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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보수화? 그 이면
New Hope
2008. 5. 13. 13:02
출처 - 프레시안
'영한나라당'이 아니라 '영삼성'?
[20대 보수화? 그 이면①]"학점 4.5로도 부족해"
[프레시안 강이현,전홍기혜/기자]
올해 초 몇몇 언론에서 소위 '20대 보수화' 경향을 다뤘다. 과거 '한나라당 반대'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던 20대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0% 가까이 되는 현상을 보인 것이 계기였다. 이들 기사를 보면 20대 '보수'가 윗 세대의 '보수'와 같은지 다른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들이 올 연말 치러지는 대선에서 실제로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대 보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난 2002년 대선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여세를 이어받은 '20대 열풍'은 인터넷에서, 광장에서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이루는 데 일조했었다.
이처럼 정치적 관심에 일차적 초점이 맞춰진 '20대 보수화' 담론은 정작 20대가 보수화됐다면 왜 보수화됐는지, 보수화됐다는 이들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들의 변화가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인지는 포괄하지 못했다.
<프레시안>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전경련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동아리인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인재제일' 등의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대학'이란 공간에 대기업이 직접 만들고 후원하는 동아리가 보편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도 사회생활에 대한 간접 경험, 취업에 직ㆍ간접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인맥 등 좀 더 '현실적인 요구'로 변했다. 물론 이들 대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달라진 의미의 '대학 생활'을 자발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달라진 20대들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판단에 기반해 YLC, 인재제일 등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대학생의 일상을 그려봤다. <편집자>
'삐그덕.'
4월 마지막주 어느날 한 대학 단과대 과방. 05학번 Y 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중간고사 마지막 시험이 방금 끝났다. 그렇지만 Y 군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5월에 있을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학술제 예선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로서의 동아리 활동
다음주까지 제출해야 할 전공 과목 리포트도 있지만 Y군에게는 학술제가 더 신경쓰이는게 사실이다. 리포트는 매주 내지만, 전국단위 YLC 학술제 우승은 1년에 한 번뿐이다. 또 YLC 학술제 우승은 취업할 때 이력서 경력란에 한줄 더 쓸 게 생기는 일이다. 이날 저녁, 같은 학교 YLC 회원들 몇명과 학술제에 대한 얘기도 할 겸 모이기로 했다.
[프레시안 강이현,전홍기혜/기자]
올해 초 몇몇 언론에서 소위 '20대 보수화' 경향을 다뤘다. 과거 '한나라당 반대'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던 20대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0% 가까이 되는 현상을 보인 것이 계기였다. 이들 기사를 보면 20대 '보수'가 윗 세대의 '보수'와 같은지 다른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들이 올 연말 치러지는 대선에서 실제로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대 보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난 2002년 대선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여세를 이어받은 '20대 열풍'은 인터넷에서, 광장에서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이루는 데 일조했었다.
이처럼 정치적 관심에 일차적 초점이 맞춰진 '20대 보수화' 담론은 정작 20대가 보수화됐다면 왜 보수화됐는지, 보수화됐다는 이들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들의 변화가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인지는 포괄하지 못했다.
<프레시안>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전경련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동아리인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인재제일' 등의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대학'이란 공간에 대기업이 직접 만들고 후원하는 동아리가 보편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도 사회생활에 대한 간접 경험, 취업에 직ㆍ간접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인맥 등 좀 더 '현실적인 요구'로 변했다. 물론 이들 대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달라진 의미의 '대학 생활'을 자발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달라진 20대들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판단에 기반해 YLC, 인재제일 등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대학생의 일상을 그려봤다. <편집자>
'삐그덕.'
4월 마지막주 어느날 한 대학 단과대 과방. 05학번 Y 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중간고사 마지막 시험이 방금 끝났다. 그렇지만 Y 군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5월에 있을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학술제 예선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로서의 동아리 활동
다음주까지 제출해야 할 전공 과목 리포트도 있지만 Y군에게는 학술제가 더 신경쓰이는게 사실이다. 리포트는 매주 내지만, 전국단위 YLC 학술제 우승은 1년에 한 번뿐이다. 또 YLC 학술제 우승은 취업할 때 이력서 경력란에 한줄 더 쓸 게 생기는 일이다. 이날 저녁, 같은 학교 YLC 회원들 몇명과 학술제에 대한 얘기도 할 겸 모이기로 했다.
YLC(www.ylclub.net)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매년 주최하던 대학생 캠프인 YLC(Young Leaders' Camp)가 모체가 돼, 지난 2002년 창설된 전국 규모의 대학생 연합 동아리. 시장경제 원리를 익히기 위한 강연, 포럼, 학술제 등이 주요 활동이다. 회원들은 한 학기동안 필수포럼, 열린강연회 등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준회원'으로 승격되며 정회원이 되기 위해선 경제, 경영,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ALP(Advanced Learning Program)'를 수료해야 한다. 전경련을 매개로 기업인뿐만 아니라 교수, 정관계 인사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최근 창립 6주년을 맞아 발간한 활동자료집에 미래에셋 강창희 소장, 미래문화포럼 복거일 대표, 홍익대 김종석 교수,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 등이 축사를 써주기도 했다. 필기시험, 면접 등을 통해 매 학기 200여 명의 신입회원을 선발하며, 전국적으로 600여 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한다. 수도권 3개 지부(안암, 신촌, 관악)와 전국권 4개 지부(경남, 경북, 전라, 충청)가 있다. 전경련은 1년에 2번 열리는 총회를 비롯해 열린강연회, 필수포럼, 운동회, 학술제, 취업박람회 등 활동과 관련된 경비를 전액 지원하며, 열린강연회 초청 강사 섭외에도 도움을 준다. 활동 성적이 우수한 회원에게는 해외 산업 시찰 기회도 준다. |
"누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여기 계세요?"
두 학번 선배인 C 양이 과방에 앉아 있었다. 기업 인턴십 등 각종 활동으로 늘 바쁘게 사는 그는 Y군에게 '롤 모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C 양은 YLC 활동을 마친 선배이기도 했다.
"저녁에 L 기업 이사님 인터뷰가 있는데, 그 전에 그 분 책 좀 훑어보고 있어."
C 양은 이날도 변함없이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모드'였다. 최근 삼성이 운영하는 대학생 웹진 '인재제일'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껏 바빠진 모습이었다. Y 군 역시 다음 학기에는 C 양을 통해 알게된 '영삼성 열정운영진'에 지원해볼 생각이다.
인재제일(www.injaejeil.co.kr) 삼성인력개발원이 운영하는 대학(원)생 격월 웹진.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라는 주제 아래 1989년 종이잡지로 창간됐으며 1998년부터 웹진으로 운영돼 오고 있다. 삼성 취업정보, 기업문화, 과학기술 소개, 대학 과학동아리 탐방 기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약 15명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학생기자단'이 제일기획 등 삼성 소속 회사와 함께 기획회의를 하고 취재활동을 한다. 한 학기당 60만 원의 장학금과 함께 원고료가 지급된다. 이밖에도 기업이 운영하는 대학생 웹진으로는 LG '미래의 얼굴'(http://future.lg.co.kr), 현대 '영 모비스'(http://young.mobis.co.kr) 등이 있다. 모두 대학생들이 기자로 활동하며 소정의 장학금과 원고료를 지급한다. 영삼성(www.youngsamsung.com) 2005년부터 삼성이 운영하는 20대 포털사이트. 삼성 채용정보를 비롯해 외국어, 아르바이트, 생활·문화 정보 등 취업과 연관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삼성 기획 및 운영은 매학기 10여 명으로 구성된 '열정운영진'이 맡으며 사이트 모니터링, 취재 및 기고 등 활동을 한다. 운영진들은 소정의 활동비(학기당 120만 원) 및 해외 배낭여행비를 지급받으며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활동에 참여하면 지원을 받는다.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 2003년 개설한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영현대'(http://www.young-hyundai.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또한 현대자동차 홍보단, 리포터, 탐방대원 등의 각자 역할을 맡은 '열정운영진'이 주축이 돼 활동하고 있다. |
하긴 Y 군이 YLC에 가입하게 된 것도 C 양 덕분이었다. 그는 3학년이 되는 Y 군에게 "너도 이제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에 도움이 되는 대외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자극을 줬다. "열정만 있으면 된다"는 YLC모집 포스터를 보고 마음 놓고 있던 Y 군에게 "신입회원 경쟁률이 10대 1이 넘는다"며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고 조언한 것도 C 양이었다. 신입생 모집시험 문제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 C 양의 말대로 모집시험에서는 '원이 엔보다 평가절상된 것에 대한 해결방안을 써보라'는, 평소 상식으로는 쓰기 힘든 문제가 출제됐다.
'복학생 마인드(제대 뒤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들을 두고 이르는 말)'로 준비한 덕택에 Y군은 필기시험 며칠 후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학술제로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마침 작년 학술제에서 우승했던 C양을 과방에서 만난 Y군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누나, 누나 땐 도대체 어떻게 준비했어요?"
"불평등한 미국과 평등한 아프리카? 선택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학술제 준비? 벼락치기 한다고 뭐가 되겠니. 이것저것 상식 준비를 충실하게 해놓으면 될 거야. 기초적인 경제학 원리라든지, 한미 FTA라든지…."
"FTA! 안그래도 YLC 강연에 오시는 분들마다 강조하던데, 당연히 알아둬야겠죠?"
Y 군은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간 YLC에서 GE 코리아 이채욱 회장, 제프리 존스 전 미상공회의소장 등의 강연을 차곡차곡 들어오지 않았던가. 지난 3월에는 한미FTA체결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는 국제변호사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는 6월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강연도 있을 거라고 들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과감하게 농업을 버렸기 때문이죠. 농업인구가 50~60%일 때 미국 토지 대부분은 농장과 초목이었지만 농업인구가 대거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지금은 농업인구가 3%정도라고 들었어요. 그들이 미국인들에게 충분한 양의 농산물을 제공하는 걸 봐도 제조업 중심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단 걸 알 수 있죠."
"어느 교수님이 묻더라. 불평등한 미국이 좋은지, 아니면 평등한 아프리카가 좋은지. 난 당연히 불평등한 미국을 선택할거야.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고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니까. 개방화가 대세인데 우리에게 다가온 개방의 기회를 그냥 날려보내는 건 아깝잖아."
"사회적 약자?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끌어안으면 된다"
"그거 완전히 '파시스트'같은 발상이잖아."
생뚱맞게 대화에 끼어드는 B 군의 말에 C 양과 Y 군이 동시에 돌아봤다. 지난 학기 B 군과 같이 독서 토론를 했던 C 양은 B 군이 뭘 말하려는지 알 듯 했다. 지난해 여름 제대한 B 군은 복학한 뒤 취업 준비에 힘쓰는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집회에 참가하고 토론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그런 B 군을 두고 학과 내에서는 '독특한 선배'라고 불렀다.
"지금 네 말은 어른들의 이분법과 똑같아. 시장경제 찬성하면 다 '보수'니? 전경련에서 지원받는 YLC를 '보수 단체'라고 하지만 우린 그 안에서 우리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외국어 스터디 모임, 봉사활동 모임을 열어. 자기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그런 신자유주의적인 생각으로 사회가 좋아질 수 있을까? 그럼 일할 능력이 없는 중증장애인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은 어떡하고? 생존에 위기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더 불안해지는 거 아냐?"
"글쎄. 한국 사회의 위기는 오히려 사회적 재분배를 너무 강조해서 온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이 복지를 중시하고 세금을 많이 걷겠다고 하니까 국민들이 씀씀이를 줄이고 그만큼 생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지에 관심 없는 건 아니라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은 필요하지. 그렇지만 무조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아둥바둥 살아야 하나"
B 군과의 논쟁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과방을 나와 YLC 회원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Y 군의 시야에는 교정을 가로질러 시끌벅적 어딘가로 향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중간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쫑파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저 애들도 넋 놓고 있다간 곧 후회할 텐데.'
잠시 '쫑파티'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던 Y 군은 혼자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이 복잡해진다. 얼마 전 모두가 부러워하는 유명 대기업에 취업한 한 선배의 푸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에 가보니 서울대 출신인 나도 괴리감을 느끼더라. 우리 사무실에서 국내 대학 출신은 나 밖에 없더라고. 여기 말고도 대기업들 요즘 해외파 많이 뽑지. 우스개 소리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라고 말하기도 하거든. 취업 성공했다는 여기 사람들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더라고. 빠르면 30대 후반, 늦어도 40대에는 다시 무엇을 해야 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잘난 선배가, 취업한 다음에도 힘들어하다니…. 대체 '스펙'은 어느 정도로 좋아야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거야?' 교문을 나서는 Y 군의 발걸음은 따뜻하게 내리쬐는 봄날 햇살과 상관없이 계속 무거워진다.
"도태되는 게 두렵다" "학내 활동만으로는 내가 도태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요즘 대학생들의 활동이 '탈학교화' 추세인 건 사실이다." 인재제일 기자로 활동한 A(23) 양은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경쟁에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꼽았다. "학점 4.5를 맞아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이력서를 다채롭게 채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A 양은 "삼성이라는 메리트가 컸고, 이력서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한 뒤 바로 일하고 싶은데 교양과 전공과목 들어서는 그럴 수 없다"면서 "그래서 기업체 활동에 관심 많이 갔다"고 덧붙였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면서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 YLC 회원인 D(25) 군은 "동아리에서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주로 배우는데 이공계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이라면서 "합리적 사상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또 다른 YLC 회원인 E(23) 양은 "(전공)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인맥도 쌓을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취미, 개인적 관심사 등을 이유로 동아리를 선택하던 선배 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른 '동기'들이다. 이들은 이같은 연합 동아리 외에도 경력을 쌓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A 양은 워싱턴 견학 준비도 하고, 언론고시팀에서 공부도 하고, 학교의 리더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고, E 양도 '경영 컨설팅'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 입장에선 사회가 뻔히 보여" YLC 전 회원이면서 한나라당 정책 제안 활동을 하기도 했던 F(23) 양은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사회가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을 해도 '출발선'부터 다른 이들을 따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뻔히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조기유학 등 갔다온 사람들 보면 별로 아둥바둥 사는 것 같지 않는데 왜 한국 학생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A 양도 "사법시험 붙은 이들 중 20% 이상이 외국어고와 강남8학군 출신이라고 들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학력 제한이 없다는 이유로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의 통로로 여겨졌던 각종 고시의 합격생도 이제 대한민국 인구의 1%가 조금 넘는 강남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그래서 이들이 바람직한 사회에 대해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대답하는 것은 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아둥바둥해야 하는 '경쟁적 현실'에 '바람막이' 하나 없이 내팽겨쳐진 상태다. '대학'이란 간판이 어느 정도 이상의 직장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양극화 현상이 기업들간에도 뚜렷이 나타나 임금, 직원 복지, 고용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이상이다. 따라서 공무원이나 공기업이나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선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취업 준비 모드'로 일상 생활을 전환해야 한다. 소위 대학 본연의 '진리 탐구'나 추구하고 있다간 '비정규직'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이같은 '취업시장'에서 경쟁이 반드시 공정한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인맥'과 '빽'으로 안되는 게 드물다는 것, 또 강남 출신 등은 상류층은 이미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자원을 갖고 있어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계급의 대물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의 의미는 이런 현실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이들도 '현실의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이들이 '한줄 세우기'가 익숙한 현재의 한국사회의 질서를 긍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A 양은 "지금 한국사회는 일을 선택할 때 재미와 자부심보다 안정성, 수입, 명예를 고려한다. 외국의 어떤 놀이터 수리공의 사례를 봤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명함을 내밀 때도 삼성과 중소기업의 느낌 자체가 다르다. 이런 인식의 재배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군은 "인종, 종교, 국가를 떠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했고, 또 다른 YLC회원은 G(24) 군은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을 좇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이들은 부와 명예라는 단 하나의 잣대를 강요하는 현실을 넘어서서, 인종ㆍ성별ㆍ종교 등 차이를 '차별'이 아니라 그야말로 차이로 인정하는 사회, 가정 형편 등 현실을 떠나 누구든지 미래에 대한 꿈을 품을 수 있는 사회 등을 내다보며 현 사회체제와 인식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무섭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들이 '보수화'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과거의 여느 세대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꿈꾸고 있었다. 이들이 꿈꾸는 변화가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느냐는 것은 비단 이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
"구조조정은 해야죠…나는 빼고!"
[20대 보수화?그 이면②]노동ㆍ노동자를 보는 모순된 시선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요즘 애들한테는 희망이 없어요. 파시스트나 안 되면 다행이야."
종종 진보단체들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는 한 대학 교수가 스치듯이 한 얘기다. 대학생이 변했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한' 말이 된 지 오래다. '어른들'은 "20대들이 변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20대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 '못마땅한' 눈빛이 당황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을 8% 가까이 되는 청년실업률 속으로 내 몬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 요즘의 20대가 과거의 20대와 다른 것만은 사실이다. 주요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매번 1위는 한나라당이다. '보수적'이라는 40-50대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강의실 대신 거리에 섰던 시간이 더 많은 '선배들'과 확실히 다르다.
"민주화요? 이미 어느 정도 이룬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사회가 신경써야 할 것은 경제죠."
그러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다르다. 복지보다는 경쟁을,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구조조정 반대' 논리가 더 빈약해요"
아직 학생인 대학생들과 막 졸업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이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모순들'이었다.
"내 안정은 중요하지만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싫지만 노조에 가입하겠다",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내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맥락의 얘기를 뒤섞어 쏟아냈다.
앞으로 직업을 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이라고 하는 대학 4학년 김희정 양(가명)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경쟁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 양에게 "본인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그는 "내가 경쟁력을 키워 (구조조정) 대상에 안 끼면 된다"고 답했다.
"과연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시대에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논리가 먹힐까요? 경쟁이 세계적 추세인걸요. 오히려 저는 반대하는 쪽의 논리가 더 빈약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경쟁력을 갖춰 그 속에서 살아남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죠."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시장경제의 경쟁 논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가 한국노총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응답자의 70.1%가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마당에 이들 젊은이들 입장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다. (☞ 관련기사 보기 : 대학생 70.1%, 자본주의 긍정적으로 평가)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에 따라 밀려나야 할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적응 방법은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자'에 포함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초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는 것.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김동운 씨는 "친구들 가운데 소위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이 되는 아이들은 모두 공기업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니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고시 공부'에 매달리지요. 대기업은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노동조합? 내 방패막이가 되어 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시선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ㄱ기업에서 1년 계약의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26)는 "잦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우리 기업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서도 그는 "지나친 규제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 막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기업 활동의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면서는 "우리 회사의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종 사회적 현안에 노동조합이 나서는 것을 '삐딱'하게 보면서도, 자신의 '방패막이'로서의 노조는 긍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관점은, 앞의 한국노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현재의 노동운동이 투쟁위주의 운동노선으로 인해 외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70% 가까이 됐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20대의 변화는 향후 노동운동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노동운동가는 "지금의 20대가 조합원들의 다수가 되는 10년 후면 노동운동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무리 취업난이어도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 받고 싶다"
노동, 즉 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20대에게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삶의 질 또한 중요하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벼랑 끝까지 내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노동은 자아실현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해 H대기업에 입사한 문재희 씨(24, 가명)는 "이력서를 낼 회사를 선택한 기준은 복지후생이었다"고 말했다. 적절한 휴가와 지나치게 '빡빡하지' 않은 근로환경이 우선 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대학생들 역시 대부분 "일한만큼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이다. 취업정보사이트인 인크루트가 260개의 중소·대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신입사원의 평균 퇴사비율은 28.8%였다. 그렇게 어렵다는 취업난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사원이 10명 중 3명 꼴인 것이다.
입사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김모 씨(28)는 지금 다른 기업에의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일은 너무 많고 월급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인크루트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사무직과 대기업 생산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5042명 가운데 3179명(63%)이 대기업 생산직을 골랐다.
과거 같으면 사무직을 더 선호했겠지만 지금은 기름때가 묻더라도 더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수? No!"…"노무현 정권, '진보'아닌 것들로 '진보' 채워 놓아"
20대의 이같은 '실리주의적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라는 큰 태풍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환위기 때 부모가 명예퇴직 당하고 하루 아침에 가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현재의 20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적인 마인드가 유독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대학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20대가 주로 접하게 되는 '생각'은 사회 주류의 것들뿐이다. 부모의 영향력도 과거보다 막대해졌다. 80년대의 20대는 상당수가 그들의 부모보다 나은 학벌에 더 '똑똑한' 자식이었지만 지금의 20대는 부모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0대 구직자 1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7%가 구직활동 시 부모의 관여도가 크다고 답했다. 심지어는 부모가 채용 문의를 하거나 면접시험에 동행했다는 응답도 각각 9.5%, 3.4%였다. 부모 세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실제 한 대학에서 만난 김희정 양은 "취업 문제를 부모님과 가장 많이 상의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에서 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혼재ㆍ왜곡돼 사용되는 것도 20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다. 한 대학생은 "한미FTA 같은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3년간 C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시간강사는 "20대는 아직 가치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시기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노무현 정권은 진보가 아닌 것들을 '진보'라는 개념 속에 담아둠으로써 학생들의 생각에 혼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회 통념상 '보수'에 속하는 것들을 노무현 정권이 '진보'라고 주장함으로써 '진보'의 개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20대의 주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며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강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이 시간강사는 "온갖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며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노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에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20대의 이율배반적인 사고들, 그리고 그것들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의식구조는 요즘 20대들의 '생각 없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순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여정민/기자 (ddonggri@pressian.com)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요즘 애들한테는 희망이 없어요. 파시스트나 안 되면 다행이야."
종종 진보단체들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는 한 대학 교수가 스치듯이 한 얘기다. 대학생이 변했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한' 말이 된 지 오래다. '어른들'은 "20대들이 변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20대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 '못마땅한' 눈빛이 당황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을 8% 가까이 되는 청년실업률 속으로 내 몬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 요즘의 20대가 과거의 20대와 다른 것만은 사실이다. 주요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매번 1위는 한나라당이다. '보수적'이라는 40-50대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강의실 대신 거리에 섰던 시간이 더 많은 '선배들'과 확실히 다르다.
"민주화요? 이미 어느 정도 이룬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사회가 신경써야 할 것은 경제죠."
그러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다르다. 복지보다는 경쟁을,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구조조정 반대' 논리가 더 빈약해요"
아직 학생인 대학생들과 막 졸업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이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모순들'이었다.
"내 안정은 중요하지만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싫지만 노조에 가입하겠다",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내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맥락의 얘기를 뒤섞어 쏟아냈다.
앞으로 직업을 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이라고 하는 대학 4학년 김희정 양(가명)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경쟁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 양에게 "본인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그는 "내가 경쟁력을 키워 (구조조정) 대상에 안 끼면 된다"고 답했다.
"과연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시대에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논리가 먹힐까요? 경쟁이 세계적 추세인걸요. 오히려 저는 반대하는 쪽의 논리가 더 빈약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경쟁력을 갖춰 그 속에서 살아남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죠."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시장경제의 경쟁 논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가 한국노총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응답자의 70.1%가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마당에 이들 젊은이들 입장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다. (☞ 관련기사 보기 : 대학생 70.1%, 자본주의 긍정적으로 평가)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에 따라 밀려나야 할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적응 방법은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자'에 포함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초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는 것.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김동운 씨는 "친구들 가운데 소위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이 되는 아이들은 모두 공기업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니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고시 공부'에 매달리지요. 대기업은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노동조합? 내 방패막이가 되어 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시선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ㄱ기업에서 1년 계약의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26)는 "잦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우리 기업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서도 그는 "지나친 규제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 막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기업 활동의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면서는 "우리 회사의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종 사회적 현안에 노동조합이 나서는 것을 '삐딱'하게 보면서도, 자신의 '방패막이'로서의 노조는 긍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관점은, 앞의 한국노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현재의 노동운동이 투쟁위주의 운동노선으로 인해 외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70% 가까이 됐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20대의 변화는 향후 노동운동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노동운동가는 "지금의 20대가 조합원들의 다수가 되는 10년 후면 노동운동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무리 취업난이어도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 받고 싶다"
노동, 즉 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20대에게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삶의 질 또한 중요하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벼랑 끝까지 내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노동은 자아실현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해 H대기업에 입사한 문재희 씨(24, 가명)는 "이력서를 낼 회사를 선택한 기준은 복지후생이었다"고 말했다. 적절한 휴가와 지나치게 '빡빡하지' 않은 근로환경이 우선 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대학생들 역시 대부분 "일한만큼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이다. 취업정보사이트인 인크루트가 260개의 중소·대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신입사원의 평균 퇴사비율은 28.8%였다. 그렇게 어렵다는 취업난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사원이 10명 중 3명 꼴인 것이다.
입사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김모 씨(28)는 지금 다른 기업에의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일은 너무 많고 월급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인크루트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사무직과 대기업 생산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5042명 가운데 3179명(63%)이 대기업 생산직을 골랐다.
과거 같으면 사무직을 더 선호했겠지만 지금은 기름때가 묻더라도 더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수? No!"…"노무현 정권, '진보'아닌 것들로 '진보' 채워 놓아"
20대의 이같은 '실리주의적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라는 큰 태풍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환위기 때 부모가 명예퇴직 당하고 하루 아침에 가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현재의 20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적인 마인드가 유독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대학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20대가 주로 접하게 되는 '생각'은 사회 주류의 것들뿐이다. 부모의 영향력도 과거보다 막대해졌다. 80년대의 20대는 상당수가 그들의 부모보다 나은 학벌에 더 '똑똑한' 자식이었지만 지금의 20대는 부모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0대 구직자 1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7%가 구직활동 시 부모의 관여도가 크다고 답했다. 심지어는 부모가 채용 문의를 하거나 면접시험에 동행했다는 응답도 각각 9.5%, 3.4%였다. 부모 세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실제 한 대학에서 만난 김희정 양은 "취업 문제를 부모님과 가장 많이 상의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에서 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혼재ㆍ왜곡돼 사용되는 것도 20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다. 한 대학생은 "한미FTA 같은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3년간 C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시간강사는 "20대는 아직 가치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시기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노무현 정권은 진보가 아닌 것들을 '진보'라는 개념 속에 담아둠으로써 학생들의 생각에 혼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회 통념상 '보수'에 속하는 것들을 노무현 정권이 '진보'라고 주장함으로써 '진보'의 개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20대의 주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며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강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이 시간강사는 "온갖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며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노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에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20대의 이율배반적인 사고들, 그리고 그것들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의식구조는 요즘 20대들의 '생각 없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순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여정민/기자 (ddonggri@pressian.com)
"요즘 드라마엔 왜 20대 주인공이 사라졌나"
[20대 보수화? 그 이면③ㆍ끝]"'20대 보수화'는 위험신호"
[프레시안 전홍기혜/기자]
교내 24시간 편의점 유치. 패밀리레스토랑 빕스ㆍ피자헛 20% 할인, 샐러드바 프리비 20% 할인, 던킨 도넛 커피 5잔에 1잔 무료서비스 제공….
최근 있었던 서울시내 한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쏟아진 공약들이다.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등 정파 차이로 총학생회 선거 구도가 짜이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이득'이다. 이를 통해서도 20대들의 변화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쟁과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20대는 분명 '보수화'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보수화됐나? 이들이 보수화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평균소득 88만 원, 승자독식 받아들인 첫 세대"
10%의 안정적 일자리, 아니면 '나락'. 외환위기 이후 10년,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 한국사회에서 20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기존 경제체제에 편입되는 통로가 좁아졌다는 것.
"약간 과장된 측면에 있지만 20대의 월평균소득을 계산해보면 88만 원이다. 이들은 탄탄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굉장히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집단에 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식의 삶의 대안은 이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대가 경제적으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20대 중에는 학생 등 비경제활동인구가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많아 이들의 월평균소득 88만 원을 곧바로 다른 세대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들이 현 경제체제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는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석할 수는 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도 이들의 보수화를 낳은 원인 중 하나지만,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를 서로 힘을 합쳐 해결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도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가져왔다.
"80년대 '노(勞)-학(學) 연대'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길게 보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들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협력게임'을 통한 집단적 해법보다는 개별적인 해법을 찾는다. 이들은 '승자독식'을 받아들인 첫 번째 세대다." 우 연구위원의 말이다.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대학 학점 4.5로도 부족하다"면서 영어 공부에 목을 매고,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 등 간접 사회경험에 매달리게 된다.
또 사적인 노력을 통해 경쟁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인식은 곧 공정한 경쟁의 룰이 적용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일정 정도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워낙 좁다보니 '약자'에 대해 허용되는 배려도 협소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경쟁과 성장의 법칙을 받아들이면서 '복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장에 대한 끝없는 갈망....'황빠' 중엔 20대가 많았다
보수화된 20대가 성장담론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 2005년 겨울 한국을 들썩였던 '황우석 파동' 때도 드러났다고 우 연구위원은 주장했다.
이들 20대는 윗 세대보다 생명공학 등 첨단과학에 훨씬 익숙한 세대다. 그만큼 생명공학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아는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지지한 소위 '황빠'들 중에는 과학기술에 대해 잘 모르고 국가주의에만 사로잡힐 수밖에 없던 40-50대에 비해 20대가 결코 적지 않았다. 이들 20대 '황빠'들의 강렬한 열망은 생명공학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 즉 경제성장이었다. '성장'에 대한 강한 열망이 합리적 이성의 작동을 마비시킨 셈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경제적 보수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확장되면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 이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부유세 폐지 움직임이 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다른 경제질서를 구축해 온 유럽형 복지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20대 보수화'는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며, '자기중심적이면서 냉소적인' 20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구조의 산물이자 그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진보 세력, 박정희식 성장 뛰어넘는 대안 보여줬나
이처럼 20대의 경제적 보수화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가 낳은 결과다. 따라서 이들 젊은 세대의 변화는 사회적인 '위험' 신호다. 홍성태 교수는 "이런 추세로 양극화가 계속될 경우 사회 갈등과 대립이 전면화될 수 있다"며 "더 심각할 경우 사회해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20대가 '낡은 개념'으로 치부하고 있는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는 "20대는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하고 경쟁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라며 "30-40대가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국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진보 세력들은 보수화된 20대들을 탓하기 전에 '박정희식 성장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보여준 적이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20대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비난하지만 정규직 중심의 현 노동운동이 대부분의 20대들이 처음 사회에 진출하면서 경험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정말 자기 문제로 고민해 왔나. 노동운동 세력이 현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이런 질문은 노동운동뿐 아니라 다른 진보 진영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일부 386 세력들처럼 진보진영이 다 저마다 제 잇속 차리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 20대들이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이라도 진보 세력이 이같은 사회적 흐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 할 경우 '20대 보수화'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진보운동마저 모두 몰락할 것이라고 홍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11위의 막대한 경제력을 동원해 '국가 재건'을 해야 할 상황이며, 그런 역량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홍기혜/기자 (onscar@pressian.com)
[프레시안 전홍기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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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있었던 서울시내 한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쏟아진 공약들이다.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등 정파 차이로 총학생회 선거 구도가 짜이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이득'이다. 이를 통해서도 20대들의 변화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쟁과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20대는 분명 '보수화'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보수화됐나? 이들이 보수화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평균소득 88만 원, 승자독식 받아들인 첫 세대"
10%의 안정적 일자리, 아니면 '나락'. 외환위기 이후 10년,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 한국사회에서 20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기존 경제체제에 편입되는 통로가 좁아졌다는 것.
"약간 과장된 측면에 있지만 20대의 월평균소득을 계산해보면 88만 원이다. 이들은 탄탄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굉장히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집단에 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식의 삶의 대안은 이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대가 경제적으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20대 중에는 학생 등 비경제활동인구가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많아 이들의 월평균소득 88만 원을 곧바로 다른 세대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들이 현 경제체제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는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석할 수는 있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 중엔 왜 20대가 없나 우석훈 연구위원은 20대는 '소외된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가난한' 20대는 구매력 측면에서도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는 10대보다 더 하위 그룹으로 간주된다는 것. 그래서 기업들은 마케팅에서 20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TV 드라마다. 드라마는 그 시대 대중들이 '선망'하는 것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 연구위원은 "요즘 소위 황금시간대 드라마 주인공 중엔 왜 20대가 없는가"를 물었다. 90년대만 해도 인기를 끌던 트랜디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대학생 내지는 20대 후반의 직장 초년생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 주인공들의 나이는 30대 중후반에서 40대다. 마흔을 넘은 여배우들이 각종 드마라 주인공을 차지하면서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우 연구위원은 "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가 가장 구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20대는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도 이들의 보수화를 낳은 원인 중 하나지만,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를 서로 힘을 합쳐 해결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도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가져왔다.
"80년대 '노(勞)-학(學) 연대'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길게 보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들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협력게임'을 통한 집단적 해법보다는 개별적인 해법을 찾는다. 이들은 '승자독식'을 받아들인 첫 번째 세대다." 우 연구위원의 말이다.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대학 학점 4.5로도 부족하다"면서 영어 공부에 목을 매고,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 등 간접 사회경험에 매달리게 된다.
또 사적인 노력을 통해 경쟁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인식은 곧 공정한 경쟁의 룰이 적용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일정 정도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워낙 좁다보니 '약자'에 대해 허용되는 배려도 협소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경쟁과 성장의 법칙을 받아들이면서 '복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장에 대한 끝없는 갈망....'황빠' 중엔 20대가 많았다
보수화된 20대가 성장담론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 2005년 겨울 한국을 들썩였던 '황우석 파동' 때도 드러났다고 우 연구위원은 주장했다.
이들 20대는 윗 세대보다 생명공학 등 첨단과학에 훨씬 익숙한 세대다. 그만큼 생명공학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아는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지지한 소위 '황빠'들 중에는 과학기술에 대해 잘 모르고 국가주의에만 사로잡힐 수밖에 없던 40-50대에 비해 20대가 결코 적지 않았다. 이들 20대 '황빠'들의 강렬한 열망은 생명공학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 즉 경제성장이었다. '성장'에 대한 강한 열망이 합리적 이성의 작동을 마비시킨 셈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경제적 보수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확장되면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 이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부유세 폐지 움직임이 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다른 경제질서를 구축해 온 유럽형 복지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20대 보수화'는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며, '자기중심적이면서 냉소적인' 20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구조의 산물이자 그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한국같은 나라는 없다 '20대 보수화'가 전세계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특수성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만 무작정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는 한국에서 20대들은 아무런 대안 없이 '무한경쟁'으로 떠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 연구위원은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의 사례를 통해 한국도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보호막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과 프랑스는 노조에서 20대들의 이해를 대변한 사례. 특히 스웨덴은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20대들과 협력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20대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노조에서 주로 건의해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 노조가입률도 높아졌다. 프랑스에서 기업이 26세 미만의 청년을 채용하면 2년 동안에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최초고용법'(CPE)이 지난 4월 좌초된 것도 노조와 20대의 협력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연방국인 스위스는 지방정부가 20대 고용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지방정부가 공공일자리를 만들어서 20대를 우선적으로 고용했다. 일본은 법원이 나선 사례. 일본 대법원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80% 이하의 월급을 받는 것을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지난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 동일 직종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임금 격차(비정규직이 정규직의 60% 수준)가 가장 컸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1년차의 임금과 같은 수준이었으며, 복리 후생과 사회보험 등 처우에서만 차이를 보였다. 조 연구위원은 "일본에서는 그것이 단순히 경제문제인 반면 한국에서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진보 세력, 박정희식 성장 뛰어넘는 대안 보여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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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대의 경제적 보수화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가 낳은 결과다. 따라서 이들 젊은 세대의 변화는 사회적인 '위험' 신호다. 홍성태 교수는 "이런 추세로 양극화가 계속될 경우 사회 갈등과 대립이 전면화될 수 있다"며 "더 심각할 경우 사회해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20대가 '낡은 개념'으로 치부하고 있는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는 "20대는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하고 경쟁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라며 "30-40대가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국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진보 세력들은 보수화된 20대들을 탓하기 전에 '박정희식 성장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보여준 적이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20대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비난하지만 정규직 중심의 현 노동운동이 대부분의 20대들이 처음 사회에 진출하면서 경험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정말 자기 문제로 고민해 왔나. 노동운동 세력이 현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이런 질문은 노동운동뿐 아니라 다른 진보 진영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일부 386 세력들처럼 진보진영이 다 저마다 제 잇속 차리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 20대들이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이라도 진보 세력이 이같은 사회적 흐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 할 경우 '20대 보수화'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진보운동마저 모두 몰락할 것이라고 홍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11위의 막대한 경제력을 동원해 '국가 재건'을 해야 할 상황이며, 그런 역량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와 한국 사이의 거리…'20대 보수'는 한나라당 지지세력 아니다 20대들이 경제적으로 보수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현 한국 상황에서 정치적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지적도 많다. 올해 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들의 한나라당 지지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지만, '민주주의'를 경험한 20대들을 기존 보수세력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 홍성태 교수는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에 대한 혼동과 왜곡이 심하다"며 "한국의 '보수'와 세계사적 '보수'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한국의 보수는 그간 반민족적, 반민주적 행태와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다는 점에서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추구하는 정책적 차이에 앞서 '진보는 좋은 것', '보수는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는 것. 그는 또 "보수와 진보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계속 바뀌어 간다"며 "현 시대에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문화, 자연(생태) 등을 잣대로 놓고 수구, 보수, 개혁, 진보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주의도 이제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보수화된 20대'들은 국가나 집단의 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종래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자들보다 더 진보적"이라면고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잣대로 경제만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또 다른 축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한국 사회의 이념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997년 영국의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Brian Gosschalk)는 이념적 구분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한 축, '개인적 자유'를 다른 한 축에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는 추구하나 개인 자유는 통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conservative)△경제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 모두 보장돼야 한다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s) △경제적 자유는 국가가 통제해야 하지만 개인적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는 사민주의(socialists)△경제적, 개인적 자유 모두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권위주의(authoritarian) 등 4가지로 정치적 태도를 구분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약 1/3이 보수주의자, 20% 가량이 자유주의자, 18%가 사민주의자, 13%가 권위주의자 등으로 나타났다. |
전홍기혜/기자 (onscar@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