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중앙일보

[세종의 리더십] 1. 과학적 회계와 통계 


 조선 500년의 버팀목이었던 세종. 그는 문치를 강조하면서도 문약에 빠지지 않았고, 명나라에 사대를 하면서도 우리의 힘을 키웠다. 한글날을 앞두고 '정치가 세종'의 국가 경영 능력을 재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세종의 리더십'을 소주제별로 나누어 6회 연재한다. 기고는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산하 세종국가경영연구소(소장 정윤재) 연구원들이 맡았다.

제리드 다이아몬드는 퓰리처 상 수상작인 '총, 균, 쇠'에서 인류가 문자를 창안한 이유를 회계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수메르의 설형문자에서 한글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한글과 회계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세종 원년인 1417년 8월에 태종은 왕위를 넘기면서 나라 살림의 출납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감합법'(勘合法.서류의 좌우 대조 확인)을 도입한다. 출납 책임자의 서명.인장만을 사용했던 기존 방식에 덧붙인 시책이다. 이듬해 8월 세종은 태종에게서 회계장부.마적(馬籍).군적(軍籍)을 인수하면서 정사를 시작한다. 1421년 1월 16일 세종은 다시 사헌부의 건의로 감합제도 위에 '중기'(重記.복식부기의 필수 요건으로 동일 사항을 두 번 기입) 제도를 또 도입한다. 이후 각종 부정부패 행위는 중기 제도에 걸려 적발됐다. 1421년 11월 17일 제용감(왕실 물자를 관리하는 관청)에서 회계부정이 적발된 것이라든지, 1423년 1월 17일 수원부사가 미곡의 중기를 없애버리고 나라 곡식을 빼돌리다 적발된 사건들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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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에서 세종시대에 쓰인 회계용어를 발견할 수 있다. 세종실록 제2권에 나오는 '중기(重記)'는 같은 내용을 두 번 적게 했던 제도. 약 600년 전에 세종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복식부기의 필수 요건을 실행했다. 이 같은 과학적 회계를 바탕으로 세종은 부정행위를 적발했다.
15세기 세종이 회계제도를 통해 국가 경영의 주요 기틀을 세운 것은 18세기 미국의 건국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당시 미국 지도자들은 모두 회계에 밝았다. 청교도의 노동윤리에 기초해 부를 창출하는 게 미국 시스템이다. 그 기초에는 정직성과 성실성을 요구하는 회계체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회계와 함께 세종시대 과학적 국가경영의 또 하나의 축은 통계(Statistics)다. 통계는 그 어원적 의미가 State(국가)+Technique(Craft.기술)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국가경영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은 전국 군.현 단위로 호수와 인구 수, 경지면적, 논과 밭의 비율 등 오늘날 국세 조사와 유사한 통계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통계는 이를 생성하는 회계체계가 뒷받침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회계는 인류만이 지닐 수 있는 '쓰기 기술'의 종합 체계이자 기록학의 꽃이다. 그래서 서양의 지성 괴테는 회계를 "인류가 창안한 가장 위대한 문명"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런 회계체계가 세종 때 구체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회계용어는 세종실록과 훈민정음 서문에 보이듯 대개 이두문자로 돼 있다. 이두문자는 한자를 기본수단으로 우리말을 적은 글로 그 음과 뜻이 중국과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것은 곧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 오고 물질적인 풍요를 보장하는 주요 기술이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회계용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부와 어긋나는 부정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를 보자. 글은 '反作'으로 썼으며 발음은 '번질'이었다. 오늘날에도 감쪽같이 속이는 부정행위를 지칭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재고조사를 뜻하는 '反庫(번고)'도 이두로 쓴 회계용어다. '色'은 한자로는 색채의 뜻이나 그 뜻은 '빚'이다. 이를 국어 학계에서는 행정용어로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그 기원은 회계용어로 금융행위를 지칭한다. 돈이나 물건을 빌려갈 때 썼던 '改色'(색갈이.호남 지방에서는 색걸이)이란 용어도 이두다.

이와 같이 소리글자와 뜻글자의 결합체인 이두문자를 통해 우리 고유의 회계용어가 정립됐다는 것의 최종적인 의의는 무엇인가. 회계의 본래 목적이 기록과 계산을 넘어섬을 의미한다. 즉 회계의 목적은 재산을 은닉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 장소에서 큰소리로 낭독하는 투명한 보고 행위에 있었던 것이다. 서구에서 회계감사를 'Audit'라고 하는 것도 회계와 듣는 행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전통 조직에서 정기총회를 '강신회(講信會)'라고 했던 데에서도 회계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연말결산 보고서를 '낭독(講)'하고, 부정이 없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서로의 '신뢰(信)'를 도모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전통은 무조건 폐기해 버려도 좋은 구시대 유물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회계.통계 체계에 기반을 둔 세종시대의 국가경영 리더십은 첨단 과학시대를 산다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전성호 세종국가경영연구소 비교연구실장

2005.10.05 19:19 입력



[세종의 리더십] 2. 지방 수령 6년 임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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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리 임명장인 ‘교지’와 요즘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호패’. 세종은 지방수령의 임기를 늘리면서 관료들의 저항을 공익 대 사익의 관점으로 풀어나갔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세종은 문화(한글 창제)와 과학(농업 및 측량기구) 쪽의 업적으로 주로 알려졌다. 현실정치가로서의 면모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정치가 세종'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게 '지방수령 6년 임기제', 즉 수령육기제(守令六期制)의 도입과 제도화 과정이다.

수령이라는 지위는 군주의 뜻을 백성에게 펴고, 백성의 생각은 위로 전달하는 '관절'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수령의 임기는 3년이었다. 세종은 그게 너무 짧다고 보았다. 지역 사정을 알 만하면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래선 지방 아전들에게 휘둘리다가 제대로 된 정책을 펴보지 못한다.

지방 수령 임기 6년제는 세종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추진됐다. 문제는 관료들의 이해였다. 당시 서울과 지방 간에는 현격한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지방은 단순히 서울과 떨어진 곳이 아니라 '야만의 땅'이었다. 양반은 서울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3년이면 잠시 다녀오는 기분이지만, 6년이면 '촌놈'이 되고 마는 형국이었다. 또 하나는 승진 문제. 지방에 있다 보면 승진에 누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고과에 흠이 잡히면 평생을 지방직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저항은 지속적이고 집요했다. 관료들의 6년 임기제 비판은 첫째, 유교경전에 그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든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경전의 의의는 마치 오늘날의 '헌법'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문제 제기였다. 둘째, 중국의 역사와 선왕의 사례(태조.태종)에도 걸맞지 않다는 점이다. 왕조 국가에서 '전통'은 경전과 더불어 정책의 정당성을 버티는 핵심적 사안이므로 이 역시 근본적 비판이었다. 셋째, 관료 자신들의 입장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요컨대 지방에 오래 있으면 승진 기회가 서울에 있을 때에 비해 줄어든다는 것이다. 넷째, 6년은 긴 기간이어서 처음에는 큰 뜻을 품은 수령도 나태해져 부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또 당시 수령들의 자질로는 도리어 악정의 기간을 6년으로 더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든다.

이에 대해 세종은 첫째, 6년 임기제가 수령의 빈번한 교체로 인한 업무 연속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정책임을 환기시킨다. 둘째, 수령이 자주 바뀜에 따른 영송(迎送:환영 및 환송식)의 폐단이 크다는 점을 예로 든다. 셋째, 경전에는 수령 임기 9년제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세종은 관료의 반대가 사적인 이해관계와 불편을 의식한 탓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즉, 이 문제를 '공익 대 사익'의 차원으로 몰아간 것이다.

'공익 대 사익'의 대결구도는 맹자로부터 연면한 경학적 테마다. 세종은 이 구도를 형성하고 또 장악했다. 이후 6년 임기제를 비판한 관료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모리배로 몰리게 된다. 이를 계기로 6년 임기제는 완전히 제도화되고, 조선 후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된다.

여기서 보이는 세종의 리더십은 '텍스트(經史)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해석 능력'에서 비롯된다. 세종은 유교경전과 역사서에 대한 깊은 독서(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당시 조선의 정황에 걸맞게 정치적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구체적 전략으로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경전과 역사서 그 자체를 진리의 현현(顯現)으로 절대화하지 않았다.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도구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스스로 딛고 서 있는 현실세계를 중심에 놓고, 과거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미래를 과제로 삼는 주체적이고 능동적 자세를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치가로서 세종의 시공간 감각이라고 판단된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세종국가경영 연구소 연구위원

2005.10.07 04:44 입력


[세종의 리더십] 3. 비밀 프로젝트 한글


세종은 중화 문물에 버금가는 유교적 문명국가를 달성하는 것을 치세의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풍속은 날로 흉포해져 범죄가 늘어나고 급기야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범죄까지 생겼다. 세종은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기존의 방법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행실의 모범자를 그림으로 그려 본받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한문과 이두로 된 법조문은 내용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학술을 받아들이고 사대 외교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우리 구강 구조에 맞춰 형성된 문자가 필요했다. 여기에 우리가 이적(夷狄)으로 무시하던 여진.일본.몽고.티베트 등이 모두 고유의 문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세종에게 충격을 주었다. 문자를 따로 지니는 것은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이라고 신하들은 반대 논리를 폈다. 이와 달리 세종은 이적도 지닌 문자를 우리가 지니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적 자존심이 훼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종은 자신이 구상한 국가경영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백성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필요성을 인식했는데, 훈민정음이 바로 그 소통 수단이었다. '반나절이면 익힐 수 있는' 정음은 결과적으로는 국가의 명령체계를 아래로 전달하기 쉽게 함으로써 통치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세종 연간의 일련의 문화정책이 모두 정음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한 사업이라는 점은 세종이 정음을 구상하던 단계에서부터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이런 효율성을 지닌 문자의 창제를 왜 비밀리에 추진했는가. 그것은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세종은 신하들이 중국과의 사대 관계를 들어 반대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개적이고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정책 수행에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사후에도 세자가 일관성 있게 정책을 지속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자의 신진 친위세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경우 필시 훈구세력의 저항이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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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하들이 내세운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이 사대정책을 준행하는 한 중국은 내정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더구나 중국 사상의 올바른 수용과 사대 외교를 위해 문자를 만든다는 데 반대할 명분은 없다.

정음 사업을 세종은 세자와 소수의 근신만으로 비밀리에 수행했다. 일종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성삼문.신숙주.이개.이선로.박팽년.최항 등이다. 이들은 한글이 창제되기 한 해 전(1442년.세종 24년) 겨울 임금에게 특별휴가를 받아 복정산에서 함께 과업을 수행했다. 창제 한 해 전에 임무를 부여했다는 점은 세종이 이미 사전에 초안을 구상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들은 정음에 관한 구체적인 실무작업을 했을 것이다. 한글 창제 전후 세종은 세자와 안평대군, 진안대군으로 하여금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게 했다. 이러한 인사정책은 이 작업에서 소외된 세력의 저항을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종은 자신의 인사정책과 정책 수행에 대한 비판을 정공법으로 타개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자신의 정책이 무엇보다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에 의거해 반대세력을 논박했다.

세종 리더십의 핵심은 명분만 내세우는 수사(修辭) 정치와 책략 정치가 아니라 정책의 비전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데 있다. 정책 수행에 대한 저항에는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게 했다. "네가 운서(韻書.'고금운회' 등 중국의 음운서)를 아느냐. 사성 칠음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겠느냐"('세종실록' 인용:최만리의 반대상소에 대한 세종의 반박)는 말은 확고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실력은 함께 정책을 수행하는 신하에게도 요구됐다. 우리의 운서를 만들기 위해 성삼문과 신숙주를 중국인 황찬에게 13번이나 보내 조언을 구하게 한 것이라든지, 정음을 만들고 나서 3년 동안 해례서를 만들게 한 일은 이론적 보강에 만전을 기하려는 철저함과 치밀함을 말해준다.

유미림 서봉한국학연구소장.세종국가경영 연구소 연구위원

2005.10.07 19:02 입력



[세종의 리더십] 4. 약자들에 대한 배려


즉위하던 해 세종은 "내가 궁중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민생의 간고한 것을 다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자 했다. 세종 7년, 가뭄이 혹심하자 왕은 벼농사 상황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도성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일산(왕실용 햇빛 가리개)과 부채를 쓰지 않았다. 벼가 잘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멈추어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고, 점심을 먹지 않고 돌아와서 "오늘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가뭄을 걱정한 세종은 10여 일 동안 앉아서 밤을 새웠고, 병이 났어도 신하들에게 알리지 말도록 했다.

그 시대에도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존재했다. 백성을 가장 괴롭힌 것은 굶주림.질병.형옥, 그리고 관리들의 수탈과 노역이었다. 이에 대처한 세종의 리더십은 '사회적 약자들의 숨은 고통에 대한 보살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약노(藥奴) 사건. 세종 7년 왕은 "옥(獄)이란 죄 있는 자를 징계하자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거늘, 옥을 맡은 관원이 마음을 써서 살피지 않고 심한 추위와 찌는 더위에 사람을 가두어 질병에 걸리게 하며, 혹은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게 하는 일이 없지 아니하니, 진실로 가련하고 민망한 일"이라고 말했다. 약노 사건은 이 같은 간절한 언급에 어긋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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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대에도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존재했다. 굶주림·질병·형옥, 그리고 관리들의 수탈과 노역 등이었다. 이에 대해 세종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백성들의 고통까지도 민감하게 배려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림은 죄인의 목에 북을 매달고 치면서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담은 19세기 후반 풍속화. 기산 김준근 작.

약노는 곡산 여자로 주문을 외워 살인을 했다는 혐의로 투옥됐다. 그런데 10년 동안 그 진위를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형조는 살인죄로 처리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세종은 주문으로 살인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좌부승지 정분을 파견해 진상을 다시 조사토록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약노 자신이 스스로 유죄를 자백하며 빨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정분이 세종의 말을 전하며 안심시키자 약노는 비로소 크게 울면서 "고문과 매를 견디지 못해 거짓 자복했습니다. 태장을 당하는 것이 한 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니 빨리 죽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약노가 처한 상황은 혁명과 자살의 갈림길이다. 좋은 정치란 이런 상황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처하며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형조는 마치 법의 자동기계 같았다. 그러나 세종은 민감했다. 자신의 측근을 보내 진상을 살피게 했고, 마침내 10년 동안 절망의 끝에 있던 한 생명을 구원했다.

세종은 관대한 리더였다. 세종 6년 이런 일도 있었다. 토지소송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조원이라는 사람이 "임금이 착하지 못해 이 같은 수령을 임용했다"는 말을 퍼뜨렸다. 당시의 법으로는 참형이나 장 100대, 유배 3년에 해당하는 난언죄에 해당했다. 그러나 세종은 "무지한 백성의 말이니 다시 묻지 말라"고 했다.

'무지한 백성'에겐 관대했지만 백성의 안위를 어지럽히는 일에는 용서가 없었다. 세종 26년 경기감사 이선이 기민(饑民) 구제를 소홀히 한다는 보고를 받자 그를 직접 불러 문책했다. "내가 백성들의 일에는 비록 가까운 족친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용서하지 않았으니,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굶어 죽는 일이 있으면 경을 용서하지 않겠다". 세종 8년 둘째 형 효령대군의 종들이 스님들의 땅과 식량을 빼앗자 종들에게 장형을 가하고 해당지역의 관리는 파면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서 노비는 소나 말처럼 취급된다. 대개 말값의 3분의 1 정도로 매매됐다. 그런데 세종 12년 최유원이라는 사람이 노비를 때려죽이자, 세종은 "노비도 사람인데 사적인 형벌로 죽인 것은 인덕(仁德)에 어긋나므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관가 노비가 아이를 낳고 7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100일을 더 쉬도록 했으며, 나아가 산기가 임박한 경우 임산부를 한 달 쉬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한 달 쉬게 한 적도 있다.

세종은 "천재지변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배포와 조치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고통에 완전히 대처할 수 없지만 덜 고통스럽게 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영수 국민대 연구교수.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위원

2005.10.10 05:53 입력



[세종의 리더십] 5. 싱크탱크 집현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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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집현전을 정비해 자신의 국가경영 싱크탱크로 삼았다. 그림은 김학수 작 ‘집현전 학사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창업기의 어수선함을 안착시키고, 법과 제도에 따라 국정이 운영되도록 하는 수성(守成)의 리더십을 시대는 세종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집현전. 집현전은 세종의 국가경영 리더십의 손발 역할을 했다. 세종은 그 이전까지 명목뿐이던 집현전을 대폭 정비해 젊은 학자들의 연구와 토론을 위한 상설기구로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전을 연구하고 외국의 사례를 비교해 조선에 적실한 법제를 마련하도록 했다.

"중국과 다른 조선의 실정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즉위한 다음해 어전회의에서 벌어진 논쟁은 이 같은 세종시대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참찬 김점은 명나라 영락제의 정치 운영방식을 인용하며 "중국 황제처럼 모든 정사를 친히 결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예조판서 허조는 "중국 제도는 본받을 것도 있고, 본받지 못할 것도 있다"며 '위임정치론'을 주장했다. 관(官)을 두어 직무를 분담했으면 책임을 지워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점은 "신이 친히 뵈오니, 황제는 위엄과 용단이 측량할 수 없이 놀라워 6부의 장관이 정사를 아뢰다 착오가 생기면, 즉시 호위관을 시켜 모자를 벗기고 끌어내린다"면서 '국왕 친정론(親政論)'을 재차 주장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허조의 반박이 뒤따랐다. "임금은 우선 어진 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재를 얻었으면 맡겨야 하고,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김점은 노기 띤 얼굴로 "황제가 친히 죄수를 끌어내 자상히 신문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면서 "신하들에게 맡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극력 주장했다.

결국 이날 논쟁은 '임금이 자잘한 일에까지 관여해 신하의 할 일까지 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신료의 말 한마디 착오 때문에 대신을 욕보여서는 안 된다'는 위임론이 승리했다. '대신에게 모두 위임하고 유능한 관료를 뽑아 맡길 때 국가가 번창할 수 있다'는 집현전 학사들의 의견에 세종이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의 지원과 협력에 힘입어 일을 추진해 나갔다. 집현전은 국왕에게 필요한 정제된 지식과 당면한 정책과제를 풀어나갈 정치적 지혜를 적시에 제공하는 싱크탱크였다. 재위 24년 35일간 진행된 '첨사원(詹事院) 논쟁'이 대표적 사례. 세자를 도와 국정을 수행할 보좌기구를 설치하려는 국왕의 뜻이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명령이 두 곳에서 나오는 폐단으로 인한 혼란이 즉위 초 '강상인 사건'에서 이미 나타나지 않았느냐"는 반대였다. 안질 때문에 국정 수행이 곤란하다는 국왕의 하소연에도 신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 임금의 나이가 한창인데 경미한 질병으로 "정권을 쪼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첨사원 제도의 역사적 전거를 찾아보게 했다. 다행히 집현전에서는 '대당육전(大唐六典)'에서 '태자첨사부(太子詹事府)'라는 제도를 찾아냈다. 세종은 이를 근거로 "첨사원 제도는 내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고 예부터 있었다"라고 주장했고, 마침내 설치할 수 있었다. 덕분에 국정의 상당 부분이 세자와 의정부 신하들에게 위임되었고, 국왕은 한글 창제 등 집권 후반기의 핵심 국책사업에 주력할 수 있었다.

'국가 일을 내 자신의 임무로 여기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집현전 인재들은 1456년 세조에 의해 해체되기까지 37년간 100여 명이나 배출됐다. 그들에 의해 조선왕조는 수성의 안정기로 진입할 수 있었고, 빛나는 문명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전통연구실장

2005.10.12 05:27 입력



[세종의 리더십] 6. 리더십의 요체 爲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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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시절 세종은 책을 너무 읽어 병이 날 정도로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이는 조선 최고의 현군 세종의 국가경영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반이었다. 그림은 김학수작 ‘왕자 시절 독서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오늘날 너도나도 민주주의를 말하듯 조선의 왕이나 사대부들은 위민(爲民)을 강조했다. 문제는 '백성을 위한다'는 그 많은 말.말.말들이 얼마나 정책으로 구현되는가에 있었다. 세종의 국가경영에서 위민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세종 리더십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종은 상당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국가를 경영했다. 가령 세법(稅法) 개정 과정에서 그는 신료와 일반 백성들, 그리고 중앙과 지방의 여론을 골고루 들었다. 왕조시대였음에도 정책 수행에 앞서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공론 정치를 선보였던 것이다. 형을 집행하거나 인재를 등용하는 과정에서는 사정(私情)과 공의(公義)의 조화를 지향했다. 그리고 한글 창제 과정에서 보듯 세종은 중국에 대한 사대외교와 내부적 국력 신장이라는 두 가치의 묘합을 추구했다.

둘째 세종은 예방적 조치를 많이 취했다. 백성들의 불만이 적극적으로 표출되기 전에 필요한 정책을 미리미리 마련하고 주변을 설득해 나갔다. 우마(牛馬) 취급을 받던 노비들에게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은 것은 세종 리더십의 본질이 인간성의 발현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각종 과학기구의 발명, 그리고 백성의 계몽에 필요한 고전의 편찬 사업 등은 아름다운 풍속이 꽃피는 문명국가로 나아가는 주춧돌을 놓는 작업이었다.

셋째 세종은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의논하는 '숙의(熟議) 정치'를 실천했다. 세밀한 현황 조사,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갈등을 관리해 간 사례는 파저강 토벌, 고약해 사건, 약노 사건 등 무수히 많다.

이 같은 세종의 리더십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왕위 계승 과정을 통해 세종은 '택현'(擇賢.인재 발굴)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절감했다. 아버지 태종은 당초 적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끝까지 양녕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양녕이 안 되면 양녕의 아들에게 왕위를 잇게 하려 했다. 결국 왕위 계승자를 세종으로 결정한 뒤 태종은 통곡했다고 한다. 세종의 능력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적장자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종에겐 훌륭한 리더십 교육이 되었다.

아버지 태종의 리더십으로부터 배운 것도 많다. 태종이 왕조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신의 외척과 아들 세종의 외척까지 매몰차게 멸문시키는 것을 보고 정치와 권력의 냉혹함을 체험한다.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있었던 황희를 채용하고, 다른 신하들의 질시와 반대에 굴하지 않고 허조를 중용했던 태종의 용인술도 배웠다. 또 태종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강상인을 냉정하게 처단하는 것을 보고, 군주로서 계통에 따라 신료들의 보고를 철저하게 받고 토론하는 요령도 체득했다.

무엇보다 세종 리더십의 기반인 독서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폐세자된 양녕을 대신해 2개월 만에 왕위에 올랐다. 세자 수업은 2개월뿐이었지만, 그에 앞서 수많은 경전을 읽으며 왕자 수업을 착실하게 받았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효경' '자치통감강목' 등이 기본 교재였다. 세종의 건강을 걱정해 태종이 환관을 시켜 서책을 감춘 적이 있는데, 세종은 방안에 남아있던 '구소수간'(歐蘇手簡.송나라 문인 구양수와 소동파의 글 모음)을 수도 없이 반복해 읽었다고 실록은 전한다.

지금은 물론 왕조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함'(for the people)은 동서고금, 체제의 다름과 관계없이 국가경영 리더십의 요체다.

고전 읽기와 정치현실에 대한 꼼꼼한 관찰을 통해 실력을 쌓고 지혜를 얻어 32년간 조선을 탄탄하게 경영했던 세종의 리더십은 지금도 벤치마킹의 귀중한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윤재 세종국가경영 연구소 소장

2005.10.13 05:35 입력

출처 - http://www.cyworld.com/okbabe


해양수산부 가족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관 오거돈입니다.

먼저 취임이후 지금까지 해양수산부 가족 여러분의 성원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십시오. 저도 여러분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글이 딱딱한 공고문이 아닌 제가 직접 쓴 편지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편지를 기회삼아 여러분들과 저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좁히는 계기로 만들어봅시다. 그것이 제가 가끔 편지를 쓰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어떤 이야기로 여러분과 저의 첫편지를 시작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문득 신문을 보고 내일이 ‘장애인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장애인이면 누굴 떠올리십니까? 멀리서 찾을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바로 장애인입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저는 말을 더듬습니다. 물론 장애 축에도 끼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보실 분들도 있습니다만 의외로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사람 대하는 게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군대 생활은 잘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 업무보고는 잘할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지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더듬게 되더군요. 어려움은 있었지만 저는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무사히 마쳤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반려자로 맞았고, 지금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얼마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말더듬는 여대생이 해양수산부 대통령 업무보고 방송을 보고 말더듬이도 장관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글을 보고 참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해양수산부 가족 여러분!

장애인에 대한 복지문제는 우리사회가, 참여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물질적 혜택보다 그들을 더 가슴에 아프게 하는 것이 바로 차별입니다. 차별의 눈초리에 그들은 더욱 위축되며 더 많은 소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 개개인, 우리 조직의 장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조직은 어떤 장애가 있는 것일까요?

첫 번째 장애는 ‘소통의 장애’입니다.
소통 없는 조직은 조직원들 간에 단절로 인해 ‘합리’는 사라지고 ‘독단’과 ‘차별’이 지배하게 됩니다. 소통이 원활한 조직은 갈등의 합리적 해결이 쉽습니다. 그것이 곧 조직의 힘이 됩니다.

소통의 장애는 무엇으로 극복해야 합니까? 그것은 더 많은 소통, 새로운 소통의 구조를 통해서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구조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내용과 형식은 여러분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감의 장애입니다.
요즘은 뚱뚱한 것도, 키가 작은 것도, 눈이 작은 것도, 얼굴 못생긴 것도 장애로 여기는 사고가 만연한 것 같습니다. 너무나 자주 신문지면에 오르내리는 자신감 상실로 인한 인명사고를 보면서 ‘자신감’ 상실의 위험성을 느낍니다.

우리부는 어떤 자신감이 있습니까? 해양수산부는 무슨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저는 자신감 회복이야말로 우리부가 바꿔 내야할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부는 21세기를 책임지는 부서입니다. 우리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면 한국의 21세기는 암울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장관으로서 우리부가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사랑하는 해양수산부 가족 여러분!

추운 겨울 꽁꽁 언 찬손을 누군가 잡아주는 느낌을 기억하십니까? 피가 다시 빠르게 흐르면서 느껴지는 소통의 편안함이 넘쳐나는 해양수산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소통의 힘이 21세기 한국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 힘이 해양수산부 곳곳에서 느껴지도록 만들어 봅시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처럼 훌륭한 해양수산부를 만들고 지켜온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해양수산부 파이팅!! 해양수산 가족 파이팅!!

2005년 4월 19일

오거돈 드림


추신 : 다음 편지부터는 좀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역시 첫 번째 편지는 힘들군요. 답장이 오면 조금 더 쓸게 많아지지 않을까요?

출처 - 동아일보 2005-09-21 04:27

[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1부 <1> 부동산만 믿지 말라

《“셋방을 전전하다 서른아홉에 내 집을 장만했습니다. 몇 번 이사를 했더니 50대에는 8억 원짜리 아파트를 갖게 됐죠. 장남 장가보낼 때 집을 줄여 전셋집 얻어 주고 현금도 좀 챙겨뒀습니다.”

공기업에서 30여 년 일하다 작년에 은퇴한 이모(60·경기 고양시) 씨. 그의 삶은 집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자녀 결혼이나 노후 대책도 결국 집뿐이었다. 그런 그도 요즘엔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들은 집값 상승에 기대 살아남았지만, 월급으로 집 한 칸 장만하기도 힘든 자식들은 무엇으로 노후를 준비할지….”》

그의 걱정은 ‘8·31 부동산 종합대책’으로 더욱 뚜렷해졌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張成洙) 연구실장은 “현재 50대 이상은 경제개발 시절의 집값 상승에 편승해 저절로 노후 준비를 한 측면이 강하다”며 “그러나 지금의 30대, 40대는 그런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 집만으로 노후 준비 될까

“얼마 전까지는 웬만큼 노후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5억 원에 산 집이 8억 원으로 뛰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불안합니다.”

대기업인 B사에 다니는 유모(41) 차장은 2003년 말 서울 강남의 아파트 36평형을 5억 원대에 샀다. 살던 집을 팔고 쌈짓돈까지 털어 넣고도 1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치솟는 집값을 보며 역시 부동산이야말로 믿음직한 노후 보장 수단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8·31 부동산대책을 접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2009년부터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가 기준시가의 1%로 뛰면 유 차장은 연간 600만 원 정도를 보유세로 내야 한다.

여기에 아파트 관리비와 대출금 이자까지 합치면 집을 갖고 있는 데만 매달 120만 원 정도 드는 셈. 이래서는 생계를 꾸리기 힘들다. 집값이 계속 오를지도 의문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김희선(金希善) 전무는 “보유세 부담과 장기적인 집값 안정 가능성을 따져 보면 노후를 부동산에만 기대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한국 가계의 자산 구조는 부동산이 전체의 83%, 금융 자산은 17%. 국민은 여전히 노후 준비를 부동산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제로인 펀드투자자문의 최상길(崔尙吉) 대표는 “기존의 자산 구성으로는 부담스러운 집만 가진 채 하루하루 쪼들리는 노인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 부동산 외의 자산에도 눈 돌려야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춰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신한은행 고준석(高俊錫) 부동산재테크팀장은 “중장기적으로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비중을 50 대 50으로 가져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무역업체 대표 최모(54) 씨는 최근 거래은행의 개인자산관리서비스(PB) 담당자에게 상담을 받은 후 30평형대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간접 주식투자 상품인 펀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한국씨티은행 이건홍(李建홍) 압구정씨티골드지점장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주식이나 펀드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시장을 떠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부장인 정모(48) 씨는 노후 거주지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그는 “보유세 부담이 커질 6억 원짜리 집을 줄이고 남는 돈으로 필리핀이나 태국에 집을 장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현지에 동호인 단지를 만들어 공동으로 가정부와 관리인을 둘 작정이다. 은퇴 후 1년의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해외에서 사는 것이 그의 꿈이다.

정 씨는 “높아질 한국의 거주비용과 동남아의 저렴한 거주비용을 비교할 때 한국인의 주거 개념이 동남아로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부동산 운용 방식도 달라져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자영업자 박모(39) 씨는 올해 초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33평형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들일 작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환경이 변하면서 서울 동작구의 108평짜리 상가를 사기로 마음을 바꿨다.

양쪽 모두 시가는 7억 원 정도. 상가를 산 뒤 보증금 2억 원, 월세 350만 원에 임대하면 연간 3271만 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치동 아파트는 월세로 임대해도 연간 수입이 1080만 원 정도다. 보유세나 취득세 등도 주택보다 상가 쪽이 유리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경기에 따라 상가 가격이 급변할 수 있고, 환금성이 다소 떨어지는 게 상가의 흠.

코리아베스트 주용철(朱勇哲) 세무사는 “임대만 잘 된다면 주택보다는 상가 등 정기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쪽이 노후 대책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집값이 당분간 약세를 보이더라도 성급하게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무작정 내 집 마련을 미루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인기 지역의 집값 상승 가능성은 여전한 데다, 월세가 확산되면 무주택자의 비용 부담과 주거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자산관리업체인 ‘시간과 공간’ 한광호(韓光鎬) 대표는 “소득 수준과 노후 계획에 맞춰 적절한 크기의 집을 한 채 정도 보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보유 부동산이 여러 개이고 당장 처분하기 어렵다면 전세를 월세로 바꾸고, 빈 땅에는 상업용 건물을 짓는 등 운용 방식을 바꾸는 게 현금 수익도 나고 세금도 줄이는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노후대책 ‘逆모기지론’ 활용할 만▼

중소기업 임원 김모(52·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씨는 월급을 꽤 받지만 생활이 쪼들린다.

두 딸 교육비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2년 전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집을 샀기 때문에 재산이라곤 6억 원짜리 집 한 채가 전부다.

노후 대책도 걱정이다. 집을 팔자니 내키지 않고 아내도 반대한다. 고민 끝에 일부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역(逆)모기지론을 이용하기로 했다.

김 씨는 집을 담보로 15년 동안 매달 121만 원씩 받을 예정이다. 67세까지 노후생활은 웬만큼 해결된 셈이다.

15년 후 갚을 돈은 이자를 포함해 3억4400만 원. 집값이 그때도 6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2억5600만 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이처럼 역모기지론을 이용하면 집을 팔지 않고도 노후 대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출금을 연금 형태로 매달 나눠 받기 때문에 한꺼번에 전액을 대출받는 것보다 이자 부담이 적다. 또 따로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대출 원금에 자동 가산되므로 이자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 역모기지론을 취급하는 곳은 현재 신한은행과 조흥은행뿐이다. 그나마 아직 많이 팔리지 않는다. 역모기지론 상품에 보완할 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PB사업부 한상언(韓相彦) 재테크팀장은 “미국처럼 대출기간을 종신으로 하고 보험 개념을 가미한 상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역모기지론 상품은 대출기간이 15년으로 제한돼 있다. 60세 때 이 상품을 이용하면 75세 때는 집을 팔아야 할 처지가 된다. 하지만 종신보험 성격을 가미하면 가입자가 몇 살까지 살든지 연금을 받고 사망과 동시에 해당 주택은 금융업체가 가져간다.

죽을 때까지 집 한 채를 담보로 생활할 수 있는 상품인 셈이다. 정부도 역모기지론 확산을 위해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가까운 장래에 다양한 상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정의철(鄭義澈) 교수는 “현재 집 한 채만 가진 50대 이상은 역모기지론을 이용하고, 젊은 층은 연금제도를 이용해 노후 준비를 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출처 - [동아일보 2005-09-22 04:05]


[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1부 <2>자식에게 기대지 말라

《“서른다섯 살 먹은 맏아들은 예술 한답시고 취직도 안 하고 지금도 용돈을 타갑니다. 둘째 아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하다가 서른을 넘겼어요. 자식들에게 의지할 생각은 아예 접었습니다.” 대구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외환위기 때 사업을 접은 박모(62) 씨는 노후를 생각하면 착잡하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지만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현재 남은 재산은 1억5000만 원짜리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와 예금 및 적금 1700만 원뿐.

“애들에게 쓴 돈 절반만 떼어 연금에라도 넣어 둘 걸.” 박 씨의 때늦은 후회다.》

○ 나의 노후,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

“유럽에서는 젊었을 때 어떤 연금 상품을 골라 얼마나 돈을 넣어 두느냐에 따라 은퇴 후 고급 실버타운에서 살기도 하고 겨울에 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떨기도 합니다. 월급에서 제일 먼저 각종 연금이 빠져나가고 자녀 교육비는 그 다음입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영국에서 생활한 노태정(盧泰正·경영학) 우송대 교수는 선진국 국민의 노후 준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자식이 ‘투자 1순위’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만 제대로 하면 노후는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요즘 30, 40대 사이에서는 “우리가 부모에게 용돈 드리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자식에게 노후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노인 수는 늘어나 작년에는 경제활동인구 10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30년에는 2.8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노인을 부양하는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30, 40대의 노후 준비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숙희(崔淑姬) 수석연구원은 “젊을 때부터 연금이나 주식 간접투자상품 등에 자산을 적절히 안배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후생활 기초는 연금으로

“매달 국민연금 뜯기고 나면 정말 화난다니까. 2047년에는 기금이 바닥나서 한 푼도 못 받게 된다며….”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주부 김희정(37) 씨는 동네 주부들과 재테크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2년 전 퇴직한 김 씨는 국민연금을 중단하지 않고 임의 가입자로 전환해 매달 내고 있다. 회사가 내던 몫까지 본인이 내야 하므로 불입액은 갑절로 늘어나 월 32만4000원. 이렇게 돈을 부어 65세 이후 받을 연금은 현재 가치로 매달 120만 원 정도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 때문에 개인연금보다 수익성이 높더라고요. 보험회사보다는 나라가 망할 가능성이 적지 않겠어요?”

국민연금연구원 김성숙(金聖淑) 선임연구위원은 “제도가 바뀌어 혜택이 다소 줄더라도 국민연금이 보통 사람들의 노후생활에 기초가 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 정모(43) 씨는 지난해 말 아버지(80)가 생활비를 올려 달라고 ‘독촉’하자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연금에 가입하면 최소한 나중에 자식에게 손 벌릴 일은 없으리라는 게 정 씨의 생각이다.

그는 월수입 2000만 원 중 600만 원을 보험회사의 개인연금에 넣는다. 60세부터 월 400만 원씩 사망 전까지 받는 ‘확정형 연금보험’에 월 300만 원, 투자 실적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지는 ‘변액보험’에 300만 원이 들어간다.

올해에는 1953년 도입된 퇴직금 제도도 52년 만에 바뀐다. 12월부터 퇴직연금제가 도입돼 각 기업의 노사 합의에 따라 매달 일정액을 붓다가 나중에 연금 형태로 지급받는 퇴직연금제를 선택할지, 아니면 기존 퇴직금제를 유지할지 결정하게 된다.

○ 내 연금 얼마나 될까

27세에 B대기업에 입사한 강모(35) 대리가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얼마나 될까.

매달 16만2000원씩 국민연금을 내는 강 대리가 55세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국민연금을 부으면 65세부터 현재 가치로 월 108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그가 보험사의 개인연금 상품에 가입해 매달 50만 원씩 20년간 부으면 60세부터 현재 가치로 매달 23만5000원을 받을 수 있다. 받을 돈이 내는 돈보다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20년 후의 월 불입액 50만 원은 현재 가치로 몇 만 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12월 시작되는 퇴직연금에 ‘확정 급여형’으로 가입하면 55세까지 회사를 다닌 뒤 퇴직하는 때부터 매달 13만8000원을 받을 수 있다. 주식 등에 투자해 실적에 따라 받는 ‘확정 기여형’을 선택하면 이보다 많거나 적어질 수 있다.

결국 강 대리가 65세에 받을 연금 소득은 현재 가치로 월 145만3000원 정도. 집 한 채를 가진 노인이 혼자 생활할 만하지만 부부가 같이 살기엔 다소 부족하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강창희(姜敞熙) 소장은 “선진국에서는 노인 소득 가운데 연금 비중이 70% 정도”라며 “연금으로 노후생활 기반을 확보해 두고 별도로 주식 간접투자상품 등에 투자해야 은퇴 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내 몫은 남아있을까” 국내 연금제 문제점▼

한국의 연금체계는 ‘공적(公的) 연금’이 주춧돌이 되고 퇴직연금이 허리가 되며 개인연금으로 보완하는 선진국형 ‘3층 연금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 가입자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 1988년 처음 도입할 때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장밋빛 구조’로 짰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금 상태로는 2047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보험료율을 현재 소득의 9%에서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연금 지급액은 ‘생애 평균 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의 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文亨杓) 선임연구위원은 “연금기금 고갈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돼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노인들의 기본생활을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을 서둘러 개혁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보다 지급 비율이 높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직원연금은 더 불안정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2001년부터 보험료율(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분 포함)이 15%에서 17%로 높아졌지만 매년 재원이 부족해 정부 재정에서 보조를 받고 있다.

올해 12월 도입되는 퇴직연금제도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중소기업주는 자금 문제 때문에 가입을 꺼리고 대기업 노사는 기존 퇴직금제보다 크게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연금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내년부터 연금에 대한 소득공제가 연간 24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늘어나지만 이 정도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얘기다.

조흥은행 강북PB센터 서춘수(徐春洙) 지점장의 계산에 따르면 내년 연말정산 때 연금 가입자들이 추가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과세표준에 따라 5만3000∼23만1000원에 불과하다.

서 지점장은 “정부가 정말로 연금제도를 활성화하려는 뜻이 있다면 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1부<3>의료서비스 맞춤시대

동아일보 2005-09-23 04:37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산 경험을 ‘팔순 시어머니 구순 친정아버지’라는 책으로 펴낸 유희인(柳熙仁·52) 씨. 두 분을 돌보며 ‘병든 노년’의 실상을 진하게 체험한 뒤 자신도 비켜 갈 수 없을 ‘노후’를 종종 떠올려 본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힘겨움을 예전엔 잘 몰랐어요. 시어머니가 자존심 강한 분이라 힘든 걸 자식에게도 내색하지 않으셨고요. 누구나 나이는 드는 건데. 우리 세대야 부모님 수발드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우리가 나이 들면 어떻게 될지….”》

노년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아플 때 누가 돌봐 주느냐는 것. 평균수명 연장으로 ‘유병장수’할 가능성이 커진 데다 제아무리 건강해도 생의 마지막에 이르면 몇 년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불가피하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몸짱, 맘짱, 돈짱’이 돼야 하는데…. 우리처럼 고급 시설에 갈 돈도 없고 무료 요양시설에 들어갈 조건도 안 되는 보통 사람들의 노후가 문제죠.”

○아직은 부족한 노인 간병시설

15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의 시립 동부 노인전문요양센터. 채광이 좋고 푹신한 바닥재가 깔려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이곳엔 치매 중풍 등을 앓는 노인 143명이 생활하고 있다.

노인 8명당 1명꼴의 간병인, 1층에 1명의 사회복지사가 배치돼 있고 매주 2회 방문하는 촉탁의사가 건강을 관리해 준다. 보증금 417만6000원에 월 생활비 69만6000원이면 입주할 수 있는 전국 최대의 실비 노인전문요양시설이다.

이곳에 95세 노모를 모신 김현도(75) 씨는 “집에서 개인 간병인을 쓰면 월 200만 원이 넘고 사설 노인요양원은 한 달에 150만 원가량 든다”면서 “이곳처럼 싸고 시설 좋은 전문요양시설을 확대해 서민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비(實費) 요양시설인 이곳은 앞으로 사회가 책임지는 노인 요양의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2008년 노인수발보장제도가 도입되면 치매, 중풍 등을 앓는 모든 노인이 간병 서비스를 받거나 저렴하게 요양시설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

하지만 중산층이나 서민층 노인을 대상으로 실비로 운영되는 전문요양센터가 아직은 크게 부족하다. 사설 시설까지 포함해도 전국의 노인 요양시설은 400개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0년까지 1100개로 늘릴 계획이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노인시설 짓는 것을 기피해 미지수다.

○진화하는 실버타운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시니어스타워에 사는 양명자(72·여) 씨는 19일 밤 화장실에 갔다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주저앉았다. 침실에서 자는 남편을 깨울 기력도 없던 양 씨가 화장실의 비상벨을 누르자 곧장 간호사가 달려왔다.

2000년 이곳에 입주한 양 씨 부부는 병원이 바로 옆에 있고 의료진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서울시니어스타워에는 병원 응급실이 24시간 운영되고 간호사 6명, 운동처방사 10명이 24시간 상주하며 입주자의 건강을 관리한다. 각 방에는 비상호출기와 건강이변감지 센서가 설치돼 있다.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거나 일정 시간 입주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센서가 자동으로 체크해 곧바로 간호팀이 출동한다.

은 평형별로 1억4000만∼2억7200만 원의 보증금과 매달 1인당 38만2900원의 생활비로 비싼 편. 하지만 입주 대기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유진욱(柳珍旭) 서울시니어스타워 관리팀장은 “지금은 중병을 앓는 노인은 들어갈 수 없다”며 “그러나 2007년 하반기에 완공되는 강서구 가양타워에는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려도 헤어질 필요가 없도록 중병 환자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실버타운 거주를 꺼리는 인식이 많지만 지금의 중년이 노년이 될 땐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암보험과 치매보험을 들어둔 홍모(61·여) 씨는 최근 간병보험에도 가입했다. 자식에게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매달 19만4000원씩 20년간 내면 석 달 이상 입원했을 때 한 달에 100만 원씩 간병비를 받을 수 있다.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유태우(柳泰宇) 교수는 “영양과 건강 관리가 좋아져 20년 후 60대의 건강 상태는 지금의 40대와 비슷할 것”이라며 “질병 치료보다 건강증진, 노화방지에 초점을 둔 서비스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노후 건강은 현재의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운동 부족, 과체중, 흡연과 음주, 약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 늙게 만드는 습관을 버리면 오래 건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2008년 노인수발보장制 시행되면

고령화의 급진전,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 참여 등으로 개별 가정에서 아픈 노인을 돌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2008년 7월 노인수발보장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치매나 중풍을 앓는 노인 본인이나 가족이 서비스를 신청하고 수발등급판정위원회가 6개월 이상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누구나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을 앓는 모든 노인과 65세 미만이라도 중증 치매 등을 앓으면 대상이 된다.

제도가 도입되면 △전문수발사가 집으로 찾아가 간병, 간호, 목욕, 일상생활을 도와주고 △노인요양시설 또는 요양병원에 들어갈 때 입소비 간병비 등을 지원해 준다.

본인이 부담하는 돈은 전체 서비스 비용의 20%. 요양시설에 들어갈 때 지금은 100만∼150만 원을 내야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 20만∼30만 원만 내면 된다. 그러나 시행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선 재원 마련을 위해 국민이 낼 보험료. 2008년부터 전 국민이 월평균 2945∼5110원(시행 초기 3년 기준·사업자 부담 포함)의 노인수발보험료를 내야 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수(金振洙) 교수는 “수발보장 서비스는 일단 시작하면 사망할 때까지 계속 제공돼야 한다”면서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 개인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계속 늘어나고 재정 부담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료(cure)’가 아닌 ‘수발(care)’ 시스템이라 해도 의료서비스와의 연계가 불분명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도 운영을 건강보험관리공단이 맡고 수발등급 판정을 담당하는 노인수발평가관리원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비판의 대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제도 운영을 지방자치단체가 맡아야 지역밀착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며 “부족한 시설, 노인수발평가관리원 신설에 따른 비용 증가 등 문제점도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1부<4·끝>실전 전략 이렇게

동아일보 2005-09-24 04:19

《앞으로는 노후를 ‘내 집 한 채’나 자식에게 의지하기 어렵다. 사회 문화와 정부 정책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예상하고 일찌감치 노후 계획을 새로 짜지 않는다면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30대와 40대 부부의 노후 준비를 재테크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새로 짜 봤다. 》

▼빚 갚는것 급하지 않다▼

이준경(李俊卿·45) 정영선(鄭映宣·41) 씨 부부는 이번 주에만 세 번 싸웠다. 지난해 말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산 아파트 때문.

“그러게 왜 무리해서 집을 사자고 한 거요? 집값이 내릴 거라잖아.”(이 씨)

“대출조건을 고정금리가 아닌 변동금리로 한 건 당신이잖아요. 이제 금리가 오른다는데….”(정 씨)

이 씨 부부는 아파트 담보 대출 원금을 갚기 위해 월 소득 526만 원의 15%인 80만 원을 매달 적금통장에 넣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의 학원비, 생활비, 대출이자, 세금 등을 빼면 여윳돈이 월 40만 원밖에 안 된다.○ 은퇴 후 시나리오 지금 당장 짜라

60세에 직장을 그만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씨 부부가 현재 생활비 수준을 유지하려면 은퇴 후 월 250만 원, 연간 3000만 원(현재 가치)이 필요하다. 여기엔 매달 110만 원의 국민연금 수령액이 포함돼 있다.

이 씨가 81세에 사망한다고 가정해 보자. 은퇴 후 부부가 함께 사는 21년간 필요한 생활비는 4억9988만 원. 매년 물가가 3%씩 오른다고 가정한 생활비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다.

“제가 먼저 죽으면 아내는 어떻게 해요?” 남편은 혹시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를 아내의 노후 생활이 몹시 걱정이다.

재무컨설팅회사인 우재룡(禹在龍) FP넷 대표이사는 “은퇴 후 계획의 핵심은 아내가 혼자 생활할 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10년 정도 혼자 사는 데 드는 비용은 1억2280만 원. 결국 이 씨의 은퇴 후 31년간 생활자금으로 모두 6억2268만 원이 필요한 셈이다.

이 씨가 남은 직장생활 15년간 매년 2478만 원씩 투자해 연 7%대의 수익률을 올리면 이 정도 돈을 마련할 수 있다.

○ 대출금, 집 팔아서 갚는 게 유리

은퇴 후 생활자금을 만들기 위해 이 씨는 매달 207만 원(연 2478만 원)을 금융상품에 투자해야 한다.

월 소득(526만 원) 중 15%를 아파트 대출금 상환에 쓰는 현재 방식으론 투자 여력이 생기기 어렵다. 우선 대출원금 상환을 위해 매달 적금을 붓는 80만 원을 수익률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게 좋다. 대출원금은 나중에 직장을 그만둔 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갚으면 된다.

월 100만 원이나 되는 사교육비도 줄여야 한다. 가정 재무설계 전문업체인 ‘파이낸피아’ 임계희(任癸熙) 대표는 “지금 상태로는 자녀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험 감수해야 돈 번다

현재 이 씨 부부가 투자하는 금융상품은 정기예금과 개인연금, 종신보험 등 3가지. 안정성만 추구했기 때문에 연간 기대수익률이 3.5% 선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월 투자원금 중 60%는 수익률이 높은 주식 관련 금융상품에 넣고, 나머지 40%를 개인연금 등 채권 관련 상품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연 7% 안팎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

주식 관련 상품은 주식형 적립식 펀드, 변액유니버설보험, 해외주식투자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채권형 상품에는 채권형 펀드, 개인연금, 정기예금 등이 포함된다.

임 대표는 “앞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부동산이 아닌 적립형 금융상품에 분산 투자해야 은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내집 마련 서둘것 없다▼

“그래도 집을 먼저 사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김민기·金民基·33, 송은하·宋恩瑕·30 씨 부부)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집은 꼭 필요하죠. 그러나 내 집 마련을 조금 늦추면 수익이 높은 쪽으로 여유자금을 돌릴 수 있어요.” (푸르덴셜생명 오종윤·吳宗倫 라이프플래너)

올해 결혼 3년째인 김 씨 부부는 3년 안에 2억 원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아기가 태어나면서 지출이 만만찮게 늘었지만 3년 안에 목돈 4000만 원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아파트 전세금 6000만 원을 합쳐 종자돈 1억 원을 만들고 부족한 돈은 은행대출과 친지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그러나 김 씨 부부는 최근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일부 지역에서는 떨어지는 조짐까지 보인다는 뉴스를 접하고 혼란스러워졌다. ○ 수익률 높은 금융상품으로 자산 옮겨야

“이자비용 등을 빼고도 높은 수익률이 보장될 정도로 집값이 오르고 있으면 내 집 마련을 서두르는 게 맞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김 씨 부부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한 오 씨는 이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는 또 “고령화의 진전으로 2017년경부터는 한국의 절대인구가 줄어들 전망이어서 부동산 매물은 늘고 수요는 줄어 부동산 자산가치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자산의 100%가 부동산인 데다 은행 빚까지 안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충고했다.

오 씨가 추천하는 대안은 무리한 내 집 마련을 늦추고 자금을 장기 펀드상품에 투자하라는 것. 자산을 단기로 운용하면 수익률이 떨어지는 채권형 상품밖에는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김 씨의 현재 포트폴리오를 보면 김 씨는 소득에서 지출을 빼고 남은 100만 원을 보통예금, 종신보험, 주택청약부금, 비과세저축, 장기주택마련저축 등으로 나눠 운용하고 있다. 70만 원을 연 수익률이 4%도 안 되는 채권형 상품에 넣고 있는 셈이다.

김 씨가 3년 후 모을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보면 이자 136만 원과 원금 2520만 원을 합쳐 2656만 원에 불과하다. ○ 젊을수록 주식형 펀드 비중을 늘려라

오 씨는 우선 다달이 30만 원씩 넣고 있는 비과세저축을 해지하고 5년 이상 주식형 적립식 펀드로 전환할 것을 권했다.

비과세 상품이라고 해도 이자율이 3.3%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자율에 이자소득세(15.4%)를 곱해 나오는 비과세의 실질적 혜택은 0.5%포인트밖에 되지 않는다. 세금을 내더라도 수익률 자체가 높은 적립식 펀드가 유리하다는 것.

또 매월 10만 원씩 넣는 주택청약부금도 내년 2월 만기가 되면 역시 주식형 적립식 펀드로 갈아타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매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장기주택마련저축은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데다 안정적이기도 해 그대로 두라고 충고했다.

이렇게 5년 이상을 투자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은 모두 5212만 원. 지금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했을 때 5년 후 받을 수 있는 4574만 원보다 700만 원가량이 많다.

오 씨는 “생활비를 현재 수준으로 묶고 해마다 월급 인상분만큼을 펀드 상품에 투자하면 5년 후 만들 수 있는 목돈은 훨씬 많아진다”면서 “김 씨처럼 젊을 때는 장기 펀드에 가입하되 채권보다는 주식 비중을 늘려 공격적인 재테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한국의 중년여자들]“뻔뻔하다고…?” 아줌마 아픔 아는가

《주부 이가영(가명·48) 씨는 남편이 ‘몸짱 아줌마’ 얘기를 꺼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살찐 미련퉁이’라고 비아냥거릴 때는 행주를 확 던져버리고 싶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쏘아붙인다. “남은 음식 버릴 수 없어 다 긁어먹었어. 아이 둘 낳았더니 25kg이나 불었더라.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돈이라도 주면서 다이어트하라고 그래 봐라.” 말은 그렇게 쏘아붙였지만 아닌 게 아니라 출렁거리는 뱃살이 부담스럽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누가 알아주나? 나중에 남편이나 아이들에게서 찬밥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7년차 주부 김영미(가명·38) 씨는 주변에서 ‘남편을 키웠다’는 말을 듣는다. 가난한 대학 강사를 만나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은 그 덕에 조교수, 부교수로 승승장구했다.

형편이 좀 나아지면서 김 씨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자 남편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자신의 월급은 연구를 위해 써야 하는데 왜 직장을 관뒀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건만 김 씨는 요즘 자신의 삶과 결혼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한국의 중년 여성들. 그러나 사회는 이들에게 ‘뻔뻔한 아줌마’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이 눈부시다고 하지만 평범한 여성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남의 일일 뿐이다. 무심한 남편, 까다로운 시댁, 엄마를 하녀 부리듯 하는 아이들에게 짓눌려 주부들은 가슴앓이를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명절이 가까워지면 주부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이른다. ‘남자들의 명절, 여자들의 노동절’이란 말이 나온다. 명절이 지나면 병의원 정신과를 찾는 중년 여성은 평소의 2, 3배에 이른다. 연세대 신경정신과 민성길(閔聖吉) 교수는 “‘화병(火病)’이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라며 “특히 중년 여성의 화병은 일종의 분노장애”라고 말했다. 남편, 시댁, 아이들에게서 비롯되는 응어리를 켜켜이 쌓다 보니까 불면증이나 가슴답답증 등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중년 여성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증가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본 여성의 삶’에 따르면 40대 여성에게서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란 의견이 1998년 72.7%에서 2002년 59.7%로 뚝 떨어졌다. 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란 의견은 24.7%에서 36.0%로 올랐다.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과 회의는 자신감 상실로 귀결된다. 본보 의뢰로 여성전문사이트 드림미즈에서 ‘어떨 때 전업주부란 사실이 싫은가’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53.7%가 ‘스스로 도태되는 느낌이 들 때’라고 대답했다. 이어 ‘남편이 자신을 무시할 때’ 22.4%, ‘잘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가 10.4%로 나타났다.

대화전문가 이정숙(李貞淑) 씨는 “주부는 하는 일이 없다는 인식이 중년 여성을 가장 힘들게 한다”며 “남편부터 아내를 귀하게 여기려는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한경혜(韓慶惠·가족아동학) 교수는 “남성은 나이가 들면서 소극적으로 변하는 데 비해 여성은 생물학적, 사회적 이유로 더욱 적극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며 “중년 여성들이 이러한 적극성을 긍정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가족은 물론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속터지는 여자들 2005 한국의 중년]<1>야속한 ‘반쪽’

《직업란에는 채울 게 없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제3의 성(性)’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남편에 따라 혹은 남편과 상관없이 ‘아줌마’ 혹은 ‘사모님’이라 불린다.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헌신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씩씩하다는 것은 불가사의다. 한국 중년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담아 보았다.》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음식점. 한 여성 포털 사이트의 같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50대 주부 4명이 오랜만에 만났다.

한미영(가명·55)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편이 대화라곤 할 수 없지만 자잘한 관심이 늘었어.” 신영숙(가명·54) 씨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받았다. “그게 바로 잔소리야!”

평소 남편에게 가지고 있던 불만이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왔다.

“가끔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고 ‘안 먹는 게 왜 이리 많아? 쯧쯧! 다 버리겠네’ 하거나 세탁 바구니를 뒤적이면서 ‘빨래할 때가 됐는데 뭐 하는 거야?’라고 해. 그러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

“우리 집은 딸만 셋이잖아. 딸이 제 아빠한테 ‘엄마 힘드니까 청소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집에 여자가 넷인데 내가 청소해야 되겠냐?’ 이런다니까.”

“벽에 못이라도 하나 박으려 해 봐. 온 식구 다 불러. 누구야 의자 준비해라, 누구야 못 줘라, 누구야 망치 줘라…. 그러고 나선 못 하나 박고 뒤처리도 안 하고 가 버려. 차라리 내가 박고 말지!”

“지금껏 가족을 위해 희생했으니까 이젠 집에서 편안하게 쉬어도 된다고 생각하나 봐. 누군 놀기만 했나?”

이들의 대화는 결국 한숨으로 끝났다. 이미정(가명·58) 씨는 “이렇게 왜 사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신영주(가명·55) 씨도 “몇십 년 같이 살았지만 우린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이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아내가 55.5%로 남편의 65.9%보다 10.4%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고려대 신경정신과 이민수(李敏秀) 교수팀의 연구 결과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이 주부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29.7%)으로 지적됐다.

남편들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하면서 무슨 투정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부들은 그런 남편들 때문에 매일 속 끓이면서 살아간다.

새벽 귀가에 ‘곤드레만드레’는 일상사고,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바쁘다고 나가 버린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는데 TV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서 꿈쩍도 안 한다. 그것은 참을 만하다. 하지만 친정아버지 생신날 식구들이 모이기로 했는데 전날 회식 때문에 피곤하다고 드러눕는 남편….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며칠 전 차로 주차장 벽을 박은 이채영(가명·49) 씨. ‘쿵’ 하고 부딪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나 뒤따라 나온 남편은 자신을 힐끗 쳐다보더니 차 범퍼가 긁혔다고 타박하는 게 아닌가. 이 씨는 분하다 못해 눈물이 핑 돌았다. ‘저 남자, 정말 남편 맞아?’

남편 친구들과의 부부동반 모임에서 노래방을 찾은 박소영(가명·45) 씨는 남편과 싸울 뻔했다.

음치에 리듬감도 없어 노래를 잘 못 부르지만 분위기를 맞추려고 한 곡 불렀다. 그때 남편이 ‘친구 부인’들에게 “정말 노래 못하지, 노래 너무 못해”하면서 자신을 흉보더라는 것. 박 씨는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며 “남편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편이 개인사업을 하는 주부 김현정(가명·48) 씨는 낮에 헬스클럽을 다니거나 쇼핑하면서 친구들에게 남편 험담을 자주하는 편이다.

성에 적극적인 김 씨는 남편에게 잠자리를 많이 요구하는데 그때마다 남편이 피곤하다며 거부하기 때문. 그래도 김 씨는 “밖에 나가 바람을 피울 인물도 못되고 무엇보다 착하기 때문에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며 씁쓸해했다. 한정순(가명·56) 씨의 남편은 젊었을 때 호랑이 기세가 부럽지 않았다. 심지어 외박을 한 다음 날도 집에 당당하게 들어올 정도였다. 한 씨는 “그래, 어디 나이 들어서도 그러나 보자”며 참고 또 참았다.

몇 년 전 사업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앉은 다음부터 상황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겼다. 남편이 밥 때만 되면 한 씨를 찾는 것이다. 한 씨는 모처럼 친구들 모임이 있더라도 식사시간에 맞춰 꼭 집에 들어가야 했다.

“자기 멋대로 살다가 이제 와서 나에게 꼬박꼬박 밥을 차려 내놓으라니요.”

끼니마다 밥 차리는 것은 그렇다 치고 주부를 ‘열 받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아내의 수고를 전혀 몰라주는 것. 여성 포털 사이트 ‘드림미즈’에서 주부를 상대로 ‘남편이 언제 가장 미운가’를 조사한 결과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대해 협조하지 않을 때’(12.1%)나 ‘시댁 일엔 열심, 친정 일엔 늑장 부릴 때’(12.4%)보다 ‘마음을 몰라줄 때’(15.0%)가 더 많았다.

김현숙(43) 씨는 동갑내기 남편과 친정에만 가면 울화통이 터진다.

신혼 시절에는 “장인어른∼ 장모님∼” 하면서 아양도 잘 부리던 남편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건넛방 TV 앞에 누워서 꼼짝도 안 한다. 친정어머니는 사위가 모처럼 와서 쉬는데 놔두라고 한다.

“낮 12시까지 실컷 자고 일어난 남편은 밥맛이 없다고 점심도 안 먹는대요. 미리 안 먹는다고 하면 차리지나 않지, 먹지도 않을 반찬 마련하느라 장까지 봐 온 우리 엄마만 불쌍해요.”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남편을 팽개칠 수는 없다. “대(大)자로 뻗어서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는 남편을 보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어요. 이 남자도 고생 많이 했지 싶어서…. 미워도 참고 살아야지, 어쩔 수 있겠어요.”

한국여성개발원 박수미(朴秀美) 연구원은 “가족 관계의 중심이 부모와 자녀로부터 부부로 이행하는 추세는 바람직한 일”이라며 “이제 부부도 남편은 경제적 부양자, 아내는 가정주부 등 고정된 역할에만 얽매이지 말고 서로 간에 애정과 친밀도를 높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속터지는 여자들 2005 한국의 중년]<2>시금치도 안 먹어


《20년차 주부 서경자(가명·48) 씨는 명절 때면 시댁 식구들의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그 칭찬이 징그럽게 싫다.

서 씨는 둘째며느리다. 약사인 큰며느리는 늘 바쁘다. 명절 때 시댁에도 늦게 오고 제사 음식을 함께 만드는 경우도 적다. 심지어 지난 설에는 아침만 먹고는 일이 있다면서 바로 가버리기도 했다. 그런 동서를 보고도 시댁 어른들이 아무 말도 않는 게 더욱 속상하다.

명절 준비는 오롯이 서 씨의 몫이다. 하루 종일 전 부치고 고기 굽고 있으면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든다. “둘째며느리 잘한다는 칭찬이 ‘게으름 피우지 말고 준비하라’는 말로 들린다”는 것이다.》

언젠가 “시댁도, 형님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남편에게 따진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이 던진 농담. “뭘 화를 내고 그래? 가정주부에서 ‘주’자 빼면 가정부 아냐?” 서씨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정말 가정부가 아닐까?’

외며느리인 김성희(가명·43) 씨는 추석 연휴가 짧은 올해 일찌감치 친정행을 포기했으면서도 지난해 추석 때 시어머니가 한 일을 생각하면 속이 끓어오른다. 그동안 시어머니는 연휴가 짧으면 당신 아들 힘들다는 핑계로 친정행 포기를 종용했다.

모처럼 명절 연휴가 길었던 지난해 연휴 마지막 날 설거지를 마치고 뒷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시어머니는 갑자기 “친정에 가서 귀찮게 하지 말고 점심 먹고 가라”며 부엌에 들어가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 김 씨는 “저녁 늦게 도착한 친정에서 머무른 시간은 1시간도 안 된다”며 씁쓸해했다.

중년의 주부에게도 명절은 부담이다. 신혼 시절에는 시댁에서 처음 맞는 명절에 음식 장만하랴 몸은 힘들고 친정 생각은 간절해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10년, 20년째 명절마다 시댁을 찾지만 시댁 식구들과 부대끼는 스트레스가 작아지기는커녕 날로 커져만 간다.

최근 명절을 앞두고 한 중형 병원이 주부 3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1%가 ‘명절증후군’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명절증후군이란 추석 설날을 지낸 후에 어깨통증, 요통이나 심리적 스트레스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시댁과의 갈등, 과도한 음식 준비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김영주(가명·51) 씨도 명절 저녁이면 신경이 곤두선다. 저녁에는 시누이 가족이 ‘친정’을 찾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친정에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이 당신 딸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남의 집 며느리이기도 한 시누이는 와서도 수고했다는 말은 없고 나이 드신 친정어머니 걱정만 한다. 김 씨는 친정이 지방이라 명절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하지만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이제껏 위로 한 번 한 적 없다.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결혼생활이 즐겁지 않은 주부가 많다. 오죽 시댁 문제로 속이 끓으면 ‘시’자 들어간다고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고 할까.

손승영(孫承暎·여성학) 동덕여대 교수는 “가부장적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가족일수록 주부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말한다.

맏며느리인 박현숙(가명·55) 씨는 명절보다는 한 해에 몇 차례 있는 제사가 부담거리다. 박 씨는 시아버지 제사를 벌써 29년째 맡아 하고 있다. 10여 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박 씨는 “제사 준비만 하라면 까짓거 무슨 문제냐”고 말했다. 제사가 끝난 후에도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이어진다. 시어머니는 돌아가는 자식들 챙기느라 경황이 없다. 박 씨에게 “뭐해?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어야지”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으면 “맏며느리 역할도 못 한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정은혜(가명·43) 씨는 시댁에 안부 전화할 때마다 가슴이 졸아든다. 정 씨의 남편은 시아버지와 함께 중소기업을 경영한다. 남편은 늘 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온다. 대화도 거의 단절된 상태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정 씨에게 “남편이 편안해야 집안이 잘 된다”고 가르친다. 가끔 억울한 감정을 드러내려 하면 시어머니는 “우리 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며 크게 혼을 낸다.

그런 정 씨가 친정을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남편에게 “친정어머니 용돈 좀 드리자”고 하면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퉁바리를 놓는다. “남편은 아직도 시부모의 아들일 뿐, 내 남편이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여자이면서 시댁 식구로 ‘군림’하는 시누이들과의 갈등도 문제다. 최정미(가명·47) 씨는 뇌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 병 수발을 들고 있다. 대소변도 받아내고 매일 죽도 떠먹여 드리기를 3년째. 몸도 마음도 지쳐 가는데 얼마 전 간병을 제대로 못한다고 손위 시누이들이 흉보는 걸 듣고는 기가 막혔다.

최 씨는 “우리 엄마 아프다고 울고불고 하는 시누이들이지만 자신들이 간병하겠다는 얘기는 죽어도 안 꺼낸다. 자기들은 누군가의 며느리 아닌가? 며느리 심정과 고생을 그렇게 몰라주는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정신과 박용천(朴容千) 교수는 “평소 자잘했던 시댁과의 갈등은 명절이나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를 계기로 악화된다”면서 “남편이 아내의 친정을 걱정해 주고 수고를 위로해 주는 게 갈등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유영주(劉永珠·가족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중년에 접어든 많은 며느리들이 ‘이 고생은 내가 마지막’이라고 말한다”며 “‘낀 세대’인 이들은 시부모에게서 받은 ‘시집살이의 노고’를 자기 며느리에게는 그대로 물리지 않아 고질적으로 이어온 고부갈등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속터지는 여자들 2005 한국의 중년]<3>“이것 해줘…”


《고3 아들인 진수를 왕처럼 ‘모시고’ 사는 김숙자(가명·45) 씨. 남편은 “진수는 공부 잘하고 있나”라고 수시로 묻는다. “그렇다”고 답은 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동안 김 씨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들을 교육해 왔다. 김 씨는 몸이 아파도 정보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엄마들 모임에 꼬박꼬박 나갔다. 이웃 엄마들이 추천하는 소위 ‘명문학원’에는 새벽부터 줄을 서서 등록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과 충돌이 잦았다. “엄마, 이렇게 한다고 대학 갈 수 있는 거야?”》

아들의 짜증이 늘자 남편은 “당신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라며 아내만 나무랐다. 그리고 아이 문제는 십중팔구 부부싸움으로 불길이 번졌다. 남편에게 “평소에 신경이나 쓰느냐”고 대들지만 남편은 “당신이 (애한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느냐”며 등을 돌린다.

김 씨는 요즘 밤중에도 몇 번씩 일어나 ‘이러다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국에서 중년 여성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식들의 대학 진학 문제다. 자녀의 성적표가 바로 엄마의 성적표로 통하기 때문. 좋은 학원을 알아내고, 학원 스케줄을 짜고, 학원에서 학원으로 승용차로 이동시키며 몸이 허약할까봐 때때로 보약도 지어다 바쳐야 한다.

조영희(가명·48) 씨는 지난해 큰딸이 고3이 되면서 남편과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오롯이 뒷바라지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가 학원 수업을 받는 동안 승용차의 흐릿한 불빛 아래서 취약과목의 요점정리도 해주었다.

그러나 자식 일이 늘 엄마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딸이 소위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 것.

낙방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은 “당신, 도대체 뭐했어”라며 도끼눈을 떴다. 조 씨는 딸에게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내가 부족해서 딸이 대학에 떨어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대한민국 40, 50대 엄마들은 ‘원더우먼’이 돼야 한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만능 엄마를 이르는 ‘슈퍼 맘’이 아니라 자식들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울트라 슈퍼 맘’이 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집안일과 가족 뒷바라지는 기본이다. 거기에다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엄마는 주변에서 ‘자격 미달’ 취급을 받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권원숙(48·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중3 아들이 등굣길에 “운동화가 너무 더럽잖아요” 하고 불쑥 화를 내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히느라 혼났다.

며칠 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말이며,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에 손톱까지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아들 책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청소한 것이 화근이었다. 밤늦게 들어온 아들은 제 방 문을 열자마자 돌아서서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 내 물건에 손 좀 대지 마세요.”

박경숙(가명·49) 씨는 얼마 전 고2 아들과 함께 동대문 새벽시장에 옷을 사러 갔다.

아들과 시장 구석구석을 4시간가량 돌아다니면서 박 씨는 묵묵히 계산만 했다. 피곤하고 허리가 쑤셨지만 아들을 위해 참았다. 그런데 이 ‘아들놈’이 한다는 소리가 박 씨를 ‘뚜껑 열리게’ 했다.

“엄마가 백화점 옷 못 사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는 “매번 해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며 “‘나이 든 엄마가 따라다니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은 못할망정…”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들이 왕인 상황에서 엄마는 종일 수밖에 없다. 엄마는 쓸개도 배알도 없다. 심지어 아플 수도 없다.

진수정(가명·50) 씨는 지난 주말 몸살감기로 앓아누웠다. 일어나려고 해도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열이 들떠 도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다 큰 맏딸(27)이 “왜 점심 안 차려 주느냐”면서 입이 잔뜩 나와 있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난 안 먹어도 좋으니까 네 밥은 네가 차려 먹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제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자신이 잘못 키운 탓이려니 했다.

윤세창(尹世昌)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주부들은 자식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위로가 뒤따르지 않을 때 스트레스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주부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특히 중년 여성들이 자녀 뒷바라지 과정에서 폐경기를 맞을 경우 빈둥지증후군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식이 대학에 진학한 경우나 결혼을 한 경우에도 기쁨과 함께 심한 허탈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뿌듯하지만 가슴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일부 중년 여성은 더욱더 아이들 뒷바라지에 집착한다.

김정원(가명·52) 씨는 출근 준비를 하는 딸을 쫓아다니며 꼬마김밥을 입에 넣어 주곤 한다. 직장에 갓 들어가 힘들고 지쳐 보이는 딸이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그런 엄마 마음은 몰라주고 “입맛 없어. 안 먹는다는데 왜 이래” 하면서 짜증을 부릴 때가 많다.

“딸이 현관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출근하면, 그제야 깨달아요. 멍하게 젓가락을 들고, 내가 뭐하는 거지…. 그래도 다음 날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해요.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요.”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사회학) 교수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끝없는 자책감을 낳고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을 때 마음의 상처가 된다”며 “한국의 중년 여성들도 어떤 계기로 자녀와 심리적으로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속터지는 여자들]<4>아내는 가구인가

《김선희(45·서울 강남구 신사동) 씨는 살쪘다고 남편이 구박할 때마다 자존심이 상한다. 일요일 오전 9시 아침 먹고 교회 다녀와서 점심 먹는 게 뭐가 잘못됐는지, 남편이 “또 먹느냐”고 할 때 서럽다. 남편은 같이 다닐 때도 앞서서 걸어간다. 김미화(가명·46) 씨는 얼마 전 남편 대학동창 부부 동반 모임에 다녀와서는 남편과 크게 다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그 친구 마누라 예뻐졌지”라고 몇 번이나 얘기하는 것이다. 집에 도착해 한 벌밖에 없는 여름정장을 옷걸이에 거는데 “당신 그 옷 입고 있으니 (그 마누라의) 언니나 이모 같더라”고 한마디 더했다.》

아내도 여자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돈과 시간 문제로 가꾸기를 유보했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들은 아내를 언제나 집 안에 있는 가구쯤으로, 원하면 언제나 밥과 옷을 주는 ‘친절한’ 파출부쯤으로 여긴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주부 4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76.4%가 ‘외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40%는 자신의 신체 부위에 대해 성형수술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이 비만클리닉은 입원할 필요도 없어요. 아침에 뱃살과 허벅지살 1.5kg을 빼는 지방흡입술을 하고 와도 남편들이 모르니까 대부분의 주부들이 남편 몰래 하고 돌아갑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비만클리닉 전문의의 얘기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무관심을 엿볼 수 있다.

박경희(가명·53) 씨는 그동안 자식 대학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 열심히 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머리 질끈 묶고 통치마 입으며 ‘여자’보다는 ‘아내’ ‘엄마’로 살았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TV를 보는데 남편이 “왜 마누라는 여자로 보이지 않을까?”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박 씨는 “아유, 나도 꾸미고 살아야겠네”라며 농담을 건넸다. 그런데 남편은 “당신은 저쪽 사람들과 계통이 다르잖아. 뭘 꾸며. 그대로 살지”라고 핀잔을 줬다.

박 씨는 어이가 없었다. “열심히 살기 위해 여자로서의 매력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배신감이 느껴지더군요.”

황인순(가명·52) 씨는 최근 큰맘 먹고 옷 한 벌을 샀다. 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보다가 재활용품 모아 놓은 데서 옷을 고르는 주인공 맹순이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 비슷해 괜히 심란해졌다. 황 씨는 “이제 그만 그악해지자”고 생각하며 백화점에서 30만 원짜리 옷을 샀지만 남편 눈치 때문에 옷장 안에 넣어두고만 있다.

대화전문가 이정숙(李貞淑·SMG 대표이사) 씨는 “남자는 사냥꾼이어서 이미 잡은 사냥감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편 앞에서 함부로 옷을 갈아입거나 맨얼굴을 보여 주면 남편은 아내를 잡은 사냥감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처지는’ 자신의 몸매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것뿐이 아니다. 주부들의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마흔 지나 몸매가 변했더니 남편의 눈길도 달라졌다’는 고백이 종종 올라온다. ‘어디 가서 바람을 피우는 건지 요즘 잠자리가 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또 한 번 상처를 입는다. 오죽하면 미국에서는 아내가 유방암 걸린 것을 남편이 제일 먼저 발견한다는데 한국 아내들은 목욕탕 ‘때밀이’들이 일러 준다는 얘기가 있을까.

강현미(가명·41) 씨는 얼마 전 싫다는 남편을 끌고 부부클리닉을 찾았다. 벌써 1년 가까이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늙어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애써 무시했다. 남편은 퇴근 후에도 강 씨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에 푹 빠져 산다.

우연히 강 씨는 남편이 거의 매일 야한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것을 알게 됐다. 어이도 없고 화가 나서 강 씨가 “당신 변태 아냐? 아내를 옆에 두고 그런 것들이나 보고…”라고 쏘아붙였다. 처음에 당황하던 남편은 그러나 곧 “당신이 여자야? 흥분이 돼야 하더라도 뭘 하지”라고 빈정댔다.

‘이제 나는 여자가 아닌가?’ 그런 고민 끝에 남편과 부부클리닉을 찾은 것이다.

서정애(가명·41) 씨는 얼마 전 남편 몰래 ‘큰일’을 저질러 버렸다. 남편이 해외 출장 간 틈을 타 600만 원이나 들여 유방확대수술을 받은 것. 뒤늦게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대판 싸워야 했지만 그래도 서 씨는 상관하지 않는다. “마흔 넘어 처지는 몸매를 보는 게 안타까웠는데 볼륨이 있어 좋잖아?”

사실 서 씨는 성형수술에 관심이 없었다. 다 남편 때문이었다. 언젠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였다. 평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던 남편이 대뜸 “가슴이 그게 뭐냐? 노인네처럼…”이라고 타박하는 게 아닌가.

서 씨는 화가 나서 “그럼 수술할 테니 돈을 달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남편은 혀를 끌끌 차며 “돈 아깝게…. 그런다고 아가씨 되냐?”며 무시했다. 서 씨는 ‘그래. 두고 보자’라고 별렀고 남편 몰래 신용카드를 들고 가서 수술을 해 버린 것이다.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사회학) 교수는 “서구의 낭만적 사랑이란 개념이 들어오면서 부부간에도 날씬한 몸매와 성적 매력을 요구하고 있다”며 “결혼하면 사랑이 식는 것이 아니라 익는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부부간 편안한 관계를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하면서 친구처럼 함께 늙어가는 우리식 부부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출처 : 동아일보 2005년 9월 10일 (토)



"[학력과잉 덫에 빠진 한국]너무 배워서 슬픈 사람들"


《서울의 유명 사립대 석사 출신인
김영민(가명·34) 씨는 몸담았던 보습학원이 잇따라 부도가 나자 지난해 말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및 무교동 일대에서 ‘퀵서비스’ 일을 했다. 그러나 몇 번 오토바이 사고를 낸 뒤 지금은 서초구 잠원동의 한 자전거대리점에서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다. 수입은 부정기적으로 받고 있는 월 45만 원 선이 전부. 수차례 초등학교 기능직 직원 자리에 응모했으나 ‘너무 배웠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한국 사회의 ‘학력 과잉(overedu-cation)’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지난해 말 현재 석사학위를 가진 취업자 10명 중 9명은 하향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4년제 대졸 취업자 가운데 절반(49.5%)은 고졸 학력만으로도 충분한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사 출신 역시 절반에 가까운 44.8%가 하향 취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본보가 최근 입수한 노동부 산하
한국노동연구원의 ‘청년층 고학력화에 따른 학력 과잉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이 보고서는 중앙고용정보원 측이 2002년과 2004년 통계청 자료 등을 이용해 작성한 ‘직종별 요구 학력’과 ‘산업 직업별 고용구조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8년 만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모(37) 씨는 한국 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지방 수능학원 강사를 지내다 현재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사주점의 경리 겸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이 같은 학력 과잉 및 하향 취업 실태는 올해 직업훈련학교 입학생 추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직업훈련학교는 고졸 이하 학력자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마련된 1년 과정의 기능 훈련 프로그램.

올해 전국 21개 직업훈련학교에 입학한 6461명 가운데 4년제 대학 졸업자가 876명, 2년제 전문대 졸업자가 1334명이었다.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전체의 31%를 차지한 것.

올해 충주 직업훈련학교에 입학한 L(29) 씨는 3년 전 지방 유수 국립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L 씨는 “대학 4년 동안 시간과 돈만 낭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2002년을 기준으로 국내 15∼19세 인구 가운데 학생 비율은 79.9%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9.4%)과 비슷했다. 하지만 대학생에 해당하는 20∼29세 인구의 학생 비율은 한국이 26.5%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OECD 평균은 22.7%에 불과했다.

올해 2월 졸업한 전문대 이상 고학력자도 49만 명(2년제 전문대 22만 명, 4년제 대학 27만 명)으로 10년 전의 32만 명에 비해 17만 명(53%)이나 늘었다. 반면 대졸자들이 갈 만한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있다. 30대 대기업 그룹, 공기업, 금융업 취업자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 158만 명이었다. 지난해에는 130만 명으로 28만 명이나 감소했다.

학력 과잉은 당연히 국력의 낭비와 사회 전반의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추산한 2년제 및 4년제 대학 졸업 비용은 6700만∼1억2000만 원. 이에 따라 대졸 출신 미취업자를 기준으로 산출한 사회적 비용만도 20조 원이 넘는다는 설명이다.

중앙고용정보원 박천수(朴天洙) 동향분석팀장은 “막무가내식 대학 진학으로 중소기업은 인력난, 대졸자들은 취업난을 겪고 있다”면서 “한국의 인적자원관리 시스템은 ‘학력 과잉의 덫’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학력과잉 덫에 빠진 한국]<上>학사 석사 박사가 넘친다"


서울시 한 구청 환경청소과의 H(37) 씨는 요즘 공인회계사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성균관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6년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동사무소 등에서 일해 왔지만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전직을 결심한 것. “말단 공무원이 되려고 대학원까지 다녔느냐”는 투의 눈총도 부담스러웠지만 앞으로도 단순 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회의가 들어서다. 그러나 전직에 성공할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올해 들어 서울시가 실시한 9급 공무원시험 합격자는 573명. 이 가운데 417명이 4년제 대학 졸업생이었다. 대학원 졸업생도 24명이나 됐다. 나머지는 전문대 졸업생 55명, 대학 중퇴자 76명, 전문대 중퇴자 1명이었다. 고졸자는 단 1명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낮은 하향 취업=요즘 공무원시험 대비 전문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학원가는 대졸 수강생들로 넘쳐난다. 문제는 9급 공무원의 업무가 굳이 비싼 학비를 들여가며 대학까지 졸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것.

서울시 인사 담당자는 “9급으로 합격하면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주민등록 등·초본, 호적초본 등을 떼어 주는 지극히 단순한 업무부터 시작한다”면서 “고졸 학력만으로도 충분한데 고학력자들이 합격하니 고졸 출신들이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학력자들의 하향 취업으로 저학력 노동시장의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10급 기능직 등대원 1명을 모집하는 데 45명이 몰렸다. 이 가운데 전문대 이상 졸업자가 전체 응시자의 62%(28명).

국내 대형 증권사인 H투자증권은 단순 업무인 창구 여직원 선발기준을 그동안 고졸, 전문대졸에서 올해부터 4년제 대학 졸업자 이상으로 바꾸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만 해도 신청자가 넘쳐나기 때문.

중견 조선·중공업 그룹인 STX그룹이 올해 4월 실시한 상반기 신입 및 경력사원 채용에는 150명 모집에 65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신입사원 지원자 중에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관세사와 해외 경영학석사(MBA)를 포함한 석·박사 학위 소지자만 채용 정원의 5배가 넘는 800명 정도였다.

대졸자가 고졸자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직업훈련학교에 대거 입학해 추가 교육을 받는 웃지 못할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채용 포털 사이트인 커리어의
김기태(金起兌) 대표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 고학력자와 전문 자격증 소지자의 하향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며 “하지만 하향 취업자는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 입사 후에도 정착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 인적자원 관리에 큰 장애=취업상담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졸자에게 “일단 눈높이를 낮춰 취업해 경력을 쌓은 뒤 원하는 직장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학력 과잉과 하향 취업은 인재가 최대의 자원인 한국에서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강화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대졸자가 워낙 많다 보니 일부가 하향 취업을 해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 올 상반기 청년층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3.9%보다 2배가 넘는 8.4%였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향 취업을 해도 문제다.

지방 국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K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T(30) 씨는 지난 3년간 무려 11곳의 일터를 옮겨 다녔다. 그가 다녔던 직장은 월 급여 90만 원의 금형제작 공장에서 전자부품 조립라인에 이르기까지 전공과는 거리가 먼 생산현장의 보조역이었다. T 씨는 “지금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적”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앙고용정보원이 2003년 기준으로 청년층 취업자 18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학력 과잉인 취업자 가운데 현재 직장이 자신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10.2%에 불과했다.

▽대졸자가 너무 많다=학력 과잉은 수요 측면에서 보면 일자리 문제지만 공급 측면에서 보면 대학의 문제다. 일자리에 비해 너무 많은 대학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1975년만 해도 대학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고교 졸업생 가운데 2년제와 4년제를 통틀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비율은 25.8%에 불과했다.

꼭 30년 후인 2005년에는 고교 졸업생 56만9272명 가운데 82.1%인 46만7508명이 전문대 또는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 학제가 외국과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20∼29세 인구의 학생 비율은 한국이 26.5%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7%보다 높다.

한국개발연구원 우천식(禹天植) 산업·기업경제연구부장은 “대학 교육의 질적인 내용은 별도로 하더라도 우선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사립대는 자율적인 인수합병(M&A)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국립대 정원은 정부가 먼저 나서 줄이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학력과잉 덫에 빠진 한국]대졸자 손익 따져보니…"


4년제 대학 졸업은 남는 장사일까.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고학력화와 임금소득 불평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지위, 체면, 결혼조건 등을 빼고 월급 측면만 한정해서 봤을 때 4년제 대학 입학은 그리 훌륭한 투자가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부의 ‘임금구조 기본통계조사(1983∼2003)’를 바탕으로 4년제 대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산출한 결과, 1인당 총 1억1190만∼1억3071만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을 비롯해 대학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이 9308만 원이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비가 2700만 원 안팎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 드는 학원비, 과외비 등 사교육비는 한 달에 30만∼60만 원 선. 중학교 때는 그 절반으로 계산했다.

대학졸업자가 평균 만 21세부터 60세까지 근무한다고 했을 때 평생 받을 월급을 현재의 가치로 계산하면 2억5853만 원. 고졸 취업자는 1억6157만 원, 2년제 전문대학 졸업자는 2억2562만 원으로 추산됐다.

대졸자는 고졸자보다 9696만 원, 전문대 졸업자는 고졸자보다 6405만 원을 더 번다는 계산. 결국 대학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수익률은 ‘마이너스’인 셈이다.

더구나 고교 졸업자와 대졸자 간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4년제 대학졸업자는 1993년에 고졸자에 비해 2.2배를 받았으나 2003년에는 1.5배 수준으로 좁혀졌다. 미국은 정반대다. 미연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80년 대졸 남자의 연봉은 1980년 5만2492달러로 고졸 남자의 3만6430달러에 비해 44% 많았다. 하지만 2000년에는 대졸 남자의 연봉이 6만9421달러로 고졸 남자의 3만6770달러에 비해 89%나 많았다.

노동연구원 안주엽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학력 간 임금격차가 벌어진 것은 중국산 저가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줄었지만 기술 진보가 이어지면서 고학력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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