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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사회

New Hope 2008. 6. 2. 11:16

출처 - 한국일보 2008-06-02 03:03


[나 홀로 사회] (上) 고독한 노인들

"나 죽으면 장례 치러주나" 상조업체에 문의 부쩍

"자식에 짐 되기 싫어… " 20억 재산 할머니도, 쪽방 할아버지도 독거

#1. 서울 A경찰서 B경위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올수록 불안하다. 지난해 7~8월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B경위에 따르면 휴가철에는 부모와 연락이 끊겨도 자녀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인지, 지난해 여름에만 노인 고독사(孤獨死)를 3건이나 처리했다. A경사는 "평생 힘들게 살다가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분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올해에는 그런 분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최근 남편과 사별한 C할머니는 '우리가 모시겠다'는 3자녀의 요구를 뿌리치고 혼자 살고 있다. 보유 재산이 20억원이 넘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C할머니는 "며느리가 잘못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불편하게 함께 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같이 살지 않는 만큼, 생전에 재산을 분배해 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고독의 끝자락에 저소득층 독거 노인의 죽음이 서있다. 죽음의 절벽에 선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끈은 끊어진 지 이미 오래. 강병만 '한국 노인의 전화' 사무국장은 "최근 3~4년간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1930년대 출생자의 사망이 늘면서 임종하는 가족 없이 숨진 뒤,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국장에 따르면 노인 고독사는 최근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해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전년 대비 매월 30~40%씩 늘어나고 있다. 그는 "30년대 출생자들은 '마지막으로 부모를 모시고 살다, 최초로 자식에게 버림받는 세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최근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나도 혼자 죽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상조(相助)업체 K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30~40대가 대부분이었으나, 3~4년 전부터 노인들의 가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200여명이 가입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40명 가량은 노인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인 가입자는 '입회비로 250만원 정도 내면 내가 죽어도 업체에서 알아서 장례식장 예약, 부고 알리기, 손님 접대, 발인, 사망신고 등을 모두 해주느냐'고 꼼꼼히 묻는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르지만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중산층 이상 노인들도 혼자 사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김모(73ㆍ여)씨는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나눠준 뒤 홀대 받고 사는 어떤 노인의 딱한 소문이 분당 지역에서 크게 퍼졌다"며 "차라리 자식과 떨어져 혼자 살겠다는 게 요즘 노인들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경향은 객관적인 설문 조사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퇴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60대 이상 노인 1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자녀 부양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비율도 7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자녀들이 포기한 효도만큼을 국가가 대신해주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효도라는 규범이 사람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부양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면서 "고령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노인들이 기초적 의식주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부양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자살률 10년간 2.8배 껑충


혼자 사는 노인의 증가는 그 자체가 단순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에 노인들이 자살의 길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궁핍한 생계와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가족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과 이들 계층의 자살률은 정비례하고 있다. 1995년 34만9,020명에 머물렀던 독거 노인이 2005년 78만2,708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에 맞춰, 자살자도 95년 65세 이상 인구 10만명당 19.2명에서 2005년에는 53.6명으로 늘어났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구조가 과거 가족 기반에서 점차 개인 기반으로 변모하면서 대중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자살률 등의 문제는 혼자 사는 삶과 큰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인 범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자상한 노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각 연령층 중 범죄 증가율이 가장 높아 경찰을 괴롭히는 계층이 됐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95년에는 61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범죄가 3만2,534건이었으나, 2005년에는 7만4,770건으로 2.2배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범죄에서 노인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95년에는 1.8%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3.8%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노인이 절도, 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며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 대부분은 혼자 살며 궁핍하게 지내는 노인"이라고 말했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사회복지사와 간병인 등을 고용해 독거노인들을 돌봐주고 있지만 복지 수준은 여전히 미미하다"면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맞은 선진국들이 노인 돌보기를 정부 주도로 이뤄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강지원기자 stylo@hk.co.kr


10명중 1명은 '1인 가구'
나홀로 족 20년 만에 6.5배 급증

노인 자살·사회 부적응자 등 늘어

한국인들이 갈수록 고독해지고 있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유대를 끊은 채 혼자 삶을 영위해 가는 이른바 ‘나홀로 족’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 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인의 자살률이 높아지거나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고독사(孤獨死)가 늘어나고 ‘나홀로 족’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는가 하면, 대인관계를 피한 채 인터넷과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동한데서 겪게 되는 병리적 현상도 확대ㆍ심화하고 있다.

1일 통계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1985년 66만명 가량에 불과하던 ‘나홀로 족’(1인 가구)은 20여년만에 430여만명으로 6.5배나 증가했다.

2005년말 현재 전 국민이 모두 가입한 건강보험 납부자 가운데 피부양자 없이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652만명이다. 이들 중 맞벌이 부부 비율(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66.2%)을 감안하면 ‘나홀로 족’은 437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의료급여 대상인 저소득층 노인, 기러기 아빠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과 2006년 이후 혼자가 된 사람까지 합하면 2008년 5월말 현재 ‘나홀로 족’은 총인구(4,860만명)의 10%가 넘는 490만~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가족해체 현상과 취업ㆍ교육경쟁의 격화, 개인주의 확산 등이 맞물리면서 ‘나홀로 족’이 크게 늘었다”며 “전통사회에서는 금기시 되던 독신과 이혼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 분위기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나홀로 족’의 증가는 한국인들의 삶의 지평을 바꿔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노인과 죽음’을 가장 심각한 주제로 꼽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노인층의 자살률이 최근 10년 사이에 두배나 증가하고,가족의 위로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 노인’ 역시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장년층 일부 ‘나홀로 족’의 범죄, 경제 사정 때문에 맞벌이에 나서야 하는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열쇠 아동’이 300만명을 넘어선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나홀로 족’의 증가는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양산하고 있다. 주택 시장에서는 1인 거주자를 위한 1인용 오피스텔, 원룸형 아파트ㆍ빌라 건설이 붐을 이룬지 오래다.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1인 식탁’을 갖춘 식당들이 늘어나고, ‘셀프 빨래방’등 ‘나홀로 족’의 생활편의를 돕는 업종들도 증가 추세다. 24시간 편의점들은 ‘나홀로 족’이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적극 개발해 내놓고 있고, 대형 할인점들은 1~2인용 소용량 상품만 모아 파는 ‘미니미니존’을 개설해 ‘나홀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나홀로 사회] (中) 혼자 크는 어린이

스스로 끼니 때우고 마트 한바퀴 도는게 일과
맞벌이 저소득층 '열쇠아동' '마트키드' 늘어
방치 아동 300만명… 설움에 목숨 끊기도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맞벌이 부부 및 이혼율 증가 등으로 혼자 빈 집을 지키는 아동들이 크게 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한 아동이 부모의 퇴근을 기다리며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1. 4월말 서울 마포구 염리동 A아파트. 이 아파트에 사는 서모(10)군이 13층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려 자살했다. 2004년말 부모가 교통사고로 숨진 뒤부터 서군은 이모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행실이 바르지 못해 꾸지람을 자주 들었다. 서군은 이날도 ‘지갑을 뒤져 돈을 훔쳤다’는 이모부 꾸지람을 듣고 목숨을 끊었다.

#2. ‘놀토’였던 지난달 24일 오전 9시, 서울 도봉구의 한 대형 할인점. 김모(38ㆍ여)씨가 아들 박모(8ㆍ초2)군에게 1,000원짜리 지폐 석장을 쥐어주며 “퇴근할 때까지 할인점에서 놀라”고 당부했다. 엄마와 헤어져 할인점에 들어간 박군은 무려 9시간 동안 전자제품 코너에서 오락도 하고, 시식 코너에서 배를 채우다가 오후 6시 퇴근한 엄마와 함께 귀가했다.

부모의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커가는 어린이가 결손가정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결손 가정이나 맞벌이 가정 등 부모가 바빠서 혼자 빈집을 지키는 이른바 ‘열쇠아동’은 2006년말 현재 약 300만명으로 집계됐다. 14세 미만 전체 아동(899만명)의 3분의1에 달하는 수치다.

보사연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이혼율이 증가하고 아내도 돈벌이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방치된 아동의 숫자도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5% 수준에 머물렀으나, 중년 주부들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면서 지난해에는 62.6%로 늘어났다.

방치된 아동이 늘어나면서 놀이터에서 순진 무구했던 어린이의 생활상도 많이 바뀌고 있다. 박군처럼 부모가 없는 사이 할인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마트 키드(Mart Kid)’가 등장하는가 하면, 서군처럼 부모 없는 설움을 못 이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3.15명(10만명당)이던 십대 자살률이 2005년 4.35명으로 늘었다.

저소득층 아동이 방치되면서 ‘부의 대물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업 주부 엄마를 둔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의 생활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엄마가 돌봐주는 어린이의 독서비율(17.3%)은 방치된 어린이(9.5%)의 두 배에 달한 반면, 컴퓨터 게임을 하는 비율(28.3%)은 그렇지 않은 어린이(35.4%)보다 낮았다.

성북구 나눔의 집 관계자도 “방과 후 학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빈곤층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라면을 끓여먹으며 밤 늦게까지 논다”며 “당연히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학업성취도도 낮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에서는 방치된 아이들이 문제인 반면, 엄마가 돌봐주고 물질적으로 풍요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외동이 자녀의 ‘독불장군’ 성격이 문제다. 강남의 한 유치원 교사는 “대부분 원아들이 독자 혹은 무남독녀”라며 “형제 없이 자라는 바람에 인내심이 없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성격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산층 이상의 ‘나홀로 아동’은 마케팅 및 금융업체의 핵심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은 “중산층 이상 계층의 외동이 자녀는 올해 업체가 공략해야 할 7가지 핵심 집단(블루슈머)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며 “이들을 겨냥해 어린이 전용펀드와 감성 놀이학교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홀로 아동' 방치하면

인격 형성기에 느낀 좌절 불안… 어른돼도 정상적 대인관계 힘들어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아동들이 무려 300만명에 달한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마트키드'나 '열쇠아동' 등으로 불리는 아동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홀로 아동'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신민섭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정신과 교수는 "특히 초등학교는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로 매우 중요하다"며 "부모와의 관계에서 좌절이나 불안, 분노 등을 느낀 아이들은 결국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고 이는 낮은 학업 성취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 아이들과 대화하는 일은 부모 입장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생계 문제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득이하게 적다면,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하루의 일과를 묻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 크는 아이가 성격 장애를 겪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방과 후 늘 혼자인 학생들은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성격이 많으며, 나약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할 개연성도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또 "생활이 안정된 가정의 경우 여러 학원에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캠프 등 단체생활을 할 수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하고 친척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공공복지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김미숙 보사연 아동복지팀장은 "단 한 명의 아동이라도 방치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안전장치 마련이 절실하다"며 "아이들에게 식사와 뛰어 놀 공간을 제공하는 아동복지센터를 지역별로 최소한 1개 정도는 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홀로 사회] (下) 1인 가구

화려한 싱글? "벽만 쳐다보며 사는 외톨이"

고시 준비에… 결혼 늦어 독립… 홀로사는 35~39세 10년새 2배

박성민(27.가명)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이른바 ‘나홀로 족(族)’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 준비를 위해 2년째 고시원 신세를 지고 있다.

고시원 생활은 그에게 생소했지만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뿌듯함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떴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시원 생활 6개월도 안돼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어색하다.

■ 나홀로족 10년 새 2배 늘어

박씨 처럼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외로움을 감수하고 결혼을 늦추면서 국가 고시나 대기업 취업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지만 돈벌이는 괜찮은, 30대 후반의 ‘골드싱글’이 한참 어린 연하의 이성을 찾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35~39세 1인 가구는 1995년 12만4,000여명에서 2005년 26만5,000여명으로 10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었다.

자식들을 위해 올인하는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인 오태영(47ㆍ가명)씨는 대학강사인 아내와 14세, 16세인 두 아들을 2년 전 영국으로 유학 보내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씨는 “아이들이 국내 대학에 들어가봤자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오는 것보다 못한 현실에서 나만 고생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내 유학길에 아이들을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이 가장 큰 적”이라며 “몇 년 전만 해도 기러기 아빠의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지만, 요즘에는 너무 흔해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40~50대 1인 가구는 기러기 부모의 증가가 인구 1,000명 당 1.5명이던 이혼율이 2005년 2.6으로 증가한 것과 맞물리면서 폭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림동과 강남구 역삼동 등은 1인 가구의 천국이다. 신림동 고시원은 월 20만~35만원, 원룸은 30만~50만원에 얻을 수 있어 고시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들까지 대거 몰려 들고 있다. 신림동 A부동산 관계자는 “신림동에만 3만~5만여명이 머물고 있고, 원룸과 고시원 건물은 600개를 넘는다”고 소개했다.

■ 산업형태도 확 바꿔

1인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산업의 형태도 확 바꿔 놓았다. 신림동과 동작구 노량진동 등 고시생이 많은 곳에는 수년 전부터 1인 식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 벽을 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바(Bar)형 구조가 벽을 따라 이어져 있고, 중앙에는 음식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식당이 많다.

다른 사람과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종 잡지와 신문이 3부씩 마련돼 있으며, 벽에는 상식과 명언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신림동에만 이런 식당은 30여 곳에 이른다.

강남의 오피스텔 밀집가에는 코인(동전) 세탁소가 등장한지 꽤 됐다. 옷가지부터 이불까지 세탁과 건조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어 주말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한 세탁소 주인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용 고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경쟁 업체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도 ‘나홀로 족’ 모시기에 혈안이다. 신세계 이마트는 지난해 7월 광주 봉선점에 1~2인용 소용량 상품만 모은 ‘미니미니존’을 열었다. 1미터 남짓한 판매대에서 월 매출이 500만원에 달하자 이 업체는 신도림점, 여주점, 동탄점, 여의도점 등에 잇따라 ‘미니미니존’을 설치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알맞은 소형 전기밥솥이나 미니세탁기, 쌀 씻는 기구, 호신용 호각 등만을 취급하면서도 매달 수 백 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신이나 이혼을 ‘화려한 싱글’이나 ‘돌아온 싱글’로 묘사하는 세태가 청장년층 1인 가구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며 “그러나 각종 범죄와 자살 증가 등 그늘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독이 병으로… 변태적 성범죄·자살률 날로 늘어


'화려한 싱글' 이면엔

나홀로 청년층의 증가는 두드러진 사회 현상의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1인 가구를 겨냥한 새로운 산업구조 유발 등 긍정적인 측면 뒤에는 성범죄 및 청년 자살의 증가 등 어두운 그늘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경악시켰던 경기 안양 초등생 납치 살해사건 범인 정모(28)씨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게 심리학자들의 대셈岵?분석이다. 단칸 셋방에서 혼자 살던 그는 지난해 12월 초등 여학생 2명을 살해했다. 범행 이 전에는 전화방 도우미를 납치해 성폭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심리학자들은 "정씨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은 변태적인 포르노물 심취와 깊은 관계가 있다"며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않은 그에게 포르노물을 통한 그릇된 성의식이 자리잡았고, 결과적으로 끔찍한 범죄를 유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체 범죄건수가 줄면서 성범죄도 감소 추세지만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성범죄는 오히려 늘고 있다"며 "가해자는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월 경기 고양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초등생을 무차별 폭행한 이모(41)씨 사건도 30~40대 독신 남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범행으로 '소아기호증'의 전형이라고 경찰은 규정한 바 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심리적 기반이 취약한 30대의 자살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인구 10만명 당 30대의 자살율은 1995년 25.2명에서 2000년 30.2명, 2005년 33.6명으로 크게 늘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급격히 개인화 하면서 사회 초년병이거나 조직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한 30대가 느끼는 고독감은 더욱 커진 반면 사회적 지지는 약해진 게 자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30대 나홀로족의 문제는 결혼 기피현상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며 "특히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복지시스템을 하루 속히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강지원기자 styl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