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프레시안 2008-04-23 오전 10:37:40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④ 점성술, 연금술, 마법적 전통


점성술, 연금술, 마법적 전통
 
  전통적으로 과학사가들은 과학과 비과학을 엄밀히 구분해 왔다. 그리고 16, 17세기의 과학혁명을 과학이 비과학을 극복한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 이때 그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것은 16, 17세기의 과학자들이 근대성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고 그들의 생각이 우리들의 것과 같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들의 생각은 현대인과 매우 다르다. 또 자신들이 당시에 하고 있던 일의 의미를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현대인들과 같이 이해할 수도 없었다. 또 지금은 일반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믿기를 거부했다.
 
  형이상학적, 종교적인 사고를 했다. 점성술, 연금술, 마법, 천구의 음악, 신의 섭리, 구원의 역사를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뚜렷한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은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양자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점성술은 결코 가벼운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부터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점성술에 대해 쓴 유명한 <테트라비블로스>라는 책에는 천문학(astronomy)과 점성술(astrology)의 성격이 잘 구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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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연금술사의 모습
 

  천문학은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관찰, 기록, 예측하는 것이다. 반면 점성술은 천문학적 측면의 지식을, 지상의 일을 예측하는 덜 정확하고 세속적인 일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천체에 대한 관심이나 학문으로서 합리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16, 17세기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별들의 움직임이 지상의 현상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시리우스별이 해와 함께 뜨면 나일강에 홍수가 진다는 식으로 천체의 움직임으로 중요한 기상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다. 전쟁, 지진, 곡물수확 같은 것이 모두 예측의 대상이었다. 개인의 길흉화복도 마찬가지이다. 의학 같은 학문도 점성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건강과 질병을 천체현상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관찰된 자료에 기초해 있을 뿐 아니라 수학적 계산을 통해 천상과 지상의 변화를 설명했으므로 많은 과학자들이 그 일반적인 원리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것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나올 때까지는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지는 보편적인 법칙으로서는 유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로마, 볼로냐, 살라망카 등 일부 대학에는 점성술학 교수가 있었다.
 
  중세시대에 아라비아에서 들어온 연금술은 16, 17세기뿐 아니라 18세기에도 널리 행해졌다. 그것은 모든 물질에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성질과 함께 감추어진 비밀의 성질이 있고 이 감추어진 성질을 변환시킴으로써 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실험 방법이 적용되었다.
 
  연금술은 이 시기에 여러 나라 군주들의 지원도 받았다. 구리 같은 비금속을 금 같은 귀금속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국가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은 주로 영약(Elixir)으로 불리는 '마법의 돌'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영혼을 정화하는 등 많은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6-18세기에는 마법도 지적인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의 문헌들이 다시 발굴되며 비의적인 학문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의 많은 부분은 고대의 신플라톤주의 문헌들에 기인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신비적인 헤르메스주의에 대한 글들(고대 이집트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투스가 쓴 것으로 알려진 헤르메스 전집 등)도 포함된다.
 
  마법에는 두 형태가 있다. 하나는 보다 영적이고 악마적인 성격을 추구하는 흑마법이다. 하나는 사물의 자연적이지만 비의적인 성질에서 마법의 효과를 찾아내려는 자연마법(natural magic)이다. 근대 초 마법적 전통의 주류는 자연마법이다.
 
  자연마법가들은 사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기호나 상응관계의 신비한 힘에 주목했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호두는 인간의 뇌와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인간의 신체적 질병을 진단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숫자가 갖고 있는 신비한 힘을 믿는 숫자학은 수학적 마법의 일종이다. 연금술의 영향을 받은 의학 이론에도 자연마법적인 측면이 많이 나타난다. 놀라운 효과를 가지는 기계적 고안도 사물이 갖는 비밀스런 자연적 힘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으므로 마법가의 영역이었다. 렌즈나 거울, 또 망원경이나 현미경이나 처음에는 다 마법적인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연마법을 통해 반드시 초자연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신만이 초자연적 현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자연마법은 근대 과학의 실용적이며 경험주의적 전통을 만들어 내는데 상당 부분 기여했다. 광물, 식물, 동물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많은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케플러, 뉴턴과 비학
 
  그러면 케플러와 뉴턴의 경우를 통해 이 시기 과학과 비학의 관계를 한 번 살펴보자. 케플러가 점성술사였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천문학자로서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1601년에 프라하에서 발간한 <점성술에 대한 보다 확실한 기초에 대하여>라는 점성술 책에서 그는 '매년의 예측을 하는 것은 수학자의 의무'이며 '1602년을 예측하는 것은 대중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철학자로서의 의무' 때문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는 점성술을 신성하고 추상적이고 정확한 과학인 천문학과 마찬가지 활동이기는 하나, 그것의 세속적이고 유용하며 덜 정확한 측면이라고 생각했다. 점성술은 지상의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최신의 천문학 지식을 이용하고 위도에 따른 일조량까지 계산에 넣어가며 기후, 작황 등 가장 나은 미래 예측을 하려고 애썼다. 정치적, 군사적 사건이나 유명한 인물들의 운명 예측 등 황당한 면이 있기는 하나 매우 진지하게 이에 접근했으며 점성술을 믿었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하듯이 점성술의 과학을 부인한 적은 결코 없다.
 
  그는 근대 수학적 천문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나 숫자학의 마법적 전통 속에 깊이 빠져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6이라는 숫자에 집착했는데 그것은 태양계에 행성이 6개 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우주의 구조를 6개의 천구에 각각 내접하는 5개의 정다면체(정다면체는 4면체, 6면체, 8면체, 12면체, 20면체의 다섯 개 밖에 없다)로 상상했으므로 행성이 그것보다 더 많아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조화라는 피타고라스적, 신플라톤주의적 마법 전통 속에서 신이 창조한 우주에는 기하학적인 원형(原型)에 따라 6개의 행성만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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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플러의 우주모형
 

  그는 행성의 타원 궤도를 생각해낼 때에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이때는 윌리엄 길버트의 자기학(磁氣學)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길버트는 자기에 대해 물활론적, 마법적 접근을 한 인물이다.
 
  길버트의 많은 실험들은 자석의 자발적인 운동을 증명함으로써 자석이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는 지구도 살아있는 실체로 자석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믿었다. 지구는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이므로 최고의 마법적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다.
 
  케플러는 길버트의 자기를 받아 들여 <새 천문학(1609)>에서 태양을 도는 행성의 운동이 자기력 비슷한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길버트는 케플러가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당연히 길버트의 마법적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왜 신이 원 대신 타원을 행성궤도로 이용하느냐 하는 것도 우주의 조화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적 입장에서 설명했다. 같은 속도로 원운동을 하면 단조롭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화하는 속도로 규칙적으로 타원을 회전함으로써 천상의 음악을 위한 보다 폭넓은 음부(音符)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뉴턴에게서도 우주를 수학적 질서의 원리에 따라 구성된 것으로 보는 피타고라스적 태도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는 7이라는 숫자를 신비화하여 일곱 줄로 된 수금(竪琴)을 지닌 아폴론 신과, 빛의 일곱 가지 스펙트럼, 그리고 음악에서 한 옥타브의 일곱 음계를 상응시켰다. 다 우주의 조화를 가져오기 위한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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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턴의 반사 망원경
 

  그는 아리우스적 신(카톨릭의 삼위일체가 아니라 성부가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기독교의 형태)을 믿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따라서 우주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신의 역할은 본질적인 것이었다.
 
  그는 유체로 가득 찬 데카르트적인 우주를 거부했는데 그것은 그것이 신의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는 정신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는 텅 빈 공간을 주장했다. 이때 정신적인 힘이란 신, 천사, 예수를 포함했다.
 
  그는 또한 수십 년 동안 연금술에 몰두한 연금술사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그 일은 19세기 말에 최초로 그의 전기를 쓴 D.브뤼스터라는 사람이 유고를 검토하며 밝혀졌다. 발표되지 않은 유고는 대부분이 신학과 연금술에 대한 내용이었다.
 
  브뤼스터는 이에 대해 '나는 그렇게 강력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고, 기하학의 추상과 물질세계의 연구에 고귀하게 몸을 바친 사람이 어떻게 가장 경멸스러운 연금술적 시를 쓰는 중세의 필사자 같이 등을 구부리고 앉아, 바보나 건달들이 해 놓은 작업의 주석자 노릇이나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 당혹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학사가들은 뉴턴과 연금술을 관련시키기를 거부했다. 그것이 위대한 과학자로서의 뉴턴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20-30년 사이에 와서야 유고 연구가 본격화하며 연금술이 물질의 본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이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금술에서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초자연세계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물질의 활성이 없는 소우주에서 소립자가 조직되고 활성화되도록 작용하는 신성(神性)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었다.
 
  만약 그가 이 신성의 활동을 자연 속에서 드러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소우주를 작동시키고 지배하는 구세주를 드러낼 수 있다면 분명하게 신성의 존재와 그 섭리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뉴턴에게 있어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신의 대리자로서의 구세주는, 연금술의 '마법의 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중력의 개념이 연금술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그것은 연금술로부터 물질 입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과 반발력이라는 비의적 힘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성을 잡아끄는 태양의 힘에 대한 케플러의 이론을 1679년에 로버트 훅에게서 전해들은 뉴턴이 소우주에서의 인력을 대우주의 텅 빈 공간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확대했다고 주장한다.
 
  중력의 개념이 단순히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착상한 것이 아니라 그가 봉직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교회당에서의 깊은 사색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케플러와 뉴턴이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 과학자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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