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겨레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양극화’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만의 일이 아니다.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에서도 소득 격차가 날로 벌어지면서 각국이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양극화 ‘홍역’을 앓는 세계 각국의 실태와 대처 움직임을 몇 차례 나누어 살펴본다. 1.중국 2.일본 3.미국 4.영국

 

① 중국 : 도농 소득차 15년새 6배

‘덩샤오핑 선부론’ 중국사회 빈부격차 ‘독버섯’ 작용

빈부차, 사회지속성 위협…분배중시로 전환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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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샤오핑 전 중앙군사위 주석의 10주기를 사흘 앞둔 지난 16일 중국 선전 길거리의 덩 전 주석 초상화 게시판 앞으로 한 아이가 어른 등에 엎혀 지나가고 있다. 어촌마을이던 선전은 1979년 1호 경제특구로 선정된 뒤 중국 경제발전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선전/로이터 연합
19일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타계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중국을 가난에서 해방시킨 등샤오핑의 업적을 조명하며, 중국이 여전히 그의 ‘위대한 유산’ 위에 서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그를 추모하는 열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추모사조차 바치지 않았다. 그의 고향인 쓰촨성 광안에서 조촐한 기념행사와 학술토론회가 열렸을 뿐이다.

오히려 요즘 중국에선 그의 ‘위험한 유산’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등이 개혁·개방의 논리로 내세운 이른바 ‘선부론’(先富論)이 중국 사회에 빈부 격차라는 독버섯을 심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최근 몇 해 동안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이어갔지만, 빈부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지고 있다. 도시와 농촌, 개발지역과 낙후지역으로 나타났던 빈부 격차가 이젠 도시와 개발지역 안에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중국의 빈부 격차는 남미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 세계은행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지니계수가 지난해 말 0.5에 근접한 것으로 추정했다. 소득 분배 상태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0.5를 넘으면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미에선 브라질(0.54)을 비롯해 대부분 나라가 0.5를 넘는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지니계수는 0.16이었다.

중국의 남미화는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에서 두드러진다. 도시의 평균 가처분 소득을 농촌의 평균 현금수입으로 나눈 소득 격차 비율은 20여년 계속 악화됐다. 1980년 2.0 대 1이었던 게 2005년엔 3.3 대 1로 올라갔다. 도시에 사는 이들이 누리는 각종 보조금과 사회복지 등 비금전적 수입까지 고려하면 실제 소득 격차는 6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소득 불균형은 교육의 양극화로 나타난다. 베이징과 톈진, 난징 같은 대도시에선 부자들을 겨냥한 고급 유치원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한 달 교육비가 대개 1000위안(약 12만1240원)에 이르는 이들 유치원에선 교구는 물론 교사까지 외국에서 수입한다. 중국 어린이들 대부분은 꿈에서나 누릴 호사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경우, 농민공(농민 신분의 도시근로자) 가정의 어린이 가운데 70%가 유치원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시성의 농부 천둥셩(43)은 지난해 6월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베이징의 명문 대학에 들어가고도 남을 점수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밭농사와 양치기로 1년에 기껏 3000위안 정도를 버는 그로선 아들의 학비를 도저히 댈 수 없었다. 생활비까지 합치면 해마다 1만위안이 넘는 거금을 보내줘야 할 판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아들에게 “아비 구실을 못해 부끄럽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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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도시와 농촌 주민의 소득변화 추이
‘유전무병 무전유병’
중국 농촌 의료보험 보장률 10% 그쳐

의료비 급증도 중국의 빈부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중국에선 지난해 가구당 의료비 지출이 처음으로 교육비 지출을 앞질렀다. 중국 사회과학원 조사를 보면, 중국 가구의 연간 총지출 가운데 의료비 지출이 12%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를 뒷받침할 의료보험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현재 중국 농촌의 의료보험 보장률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유전무병 무전유병’(有錢無病 無錢有病)이라는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후진타오 정부는 이런 빈부 격차를 줄이고자 과거 성장 위주 정책을 분배 중심으로 바꾸는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가 사회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현실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그가 지난해 당의 정책 목표로 제시한 조화사회론은 덩샤오핑과 장쩌민으로 이어지는 선부론의 고리를 끊으려는 이데올로기적 수술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상하이방이라는 선부론의 수혜자들과 일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의 조화사회론이 권력투쟁 성격까지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진타오 정부의 조화사회론은 사회의 양극화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부와 중부 등 낙후지역 투자 확대 △농업세 폐지 △농촌 의무교육 확대 및 의료제도 개선 △독점가격 규제 등 빈곤층 지원 대책이 잇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의 실패를 사회주의 공유제의 원칙으로 풀려는 의지가 배어 있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은 올해 처음 시달한 중앙 문건에서도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을 강조하며 ‘3농’(농민·농촌·농업)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후진타오 정부의 이런 야심찬 계획은 아직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책의 전환을 뒷받침할 제도의 공백으로 말미암아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부작용이 속출한다. 재정 은 낭비적으로 지출되고, 지방의 개발전략으로 중앙의 분배정책이 왜곡되기도 한다. 국유기업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부패의 사슬을 통해 부가 다시 부자들에게 집중되는 일도 여전하다. 빈부 격차를 줄이려는 중국의 전쟁은 아직도 출발점에서 멀리 가지 못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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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부론’ 열매 인구 0.3%가 독식

은행예금 3분의 1, 소득 30%이상 차지
중산층 5% 불과 양극화 충격 흡수 못해

소득의 양극화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선진국들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빈부격차가 일정 기간 축소됐다가 이후 꾸준히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까진 소득 격차가 줄어들었으나 이후 확대로 돌아섰다. 일본은 1972년부터, 영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소득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소득 양극화는 이들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소득 구조로 보면, 중국에선 중산층의 존재가 극히 미미하다. 민간기업 소유자, 외자기업 경영진 및 관리자, 일부 공무원, 교육·의료·과학기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중국의 중산층은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소득 양극화가 초기에 ‘부익부’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1990~95년 중국의 하위계층 2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4%에서 5.5%로 떨어졌다. 그러나 상위계층 2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 기간에 41.8%에서 47.5%로 상승했다. 부익부 속도가 빈익빈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의 부익부 속도는 미국의 그것보다 빠르다.

중국의 부유층은 개혁·개방 이후 새롭게 등장한 계층이다. 국가 주도의 개혁과 급속한 경제성장의 최대 수혜자들로서, 이른바 불균등 발전론과 선부론의 과실을 독점한 이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한 보고서에서 “중국 전체 인구의 0.3%인 390만명이 전체 은행 예금의 3분의 1 이상, 전체 소득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빈곤층을 산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중국 정부의 절대 빈곤층 표준인 1인당 연수입 668위안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해 중국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0.2%인 2600만명에 이른다. 저수입 빈곤층 표준인 924위안을 잣대로 할 경우엔 6000만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계 표준인 1인당 하루 1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의 빈곤인구는 1억6000만명으로 늘어난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들이 급격한 소득 양극화의 희생양이다. 연간 소득이 3천~4만위안인 이들은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하층민들로, 중산층 대열에 들지 못하는 이들이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격차 해소 대책은 이들의 경제적 추락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② 일본

막내린 ‘1억 총중류’ 정치권 최대 쟁점

올 초부터 일본의 한 민영텔레비전에서 <파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자격증 26개를 보유하고 시급 3000엔(약 2만3천원)을 받는 ‘슈퍼 파견사원’의 좌충우돌 활약을 통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일본사회의 현실을 코믹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14일 방영된 6회분은 드라마로서는 올리기 힘든 20.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여기서 요즘 ‘격차’(양극화)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양극화 문제는 4월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최근 “고이즈미·아베 정권 6년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화한 나라가 됐다”고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은 양극화 문제를 최대 쟁점으로 내세워 지원세력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와 연대하고 있다. 민주당과 렌고는 전체 비정규직 1707만명 중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파트타임과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주요 국가 중 최저수준인 시급(전국평균 673엔)을 1000엔으로 끌어올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창설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2005년 기준으로 일본의 파트타임과 아르바이트 직원은 1266만명이었다. 10년 전에 비해 370만명이 늘어난 수치다. 이는 전체 고용자 네명 중 한 명 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급여수준은 남성은 정규직의 50%, 여성은 70%에 머물고 근속연수가 쌓여도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개혁 등 경쟁력 확대정책이 비정규직 양산
잇따른 개선대책 불구 엄청난 재정적자로 실효성 의문

야당의 공세에 맞서 자민당 정부도 발빠르게 ‘단기간 노동자의 고용관리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과 형평에 맞도록 대우하고, 정규직 전환 기회도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의 실제 적용 대상자는 전체 파트타임 노동자의 4~5%에 불과하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만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와 별도로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프리타’(2005년 기준 201만명), 구직활동을 포기한 젊은이 ‘니트’(64만명), 생활보호대상 가구(104만가구), 모자가정(123만명) 등 저소득층의 생활수준 향상을 겨냥한 ‘성장력 저변 끌어올리기 전략’을 16일 긴급 제출했다. 그 내용은 △공적기관이 직업훈련 수강 경력 등을 기재하는 증명서를 발행하는 ‘잡카드’ 제도 창설 △기업 내 연수와 학교교육을 합친 프로그램 제공 △생활보호 모자가정의 취업률을 현재 48%에서 60%로 확대 △중소기업의 하청거래 적정화와 경영개선 등을 통한 임금인상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복지에서 고용으로’라는 5개년 추진계획으로 발표된 이번 대책은 보름 만에 급조돼 예산마련 방안이 포함돼 있지 않은데다, 일본 정부가 내년도 예산의 핵심 사안으로 추진 중인 ‘재도전 지원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워킹 푸어’(일하는 빈곤층)에 대한 대책은 정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자민당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요미우리신문>은 이를 ‘궁여의 격차대책’이라며 비판했다. 신문은 “정부가 본보기로 삼은 영국 토니 블레어 정부의 뉴딜정책은 2005년에만 450억엔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고용증가를 통한 실업수당 감소, 세수 증가 효과를 낳았다”며 “그러나 아베 정권은 재정 지출에 소극적이어서 새 제도가 얼마나 뿌리내릴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아베 정권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지출에 소극적인 이유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에 따라 연금과 의료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비용이 매년 수천억엔씩 늘어나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

재정문제는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체제의 5년간에 걸친 구조개혁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금융구조 개편 등 각종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해 오늘날 일본 기업의 경쟁력 확대와 경기회복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한편으론 기업환경 개선에 치중한 나머지 기업환경 조성을 명목으로 각종 세금을 내려 막대한 재정적자와 양극화 확대라는 유산도 함께 물려주었다.

1980년대 70%였던 소득세 최고세율이 현재 40%까지 내렸으며, 상속세의 최고세율도 2003년 70%에서 50%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련의 요구에 따라 법인세 인하까지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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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역시 고이즈미 개혁노선에 따라 경제성장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험난해진 중산층 되는 길

날품팔이 성행…비정규직 3명중 1명
빈곤율 9년새 두배가량 늘어 15.3%

파트타임으로 장애인을 돌보는 미즈스나 준(34)은 올해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35살이 넘으면 정규직이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즈스나는 17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혼자 살 때는 몰랐는데 3년 전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고 나니 반듯한 직장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반쯤 포기한 듯했다. 경기회복으로 고교 졸업생 취업률이 80%에 육박한다지만, 그는 이미 취업하기에는 너무 늦은 ‘잃어버린 세대’(25~36살)이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정도 일하는데 그 때마다 시간이 달라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어요. 정규직으로 취업하려면 여기저기 알아봐야 하는데 시간을 내기도 어렵네요.”

현재 그의 한 달 수입은 약 20만엔(156만원) 가량. 부인이 주말에 슈퍼마켓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 7만여엔을 합쳐도 생활은 빠듯하다. 월 8만6천엔의 집세를 내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각종 보험을 내고 나면 저축은 생각도 못한다. 미즈스나의 경우에서 보듯, 일본에서 중산층이 되는 길은 점점 험난해지고 있다.

한때 ‘1억 총중류’라는 말이 구가되고 소득격차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적은 나라(1993년)였던 일본의 ‘영광’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요즘 심각한 양극화 사회로 변모하는 중이다.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발표를 보면, 일본의 빈곤율은 1996년 8%에서 2005년 15.3%로 급증해 주요국가 중 세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또 소득격차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2년 0.4983으로 크게 높아져 0.5에 근접했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0.5를 넘으면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1~2년 새 인원 절감 등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한 일본 기업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성장의 그늘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다. 경기침체 때는 잠복해 있던 양극화 문제가 경기회복을 틈타고 분출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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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소득격차가 심화한 가장 큰 요인은 비정규직의 급증이다. 2006년 9월 현재 일본의 파트타임 노동자를 비롯해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계약사원 등을 합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1707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3.4%에 이른다. 96년 20.9%였던 비정규직이 10년 새 13%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거품경기가 꺼진 뒤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일제히 정규직 채용을 억제하고 그 대신 비정규직 채용을 늘린 결과다.

최근에는 취업이 되지 않는 젊은이를 겨냥해 휴대전화 한 통으로 간단히 날품팔이를 할 수 있는 ‘스폿파견’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도 생겨나고 있다. 파견사원은 일정 기간 계약하는 것인데 반해, 스폿파견은 휴대전화나 전자우편으로 당일 날품팔이해서 급료를 받는 형태다.

비정규직 차별반대 운동단체인 전국유니온의 가모 모모요(57) 회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스폿파견은 각종 명목으로 떼이는 게 많고 쓸데없이 붙잡아두는 시간이 적지않아 실제 시급은 최저임금 이하인 500엔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파견사원과 달리 사회보험도 없고 안전대책도 미비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세계는 양극화와 전쟁중 ③ 미국

‘감세 신봉자’ 부시마저 빈곤 걱정

미국 정치권에서도 양극화 해소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연초부터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미국 사회의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또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이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지난 25년간 소득격차가 심화됐다”고 말해, 취임 7년 만에 처음으로 양극화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1980년의 두 배 이상에 달할 정도로 격차가 확대됐다”며 “더 많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미국민들의 봉급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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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수도 워싱턴 거리의 한 노숙자가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난방설비에 다가가 몸을 데우고 있다. 미국에선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빈곤층 대상 복지 혜택이 대폭 축소돼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워싱턴/로이터 뉴시스

 

"25년간 소득격차 심화” 취임 7년만에 첫 양극화 언급
교육비 지원·세금정책 등 논의…선거의식 실효성 의문

버냉키 의장은 6일 “소득격차가 자본주의 동력과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우려사항”이라고 못박았다. 그 역시 교육과 훈련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늘려 경제기회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불평등 문제에 대한 세계화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며 “시장 유연성을 제약하거나 무역장벽을 쌓는 것이 임금불균형 해소책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부시 대통령이 소득격차 문제를 인정하고 나선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의회 장악 이후 나온 타협적 제스처의 하나로 풀이된다. 그는 그동안 개인의 소유를 더 늘리는 사회를 의미하는 ‘오너십 사회’를 표방해왔다. 부시 행정부 국내정책의 키워드인 ‘오너십 사회’란 연금·의료보험·교육 등에서 개인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극화 문제는 11·7 중간선거 기간에 일부 민주당 후보들이 최고경영자 등 1%의 최상위 소득층이 전체소득의 16.1%를 차지한다고 이슈화하면서 미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블룸버그통신〉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 국민의 4분의 3이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응답했다. 55%는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제적 승자와 패자를 구분짓는 ‘승자독식’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미 국민들 사이에도 경제성장이 전체 국민의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데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2001년 하반기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한 이른바 ‘신경제’ 시기에 노동생산성은 3% 증가했지만, 중산층과 노동계층의 소득은 정체했다. 고소득층에게만 경제적 성과가 집중된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이사벨 사와힐 선임연구원은 “우리가 이룩한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며 “중산층이 저소득층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고소득층이 다른 소득층에서 멀어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전문가들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정책은 부시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08년 예산안에 일부 반영됐다. 부시 행정부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무상학자금 보조를 늘리고, 증세와 세제혜택을 혼합해 직장 내 의료보험 미가입자들을 지원하는 의료보험 개혁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안은 무상학자금을 늘리는 대신 저소득 가정에 대한 에너지 지원, 아동보건, 직업훈련 예산을 줄여 오히려 격차를 더욱 벌리게 할 것이라고 민주당은 비판하고 있다. 의료보험 개혁방안도 4700만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무보험자들이 세금신고를 하지 않는 극빈자나 홈리스들이기 때문에 세제혜택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올해 의회가 개원하자마자 선거공약이었던 △최저임금 인상 △대학학자금 융자 이자율 인하 △보험약값 인하 등의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들 정책 역시 양극화의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인기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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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빈곤층 비율
무엇보다도 부시 행정부 출범 때 5조8천억달러에서 올해 말 9조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천문학적인 연방 재정적자가 행정부나 의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은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 가난한 소득계층에 혜택을 주자며,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 환원을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은 부자들에 대한 과세는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를 축소할 것이라며 세금감면으로 경제를 살려 세금을 더 거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당 상원선거대책위원장인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내년 대선에서는 중산층의 경제적 불안감이 이라크전을 대신해 최대의 선거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감세정책으로 중산층에게도 일정 부분 세금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감세정책 환원을 얼마나 강력히 주장할지는 미지수다.

전국민 의료보험제 등 사회안전망 확충 문제 역시 내년 선거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바락 오바마, 존 에드워즈 등 대선주자들은 전 국민 의료보험제를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하원 재무위원장인 민주당의 바니 프랭크 의원 같은 이는 주주들이 최고경영자들에게 특별보상을 할지를 투표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법안을 제출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구멍 뻥 뚫린 사회안전망
4660만명 의료보험 혜택 사각지대
등록금 급증…‘빚쟁이 대학생’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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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 무보험 인구와 비율
버지니아주 클리프턴에 사는 도널드 스토러(61)와 갈리 스토러(58) 부부는 건강 문제로 일찍 퇴직했다. 지금은 사회보장연금으로 받는 월 1800달러(약 169만원)로 생활한다. 노인의료 혜택인 메디케어 대상이지만, 1800달러로는 갈리의 유방암 치료와 도널드의 폐질환 치료에 드는 추가비용이 버겁기만 하다.

이들 부부는 2년 전부터 의료비와 집세, 차량유지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갈리는 ‘빚 돌려막기’가 “악의 회전목마”라며 “건강 때문에 인생의 노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우울해했다.

워싱턴에 사는 제프 브라운(52)은 아들의 대학 학비 때문에 빚을 냈다. 이자율 5%로 3만3750달러, 이자율 8%로 1만1250달러, 모두 4만5천달러의 대출금 때문에 고민이 많다. 2년째 실직상태로 소득이 거의 없고, 부인만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이자 지불로 인한 세금감면을 받기 위해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월 수백달러에 달하는 의료보험 가입은 엄두도 못 낸다. 아프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미국에서 중산층 이하의 가정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건강보험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탓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미국은 유럽국가들에 비해 복지제도 도입이 늦었고, 복지예산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그만큼 의료보험이나 연금보험 등 사회안전망 밖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사회보장연금 재정은 10년 뒤면 적자로 돌아선다.

연방인구조사국의 2005년 통계를 보면, 미국민 15.9%인 4660만명이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연간소득 2만5천달러 이하의 빈곤가정의 네 집 중 한 집 꼴로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이들 중산층 이하 가계들은 소득증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 의료비, 교육비, 모기지, 자동차 관련 비용, 각종 세금 등 고정적 비용 지출이 증가하면서 뜻하지 않은 부채가 가계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소득격차 양상도 심각하다. 연방준비은행 통계를 보면, 미국의 상위 10%가 전체 부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또 상위 5%가 나머지 95%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최고경영자 1인당 평균소득은 2003년 평균노동자 301명 분에서 2004년 431명 분으로 늘었다.

연방 국세청(IRS) 통계에서 2004년 전 국민 수입은 6.8% 늘었지만, 이 중 미 국민의 0.1%인 13만500가구의 수입은 27.5%나 증가했다. 반면 저소득층 20%(6000만명)의 소득은 1.8% 느는 데 그쳤다.

학자금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06~2007년 공립대학의 등록금 평균은 5836달러로, 1976~1977년보다 268% 올랐다. 사립대학은 2만2218달러로 248% 인상됐다. 신용조사회사인 엑스페리안의 조사 결과 학자금 융자를 포함해 2만달러 이상의 빚을 진 20대 젊은이들도 3%에 달한다고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최근 보도했다.

빚을 안고 사회에 나서게 된 젊은이들의 22%는 융자받은 학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원치 않은 직장에 취업했고, 29%는 추가 교육의 기회를 포기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세계는 양극화와 전쟁중 ④ 영국

빈곤대책 쏟아내도 아직 먼 ‘제3의 길’

보수당도 “가족붕괴 등 근본원인 없애야” 목소리 높여
정부 ‘구직유인’ 노력에도 소득차·어린이 탈선 등 심각

요즘 영국에서는 양극화 해법을 둘러싸고 공수가 뒤바뀌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소득 격차와 빈곤 문제에 침묵을 지켜오던 보수당이 오히려 양극화 해소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40대의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카메론이 있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빈곤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책임”이라며 강력한 빈곤척결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노동당처럼 세금과 급여를 통한 소득 재분배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가난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수당은 빈곤의 원인을 △실업 △낮은 수준의 교육 △가족붕괴 △높은 부채와 복지의존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업과 교육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는 노동당과 큰 차이가 없지만, 가족붕괴 문제를 강조하면서 빈곤에 처한 한 부모 가정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주장하고 있다. 보수당은 최근 영국 어린이들이 주요 선진국 중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보고서가 나오자 “노동당이 10년 간 펼친 정책의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고 몰아붙였다.

카메론 당수와 보수당의 이런 접근법은 진보진영과 언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새정책연구소 소장인 피터 캔웨이는 “카메론의 발언은 이전 세 명의 보수당 당수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것”이라며 “카메론이 주장하는 내용은 노동당의 정책과도 상당 부분 맥을 같이하고, 빈곤으로 인한 가족붕괴 등에 대한 정책은 오히려 더 적극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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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실직자들이 런던 시내에 있는 취업알선 단체인 ‘헨던 잡센터 플러스’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적극적인 구직행위와 기초보장 급여 지원을 연계하는 등 빈곤층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런던/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영국 사회에서 양극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정권을 잡은 이래 규제 완화와 공공부문의 민영화 등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소득 격차의 골은 깊어만 갔다. 양극화 추세는 존 메이저 전 총리 시대(1990.11~97.5)에 약간 주춤했지만, 노동당 집권 이후 정점에 달했다. 2000년대 초에 이르러 소득 격차, 그리고 그로 인한 빈곤율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97년 집권한 이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새로운 번영과 발전을 약속했다. 하지만 집권 후 오히려 빈곤으로 붕괴하는 가정이 늘고, 어린이의 마약·섹스 등의 탈선 문제가 빈번해졌다. 당황한 노동당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반 빈곤전략(anti-poverty strategy)’이란 이름 아래 각종 대책들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이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빈곤에 극히 취약한 어린이와 노인 등 ‘연금 생활자’를 핵심 정책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세금 공제와 급여·수당의 대폭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교육·건강·사회적 돌봄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2004년에 발표된 ‘어린이 법(Child Act 2004)’이 대표적인 예다.


빈곤 탈출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젊은이 등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일’을 하도록 유인하는 강력한 조처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실업자가 근로를 거부해도 기초생계보장 차원에서 급여를 지원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제시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급여를 아예 중단한다. ‘신고용협정(New Deal)’ 정책이 대표적이다. 장애인, 한 부모 가정, 장기 실업자, 젊은이 등을 대상으로 협약을 체결하고 적극적인 구직행위와 직업교육 참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빈곤을 탈출하려면 무엇보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영국 정부의 철학이 깔려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양극화와의 전쟁에 돌입한 영국 정부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을까? 지난해 말 발표된 조셉 론트리 보고서는 회의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일부 개선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일이 빈곤의 핵심대책이라는 빈곤탈출 전략은 수정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영국 정부는 1999년부터 2005년 말까지 700만명의 어린이와 10%의 연금생활자 등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홍보는 14일 발표된 유니세프 보고서로 빛을 잃었다. 유니세프 보고서는 영국 어린이들이 약물·폭력·섹스 등에 다수 노출돼 있고, 부모 및 친구들과 관계도 매우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나던 브라더쇼 영국 요크대학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영국은 매우 불평등하고 높은 수준의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며 “이로 인해 많은 조사 영역에서 어린이들이 한결같이 나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어린이 빈곤 대책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복지·교육·사회적 환경 등 각종 분야에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복지국가 대신 기업의 각종 규제를 풀면서 ‘경쟁국가(competition state)’로 변모를 추진해온 영국이 악화하는 양극화의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지켜볼 일이다.<끝>

런던/전용호 통신원 chamgil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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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 지하철 킹스크로스역에서 인도계로 보이는 노동자가 야간작업을 하고 있다. 밤을 새면서 일을 하지만 그가 받는 시급은 6.05파운드(약 11,000원)에 불과하다.

심각한 소득격차

살인적 물가에 허덕이는 빈곤층 19%
상위 20%계층 소득, 하위층의 16배

“주로 늦은 밤부터 청소를 시작합니다.”

캠벨(43)은 런던 지하철 역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한 그는 사람들이 퇴근한 뒤 일을 시작해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에 집으로 돌아간다.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하지만 그가 받는 시급은 6.05파운드(약 1만1천원)이다. 가장 싼 지하철 일일 티켓값인 6.70파운드도 안 된다.

“시간당 6파운드로는 런던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월세 내는 것도 빠듯하죠.”

가나에서 건너온 그는 낮 시간에는 식당에서 잡일을 한다. 4명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피곤한 모습이었다.

런던은 영국에서도 소득의 ‘빛과 그늘’이 가장 극명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캠벨처럼 청소나 잡일 등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런던의 살인적 물가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시티뱅크, HSBC, 바클레이즈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즐비한 스퀘어 마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매년 급증하는 연봉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한다. 이들의 평균연봉은 10만파운드(약 1억8천만원)를 돌파했다.

영국은 유럽에서도 소득격차가 심하고 빈곤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9%인 1150여만명이 빈곤에 처해 있다. 여기서 빈곤의 기준은 그해 평균 가구소득의 60%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올리는 가구다. 영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스페인 등과 함께 유럽에서 빈곤율 상위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빈곤상태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 복지 최선진국인 ‘북부 유럽형’ 복지국가의 빈곤율이 가장 낮다. 반면 복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남부 유럽형’ 국가와, 기업규제 완화에 선도적인 영국과 아일랜드 등의 ‘자유주의형’ 국가들은 높은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스웨덴에 비해 두 배 가량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

영국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5년 말 기준으로 상위 20% 계층의 가구소득은 6만6300파운드(약 1억2156만원)로 하위 20% 계층의 4300파운드(약 788만원)보다 무려 16배가 많았다. 이는 세금을 공제하기 전의 원래 소득으로 정부의 조세, 복지정책 등이 반영된 세금과 각종 급여 등을 포함하면 그 격차는 4배 정도로 줄어든다. 상위계층에서 떼어낸 세금 등이 아동급여·장애인 급여·연금·소득지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저소득 계층에게 지원되면서 소득 재분배의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수 년간 영국 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일부 개선된 수준이지만, 아직도 그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조셉 론트리 보고서는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부유한 사람까지 10개의 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지난 10년간 하위 10번째 계층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한 반면, 가장 부유한 상위 계층은 전체의 29%를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전용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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