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프레시안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⑦
프랑스 혁명과 자본주의

농촌사회와 반자본주의적 경향
 
  1793년의 봉건제 해체를 포함한 혁명기 농촌사회의 변화는 자본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봉건제 해체는 농촌사회의 토지소유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민들이 당시까지 영주들에게 내던 여러 공납이나 부담을 면제 받음으로써 자신들이 경작하던 땅을 이제 직접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귀족들은 1815년이 되면 1789년에 소유하던 토지의 근 절반을 잃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국유지 매각이다. 혁명정부는 교회토지와 망명귀족의 토지를 몰수하여 그것을 일반에게 매각했다. 그 대부분은 교회토지였으나 그것이 전 국토의 10% 정도를 차지했으므로 엄청난 규모의 토지 매각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리고 이런 대규모 토지매각이 1790년대 프랑스의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유지 매각은 경매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가난한 농민들의 경우도 일부 토지를 구입하기는 했으나 큰 부분은 대금을 조달할 능력이 있던 부르주아와 부농의 차지가 되었다. 이리하여 농촌 사회에서 과거 영주가 차지하던 자리를 이제 대농들(laboureurs)이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 있는 소농들(petits-propriétaires)과 하층에 있는 수백만의 분익농들(métayers: 이들은 토지를 지주로부터 임대 받아 농사짓고 수확물을 지주와 반분했다), 또 농업노동자들(journaliers)은 별로 얻은 것이 없었다. 사르트르 지역의 경우 대다수 농민의 토지는 5ha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난한 농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대농의 경우 토지가 많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영농 방식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대농이건 소농이건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짓고 남는 일부 토지는 분익농에게 임대를 주었다. 또 나폴레옹 시대에 분할상속이 허용됨으로써 농민의 토지보유 규모는 더 작아졌다. 이렇게 프랑스 특유의 소농체제가 확립됨으로써 영국에서와 같은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영농은 불가능했다.
 
  농민들의 보수적인 태도는 공유지 분할 문제에서도 잘 나타난다. 1793년 6월에 국민공회는 소농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마을마다 있는 공유지를 분할해 주기로 입법을 했다. 개인들이 더 많은 땅을 소유하도록 만들어 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땅이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했다. 공유지에 가축을 놓아먹이는 등 여러 가지 용익권을 행사하는 전통적인 영농방식이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 법은 나중에 폐기되었고 자코뱅파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자코뱅파는 빈농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지를 분배해 주려는 의지는 없었다.
 
  농민들의 이런 보수성은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에게도 고민거리였다. 르페브르도 '혁명기의 경제에 관한 입법의 많은 것이 농업자본주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나 농업적 개인주의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 그 실행을 막았다'고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런 보수성이 혁명기 내내 지속된 농촌에서의 반혁명 운동의 근원인 셈이다.
 
  1971년에 소련 역사학자인 아나톨리 아도라는 사람은 소농체제가 대농체제보다 생산성이 더 높고 혁명기 농민들이 자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을 통해 기존의 견해를 깨뜨리려 시도했다. 농민혁명이 부르주아혁명과 엇나간 것이 아니라 보조를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불을 비롯해 지금도 그 견해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기존의 해석을 대치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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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공회시대의 회고 물가제를 상징하는 풍자화

  혁명기의 경제와 자본주의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의 산업과 자본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프랑스 경제는 18세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데 그것은 주로 해외무역과 식민지 무역의 급팽창 때문이었다. 한 세기 동안에 외국무역 전체는 4배, 유럽국가들과의 무역은 3배, 식민지와의 무역은 무려 10배가 증가했다. 이것이 경제 각 부문에 큰 파급효과를 미쳤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농업적, 영주제적 사회에 적합한 전근대적 생산수단에 의존하고 있었다. 수백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철강공장도 있었으나 그것은 예외적인 일로 대부분의 산업은 길드내의 수공업이나 농촌지역의 소규모 가내수공업 형태로 유지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발전했던 직조산업은 도시에서 길드들이 과하는 제약을 피해 생산장소를 농촌지역으로 옮긴 대표적인 부문이다. 이곳에서 농민들은 농한기에 대상인들이 공급해주는 원료를 이용해 직물을 생산했다. 반면에 왕으로부터 특권을 받아내어 도시에서 길드의 간섭에서 벗어나서 생산을 하는 대상인들도 있었다.
 
  또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식도 아직은 근대적이라고 하기 힘들다. 18세기 후반 프링스의 대표적인 기업가 가운데 한 명인 삐에르-프랑소아 투베프는 프랑스 남동 지역의 작은 석탄광들을 근대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그 지역 영주의 비협조와 옛날 방식으로 채굴하는 수백 명의 구광산업자, 목탄 생산업자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포기해야 했다. 이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지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혁명은 자본주의 발전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했다. 80년대의 경기침체는 혁명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더 악화되었다. 또 방대한 국유지의 매각은 투자재원을 토지에 묶어 두는 역할을 함으로써 경기의 회생을 막았다.
 
  전쟁으로 인한 인력, 식량, 가축의 지나친 소모, 1794년의 혹독한 겨울, 또 아씨냐 지폐의 남발로 인한 과도한 인플레이션으로 1795-6년의 산업생산고는 1789년의 1/3 수준으로 감소했다. 프랑스 실크 산업의 중심지인 리용의 실크 생산은 반혁명 폭동으로 인해 1793년 이후에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노동계급이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발전을 한 부문도 있다. 나중에 근대 산업자본주의의 핵으로 떠오른 면직산업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신규투자도 이어졌다. 이에 따라 원면수입도 1789년의 4,800톤에서 1803년에는 7,000톤으로 증가했다.
 
  금속산업은 전쟁의 혜택을 많이 보았다.
주철 생산량이 1789년의 5만 톤에서 1800년에는 12만 톤으로 배가 넘게 증가했다. 철강산업에서는 면직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기술혁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부문은 전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1796년에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한 후부터 프랑스 경제는 제국주의적 약탈경제로 성격을 바꿨다. 그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반입한 화폐량은 5천 만 리브르에 달했다. 1799년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즈음에는 장군들이 만들어내는 돈이 국가예산의 1/4이 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가운데 장군들, 군납업자, 은행가들이 유착하며 빈부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졌다. 빈민들은 군대에 들어감으로써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수정주의자들은 혁명 시기의 산업생산이나 농업생산의 통계, 또 소농의 증가를 보면 혁명은 결코 자본주의 혁명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1789-1815년의 잉글랜드와 비교하면 분명하다.
 
  소불은 면직산업에서 뚜렷한 기술적 변화와 구조변화가 나타났으며 이런 산업활동을 통해 부르주아는 귀족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맑시스트들은 핵심 산업이나 농업 부문에서 거의 큰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의 자본주의적 경제변화보다는 법적, 제도적인 변화에 더 강조점을 둔다. 봉건제의 폐지나 1791년의 길드제 페지와 르 샤플리에 법의 제정, 새로운 도량형으로서 미터법 채용, 지주-소작인과 고용인-수공업노동자 사이의 전통적인 공동체적 관계가 근대적인 계약적 관계로 점차 이행한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산업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1830년대에 들어가서이다. 그러므로 혁명이 당장 프랑스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는 없다. 19세기 프랑스의 산업화는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서서히 이루어졌는데 이 '지연된 산업화'를 혁명의 결과로 보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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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2년에 발행된 50리브르짜리 지폐인 아시냐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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