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계레
성명서나 이벤트 위주 되풀이…상근자 절반 가까이 위기상황 인식
#1 “지금 시민단체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 있습니다. 과거 화려했던 시기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시민단체에 여전히 거품이 많습니다.”(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2 “시민단체가 정말 위기인가요? 시민운동의 위기는 찬란한 성과를 이뤘던 90년대에 견줘 상대적 위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앞으로의 50년을 두고 고민하고 싸워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한겨레>가 지난 7~8일 전국의 시민단체 30곳 상근 활동가 1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8.6%가 현재 상황을 시민운동의 위기로 보고 있었다. 위기가 아니라고 답한 이는 24.3%에 그쳤다.
위기로 보든 아니든, 시민운동이 중대한 한계와 도전에 부닥쳤다는 분석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의 ‘낙천·낙선 운동’을 정점으로 시민운동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민운동이 갈 곳 모를 어려움에 놓인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사회가 변했다.
1980~90년대 시민운동이 선도해 온 반부패·인권·여성·노동 등의 의제들이 2000년대 이후 상당 부분 제도적 틀 안으로 흡수됐다. 이른바 ‘일감’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김유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의 말대로 “시민운동에서 다루던 영역을 정당정치가 가져가고 관련 국가기관도 생기는 등 상황이 변한 것”이다.
시민운동 초기에 풍부했던 ‘전문가 그룹’도 상당 부분 맥이 빠진 상태다.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교수나 변호사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아니지만 ‘열정’은 많이 식었다는 것이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다른 매체를 통한 표현 기회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의제뿐만 아니라 인력도 제도권으로 많이 흡수된 것이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처장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개혁, 부패방지법, 공직자윤리법 등과 같은 의제들이 제도권으로 흡수됐다”며 “지금은 모색기이고,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방향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태의연한 운동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다.
시민운동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20년째 △성명서 발표 △집회 △농성 △법안 제출 따위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성명서 내는 식의 관행은 더 통하지 않는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며 “숨겨진 정보를 찾아 시민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의 경우 지난해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벌이면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관련 자료를 상세히 분석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언론에 한 줄 나오면 된다는 식의 ‘이벤트’ 중심 운동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진다. 지난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날마다 촛불집회를 준비했다는 최준영 문화연대 팀장은 “10명이 행사를 준비했는데 시민은 5명만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며 “실망감과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모색하고, 인터넷을 활용해 시민들과 만나는 지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김경미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밑에서부터 시민운동이 전개되려면 풀뿌리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운동이 중앙집권화돼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조한혜진 환경운동연합 간사는 “온라인 매체 등 시민과 쌍방향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꾼이 빠져나간다.
상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5%는 ‘시민운동을 그만둘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직을 하겠다’는 응답자도 34.2%나 됐다. 경실련의 경우, 2000년께 90여명이던 상근자가 지금은 3분의 1인 3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실련 쪽은 인원을 충원하기보다 급여를 올리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활동가의 한 달 급여가 100만원에 못미치는 단체가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박영선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은 한 토론회에서 시민운동의 발목을 잡는 원인의 하나로 ‘허약한 내적 자원’을 꼽았다. “낮은 임금이 활동가들의 중도 하차를 가져와 대부분의 시민운동 조직에서 ‘허리’가 약한 이른바 유(U)자형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윤철한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부장은 “시민운동 지도자와 신참 활동가 사이에 중간 세대가 엷어 조직 운영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이어서,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철재 서울환경연합 초록정책국장은 “요즘은 시민운동을 한다고 하면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며 “전문성이 떨어지고 의제 설정을 탄력적으로 못하는데다 전망이 안 보이는 고민에 빠져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활동가 이지은씨의 경우
지난 2004년부터 평화와 국제연대 활동을 펴온 <경계를 넘어>의 이지은(28) 간사는 낮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저녁에는 학원 강사로 일한다. 상근자가 3명뿐인데다 단체에서 받는 급여는 교통비 5만원이 전부여서 생계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의 억압받는 부족 등 연대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힘에 부치는 형편이다. 단체에 한달 회원비로 모이는 돈이 50만원 안팎일 정도로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힘들어요.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찮아요. 조금씩 회원도 늘고 있어 희망적이고, 중앙에 있는 큰 단체와는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려고 해요.”
힘겨운 생활과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으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이씨의 얼굴은 마치 시민운동의 오늘치 기상도 같다.
[1987년, 그뒤 20년] 시민운동 어디로 : ② 바뀌는 얼굴들
전문성 높이려 대학원 다녀…지원 제한적, 결정 쉽잖아
시민운동 현장경험 풍부한 1.5세대가 주류로
시민운동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의 사무총장·처장 등 실무책임자가 대부분 바뀌었다. 이른바 시민운동 1세대에서 1.5세대 또는 2세대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장을 뛰는 활동가들은 이들과도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가 채워가고 있다.
‘87년 6월’ 경험안한 활동가가 허리 떠받쳐
국제연대 관심속 평화·인권·생태문제 민감
뿌리=시민운동의 뿌리는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는 크게 세 그룹이 모여 출발했다.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한 인권변호사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와 같은 소장학자들, 김기식 전 처장 등 학생운동가들이다. 환경운동연합은 공해추방운동연합 등에서 활동했던 최열 전 대표와 자연대·공과대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안병옥 사무총장도 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했다. 녹색연합은 김제남·김혜애 전 사무처장 등 학생운동 출신과 장원 전 사무총장을 비롯한 연구소 출신 등이 대안문명 운동의 하나로 녹색생명운동을 주장하며 탄생했다. 경실련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운동한다는 큰틀 아래서 ‘실사구시’와 ‘탈이념’을 내세우는 기독교학생운동 그룹을 주축으로 모였다. 다른 단체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화라는 대의에 공감하던 기독교계 인사들이 주로 모였다.
이인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은 학생운동 세력이 초창기 시민운동에 뛰어든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문제를 종합적이고 역사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들이 결국 사회의 부조리를 짚어내고 해결하는 데 큰 몫을 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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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열 환경재단 대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앞줄 왼쪽부터)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들이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낙천·낙선운동을 위한 총선시민연대 발족을 알리고 있다. 이들 1세대 시민운동가들이 한발 물러선 시민운동의 자리는 이제 새로운 세대가 채워나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1.5세대=이른바 시민운동 1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여전히 시민운동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시민의 삶과 밀착한 ‘싱크탱크’(두뇌집단)를 운영하고 있고,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활동가들의 전문성 향상 등 측면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뒤를 잇는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총장 등은 이른바 2세대 또는 1.5세대로 불린다. 시민운동 1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바탕 위에서 비교적 안정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새로운 지도자들은 10년 남짓 쌓은 현장 실무능력을 바탕으로 단체를 이끌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87년 세대를 넘어=젊은 활동가들의 세대교체는 더욱 도드라진다. 광주 민주화 운동과 87년 6월 항쟁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연대처럼 ‘87년 6월’ 이후 대학생이 된 이들로만 활동가가 구성된 단체도 있다. 특히 선용진 문화연대 사무처장, 오광진 서울흥사단 사무국장 등 91학번 중심의 활동가 30여명은 ‘시민사회 청년활동가 모임’을 통해 시민운동의 든든한 허리 노릇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평화와 인권, 생태문제 등에 더욱 민감하고, 국제 연대에도 관심이 많은 특징이 있다.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은 이들 세대에 대해 “통통 튀고 신선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선배들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저 여느 직장인처럼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많다”고 평한다. 개성이나 새로운 인식을 보인다는 긍정적인 면 못지않게 선배들의 열정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시민운동 내부의 세대교체 흐름이 시민운동의 미래를 어떻게 빚어낼지 주목된다.
실천 바탕 이론 접목 ‘열공’하는 활동가들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은 지난해부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정치통일 전공)을 밟고 있다. 그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단체의 정욱식 대표도 지난해 8월부터 미국 조지워싱턴대에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면서 한반도 평화 체제와 북-미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또 영국과 미국에서 평화학과 국제협력 문제를 공부하고 있는 활동가들도 있다.
박용신 환경정의 협동사무처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다. 1995년 경실련을 시작으로 환경운동연합을 거쳐 지금까지 13년째 시민단체에서 일해온 박 처장은, “행정기관의 정책 수립 과정을 공부해 운동의 자양분으로 삼고 싶었다”며 “정교한 이론을 통해 행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정부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 활동가들에게 공부가 ‘필수’로 자리잡고 있다. 시민운동의 전문화 필요성과 재충전을 원하는 활동가들의 요구가 서로 맞물린 현상이다.
환경재단은 2003년부터 국내 15개 대학원과 제휴해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10명 안팎의 활동가들이 장학생으로 선정돼 공부를 하고 있으며, 경쟁률은 3 대 1 정도다. 아름다운재단도 2002년부터 활동가와 시민단체에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280여명이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지원이 제한적이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쉽게 공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 설문조사 결과처럼 활동가들의 한달 평균 급여가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탓이다. 이준규 실장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기 이전에 장학금 등을 받아 모아둔 돈을 지금 쓰고 있다”며 “부모님과 형제들, 특히 아내의 고생이 많다”고 말한다.
박용신 처장 역시 시민운동을 4~5년 한 뒤부터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실제론 13년이 걸렸다. 안식년을 얻어 1년이라는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여섯달은 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버겁다. 그는 “학비가 한 학기에 600만원이어서 장학금을 못 타면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시민운동 위기 원인? “사회 보수화” 46%
〈한겨레〉가 지난 7~8일 전국의 시민단체 30곳 114명의 상근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절반 가량이 현재 상황을 시민운동의 위기라고 답했다. 그 원인(복수 응답)으로는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46.0%) △현안에 대한 시민단체의 대응력 부족(21.4%) △시민들에 대한 시민단체의 영향력 축소(19.8%) 등을 꼽았다.
시민운동의 방식과 관련해, 집회·시위 방식에는 11.4%만이 ‘만족한다’는 답을 한 반면, 29.8%가 ‘불만족’, 52.6%가 ‘보통’이라는 답을 내놨다. 논평·성명 발표, 기자회견 등 대언론 활동은 26.3%의 활동가들이 ‘만족한다’고 답했고 ‘만족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28.1%였다. 회원모집 방식에는 35.1%가, 재정충당 방식에 대해선 47.3%가 ‘불만족’ 의견이었다.
활동방식에는 불만이 많았지만, 시민운동의 전망은 밝게 보았다. 38.6%의 활동가들이 시민운동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았으며, 낮아질 것이라는 의견은 15.8%에 그쳤다. 대중적 영향력도 36.0%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고, 낮아질 것으로 보는 이들은 28.1%로 나타났다.
한편, 설문조사에 참여한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들의 한달 평균 급여는 97만7천원으로 나타났다. 평균 근무연수는 4.15년,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9.08시간이었다. 존경하는 시민운동가로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11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김민영 처장, 박병옥 총장, 안병옥 총장, 오관영 처장, 최승국 처장
시민단체 새내기 리더에게 듣는 ‘앞으로는…’
앞으로 시민운동에 지난 2000년 전후로 보였던 폭발적 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럼에도 지난 시기 시민단체들이 이뤄냈던 찬란한 성과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때문에 앞으로 단체를 이끌어 나갈 ‘새내기 리더’들은 책임감과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에게 앞세대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활동 방향은 무엇인지 등을 들어봤다.
김민영(40) 참여연대 사무처장=“참여연대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밖으로는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양극화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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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
박병옥(44) 경실련 사무총장=경실련은 시민단체로서 최고와 최악을 두루 경험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전과 다른 이야기를 선명하게 드러내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명서 내는 식의 관행은 더이상 안 통한다. 숨겨진 정보를 찾아 시민에게 알리는 운동이 돼야 한다. 요즘 우리가 내는 자료에 숫자가 그토록 많은 이유다. 또 시민단체가 이제는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엔지오의 사회적 책임 운동’을 시작했다. 역량에 맞는 이슈를 다뤄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한다. 연대 활동도 예전처럼 이름만 걸치는 식으론 안 하고 전문성을 살려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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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
오관영(44)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과거에는 스타의 리더십에 의존했다면 요즘은 집단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흐름이다. 사무처가 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시스템이 만들어진 셈이다. 우리는 앞세대와는 다른 가치 지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틀의 합리성을 갖춰가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보다는 대안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성명·논평 같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들의 고민을 드러내려고 한다. 단체 내부에서 있게 마련인 차이를 그대로 전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운동의 진정성을 심어줄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한겨레>와 했던 ‘대안생활백서’ 기획처럼 생활과 운동을 결부시키는 것을 찾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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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 |
[1987년, 그뒤 20년] 시민운동 어디로 ③ 새로운 길을 찾아서
“주민 곁으로” 삼삼오오…“뭉치자” 통합 실험
시민운동이 곳곳에서 새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시민과 일상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풀뿌리 운동, 시민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모으려는 노력, 유력한 단체들의 통합…. 이런 모색들이 한계에 부닥친 시민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육아·먹거리 등 생활밀착형 운동 호응 커
연구소 개념 ‘싱크탱크’로 특화 움직임도
#1 지난 2001년 3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사는 황아무개씨는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육아에 어려움을 느끼는 어머니들이 모여 ‘품앗이 육아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2살·4살배기를 기르면서 피부로 느낀 아이디어였다.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로부터 호응이 컸다. 2년여 만에 품앗이팀은 6개로 늘었다.
어머니들은 품앗이를 하면서 쌓은 경험을 꼼꼼히 기록해 〈기적의 품앗이 학습법〉이란 책을 펴냈다. 나아가 2004년에는 어린이도서관인 ‘꿈틀 도서관’을 만드는 등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바꾸는 데도 관심을 가졌다. 2005년 9월부터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연구하는 모임까지 꾸렸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들의 관심 범위도 넓어진 것이다.
현재 회원이 40여명에 이르는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체’는 이런 성과로 지난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공모한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 공모에서 풀뿌리상을 받았다. 아래로부터의 시민운동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동안 명망가와 활동가 중심의 시민운동이 1987년 이후 민주주의 심화에 많은 이바지를 했지만, 시민운동의 민주적 ‘토대’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런 점에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체가 하나의 교훈을 주는 셈이다. 유미연(39) 대표는 “앞으로 여건이 되는 한 어머니들이 교육과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며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기보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서울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나 ‘중랑 품앗이’, 대전의 ‘대전 여민회’, 충북 옥천의 ‘안남 어머니회’ 등이 풀뿌리 운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김현 연구위원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잘 다지려면 비어 있는 공간을 보아야 한다”며 “밑바닥부터 소통을 경험하고 참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질화”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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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 품앗이를 지향하는 풀뿌리 시민단체인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체’ 어머니 회원들이 한 행사에서 아이들과 놀이학습을 하고 있다.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체 제공 / 희망제작소 신입연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박원순 상임이사가 강의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
#2 민간 연구소 개념의 ‘싱크탱크’들도 새로운 시민운동의 한 갈래를 형성하고 있다. 시민 누구나
» 앞으로 시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
대표적인 곳이 지난해 3월 문을 연 희망제작소다. 국민 전체를 위한 대안을 국민이 직접 참여해 만들어낸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도 대안사회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대안경제와 통일경제 모델을 짜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3 지역에서는 시민단체들 사이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으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울산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울산경실련과 울산참여연대는 지난 1월 통합을 정식으로 결의하고 ‘울산시민연대 준비위원회’(준비위)를 꾸렸다. 각각 93년과 97년 출발한 두 단체가 상근자 중심의 운동이라는 체질을 개선하고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 지역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대를 이룬 결과다. 인천참여자치연대와 인천희망21도 오는 6월 발족을 목표로 통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새로운 흐름과 관련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는 총론이나 슬로건 과잉의 시대에 있다”며 “동시대인들의 과제를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고, 시민운동의 영역도 지금보다 더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
전진식 기자, 노현웅 윤은숙 정옥재 수습기자 seek1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