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산업을 일시에 무너뜨린 가격경쟁 전략, 무작정 뛰어들면 파멸로
자신과 경쟁사들의 한계비용을 과학적으로 따져보고 합리적인 대책 세워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볼 때마다 새로운 경영학 이슈를 보여주는 기업이 종종 있다. 블루클럽이 그랬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가치혁신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용실이라고 2주 전 소개했던 그 블루클럽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제점이 먼저 눈에 띄었다.
블루클럽의 커트 가격은 1998년 창사 이래 7년 동안 5천원 그대로다. 그동안 한국 소비자물가는 22%가 올랐는데 말이다. 자장면은 2천원에서 3천원으로, 500원이던 서울 시내 일반 버스요금은 800원으로 올랐다. 블루클럽 점장에게 얼른 물었다. 이래도 장사가 되느냐고. 푸념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어렵죠. 말씀도 마세요. 우리가 자리 잡은 다음에 미용실 사이에 가격 전쟁이 벌어졌어요. 요즘엔 1천원, 2천원에 커트해준다는 집도 나왔다니까요. 그러니 힘들더라도 값을 올릴 수가 없지요.”
최저가 전성시대, 할인의 마지노선은?
문득 블루클럽 창업 초기, 업계 죽이는 저가 정책이라며 목청 높이던 동네 미용실 주인이 떠올랐다. 툭하면 파산했다고 발표하는 미국 항공사들 생각도 났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 중인 한국 신문사들도 겹쳐졌다. 규모와 장소는 갖가지였지만 고생하는 이유가 모두 같았다. 문제는 요즘 할인점,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저가 신드롬’을 가져온, 가격경쟁(price competition) 전략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다.
가격경쟁은 기업이 가격 인하를 통해 경쟁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비극은 보통 가격 결정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평균비용(average cost)이 가격인하의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이 대표적 오해다. 정상적으로 경쟁하는 기업이 매기는 가격의 ‘마지노선’은 한계비용(marginal cost)이다.
비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흔히 원가라고 불리는 평균비용과 한계비용이다. 평균비용은 전체 비용의 단순평균이다. 컴퓨터 10대를 생산하는 데 1천만원이 들었다면, 평균비용은 100만원이다. 한계비용은 마지막 1대를 생산하기 위해 들어간 추가 비용이다. 컴퓨터 9대를 95만원 들여 공장에서 이미 생산하고 있는데 1대만 끼워서 추가 생산하는 데 5만원이 든다고 하면, 컴퓨터 생산의 평균비용은 10만원이지만 한계비용은 5만원이다.
△ 저가 항공사들이 미국 시장에 등장한 뒤 가격경쟁이 시작되면서 항공산업 전체가 흔들렸다. 마이애미 공항의 한 저가 항공사 카운터. (사진/ AP)
컴퓨터 1대의 한계비용이 5만원이라면, 1대에 5만원 이상만 받으면 당연히 남는 장사다. 10만원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경쟁이 심하다면 5만원은 웃돈이라고 여기며 포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기업을 하는 사람들조차 가격 결정 요인을 착각한다. 그리고 그 착각이 수많은 기업들이 선뜻 가격경쟁에 나서게 하고 출혈경쟁의 함정으로 몰아넣는다. 경쟁사들이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평균비용 아래로는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이다.
가격 결정의 기준이 되는 한계비용이 매우 낮은 산업의 경우에, 섣불리 시작한 가격경쟁이 산업 전체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제품 하나를 더 파는 데 추가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산업의 얘기다.
미용실의 경우를 보자. 미용실은 이미 임대료를 지불했다. 미용사 임금도 지급했고 빗과 가위도 준비되어 있다. 현재 하루 손님이 99명인데, 1명을 더 받는 데 드는 한계 비용은 얼마일까? 거의 없다고 보면 맞다. 그러니 마지막 손님에게는 단돈 100원만 받더라도 이익이다. 그래서 어느 한 미용실이 작심하고 가격을 내리기 시작해 본격적인 할인경쟁이 시작되면, 단돈 100원에 머리를 잘라주겠다고 나서는 미용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블루클럽은 가치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지만, 동시에 다른 경쟁자에게 가격경쟁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오래 지켜진 암묵적 고가 카르텔이 깨지면서 출혈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계비용 제로, 가격경쟁의 자살폭탄
이는 실제 미국 항공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항공사가 1명의 승객을 비행기에 태우는 데 드는 한계비용도 0에 가깝다. 어차피 비행기는 정해진 일정대로 운행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저가 항공사들이 미국 시장에 등장한 뒤, 대형사들까지 가격경쟁에 뛰어들면서 모두의 수익성이 악화했고 줄도산을 맞았다. 신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신문 1부 제작에는 인쇄비가 들지만, 거꾸로 광고수익도 들어온다. 두 가지를 합치면 1부 발행의 한계비용은 사실상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신문 구독자들에게 김치냉장고 같은 고가 경품이 주어졌던 이유가 여기 있다. 가격경쟁이 시작되자마자 모든 신문이 잠재적인 무가지가 돼버린 것이다.
가격경쟁은 신규 진입 기업이나 기술 혁신으로 비용 감축을 이뤄낸 기업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순식간에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 경쟁자들의 한계비용을 과학적으로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모두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살폭탄이기도 하다.
저가공세에 ‘헤어 디자이너’ 자존심마저…
“돈 많은 사람들은 고급 미용실로 가고, 서민들도 브랜드 따라 프랜차이즈 미용실로 몰려가고. 동네 미용실은 오는 사람이 없어요.”
서울 송파구에서 10여년째 ‘아씨머리방’을 운영하고 있는 미용사 이효숙(46)씨. 오전 8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손님의 머리카락를 자르고 지지고, 미용실을 쓸고 닦는 것까지 모두 혼자 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저도 직원을 2명까지 뒀어요. 처음 이 자리로 옮겨왔던 93년에만 해도 워낙 미용사 수요가 많아 직원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요새는….” 이씨의 말꼬리가 한숨과 겹치면서 흐릿해진다.
긴 불황의 그림자와 프랜차이즈 업체의 공세 속에서 그처럼 ‘미용기술’ 하나만 믿고 창업한 ‘나홀로’ 미용실 주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002년 8만6천여곳에 이르렀던 미용실 수는 2003년 한해에만 4천여곳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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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용 시장은 △5천원짜리 커트를 내세운 남성전문 미용실 체인 △파마·염색·코팅 등을 모두 2만원 균일가로 내세우는 미용실 체인 △강남·신촌 일대의 고급 미용실로 대별된다. 그 틈바구니에서 동네 미장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똑같은 값이라도 브랜드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를 좋아해요. 게다가 유행을 많이 따지지 않는 남자 손님들마저도 몇 천원 차이로 남성전용 미용실로 가니 답답하죠.” 여자 손님들이 많은 미장원을 쑥스러워하는 남자 고객들이 남성전용 체인 미장원으로 가면서 이씨네 가게도 남자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서민까지 프랜차이즈 찾아
월세 맞추기도 버거운데 손님 떨어질라 손해나도…
미용실 차리려는 젊은이에 잘 해보라는 말 못해
아씨머리방은 여자 커트는 7천원, 퍼머는 2만5천~3만원을 받는다. 10년 전 미용실을 시작할 때와 같은 값이다. “노동비며 재료비 등을 따지면 아무리 ‘아줌마’ 파마를 해도 3만5천원은 받아야 해요.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2만원을 받으니, 손해가 나도 손님 떨어지게는 못하잖아요.”
요새 같아선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데도 월세 55만원을 맞추기 버거울 지경이다. 하루 퍼머 손님이 10명을 넘기는 날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는 “고3·고1인 아들·딸에게 ‘학원을 관두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곤 한다”고 말했다. 창업할 때의 희망은 이미 날아가 버린듯 보이지 않고, 저가 공세에 ‘헤어 디자이너’의 자존심마저 위태롭다.
“남의 미용실에서 설움 받으며 세탁기도 없이 찬물에 수건 빨래 하고, 파마약에 손 터져가며 기술을 배웠지만 그래도 이 기술만 제대로 배우면 미용실 차려서 잘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새 미용기술 배워 자기 가게 차리겠다는 젊은이들 보면 ‘잘 해보라’고 격려만 할 수 없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끝>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