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동아일보
《“1982년 입사 이후 은퇴 같은 건 걱정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동기 중 3분의 2가 회 사를 떠났지요. 앞으로 3년을 버틸 수 있을까요.” 대기업 A사의 김모(50) 상무는 한국 ‘베이비붐(Baby-boom) 세대’의 맏형 격이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 그는 재수를 한 뒤 1975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10월 유신’의 여파로 1년의 절반은 휴강이었다. 그래도 군대 제대 후 1982년 여유 있게 대기업에 취직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동기 120명 중 1명만 오른다는 임원 자리를 따냈지만 퇴직 이후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동년배와 다름이 없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현장을 지켜 온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앞으로 3∼11년에 걸쳐 사회 전면에서 퇴장한다.
81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세대가 모두 물러나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나이 42∼50세인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바람 속에서 이미 상당수가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남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도 평균 53세경에는 은퇴할 전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나 경제적 풍요를 누린 미국 ‘베이비 부머’(1946∼1964년 출생)나 일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 출생)와는 달리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준비 안 된 퇴장’을 해야 한다.
신현암(申鉉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세대는 사회 제도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열매’를 얻진 못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 초반에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이들의 비극이었다. ‘정보화’ ‘세계화’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해 뒤따라온 세대에 등을 떠밀리면서 재기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부모를 오래 부양하고도 정작 자신들은 자녀들에게 노후를 기댈 수 없는 ‘낀 세대’이기 때문에 노후 생활의 불안정성이 높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대는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 상태가 좋다. 한국의 산업 구조도 고령층에 유리한 서비스업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어 이들의 퇴장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인구학연구실 조영태(曺永台) 교수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의 노년층보다 정치적 영향력과 발언권이 클 것이며 기업과 사회의 요구로 정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上>너무 빨리 온 ‘퇴장’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만 해도 이들의 경제적 미래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다. 고성장을 하던 기업들은 봉급을 늘려 줬고 인사 적체도 없었다. 늘어난 소득으로 베이비 붐 세대는 왕성한 소비력을 보이며 내수를 이끌어 왔다. 이미 일부 퇴장이 시작된 이들 세대가 본격적으로 떠나면 한국 사회는 소비 위축과 노동력 부족을 한꺼번에 겪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 베이비 부머 퇴장, 경제에 큰 파장
고도 성장기이던 1980년대에 이들 세대의 임금은 급등했다.
대기업 A사 김모(50) 상무의 1981년 초임 연봉은 480만 원 정도. 지금은 1억2000만 원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은 ‘명목소득’으로 25배.
1981년 월평균 28만953원이던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은 1991년 115만8608원으로 4배로 증가했다. 다시 10년 뒤인 2001년에는 262만5118원으로 뛰었다.
자산소득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기업 B전자업체의 정모(48) 부장은 1984년 결혼하면서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1800만 원짜리 집을 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집값은 갑절로 올랐고 이후 서울 강남지역으로 옮겨 네 번 이사를 다니며 아파트 평수는 46평으로 커졌고 집값은 9억 원대로 올랐다.
정 부장은 현재 고교 3학년 딸과 중학교 2학년 아들 사(私)교육비로만 매달 200만 원 이상을 쓴다. 매년 평균 500만 원 정도를 들여 가족 해외여행을 한다.
베이비 부머들은 이처럼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지출을 늘리며 한국의 내수를 떠받쳐 왔다.
하지만 이들의 노후가 편안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박덕배(朴德培) 연구위원은 “이들은 자산을 주로 부동산이나 예·적금으로 갖고 있어 저금리에 부동산 값이 안정되면 은퇴 후 소득이 급격히 줄 수 있다”며 “이들이 모두 은퇴하면 한국의 전체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숙련된 노동력 누가 메우나
베이비 붐 세대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인구 비중(16.8%)보다 훨씬 크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취업한 이들이 아직 기업에 남아 있다면 차장, 부장, 임원급들이다. 생산직도 고참 조장이나 반장급, 기사 등으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전체 임직원 5만3000명 중 베이비 붐 세대는 1만9000명으로 35.8%나 된다. 포스코도 전체 1만8888명 중 37.3%(7037명), 두산중공업은 4798명 중 41%(1971명)가 베이비 부머다.
이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특히 숙련 근로자 부족 현상이 우려된다.
통계청은 2016년을 정점으로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후 중(中)고령층이 경제활동에 적극 참가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두산중공업 인사팀 관계자는 “향후 꾸준히 줄어들 고참 근로자들의 숙련기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기업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일본은 ‘단카이(團塊) 세대’의 무더기 은퇴를 막기 위해 1998년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늘렸고,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더 늘려 65세까지 늦출 예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金廷翰) 연구위원은 “노동력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도 머잖아 ‘임금 피크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낀 세대’ 베이비 부머
‘과밀과 경쟁’의 세대.
베이비붐 세대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출산율을 근거로 1955∼1963년 출생한 인구집단을 베이비 붐 세대로 부르는 학자가 많다지만 가족계획이 1962년 시작된 점을 들어 1955∼1961년 출생자로 보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시대적으로 ‘산업화 세대’의 권위에 눌리고 ‘386세대’와 ‘인터넷 세대’의 기세에 밀린 ‘낀 세대’다. 절대빈곤에서 해방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 권위주의에 좌절하고 환란에 쓰러지고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등장한 박정희(朴正熙) 정권 때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적 경험은 유신독재.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반공’ ‘멸공’ 등 냉전 이데올로기와 ‘한국식 민주주의(유신)’ 교육을 받았다.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사회학) 교수는 “청년기에 긴급조치, 대중가요 방송 금지 등을 경험하면서 권력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1979년 10·26사태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전두환(全斗煥)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민주화 실패는 이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줬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될 무렵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또다시 군부정권의 통치를 겪어야 했기 때문.
40대로 접어드는 늦은 나이에 닥쳐온 정보화 혁명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시대의 가치관을 주도했던 데 반해 한국에서는 “노력만큼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함 교수는 “생애 주기상 자녀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데 비해 저축은 가장 적었던 이 세대야말로 외환위기 최대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 ‘콩나물 교실’에서 생존 법칙 체득
베이비 붐 세대들은 학창시절을 ‘콩나물 교실’에서 보냈다. 이들이 초등학생이던 1965∼1968년 초등학교의 학급당 인원은 65명으로 1960년(57.4명), 1978년(53명)에 비해 매우 많았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같은 세대 안에서 실력 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존 본능을 체득했다.
재수생 누적과 고액 과외가 부각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 세대는 자녀 교육비를 다른 세대보다 많이 지출한다.
이들은 경제개발에는 동의하지만 반(反)인권적 독재에는 반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혼재된 집단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일생 동안 심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굳이 가른다면 일정 부분 보수적 성향을 띤다는 것.
고려대 조대엽(趙大燁·사회학) 교수는 “이 세대는 일부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800만 베이비부머, 그들이 떠난다]<中>불안한 노후
《이상호(가명·47) 씨는 오늘도 서울 종로구의 한 요리학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달 말 캐나다로 떠나기에 앞서 한번이라도 더 ‘칼질’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이 씨가 회칼을 잡기 시작한 건 올해 2월부터. 캐나다 이민을 결정한 뒤 먹고살 길을 찾은 게 일식 요리사였다. 5년 전 현지로 조기 유학을 간 아들이 지난해 밴쿠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자 고생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작년 말 강원도 현장사무소로 발령 나자 회사에 더 있기가 어려워졌다.
가진 건 아파트 한 채와 상가 등 부동산 자산 8억여 원. 사업을 하자니 돈이 모자라고 아무 일이나 하고 살자니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캐나다에 있는 아내와 아들이 “이럴 바엔 여기서 함께 살자”고 했을 때 처음엔 “속 모르는 소리”라고 쏴붙였다. 쉰이 다 된 나이에, 말까지 안 통하는 곳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남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이민을 결정했다.
“지금도 이 결정이 옳은지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고민합니다. 경력이 없기 때문에 현지 일식집에서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받을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베이비 부머들의 가장 큰 고민은 퇴직 후 먹고살 길이 없다는 것. 어느 세대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정작 노후 대비는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영어에 약하고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 자기만의 전문 영역이 없으면 재취업이 어렵다는 것도 베이비 부머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 자녀 교육비 쏟아 붓느라 재산 못 모아
통계청의 올해 2분기(4∼6월) ‘근로자 가구 월평균 가계수지’에 따르면 베이비 부머에 속하는 40∼44세(가구주 기준)의 소득은 334만 원, 45∼49세는 332만 원으로 어느 연령대보다 높다.
하지만 금융·부동산 자산 증감액을 감안한 총수입은 40∼44세가 698만 원, 45∼49세는 687만 원으로 35∼39세의 703만 원보다 오히려 낮다.
베이비 부머들의 월급이나 사업 소득은 이후 세대보다 높지만 자산 축적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울산대 허은정(許恩禎·가정복지학) 교수는 “베이비 부머들의 자산 축적이 부실한 이유는 한창 일할 시기에 외환위기를 맞은 데다 자녀 교육비 지출이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 아파트 붐을 일으킨 세대라는 점에서 교육비에 눌려 자산을 축적할 여유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
실제로 베이비 부머들의 항목별 소비 비중을 조사한 결과 전체 지출의 13.9%가 교육비로 쓰였다. 식료품과 교통·통신 항목에 이어 3번째다. 반면 허 교수가 X세대로 분류한 1965∼1975년생의 교육비 지출 비중은 6.3%에 불과했다.
X세대의 자녀들이 아직 어려 교육비가 덜 든다는 점도 있지만 광복 후 처음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베이비 부머들이 자녀 교육에 상대적으로 더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허 교수의 설명이다.
○ “회사 오래 붙어 있는게 노후대책”
베이비붐 세대는 재취업 경쟁력도 취약하다.
취업 정보업체인 ‘리크루트’에 등록한 250만 명 가운데 구체적인 이력서가 있는 172만여 명을 분석한 결과 40대(8만9333명)의 49.5%는 현재 직장(비정규직 포함)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중 정보기술(IT) 관련 자격증 소지자는 1.2%로 30대(7%)에 크게 뒤진다.
토익(TOEIC) 점수도 40대는 평균 665점으로 50대(659점)와 별 차이가 없다. 20대와 30대는 700점이 넘는다.
일정한 노후 소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삼성생명의 연금 가입자(상품명 삼성연금) 가운데 40대는 전체의 32.5%로 30대(33.2%)보다도 낮다. 이를 더욱 세분하면 30대 초반 가입자가 가장 많고 이후부터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작 자신의 노후는 돌보지 않은 셈이다.
작년 말 대기업 이사가 된 정모(45) 씨는 “부장 때까지 모은 돈이 전세금 3억 원과 현금 1억 원 정도”라며 “회사에서 민간 보험사에 넣어주는 연금이 있지만 월 불입액이 5만 원에 불과해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실적인 노후 대책이라고는 회사에 오래 붙어 있는 것뿐”이라며 “친구들끼리 모이면 ‘오래 살면 걱정’이라는 푸념이 많다”고 덧붙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45세의 기대 여명(더 살 수 있는 나이·2002년 기준)은 33.99년으로 8년 뒤인 53세에 은퇴하더라도 약 26년간 노후 생활을 해야 한다.
미국계 헤드헌팅 회사인 MRI월드와이드의 이중용(李仲龍) 이사는 “베이비 부머들은 다른 세대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만큼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업무 적응도 빠르다”면서 “하지만 나이를 우선하는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재취업이 어려운 게 아쉽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컴퓨터라도 제대로 배워둘걸…”▼
■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
“보고서가 엉망이라면서 상사가 제 앞에서 200쪽이나 되는 보고서를 찢어버렸습니다. 그걸 일일이 다시 타자기로 치느라 뜬눈으로 며칠 밤을 지새웠죠.”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현재 모 기업 팀장을 맡고 있는 정모(45) 씨는 영락없는 ‘아날로그 세대’다.
1986년 입사한 그는 대학 시절 컴퓨터는커녕 워드프로세서도 만져보지 못했다. 타자기를 두드리고 틀리면 하얀 수정액을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회사에서 타자를 치는 여직원은 항상 ‘여왕’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그는 입사 10년 차였던 1995년 까마득한 후배가 현란한 그래픽을 동원해 컴퓨터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정 씨는 “너무나 신기해 몇 번이나 술을 사주면서 후배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고 말했다.
베이비 부머들은 ‘최후의 아날로그 세대’다. 정보화 시대에서 퇴출도 빨리 당하고 퇴직 후에도 재취업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 역사를 보면 드러난다.
1980년대 후반 처음으로 국민보급형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베이비붐 세대의 나이는 30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다음이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이 유행하고 곧이어 초고속 인터넷이 나왔을 때 이들은 회사에서 팀장, 차장급으로 올라섰다. 학교에서부터 컴퓨터를 익힌 후배들과 경쟁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화 격차)의 연령 경계점을 베이비붐 세대와 386세대 사이로 보고 있다.
고려대 박길성(朴吉聲·사회학) 교수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났을 때의 중압감은 일반적 현상이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386세대가 빠르게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면서 정보화에 대한 강박관념을 더 갖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1만75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령대별 인터넷 이용률은 6∼19세가 96.2%로 가장 높았고, 20대(95.3%), 30대(88.1%) 등의 순이었다. 반면 40대와 5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각각 62.5%, 31.1%에 머물렀다.
그러나 베이비 부머들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고정현(高定鉉) 정책기획팀장은 “베이비 부머들은 비록 직장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지만 정보화의 이로움을 충분히 알고 있는 세대”라며 “이들이 노인이 되면 현재 한국의 세대 간 정보화 격차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800만 베이비부머, 그들이 떠난다]<下>美-日에선
《“베이비 부머, 그들을 사랑하라(Love Those Boomers).”
최근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내년에 처음으로 환갑을 맞는 ‘베이비 붐 세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기사를 실었다.
베이비 붐 세대의 무더기 퇴장은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는 노동력 부족과 연금 부담 확대 같은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베이비 부머들이 한국보다 한발 앞서 은퇴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 시대를 바꾼 미일의 베이비 부머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59세 동갑내기다. 1946년 태어난 미국 베이비 붐 세대의 ‘맏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부터 미국의 산부인과 병원들은 산모와 신생아를 수용할 병상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이때부터 1964년까지 태어난 베이비 부머들의 현재 나이는 41∼59세. 약 7800만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6.9%를 차지한다.
이 세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실 부족 현상이 뒤따랐고 결혼할 때쯤인 1980년대에 주택시장은 급속히 팽창했다. 1980년대 초 1,000을 맴돌던 다우존스지수가 20여 년간 10,000 선까지 치솟은 것도 이들 세대가 여유자금을 주식시장에 퍼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 증권가의 일반적 분석이다.
1947∼1949년 3년 동안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부머는 ‘덩어리’란 뜻의 ‘단카이(團塊) 세대’로 불린다. 806만 명이나 되는 이 세대가 유별나게 자기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이 196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자 일본 대학에서는 학생운동이 격화됐다. 하지만 경제발전과 함께 운동권의 주축은 사회에서 격리됐고 나머지는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사회에 진출해 일본 경제성장의 주역을 담당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는 ‘학생운동’의 주도세력으로 일본을 변화시킨 주체”라고 소개했다.
○ 베이비 부머에 미래 경제 달렸다
미국의 경제전문 조사회사인 ‘콘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7년 후 미국의 55∼64세 근로자는 2500만 명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51%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공무원과 전력회사 근로자는 절반 이상이 5년 내에 은퇴 연령(64세)에 도달하게 돼 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 적지 않은 사회적 충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단카이 세대가 모두 퇴직하는 2009년에는 총 131만 명의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 사회보장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증가해 국가 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일본인구문제연구소는 일본의 사회보장비 지출이 2005년 91조 엔(국민소득 대비 24%)에서 2025년 152조 엔(국민소득 대비 29%)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비 부머들의 ‘무더기 퇴장’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국과 일본 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은 55세였던 정년을 1998년 60세로 늘린 데 이어 내년부터 2013년까지 다시 65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재정 악화를 피하기 위해 연금지급 연령도 60세에서 65세로 높여 가고 있다.
미국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근로자의 ‘연령차별 폐지’를 법제화했다. 기업들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고령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문형표(文亨杓)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선진국 경제는 은퇴한 베이비 부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베이비 부머 은퇴로 소비패턴 변화
노후 경제력이 우려되는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과는 달리 선진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큰 ‘소비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현재 미국 연간 전체 소비의 절반인 2조 달러(약 2000조 원)를 쓴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 역시 앞으로 챙길 퇴직금을 포함해 179조 엔(약 1611조 원)에 이르는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대중서적 출판업체인 펭귄은 시력이 나빠진 베이비 부머를 위해 글자 크기를 키운 문고판 서적을 내놓아 대박을 터뜨렸다.
명품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할리 데이비슨사는 50대 베이비 부머를 새로운 주 고객층으로 보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성공도 50대에 들어선 베이비 부머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미국 경제계의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李地平)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향후 10년간 세계적으로 소비 패턴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한국은 선진국 베이비 붐 세대의 취향과 움직임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베이비 부머 붙잡아라” 日기업 고용틀 바꾼다▼
《일본에서는 현재 56∼58세인 ‘단카이 세대’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60세 정년을 맞는다. 단카이 세대는 ‘회사 인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삶의 최대 가치를 일과 조직에 두고 살아온 세대다. 일본 사회는 이들의 무더기 퇴장으로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등 고령자에 대한 고용 확대 제도를 앞 다퉈 도입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나이를 정점으로 퇴직할 때까지 근로자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거나 고정하는 제도. 일본에서는 정년 후 재계약해 임금을 이전보다 덜 받는 방식으로 계속 일하는 사례가 많다.
일본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자동차는 숙련 근로자의 퇴직에 따른 기술력 저하를 막기 위해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하고 회사에 필요한 인력은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4년 4월부터 고용연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산요전기의 정년은 60세. 직원들은 55세가 됐을 때 60세에 퇴직할 것인지, 아니면 최고 65세까지 연장 근무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60세 이후에도 근무를 원하면 55세 때의 임금을 정점으로 임금이 점차 줄어든다.
다른 기업들도 일본이 자랑해 온 숙련 기술 인력의 퇴장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01년 1월부터 베이비 붐 세대 숙련 기능공을 강사로 하는 ‘기능학원’을 회사 내에 설립해 입사한 지 9∼13년 된 중견 기능공을 교육하고 있다.
후지엔지니어링은 고령자와 청년층을 섞어 6명 단위로 팀을 구성해 제조 현장에서 수십 년간 쌓인 ‘암묵적 지식’을 청년 근로자들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이 2003년 7월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후 금융회사와 공사(公社)를 중심으로 20여 개의 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도 베이비 부머의 퇴장과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내년부터 노사 합의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에게 깎인 임금의 최고 50%까지 직접 보전해 줄 계획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동배(金東培) 연구위원은 “한국도 베이비 부머의 퇴장으로 지금도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인력난이 올 수 있다”면서 “베이비 붐 세대의 나이가 많아져도 계속 고용하기 위한 방안을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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