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주간조선 2005.11.22

은퇴의 역사는 노령연금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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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늦을수록 고통도 크다
19세기 말 비스마르크가 첫 도입 후 고령자 은퇴시킬 목적으로 선진국서 앞다퉈 시행

은퇴의 역사는 산업화 이후에 나타난 연금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직장을 퇴직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 노후를 보내는 ‘은퇴(retirement)’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 연금 제도가 탄생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일을 하지 않고서는 먹고살 수가 없었을 뿐더러 노인이 일하는 데 대한 경시 풍조도 없었다. 18세기 중반 영국을 시작으로 산업혁명이 시작됐지만 기본적으론 서구 선진국도 농업이 주류여서 대부분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했다. 노인은 가족과 같이 살면서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일을 못하게 됐을 때도 가족의 보호를 받았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나이 들어 일을 못하게 된 사람은 국가에 보호를 요구할 근거가 있다”는 빌헬름 1세의 주장을 받들어 1889년 세계 최초로 노령연금 제도를 도입했다(제도 시행은 1891년). 노령연금은 일정 나이가 되면 연금을 주는 보험의 한 종류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연금에 강제 가입됐고, 70세가 되면 현직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았다. 때문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바로 은퇴연령이 됐다. 70세였던 은퇴연령은 1916년 65세로 낮춰졌다.

19세기 후반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나이 많은 근로자를 경쟁의 걸림돌로 여겼다. 이 과정에서 고령 노동자를 산업현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독일의 사례를 좇아 연금제도를 잇따라 도입한다. 당시 가장 선진 공업국이었던 영국은 1908년 70세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노령연금 제도를 실시한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이 세계 경제를 덮치기 전까지는 나이 든 사람의 은퇴가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미국의 역사학자 윌리엄 그래브너에 따르면, 1903년 미국 재무부 공무원 중 2%인 114명이 70~79세였다. 12명은 80세 이상이었다. 또 1920년대 시카고에서는 2명의 83세 교장과 70세 이상의 교원 6명이 채용됐다. 심지어 필라델피아에서는 나이 많은 교사들의 경우 낮잠을 자기 위해 하루에 2번씩 학생 자율학습을 시키는 게 허용됐다.

은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부터다. 그래브너에 따르면, 1932년에 미국 근로자 중 20% 미만이 연금 제도의 적용을 받았다. 대공황이 닥치자 미국의 실업률은 25%로 치솟았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 때 루스벨트 대통령 등 뉴딜 정책 입안자들은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사회보장연금을 지급해서 고령자들을 은퇴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1934년 상원의원 로버트 와그너가 제출한 철도노동자 퇴직연금을 설립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신 5만명의 노동자를 즉시 퇴직시킨다는 계획이었다. 1935년에는 현재 미국의 사회보장연금(OASDI·Old Age, Survivors, and Disability Insurance)의 기초가 마련되는 사회보장법이 제정됐다.

루스벨트는 독일의 모델을 좇아 1935년 사회보장법에서 연금 지급 연령(곧 은퇴연령)을 65세로 정했다. 때문에 65세는 ‘비스마르크 연령’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당시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63세였다. 은퇴 연령이 평균수명보다 높게 설정돼 많은 사람이 사회보장혜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루스벨트는 은퇴 연령을 62세로 낮췄다.

당시 은퇴자가 받은 연금은 겨우 먹고살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의 은퇴설계 전문가 미치 앤서니는 ‘은퇴혁명’이란 책에서 “1930년대 은퇴자의 이미지는 겨울철에 난방도 되지 않는 낡은 원룸 아파트에서 두꺼운 옷을 몇 겹씩 껴입고, 고양이 사료를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과부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고 적었다. 경제사학자 조안나 쇼트에 따르면 연금이 확산되면서 65세 이상 노인 중 노동에 참가하는 비율은 1940년에 43.5%로 1920년(60.1%)에 비해 16.6%포인트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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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연금 제도는 전세계로 확대됐다. 미국에선 노인 빈곤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기금에서 지급하는 연간 생계비에 인플레이션율을 반영해서 상향조정했다.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1950~1970년대의 세계 대호황기를 거치면서 정부와 기업에서 지급하는 연금액은 늘어난다.

연금 액수가 늘어나자 은퇴의 개념도 바뀌었다. 은퇴의 개념은 과거에 가난이었으나 1950년대 이후엔 풍요로움의 상징의 됐다. 당시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은퇴자의 개념으로 은퇴 후에 호수에서 낚시나 골프로 소일하는 이상형을 만들고, 은퇴대비용 상품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1952년 생명보험사인 뮤추얼라이프의 케내지 부사장은 “(은퇴를 앞당겨) 50세 은퇴를 준비하라”고까지 주장했다. 평균 은퇴연령도 1930년대의 70세에서 62세로 떨어졌다.

한편 최근 들어 미국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의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은퇴의 개념이 다시 바뀌고 있다. 메릴린치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베이비붐 세대는 영원한 휴가를 꿈꿨던 그들의 아버지 세대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베이비붐 세대 4명 중 3명은 “은퇴 후에 돈보다는 정신적인 자극과 도전을 위해서 계속 일을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미국인이 추구하는 은퇴의 이상형은 ‘빈민에게 집 지어주기 운동’인 해비타트 운동에 뛰어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한국에서도 은퇴의 개념은 최근의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 농업이 주류인 사회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산업화를 경험한 지 30여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은퇴 연령의 기준이 됐던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은 1973년 법안이 최초로 마련됐지만 1974년의 오일쇼크,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도입이 미뤄져오다 1988년에야 출범했다. 출범 당시엔 근로자 1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불완전한 국민연금이었다. 1995년 7월에는 농어촌지역 주민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1999년 4월에는 도시지역 자영업자로까지 가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전국민 연금시대가 왔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0세로 정해졌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명예퇴직, 조기퇴직이 일상화되면서 ‘50대에 1차 퇴직과 창업·재취업, 60대에 은퇴’라는 새로운 공식이 생겼다.

한편 연금제도와는 별도로 1991년 제정된 고령자 고용촉진법 19조는 ‘정년’이란 항목을 두고,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사규(社規)와 노사협약 등을 통해 정한 정년은 평균 57세다. 공무원의 5급 이상 정년은 60세, 6급 이하는 57세, 교원은 62세다.

방현철 주간조선 기자(banghc@chosun.com)




퇴직과 은퇴를 혼동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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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이 기다린다
50세 퇴직자, 남은 인생 30년 이상... 준비 여부에 따라 `제2인생` 크게 달라져

의학의 발전과 식생활 개선에 힘입어 1960년 53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75년 64세, 1985년 68세, 2004년에 76세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 2010년 79세, 2020년 81세, 2030년 82세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삶에 대한 종전의 생각에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졸업한 후 취직을 하면 정년퇴직 때까지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의 한국인이 사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이런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기업들이 상시(常時) 구조조정과 조기퇴직 제도를 실시하면서 50세 전후의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경우 50세에 퇴직을 하면 앞으로 30년이라는 세월이 더 남는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여생(餘生)’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길다. 이는 여생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인생을 두 번 산다’고 하여 어떤 학자들은 이를 ‘이모작 인생’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제1의 인생을 사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제2의 인생은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한편에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인생의 후반을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경제적 안정과 정신적 풍요로움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줄서고 싶은가.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면 자연스럽게 ‘은퇴(retirement)’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은퇴란 생산활동을 중지하고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삶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은퇴는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퇴직’과 다르다. 50세 전후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은 퇴직과 은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에서 은퇴한다는 것은 본인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 일반화되면 직업관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직업을 1개가 아니라 2~4개씩 얼마든지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는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이 오히려 능력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첫 번째 직장생활이 순조롭지 않았다고 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은퇴할 준비가 안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은퇴 시기를 늦추어야 한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은퇴를 해버리면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짐은 물론, 본인도 아무 할 일 없이 보내는 노후생활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제2의 인생의 궤적은 본인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것이며, 본인의 결정에 따라 매우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 본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기부정 행위일 뿐이다. 은퇴 시기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선택해야 할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은퇴 시기를 결정하기 전에 사전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제2의 인생을 맞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은 넉넉한 노후생활 자금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만60세인 부부가 평균 기대수명(남 77.5세, 여 82.2세)까지 살 경우 필수 생계비와 최소한의 용돈만 쓴다 해도 약 2억6000만원이 필요하며 월 100만~200만원의 여윳돈을 갖고 살려면 약 5억~7억원의 노후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돈이 넉넉하게 있어야 친구들을 불러내 점심을 살 수 있고,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거나 보고 싶은 음악회도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아직 은퇴시점이 상당히 남아있는 사람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하여 목표한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챙겨야 할 것이 건강이다. 돈이 많다고 하여 노후생활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20년쯤 직장생활을 하다가 문득 거울 앞에 서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툭 불거진 배, 가늘어진 다리, 듬성듬성한 머리숱. “이 몸으로 한국인 평균수명이라는 남자 73세, 여자 80세까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만 간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그냥 오래 사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장수국으로 꼽히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장수 인구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2000만명을 넘어선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5%인 100만여명이 치매와 여러 노인병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 같은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방식을 바꾸어라

셋째는 제2의 인생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은퇴자는 직장에서 퇴직한 후 마음껏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가장 행복한 은퇴자들은 일을 계속하거나 자원봉사를 통해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노후생활이란 그동안 바쁘게만 살아왔던 인생을 조금 더 느리게 살고, 물질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돈을 조금 덜 버는 대신 조금 덜 쓰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기만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은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전에 남을 위해 사는 삶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후를 사회에 봉사하는 NGO(비정부단체) 활동으로 보내는 것도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 NGO 활동에는 환경보호 운동, 불우이웃돕기 운동, 장애자돕기 운동, 기부문화확산 운동, 중고품재활용 운동, 프라이버시지키기 운동, 후진국돕기 운동, 의료봉사 활동, 쓰레기줄이기 운동 등 여러 테마가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의 스타일에 잘 맞는 테마를 골라 봉사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넷째는 꾸준한 자기계발 노력이다.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선 젊었을 때에 노후를 대비한 재교육에 투자를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일을 계속 갖는 사람이 많다.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가져다주는 의미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후의 일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자기계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노후 설계에 속한다.

사람이 늙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고독에 대한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노후생활에 대한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돈과 건강,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노력이 더해질 때 노후생활은 풍성하고 보람찬 시간으로 메워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리 준비를 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은퇴생활의 열매를 딸 수 있다.

송양민 조선일보 논설위원 (ymsong@chosun.com)



은퇴 준비를 위한 리스트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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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
아내와 친구되기·자격증 따기 등 은퇴 때까지 해야 할 일 정한 뒤 당장 실천에 옮겨야

지난 9월 13일자 조선일보 경제면에 필자가 만든 10가지 은퇴준비 리스트를 소개한 뒤 많은 전화와 이메일을 받았다. 필자는 2001년 6월 4년간의 미국 주재원 생활을 마친 뒤 뉴욕발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외환위기 때 명퇴당한 선배들처럼 비참한 은퇴를 맞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은퇴까지 남은 10년 동안 준비할 일의 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만들었고 실천하고 있다.

필자의 준비 리스트를 보고 가장 많았던 질문은 “30대부터 은퇴준비를 해야 하느냐?”였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30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러면 은퇴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느냐고도 질문한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은퇴를 염두에 둔 생활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평상시 우리의 삶 자체가 은퇴 준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생직장을 꿈꿔왔지만 언제까지나 현장에서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많은 질문은 ‘평생친구 만들기’였다. 특히 아내와 친구되는 법에 대해 많이 물어왔다. 그게 쉽지 않다. 나의 소위 ‘아내와 친구되기 프로그램’이란 이렇다.

우선 아내와 친구되기 프로그램은 등산부터 시작됐다. 15도 경사만 있어도 산이라고 여기는 아내를 갖은 감언이설(?)로 설득해 수락산에 올랐다. 평소 넉넉잡고 3시간이면 충분한 수락산을 그날은 여섯시간 반이나 걸렸다. 등산이 좋은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한 걸음 가다 멈춰서서는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두 걸음 가다가는 내가 먼저 “힘들다”고도 했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비탈진 바위를 올라서면서 아내의 손을 잡아끌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뒤따라올 줄 알았던 아내가 저만치 서서 울고 있었다. 처녀 시절에 손을 잡아준 이래 오늘이 처음이란다. 다른 등산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와락 껴안아주었다. 결혼 이후 숱하게 많이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을 것도 같은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나이쯤 되면 그래서 노랫말처럼 ‘아내의 젖은 손’도 느껴지는가 보다. 그렇게 시작한 등산을 이제는 언제나 아내가 앞장선다.

다음으로 아내와의 대화다. 대화란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주제는 언제나 빈곤하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같은 책을 읽는 일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보면 나보다 한 뼘은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할 때도 많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다. 잘 들어주는 일도 대화의 주요 기법인 모양이다.

인간의 추측은 90%가 틀린다고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틀린다고 한다. 특히 아내는 이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하면서 물어보면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대화만이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함께 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함께 고민하면 해답을 오히려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손을 잡고 때로는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아내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남편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가진다.

아내의 소녀취향을 때로 자극시켜 주는 일도 중요하다. 여자는 ‘남편’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자’와 결혼한다. 그리고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따라서 보약 같은 사랑을 위해서는 아내의 소녀 같은 취향을 자극해주어야 한다. 늦게 들어가게 되면 알려주고 꽃도 사들고 가기도 하고 때론 혼자만 읽고 지나가기는 아까운 시를 암송해서 들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내를 소중하게 여긴다. 내가 소중한 만큼 그도 소중하다. 내가 하는 일이 소중한 만큼 아내가 하는 일 또한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나만의 프로그램이 필요

진심을 기울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진심이야말로 부부를 부부이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이다. 진심을 담아 ‘오늘 반찬이 유난히 맛있다’고 말해보라. 생각 이상으로 많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한편 부부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얼마 전 금혼식을 마친 금실 좋은 일본인 부부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50년을 한결같이 사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의 대답이 뜻밖이다. 할멈에게 평생동안 자신의 알몸을 한번도 보여준 일이 없었다고 했다. 남편이 샤워 중인 화장실에 불쑥 들어와서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보는 아내를 상상해보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아내는 나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끼리는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한솥밥을 먹으니 더욱 그런가보다. 어느 때부터인가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 부부가 서로 닮았다고들 한다. 나를 닮은 아내를 통해 나를 보게 된다. 내가 무심결에 하는 행동들을 아내도 같이 하는 것을 보면 때로 역겹기까지 한다.

세 번째로 많이 하는 질문은 “10가지만 하면 은퇴준비가 다 되느냐”고 묻는다. 은퇴준비에 모범답안은 없다. 그 열 가지는 어찌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사는 법이 다르듯 자신만의 은퇴 준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사회봉사활동도 그 하나에 들어갈 수 있겠다.

네 번째 많은 질문은 “자격증을 몇 개나 따야 하느냐”였다. 내 대답은 항상 “사람마다, 그리고 자격증마다 다르지요”이다. 가능하면 자신이 반평생을 몸담은 직업과 관련한 자격증이면 취득하기도 쉬울 것이다. 같은 직종에서 근무하는 이직보다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가지는 전직이 어려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오랫동안 일해온 그 익숙함에서 탈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숙련된 사람을 하나 잃게 되는 셈이다.

다섯 번째로 많은 질문은 “모임을 10개로 정리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모임을 정리한 것은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회비를 걷어서 적립해두는 모임이 부담이 간다는 얘기다. 한 달에 1만원씩 내는 모임이 한두 개가 아니라 30~40여개가 될 경우 수입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모임 비용으로 40만원씩을 지출한다면 정상적이라 하기 어렵다.

여섯 번째 많은 질문은 “집안일까지 남편이 하면 아내는 뭘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 혼자만 사는 게 가정이 아니다. 가사도 분담한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작은 일도 함께 하면 힘이 덜 들게 되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재미도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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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가지라도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시작하지 않는 일은 계획에 불과하다. 계획만으로는 노후준비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도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니라 오늘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이 지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10가지 은퇴 준비 리스트

1. 월 10만원씩 붓는 통장 매년 만들기

2. 자격증 10개 따기

3. 박사학위 도전

4. 평생친구 10명 만들기

5. 살림과 가전제품 조작 익히기

6. 못했던 일 10가지 하기(색소폰 등)

7. 국내산 100곳 오르기

8. 못 읽은 책 100권 보기

9. 책 10권 쓰기

10. 건강 챙기기(국선도 등)

조성권 우리은행 공보팀장(seongkcho@wooribank.com)




2010년, 퇴직대란(退職大亂) 시작된다

준비 늦을수록 고통도 크다
베이비붐 세대 816만명, 5년 후부터 정년 시작… 대량 퇴직사태 국가적인 문제로
정년은 빨라지고 수명은 길어지고, 40~50대 절반이 “은퇴준비 전혀 못했다”

현재 우리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에 대한 준비 없이 회사 정년(停年)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초 가족계획이 시작되기 전까지 출산율이 높았던 시기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현재 42~50세에 해당하는 816만명으로, 총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거대 인구집단이다.

국내 기업이 사규(社規)상으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정년인 55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가정하면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5년 후인 2010년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올 7월의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난, 실제로 직장을 그만둔 평균 나이가 53세라는 걸 고려하면 이르면 2008년부터 퇴직대란의 파도는 일렁이기 시작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45~46세(1959~1960년생)인 171만1000여명이 퇴직정년을 맞는 9~10년 뒤가 퇴직대란의 1차 파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45세 이후 세대는 1980년대 중반 삼저(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호황기에 국내 기업이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하던 시기에 입사했고, 각 기업에서 두터운 인력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인 ‘전쟁세대’보다 생활수준도 나아졌고, 콩나물 교실이긴 했지만 교육도 제대로 받았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이전 세대에 비해 늘어난 소득을 바탕으로 아파트·자동차·해외여행 등의 소비주체가 됐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집을 구입하던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거품이 생겼고, 1990년대엔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강남 아파트 붐도 일으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후에 대한 대비는 부족해 이들의 대량퇴직이 개인과 사회의 고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연령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데 비해 퇴직 전의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은 적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7600만명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 806만명도 각각 2006년, 2007년부터 60세를 맞아 은퇴를 시작하지만 그들은 은퇴하면서부터 공적 연금을 받는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퇴직 연령은 50대 초·중반이다.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60세까지 5~7년을 퇴직금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퇴직금도 연봉제와 1997년 도입된 퇴직금 중간정산 제도에 따라 미리 받아 생활비로 써버린 경우가 많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은퇴 설계 상담을 위해서 퇴직금 수령 여부를 조사해보면 월급의 일부로 생각하고 이미 써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작년 6월 현재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42%에 달했다.

정부는 55세부터 5년 이상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 제도를 올 12월 도입하지만 제도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려 베이비붐 세대가 당장 혜택을 받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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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국민연금만으론 풍족한 노후생활이 불가능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30년간 가입한 직장인이 평균 월 100만원 내외의 연금을 받게 되는데, 이는 60세 이상 도시근로자의 월 평균 지출액(올 3분기 기준) 182만여원의 55%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확산된 것이 1999년이므로 베이비붐 세대의 짧은 가입기간을 고려한다면 그나마 월 평균 수령액은 100만원에도 못미친다. 더구나 연금기금의 조기고갈을 막기 위해 1953~1956년생은 61세부터, 1957~1960년생은 62세부터 연금을 받게 되는 등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는 늦춰진다.

개별적인 노후대비를 위한 개인연금 상품은 1994년에 도입됐지만 노후대비용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절세 혜택을 이용한 고수익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급전이 필요하면 중도에 해지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처럼 퇴직금·국민연금·개인연금 등으로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으므로 50대 중반 직장에서 퇴직한 후엔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돈벌이를 위해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실질 은퇴연령은 67~68세이다. 일반인이 꿈꾸듯 퇴직 후에 전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여유로운 은퇴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춘식 한남대 교수(노인복지학회 회장)는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 때문에 사회활동에서 물러난다 ▲ 퇴직연령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을 할 시기여서 퇴직하자마자 돈을 더 쓴다 ▲ 평균수명이 길어져 좀처럼 죽지 않는다 등 세 가지 현상을 현대판 ‘인생의 3대 비극’이라고 부른다. 임 교수는 “퇴직자들이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교육도 못받고 준비없이 내팽개쳐지고 있다”며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 데 비해 퇴직은 빨라지고 있어 개인이 은퇴를 준비할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은퇴에 대한 준비는 미흡하다. 올 8월 조선일보와 미래에셋증권이 공동으로 실시한 ‘은퇴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은퇴 이후에 대비한 준비를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세계 10개국의 국민에게 던져본 결과 한국인은 44.1%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캐나다(96.5%)·중국(87%)·미국(82.5%) 등의 은퇴 준비율의 절반이었다. 한국은 일본(32%)·브라질(43.5%)과 함께 은퇴 준비를 가장 안 하는 국가 그룹에 속했다.

한국의 40~50대는 평균 3억9000만원의 노후비용(주택 제외)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노후 준비를 전혀 못했다’는 대답이 39.8%, ‘뒤늦게 40대에 들어 노후준비를 시작했다’는 대답이 39.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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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급격한 산업화로 바뀐 현실 속에서 괴리감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부모가 은퇴하면 자녀가 부모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질문에 47.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정작 ‘내가 은퇴하면 자녀가 내 생활을 책임지려 할 것이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26.9%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런 ‘의무 부양’과 ‘실제 부양’에 대한 태도 차이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것이다. 조사를 담당한 한국리서치는 “40~50대가 자신은 부모를 모시지만 자식에겐 기대를 하지 못하는 이중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임춘식 교수는 “과거 주요한 노후 재원은 자녀가 주는 용돈이었지만 이제는 연금 등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등 변화의 추세 속에 있다”며 “퇴직자들은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 계획하는 한편, 사회는 고연령층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현철 주간조선 기자(banghc@chosun.com)



돈도 없고 갈데도 없고… 절망의 한숨

준비 늦을수록 고통도 크다
모아둔 돈도 없이 퇴직금만 야금야금, 자존심 내세우다 재취업은 멀어지고

‘업무:예식장 주례, 근무지:결혼식 장소에 따라, 대상:남, 55~65세’. 지난해 말 직장에서 퇴직한 뒤 눈높이만 낮추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다시 일을 시작할 줄 알았던 김모(55)씨. 시간이 흐를수록 취업은 점점 멀게만 느껴지고 퇴직 1년이 다 돼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실버취업박람회장의 ‘예식장 주례 알선’ 부스 앞에서 이와 같은 광고 문안을 보니 “이 일이라면 할 수도 있겠다”는 은근한 희망이 일었다. 그러나 구인 광고판의 다음 줄에서 그만 눈길이 멎고 말았다. ‘자격조건:대머리 아닌, 키 167㎝ 이상’.

160㎝를 가까스로 넘긴 키에 훌쩍 벗겨진 이마. 김씨는 월급만으로 두 아이 키우랴 부모님 생활비 챙겨드리랴 퇴직 후를 생각해 돈을 모아둘 여력이라곤 없었다. 20대 후반인 두 자녀는 아직 결혼은커녕 취업도 하지 못해 네 식구가 많지 않은 퇴직금을 야금야금 꺼내 쓰고 있는 처지. 참다못한 아내도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김씨는 “은퇴나 퇴직을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살아온 젊은 날의 내가 한심하다”며 “아무 일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이렇게 못나 보일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은행지점장까지 지냈던 신모(56)씨. 정말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퇴직했다. 남들은 은행에 있었으니 알뜰살뜰 모아놨을 거라 말하지만 주식투자로 손해를 많이 봤고, 친구 보증을 선 것이 잘못돼 속이 텅텅 비어있다. 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 등록하고 교육을 받으며 상담해 보니 은행지점장 경험이 실제 일자리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씨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시절의 경력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체면이 문제다. 주유소의 주유원도 “드나드는 차량이 너무 많다”며 거절했고, 경비원 역시 사람이 붐비는 역세권이나 공공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출입이 드문 개인 소유 건물만을 고집하고 있다. 옆에서는 조금 더 절박하고 조급해지면 달라질 거라며 기다리는 중이다.

52세에 언론사 사무직에서 퇴직한 권모(59)씨는 현재 아파트 경비원이다. 그는 “퇴직 후 7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두 딸은 대학생이었고 모아놓은 돈 한푼 없이 달랑 집 한 채뿐이었다. 친지의 소개로 잠깐 학원강사도 해봤고, 작은 인쇄소에 나가 업무를 봐주기도 했다. ‘일은 곧 먹고살 돈’이었기에 조급해진 것은 권씨만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벌어보겠다며 친구 가게에 돈을 투자하고 일을 거들던 아내는 결국 투자한 돈도 건지지 못한 채 오히려 빚을 떠안았다. 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두 딸의 결혼으로 빚은 오히려 늘어 이번에는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겨앉았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아파트 경비원 권씨는 “그래도 시집간 딸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부부가 굶지 않고 사는 것이 다행”이라며 “언론사에 다닌다고 어깨에 힘깨나 주었던 시절이 꿈만 같다”고 쓸쓸하게 웃었다.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조모(여·63)씨. 고령자 적합 직종에는 ‘사서 보조원’이 엄연히 들어있지만 뽑는 곳이 없어 작은 개인회사에 취직을 했다. 포토샵까지 포함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조씨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종일 근무하는데도 점심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수당이나 보너스 없이 월급은 70만원. 업무능력과 업무량에 비하면 턱도 없는 금액이지만 ‘나이든 여자’가 일자리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조씨는 “젊은 사람도 이런 일자리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며 큰소리 치는 사장 앞에서 오늘도 마지못해 억지로 웃으며 일하고 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준비 없는 퇴직자들의 공통점. 퇴직 후 ‘좀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어영부영 지내다보면 보통 3~4개월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한 6개월쯤 지나 현실을 파악하고 취업전선에 나서는데 50대 후반에 퇴직한 사람은 이렇게 쉬는 때에 60대로 넘어가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꿀맛 같은 6개월의 휴식이었겠지만 취업상담이나 새 직장의 면접과정에서는 그 6개월이 빈칸으로 남아있다. 나이든 사람의 6개월은 젊은 사람의 3년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만큼 주위상황이 빨리 변한다는 뜻이다. 취업경력에서의 공백은 손해이므로 재취업을 할 생각이라면 그 기간 동안 컴퓨터를 배우는 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자기 경력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비치는 경우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업무지시를 하게 되는데, 나이 많은 부하 직원에게 지시가 아닌 부탁을 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선뜻 고용하려고 나서겠는가. 직장에서는 일을 하는 것이지 대접받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준비없는 퇴직자들은 정보 수집에 게으르다. 부족한 기회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느 세월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꾸준한 정보 수집이 취업으로 연결되는 수가 많다.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보는 노력이 가장 먼저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도 은퇴가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차리는 일이다.

유경 사회복지사·‘마흔에서 아흔까지’ 저자(treeappl@hanmail.net)



준비 없으면 오래살수록 고통

준비 늦을수록 고통도 크다
평균수명 77세로 11년 만에 5년 늘어... 수명 5년 연장 때 추가자금 1억2000만원 필요

최근 들어 ‘바이오 혁명을 한국의 과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바이오 혁명과 의학의 발전은 조만간 불치병을 치유하고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켜줄 가능성을 높게 할 것이다. 일찍이 천하의 절대권력을 가진 진시황도 구하지 못했던 불로장생의 약이 머지않아 대중적으로 판매될지도 모른다.

실제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수명(0세가 앞으로 더 살 수 있는 나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4년 12월에 발표된 2002년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은 전체 77.0세, 남자 73.4세, 여자 80.4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2001년과 비교하면 남자는 0.54년, 여자는 0.43년, 11년 전인 1991년과 비하면 남자는 5.64년, 여자는 4.52년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남녀간의 평균수명 차이는 2002년은 7.1년으로 2001년에 비해 0.1년, 1997년에 비해 0.5년 감소했고, 1985년의 8.4년 이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균수명과 함께 중요한 지표인 연령별 기대여명(앞으로 더 살 수 있는 나이)을 보면 2002년 현재 45세인 경우를 기준으로 할 때 남자 30.8년, 여자 36.9년으로 2001년의 남자 30.3년, 여자 36.6년에 비해 불과 1년 만에 남자 0.5년, 여자 0.3년이 늘어났다. 또한 특정사인을 제거할 경우 기대여명은 2002년 출생아를 기준으로 1~5년씩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각종 암의 영향을 제거하면 남자 5.0년, 여자 2.5년, 순환기계통 질환의 영향을 제거하면 남자 3.4년, 여자 2.9년, 각종 사고사의 영향을 제거하면 남자 2.6년, 여자 1.0년씩 수명이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우리는 수명연장이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환호해야 하는 뒤에는 ‘과연 생명연장으로 길어진 노후가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오래 산다는 것이 고통일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이 자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망의 위험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오래 사는 위험, 즉 ‘장수(長壽) 리스크’가 문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후를 건강하게 지내지 못한다면 생명의 연장은 고통의 연속일 것이며, 충분한 노후소득이 준비되지 못한 채 은퇴를 한다면 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후준비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은퇴 후 행복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노후준비는 크게 소득을 마련하는 과정, 건강을 유지·관리하는 과정, 인간적 유대를 유지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바이오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결과된 수명연장은 노후소득을 부족하게 할 것이므로 본래 예상하는 수준보다 다소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노후설계의 원리상 노후 필요자금은 매월의 생활비, 기대여명,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계산된다. 생활비와 물가상승률의 변동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기대여명이 길어지면 그만큼 노후 필요자금은 추가로 커지게 된다. 이는 앞서 보았듯이 매년 0.3~0.5년씩 기대여명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월 생활비가 20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수명이 5년만 연장되어도 1억2000만원의 추가자금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듯 수명연장에 따라 노후자금에 대한 갭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소득을 마련하는 과정을 일찍부터 시작하거나 수익률을 높이는 게 재무설계의 원리상 대안이다. 그런데 수익률을 높이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수반된다. 따라서 평균수익률을 얻는다고 가정할 경우 조금이라도 젊어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조기퇴직과 명예퇴직이 일상화된 현실에서는 중도에 노후준비가 방해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당장의 생활을 꾸릴 수 있는 근거조차 위협받고 있어 이조차도 쉽지는 않다. 따라서 수명연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수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는 추가적 대안이 필요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먼저 상속에 대한 생각을 바꿀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이를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녀 세대가 현실적으로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족한 자금을 보충하는 방법으로는 자신이 축적한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 최적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향후 다양한 정부 지원이 예상되는 역모기지 제도를 활용하여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충하는 것도 현실적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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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단계적 은퇴를 활용하는 것도 장수 리스크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으로 권장될 수 있다. 단계적 은퇴란 은퇴연령이 되어 경제활동과 갑자기 단절되지 않고 경제활동을 일정기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단계적 은퇴가 장려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고령자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획일적으로 은퇴를 강제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일할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연령을 기준으로 은퇴시키는 것은 훌륭한 인적 자원을 낭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소득을 얻고 있다고 하여 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축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정연령에 도달하여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기여해온 것에 대한 보상인 측면이 있으므로 지나치게 박탈할 경우 대부분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단계적 은퇴의 방법은 자신이 종사하던 업무를 파트타임 형태로 전환, 다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재취업, 창업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그런데 재취업과 창업에는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이를 은퇴 프로그램의 일부로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쨌든 스스로 변화하는 미래환경에 대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은퇴 연령 이후 원하는 경제활동을 적절히 할 수 있도록 자문하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죽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사고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은퇴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할 때 생명공학 혁명을 통해 얻어진 제2의 인생은 장수 리스크를 극복하고 다시 빛나기 시작할 것이며 행복해질 것이다.

오영수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장(ysoh@kidi.or.kr)


 
선진국에선 조기은퇴 막느라 고민

준비 늦을수록 고통도 크다
연금 타기 위해 정년도 되기 전 자발적 은퇴... 일하는 사람 줄어 공적자금 재정악화

은퇴는 우리나라나 서구 선진국이나 똑같이 고민하는 주제다. 하지만 연금 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과 연금 제도가 미비한 한국은 고민의 내용이 다르다. 선진국들이 인구의 고령화만큼이나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조기은퇴하는 것이다. 조기은퇴란 근로자들이 공식적인 정년 이전에 퇴직하고 경제활동을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서구사회의 조기은퇴 경향은 지난 4반세기 동안 겪어온 어떤 구조적인 변화보다 더 뚜렷하고 일관된 추이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추세가 가지고 있는 현상적인 아이러니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80세에 근접하고 있는 가운데 평균수명이 더 짧았던 과거보다 더 일찍 경제활동을 접고 은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노후에 ‘일’보다는 ‘여가’를 더 선호할 만큼 삶의 질이 높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더 직접적인 요인은 노후소득보장 장치인 연금제도가 잘 정비가 되어 있고 정년보다 몇 년 일찍 은퇴를 할 경우에도 연금의 급여수준에 있어서 크게 손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를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65세가 연금의 정년인데 62세에 은퇴를 하기로 결정하면 조기은퇴하는 햇수에 비례하여 연금수급액이 일정비율(약 5% 이내)로 줄어들게 되지만 수급할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게 되어 총수급액 자체는 변함이 없다.

서구에서의 공식적인 정년은 주로 공적연금 제도에서 규정하는 정식 연금수급 개시연령과 일치한다. 은퇴는 소득활동의 중단을 의미하고 따라서 은퇴 이후에는 공적·사적 연금제도에서 노후소득을 보장받게 된다. 역사적으로 20세기 후반의 거의 전기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적연금의 수급개시연령은 65세였으며, 따라서 노동시장에서의 은퇴 연령 또한 65세가 오랜 관행이었다. 반면 조기은퇴 경향에 따라 최근 실질 은퇴연령은 62~63세 정도다.

선진국의 조기은퇴 현상은 중·고령 근로자들이 50대 초반부터 비자발적으로 퇴직을 해야 하는 우리의 고용현실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서구는 대부분 자발적인 것이고, 우리의 경우는 반대로 대부분 비자발적인 조기퇴직이어서 문제의 성격과 본질이 전혀 다르다. 우리의 경우 조기퇴직을 하더라도 국민연금제도나 기업연금제도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강제퇴직 이후에도 재취업이나 자영업 등을 통하여 남은 생애기간 동안 스스로 노후소득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은퇴(소득활동의 중단) 연령은 서구보다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구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질 은퇴연령이 62~63세 전후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남성이 68세, 여성이 67세로 조사되어 멕시코(75세), 일본(70세), 아이슬란드(69세)에 이어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근로 생애가 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고령 근로자의 조기퇴직 경향은 이미 진행된 인구의 고령화로 인하여 가뜩이나 어려운 노인부양비 부담과 공적연금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고령자들이 정년까지 계속 소득활동을 해서 연금보험료를 부담해줘야 하지만 이들이 오히려 일찍 은퇴해서 거꾸로 연금의 수급자가 되기 때문에 연금의 재정수지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서구 국가들은 최근에는 조기퇴직의 인센티브를 없애거나 약화시킴으로써 근로자들이 적어도 정년까지는 남아서 일을 하도록 유인하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개혁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엔 OECD 국가 가운데서도 근로자들이 아주 늙은 나이까지 일을 계속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분류돼 인구고령화 시대에 서구 선진국이 부러워할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자의 실질 은퇴연령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 취업자 가운데 기업의 퇴직연령과는 상관없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고 노후소득보장 장치가 미흡하여 어쩔 수 없이 고연령까지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측면이 강하다. 참고로 비농업 부문만 보더라도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율이 OECD 평균이 14%, 일본이 12%인 데 비해 한국은 30%로 멕시코(31%)와 함께 두 배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고령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율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이 비율은 더 커지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도 미래에 자영업의 비율이 선진국 수준으로 줄고 노후소득보장 체계가 성숙하게 될 경우 고령자들의 실질 은퇴연령이 선진국에 수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선진국 정년후 취업률 10% 그쳐

그러나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는 기업에서의 실질 퇴직연령이 평균 55세, 국민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이 60세, 노동시장에서의 실질 은퇴연령이 평균 68세로 직장에서의 퇴직과 연금수급 그리고 은퇴연령 간에 간격이 커서 그만큼 각 단계별로 고령자에 대한 고용안정과 노후소득보장 장치의 강화가 중대한 사회적 숙제로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임금 근로자의 경우 평균 55세에 퇴직을 하여 68세에 최종적으로 소득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약 13년의 긴 기간을 제2의 근로생애를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고령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저소득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55~64세 사이의 고령 근로자 중에 남성의 경우 약 22%만이, 그리고 여성은 약 4%만이 정규직 임금근로자이고 나머지는 남성의 경우 대부분이 자영업자, 여성은 대부분이 무급 가족종사자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60~65세 공식 정년 연령을 전후로 하여 대부분이 은퇴를 하고 정년 이후의 계속 취업 비율은 10% 미만으로 아주 낮다. 이렇게 볼 때 서구 선진국의 경우 근로생애에서 은퇴생애로의 전환이 사회제도적으로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은퇴과정과 결과가 개별화되어 있어서 각 개인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서 노후복지의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서구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조기퇴직과 인구 고령화라는 공통의 문제에 당면하고 있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문제의 양상과 본질이 서로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퇴직-연금수급-은퇴시점 간에 간극을 줄이고 대부분의 고령자들이 짧게는 60세에서 65세의 정년까지는 활동적으로 소득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후에는 근로생애 동안의 소득활동에 힘입어 적정 수준의 연금소득을 통해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은퇴과정의 선진 제도화를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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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남 노동연구원 연구위원(phang@kli.re.kr)



남편·자식에 밀려 아내의 노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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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이 기다린다 | 여성
한국 여성, 남성보다 평균수명 7년 길어... 남편 사후 생계대책 미리 준비해야

서울 방배동 판자촌에 사는 오모(78)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자원봉사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여느 때는 방 안에 앉아 문 밖만 내다보다 때되면 혼자 밥 먹고 어두워지면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잠드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남편 죽고나서 있던 집 팔아 장남의 사업 밑천을 대줬더니, 글쎄 돈 다 까먹고 어디로 숨어버렸어. 아들 둘 더 있는데 다들 사는 형편이 어려워서 나타나지도 않고…, 늘그막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자원봉사자들에게 늘어놓는 할머니의 넋두리는 끝이 없다. 자식이 있단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도 오르지 못해 매달 10만원씩 지원해주는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할머니는 “젊었을 때 미리 미리 준비해 놓아라” “자식이고 남편이고 떠나면 그만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여성 노인의 무방비한 노후대책을 두고 위험경고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 건사에 정작 자신의 노후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 앞에 닥친 현실은 이미 위기 상태다.

충청남도 온양에 사는 최모(67) 할머니는 얼마 전 다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했다. 인근 지역 공사장에서 일당 2만원씩을 받고 잡역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3년 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죽은 뒤에 혼자 농사지을 여력이 안되서 땅을 팔았어요. 땅 판 돈이 제법 돼서 나 혼자 살기 걱정 없겠다 생각했는데, 아들 딸들이 ‘저희들 사는 형편 어려우니 도와달라’며 몇 번 손 벌려 조금씩 떼어주다 보니까 남는 게 없더라고요. 통장에 몇 푼 남은 거는 내가 더 늙어 일할 기력마저 없으면 쓰려고 자식에게 말 안했어요. 그래서 당장 먹고 살 돈 벌려고 공사장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최씨는 “동네에 집이 네 채 있는데 그 중 세 집에 할머니 혼자만 산다”며 “다들 공사장이나 가까운 공장에 나가 허드렛일 해서 생활비를 번다”고 말했다.

일할 기운도 없는 노인은 자식이 매달 보내주는 용돈에 생계를 맡겨야 한다. 실례로 대전시 노인 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성노인의 70.1%가 노후계획에 대한 준비가 전무한 상태이며 이들 중 한 달 용돈 10만원 이상인 노인은 45% 수준이고 나머지는 5만원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 달 용돈 1만원 이하 노인도 전체의 6.1%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교육비에 노후대책은 뒷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73세, 여자가 80세로 여자가 남자보다 7세나 더 오래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남편 사후의 노후 대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전업주부 이원미(36)씨는 자신의 노후대책에 대한 질문에 “남편이 개인연금도 들고 보험도 들어놨다. 집 있으니까 급하면 그거라도 팔아서 살면 된다”고 답했다. 만약 남편 사후에는 어떻게 할지를 물었을 때는 “아들 있으니까 같이 살겠다”며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잘 키운 아들 하나가 보험보다 낫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주부 김진선(48)씨는 “아들 있는 엄마들은 노후 걱정은 안해도 아들 장가보낼 때 집 사줄 걱정은 하는 것이 요즘 세태”라고 말했다. “저는 딸만 둘인데 ‘대학졸업한 다음에는 너희들 힘으로 살라’고 자주 말하고 있어요. 딸 덕 볼 생각은 아예 꿈도 안꾸니까 노후에 대한 걱정이 아무래도 아들 있는 엄마들보다는 큰 것 같아요.”

그렇다고 김씨의 사정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30대 중반에 현재 강동구에 있는 40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한 뒤 5년 동안 대출금 갚느라 돈 모을 새가 없었고 40대 들어서는 두 딸 교육비로 버는 돈이 모두 들어갔다. 현재 두 딸은 대학교 4학년과 2학년. 한 해에 두 딸 등록금으로 들어가는 돈만 2000만원 가까이 돼 여전히 수중에 쥔 목돈은 없다. 대학졸업 시키고 나면 그때부터 차근차근 모을 것이라고 하지만 남편이 무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소규모 무역 회사의 과장으로 일하는 여성 이모(43)씨는 혼자서 중학교 1학년인 딸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전 남편이 매달 보내오는 얼마간의 자녀교육비까지 합쳐 한 달 수입은 두 사람이 살기 부족한 액수가 아니지만 통장은 늘 마이너스다. “사교육비 부담이 커요. 돈 없다고 안 가르칠 수도 없고 남들 하는 만큼은 해주려고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더군요. 거기다 대출금도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갚고 있어 남는 게 없죠. 노후대책 시급한 건 알아도 당장 형편이 안 되는데 뭘 어떻게 하겠어요.”

이씨는 매달 10만원씩 나가는 개인연금과 건강보험 두 개가 자신의 노후보장책 전부라고 털어놨다. 나이 들어 국민연금 받을 것을 계산해보니 한 달 수입이 60만원 조금 넘게 나왔다. 20년 후 물가를 고려해 봤을 때 60만원의 가치는 지금의 절반 수준이라 살길이 막막하다. 그래도 딸자식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것이 그의 현재 목표다.

아직도 남편 이름으로 보험 드는 사람들

노후를 위해 황혼 재혼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혼자 살다가 생계 때문에 재혼을 하는 경우다.

분당에 사는 최모(62)씨는 2년 전 오랜 지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던 남편과 사별했다. 그러나 떠나간 남편에 대한 애도의 심정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생계가 최씨에겐 더 큰 문제였다. 살고 있던 조그만 단독주택을 팔아 전세로 집을 옮기고 병원비를 대던 터라 수입원이 전혀 없었다. 남편 사후에 월세로 거처를 옮겼지만 생활비는 금새 바닥났다. 결혼해서 살고 있는 딸이 있어도 사위 눈치가 보여 딸네 집에 들어갈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단다. 그러던 최씨는 얼마 전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69)씨와 재혼을 했다. “이 양반이 아들 장가보내야 하는데 홀아비 모시기 싫다고 여자 쪽에서 반대를 했다나봐요. 자식 때문에 재혼을 생각하던 중에 아는 사람 소개로 저를 만난 거죠. 그런데 제가 호적에 올라가면 이 사람 죽은 뒤에 유산이 저에게 상속된다고 아들이 반대해서 혼인신고도 못했어요.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산 목숨 끊을 수도 없고….” 최씨는 젊었을 때 남편만 믿고 의지한 것이 죄라고 자신만 원망할 뿐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재산을 부부 공동명의로 하거나 20대 후반부터 철저하게 노후대책을 위한 재테크에 열을 올리지만 이미 중년에 접어든 부부들은 재산을 남편 명의로만 해놓기 일쑤다.

ING생명 홍익지점의 최용욱 지점장은 “요즘 노후 대비 상품으로 변액보험 가입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아직도 상당수가 남편 이름으로 보험을 신청한다”며 “부부 중 더 오래 사는 쪽의 명의를 쓰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해도 중년 이상 연령층에서는 무조건 남편 이름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50% 이상”이라고 했다.

“40대 중반 넘어선 분이 노후를 위해 상담을 하러 많이 오십니다. 그러나 이미 시기적으로도 늦은 데다 대개 남자분 혼자 오거나 부부가 같이 오지 여자 혼자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내의 노후만 따로 떼어 걱정하는 것은 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최 지점장은 철저한 생애 계획을 세워놓지 않으면 노후의 문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하루라도 젊었을 때 노후대책을 세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이선정 자유기고가(sjlgh01@empal.com)



한창 돈 들어갈 나이에 나가라니…

제2의 인생이 기다린다 | 조기퇴직
일을 잃는 것은 삶의 버팀목을 읽는 것… 퇴직인력 활용 위한 정책 필요

“남자는 직업이 없으면 안되는 거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도 직업은 자기가 능력이 갖추어질 때까지는 해야 해요. 또 나이 먹은 사람은 나이 먹은 대로 가졌으면 좋겠고. 그 다음에 진짜 직업에도 손을 댈 수 없을 때는 그냥 인생은 황혼이지 종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남자 입장에서는 직업이지…. 지난 날보다 더 시간에 쫓기면서 더 몰두하면서 그렇게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직업에 더 투철하고…. 직장 일이 머릿속에 박혀있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아요.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하고 싶죠.”(남성 퇴직자 N씨)

“지금 나는 직장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가정적으로는 무남독녀예요. 그러니까 가장은 아니더라도 어떤 책임감이 강해가지고 끝까지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완전히 교육계에서 제도화시켜 버렸잖아, 62세로. 더 하고 싶지. 인간은 일하는 동물인 것 같아. 일을 안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여자인 나도 그래요. 그리고 평생 일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정말로 무력해져요, 안하니까.”(여성 퇴직자 K씨)

퇴직자의 퇴직 후 생활과 직업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다양한 직종에서 퇴직한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퇴직으로 인한 직업 상실은 남녀를 떠나 심리적 차원에서 무력감이나 상실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조기퇴직자들의 모습이 어떤지 그려보면 왜 이들이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충격을 받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직업지향적인 사회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퇴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개인에도, 가정에도 위기를 초래한다. 특히 현재 조기퇴직자에 해당되는 40~50대는 1950~1960년대에 태어나 우리 사회의 산업화 과정을 보면서 자란 세대로, 일·직업·성장·생산·승진 등 성장일변도의 근대화를 태어나면서 경험하고 내면화해왔다. 따라서 삶의 질, 인생의 의미 등 탈근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되었어도 이들에게는 여전히 개인보다는 조직, 그리고 삶의 질보다는 성장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생애 궤적을 살아온 집단이기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일터가 되는 직장은 단순히 일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버팀목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조직으로부터 비자발적이고 반강제적으로 퇴직해야 하는 경험은 수용하기 힘든 ‘생활 사건’이 된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상황에서는 비자발적인 조기퇴직자로 생활해야 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는 주된 일자리에서 기업의 평균 정년인 56세보다 젊은 평균 54.1세 때 퇴직하여 이후 14년간 제2의 근로생애기간(주로 자영업이나 임시직, 일용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임)을 거쳐 68.1세 때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이 평균 54.4세 때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평균 12.9년간 다른 일자리를 구해 제2의 근로생애기간을 보내고 평균 67.3세 때 노동활동을 그만둔다. 여성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시기가 평균 53.8세로 남성보다 빠르지만 제2의 근로생애기간이 평균 14.5년에 달해 노동시간 은퇴시기는 평균 68.3세로 남성보다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에 입각해서 통계청의 생명표(2002년)에 나타난 남성의 평균수명인 73.38세와 여성의 평균수명인 80.44세를 토대로 조기퇴직자의 중·장년기 이후의 삶의 기간을 그려보면 남성 조기퇴직자는 인생의 4분의 1을, 여성 조기퇴직자는 3분의 1에 해당되는 시기를 불안정한 제2의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퇴직자로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기퇴직자와 그의 가정 : 위기의 순간

조기퇴직하는 시기는 인간발달의 관점에서 보면 중·장년기로, 모든 면에서 정착과 안정을 얻고 인생의 성취를 완성하는 시기다. 따라서 조기퇴직은 성취감을 경험해야 하는 시기에 그러한 장(場)에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위기의 생활사건이 되며 당사자는 상실감이나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가족생활주기의 관점에서 보면 조기퇴직하는 시기는 가족확대기와 가족축소기의 과도기 상태로, 자녀교육비 자녀혼인준비 노후대책 등으로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지출은 많으나 조기퇴직으로 인해 소득이 없어지고 여러가지 부가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위기가 된다. 특히 1998년 하반기부터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이들의 생활기반이 상실되고 있는데 이는 곧 노인 빈곤 문제로도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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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직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조기퇴직자의 생활이 가정으로 이동하면서 가족구성원의 적응 문제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있게 되는데 이 시기의 특성이 가족에 소속되기보다는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퇴직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녀들은 가정생활보다는 사회생활에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두면서 바깥으로 나돌게 된다. 그리고 생애발달적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변화를 보면 남성은 좀더 여성적, 여성은 좀더 남성적 성향을 보이면서 다른 어떤 때보다 부부간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충분히 많을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배우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조기퇴직자들이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도 적응이 절대 쉬운 시기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조기퇴직에 대한 재인식

원래 조기퇴직은 일정 연령에 도달한 조직 구성원이 조기에 능력을 재개발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조직의 인사정체 현상 및 인건비 절감을 꾀하는 제도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근로자는 퇴직의 시기를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퇴직권리를 가지면서 퇴직을 인생의 재출발과 경력 확장의 기회로 인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조기퇴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강도 높은 경영혁신과 구조조정 등에 영향을 받아 대규모로 이뤄졌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의 정년 연령은 55세 전후로 서구에 비해 매우 낮아 정년이 곧 조기퇴직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조기퇴직은 대부분의 퇴직자가 경험해야 하는 생활사건일 뿐만 아니라 비자발적·반강제적 외압이 전제되는 실직의 의미가 크다. 그 시기도 이른 편이다. 따라서 조기퇴직이 새로운 인생을 여는 전이 사건이 되기보다는 고통의 시간이 되는 측면이 많다.

또한 조기퇴직에 해당하는 시기는 지출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다. 따라서 이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조기퇴직은 개인적으로 자아 정체감에 큰 상처를 주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가정의 입장에서 볼 때는 경제적인 위기를 가져오는 생활사건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노후 부양에 대한 가치가 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노인 빈곤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가 국가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노동력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은 퇴직 인력의 활용이다. 이제는 조기퇴직의 문제를 퇴직자 개인의 적응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접근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노동력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성미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교수 (eliza_s@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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