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프레시안 2008-08-22 오전 9:23:29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③
식민지의 경제적 착취

경제적 주권의 박탈과 경제의 기형화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처음 건설한 스페인 왕실이 계속 관심을 가졌던 것이 귀금속의 착취였던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식민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처음부터 경제적 착취이다. 정착식민지의 경우 식민자들은 원주민들로부터 토지를 아예 강탈했으니까 이야기할 것조차 없다.
 
  착취식민지는 이와는 달리 사람에 대한 착취와 물질적인 착취가 함께 목적이므로 경제적 착취는 바로 식민지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러나 당장의 직접적인 착취만이 피해를 준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것이 장기적으로 식민지의 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기형화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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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식민지에 대한 벨기에 레오폴트 2세의 가혹한 착취를 상징하는 그림(1906). 콩고는 레오폴트 2세의 개인식민지로서 그 착취는 악명이 높았다.

  식민지 경제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식민지인들이 조세나 무역, 화폐 제도 등에서 주권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없게 되고 자신들의 복리를 위한 경제정책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또 식민지의 경제관계는 주로 식민 모국과 맺어지게 마련이므로 서양국가들이나 일본 경제에 하위 파트너로 밀접하게 통합된다. 그래서 과거에 다른 나라나 주변 지역들과 맺고 있던 전통적인 경제적 관계들은 깨어진다. 그러니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역도 주로 모국과 이루어질 뿐 아니라 무역제도도 모국에게 유리하게 시행된다. 그리하여 모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가 되는 반면 높은 관세 장벽 때문에 모국으로의 수출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 결과 싼 가격으로 밀려들어오는 공산품 때문에 식민지에서 발전하던 수공업이나 산업들은 붕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식민지가 모국의 공산품 시장으로 전락하며 스스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식민주의자들이 식민지에 철도나 도로, 통신시설, 학교, 농지개간이나 수로 정비 사업 등 사회기반 시설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철도의 건설은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지로부터 원자재를 반출하고 식민지를 모국경제에 보다 밀접하게 통합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진정으로 식민지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인 경부철도의 건설이 러일전쟁을 위한 군사적 목적 때문이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런 자금은 식민지에 대한 가혹한 세금 수탈로 확보된 것이다. 결코 식민당국의 시혜가 아니다.
 
  시기에 따라 식민지의 경제정책이나 제도들이 여러 형태로 변화하기는 했지만 어떤 것이건 식민지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이나 자립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식민주의자들이 가져다 준 일부 혜택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요사이에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비양심적인 학자들을 따라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일제시기에 일본인들이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어주었다는 등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는 정신 나간 학자들이 있다. 식민지시기에 한국 자본주의의 기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식민지 경제가 기본적으로 식민모국을 위해 봉사한다는 초보적인 사실조차 부인하는 이야기이다. 또 우리가 독립한 상태에 있었다면 그 정도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자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너절한 주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강제노동과 토지의 약탈
 
  많은 지역에서 식민주의자들은 식민지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드물게 노예제도를 채용한 곳도 있기는 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강제노동이 행해졌다.
 
  16세기에 중남미 지역에서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스페인인 지주들은 원주민들을 엔코미엔다라는 제도에 의해 자신들에게 예속시켰다. 스페인 왕이 수여한 권리에 따라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정해진 만큼의 노동을 해 주도록 강요하는 강제노동 제도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대가를 지불하건 안 하건 강제노동은 일반적인 노동착취 형태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대거 동원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같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자바 지역에서 커피를 생산하며 중남미에서 비슷한 형태의 강제노동 제도를 이용했다. 일본도 2차대전 때 수많은 조선인들을 군대나 공장에 징용함으로써 노동력을 착취했다.
 
  강제노동보다 더 문제가 심각한 것은 토지의 약탈이었다. 북미지역에서와 같은 '뉴잉글랜드' 형태의 정착식민지에서는 원주민들이 살던 땅에서 모조리 쫓겨났다. 그들은 싸우다 죽던가 아니면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쫓겨났다. 한국인들이 이를 '인디언 보호지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 알고 하는 소리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기름진 땅들은 거의 정착 식민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멕시코나 알제리, 로데시아, 남아프리카, 조선 어디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식민지인들은 자신이 농사짓던 땅들을 빼앗기고 소작인, 품팔이 농사꾼이 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제시기에 전라도의 넓은 평야가 거의 일본인 지주의 손에 넘어간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식민자들은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농장인 플랜테이션들을 만들어 식민지 농민들의 생활을 전체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탕수수, 커피, 차, 바나나, 면화, 고무 등 수출용 환금 작물들을 생산하는 농장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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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 북로데시아의 담배플랜테이션을 선전하는 포스터. 백인들은 플랜테이션이 원주민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강변했다.

  그리하여 일부 식민지의 경우에는 수출작물을 생산하느라고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자라는 식량을 높은 가격에 수입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는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또 이런 경제구조는 그 사회의 성격도 결정지었다.
 
  수출작물의 생산을 통해 큰 돈을 벌고 식민세력의 비호를 받는 백인이나 소수의 원주민 지주세력은 그 사회의 특권적 지배계급이 된 반면 대다수의 농민들은 땅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며 엄청난 빈부 차이가 생긴 것이다. 오늘날 중남미 국가들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이런 큰 빈부 격차는 바로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
 
  식민지의 탈산업화
 
  이런 점에서 제 3세계 학자들은 식민 착취가 식민지인들에게 경제적 궁핍을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식민국가의 경제에 기형적으로 예속됨으로써 자생적인 발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것을 통해 유럽국가들은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여기에서 비롯된 경제적 예속성이 독립 이후에도 제 3세계가 선진국과의 교역에서 부등가 교환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제 3세계는 값싼 열대작물들과 가격 변동이 매우 심한 광산물이나 팔고, 대신 자동차나 정밀기계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공산품들을 사들여야 하니 계속 부를 유출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배가 식민지 산업의 싹을 잘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럽중심주의적인 서양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착취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해도 이들 지역에서 경제가 발전했을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래서 일부 조건이 좋은 국가들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여러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산업화를 식민주의의 결과로 보지 않고 식민주의를 산업화의 결과로 주장하기도 한다. 산업화로 인해 커진 힘이 비유럽의 식민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D.필드하우스가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영국과 인도와의 관계만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면직산업 성장에 있어 벵골 식민지가 한 기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중요한 식민국가들의 경우에는 대동소이하다. 19세기 말의 후발 식민국가들을 제외하면 이들 나라의 식민주의는 다 산업화보다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게다가 보호관세 없이 식민모국의 공산품 시장이 된 상황에서 식민지들이 스스로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8세기까지 이익이 많이 나는 면직물 산업에서 세계에 군림했던 인도가 영국의 식민통치를 겪으며 완전히 탈산업화된 것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또 서양학자들 가운데에는 착취를 인정하기는 하나 유럽국가들이 많은 것을 얻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P.베록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식민주의는 산업화로 인해 생긴 힘의 격차 때문이라고 믿으나 그래도 착취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서양이 식민주의로부터 많은 것을 얻지 않았다고 해서 제3세계가 많은 것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탈산업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착취를 통해 유럽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이런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사실은 '제3세계에게도 좋은(굿) 뉴스'라고 말한다. 유럽이 식민지를 착취하지 않고도 잘 살게 되었으니까 식민지가 없는 제3세계도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식민주의적 착취로 깊은 나락 속에 빠져 있는 제3세계의 암담한 현실을 모르고 하는 엉터리 소리이다.
 
  유럽중심주의적 서양학자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제멋대로의 주장을 하는지 이를 통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부문별하게 받아들여 '굿 뉴스'를 연발하는 국내학자들도 있으니 참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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