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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新노사관계 특집

New Hope 2008. 5. 13. 13:12

출처 - CBS 노컷뉴스

[[CBS 新노사관계 특집] ① 견제받지 않는 권력 '대기업노조']
현대자동차 노조 등 일부 대기업 노조들이 해마다 파업을 되풀이하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해당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성장정체가 계속되고 있고, 앞서가는 일본과 추격해오는 중국사이에서 어려움에 처한 우리의 소모적인 노사관계가 국가경쟁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CBS노컷뉴스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향한 길목에서, 이제는 생존과 경쟁력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노사관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노사가 상생하는 한국적 모델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8차례에 걸쳐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견제받지 않는 권력 '대기업노조'
2. 산별노조 무엇이 문제인가
3. 안정된 노사관계로 고속 성장 '페덱스'
4. 노사 문화의 교과서 '도요타'
5. 100년 무분규 어떻게 가능했나 '밀레'
6. 우리는 이렇게 극복했다
7. 변화하고 있는 세계 노동시장
8. 노사상생 한국적 모델 만들 수 있나 올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진입이 당면 과제가 됐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3만달러 시대로 가기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다름아닌 노사관계이다.

도요다가 GM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업체로 올라선 데는 50년 무분규로 대변되는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미국의 세계적 물류회사인 '페덱스(Fedex)'는 경쟁사인 '디에이치엘(DHL)'이나 '유피에스(UPS)'보다 늦은 시점인 1973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안정적인 노사관계에 힘입어 세계 220개국에 진출, 매년 평균 10억달러씩 자산을 불리며 자산 350억달러의 거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에반해 현대자동차는 지난 1994년 이후 올해까지 13년째 매년 파업을 벌였다. 지난 1987년 이후 20년동안 현대차가 파업으로 입은 손실은 10조 5천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 두 회사의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52만2011일로 국내 전체 사업장의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의 43.5%를 차지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파업을 반대하는 거센 여론의 역풍속에서도 한미 FTA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동참했다.

현대차와 같은 일부 대기업 노조들의 연례 파업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성장정체가 계속되고 가운데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있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어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맞게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사의 상생은 이제 생존의 문제 지난달 28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이틀 동안 부분파업을 벌였다. 파업의 명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였지만 현대차 노조는 예상밖의 거센 파업 반대 여론에 부딛쳤다.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에는 “왜 파업만 하면 현대차가 앞장 서느냐”는 등의 불만이 터져나왔고 공장 곳곳에는 파업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현대차 노조 정비부문 조합원들은 파업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파업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선 경우는 거의 전례가 없던 터라 노조 집행부는 당황했다. 회사 밖에서도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현대차 불매 분위기가 확산됐고 울산지역에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대규모 집회를 갖고 파업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임금이나 고용조건과 관계없는 파업이기 때문에 정치파업이라는 비난을 면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노조는 끝내 파업을 강행했다.

현대차의 파업은 지난 1994년 이후 올해까지 13년째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지난 87년 노조 창립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면 20년 동안 모두 335일의 파업을 벌였다.

이 기간 동안 파업으로 인해 모두 104만여대, 10조5천억원 어치의 조업 차질을 빚었고 지난해에는 11만6천여대, 1조6천억원이라는 역대 최악의 피해가 발생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파업으로 인한 우리나라 전체 노동손실일수는 120만 567일. 이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차 두 회사의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52만2011일로 전체의 43.5%를 차지했다.

지난해 파업을 가장 많이 벌인 사업장 10개의 노동손실일수는 92만8575일로 전체 77.3%에 달했다. 파업을 가장 많이 벌인 기업 10개에는 현대, 기아차 외에 쌍용차, 철도공사, 효성 창원공장 등이 포함된다.

우리나라 파업은 곧 대기업 노조의 파업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기업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기업 노조는 기득권 세력 대기업 중에서도 현대차의 파업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는 먼저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들수 있다.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대공장에 모여 컨베이어 시스템에 따라 일을 하기 때문에 일부만 조업을 거부하더라도 모든 공정이 멈추게 된다.

이런 사업장의 특성이 노조의 힘을 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 노동계의 역학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민주노총-금속노조-현대·기아차 노조의 구조에서 현대·기아차 없이는 민주노총이 무너진다"며 "이같은 노조의 대표성 문제 때문에 정치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에는 10개 이상의 계파가 있다"며 "처음에는 계파가 이념적으로 분화했으나 지금은 임금이나 자리 등 실리를 추구하는 길로 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에서 차지하는 현대차 노조의 위상과 사업장 내에서 계파 경쟁이 쟁의를 일으키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이승철 전무는 "노(勞)-노(勞) 간에도 세력다툼이 있기 때문에 선명성, 파워게임 차원에서도 파업이 관행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FTA반대 파업에서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 강경파의 주장으로 인해 조합원 찬반투표도 거치지 않은 채 파업에 돌입했다.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노조의 시각이 문제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대기업 노조의 문제는 시각이 잘못돼 있다는 것"이라며 "노사관계를 투쟁적이고 대립적으로 보면서 한쪽이 많이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 본부장은 "87년 이후 20년 동안 투명성이나 오너 또는 CEO의 책임감 등 기업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며 "그러나 노동계의 가치관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투적이고 대립적으로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80년대의 시각이 노동계에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때때로 드러나는 노조의 비리는 거대 노조의 도덕적 수준을 땅에 떨어뜨렸다. 지난해 12월 현대차 노조 간부 이모씨는 노조 창립기념품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납품업체에 편의를 봐 준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앞서 지난 2003년에는 현대차 노조의 전 현직 간부 8명이 입사희망자 38명으로부터 7억8000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이어 지난 2005년에는 취업장사를 한 혐의로 기아차 노조 간부 10명과 현대차 노조 관계자 8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사회안전판 없어 “있을때 챙기자” 풍조 지금과 같은 일부 대기업의 파행적인 노사관계는 사회안전판이 미흡한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IMF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인원 감축을 경험하면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 자신들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됐고 그 결과 회사의 미래가 어찌되든 있을 때 최대한 챙기자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고용보험등 직장잃은 근로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있긴 하지만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길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하게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현대차 노동자들은 노조도 회사도 믿지 않고 성과가 나면 최대한 빼먹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측의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현대차에서는 파업이 발생하거나 일어날 조짐을 보이면 노조 간부들을 찾아가 파업 자제를 호소하거나 심지어 애걸하는 경우도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공장이 멈추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지만 강성노조를 키우는 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운송기계산업팀장은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당장의 손실이 발생하니까 빨리 해결하라는 위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다"며 "노조는 이같은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관계자도 "사측은 달래며 가는 수 밖에 없다"며 "현장의 힘이 세기 때문에 큰 잘못이 아니면 (노조를)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무노동 무임금이 원칙이지만 이 원칙이 지켜진 것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노조는 파업을 해도 어떤 명목이든 임금을 보전할 수 있다는 속셈이 있고 회사측은 노조를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조의 요구를 모른척 들어주는 관례가 파업을 연례화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장기적인 계획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전경련 이승철 전무는 "다른 부서는 업적도 나고 실적도 나는데 노무관리는 수비적·방어적 입장이라 실적을 내기 어렵다"며 "임원도 가기 싫어하고 사용자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중장기적인 대책보다는 임기응변식으로 노사관계에 대처했고 노사관계 경험이 축적이 안됐다"며 "사용자들이 노사관계를 어떻게 해야 겠다는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경직된 노사관계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기업 노사문제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앞날도 없다.

강력한 노동조합 국가 독일 "정치파업은 있을 수 없다"

금속노조가 지난달 벌인 한미FTA 반대파업은 정치파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고용이나 임금등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것을 문제 삼아 파업을 벌였고 특히 그 과정에서 조합원 찬반투표등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이상으로 강력한 노조가 있으면서 노사관계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의 경우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일에서는 정치파업이란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 목적의 파업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크리스토퍼 뮬러 독일 연방노동위원회 노동담당 사무관은 ‘한국에서 한미FTA 체결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냐’고 묻자 "왜 그런 이유로 파업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뮬러 사무관은 "예를 들어 EU협상이나 독일군의 이라크 파병과 같은 문제로 파업을 하는 것은 노동계약 조건 안에서 풀 수 없는 문제"라며 "이런 것은 파업의 기본원칙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파업이라는 것은 일하는 직장의 조건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을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바스티안 오트만 독일 베를린 노동조합연맹 협상담당관은 "독일에서는 근무시간 등 직원들의 환경 등을 위해 파업을 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하는 경우는 없다"며 "노동조합은 정치와는 독립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노동자 개인이 휴일이나 쉬는 시간에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특정한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자유지만 조합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조합원 전원이 참석하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이른바 정치파업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불법일 뿐 아니라 한 때 10%를 상회했던 독일의 실업률로 인해 노동자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고용’이 됐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이다.

지난 86년 40%에 육박했던 노조 조직률이 2002년에는 22%까지 떨어지는 등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도 많이 떨어졌다.

이에 앞서 독일 노동운동은 제2차세계대전 뒤 노동운동 조직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노조가 특정한 정치 노선을 갖지 않도록 합의한 바 있다.

전전(戰前)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리고 나뉘었던 노동운동 진영의 극심한 분열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취지였다.

베를린=CBS경제부 김대훈기자 bigfire28@cbs.co.kr

민주노조의 선봉 '현대차노조'…그리고 민노총과 금속노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현대자동차 지부는 핵심사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대기업 중에 노조가 굳건하게 자리잡은 대표적인 노조가 현대차 노조”라며 “노동운동 내부에서의 기대감, 노동운동 진영이 거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민주노조 진영의 선봉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을 되짚어 보면 민주노총-금속노조-현대차 노조의 구조에서 적지 않은 잡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벌인 한미FTA 반대파업 때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당초 거치기로 했던 조합원 찬반투표를 생략한 파업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노조 이상욱 지부장도 조합원 찬반투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금속노조 강경파 대의원들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이 부결될 경우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한 대의원들이 파업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의 한 핵심 관계자는 “맡고 있는 자리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찬반투표를 거치는 것이 옳았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을 놓고도 같은 양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금속노조 집행부가 현재의 상황에서 산별교섭이 쉽지 않다는 판단을 이미 내렸으나 강경파 대의원들에 의해 떠밀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 이항구 운송기계산업팀장은 “노조도 수직적인 조직”이라며 “현장의 목소리가 노조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경영자 총협회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나오는 떡이 많기 때문에 노동계는 정치판이 됐다”며 “노조원들끼리 싸우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대표해야 할 노조 대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② 안정된 노사관계로 고속 성장 '페덱스'

 

세계 최고의 물류기업 '페덱스', 남다른 노사관계의 '비결'

 

 

지난 3일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에 있는 페덱스(FedEx) 본사의 아침은 의외로 차분했다.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상당수 직원들이 휴가를 떠난 탓도 있지만 과연 이곳이 속도를 다투며 경쟁하는 글로벌 물류기업인지 의심되리만큼 여유마저 묻어났다.

곳곳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각종 서류뭉치가 바삐 오가는, 그런 번잡한 풍경을 기대했던 기자의 예상은 빗나간 것이다.

오전 8시30분이 가까워오자 미국 남부도시 특유의 큼직큼직한 승용차에 몸을 실은 직원들은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느긋하게 사무실로 들어서며 “굿모닝”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런 모습과는 달리 지난 30여년간 페덱스의 성장 속도는 놀라운 것이다.

경쟁사인 '디에이치엘(DHL)'이나 '유피에스(UPS)'보다 훨씬 늦은 시점인 1973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매년 평균 10억 달러씩 자산을 불리며 자산 350억 달러의 거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세계 220개국을 무대로 하루 1만2천여톤의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고 직접 고용된 종업원의 숫자만 13만8천여명에 이른다.

페덱스에서 32년째 근속중인 중국계 미국인 론 웡은 “처음에 일할 때는 하루에 처리한 항공화물이 3천 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00만 개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초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물론 창업자인 프레드릭 스미스 회장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환경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 각 나라의 사정에 맞는 유연한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사 상생의 정신이었다. 경영진과 종업원 모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페덱스의 지점망이 세계 도처에 깔려있다 보니 노사간의 마찰이 전혀 없을 수야 없겠지만 심각한 수준의 노사분규는 아직 한번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1년 '페덱스 코리아'의 노조 파업으로 한국시장 철수까지 검토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현지화 과정에 따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순조롭게 정상을 되찾았다.

페덱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페덱스 익스프레스(항공특송)의 마이클 더커 회장은 “당시 우리는 (페덱스 코리아 노조 문제에 대해)무척이나 실망했지만 결국 노사간의 약속 자체가 너무 간단한 것이었기에 문제가 쉽게 해결됐다”고 말했다. 또 “최근 통계를 보니 한국에서 페덱스가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안정된 노사관계는 불필요한 파업 비용을 줄여줌으로써 30여년간의 줄기찬 성장을 뒷받침했다. 따지고 보면 후발주자인 페덱스가 경쟁사들을 빠르게 따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튼튼한 노사관계 때문에 가능했다.

페덱스도 사업 초기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유가 인상 조치의 여파로 불과 1년여만에 파산지경에 몰리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것이 그 이듬해 UPS의 노조파업과 또 다른 경쟁사인 '알이에이(REA)'의 파산을 틈타 기사회생했다.

UPS의 입장에서는 땅을 칠 일이지만, 비슷한 일은 25년 뒤에도 다시 일어났다. 1997년의 UPS 파업은 사업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본궤도에 오른 페덱스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자신의 화물이 하루라도 빨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고객들에게 택배물류업체의 파업은 치명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페덱스는 경쟁사의 거래물량까지 확보하면서 급속히 덩치를 키워나갔고 급기야 2000년에는 미연방 우체국과 거래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우체국에 특급항공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페덱스의 '배송물 집하기(Drop box)'는 미국 전역의 우체국마다 설치됐다. 하나의 민간 기업이 미연방 정부기관의 핵심사업을 접수한 것이다.

노사간 신뢰와 화합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이렇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페덱스의 무형자산 1호라 할 수 있는 노사상생의 비결은 무엇일까?

더커 회장은 ‘인간적인 처우’라고 답했다. 상사가 하급직원을 소홀히 대하거나 하는 경우에는 곧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인사발령시에는 직원들의 희망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경영진에 대한 감사를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실시함으로써 그 이행 여부를 강제하고 있다. 상급 간부들이야 힘이 들 수 있겠지만 직원들은 편하게 해주자는 철학이 깔린 것.

직원 웡 씨는 “처음 일할 때부터 회사의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가 좋았다”면서 “인사정책이 이해하기 편하고 사람을 중시하는 것 때문에 이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내문화가 좋고 아이디어가 있다면 사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도 좋다”고 덧붙였다.

페덱스의 이 같은 노조정책은 ‘PSP'(People Service Profit)로 요약된다. PSP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 대고객 서비스가 향상되고 결국은 이윤으로 돌아온다는 것으로 한 마디로 ‘직원의 행복이 회사의 이윤을 창출’하는 개념이다.

직원들에 대한 사측의 세심한 배려는 멤피스 본사의 건물 구석구석에도 배어있다. 각각 A~H로 불리는 8개의 주요 건물은 동선을 고려해가며 배치됐고 건물들은 구름다리로 서로 연결돼있다. 건물들을 듬성듬성 떨어뜨려 놓아 시각적으로 쾌적한 느낌을 주면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편의도 생각한 것이다.

다른 어느 건물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사원복지센터도 직원들에 대한 존중의 정신이 담겨있다.

페덱스 홍보팀의 드니스 로워는 식당과 헬스클럽, 회사 신용조합, 여행사 등이 들어찬 사원복지센터를 구석구석 안내하며 회사 홍보에 침이 말랐다. 이러한 복지 우선 정책 때문인지 페덱스는 아이비엠(IBM), 모토로라(mymotorola), 델(DEL) 등과 함께 대표적인 ‘비노조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페덱스는 그러나 부정적 느낌을 주는 '비노조 기업'이란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다. 직원들의 직종과 각국의 사정에 따라 노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일 뿐 노조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페덱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항공부문에도 노조는 허용되고 있다. 다만 직원들이 노조활동을 통해 자신의 권익을 요구하고 쟁취하기에 앞서 회사가 먼저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에 노조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되고 노조도 사측과 크게 부딪힐 일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무작정 노조 결성을 불허함으로써 대부분의 나라의 헌법에도 명시된 노동권을 부정하는 무(無)노조 기업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미국기업 중 그 대표적인 곳은 월마트.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투자를 철수하는 등 적대정책을 편 나머지 노동계는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입점 반대운동이 벌어질 만큼 역풍을 맞고 있다.

결국 종업원의 복지를 누가 더 챙겨줄 것인지를 놓고 노조와 경쟁하는 경영진, 사측과의 극한 대립보다는 평화적 교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종업원들, 이들이 모인 결과 노조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노조로부터 자유로운(Union-free management)' 신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페덱스의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눈부신 기술 및 업무 혁신 못지않게 기업내 인간관계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 그리고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흔들림 없는 원칙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더커 페덱스 인터내셔널 회장

마이클 더커 페덱스 인터내셔널 회장은 페덱스 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프레데릭 스미스에 이은 그룹내 2인자로 통한다.

그는 페덱스의 초기 멤버로 입사한 뒤 시간당 2달러 81센트를 받는 화물처리요원으로 시작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글로벌 물류기업인 페덱스의 최고위직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뷰는 미국 멤피스의 페덱스 본사 회장 접견실에서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페덱스의 미래 청사진은?

= 자유무역이 발달하면서 페덱스는 자유무역의 상징이 되고 인터넷은 우리의 팔다리가 될 것 이다. 우리 딸은 인터넷을 통해 폴란드산 양치기 개를 샀다. 이런 식으로 물건을 구입한 고객에게 페덱스 같은 특송업체가 상품을 전달하는 것이다.특히 젊은 세대는 빠른 것을 좋아하며 페덱스는 사람들이 소형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선호하는 것을 인지해 빠르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시장의 비중과 전망에 대해 말해달라.

= 한국은 인터넷, 정보통신(IT), 도로 등 우리가 원하는 사회간접자본이 잘 갖춰져 매력적이다. 우리의 서비스 성격상 통신망과 도로망이 제대로 정비돼있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힘든데 한국의 시설을 보면 페덱스로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비노조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노조정책은 어떤가?

=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비노조 정책(Union free policy)을 쓰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지역 상황에 따라 노조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일부 국가에서는 노조를 불법화한다는 뜻이라고 실무자가 설명) 기본적인 페덱스의 노조정책은 노조와 상생(Collaboration)하는 것이다.

▶어떻게 상생한다는 것인가?

= 우리의 장점은 종업원들에게 'Purple promise'라는 정책을 쓴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최고의 효과적인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직원의 인사이동에 있어서도 그들의 의견을 먼저 경청해 결정한다. 1년에 한 번씩 관리직 직원에 대한 평가를 부하직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인간적인 처우를 했는지를 묻는 등 인간적인 대우에 신경을 쓴다.

▶한국에서도 파업이 있지 않았었나?

= 한국에서 2001년 파업이 발생했지만 노사간의 약속 자체가 너무 간단한 것이었기에 쉽게 문제가 해결된 바가 있다. 특히 사원들에게는 내부에서 상사가 자신을 소홀하게 대하는 일이 생기면 바로 보고를 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고 인간적인 처우를 가장 중시한다. 또 경영진들에 대한 감사를 1년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이런 정책이 다른 경쟁사에 비해 노사 갈등을 적게 겪는 비결이라고 본다.

▶개인적인 출세의 비결이 있나?

= 처음 페덱스에 근무할 때 멤피스에서 시간당 2달러 81센트를 받고 화물처리업무를 하다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회사가 생겨났는데 몇 가지 경영방법이 아주 특이했다. 페덱스는 이미 70년대에 화물에 바코드를 달아 화물처리를 비약적으로 했고 각 나라의 세관과 계약을 맺어 화물통관시간을 단축시켰다. 나는 그런 변화의 시기에 취업을 했고 성공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멤피스(미국)=CBS경제부 홍제표 기자



페덱스의 '인간가치 중심'의 노사문화

페덱스의 기업 정신인 'PSP(People-Service-Profit)'는 사람 중심의 철학이다.

기업이 직원들을 최우선으로 놓는다면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이윤이 증대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SFA(Survey Feedback Action)' 제도를 통해 뒷받침된다.

이 제도는 상사가 부하 직원의 자질을 평가하는 일반적 시스템과는 반대로 직원들이 경영진을 상향 평가한다. 여기서 도출된 결과를 기업 경영에 반영할 뿐 아니라 절대적인 상하관계를 조성하기보다는 대화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에서 확산돼온 다면평가제도를 일찌감치 시행해온 셈이다.

페덱스 그룹내 주요 경영자인 마이클 더커 회장은 “우리는 언제나 직원들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돼있고 항상 인간적인 처우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결국 페덱스가 직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요지는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회사의 운명은 당신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페덱스의 이 같은 직원 복지 우선주의는 다양한 교육 기회와 신축적인 휴가기간 운영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또 포춘지가 선정하는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과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매년 포함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법인인 페덱스 코리아도 세계적인 경영평가기관인 휴잇 어소시에이츠가 선정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에 국내 외국계 기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뿐만 아니라 동종 업계에서는 최저 수준의 이직률을 자랑하며 장기 근속자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페덱스의 이런 기업 철학은 창업자인 프레드릭 스미스 그룹 회장의 지론에서 비롯됐다.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서비스 산업에서는 특히 인간적 측면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분야가 지식정보화되고 고객중심주의로 변화하는 현실에서 직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는 비단 서비스산업만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멤피스(미국)=CBS경제부 홍제표 기자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③ 노사 문화의 교과서 '도요타'

도요타 노사 50년 무분규…'도요타에 살어리랏다'

 

지난해 매출 23조9480억엔, 영업이익 2조2386억엔, 순이익 1조6440억엔. 올해 1분기 전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에서 70여년 동안 부동의 1위였던 미국의 GM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잡은 도요타자동차의 현주소다.

△투쟁하는 도요타 노조

도요타자동차가 세계 1등 기업으로 오르기까지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 치밀한 경영전략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안정적인 노사관계도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53년 이후 단 한 건의 분규가 없는 도요타자동차의 협력적 노사관계는 노사갈등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다른 자동차업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차의 노사관계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도요타자동차 노조가 설립된 것은 지난 1946년 1월 19일이었다. 도요타 노조는 1949년 4월 29일 노조 결성 이후 최초의 파업을 벌였다. 노동조합법 개정 반대를 내건 ‘정치파업’이었다.

이어 도요타 노조는 1950년 4월 22일 경영위기를 겪고 있던 회사가 고용조정과 임금 인하 등의 회사 재건안을 발표하자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조합원 투표를 통해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이 과정에서 사장 이하 도요타의 모든 경영진과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노조 간부들이 퇴직하는 홍역을 치렀다.

도요타 노사관계의 분수령은 1953년이었다. 노조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그 해 5월 21일부터 8월 5일까지 약 80일 동안 파업을 벌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싸움에서 노조는 회사의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돌파하지 못하고 간부 위주의 투쟁을 전개한 결과 패배하고 말았다. 그 여파로 1954년 친회사세력이 정기임원선거를 통해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면서 도요타에서는 대립적 노사관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기업의 발전은 차의 두바퀴

대립적 노사관계가 소멸한 뒤 도요타 노사는 이른바 ‘강령’과 ‘선언’을 잇따라 만들어내며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

그 첫번째로 도요타 노조는 1956년 12월 정기대회를 통해 ‘도요타노조 강령’을 발표했다. 이 강령을 통해 노조는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산업·기업의 발전은 차의 두 바퀴”라며 협력적 노사관계를 대내외에 선언했다. 이 강령은 노요타 노조의 헌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도요타 노조의 모든 활동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어 도요타 노사는 1962년 ‘노사선언’을 체결했다. ‘선언’에서 중요한 것은 “고용의 안정과 노동조건의 개선·유지를 위해 노조는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기업 번영을 위한 회사의 시책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다. 분배를 위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였다. 도요타 노사는 1982년 ‘노사선언 20주년을 맞이하여’라는 결의를 통해 ‘노사선언’을 “영구불변의 원칙”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이 같이 잇따르는 ‘강령’과 ‘선언’의 결정판이 1996년 신노사선언이었다. 도요타노사는 1996년 1월 27일 조합 창립 50주년을 맞아 ‘21세기를 향한 노사의 결의’를 채택했다. 이 결의에서 노사는 “글로벌기업으로 비약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노사관계는 상호신뢰와 상호책임을 기반으로 한다”고 밝혔다.

노사 관계가 “상호 신뢰”에서 “상호 책임”의 단계로 격상된 것이다. 진정한 노사관계는 성과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결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건우 전 도요타코리아 회장은 “제품 하나 개발하는데 몇 년의 시간과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은 위험한 것”이라며 “도요타 노조에는 이 같은 산업에 대한 인식이 공감이 돼 있다”고 풀이했다.

△도요타의 철저한 노무 관리

도요타 노조가 설립된 뒤 노사가 격렬한 갈등을 겪고 대립적 노사관계가 소멸하기까지 회사가 철저하게 노무관리를 주도하고 현장을 장악했다는 점이 도요타 노사관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례로 도요타자동차는 최초의 파업이 일어났던 1949년 조장회에 이어 1952년 계장회, 1953년 반장회 등을 잇따라 조직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현장을 감독하는 말단관리자이면서 동시에 노조의 핵심을 구성하는 조장과 반장 등을 회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사내단체로 엮은 것이다.

도요타는 이와 함께 조·반장 등 현장 감독자들에게 경영자를 대신해 인사고과를 수행하게 할 만큼 활용의 폭을 넓혔다. 아울러 이들 가운데 1/3 정도를 과장으로 승진시키는 미끼를 던졌다. 이 같은 구조에서 이들이 노사협력적 관계를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들은 또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 회사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교섭하고 해결하는 ‘노사협의회’에 노조 간부의 자격을 갖고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회사에 충성심이 강한 말단 관리자이면서 노조 간부 자격으로 ‘노사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에서는 ‘노사협의회’가 사실상 단체교섭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조는 노사 사이의 갈등을 미리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노사관계는 현장을 누가 장악하느냐인데 이 때 중요한 역할을 일선 감독자가 한다”며 “노조원과 종업원의 신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발 맞춰 노조 역시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한 준비가 충분히 돼있다. 1953년 파업 이후 도요타 노조 집행부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친회사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노조 현 집행부가 차기 집행부는 지명하는 독특한 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선거와 투표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한 셈이다.

심지어 노조는 지난 1971년 선거규정을 바꿔 노조가 지명하지 않은 후보가 노조 임원에 입후보하려면 조합원 50명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문제는 조합원 50명의 추천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나 노조가 반대하는 후보를 추천하는 조합원은 승진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협력적인 노사관계에 반대하는 조합원은 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도요타 자동차는 노동자들의 이직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70년대 초반 도요타는 한 때 50%가 넘는 이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도요타 노사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종업원은 굳이 붙잡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도요타의 고용안정…1950년 이후 단 한번의 구조조정 하지않아

도요타의 협력적 노사관계는 철저한 노무관리 뿐 아니라 고용안정을 밑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도요타는 1950년 고용조정과 이에 따른 파업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명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생산직을 판매직으로 돌리고 신규사원 채용을 억제하거나 계열사로 옮겨 일을 하게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스스로 걸어나가지 않는 한 강제로 고용조정을 한 적은 없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고용조정을 하지 않기 위해 경영성과를 올려야 했고 이를 위해 노조의 협조를 구했다. 반대로 노조는 고용보장을 전제로 회사에 적극 협력했다.

즉 회사는 고용보장을 전제로 경영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조의 협조를 구했고, 노조는 고용보장을 전제로 회사와 협력해 경영성과를 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숙명여대 권순원 교수는 “미국은 비용은 줄이는 첫번째 단계가 해고이지만 일본은 정반대”라며 “일본에서는 경영에서 가장 큰 실책이 종업원 해고”라고 설명했다.

△도요타 특유의 노사관계 평가와 논란

도요타의 노사관계나 노무관리는 전세계적으로도 유일한 경우에 속한다. 이 때문에 도요타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박건우 전 도요타코리아 회장은 “도요타 성장의 비결은 첫째 끊임없는 교육과 대화 그리고 노조가 경영자의 이야기를 신뢰하는 것”이라며 “직원들 교육을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요타 노조의 차기 집행부 지명 방식을 거론하며 “이런 방식이 정상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도요타에서는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도요타에 충실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숙명여대 권순원 교수는 “도요타 노조는 어떤 측면에서는 어용으로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도요타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시스템,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요타의 노사관계는 이처럼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에 성과를 올린다고 해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2차 오일쇼크 이후 일본 자동차업체 특히 도요타의 선전을 보며 많은 업체들이 도요타 따라 배우기에 나섰으나 도요타 만큼의 성과를 낸 업체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도요타가 철저한 노무관리와 고용안정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이룩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도요타에 살고 도요타를 살린다"

도요타자동차에는 ‘양성공’이란 독특한 제도가 있다. 도요타에서 ‘양성공’은 도요타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입사한 직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1950년 고용조정과 임금인하에 반대하는 노조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도요타 최초의 사내단체인 ‘풍양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당시 ‘재건동지회’라는 친 회사세력의 중추를 담당하면서 노조집행부의 강력한 견제세력이 됐다.

이어 대립적 노사관계가 소멸한 뒤에는 노동자의 의견을 회사에 전달하고 반대로 회사의 사정을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등의 비공식 기능을 수행하면서 노사 관계 안정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됐다. 일례로 양성공의 사내단체인 풍양회의 술로건은 “도요타에서 살고 도요타를 살린다”이다.

회사도 이 점을 높이 사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양성공을 엘리트 기능공을 간주했고 이후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한 방법으로 사내단체의 결성에 적극 나서게 됐다. 이에 따라 ‘양성공’ 출신의 ‘풍양회’ 뿐 아니라 고졸 출신 ‘풍생회’, 대졸 출신 ‘풍진회’, 자위대 출신의 ‘풍영회’, 임시공 출신 ‘풍강회’ 등의 사내단체가 55년부터 70년까지 잇따라 결성됐다.

또 현장 감독에 해당하는 공장(工長)과 조·반장으로 구성된 ‘삼층회’도 결성됐다. ‘삼층회’ 역시 53년 대파업 이후 친 회사세력이 노조를 장악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만드는데 노조간부이자 말단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 사내단체를 회사 인사부가 관리하고 사내단체 참여 정도와 임원 역임 여부가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이들 단체의 결성 목적은 자주적인 활동을 통해 회사의 발전과 회원 사이의 친목을 다지는 것이나 실제로는 회사가 뒤에서 관리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회사가 노무관리의 한 강력한 도구로서 비공식집단인 사내단체를 사실상 공식집단화 하며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양성공’을 거론하며 “학교 졸업하고 공장 가서 출세하려면 회사 말 잘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도요타는 이런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CBS경제부 조근호 기자



日춘투, 준비된 춘투에는 투쟁이 없다

'춘투'란 매년 봄 노사교섭을 통해 새해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일본의 임금인상 투쟁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매년 봄이 돼도 일본에서 뭔가 그럴듯한 임금인상투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의 임금교섭은 기업별 교섭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노사 각각의 상급단체가 서로 사전 의견 교환과 절충을 충분히 거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렝고)와 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IMF-JC)는 전일본자동차산업노동조합총연합회(자동차총련)와 협의를 거쳐 임금인상 요구안 등 노조의 입장을 정리한다. 또 자동차총련은 전도요타노동조합연합회(전도요타노련)나 전국혼다노동조합연합회와 같은 기업연합노조와 협의를 한다.

전도요타노련 역시 도요타자동차노조나 도요타차체노조 등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개별기업에서 전국중앙조직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의 협의를 거쳐 요구안이 제시되는 것이다.

동시에 사용자 단체와의 협의도 진행된다. 자동차총련은 일본자동차공업회 등 자동차산업 3개 사용자단체와 노사회의를 열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이견을 조정한다. 또 전도요타노련은 도요타그룹과, 도요타노조는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절차를 진행한다. 여기에서 일본의 최고 사용자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춘투에 임하는 경영측의 기본적인 입장을 제안한다.

이 같은 과정은 대개 9월쯤 시작해 12월까지 진행된 뒤 다음해 1월에는 자동차총련 차원의 임금요구안이 확정된다. 즉, 춘투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약 5개월 간의 사전 노사 협의를 거치는 셈이다. 이처럼 충분한 사전 준비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정작 춘투 기간에는 투쟁다운 투쟁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이한 점은 이 과정에서 노조가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등의 거시경제 지표와 업종 내 다른 기업의 상황 등을 감안해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요타 노조는 지난 2002년 채택한 신운동방침을 통해 “적정한 임금인상을 도모한다”고 밝힌 뒤 “일본 경제의 비용 증가와 국제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임금인상에는 응할 수 없다”는 사측의 주장을 수용해 기본급 인상을 포기하기도 했다.

해마다 춘투시즌이 되면 격렬한 노사 분규를 겪는 한국의 상황과는 다른 일본의 조용한 춘투, 그 비결은 철저한 준비와 충분한 사전 의견 교환과 절충, 그리고 상대를 인정하는 노사 문화에 있는 것이다.

CBS경제부 조근호 기자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④ 100년 무분규 어떻게 가능했나 '밀레'

독일 '명품가전' 밀레, 따뜻한 '가족주의' 기업으로 정평

일본의 도요타가 50년 넘게 노사간 무분규를 이어오면서 경쟁력을 높여 자동차 판매분야에서 세계 1위의 기업으로 거듭난 사실은 유명하다.

하지만 한세기가 넘는 108년의 역사 속에 단 한번도 노동쟁의나 노사갈등을 겪지 않고 성장해 온 회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국에는 기업이름 보다는 명품 세탁기 이름으로 더 알려진 독일회사 밀레(Miel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금으로부터 108년전인 1899년 친구사이였던 칼 밀레(Karl Miele)와 라인하르트 진칸(Reinhard Zinkann)이 공동 창업한 밀레는 세계 최초로 참나무통 세탁기를 만들었고 끊임없는 품질 개발 등을 통해 지금은 '세탁기의 벤츠'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계적인 가전업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창업 당시 11명의 종업원으로 시작했던 밀레는 현재 1만 5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최근 독일 가전업체들의 위기 속에서도 밀레는 오히려 'Made in Germany'를 강조하며 고속 성장을 하고 있고 2006년에는 매출액 3조 5천억원을 달성했다.

또한 독일 브랜드 상품산업 조사결과 2007년 베스트 브랜드 1위로 선정됐고 독일 소비자 조사 결과 14년 연속 고객만족 1위를 수상하는 등 그야말로 놀라운 성과를 올리고 있다.

밀레 진공청소기는 매년 평균 40만대 정도 팔렸지만 지난 2005년에는 70만대, 2006년에는 90만대가 팔렸고 올해는 1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는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진공청소기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해마다 3주동안 집단 휴가를 다녀오던 전통을 깨고 빌레펠트에 있는 진공청소기 공장 근로자들이 2주만 집단 휴가를 다녀오기로 노동조합 차원에서 결정했다.

또 2교대 근무를 3교대 근무로 전환하는 작업을 회사측은 노동조합과 상의하고 있으며 이 또한 아무 잡음없이 이뤄질 것으로 노사는 예상하고 있다.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에서 이같이 보장된 휴가를 중단하고 일을 더 하자는 분위기는 말 그대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밀레의 꾸준한 성장과 안정된 노사관계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독일 귀테슬로우(Gütersloh)에 있는 밀레 본사를 방문했다.

지난달 2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승용차로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귀테슬로우는 인구 9만여명이 사는 독일의 한적한 시골 마을 그대로였다.

이 작은 시골마을 귀테슬로우에 '세탁기의 벤츠'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세탁기 명품 업체 밀레(Miele)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밀레 정문을 통해 들어서자마자 방문객을 반기는 것은 다름아닌 밀레 공동창업자 칼 밀레와 라인하르트 진칸의 두상이었다. 이들 공동창업자가 바라보고 있는 밀레 박물관을 둘러 본 뒤 밀레의 게르하트 포펜보그(Gerhard poppenborg) 부사장을 만났다.

게르하트 포펜보그 부사장은 한글이 새겨진 넥타이를 메고 인터뷰에 응하면서 멀리 한국에서 온 취재진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펜보그 부사장은 먼저 밀레의 성장 비결은 현실에 주저하지 않는 끊임없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첫번째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포펜보그 부사장은 "1899년부터 밀레의 경영 모토는 독일어로 '임머 베제르(Immer Besser)', 즉 '포에버 베터(Forever better)'"라면서 "이는 항상 개선하자라는 말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결과 밀레는 1901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를 만들어 낸 뒤 1929년에는 전기로 작동하는 가정용 식기세척기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고 1978년에는 컴퓨터로 조절이 가능한 세탁기와 의류건조기를 만들어 내는 등 혁신적인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밀레는 현재 매출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비용을 연구개발(R&D) 투자에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연구 투자 비용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특히 밀레의 경쟁력은 독일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사갈등 또는 노동쟁의를 단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안정적 노사 관계가 밑바탕이 되고 있다.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원만한 노사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우선 회사측에서 마련한 체계적이고 꼼꼼한 인력관리와 훌륭한 복지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밀레는 우선 직원들의 사정에 맞는 다양한 근무형태를 보장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풀 타임 워크와 탄력근무시간이 가능하다. 즉, 육아를 위해 필요할 경우 오전 근무만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장기근무자에 대한 특별 배려 차원에서 25년, 40년, 50년 단위의 축하행사를 회사측에서 준비해 주고 있다.

장기근속 행사는 불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3세대 경영을 맡았던 루돌프 밀레 (Rudolf Miele)회장이 "아무리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어도 기념하고 축하를 해야 하는 일은 계속 유지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즉,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밀레도 위기가 있었다. 성장을 지속하던 밀레는 독일 경제가 최악이었던 2004년에는 매출액 감소로 인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밀레는 직원 해고 대신 전자센터를 설립해 연구 개발 비용을 오히려 늘리면서 제품 혁신에 더욱 매진했고 독일 경기가 살아나면서 지금은 최고 매출 기록을 세우고 있다.

아시아 홍보 총괄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안 캐제(Christian Kaese)는 "25년과 40년 근속한 사람들에 대한 기념식이 있는데 그 말은 25년, 40년 동안 회사 다닌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회사 경영진과 직원들간의 충성도가 높은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또 밀레는 직원들이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종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내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16개 부문의 기술교육과정과 6개 부문의 비즈니스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의 선택 폭을 넓혀주고 있다.


그러나 체계적인 인력관리와 훌륭한 복지제도, 또 사람 중시의 경영외에 백년 무분규 신화를 이뤄온 핵심은 경영진과 직원들이 각각 하는 일은 다르지만 계층은 나누지 않는 차별없는 가족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아시아 홍보 총괄인 크리스티안 캐제는 "1년에 한번씩 직원들과 임금협상 등을 벌이고 있지만 단 한번도 이 문제 때문에 파업을 하지 않았으며 이같은 무파업 비결은 경영진과 직원간의 계층의식 없는 가족주의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게르파트 포펜보그 부사장도 "현재 경영진이 시장에서 부인과 함께 장을 보는 모습을 직원들이 흔히 볼 수 있고 직원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또 건의사항이 있으면 직접 사장과 면담이 가능하다"라면서 "밀레에는 상사와 부하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자신도 48년째 밀레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다시 말해 권위 의식없는 경영진과 직원 간에 쌓인 서로간의 신뢰가 백년 무분규 신화를 만들었고 이것이 곧 밀레의 꾸준한 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회사관계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우연히 밀레 박물관을 찾은 할아버지와 손녀를 만났다.

귀테슬로우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함(Hamm)이라는 지역에서 손녀와 함께 밀레를 찾은 마이클 횔체(Michael Hölze. 61)씨는 "밀레 생활가전 제품을 40년동안 쓰고 있지만 잔 고장 없이 지금도 잘 쓰고 있다"며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횔체씨는 또 "밀레의 직원들은 자부심이 많고 충실하면서도 가족과 같이 일한다고 들었다"며 "회사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고 있기 때문에 노사 화합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나름대로의 노사관계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밀레를 찾은 손녀 아날리나 횔체(Analina Hölze.13)양도 "아빠가 항상 말하기로는 밀레 세탁기와 건조기는 타사 제품보다는 오랫동안 쓴다" 들었다면서 "자신도 기회가 되면 꼭 밀레 제품을 쓸 것"이라면서 수줍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처럼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밀레는 '자부심' 그 자체였다. 오전에 잔뜩 찌푸렸던 귀테슬로우의 하늘은 인터뷰를 마치자 어느덧 화창한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그 파란하늘 아래로 막 출고된 밀레 제품들을 가득실은 화물차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가족세습' 밀레 - 근로자들도 가업을 잇는 '장인기업'

밀레(Milie)는 가족 세습 경영을 4대째 이어오고 있다. 밀레와 진칸(Zinkann) 두 가문이 공동으로 회사를 108년동안 이끌어오고 있다.

밀레 가문은 만드는 일을, 진칸 가문은 파는 일을 맡으면서 철저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밀레의 가족경영의 문화는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밀레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사와 부하라는 계급과 계층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한 가족이라는 문화의식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와 노동자로서 대립하기 보다는 서로 하나라는 단결력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고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쟁의나 노사갈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13살부터 올해까지 무려 51년째 밀레에서 근무해오고 있는 요하네스 폴포이어본(Johannes Paulfeuerborn)씨는 "지금까지 밀레의 3대 경영진과 함께 일했는데 근무하면서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창고 책임자를 맡고 있는 폴포이어본씨는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과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항상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밀레에서는 따뜻한 가족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밀레의 가족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한 단면은 바로 장기 근속자에 대한 회사측의 준비다. 밀레는 지금까지 직원 9000명에 대해 25년 이상 장기근속에 따른 축하를 해 줬다. 사실상 종신 고용이다.

요하네스 폴포이어본씨는 "저도 3번의 장기근속 축하를 받았다"면서 "아버지는 42년, 할아버지는 30년 동안 일하셨으니까 저까지 합하면 밀레에서 3대가 무려 120년이 넘는 기간 근무했다"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처럼 밀레가 무려 100년이 넘게 노사무분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은 바로 전 임직원이 계층과 계급이 없는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가족주의 문화와 함께 회사는 철저하게 직원들의 복지를 책임져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귀테슬로우=CBS경제부 김대훈 기자


게르하르트 포펜보그 부사장 "장기근속, 숙련된 노동력 유지"

18살 평사원으로 입사해 올해로 42년째 근무하며 현재 밀레의 해외수출 총괄 담당 부사장 직을 맡고 있는 게르하르트 포펜보그(Gerhard poppenborg)씨.

그는 100년이 넘는 밀레의 노사 무분규의 비결이 궁금하다고 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같은 문화"라고 말했다.

▶100년 이상 오랜기간동안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저력은?

“우리회사의 모토는 '포에버 베터(Forever Better)'로 이 뜻은 만족적인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목표를 향해 가자는 것으로 1899년 우리의 증조부들이 회사를 창립하면서부터 사용했다. 10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는 회사의 기본 근간이 되고 있다.

▶직원관리를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데 어떤 것인가.

“밀레의 15,000여 임직원중 8700명 이상이 25년 이상 장기근속직원이며 40년 혹은 50년을 넘은 사람도 꽤 있다. 체계적이고 질 높은 교육이 장기간 숙련된 노동력을 유지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16개 부문의 기술교육과정과 6개부문의 비즈니스 교육과정으로 구성된 사내대학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이 선택해 교육을 받은 뒤 부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금제도와 의료서비스, special Bonus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온천요양이나 고가에 속하는 의치와 치아관련 치료비도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지금껏 단 한번도 노동쟁의를 하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회사가 직원들에 대한 복지 등을 책임져주고 있다. 그리고 경영진은 항상 어려워도 직원들과 함께 가자는 마음을 갖고 있다. 특히 경영진과 직원들간의 계층과 계급 의식이 거의 없다.

경영진들과 직원들이 부인과 함께 동네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본다. 직원 식당은 임원과 직원이 함께 사용한다. 직원들이 회사에 건의할 사항이나 불만이 있으면 경영진에게 직접 면담을 요청해 만나서 이야기 하고 있다.

매년 임금협상을 벌여오고 있지만 특별한 불만없이 잘 해결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밀레도 매출액 감소 등 위기가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지난 2004년에 위기가 닥쳐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 됐었다. 하지만 밀레는 해고를 선택하기 보다는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당시 천만유로(한화로 130억원정도)를 투자해 전자센터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펼쳤다.

이후 경기가 살아나면서 최근에는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다. 현재 청소기 공장 2교대 근무를 3교대 근무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노조와 협의를 하고 있다. 이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

귀테슬로우=CBS경제부 김대훈 기자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⑤ 우리는 이렇게 극복했다

노사대립은 NO! … "회사가 살아야 근로자도 산다"


△'골리앗 투쟁' 대신 '상생'선언한 노조 -현대중공업

1990년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있어 투쟁의 핵심이었던 울산 현대중공업.

당시 '골리앗 투쟁'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등 강성노조의 이미지가 각인됐던 현대중공업이 2000년대 들어서는 노사화합으로 세계 1등 기업을 이룩한 현대중공업으로 탈바꿈했다.

이같은 탈바꿈의 원천은 노사가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합하는 '한 마음'에 있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990년대에만 해도 강성 노조의 대명사였다. 1990년 '골리앗 투쟁'을 비롯해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290여일이 넘는 기간 파업을 벌이는 등 회사측과 갈등의 골이 매우 깊었다. 하지만 1990년 중반부터 현대중공업 노조는 변화를 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94년 63일간의 장기파업을 벌였지만 결국 성과금은 줄어들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의해 2개월치 월금도 받지 못하는 등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노동조합원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결국 노동조합은 실리 위주의 노동운동으로의 전환을 택했다. 즉, 회사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곧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혜택에 영향이 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노조는 회사와 함께 미래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2일 창립 35주년을 맞은 기념식에서 김성호 노조위원장은 "올해는 노동조합 창립 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로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공동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현대중공업 노사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각각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기업 발전의 공동 주체로서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즉, 노사의 대립을 지양하겠다는 말이다.

이같은 노사협력의 결과 현대중공업 노사는 1995년 이후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무분규 임금단체협약 타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회사와 노동조합의 혁신적 변화는 결국 고객들의 감동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 독일 콘티사가 발주한 4300TEU급 컨테이너 선박 명명식에서 김성호 노조위원장의 부인 조미숙씨가 스폰서로 나섰는데 선주사가 "현대중공업 직원이 노사 분규없이 생산활동에 전력을 다한 결과 고품질의 선박을 납기보다 2개월 앞당겨 인도해 줘 고맙다"며 제안했기 때문이다.

노조의 변화에 대해 회사는 직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보답했다. 회사측은 1972년 창사이래 단 한 명의 근로자도 해고하지 않는 고용안정 정책을 유지했고 노사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 영업현황과 경영위기상황 등 회사 안팎 사정을 있는 대로 숨김없이 노조에 설명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김종욱 노사담당 상무는 "상생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 덕분에 조합원의 복지와 권익 향상, 회사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세계 1위 조선소의 명성을 지켜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현대중공업은 어김없이 노조와 임금단체협약을 벌이고 있다. 노사 상생의 모델로 현대중공업이 자주 거론되면서 노사 모두 부담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사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마당에 회사측과 노조측이 이번에도 양보를 통해 13년 무분규라는 기록을 또 세워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이 ‘세계 1등 조선강국’이라는 명성은 앞으로도 계속되야하기 때문이다.

CBS경제부 김대훈 기자 bigfire28@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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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상생…경영매진과 품질향상으로 상호 신뢰 -LG전자

LG전자 노조대표와 경영진들은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영국과 폴란드,체코등 유럽 현지에서 머리를 맞댔다.

이 자리에서 LG전자 노사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개선과 같은 노사간에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안건의 수준을 넘어 노사가 함께 해외 현지에서 글로벌 고객을 만나고 회사 경쟁력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장석춘(張錫春) LG전자 노조위원장은 "유럽 시장에서 소비자를 직접 인터뷰 하면서 고객중심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며, "노동조합도 소비자들이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고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이례적이기까지 한 LG전자 노사의 이같은 모습은 지난 1990년부터 17년동안 이어진 무분규 무파업이 한층 더 발전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G전자 노조는 앞서 외환위기 당시인 97년 임금동결 및 무교섭을 결의한 바 있으며 지난 2002년에도 임금을 동결했었다.

노조는 또 지난 2005년 3월 사측과 가진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갱신교섭을 마친 후 임금인상 결정권을 사측에 위임했다. 노조는 임금인상 결정권을 사측에 위임하면서 “최근 급격한 환율하락 및 내수시장 부진에 따른 대외 경영환경 악화 등을 감안, 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고통분담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이 연초 각종 대외악재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영’을 선포하자 노조 역시 전폭적인 협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LG전자의 노사간 상생분위기 역시 쉽게 이룩된 것이 아니다.

LG전자 역시 한때는 노조가 낮에는 지게차로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밤에는 철야농성을 벌일 정도로 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다. 특히 지난 89년에는 연일 계속되는 파업으로 회사측 손실액이 6,000억원을 넘어섰고, 경쟁사로부터 1위 자리를 위협 받는 위기까지 겪었다.

하지만 노조의 이 같은 강경투쟁은 “회사가 살아야 근로자도 산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LG전자 관계자는 “당시 장기간의 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상처만 안겨줬다”며 “이후 노조 지부장들이 ‘품질과 생산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광고에 직접 출연할 정도로 상생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현재 ‘노사관계’란 일반용어 대신 ‘노사가 서로 존중한다는 의미’의 ‘노경관계’란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상호 신뢰가 두텁다. LG전자 관계자는 “노조는 경영진이 임단협보다는 경영활동에 매진하는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영진 역시 성과를 최대한 높여 가급적 많은 성과보상을 해 주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노사는 지난 2월 임단협에서 전자업계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임금피크제 시행을 결정했다. LG전자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전문인력을 활용해 사업경쟁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LG전자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기존 만 55세에서 58세로 늘리고, 56세부터 전년 대비 약 10%씩 임금이 줄어든다. 이 제도를 통해 연간 수십 명의 직원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LG전자는 예측하고 있다.

LG전자 노사가 상생을 실천하는 이유는 단순하기까지 하다. 생산성 향상과 이에따른 회사 수익의 극대화가 결국 노조원들의 성과보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몸소 체험했으며 노사 상생이 초일류기업으로의 지름길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노사간 상생 분위기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고용안정에 초점을 두는 노사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CBS경제부 김선경 기자 sun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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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대신 불신의 벽 허물기 먼저 -한국전기초자

지난 1999년 초 국내 기업에 대한 한 경영평가상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은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년도 평가에서 584위였던 기업이 1년 사이에 32위로 도약한 것이다.

경영지표도 놀라웠다. 매출액은 2천377억원에서 4천842억원으로 급증했고 경상손익은 600억원 적자에서 307억원 흑자로 반전됐다. 1천114%에 이르던 부채비율도 174%로 뚝 떨어졌다. 더구나 이는 일체의 자산 매각이나 인적 구조조정 없이 이룩한 성과였다.

처음엔 자료가 뭔가 잘못됐을 것으로 생각했던 심사위원들은 꼼꼼한 검토 뒤에도 문제가 없자 이번엔 고민에 빠졌다. 약간의 차이로 등수에 들지 못했다고 탈락시키기엔 너무 아깝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규정에 없는 상을 만들어서라도 그 성과를 기리기로 했다. 이름 하여 ‘비약상’.

1998년부터 3년간 한국전기초자(HEG. 경북 구미)의 경영을 맡아 고사상태의 회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서두칠 전 사장의 회고담이다. 부임 직후 받아본 기밀서류에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회사의 생존 가능성은 없다”는 세계적 컨설팅회사의 경영진단이 들어있었다. 한때 브라운관 제조 부문에서 세계 4위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회사였지만 기술경쟁력이 장기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관련 시장마저 좁아지면서 부도 위기에 몰린 것.

더욱 비관적인 것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였다. 그의 부임 전 일어난 77일간의 장기 파업사태로 사내 분위기는 흉흉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거래업체들은 일본의 경쟁업체로 이미 등을 돌렸고 직원들은 정상화 이후에도 파업파와 조업파로 패가 갈린 채 소모적 대립을 일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 전 사장이 가장 먼저 내린 조치는 직원들의 인심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부임기간 내내 제1원칙으로 지켜졌다. 직원들과의 첫 만남에서도 “나는 일자리를 만들러 왔지 빼앗으러 온 사람이 아니다. 본인이 원해서 제 발로 걸어나가지 않는 한 단 1명도 강제퇴사 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우선 사장실의 문을 활짝 열고 노조와 직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일방적인 지시나 의견청취를 떠나 실질적인 대화와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때와 장소는 문제되지 않았다. 유리 용해로가 끓고있는 작업장이건 회사 앞 술집이건, 어떤 날은 하루에도 세 차례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과의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사장뿐만 아니라 중간 관리자들의 역할도 강조됐다. ‘노조와 사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거나 ‘총무팀이나 노무담당자의 몫’이라는 식의 생각은 노사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됐다. 더 나아가 영업실적 등의 경영사항을 가능한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음을 체감케 했다. 위기의식의 공유였다.

이렇게 해서 얻고자 한 바는 바로 ‘가부장적인 노사문화의 퇴출’이었다. 경영진은 지시하고 종업원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권위적인 노사관 때문에 불필요한 대립과 투쟁이 야기된다는 판단에서다. 그 빈 자리에는 이해와 타협, 일자리 보장이라는 새로운 노사문화가 싹을 틔웠다. 인적 구조조정은 없는 대신에 노사관계의 구조조정이 이뤄진 셈이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노조와 직원들도 점차 변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적극적인 고통 분담으로 회사 살리기에 동참했다. 고온의 작업장의 특성상 1시간 일하고 30분 쉬던 근무형태를 2시간 간격으로 늘리는데 동의했고,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연속으로 단 한 차례의 임금협상으로 타결 지었다. 이런 노력은 2001년 2월 감격적인 ‘차입금 0 선언’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임직원들은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노사가 똘똘 뭉쳐 다 죽은 회사를 되살려낸 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일까?

CBS경제부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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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협의회 "일한 만큼 나눠 갖는다" -포스코

"용광로 없이 쇳물을 생산하는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로 세계 철강 역사 바꿔", "2분기 영업이익 1조2470억원으로 삼성전자 제압", "연간 조강 생산량 3000만톤으로 세계 4위"

지난 1968년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창사이념을 내걸고 경북 포항의 모래벌판에서 시작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한 포스코의 현주소다. 포스코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임직원들의 헌신과 끊임없는 기술개발, 치밀한 경영전략, 투명한 지배구조 등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여기에 포스코만의 독특한 노사관계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포스코에는 노동조합을 사실상 대신하는 노경협의회가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와 '경영자'가 협의하는 기구라는 뜻이다. 이 노경협의회가 지난 3월 '우리회사 주식 사랑하기' 운동을 제안했다. 세계 철강업계의 적대적인 인수·합병에 맞서 포스코를 지키기 위해 직원들이 나서서 자사 주식을 한 주라도 더 사자는 취지였다.

당시 포스코 주가가 주당 30만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직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그 때 주식을 산 직원들은 포스코 주가가 현재 50만원대 중반까지 올랐으나 회사를 지키기 위해 산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경협의회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노경협의회는 임금에서도 일을 한 만큼 받는다는 방침을 채택하고 있다. 포스코 노경협의회 활동 기본방향은 "노경협의회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성장의 결과를 공유하고자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직원들이 원가절감 등을 통해 성장에 기여하면 회사가 영업이익의 5.5%를 성과급으로 나누어 준다는 뜻이다. 실제로 포스코는 지난해 3조9000억원의 영업이익 가운데 2000억원을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직원 한 사람당 평균 1100여만원 꼴이었다.

이 때문에 노경협의회는 올해 임금 인상을 협의할 때도 유연성을 발휘했다. 올해 임금을 결정한 지난해 임금협의 때 회사는 동결안을 내놨다. 갈수록 격화되는 국제경쟁 등 안팎의 상황을 감안할 때 임금을 올릴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노경위원회 근로자위원측은 구체적인 상승률을 제시하지 않은 채 "성과급이 줄면서 2005년 비해 300만원이 감소한 2006년 연봉 하락분을 보전하고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기본급 2% 인상이었다.

포스코 노경협의회는 지난 1997년 11월 17일 출범했다. 근로자위원과 경영자위원 각각 10명씩 20명과 부문별, 부별, 공장별협의회에 각각 418명의 기초위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임금인상에서부터 근무환경 개선, 생산성 향상 등의 현안을 놓고 각 급별로 다양한 협의를 벌인다.

특히 일년에 한,두 차례 정도는 최고경영자와 그리고 분기에 한 차례씩은 사장·부사장과 대화의 자리를 갖고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거나 회사의 정책을 설명듣는다. 이같은 자리를 통해 포스코 노경협의회는 지금까지 임금을 비롯해 근무제도 개선과 복리제도 등 133건을 협의했고 이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는 법적 의무 여부와는 관계없이 모두 이행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 노경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직원 대표가 최고경영자를 직접 만나 직원들의 의견과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반대로 회사의 경영 방침을 직접 듣고 현장에 전할 수 있다"며 "노사관계의 기본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최고경영자에서부터 현장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그물망처럼 짜인 대화의 구조와 "일 한 만큼 나누어 갖는다"는 유연한 생각이야말로 글로벌기업 포스코의 오늘날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CBS경제부 조근호 기자 chokeunho21@cbs.co.kr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⑥ 산별노조 무엇이 문제인가

'산별노조' 노사대립 끝내고 '한국적 모델'을 찾아라

올해 초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던 노사관계가 하반기 들어 산별교섭이 본격화하며 불안한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규모 기업별노조들이 대거 산별노조로 전환한 뒤 사용자측과 본격적인 교섭에 나서는 첫해로 산별노조 체제에 대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여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별교섭, 특히 중앙 차원의 교섭을 하고 있는 산별노조로는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금융노조가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업체들이 산별교섭 불참을 선언한 이후 18일부터 부분파업에 돌입하는 등 총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측은 우리나라 산별노조에 대해 이중,삼중 교섭을 벌여야만하는 구조로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산별노조 시스템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금속노조 행보가 시금석

산별노조 결성 움직임은 대세지만 산별교섭은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금융노조를 제외하고는 아직 미미한 상태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내에 총 50개 산별노조에 모두 84만명의 산별노조원이 가입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전체 노조원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치다.

특히 14만 3천여명의 조합원으로 최대 세력인 금속노조의 행보가 앞으로 산별노조 체제의 안착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정희 금속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산별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며 선진국인 유럽에서는 독일이 전형적인데 산별노조를 통해 노사간의 협력 문화가 형성된 측면이 있고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 하청 관계 등을 볼 때 현재의 일방적 종속관계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산별노조의 대세론을 설명했다.

이 실장은 또 “노사의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자본에게 맡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산별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면서 “산별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는 결국 사용자들의 전향적인 태도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여론은 산별노조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산별노조 활동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산별교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파업의 목적이 단체협상에 관한 것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금속노조는 지난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체결 저지 파업을 강행했고 현대차 지부에서조차 이례적으로 조합원들의 반대가 거세게 일었다. 또 사용자측과 산별교섭 결렬 이유로 금속노조가 18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산별노조 체제하에서는 전국 단위의 정치파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사용자측의 주장이 현실로 나타나자 일반국민은 물론 조합원들조차 산별노조의 활동에 대해 비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파업에 우려 목소리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박사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파업을 보면 임금 문제 등 근로자의 권익향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등이 단위사업장에 개입하면서 정치적인 이슈로 부각시키는 등 정치파업화 시키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현장 조합원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고 파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조합원이나 지부 차원의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경직된 의사결정 체계도 지적했다.

박성준 박사는 “금속노조는 중앙 지도부와 현대차지부 집행부간 역학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이며 금속노조의 지배구조 문제도 산별노조의 안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가 18일부터 시작한 산별파업에 불참하기로 한 것은 금속노조의 지배구조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우리나라 산별교섭은 독일 등 외국의 경우와 달리 무늬만 가진 외형상 산별노조일 뿐 실제적으로 기업별 교섭에 중앙교섭을 추가하는 다중교섭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독일 금속노조의 경우는 산별파업만 가능하고 기업 차원의 파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앙 뿐만 아니라 각 사업장에서도 쟁의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앙교섭과 지부교섭그리고 지회교섭이 결렬될 경우 모두 쟁의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숫자적으로도 3번의 파업이 가능한 상황이 된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1년내내 교섭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독일의 경우는 산별노조 위원장만이 쟁의행위권이 있기 때문에 중앙교섭에서 무파업을 선언하면 파업은 불가능하다.

독일 공공서비스 노조 협상담당관 세바스티안 오토만씨는 “1차적으로 중앙에서 사용자단체와 협의를 끝내면 사실상 모든 지부가 이를 따르는 형태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또 교섭내용만 보더라도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대기업이 산별교섭 참여를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산별노조 흐름 역행"

최재환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은 “산별은 기업별 노조의 기득권을 내놓는 것인데 우리나라 노조는 기업별노조에 산별노조를 얹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는 지구상에서는 없는것”이고 “우리 현실을 고려한 답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외국의 경우는 80년대 이후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로 전환되고 있는 현상이 매우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최근에 와서야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 중심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세계 산별노조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전무는 “세계적인 추세는 기업별 교섭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는 기업별로 여건이 다 다르기 때문인데 우리나라가 산별로 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글로벌 트렌드에도 역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승철 전무는 또 “기본적으로 교섭은 노사 자율이기 때문에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파업을 하게 되면 이는 불법 노동행위이며 이런 파업에 대해서는 많은 기업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결국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산별교섭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가 기업에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심어줘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금속노조의 FTA 정치파업 강행으로 사용자들의 산별노조에 대한 우려감을 더 증폭시켰다”고 말했다.

배 본부장은 또 “산별체제는 중요한 개혁의 방향성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하는데도 지금은 정서적인 거부감이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항상 위험성과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즉, 앞으로 노조와 사용자측은 산별교섭 구조와 의제 등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노사 모두 우려하는 부분을 줄여가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민노총은 대기업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작년에 산별전환 투표를 해서 산별로 전환한 것이다”며 “경제 이익 중심의 운동 극복하고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기 위해 산별노조로 가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우문숙 대변인 또 “우리도 처음이라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가 나와서 계속 교섭을 하고 서로 같이 변화 발전시켜야 하는데 민노총이 없어져야 대화 하겠다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며 “대기업 사용자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안 들어오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산별노조 체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측에서도 노동계와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해야하고 독일의 산별노조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노동계와 사용자측이 진지하게 논의한 뒤 한국식 모델을 찾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박사는 “사용자단체는 합리적인 수준의 교섭위원 선정이나 상급단체 지침 등의 이유로 쟁의행위를 하지 않을 것, 이중교섭과 이중쟁의행위 금지 등 교섭의 전제조건을 먼저 제시하는 등 산별교섭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들을 정하고 노동계와 적극 대화에 임해야"하며 "노동계도 대립구도를 벗어나 한국에 맞는 산별노조를 사용자측과 함께 창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산별노조의 본거지'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독일은 유럽 산별노조의 본거지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독일의 산별노조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 독일의 산별노조는 우리 현실에 맞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독일은 우리나라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같은 전국단위의 노동조합인 독일노동조합연맹(DGB)이 있다. 독일노동조합연맹(DGB)는 독일 노동계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노동조합으로 16개 하부 노동조합조직과 940만명의 조합원을 대표하고 있다.

독일, 정치파업 상상 못해

DGB에 속한 대표적인 산별노동조합은 310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금속노동조합(IG Metal)이다. 우리나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같은 성격이다.

독일의 DGB와 함께 독일 노동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용자단체는 약80%의 기업이 가입해 있는 독일사용자협회(BDA)다.

독일노동조합연맹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회적 협의 등에서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사용자협회(BDA)는 우리나라의 경영자총연합회와 비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독일의 산별교섭과 한국의 산별교섭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독일의 단체교섭은 일반적으로 지구별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금속노동조합(IG Metal)은 헤센(Hessen)주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지구 집행부를 두고 있는데 이 지구 집행부가 헤센주의 금속산업 사용자단체와 교섭을 벌이게된다.

이렇게 한 교섭지구에서 체결된 산별 노사간 단체협약은 전국의 해당 근로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이처럼 독일은 단 한 차례 단체교섭으로 교섭을 종료하게 되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교섭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사정이 다르다.

독일과 같이 1차례로 교섭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별중앙교섭 뒤 지역별 지부교섭 그리고 사업장별 지회교섭 실시 등 무려 3중교섭이 이뤄지는 형태로 어떤 경우에는 1년 동안 교섭만 진행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나나타고 있다.

또 한국에는 쟁의권이 산별노조 위원장에게 주어지지만 이와 별도로 각 사업장 단위에서도 쟁의권이 부여돼 있다. 따라서 3중교섭을 하게되면 결국 3차례의 쟁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쟁의행위가 증가하고 노동쟁의가 장기화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산별노조 위원장에게만 쟁의권이 주어지고 사업장 단위의 쟁의행위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한 파업에 대해서는 독일에서는 불가능하다.

'1년 내내 교섭' 경우도

파업의 목적이 단체협상에 관한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자유무역(FTA)에 반대하는 목적으로 파업을 한다는 것은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정치적 사안을 가지고 대정부 투쟁에 지부 조합원들이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인해 각 기업들이 산별노조의 정치파업으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별교섭에는 대기업에서부터 중소영세기업까지 규모와 경영여건이 다른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게 된다. 대기업의 근로여건과 중소기업의 근로여건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하지만 산별노조에서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대기업에도 같이 적용하자고 교섭을 요구할 경우 대기업에서는 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산별교섭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불합리성을 보완하기위해서는 산별교섭이 이루어진 이후에 각 기업별로 보충교섭을 해야하는데 이런 2중 교섭구조가 기업과 노조 모두에게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의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는 초기부터 산별노조 중심의 노사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기업간의 근로조건 격차가 크지 않아 우리나라와는 달리 비교적 획일적 적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실정에 맞는 모델 고민해야

다만 독일 통일 이후 구 동독지역이나 도산 위기에 있는 기업들이 산별교섭 뒤 노사간의 합의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등 기업별 교섭이 예전에 비해 늘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밖에 우리나라 산별교섭의 협약 유효기간은 고작 1년이기 때문에 1년 내내 교섭에만 몰두해야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교섭을 위한 비용이 지나친 구조라는 얘기다.

그러나 독일 산별교섭의 협약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유효기간이 2년 이상 장기화된 상태다. 다만 임금협약만 1년마다 체결하도록 돼 있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속노조가 산별교섭을 벌이면서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4사에 대해서 기업지부를 인정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이같은 기업지부를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근로조건 등의 격차가 큰 대기업의 특수성을 감안한 것인데 결국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는 노동계가 주장하는 산별정신과도 모순되는 점이 있다. 산별노조의 모범이라는 독일의 산별노조와 한국의 산별노조는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와 사용자 단체가 함께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산별노조를 만드느냐에 대한 고민을 모두 진지하게 해야 할 때다.

베를린=CBS경제부 김대훈 기자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⑦ 변화하고 있는 세계 노동시장

정보화·세계화 물결…'값비싼 노동력' 설자리 잃어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러프킨은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현대 사회의 대량 실업사태를 경고했다. 그 요인은 과학기술 진보의 결과로 등장한 ‘실리콘 칼라 노동자’. “전기 플러그가 끼워진 채 피곤도 모르고 급여도 필요없는 이 기계들이 인간의 노동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발달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으로부터 소외시켜 유토피아 대신 디스토피아를 건네준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세계화라는 흐름까지 가세하면서 노동시장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있다.

장기고용 관행은 옛말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우리 사회의 만성적 실업난을 보더라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남아있으면 도둑),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으로 표현되는 ‘고용없는 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노동 소외론에 대해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계 노동시장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앞서 노동시장의 변화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지금 어디쯤 와있는가?

먼저 미국을 보자.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제도와 문화는 글로벌 스탠더드나 다름없다. 미국의 노동시장은 현재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 기업에서의 일상적이고 무차별적인 감원은 과거에는 없던 일이다.

출근해보니 핑크 슬립(Pink Slip. 해고통지서)이 놓여 있다든지, 심지어 문자메시지를 통해 해고 사실을 통보하는 식의 삭막한 관행은 1980년대 이후에나 나타났다.

정보화, 세계화에 따른 자본의 논리가 득세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저개발국의 낮은 임금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자국의 비싼 노동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같은 고용불안 현상은 1996년 뉴욕타임스가 ‘미국의 다운사이징’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용 위기는 그 후에도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미국경영자협회의 1994년 조사에 따르면 어지간한 기업의 절반 이상은 감원을 실시했고 그 규모는 전체 인력의 10%에 달했다. 이에 따라 평생 고용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이상의 장기 고용 관행은 완전히 옛말이 돼버렸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1998년 기준 각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프랑스 11.3년, 독일 10.4년인데 비해 미국은 6.6년에 불과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처럼 고용 자체가 불안하다보니 노사간 힘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의 노조조직률은 1950년대 중반에 35%까지 올라갔지만 1975년 23.5% → 1983년 20.1% → 1993년 15.1% → 2006년 12.0%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36.2%에 이르는 공공부문(교사, 경찰 등) 노조를 제외하면 민간부문은 7.4%에 불과하다. 이는 사상 최저라는 우리나라의 2005년 말 노조조직률 10.3%보다도 낮은 것이다.

이와 관련, 멤피스대학의 어네스트 릿지 교수(노동법)는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 증가하고 같은 미국내에서도 북부에서 남부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기업이 늘면서 노조가 없어지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산업시설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의 남부와 서부지역에서는 기업 유치를 위해 일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법률(Right to Work)까지 두고 있다. 노조 가입을 강요하는 관행을 차단함으로써 기업주의 편의를 봐준 것이다.

美 민간 노조조직률 7.4%

릿지 교수는 “이런 현상들이 과거에는 노조 가입을 의무로 여겨왔던 노동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노동단체에서 전통적으로 이뤄지던 정치개입 문제에 대해서도 반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는 주로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해왔는데 최근에는 ‘공화당은 반(反) 노조, 민주당은 친(親) 노조’라는 공식이 모호해졌다. 뿐만 아니라 노조의 회비가 정치인을 위해 쓰여지는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아졌다는 것.

이처럼 노조의 힘이 약화됨에 따라 미국사회에서도 파업은 흔치 않은 일이 되고있다. 1천명 이상 사업장 기준 파업 건수는 1974년 424건 → 1980년 187건 → 1993년 35건 → 2003년 14건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자동차 제국 미국의 대표 기업인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올해 단체교섭도 예년만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주미 대사관의 정지원 노무관은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모두 경영난을 겪으면서 대량 정리해고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노사 모두 협상폭이 상당히 좁은 상태에 있고 파업 가능성도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업계의 단체협상은 3개사 가운데 1개사가 선도하고 2개사는 이를 따라가는 패턴교섭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4년 전부터는 동시교섭을 진행하는 등 노조의 입지가 약해졌다. 그나마 민간 부문에 비해 아직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공공부문 노조에서도 보수화 경향은 뚜렷하다.

1950년대 경찰과 소방관, 교사, 지하철 요원 등을 망라한 공공부문에 대해 노조 설립이 허용됐지만 아직까지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만 인정될 뿐 단체행동권(파업권) 확보는 요원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은 실패작"

뉴욕주 공공부문 노동쟁의 중재위원회(PERB)의 안소니 줌볼로 국장은 “뉴욕주의 경우 몇 년 전 대중교통운전자들의 파업이 있긴 했지만 80년대 이후에는 공무원 파업이 아주 적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전교조와 비슷한 성격인 뉴욕주 공립학교 교원노조(NYSUT)의 폴린 킨셀라 이사는 “파업이 불법임에도 어떨 때는 파업을 하기도 한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10년간은 파업을 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파업은 노동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며 실제로 어떤 해결점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히 노동세력의 후퇴 내지 침체로 불릴 만한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 노동운동의 본산인 유럽, 특히 잘 조직화된 산별노조로 유명한 독일에서도 이런 일은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다.

1986년 40%에 육박했던 노조조직률은 2002년 들어 22%까지 떨어졌다.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색채가 강한 독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노조의 영향력은 예전과 같지 않다. 또 콜 정부 이후부터 중소기업 노동자의 해고와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 조항이 완화되는 등 장기 고용 관행이 계속해서 약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 노사문화의 특성이자 자랑인 산업별 교섭도 개별 기업노조에 일부 결정권을 위임하는 ‘분권화’가 진행되면서 그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는 한때 10%를 넘어서기도 했던 높은 실업률과 무관치 않다. 일자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임금인상이나 복지를 거론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 한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화,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노동세력의 위축은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인가? 노동의 미래는 과연 비관적이기만 한 것일까?

명쾌한 해답을 찾기는 아직 어렵다. 단국대 신은종 교수(경영)는 “과도기, 개편기임은 분명한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지 확실한 것은, 기업은 세계화란 환경변화를 일찍이 간파하고 적응해온데 반해 노조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불일치가 지금의 노사간 힘의 불균형, 혹은 노동의 열세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선진국의 노조들은 5,60년대 풍요의 시대에 구가했던 공세적 교섭주의에서 한 발 물러선 채 우선 고용부터 안정시키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미 대규모 감원을 경험한 GM의 경우 추가 감원 가능성에 대비해 노사 합동으로 종업원들의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와 관련,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최근 발언이 흥미롭다. 그는 “우리만 ‘전투적 조합주의’에 빠져 열심히 싸우다보니 한국의 노동운동이 ‘교범’이고 가장 잘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의 노동운동이 완전 실패했다”로 이어지는 그의 말이 지나친 감은 없지 않지만 자성의 계기를 던진 것만 분명해 보인다.

"노조 가입이 의무라는 생각은 바뀌고 있다" -美 릿지 교수 인터뷰

테네시주 멤피스대학의 어네스트 릿지 교수(법학)는 낡은 승용차와 검소한 옷차림에서부터 친(親) 노동적인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도 미국 노동운동의 퇴조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비춰지는 듯 했다.

▶미국내 노조활동이 약화되는 게 사실인가

= 1940년대에는 노조조직률이 30%였지만 지금은 8% 정도로 낮아졌다. 전반적으로 근로조건이 좋아져서 그런 것 같다. 과거에는 공화당은 반(反) 노조, 민주당은 친(親) 노조라는 공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호해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 미국의 산업구조가 바뀌고 제조업이 후퇴하면서 노조관련 산업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또 경쟁력을 잃은 제조업이 해외로 나가는 일이 많아지고 북부에서 남부로 생산시설을 옮기면서 노조가 없어지기도 한다. 남부나 서부주에는 ‘Right to Work’라는 법이 있는데 노조에 가입하기 싫은 사람에게 노조 가입이나 회비 납부를 강요하는 관행을 막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과거에는 노조 가입을 의무라고 여겨온 노동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다.

▶노조의 미래를 전망해달라

=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산업은 노조와 기업의 관계가 경쟁적이지만 하이테크 산업은 주로 상생관계로 돌아갈 것 같다. 일부 기업들은 노조 결성 자체를 오히려 장려하기도 한다. 종업원들의 요구사항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근 노동 현안은 무엇인가

= 요즘 새로운 형태의 노동문제는 회사가 일부러 도산해 종업원들에게 지급할 연금을 떼어먹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는 재정적자 때문에 연방정부도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연금을 지급해왔지만 이제는 종업원들이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노조의 정치파업에 대해 어떻게 보나

= 미국에도 비슷한 관행이 있었다. 민주당은 노조의 지지를 받아왔는데 최근에는 반대 의견도 있다. 노조의 존재 이유는 종업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급여를 주는 것이지 정치개입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또 노조도 로비를 하는데 주로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대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낸 노조회비를 정치인들을 위해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강하다.

멤피스= CBS경제부 홍제표 기자

 

미국 노동운동의 영광과 몰락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하나의 불꽃은 짓밟을 수 있지만 사면팔방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는 불꽃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노동운동가 오거스트 스파이스의 유명한 법정 최후 진술이다.

그는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일어난 유혈시위에 연루돼 직접적인 책임이 없었음에도 사형이 집행됐다. 후에 세계 진보진영은 이 사건을 기려 매년 5월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정했다.

이처럼 미국의 노동운동은 한때 세계를 주도했고 그만큼 치열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미국은 유럽에 비해 산업화가 늦었던 만큼 노동환경은 열악했고 저항 또한 그만큼 컸다.

칼 마르크스의 딸은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상이 영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했다. 그런 영국도 그 얼마 전까지는 여성과 아동노동 착취 국가였다.

결국 헤이마켓 사건과 이후 연방군대의 투입 사태까지 부른 풀만 파업 등을 거치며 미국의 노동자들은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마치 전태일로 촉발된 한국의 노동운동이 군부독재의 시련기를 지나 87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활짝 꽃 피운 것처럼.

현재 미국노총(AFL-CIO)의 한 축인 노동총연맹(AFL)이 결성되고 노동3권과 8시간 노동제 등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 불타오른 것도 대략 이 시기의 일이다.

이러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보답 받았다. 전후 유례없는 호황속에 노동조합도 잉여의 분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

이는 곧 노조조직률과 영향력 증대로 이어졌고 급기야 노조는 고용이나 해고 등의 경영행위에까지 개입하는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노동운동의 퇴조는 그 정점에서 시작됐다. 비대해진 노조는 관료주의, 부패, 노동귀족과 같은 병폐를 낳았고 이에 실망한 조합원들은 노조를 떠나갔다.

결정적인 계기는 세계화, 정보화에 따른 경제환경 변화였다. 자본은 기민하게 대응한 반면 노동은 무기력으로 일관하다 비전 제시에 실패했다. 그 결과는 비(非) 노조 기업의 확산과 노조조직률 급감이었다.

단국대 신은종 교수는 “미국 노동운동은 공공부문 외에는 거의 망했다고 본다”고 단언했다. 노동이 대중과 시대정신으로부터 괴리되는 순간 몰락은 이미 예고됐다.

뉴욕=CBS경제부 홍제표 기자



[CBS노컷뉴스 기획특집-新노사문화를 열자] ⑧ 노사상생 한국적 모델 만들 수 있나

"양보-협력 앞세운 '노사상생 틀' 마련 시급"


CBS노컷뉴스 기획특집 <신(新) 노사문화를 열자> 마지막 순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와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상무를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한준부 CBS 경제부장의 사회로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노사관계는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을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하고 노사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전망과 충고를 내놓았다.


-한준부 부장 (이하 한) = 최근 우리 경제가 완연한 회복국면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많은 걸림돌이 있어서 안심할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노사문제가 우리 경제의 중요한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노사문제가 우리 경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이하 이) =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성장잠재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현재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지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위한 투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노사관계이다.

노사관계가 불안하면 기업으로서는 중장기적인 투자를 하기가 어렵고, 특히 외국인 투자 입장에서는 노사관계가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노사관계는 우리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을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

장상수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이하 장) = 지난 몇 년동안 해외의 초우량 기업을 둘러봤는데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의 공통점은 안정된 노사관계였다. 노사관계가 불안한 상태에서 기업체가 성장할 수 없고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면 국가경제 또한 성장하기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노사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한) = 최근 노동계가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 상황을 평가한다면?

▶이) = 최근 노사관계를 보면 사업장 단위에서는 좋아진 반면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같은 중앙단위, 상급단위에서는 나빠진 것이 특징이다. 현장에서는 좋아지고 있는데 노조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상급단위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상급단체 가운데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다른데 민주노총은 정치파업이라든지, 노사간 경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 = 한국 노동계는 지난 20년 동안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고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마무리단계에 온 만큼 노사간에 또 노사정 3자간에 성장통이랄까 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갈길이 멀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견주어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상급 단위에선 갈등·대립 여전

-한) = 노동현장에서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한미FTA반대 파업에 대한 현장의 거부 움직임도 있었고 한국노총의 경우는 민주노총의 강경투쟁 일변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지?

▶장) =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변화의 물결이 그리 크지는 않다. 시발점이라는 느낌이 들고 특히 이번에 산별노조 파업투쟁에 대해 현대차라든지 현장에서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미국과의 FTA라든지 EU와 일본, 중국과의 FTA가 머지 않아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게 되는데 그때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한다면 국가경제 성장은 크게 지장을 받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이) = 변화의 움직임은 확실한 것 같은데 속도는 느리다. 노동계 내에서도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데 그동안 노동계의 여러 가지 투쟁이 결국은 노동계에 도움도 주지 못하고 노동계에 피해를 줬다는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변화는 한국노총은 위에서 시작되고 있고 민주노총은 아래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속도는 느리지만 변화는 있는 것 같은데 속도가 더 빨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노사관계 안정이 선결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요성을 다시 한번 설명한다면?

▶이) = 최근 우리 기업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 환율인데 현대차 경영진에게 물어보면 환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노조라고 한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 20년동안 파업을 하지 않은 해가 한 해밖에 없었고 19번 파업했다. 그러다 보니 현대차가 정상적인 경영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그 결과로 현대차의 해외투자가 더 가속화되고 국내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종업원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현대차 노조원도 줄어들고 있다.

그런 것들이 결국 우리의 일자리를 줄이는 자해행위가 된다. 반대로 현대차의 가장 큰 경쟁상대인 도요타는 50년동안 무분규로 협력적 노사관계를 해왔고 엄청난 품질향상을 기해서 세계 1등의 자동차 회사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관계 불안은 한 기업이 다른 나라로 사업장을 옮기게 되고 설비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품질경쟁에서 밀리게 되는 요인이다. 나아가 노사관계는 국가경쟁력 확보차원에서 더 중요한 것이다.


노조 조직률 하락 세계적 추세

-한) =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세계 각국의 노동현장을 취재해 보니까 외국도 노동운동에 큰 변화의 움직임 있는 것 같다. 세계적 조류는 어떤지?

▶장) = 노동계의 세계적 조류는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노조 조직률의 하락이다. 영국, 미국, 일본, 독일을 보면 지난 20년 동안 많게는 절반 또는 4분의 1 조직률이 떨어졌다. 노조 조직률 하락은 산업구조 변화와 노조운동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신세대 출현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법적인 측면의 효과도 큰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노조를 설립하려면 30%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후 노조설립에 대한 찬반 켐페인을 거친 뒤 전 대상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해서 50%이상 찬성해야 설립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2명만 양식을 제대로 작성해서 신고하면 노조가 설립되는데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두 번째는 단체협상의 분권화와 양보 교섭의 확산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산별노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태리나 프랑스는 사실 기업별 교섭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런 나라들의 10년, 20년 전의 것을 가지고 자꾸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세계 흐름에 너무 뒤처지는 것 같다.

세 번째는 노사관계도 집단관계 보다는 개별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IT기술의 확산과 시스템의 진보에 의해 집단적인 또는 획일화된 것보다는 개인의 다양한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하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사협력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를 보면 90년대부터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과가 높은 조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갈등과 대립으로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 선진국가들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다고 할 수 있다.선진국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소탐대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계는 당장의 임금투쟁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요타의 경우는 직원들이 1조엔이상의 이익을 4,5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자발적으로 기본급을 동결했다.

그렇지만 노사가 합심해서 세계 1위자리를 획득하고 나서 도요타의 주식은 엄청나게 올랐다. 우리사주를 받은 노조원을 포함한 임직원들이 최대 1억엔, 우리돈 10억원의 자본 이득을 올렸다. 예를들어 매년 투쟁을 통해서 임금을 연간 천만원 올렸다고 하고 30년근속을 했다고 하면 3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노동계가 소탐대실로 빠져서 오히려 밥그릇까지 깨트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 세계 노동시장은 전체적으로 대립과 갈등에서 양보와 타협으로 변하고 있는데 사실 양보와 협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 무역 증가율이 연 15%에 이르고, 글로벌 투자가 확산되고 있고, 기업의 다국적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기업의 이윤을 노조가 운동을 통해 임금으로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 그렇게 한다면 기업들이 결국 못견디고 다른 나라로 가버린다.

그런 차원에서 노동운동 자체가 변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미국 최고의 강성노조인 미국 자동차노조 때문에 GM이나 포드가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고 그 회사에서 발행한 회사채가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런 노조들 조차도 최근에 많이 변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선진국은 정치투쟁이나 무리한 근로조건 개선보다는 오히려 회사를 살려서 기업이 없으면 근로자도 없고 노조도 없다는 인식을 갖고 노조와 사용자가 공동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 국내의 경우는 전체 노조가 아닌 일부 대기업 노조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노조들이 고용안정에 대한 보장이 없어지면서 강경노선으로 돌아섰다고 생각된다. 외국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려운데 우리 노조들이 강경하게 나갈 수 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장) = 좋은 지적이다. 도요타의 경우를 다시 얘기하면 노조의 역대 서기장과 현 서기장을 만나서 파업이 50년 넘게 없었다는 것, 그리고 기본급을 동결했다는 것은 노조가 유명무실하거나 어용노조가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대해 도요타 노조에서는 고용보장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정규직 대한 고용보장을 해주는 대신 생산성 향상에 적극 협조하고, 이에따라 회사가 성장하면 남은 파이에 대해서는 노사간에 공정하게 분배를 하고 있다.

이중교섭·이중파업 문제

-한) = 최근 금속노조의 파업 등 산별노조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

▶이) = 산별노조 파업은 지난번 한미FTA반대 파업이 처음이었는데 그 파업은 명백한 정치파업이고 불법파업이다. 여기에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켰어야 하는데 못한 부분이 있었다. 지금 또 기업들이 산별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하면서 파업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장 단위의 교섭은 그대로 놔두고 또 산별교섭을 하라고 하니까 당연히 기업들은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파업이라는 것이 사용자에게 산별교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더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정말로 산별교섭을 원한다면 파업이라는 불법적 방법을 동원할 것이 아니고 산별교섭과 사업장 단위 교섭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하는 룰을 먼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 현대차 사례가 대표적인데 산별파업에 불참하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산별체제가 현장과 괴리되는 모습도 있는 것 같은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장) = 산별노조를 구성하는 각 단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또 성장력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 현실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산별노조의 한계점이라든가 문제점이 경험되어졌고 나타났다. 우리도 현재와 같이 중앙단위에서 어떤 차이를 무시하고 노사간에 협약을 맺겠다는 것 보다는 지부 단위의 현실과 의견을 수렴해서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중앙이 아니라 지부단위로, 아니면 지역단위로 교섭이 이뤄지는게 바람직하고 단위가 내려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만일 산별교섭을 한다면 개별기업 차원의 교섭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거나 산업차원의 공통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하고 그밖에 사업장 차원의 문제를 중앙단위에서 개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한) =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 사업장별 교섭이냐 산별교섭이냐 하는 것은 제도차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관행으로 정착이 돼있고 법이나 규제는 없다. 노동계가 원하는 대로 산별노조로 가기 위해서는 사용자 유인책이 필요한데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누렸던 기득권들, 예를들어 전임자 임금 지급과 노조 사무실 제공등이 있는데 기업의 부담이 되고 있는 기득권을 일부 양보해야 한다. 또 이중교섭, 이중파업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하고, 산별교섭에서 결정된 것은 사업장 단위에서 존중을 하겠다는 약속이 이뤄지면 기업들도 산별교섭에 나설 것이다.


-한) = 정부의 책임은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인데 노사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많은 부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 = 현정부의 기본적인 정책중의 하나가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자리 창출보다는 기존 근로자를 보호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근로자 가운데 일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일자리 유지가 어렵거나 비정규직, 또 새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계층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일자리도 창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노동정책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친노동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최근 불법 파업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부가 노동계의 불법파업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하라고 하지만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는 것이다.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켜준다면 사업장 단위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고 좋은 노사관계가 이뤄질 것이다.



-한) = 차기 정부에서 중점두고 실천해야 할 노동관련 정책은 무엇인지?

▶장) = 첫째는 전체 사회비용을 최소화하고 경제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노동관련 법제가 조속해 개선돼야 한다. 이것을 통해서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인데 우리의 노동 관련법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견줘 봤을때 어느 부분이 우리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지 따져 봐야 한다.

또 기업뿐 아니라 노조의 사회적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노조의 운영과 회계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감사제를 도입한다는지 하는 방안도 필요하고, 노조 전임자 규모도 선진기업에 비해 너무 많다. 현재는 사용자가 모두 부담하고 있는데 노조도 자신들의 조합비로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부분인데 현재 노사의 당사자 주의를 많이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국내의 현실을 보면 정부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시민단체까지 개입하면서 문제가 더 꼬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은 노사 안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뤄질수 있도록 관행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또 중요한게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노사관련 법과 규제를 다음 정권에서는 과감하게 들어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가장 효과적인 복지이고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라는 것을 대선주자들이 잊어서는 안된다.

▶이) =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노사관계와 고임금인데 노사관계를 개선하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되고, 유연성을 높이려면 노사관계와 관련된 법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법이 있으되 그것이 지켜질지 안지켜질지 모르면 미래환경이 불확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차원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외국인 투자자나 국내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산업현장의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한다.


-한) =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낮은 이유중의 하나는 사회적 안전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잃으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결국 양쪽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과연 한국적 노사상생 모델이 가능할 것인지?

▶이) = 노사상생의 대표적인 모델은 현대 중공업이다. 과거 타워크레인 올라가 농성하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최근에는 12년 무분규를 비롯해 노사 상생의 모델이 되고있다. 노사가 협력하면 노사 양측이 모두 좋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 인상보다 생산성 향상을 하고 생산성 향상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과실이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윈윈전략이 필요한데 노사간에 신뢰관계가 부족한 것 같다. 노와 사가 서로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관계를 한다면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도 이룩하면서 동시에 기업은 저렴한 인건비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방법 부족

▶장) =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노사 상생의 고유한 모델이 생겨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대표적 제조업체인 도요타와 캐논을 보면 양쪽의 대표이사들이 고용보장을 선언했다. 다만 고용보장 대신에 노조에 요구한 것은 성과주의다.

회사가 성과가 좋으면 거기에 맞는 보상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노조도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고용보장만하고 임금은 매년 높게 올려달라고 하면 어려운 것이다. 또 해외 노동계 리더들의 성숙된 모습을 배워야 할 부분도 있는데 임금을 결정할 경우 노조는 조합원만 보는게 아니고 신제품 개발이나 연구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제외하고 어느정도 지불할 수 있는지 회사의 상황도 고려한다. 또 사회의 시각도 고려한다.

이같은 세가지 관점을 고려해 판단하는 성숙된 모습을 볼수 있다. 특히 노사상생의 밑바탕이 상호신뢰인데 우리가 가장 부족한 부분은 노사간에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