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조선일보2008.11.04 16:13

술도 안 마시는 내가 왜 지방간?

급증하고 있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회사원 김미래(25·여)씨는 얼마 전 직장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초음파를 검사에서 김씨의 간은 정상보다 훨씬 하얗고 부어 있었다. 김씨는 평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며, 뚱뚱한 편도 아니다.

담당 의사는 "고지혈증이 원인으로 보인다. 체내에 쌓인 지방들 때문에 간에 염증까지 생긴 상태"라고 했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고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한 것이 지방간을 불러온 것이다.

지방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술을 의심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지방간으로부터 안전하다고만 할 수 없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소량만 마실 뿐인데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처럼 간에 지방이 쌓이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 수가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보다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조용균 교수가 대한간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07년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73만 명 중 지방간(알코올성 + 비알코올성) 환자는 28.3%였다. 이중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는 검진자의 16%로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12.3%)보다 많았다.


조 교수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 유병률은 5%도 안됐다. 때문에 그 동안 일반인은 물론 의료인들도 술 때문에 생기는 알코올성 지방간에만 관심이 있었지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하지만 지난 5년간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의학계에서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수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의들은 비만, 당뇨병, 고혈압 환자의 증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당뇨병 환자의 33%, 고혈압 환자의 20.7%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이나 당뇨병, 고지혈증이 생기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에 대한 체내의 저항성이 증가해 당이나 지방대사가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에너지 대사를 총괄하는 간에 지방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차봉수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앞으로는 고혈압, 당뇨병, 비만과 같은 대사증후군 지수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복부 초음파를 통해 쉽게 진단할 수 있어 뇌졸중, 심근경색증과 같은 심혈관 질환으로 가기 전 단계인 대사증후군을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 다른 원인으로는 약물의 장기 복용을 들 수 있다. 약을 복용하면 모두 간을 거쳐 다른 기관으로 가므로 혈압약, 스테로이드 등을 몇 년 이상 계속 먹으면 간이 부담을 받아 본래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알코올성 지방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알코올성 지방간에 비해 진행 속도가 느려 오른쪽 배가 뻐근하거나 식욕이 떨어지는 등 지방간의 일반적인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지방간이 있는 줄 몰라 간에 염증이 생긴 다음에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젊거나 겉보기에 뚱뚱하지 않지만 내장 비만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건강검진 때 발견된다.

성가병원 소화기내과 이영석 교수(대한간학회 이사장)는 "지방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방간 환자의 5~20% 가량은 지방간에 의한 간염으로 진행되고, 이중 30~40%는 간이 딱딱해져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없는 간경변증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비알콜성 지방간의 치료 원칙은 간염으로 진행되지 않는 한 식이조절과 운동이다. 운동은 걷기, 조깅, 수영과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한 번에 30분씩 일주일에 3번 이상 해주는 것이 좋고, 식사는 기름진 음식을 삼가고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만이 있으면 현재 체중의 10%를 3~6개월 내에 서서히 줄이는 것을 목표로 체중감량에 들어가야 한다. 식이조절과 운동을 몇 달 이상 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거나 간염으로 진행됐을 때는 간장보호제나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약을 쓴다.

조용균 교수는 "지방간은 관리만 잘하면 완전히 없어진다. 간염으로 진행되더라도 70%는 원래의 깨끗했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혹 약 한번 먹는 것으로 간에 쌓인 지방을 다 없앨 수 없냐는 환자들이 있는데 지방간의 경우 약은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운동, 식습관 등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인의 간 ①] 폭음·과로에 지친 간… 가장들이 쓰러진다

헬스조선·세브란스병원 공동 기획
간암, 40~50대 사망률 압도적 1위
가장 큰 요인은 술·간염 바이러스
보호제 습관적 과복용 오히려 毒


1. 간(肝)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

당신이 아침에 한 시간쯤 걸려 출근했고, 사무실에 도착해 40~50분쯤 19일자 조선일보를 읽었다면 그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나라에서 약 4명이 간암이나 간경화 등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07년 간암 사망자는 1만900명, 그밖의 간 질환 사망자는 7300여 명으로 총 1만8200여 명이었다. 1시간에 2명이 간암이나 간질환으로 사망한 셈이다.

간암을 제외한 간 질환의 경우 사망 원인에서 1997년 5위, 2006년 7위, 2007년에는 8위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당분간 10대 사망 원인에서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간 질환에 의한 사망이 줄어드는 것은 간염 예방접종 확대 등의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간 질환에 의한 사망이 감소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40~50대 사망률에서 간암은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한국인은 서양인들에 비해 간염 바이러스를 많이 갖고 있는데다 폭음, 흡연 등으로 간을 혹사하는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도 많아 간은 늘 위기"라고 말했다.

연말이 다가오면 잦은 술자리 등으로 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부하(負荷)가 걸린다. 특히 올해는 폭음과 과로에 주식폭락과 펀드대란, 구조조정 등 경제위기에 따른 스트레스까지 가중돼 간은 더 혹사당할 처지에 놓였다. 한국인은 경제위기 못지 않은 간의 위기(危機)에 처해 있다.



2. 멀쩡하던 40대가 간경화라니…

회사원 박모(41)씨는 지난달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간 수치를 나타내는 GOT와 GPT가 정상 범위(30~40)를 조금 넘는 50이 나왔다.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건진센터의 권고에 따라 간 초음파 검사 등을 받은 결과 간경화로 최종 진단됐다.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받은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가 정상을 벗어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박씨는 영업직이란 업무의 특성상 적어도 1주일에 3~4일 술을 마셨지만 워낙 체력이 좋고 B형 간염도 없었다.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웠고, 이어진 폭식 탓에 최근 2년 사이에 체중이 10㎏ 이상 늘었다. 간이 걱정돼 각종 간장약을 입에 달고 있을 뿐 아니라 부인이 구해온 건강기능식품도 수시로 먹었다.

박씨를 진료한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준용 교수는 "박씨의 생활습관만 봐도 간 질환 고위험군이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간암으로 진행을 늦출 방법마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검진에서 별 이상이 없던 박씨에게 간경화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왜일까?

간경화가 생기면 간 세포가 상당수 죽는다. 이 때문에 간 세포가 파괴되면서 나오는 효소의 양을 측정하는 간 기능 검사에서는 간 수치가 정상 또는 그 아래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문에 건강검진에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평소의 나쁜 생활습관을 계속하다 느닷없이 간경화나 간암으로 진단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3. 술과 간염 바이러스는 간의 최대 적

한국인의 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간염 바이러스와 술이다. B형 또는 C형 간염환자는 간암 또는 간경화 발병 위험이 간염이 없는 사람보다 약 7배 더 높다.

술은 간 질환의 직접 원인이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도영 교수는 "박씨처럼 매일 소주 1~2병씩 마신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간 질환 위험도가 약 2~3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간에 과다한 알코올이 들어오면 간은 이를 처리하느라 지방을 대사시키지 못해 지방이 간에 끼는 지방간이 생기고, 이것이 오래되면 간 세포가 파괴된다.

흡연도 간 질환의 중요한 요인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가 간암 사망자 3807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흡연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간암 발생 위험이 약 2배 더 높았다.

비만도 간에는 큰 짐이다. 체질량 지수(BMI)가 30 이상이면 간암 발병률은 약 3배 더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비만할수록 지방간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나이도 변수다. 40대에 접어들면 얼굴 피부의 탄력 섬유가 점점 파괴돼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간도 세포들이 점점 파괴돼 작은 자극에도 염증이 생기고 간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간경화를 일으키기 쉽다는 것. 김도영 교수는 "40세 이상이면 간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더 어린 연령에 비해 4배쯤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뇨병도 간의 큰 위협 요인이다. 간염에 걸린 사람이 당뇨병까지 생기면 간암에 걸릴 위험이 둘 다 없는 사람보다 무려 47배나 높다.

음식과 약물도 중요한 변수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이관식 교수는 "간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약이나 음료를 술 마시기 전후에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물질도 간에 많이 들어가면 간에 부담으로 작용해 오히려 독성물질이 간에 쌓이게 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성분이나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약초 등을 지나치게 섭취하는 것 역시 간에는 큰 부담이다.

한광협 교수는 "간은 최악에 이르기 전에는 통증 등 전조증상이 없다. 통증을 느낄 때는 이미 대부분 망가져버린 경우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묵묵히 있을 때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인의 간 ②] 너무 흔한 지방간… 무시하다 암(癌) 키운다


지방간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대한간학회 등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지방간 유병률은 28%에 이르고 있다. 알코올성 지방간 외에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의한 지방간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당뇨병 환자의 33%, 고혈압 환자의 20.7%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간은 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지방간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1. 지방간 방치하면 간경화·간암으로 진행

김모(67)씨는 근래에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룩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부터는 배가 너무 불러 밥 먹

는것,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의사는 "간경화로 복수가 찬 것이며, 간 크기도 정상의 3분의 2로 줄었다. 지방간을 오래 방치해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방간이란 전체 간 무게 중 지방이 5% 이상 끼어 있는 상태로 알코올성과 비알코올성으로 나뉜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과다한 음주로 생기며, 비알콜성 지방간은 술을 마시지 않거나 술을 조금(남성은 소주 1.6~1.7잔/일 이하, 여성은 소주 0.7~0.8잔/일 이하) 마시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도영 교수는 "지방간이란 진단을 받은 환자의 절반은 '그까짓 지방간이 대수냐'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지방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나중에 간경화까지 진행된 뒤 병원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지방간을 방치하면 간경화 또는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성 지방간의 10~35%는 알코올성 간염으로 진행되며, 알코올성 간염의 8~20%는 간경화로 진행되고, 이중 15%는 간암으로까지 악화된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자경 교수는 "현재까지는 간경화의 주 원인이 B·C형 간염이다. 하지만 최근 원인을 알 수 없는 간경화 환자를 추적해보면 지방간을 방치해두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의 10%는 비알콜성 지방간염으로 진행되며, 이중 30~40%는 간경화로 악화된다. 김 교수는 "지방간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불씨를 놔두면 나중에 큰 불이 될 수 있다. 일단 지방간이 간경화로 진행되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정상 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2. 지방간, 잘 관리하면 100%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

대한간학회가 2008년 9월 23일부터 10월 6일까지 17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는 지방간 또는 간 염증 수치(SGOT, SGPT)가 상승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52%)은 '지방간이란 진단이 나와도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염과 달리 지방간은 생활습관만 교정해도 90~100%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간 세포가 일부 손상된 지방간염으로 진행된 경우에도 생활습관을 잘 조절하면 70%는 깨끗한 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이관식 교수가 2주간 환자 4명에게 운동과 식이요법을 시킨 결과를 보면 이들의 간 상태는 크게 호전된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에 참여했던 안모(43)씨의 SGOT(간염증 수치; 정상은 13~37IU/L)는 52에서 43로, 113이었던 SGPT(정상은 7~43IU/L)는 75로 낮아졌다.

이관식 교수는 "금주, 운동, 식습관 변화가 간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B·C형 간염은 약물이 주 치료이지만, 지방간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라고 말했다.


3. 지방간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지방간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을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양팀 김선정 과장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① 뭘 어떻게 먹나?

간에 지방이 많이 끼었으니 고기는 절대 금물일 것 같지만, 지방간이면서 간 수치까지 높은 경우라면 고기를 먹는 것이 좋다. 간 수치가 높다는 것은 간 세포가 파괴되고 있다는 뜻인데, 고기의 단백질이 간 세포의 재생을 돕는다. 다만 갈비나 삼겹살처럼 지방이 많은 것보다는 살코기 등 지방이 적은 것을 고른다. 전체 식사량은 평소의 3분의 2로 줄여야 한다. 또 인스턴트 음식을 피하고 조리시에는 튀김이나 전보다는 구이, 조림, 찜 등이 좋다.

② 살은 얼마나 빼야 하나

과체중이나 비만이면 체중 감량을 시작해야 한다. 단 급격한 체중 감량은 지방간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꼭 알아야 한다. 짧은 시간에 살을 급히 빼면 체내 지방 분포가 바뀌면서 간에 지방이 더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의 목표는 현재 체중의 10%를 3~6개월 동안 빼는데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은 유산소운동이 좋지만 종목이나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③ 간장 보호제, 먹어야 하나

지방간으로 진단돼도 이른바 '간장 보호제'를 챙겨먹을 필요는 없다. 간장 보호제를 먹는다고 해서 간에 낀 지방이 없어지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지방간이면서 간염이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약을 처방해주지 않는다. 특히 성분을 잘 모르는 건강기능식품은 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담한 뒤에 복용해야 한다.

④ 술은 마셔도 괜찮나

알코올성 지방간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3~6개월간 완전 금주해야 한다.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술의 높은 열량 때문에 악화될 수 있으므로 지방간이 없어질 때까지 금주하는 것이 좋다. 완전 금주가 어렵다면 마시는 양을 하루 1~2잔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술 마신 뒤 3일 이상 쉬는 '휴간일(休肝日)'을 잘 지켜야 지방간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인의 간 ③] 30년간 탈없던 간… 어느날 ‘간암 4기’ 공포로


B·C형 간염자 간암 확률 '100배'

민간요법이 오히려 간 손상 불러

지방간 등 간질환자 '폭음' 금물



"이것만 했더라면 간암·간경화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간암은 5년 생존확률이 20%도 안 되는 무서운 암이다. 특히 간암이 발병해도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미미한 경우가 많아 '말기가 돼서야 암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 때문에 40세 이상 남성, 주 3회 이상 마시는 애주가(愛酒家),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면 '간암'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간경화도 간암만큼 무섭다. 간암·간경화 환자 3명의 얘기를 통해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지 알아본다.

1. B형 간염 바이러스 있는데도 정기검진 안 받아

이모(55)씨는 35년 전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사실을 안 뒤부터 몇 년간은 의사의 말에 따라 바쁜 시간을 쪼개 열심히 정기검진을 받았다. 그 때마다 의사는 "별 문제 없다"고 했다. 얼마 뒤부터 정기검진이 시간과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날부터 병원을 멀리했다. 그렇지만 별 일 없이 30여 년이 흘렀다.

몇 개월 전부터 밥맛이 없고, 2~3개월 동안 체중이 9㎏이나 빠졌다. 부인과 함께 병원을 찾은 그에게 전해진 비보(悲報)는 '간암 4기, 신장 위의 부신에도 암이 전이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B·C형 간염환자들은 간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100배나 높다. 간암환자에서 B형 간염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55~60%나 된다. 이 때문에 간염 환자들은 정기검진을 자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씨처럼 간염 바이러스가 있어도 별다른 증상이 없는 간염 보균자들은 정기검진을 잘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도영 교수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들은 증상이 없으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이러스는 언제든 활동할 수 있다. 정기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 중 몇몇은 2~3년 뒤에 간암 진단을 받고 난 뒤에 온다"고 말했다.

대한간학회는 간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정기검진뿐이며,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들은 3~6개월에 한번씩 반드시 간 초음파, 간 수치 검사 등 정기검진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2. 암 수술 뒤 상황버섯 먹고 간 더 나빠져

최모(57)씨는 몇 개월 전 간암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다행히 간암 초기에 발견해 수술 결과가 좋으며, 회복만 잘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병원 문을 나선지 한 달도 채 안 돼 최씨는 얼굴에 누런 황달이 끼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설 기력조차 없어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간 상태가 심하게 나빠져 현재로서는 항암치료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이 잘 된 최씨의 상태가 이처럼 나빠진 원인은 아는 사람이 중국에서 구해서 보내준 상황버섯을 달여먹은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의료진들은 말했다.

누군가가 '간이 안 좋다'는 말이 나오면 '영지버섯이 좋다' '아니다 상황버섯이나 헛개나무가 좋다' '그보다는 인진쑥, 봉삼이 좋다'는 등의 목소리가 난무한다. 하지만 간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먹지 말아야 하며, 불가피하게 먹을 경우라면 반드시 의사와 상의를 해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어도 간염 보균자, 지방간, 간경화, 간암 환자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민간요법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간에 좋다는 것들의 상당수가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먹지 못하게 말린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간 질환이 있는 사람이 이들 약초를 먹은 뒤 약물 유도성 간염이 생기게 되면 치료가 늦어지거나 치료를 아예 할 수 없을 정도로 간이 손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간학회지 최신 호에 발표된 충남대 의대 강선형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환자들이 병원에서 처방받지 않은 약을 먹은 뒤 복통, 구토 등 독성 간염 증상을 보인 159건을 조사한 결과 민간 약제에 의한 것이 3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술 좀 먹었다고 간 이식까지 할 줄은…

건축회사를 경영하는 천모(47)씨는 경기 불황으로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된 뒤부터 밤마다 소주를 한 병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면부족에 만성피로까지 느낀 그는 동네병원을 찾았다가 알코올성 간염으로 진단 받았다. 며칠 간 입원한 뒤 퇴원하는 그에게 의사는 "무조건 술을 끊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6개월 만에 복수가 차고 피까지 토하는 간경화 합병증으로 병원에 실려간 그는 현재 간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술은 알코올성 간 질환자는 물론 비알코올성 간질환자, 간염 보균자에게 간암·간경화를 부르는 '초대장'이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자경 교수는 "IMF구제금융 때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우면 B형 간염, 지방간 등 비교적 가벼운 간 질환이 있던 사람들이 폭음을 하다 심각한 간 질환으로 진행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술로 인한 간암 환자의 약 90%는 직장이나 가족 중에 관심을 갖고 술을 끊으라는 잔소리를 하거나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술로 인한 간경화나 간암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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