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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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다음에 아랫사람도 수저를 들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는 ‘쩝쩝’ 소리를 내지 않고 상 위의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린시절부터 이런 밥상머리 예절을 배운다.
하지만 외식을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식사에 방해되거나 말거나 식탁 주변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큰 소리로 ‘왜 음식이 빨리 안 나오느냐’고 떼쓰는 아이들, 아이를 자제시키기는커녕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부모들….
이에 반기(反旗)를 드는 부모들이 있다. ‘외식도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외식보다 자녀 가르치러 레스토랑 순례하는 부모들
이들은 아이들과 외식할 때 단순히 맛있는 곳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한 달에 한두 번, 나라별로 정통의 맛과 분위기를 내는 곳을 계획을 짜서 다니며 외식을 시킨다. 식당이 정해지면 부모는 책이나 인터넷으로 그 나라의 식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에게 얘기해준다.
영어만 잘 한다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게 아니라 세계의 교양 있는 식문화가 몸에 배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회의장에서 유창한 영어를 쓰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낭패를 겪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요즘 기업들은 다양한 면접기법을 도입하면서 지원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을 살피는 곳도 있다.
○교양의 척도 식문화 예절 점점 중요해져
직장인 이혜원(40) 씨는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원영이가 4세 때부터 교육을 위한 ‘레스토랑 순례’를 하곤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식당만 아니라 중국, 인도, 멕시코 , 터키 식당까지 안 데려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원영이는 세계 각국의 식문화에 대한 상식을 웬만한 어른만큼 쌓았다. 스테이크를 시킬 때도 ‘미디엄’ ‘웰던’ ‘레어’를 각각 주문해보고 고기 맛이 가장 부드러운 건 피가 스며 나오는 ‘레어’라는 사실도 알았다.
“원래는 크림과 토마토소스를 섞은 파스타를 좋아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소스를 섞은 파스타는 없대요.”
이 씨는 이런 교육을 시키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외여행 가이드북이 주된 참고서다. 처음에는 여행을 가기 전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려고 샀지만 음식의 종류, 기원, 토속음식 먹는 법, 에티켓 등이 사진과 함께 수록돼 있어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보고 음식점에 간다.
직장생활 중에 만나는 외국인도 교사다. 식당에 가서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터키레스토랑에 가서는 터키인 사장에게 ‘터키식 빵인 난을 왜 화덕에 굽는가’ ‘난은 왜 얇은가’ ‘터키식 꼬치구이인 케밥의 유래는 뭔가’ 등을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가 자라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할지 알 수 없잖아요. 많은 경험을 통해 나라마다 다른 음식문화와 식탁예절을 자연스레 체득했으면 했어요.”
주부 최은주(37) 씨의 외식교육은 외국계 회사에 다녀 해외출장이 잦은 아빠와 함께 한다. 감자탕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위해 외식은 주로 한국식당을 찾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양식 레스토랑에 간다. 아빠는 아들에게 ‘오른쪽에 있는 컵이 자신이 마셔야 할 물’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먹을 때마다 잘라서 먹을 것’ 등 기본적인 매너를 가르친다. 최 씨는 “저도 외국계 회사에서 생활해봤고 남편도 마찬가지지만 이미 한국에서만 직장생활을 해도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너무 많아 아들에게 기본 식사예절을 가르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글=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면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영어만 유창하면 글로벌 인재?
테이블매너 갖춰야 진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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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홍여림(33) 씨는 5세짜리 딸 아나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외식교육에 나선 지 1년 정도 됐다. 패밀리레스토랑에 갈 때와 달리 이런 날은 호텔의 우아한 레스토랑에 엄마도 딸도 근사한 원피스를 입고 가 ‘어린이용 메뉴’가 아닌 어른을 위한 정찬 메뉴를 시킨다.
아나는 처음에는 “나한테 왜 이렇게 포크와 나이프가 많아?”라고 묻거나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정작 메인요리를 먹기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제법 자연스레 음식을 먹는다.
홍 씨는 “아이가 서양식 식사예절이 자연스레 몸에 밴 성인이 된다면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서양식 테이블매너를 가르치는 유치원도 종종 있다. 호텔이나 음식문화원에서 ‘테이블매너 교실’을 열면 금세 마감된다.
인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테이블매너 교실에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참가시킨 주부 김문정(37) 씨는 “교실에 다녀온 뒤 레스토랑에서 포크를 식탁 아래로 떨어뜨리자 예전처럼 풀쩍 뛰어내려 집어 들지 않고 서비스 직원을 불러 도움을 청해 뿌듯했다”며 “글로벌 시대에 영어공부도 중요하지만 외국의 격식 있는 문화가 몸에 배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식사예절은 가정환경과 교육수준의 잣대
서양에서 음식예절은 영어보다 더 중요할까?
장재룡 전 주프랑스 대사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식사예절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채욱 GE헬스케어 아태지역 성장시장 총괄사장은 “테이블매너는 서양에서 단지 식사예절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가정환경과 교육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 함께 식사를 하며 지원자가 회사의 이미지에 맞는 사람인가를 살피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 교포 가운데는 좋은 성적과 영어실력으로 유명한 회사에 지원해 입사가 거의 확정됐다가 외국인 회장과 식사를 함께 하다 떨어진 사례도 있다. 실제로 무슨 이유 때문에 떨어졌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사자는 익숙지 않은 테이블매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제통역사인 최희정(45) 씨는 국제회의장에서 눈살 찌푸릴 만한 일을 자주 본다고 전했다. 명품 옷을 입고 국제회의에 참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나이프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핥아먹거나 포크를 상대방을 찌를 듯이 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 씨는 중학교 1학년 아들과 고교 1학년 딸에게 서양식 테이블매너는 물론 와인 매너도 함께 가르친다. 가족이 함께 식사할 때 자녀에게는 와인을 반 잔 정도 따라준 뒤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 등을 화제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달콤한 와인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점점 쓴맛이 강한 드라이 와인에 입맛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 와인구매 가이드’ 같은 책을 아들과 함께 읽기도 한다.
‘177 테이블 매너’라는 책을 낸 송희라 세계미식문화연구원장은 “부모가 높은 직위에 오를수록, 외국인과 식사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러운 테이블매너에 대한 갈증이 높은 것 같다”며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딸이 방학 때 들어오면 친구들을 모을 테니 테이블매너를 가르쳐달라는 어머니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 나라마다 독특한 테이블매너
유럽은 음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테이블매너가 비슷하다.
레스토랑의 자리가 비어 있어도 직원 안내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나이프와 포크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사용하라거나 식사 도중이라면 나이프와 포크를 교차해서 두고, 끝났으면 한쪽에 가지런히 올려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문할 때 손을 들고 ‘여기요’라고 하기보다는 직원과 눈을 마주친 뒤 주문할 의사를 표시하는 게 좋다. 고기는 미리 잘라놓지 않고 먹을 때마다 자른다.
이런 유럽도 나라마다 음식이 다른 만큼 세부적인 식탁예절을 더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는 어떤 코스에서는 메인이지만 어떤 코스에서는 애피타이저다. 서양인 기준인 식당에서는 애피타이저라도 양이 그리 적지 않다. 그런데 이를 메인인 줄 알고 양이 많아도 다 먹거나 해서는 안 된다.
긴 면을 사용한 파스타는 포크를 면 가운데 푹 찌른 뒤 돌돌 말아서 숟가락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이로 면을 끊어서는 안 된다. 어떤 프랑스 식당에서는 프랑스빵을 대표하는 긴 바게트가 식사 전에 서비스될 때도 있다. 이럴 때 바게트는 칼이 아닌 손으로 자른다.
송희라 원장은 “성경에서 빵은 ‘그리스도의 살’이기 때문에 칼을 함부로 대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갓 구워낸 빵에 금속이 닿으면 빵 맛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음식처럼 테이블에 공용으로 음식이 제공될 때는 덜어먹는 숟가락과 포크의 손잡이가 가리키는 방향의 사람부터 시작하면 된다. 조용히 식사하는 게 좋은 한국식 예절을 생각하면 안 된다.
서울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후덕죽(侯德竹) 상무는 “중국에서는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결례이며 상대방과 술을 건배했다면 단숨에 마신 뒤 첫잔의 술잔은 보여주는 게 예의”라고 설명했다.
인도요리를 먹을 때는 식사 도중에 술을 권해서는 안 된다. 소를 숭배해 채식주의자가 많기 때문에 인도인과 함께 식사할 때는 채식주의자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손으로 먹는 음식이 많은 인도요리지만 디저트는 당도가 높아 끈적거리기 때문에 반드시 숟가락으로 먹는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