을이 머물고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장성·정읍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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