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국민일보 2005.4.16
동·서양 의학에서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고 했다. 의학의 시조인 히포크라테스도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 적절한 영양섭취를 통한 자연치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암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과 35% 정도 관련이 있으며 암 발생률이 음식문화가 다른 지역에 따라 각기 차이가 있는 것도 암과 음식과 관련성을 뒷받침한다. 음식에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물질들이 많이 들어 있으며 최근 연구들을 통해 특히 과일 및 채소 등의 섭취가 특정 암의 발생률과 반비례한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달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AACR) 연례회의에서도 이러한 ‘식품을 통한 화학적 암 예방(Chemoprevention)’이 뜨거운 관심사였다.
◇식품을 통한 암 예방=‘화학적 암 예방’은 식품 성분처럼 독성이 없는 안전한 화학물질(Phytochemical)이나 그 혼합물을 이용해 정상세포의 암화를 억제·지연 또는 역전시킴으로써 암을 예방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말한다. 이는 암 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여하는 기존의 화학치료 요법과는 다른 개념이다.
식물 추출 화학 암 예방제로 주목받고 있는 화합물들로는 유방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콩(대두)의 ‘제티스틴’,양배추에서 분리한 ‘인돌-3-카비놀’,녹차의 항산화 성분인 ‘EGCG’,브로컬리에 함유된 ‘설포라펜’,적포도 껍질에 들어있는 ‘레스베라트롤’,토마토의 붉은 색소 ‘라이코펜’,카레의 노란색소 ‘커큐민’,생강의 매운 성분 ‘진저롤’,마늘의 유황성분 ‘알릴설파이드’,고추의 매운 성분 ‘캡사이신’ 등이 있다.
이번 미국 암학회에서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팀은 대장암 쥐 모델을 통해 카레의 ‘커큐민’이 대장암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연구팀의 박사과정 김현수 연구원은 “커큐민을 14주동안 쥐의 입을 통해 주입한 결과,종양 생성률이 83% 감소했다”면서 “이는 커큐민이 암 발생을 촉진하는 염증 효소 ‘콕스(cox)-2’ 등의 발현을 억제하고,이 효소의 발현을 조절하는 ‘NF-kB’ 등의 활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연구팀의 나혜경 박사는 마늘의 ‘알릴설파이드’ 성분이 유방암 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를,미국 미시간대 종합암센터 리베카 류 박사팀은 생강이 난소암 세포를 사멸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류 박사는 “생강의 진저롤 성분이 난소암 세포의 자연사를 유도하는 ‘세포 자살’과 자기 세포를 먹어치우는 ‘자가 소화작용’의 두 가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암의 60∼80%(음식 35%,흡연 30%)는 생활 환경과 관련있다”면서 “따라서 평소 암을 막아주는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고,흡연 등 생활습관을 고치면 암의 3분의 2는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진통제의 암 억제 효과=이번 암학회에서는 또 차세대 진통 소염제로 각광받고 있는 ‘콕스-2 억제제’의 암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도 다수 발표돼 주목받았다.
아스피린의 뒤를 이어 차세대 소염 진통제로 각광받고 있는 ‘콕스-2 억제제’는 인체에 염증이 생겼을 때 생기는 ‘콕스-1’과 ‘콕스-2’라는 두 가지 효소 중 위장을 보호하는 콕스-1 효소는 망가뜨리지 않고 콕스-2만 억제해서 염증과 통증을 가라 앉히는 약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콕스-2 억제제는 화이자의 ‘셀레브렉스’가 유일하며,주로 관절염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아스피린 등 기존의 진통제는 ‘콕스-1’도 억제했기 때문에 진통제를 오래 먹는 사람은 위장장애를 겪기 마련이었지만,이 약물은 위장 장애,출혈 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콕스-2 억제제가 진통 소염제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암 예방 효과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 현재 다양한 임상 및 기초 연구를 통해 대장암과 두경부암,식도암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 방영주 교수는 “콕스-2라는 염증 효소는 세포의 자연적인 사멸을 막고 암세포의 전이를 도우며 암세포가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해 새로 만든 혈관이 자라는 것을 돕는 등 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콕스-2 억제제는 암 직전 단계에서 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거나 암 치료뒤 재발을 막는 ‘화학적 암 예방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메디컬센터 랜달 해리스 박사팀은 콕스-2 억제제를 오래 복용하면 유방암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는 임상 결과를 이번 암학회에서 발표했다. 해리스 박사는 유방암 환자 323명과 건강한 여성 649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콕스-2 억제제를 2∼5년간 복용한 여성의 유방암 발생률이 7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미국 국립암센터(NCI) 연구팀은 콕스-2 억제제가 산발성 결장암과 결장암 가족력이 있는 환자의 결장 용종(전암 상태)의 발병을 최대 45%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