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성능을 나타내는 기준에 마력과 토크가 있다면 엔진 용량을 표현하는 기준으로는 배기량이 사용된다. 엔진 용량이 엔진 성능과 반드시 비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엔진 용량에 따라 배출되는 배기가스의 양은 비례해 커지므로 엔진 용량은 곧 배기량으로 설명할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엔진 용량, 즉 배기량에 따라 경차,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로 나누고 각 기준에 맞게 자동차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엔진 용량을 나타내는 단위인 ㏄는 무엇의 부피인 것일까? 바로 각 실린더 안에 흡입되는 공기의 양이다. 엔진의 각 실린더 내부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연료뿐만 아니라 공기 속 산소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외부에서 이 공기를 공급받는데 이 공기가 엔진에 유입되는 양에 따라 자동차 출력이 결정된다.

우리가 운전 중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밟는 가속페달. 사실 가속페달은 엔진에 유입될 공기의 양을 결정하는 '공기 페달'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액셀러레이터 케이블과 연결된 스로틀 밸브가 엔진에 유입될 공기의 양을 결정한다. 이때 전자제어장치(ECU)가 결정된 공기의 양에 따라 적절한 비율로 기화된 연료를 섞어준다. 연료와 섞인 공기를 혼합기라고 하는데 이 혼합기는 부압에 의해 폭발 이후 진공상태가 된 실린더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흡입되는 혼합기의 양이 곧 폭발의 힘이므로 결국 액셀러레이터를 얼마나 강하게 밟는지 여부가 자동차의 가속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엔진 용량은 엔진 출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엔진 출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엔진 용량이 작아 공기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과급기를 통해 유입되는 공기의 밀도를 높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과급기는 영어로는 차저(Charger)라고 하며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로 나뉜다. 터보차저는 여러 실린더 기관의 배기관을 한곳에 모은 배기매니폴드에 터빈을 연결시켜 배기가스 압력으로 그 터빈을 회전시키는 방식이다. 터빈은 샤프트에 연결돼 반대쪽에 위치한 공기를 압축시켜 주는 콤프레서를 작동시킨다. 공기를 압축하면 일반적인 자연 흡기 방식보다 실린더 내부로 많은 공기가 들어가게 돼 엔진 출력이 높아지며 불완전 연소되는 연료를 감소시켜 연비도 향상되는 이점이 있다. 또 터보차저를 통해 낮은 배기량의 차량에서도 높은 출력을 얻어내는 것이 가능하므로 엔진의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터보차저는 이와 같이 많은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일정 회전수(RPM)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급가속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지니고 있다. 혹여 이 가속력을 얻는 시점이 코너링을 하는 도중이었다면 큰 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슈퍼차저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터보차저와 같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터보차저는 터빈 내 회전 날개인 임펠러를 배기가스를 이용해 돌리고 슈퍼차저는 엔진 크랭크축과 벨트로 연결되어 엔진의 회전력을 이용해 돌린다는 것이다. 슈퍼차저는 엔진 회전과 동일한 회전을 하므로 터보렉이 없고 모든 RPM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출력 향상은 터보차저에 비해 낮아 터보차저와 같은 폭발적인 가속력을 얻기는 힘들다.

사람들이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처럼 자동차도 공기를 통해 굴러간다. 그리고 또 그 공기의 힘을 이용해 엔진 출력과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공기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오늘도 사람과 자동차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