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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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다솔사 주지 효당 최범술 스님이 대웅전(현 적멸보궁) 뒤 차밭에 눈을 돌린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예전부터 거기 차밭이 있었다. 200년, 300년 묵은 차나무라고 했다. 스님은 제멋대로 자란 나무를 다듬고, 차 좋다는 절에서 차나무 얻어다 심고, 길을 냈다. 곡우(4월20일) 무렵엔 찻잎을 따고 덖어 직접 차를 만들었다. 73년엔 전통 차 문화를 집대성해 ‘한국의 다도’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이 일제 강점기 끊어진 다도의 맥을 되살렸다. 한국 최초의 차인 모임도 77년 이곳에서 발족했다.
 
‘차 마신다’는 사람이라면 ‘순례’ 삼아 한번쯤 오고 싶어하는 곳. 다솔사 대웅전 뒤 차밭은 예뻤다. 똑바로 자란 편백나무 아래 차나무들이 오종종 모여 있었다. 보성 차밭처럼 나란히 줄서지 않고, 햇볕 받는 비둘기떼처럼 제멋대로 모여있거나 흩어져있다. 기존 야생 차밭을 그대로 두고 효당이 군데군데 심었기 때문이다. 차밭은 절 뒤 3000평. 스님 6명에 마을 사람들 힘 합쳐 지어봐야 한해에 겨우 800통 나온다.
 
물욕 없는 스님들이 차는 어찌 그리 좋아하시는지. 절반은 전국 사찰에 선물 보내고, 나머지는 여기서 마신다. 다솔사 차의 ‘남방 한계선’은 대웅전 계단 아래 서점까지다. 경내 다원에도, 절 입구 전통찻집에도 다솔사 차는 없다. 팔 생각 없다는데도 굳이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서점에 갖다놨다. 우전 60g 한봉지가 5만원. ‘보시라고 생각하시고 드시라’는 거다.
 
사실 지금 다솔사 차는 효당이 만들던 ‘반야로’는 아니다. 효당은 찻잎을 물에 한번 데친 뒤 9번 덖어 황토방에서 말렸다. 9번 우려내도 옅어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러나 76년 조계종 정화운동이 벌어지면서 대처승이던 효당은 절 밖으로 밀려났다. 지금 차는 현 주지 혜일 스님이 10여년 전 부임해 만든 것. 마른 찻잎을 그대로 덖는다. 효당의 차는 79년 입적 때까지 그를 수발한 채원화 반야로차도문화원 원장이 전수받아 만들고 있다.
 
절 사람들도 “반야로가 더 맛있다”고 순순히 인정하지만, 지금 다솔사 차도 전국 사찰에서 두루 찾는다. 우전은 기품이 있었고, ‘죽향’은 여리고 부드러웠다. 죽향은 입하(5월5일께) 무렵의 찻잎으로 만드는 세작. 전통 방식에 중국 제다법을 응용해 대나무에 찻잎을 넣고 구워서 덖는다.
 
지금은 차로 유명하지만, 일제 시대 다솔사는 불교계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1930년대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 은거하며 항일 비밀결사 ‘만당’을 조직했다. 만해의 제자가 당시 주지 효당. 효당은 문맹 퇴치를 위해 1934년 절 아래 마을에 야학 ‘광명학원’을 세웠다. 그해 신춘문예로 갓 등단한 문학청년 김동리가 야학 교사로 합류했다. 김동리는 몇년 뒤 다솔사에서 만해를 통해 ‘분신공양’에 대해 듣는다. 중국의 한 살인자가 속죄를 위해 제 몸을 불살라 공양했는데, 사람들이 던진 금붙이로 금부처가 되었다는 것. 이 이야기는 20여년 뒤 그의 대표작 ‘등신불’로 만들어진다. 야학 교사 김동리가 기거한 곳이 적멸보궁 옆 요사채, 만해가 머문 곳이 맞은편 응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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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는 큰 절이 아니다. 적멸보궁, 응진전, 극락전, 요사채, 입구의 대양루가 전부다. 1914년 대화재로 대양루를 제외한 모든 전각이 불타 새로 지었다. 극락전 벽화, 적멸보궁 와불, 진신사리 사리탑 모두 ‘새것’ 냄새가 난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200여m 소나무 숲길이 아름답지만, 이미 십수년 전 시멘트로 포장해 운치가 떨어진다.

이 절의 매력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다. 소로 밭갈이를 처음 시작했다는 신라 지증왕 때(504년)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까마득한 1500년 전 인도 승려는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절을 지었을까.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백산상회 심부름꾼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소나무 숲길을 올라왔을 것이다. 대양루 2층 마루에서 만해는 가사 자락을 낮추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마음의 눈으로 볼 때, 이 작은 절의 깊이는 무량하다. 보이지 않는 매화꽃의 향기가 온 절을 채우듯, 찻잔 속의 다향이 온 몸을 채우듯.

▲여행가이드

다솔사, 비봉내마을(대나무숲)의 장점은 뛰어난 접근성. 고속도로 톨게이트 바로 옆이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진주분기점~남해고속도로 순천 방향~곤양IC~톨게이트 4거리에서 다솔사·곤양 방향 우회전~1㎞~비봉내마을 대나무숲~5㎞~다솔사.

사천 사람들도 파전에 막걸리 생각이 나면 다솔사(055-853-0283) 주차장 맞은편 휴게소(055-853-1800)로 간다. 파전 4000원, 산채비빔밥 5000원. 휴게소를 빼면 식당이 없다. 승용차로 10분 거리의 서포읍으로 나가야 한다.

비봉내마을(www.beebong.co.kr)에서 대나무를 비롯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5시간 코스 1인 2만원. 대나무숲 산책, 대나무 피리 만들기, 딸기 따기, 대나무 뗏목 타기 등 4~5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주말 체험 내용을 미리 공지한다. 반드시 예약할 것. 대나무숲만 둘러보려면 입장료가 1000원이지만 전화(011-9321-4000)로 예약하면 무료다. 나선 김에 비토섬까지 가서 굴구이를 먹어보자. 1만5000원이면 고무 대야 하나 가득 담아준다. 굴철은 이달말까지. 4월엔 사천대교 건너 선진리성에 벚꽃이 예쁘게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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