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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친구와 4년째 사귀고 있다. 친구들과 그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콜라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콜라를 좋아했고 나는 그 점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물론 친구들은 그게 무슨 싱거운 소리냐고 묻지만 콜라는 우리 사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방범시스템같은 거라고만 대답한다. 


처음 사귀던 무더운 날, 우리는 땡볕 속에서 목적지 없이 길을 걸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 나도 평범하긴 하지만 남들과 같아지길 거부하던 산뜻한 여대생. 놀러가고 싶은곳이 있다고 해서 다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도시의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김정호 커플이었다. 세 번쯤 만났을 때였던가, 그가 자외선 차단제를 준비해 왔다면서 내 얼굴에 발라주려고 했었을 때 나는 극구 사양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땀으로 지저분한 그의 손이 위생구역인 여자 얼굴에 함부로 닿은 것도 찜찜했거니와 그의 손바닥으로 뭉게지는 내 볼살이 추하게 보일꺼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손에 이미 짜 놓은 크림을 팔뚝에라도 바르자면서 내 팔을 잡아당겼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당황했고 나는 미안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서먹해졌고 둘다 말이 없었다. 나는 그를 달래주기 위해 먹고 싶은거 없냐고 물어봤다. 그는 콜라를 사달라고 말했다. 콜라? 그것만 있으면 되겠니? 그게 먹고 싶었어?ㅋ 까짓것 내가 못사줄 리가 없었다. 지갑의 잔돈으로 계산한 캔콜라는 그에 의해 단숨에 비워졌고 그는 전구에 불켠것처럼 다시 웃었다.


학교가 서로 달라서 만나는 장소는 대부분 시내 한복판, 약속시간을 어기는 쪽은 항상 나였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이상하게 꼭 10분이 늦었다. 10분가지고 불평하는 남자라면 좀생이겠지만 매일을 그러다보니 그가 싫어했다. 나중에는 자기도 10분씩 늦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20분씩 늦어졌다. 만나면 웃으면서 시작되어야 할 데이트가 그의 꿍한 얼굴로 불편해졌다. 오늘은 뭐하다 늦었어? 오늘은 왜 늦었어? 그는 나에게 습관을 고쳐주기를 바란다며 불편한 질문인걸 알면서도 굳이 물었다. 그리고 앞으로 늦을때마다 벌칙으로 콜라를 사오기로 했다. 나는 사흘을 못넘기고 콜라를 주기적으로 사야했다. 약속 늦은날 뿐만 아니라 조금 미안한게 있어도 콜라를 줬다. 그러면 바로 먹을때도 있었고 가방에 넣어 둘때도 있었다. 내가 준 콜라캔은 헹궈서 집에 모아 둔다고 했다. 콜라를 사가는 날은 잘못을 묻지도 않았고 표정이 항상 밝았다. 마치 콜라에 웃음 유발물질이라도 들어 있어서 그 물질은 그에게만 작용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내가 학원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해놓고선 보충이 연장되는 바람에 그를 두시간 가까이 밖에서 기다리게 만들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빨리 뛰어가려다가 어차피 늦은거 편의점에 들러서 1.5리터짜리 콜라를 사서 애교를 부렸다. 내가 이만큼 많이 미안하니까 이쁘게 봐달라고 하면서 팔을 껴안자 그는 풋웃음을 보이면서 미안한건 알겠는데 자기는 캔에 든것만 먹는다면서 바꿔오라고 했다. 그때 오빠는 왜 콜라만 좋아하냐고 물어봤는데 취향에 이유가 어딧냐면서 누구나 그런 것 하나씩 있지 않느냐고 데꾸했다. 그래서 그냥 그런줄 알았다. 너는 콜라를 좋아하는 아이. 내가 지어준 그의 별명은 콜사장, 콜맨, 콜라마약 중독자, 마이콜, 콜미, 콜록콜록 등 ‘콜’이라는 음절이 들어간 단어는 모두다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콜라는 한번에 두세개씩 사주는 것도 싫어했고 언제나 한나씩만 먹었다. 집에선 콜라에 밥말아 먹는거 아니냐고 놀렸고 콜라공장 딸이 좋다고 하면 나랑 헤어지는거 아니냐고 또 놀렸다. 그는 그런소리 말라면서 내가 싫어하면 콜라는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했다. 마치 담배를 100번도 넘게 끊어봤다고 말하는 어느 애연가다운 소리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지난 4년간의 연애를 돌이켜보면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 적은 있었어도 서로 싸운적은 한번도 없었다. 단순한 법칙이었다. 내가 화날땐 화내면 그만이고 그가 마음상해 있을땐 콜라만 사주면 해결되었으니까. 작용과 반작용, 혹은 조건반사. 개는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고, 그는 콜라를 받으면 일단 좋아했다. 내가 이 얘기를 해주면 그는 또 풋웃음을 지으며 자기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으로 보이냐며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라면서 화를 내는 사람은 논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화를 내는 거라면 자기도 화를 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이 평생 없을 꺼라고 장담했다. 고마운 말이었다. 하지만 ‘평생’이라는 말이 살짝 신경쓰였다. 나는 그와 결혼을 하게 되는걸까? 솔직히 나에게는 더 나은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유혹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보는 남자들이 접근한 경우는 모두 거절했지만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은 몇번씩 만나곤 했었다. 나에게 흑심을 품은 만남이라는걸 알면서도 만났다. 조금은 지겨웠던 그의 잔소리를 벗어난 해방감을 느꼈다. 남자들은 나의 환심을 살 목적이었기 때문에 지나칠 정도의 매너, 돈쓰는걸 아까워 하지 않았고 학생인 까닭에 집에서 부모님 차를 가져오는 일이 흔했다. 남자친구의 걸음마 데이트와는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과 친구의 선배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자주 왔다. 얼굴을 한번 잠깐 봤을 뿐인데 친구에게 내 번호를 물어봤다고 했고 친구도 선배와의 만남을 부추겼다. 우연인진 몰라도 교내 식당에서 자주 마주쳤다. 밝고 유괘해서 충분히 호감가는 사람이었고 ‘알고 지내는 선후배’의 한사람으로 금새 들어와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사업을 배우고 있다면서 차를 몰고 다녔고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하는것을 ‘집 근처까지만’ 이라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바람을 필 생각으로 만난건 아니지만 상황이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오전 수업만으로 일과를 마친 어느날 선배는 어머니를 급히 만나야 한다면서 자기 집으로 차를 돌렸다. 나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어머니 계시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끌려가듯이 들어갔다. 날씬하고 젊어보이는 어머니의 인상이 좋으셨다. OO이 여자친구니? 하시며 귀엽다고 하시는데 여자친구라는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친구인데 여자인 친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거라고 억지 합리화를 시켰다. 선배가 왜 나를 집으로 끌여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한눈에 ‘잘산다’ 싶을 정도로 집이 좋았고 집자랑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게다가 선배 어머니의 입김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테이블에 쥬스가 올라왔다. ‘선배는 혹시 콜라 안좋아하세요?’ 거기서 내가 이 질문을 왜 했을까. ‘콜라먹고 싶어? 우리집은 쥬스만 먹어서 콜라는 없는데.’ 콜라는 몸에 해롭지 않느냐며 어머니가 거드셨다. 웬지 쥬스가 맘에 안든다는 것처럼 보여서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달 넘게 남자친구와 만남이 뜸했었다. 통화도 길게 안하는 편이었다. 그에게는 선배 이야기를 제외한 식상한 학교 얘기만 하고 끊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자기가 옆에 없을 때 이걸 보고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를 생각나게 하는건 목걸이가 아니라 콜라였다. 그의 앞머리가 많이 길어 있었다. 그의 머리는 내가 깎아라고 부추기기 전까진 절대 깎기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배를 만났을 때 콜라를 받았다. 지난번 일로 내가 콜라를 좋아하는줄 착각하면서 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정식으로 고백을 받았다. 이렇게 될거라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상황이 되자 여러 가지 비겁한 계산을 하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가난했고 선배는 풍요로웠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불행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말 그대로 가난하면 불편한건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보통 여자가 집있고 차있는 남자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건 호의호식하고 싶어하는 허영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모든이의 기본욕구라고 생각한다. 그 부담을 모두 남자 등에만 지우려고 하는 누군가의 심보는 문제라 하겠지만. 어쨌든 선배는 날 얼마나 가슴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설명했고 우리가 누릴 비젼에 대해 늘어놓았다. 나는 모든걸 동의하고 싶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잔 말 꺼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슬픔을 겪을 새도 없이 난 새로운 행복에 빠져 있을 것 같았다. 괴로워할 그가 걱정되지만 친구로 지내면서 소개팅을 시켜주면 괜찮을꺼라 생각했다. 그리고 콜라를 주면... 이런 경우에도 그는 콜라를 받고 기뻐할까... 가방에는 선배가 줬던 콜라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집으로 찾아갔다. 요즘 그는 취업공부로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다가 밤늦게야 돌아왔다. 전화로 얘기할 때 오늘은 늦었으니까 낮에 보자고 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렸다. 10분씩 늦던 버릇은 예전에 고쳐졌고 그날은 약속시간 5분전에 도착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연인답지 않은 인사를 건낸 다음 평소때처럼 팔짱을 끼고 걸었다. 야경이 멋지게 보이는 언덕위의 체육공원에는 밤에도 운동하러 온 주민들이 여럿 있었다. 머리카락이 그의 눈을 찌를 정도로 많이 길었다. 불편해서 책이 보이냐고 물으니까 옆으로 넘기면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나 오빠한테 엄청 미안하게 될지도 몰라.’ 잠시 침묵이 흐르는동안 나는 가방에서 선배에게 받았던 콜라를 꺼내 그에게 줬다. 그는 콜라를 보고서도 웃지 않았다. ‘어떤 사람인데?’ 그가 물었다. 어떻게 이런 질문이 바로 나올 수 있는걸까.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선배에 관한걸 묻자 귓가에 징이 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집에 찾아왔었어?’ ‘...응.’ 처음에 집 근처까지만 데려다 주었던 선배차는 어느덧 대문 앞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릴때마다 조마조마 했었는데 역시나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찾아왔었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더 이상 얘기할게 없었다. 미안한건 난데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머리카락 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 요즘 공부하느라 바빠. 너한테 계속 신경 못써줘서 미안해.’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비탈길을 내려갔고 난 거리를 두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집이 아니라 심야버스 정류소로 가고 있었다. 버스가 올때까지 같이 기다렸다가 버스가 도착하자 내곁으로 와서 말했다. ‘집에 가면 도착했다고 문자해.’ ‘ 내일 미용실가서 머리 깎아.’


이제 다 정리한 셈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선배와 연인사이가 되었다. 단 일주일동안만. 일주일? 그래, 선배랑은 딱 그만큼만 사귀고 헤어졌다. 이상하게도 선배랑 사귀는동안 심장이 쾅쾅 뛰었다. ‘설래여서 그래?’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니. 미안해서 그래.’ 라고 대답했다. 그날 체육공원 이후로 나는 죄없는 사람을 죽이기라도 한것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사람까진 아니더라도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내손으로 눌러 죽인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을 떨쳐내질 못했다. 이별이란건 남들에게도 흔한일 아니었나? 남들도 나같은 혼란을 겪었을텐데 나만 유달리 과민할 이유는 없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봤을 때 유달리 과민한게 맞았고 그만큼 서로에게 적응되어 있었다. 선배에겐 미안하지만 같이 지내던 내내 그의 걱정을 했다. 즐거워야 할 일들이 즐겁지 않았고 차 안 시트가 가시방석이었다.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냐고 나에게 물었을 때 그런거 없다고 대답했는데 선배는 내가 하루종일 입술을 깨물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알기론 상처는 실연당한 사람이 겪는건데 나는 실연을 줬다는 이 사실이 평생 상처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배와의 관계를 급하게 정리했다. 미안한건 선배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우린 아직 깊은 사이가 아니잖아. 미안한 정도가 그와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흔쾌히 받아줄까? 어느 노래가사처럼 나는 그를 'hollaback boy' 쯤으로 여긴 셈이라 생각하기에 따라 굉장히 불쾌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 사이 다른 여자친구라도 생겼다면...


그의 학교 도서관을 찾아가 일주일만에 연락을 했다. 도서관에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약속하듯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수염까지 길어서 초췌한 모습이 평소답지 않았다. 나는 인사대신 왜 머리 안잘랐냐고 따지듯이 물었고 그는 왜 찾아왔냐고 되물었다. 우리는 소나무가 많은 벤치에 앉았다. ‘내가 왜 왔을꺼라 생각해?’ ‘글세, 목걸이 돌려주려고?’ ‘아니야...’ 나는 말 꺼내기 힘들었지만 내가 어떤 심정인지 조금씩 설명해 주었다. 말을 하다가 말고, 하다가 흐리고, 말 못배운 아기처럼 어벅버벅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는 말만 수십번 했던 것 같고 마침내 울음이 나서 말을 잇지 못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근처 벤치사람에게까지 들려도 창피하지 않았다. 그는 날 보듬어주었고 나는 그의 옷에 눈물을 닦았다. 자기도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괴로워 했다면서 오늘 처음 도서관에 왔다고 했다. 남들처럼 실연주(酒)를 먹으려 했다가 못난놈이 입에 넣을 음식이 어디있냐며 5일을 굶고 어제부터 바나나 하나씩을 먹었다고 했다. ‘오늘 내가 안왔더라면 오빠 고생한거 아무도 몰라줬겠네? 오빤 친구도 없잖아.’ ‘니가 알아줬으면 하는게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뭐야?’ ‘음... 콜라에 관한 비밀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콜라만 먹으면 헤발짝 웃는게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콜라를 딱히 좋아하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정도지 굳이 챙겨먹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때마다 마음에서 저울을 꺼낸다고 했다. 실험실에서 쓰는 평행저울을 말이다. 한쪽엔 내가 앉아있고 다른 한쪽엔 나 때문에 일어나는 나쁜 감정을 올린다고 했다. 고질적인 지각버릇이 나와의 관계를 해칠만큼 분노를 일으키는가. 아니다. 내가 자기에게 화내고 짜증냈던게 나와의 관계를 해쳐도 될만큼 내가 싫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내가 선물도 없고 편지도 덜렁덜렁 주고 딴남자를 만났던 것이 나와의 관계를 해칠만큼 미웠는가. 밉기는 해도 우리 관계를 지키는게 우선이라고 했다. 모든걸 용서해서라도 날 지키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속좋은 팔푼이인 마냥 ‘내가 이해할게’, ‘내가 다 참을게.’ 이럴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과의 표시는 분명히 하되 미안함을 달고사는 내가 기죽을까봐 콜라라는 도구를 썼을 뿐이라고 했다. 어쩔땐 자기도 싫은데 억지로 먹는다면서 어떻게든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나와 화해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사이에서 참는것과 이해하는 것은 일방적인 그의 몫이었다. 나는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끼린 미안하다 하는게 아니래.’ ‘그건 얼굴만 봐도 미안한줄 알기 때문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속으로도 미안해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야. 미안한 짓도 자꾸 하면 습관된다. 너.처.럼.’ 내가 어설프게 인용했던 말이 꽝 하고 무너졌다. 그는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내가 사랑을 배워야할 사람이었다.


나는 졸업을 하고 직장을 구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결혼한 언니들을 보면 남자에 대한 주관이 거의 똑같다. 갈아탈 수만 있으면 얼른 갈아타라는것도 그중 하나다. 한 언니는 순정을 바치던 전 애인과 헤어져 아파트를 가진 남자와 결혼했고 그 덕에 남들보다 10년 앞서간다며 노골적으로 자랑했다. 여자의 자부심이 되는 공간이라고 광고하던 그 아파트다. 나도 잠깐이나마 남자등에 업혀서 살 생각을 했던 사람으로서 욕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부러운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찌나 얄밉게 얘기하던지 우리나라는 왜 아직까지 지진다발지대에 들어서지 못하고 안전한 땅위에서 살아야 하는지 불만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집은 집일 뿐이다. 재산은 있으면 좋은거고 없으면 노력하면 되는거다. 가난을 만족으로 여기는 초현실주의자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 우린 둘다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은가. 자위라고 할수도 있지만 나보다 중요한건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진심으로 보여준 그 사람이 있어서 내가 훨씬 더 행복하다. 지금은 치웠지만 그의 집에는 콜라캔이 300개가 넘게 쌓였었다. 그만큼 내가 저지른 잘못은 쉽사리 넘어갔다. 그가 날 용서해줬듯이 나도 그의 모든걸 용서하고 사랑을 지켜가는 아내가 되어 ‘평생’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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